소설리스트

제7장 뜻밖의 재회 (38/82)

제7장 뜻밖의 재회

“으아악! 늦었다!”

영완은 침대에서 일어나 서둘러 화장실로 향했다.

분명히 알람시계를 맞춰두고 잠자리에 들었음에도 그동안 계속되는 강행군으로 피로가 쌓였는지 알람을 듣지 못하고 무려 30분이나 지나서야 눈을 뜨고 만 것이다.

“젠장! 생각해보니 학교에 입고 나갈 양복도 드라이 안 했잖아?”

옷장을 열어보니 지난겨울 내내 한 번도 입지 않아 먼지가 쌓인 양복이 눈에 들어왔다. 이래가지고서야 입고 나갈 수가 없었다.

“별수 없네. 이거라도 입고 가야지.”

영완은 빠르게 다른 옷장에서 그나마 가장 무난한 옷을 꺼내 입었다. 갈색 면바지에 노란색 스트라이프 남방을 걸쳐 입고는 그 위에 회색 가디건을 걸쳤다.

“뭐야. 너무 젊어 보이잖아?”

아무리 봐도 20대 중반으로 보일 만큼 너무나 캐주얼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평소 면 티를 즐겨 입는 영완에게 이보다 더 나은 옷은 있을 수가 없었다.

결국 그 차림새로 영완은 집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중간에 집 근처의 세탁소에 양복을 모조리 맡긴 후 곧바로 학교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후우, 간신히 지각은 면하겠네.”

시계를 바라보니 8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버스로 10분 정도면 학교에 도착하니, 아침 조회 시간에는 늦지 않을 듯했다.

피슈욱.

띠.

10분이 지나자 버스는 학교 앞 정류장에 도착했다. 아직 어느 정도 여유 시간이 있었지만, 행여나 지각이라도 할까 영완은 버스 문이 열리자마자 버스 카드를 찍고는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어, 그래!”

“선생님, 안녕…….”

“선생님, 안녕…….”

“어, 그래. 어, 그래.”

자신을 알아보는 학생들이 인사를 해왔지만, 영완은 그들에게 대충 인사를 건네고는 빠르게 교정으로 들어섰다.

“여어, 서 선생, 그동안 잘 지냈나?”

“…….”

교정으로 들어서자마자 마치 기다리고 있기라도 했다는 듯 시영이 영완에게 반갑게 인사를 걸어왔다. 그리고 시영의 옆에는 희영이 나란히 붙어 있었다.

“잘 지내셨어요, 서 선생님?”

“…훗. 이제는 쌍으로 덤비시겠다? 됐으니까 그 면상들 들이밀지 마시지?”

희영의 나긋나긋한 인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영완은 두 사람에게 거침없이 독설을 내뱉었다. 주변에는 학교 운동장으로 들어서는 학생 수십 명이 자리하고 있었건만 영완의 입은 거침이 없었다.

“너- 너!”

“그만 해요, 시영 씨. 애들이 봐요. 나중에 다시 이야기해요.”

영완의 도발에 화를 참지 못하고 달려들려던 시영을 희영이 만류했다.

그런 두 사람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영완은 한껏 비웃으며 걸음을 옮겼다.

탁.

“잘하셨어요, 선생님!”

“어? 넌 하나 아냐? 그런데 그게 무슨 소리지? 잘했다니? 대체 뭘…….”

영완의 등을 스스럼없이 손으로 내치며 친한 척을 할 만한 학생은, 이번에 졸업하는 3학년 이하나뿐이었다. 영완도 오랜만에 만난 제자가 반가웠지만, 그것보다 의미 모를 말이 더욱 관심이 갔다.

“저 두 사람을 벙 찌게 만든 거요. 뒤에서 다 봤다고요. 아무튼 대단해요. 드디어 장 선생님의 그늘에서 벗어나셨네요?”

“하하하, 뭐, 그렇게 됐지. 아무튼 오랜만에 만나니 반갑네. 방학 동안 잘 지냈겠지?”

“뭐,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알차게 보내긴 했죠. 그보다 이제 내일모레면 졸업하니까, 그 이후부터는 우린 더 이상 사제지간이 아닌 거죠?”

하나의 의미심장한 물음에도 영완은 그저 웃으면서 대답했다.

“떽! 한번 사제지간은 영원한 사제지간인 거다! 밖에서 만나면 술이라도 살 테니 그렇게 알아. 그보다 나 지금 바쁘니까 나중에 이야기하자.”

휘익.

“어, 어! 선생님! 선생님!”

영완은 하나를 피해 곧바로 교무실로 들어섰다. 다행히 아직 아침 조회가 시작하지 않았는지 교감 선생님은 자리에 없었다.

“여어, 서 선생? 좀 늦었네?”

“아, 늦잠을 자버려서요.”

“역시 젊은 사람이라 방학을 무지하게 알차게 보낸 모양이지? 난 그저 집에서 애들 뒤치다꺼리나 하면서 지냈는데 말이야. 흑, 부러워.”

“아이고, 무슨 말씀을 그렇게.”

영완은 옆자리인 이국헌 선생과 그동안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며 아침 조회를 기다렸다.

드르륵.

“아, 다들 오셨습니까? 그럼 곧바로 아침 조회를 시작하도록 하지요.”

이윽고 문이 열리며 교감 선생님이 교무실로 들어섰다. 그리고는 천편일률적인 개학일 아침 조회가 진행되었다.

“…이상으로 아침 조회를 마치도록 하고. 아, 이번에 새로 오신 신입 선생님이 한 분 계시는데 지금 교장 선생님과 담화를 나누고 계십니다.”

“남선생님입니까, 아니면 여선생님입니까?”

“허허, 박현덕 선생님이 좋아하시는 여선생님이십니다. 그렇게들 아시고 1교시가 끝나고 뵙도록 하지요.”

여선생님이라는 말에 아직 미혼인 남자 교사들이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찌 된 영문인지 예슬고에는 남초 현상이 일어나 처녀 선생님들은 고작 서너 명에 불과하지만 총각 선생님들은 무려 10명 가까이 되는 탓이었다.

“서 선생도 은근히 좋지?”

“네? 뭐가요?”

이 선생의 물음에 영완은 당최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새로운 신임 교사 말이야. 아까 교장실 지나면서 언뜻 봤는데 꽤나 예쁘더라고. 게다가 여교사답지 않게 옷도 섹시하게 입었고 말이야.”

“섹시하게요?”

“그래. 옷이 파이거나 한 건 아닌데, 몸매가 훤히 드러나는 옷을 입어서 그런지 무척이나 섹시했어. 어때? 이 정도면 천하의 서 선생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겠어?”

남자 교사도 그렇지만, 여자 교사에게도 복장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물론 여기가 초등학교가 아닌 탓에 아이들이 교사를 본 따 옷을 입고 다니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교사는 품위 유지를 위해 옷을 단정하게 입는 것이 철칙이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랬다.

“아무튼 조금 있다 보게, 서 선생.”

“네.”

영완은 이 선생과 헤어져 자신이 맡은 반으로 향했다.

드르륵.

시끌벅적.

교실 안으로 들어서자 역시나 수능 시험을 치른 고3 교실답게 시끄럽기 짝이 없었다. 이미 예상했던 바라 영완은 그저 조용히 교탁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이렇다 할 말도 없이 교탁에 놓인 의자에 앉아 노트북을 꺼냈다.

“선생님! 왠지 모르게 훤칠해지신 기분인데요?”

“응? 아, 이 옷 말이야? 사실 방학 내내 방구석에만 틀어박혀 지내느라 양복 다리는 걸 깜빡했지 뭐야. 그래서 그냥 아무거나 주워 입고 왔는데?”

“선생님은 양복보다 그런 캐주얼이 훨씬 잘 어울리는데요? 나이도 더 어려 보이고. 안 그래?”

“정말 그런 것 같은데? 게다가 머리 스타일도 바뀌셨네요? 예전에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아저씨 머리였는데.”

“진짜네? 선생님 훨씬 멋져요!”

여학생, 남학생 할 것 없이 이구동성으로 영완의 변화된 모습에 칭찬세례를 퍼부었다. 영완 역시 기분이 썩 나쁘지는 않은지 웃으면서 그들의 물음에 대답했다.

“머리는 그냥 방학 동안 안 자른 것뿐이고 옷이야 뭐, 평상시에도 양복을 입고 다닐 수는 없잖아? 그러는 너희들이야말로 이제 슬슬 대학생 티가 나는데?”

영완의 말대로 학생들은 머리도 기르고 화장도 하면서 이전보다 훨씬 성숙해진 느낌이었다.

특히 그중에서도 하나의 화장 기법은 발군이었다.

형제 중에 언니라도 있는 것인지 하나는 실제 대학생들보다 훨씬 깔끔하게 화장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머리도 가볍게 웨이브를 줘서 한층 세련된 느낌을 주고 있었다.

“우리가 좀 하긴 하죠.”

“큭큭, 수진이 네가 제일 어색한데 그런 소리 하니까 이상하잖아.”

“뭐라고! 내가 어때서! 우리 엄마가 공들여서 해준 거란 말이야!”

“후훗.”

아이들이 그렇게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영완은 노트북을 열고 『오벨리스크』 홈페이지인 오시리스에 접속했다. 거의 매일 접속하긴 하지만 워낙 많은 사건들이 일어나는 곳인지라 매일같이 체크를 해야만 했다.

게다가 영완은 지저 세계를 헤매느라 최근 3일 동안 오시리스에 접속하지 못한 실정이었다.

“응? 남부 원정대?”

영완은 오시리스 게시판을 확인하다 최근 게시물 중 가장 조회수가 높은 게시물을 발견했다. 이 게시물은 여느 게시물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조회수를 자랑하고 있었다.

“300만이 넘었다니. 이 정도면 『오벨리스크』를 하는 거의 대부분의 유저들이 클릭했다는 소리잖아?”

『오벨리스크』에 동시 접속자 수는 100만에 근접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아마 휴면 유저까지 더하면 300만 명은 거뜬할 것이기에, 300만에 달하는 조회수라면 거의 모든 유저들이 읽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어디.”

[제목:남부 원정대]

안녕하십니까, 오벨리스크를 즐기시는 많은 유저 여러분!

저는 이번에 펜하르트 왕국에서 임페리얼 길드를 건립한 그랜저라고 합니다. 아마 제 아이디를 알고 있는 분들도 계실 테고 그렇지 않은 분들도 계실 줄로 압니다.

이렇게 제가 주제 없이 나서게 된 것은, 이번에 저희 길드에서 획득한 하나의 고문서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저희는 드디어 열고야 말았습니다!

라그혼 남부에 위치한 화신의 사막으로 가는 길을!

“뭐라고? 화신의 사막으로 가는 길?”

이 게시물의 저자가 그랜저라는 사실보다 화신의 사막으로 가는 길을 알아냈다는 것 자체가 더욱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가 이렇게 당당하게 게시물을 제작했다는 것을 볼 때, 그는 분명히 이전의 길보다 훨씬 안전한 길을 발견한 것임이 틀림없었다.

“이게 사실이라면 큰일이다.”

화신의 사막은 아직 그 누구도 개척하지 못한 미지의 땅이다. 그곳에 대한 여러 가지 정보들은 그저 추측이나 소문에 불과할 뿐, 그 어느 것도 확실하게 확인된 바가 없었다.

게다가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 거대 길드들이 각 길드의 최정예들을 모아 여러 차례 개척을 시도했음에도 여지없이 실패할 정도였다.

“어디 그 시커먼 속내 좀 드러내보실까?”

감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 임페리얼 길드에서 발견한 루트는 기존의 루트에 비해 위험도가 절반 이하이며, 기존 원정대의 앞길을 가로막던 거대한 그레이트 웜들도 그 수가 현저하게 적은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화신의 사막은 우리 유저들에게 있어 두렵고도 위험한 미지의 대지.

때문에 저희 임페리얼 길드에서는 이번 기회를 이용해 남부 화신의 사막을 개척할 원정대를 모집합니다.

모든 유저들을 두루 모집하고 싶으나…….

그다음 내용은 더 볼 것도 없이 모집 인원과 제한 수준이었다.

모집 인원은 1천.

총 300만이 즐기고, 그중 200만이 선택한 아르니안 대륙에서 1천이라는 숫자는 무척이나 조악한 숫자임에 틀림없었다.

“게다가 레벨 300 이상이라. 아예 작정을 하셨군.”

레벨 300 이상이라면 아르니안 대륙에서 최고의 고수 유저들만 모집하겠다는 의미였다. 그렇게 된다면 아마도 임페리얼 길드 측에서도 300레벨을 넘어섰거나 그에 거의 근접한 길원들만을 동원한다는 의미였다.

“확실히 화신의 사막은 그 정도는 되어야 살아남을 수 있겠지.”

화신의 사막에 원정을 다녀왔던 유저들은 이구동성으로 그곳이 곧 악마의 땅이라고 지칭했다.

지옥의 유황불을 연상시키는 폭염은 물론이고,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사막의 몬스터들 또한 공포의 대상이라고 했다. 거기에 더해 유저들을 상대로 게릴라를 펼치는 사막의 부족은 가히 죽음을 선고하는 사신들과도 같다고 할 정도였다.

“그마저도 겨우 사막의 초입에 불과하니.”

화신의 사막은 넓다. 끝이 보이지 않는 머나먼 지평선. 거기에 더해 부서지는 모래 언덕은 그곳을 지나치는 유저들의 피로를 더욱 가중시키는 역할을 했다.

게다가 무슨 조화인지 그곳에서는 비행을 할 수가 없었다. 때문에 하늘을 날 수 있는 와이번이나 그리폰들도 그곳을 지나칠 수는 없을 지경이었다.

“화신의 사막으로 들어서는 또 다른 루트를 발견했다는 것은 아마도 사실이겠지. 하지만 그랜저의 야욕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을 거야.”

시영, 즉 그랜저는 현실에서와 마찬가지로 아르니안 대륙에서도 모든 것을 갖기를 원했다. 아니, 오히려 아르니안 대륙에서 더욱 많은 것을 얻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런 그이니만큼 이번 원정을 통해 더욱 많은 것을 얻어낼 속셈임에 틀림없었다.

‘어쩌면…….’

어쩌면 녀석은 우리들이 모르는 또 하나의 비밀을 알고 있을지도 몰랐다. 고작해야 새로운 루트를 발견한 것만으로 이렇게 호들갑을 떨 이유가 없었다.

적어도 영완 그 자신이 알고 있는 시영은 그랬다.

‘네 녀석이 무슨 일을 벌이고 있건 그건 내가 반드시 깨부순다.’

남부 원정대의 모집 마감 시한은 현실 시간으로 일주일. 『오벨리스크』의 시간으로 따지면 한 달가량의 여유가 있었다.

‘기다려라, 그랜저! 네놈 뜻대로는 절대 안 될 테니!’

딩동댕동.

수업 종이 울리자 영완은 노트북을 끄고 교실 밖으로 나섰다. 마침 이국헌 선생도 교실에서 나오며 영완에게로 다가왔다.

“드디어 섹시 여교사를 만나볼 수 있겠지?”

“하아, 50분 내내 그 생각만 하신 겁니까?”

“당연하지. 아마 자네도 보면 깜짝 놀랄걸? 그 정도로 미인이니까 말이야. 어서 가세! 미녀가 우릴 기다려!”

대체 얼마나 미인이면 그가 이렇듯 호들갑을 떨까.

평소 무서운 마누라 때문에 여자들에게는 눈조차도 돌리지 않는 공처가가 바로 이국헌이다. 그런데도 그는 체념 불구하고 너스레를 떨고 있었다.

결국 영완 역시 이 선생의 넉살에 떠밀려 평소보다 빠른 걸음으로 교무실로 향했다.

교무실에는 이미 많은 동료 교사들이 자리에 앉아 새로 오는 신임 교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당연히 대부분 남자 교사들이었다.

“쳇, 역시 다들 소문이 빠른데? 아무튼 우리도 어서 앉자고.”

“…네.”

어찌 된 영문인지 평소 때에는 점잖기만 하던 동료 교사들이 굶주린 늑대와도 같은 얼굴로 자리에 앉아 있었다. 더욱 가관인 것은…

‘김재은 선생님, 당신까지…….’

예슬고의 남자 교사 중 가장 오랜 교단 경험을 가지고 있는 이가 바로 김재은이었다. 게다가 나이가 50줄을 훨씬 넘었음에도 체구가 장대하고 성격이 호방해 남교사, 여교사 할 것 없이 신망이 두터운 남자였다.

그런 그마저 내심 설레는 얼굴로 교무실 문만을 바라보고 있다니. 참으로 놀랄 노 자였다.

드르륵.

“어라? 다들 벌써 와 계시네요?”

“하아…….”

교무실 문이 열리자 내심 신임 여교사라고 생각하고 잔뜩 긴장해 있던 남자 교사들은, 생각지도 못한 동료 여교사들이 얼굴을 내밀자 깊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떨어트려야 했다.

“자, 자, 모두들 모이셨군요.”

“앗!”

그러나 반전은 일어났다.

맨 마지막으로 들어오는 여교사 뒤에 교감 선생님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 뒤로 정말 학교 내에서는 보기 드문 섹시한 복장의 미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설마… 미연?’

이국헌 선생이 말했던 섹시 미녀는 다름 아닌 미연이었다. 그녀는 평소보다는 훨씬 단정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옷차림새에 대해 보수적인 교육 현장에서는 튀는 차림새를 하고 있었다.

“긴말할 필요 없겠지요. 이번에 새로 부임하신 이미연 선생님이십니다. 지난 학기에 부득이한 사정으로 퇴직하신 송해 선생님을 대신해 부임하신 것이니, 모두들 잘 지내시리라 믿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교감 선생님이 간단한 소개말을 하고 교무실 밖으로 나가자, 이어 소개받은 이미연 선생이 환한 얼굴로 자기소개를 했다.

“안녕하세요, 이미연이라고 해요. 첫 부임이라 좀 떨리는데 여러분들을 뵈니 그래도 힘이 나네요.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당연하죠!”

미연의 인사에 총각 남교사들이 이구동성으로 크게 소리쳤다.

그들의 성대한 환호에 미연은 살짝 입가에 미소를 짓고는 이내 영완이 자리하고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그녀를 어떻게 대할까 고민하던 영완은 그녀가 먼저 반갑게 인사를 건네자, 자신도 일어서서 그녀에게 마주 인사를 건넸다.

“여기가 제자리예요.”

“아, 그러세요? 그런데…….”

“그냥 이 선생이라고 불러주세요. 여긴 엄연히 직장이니까요.”

“뭐, 원하신다면.”

사실 퇴직한 김재은 선생은 영완의 옆자리였다. 때문에 공교롭게도 그녀가 영완의 옆자리에서 직무를 보게 된 것이다.

‘뭐, 상관없겠지. 그때 일은 술김에 일어난 일이었으니까. 그냥 직장 동료로서 생각하면 되겠지.’

이미 영완의 머릿속에서 미연의 존재는 저 멀리 안드로메다로 사라진 뒤였다. 사실 그녀가 미인이고 나름대로 매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맞지만, 문제는 영완의 가슴속 상처였다.

희영으로 인해 생긴 커다란 상처.

영완은 아직 그 상처가 아물지 않고 있었다.

* * *

“너 대체 무슨 생각이야!”

아이들이 급식실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 사이, 별관 뒤에 마련된 작은 벤치에 두 여인이 앙칼진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는데?”

“무슨 소리냐니! 미연이 너 전공 경영학이었잖아! 그런 네가 대체 어떻게 수학 교사로 부임할 수 있느냐 이거야! 말이 돼?”

희영의 앙칼진 물음에도 미연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어머, 몰랐어? 나 경영학 전공하고 수학을 부전공했잖아. 괜히 학교 6년 다닌 줄 아니? 게다가 나 교육학도 확실하게 이수했어! 여기 올 자격 충분해!”

“이익! 넌 네 아버지 회사 차기 후계자잖아! 그런 네가 갑자기 왜 이런 작은 고등학교에 부임하는 거냐고! 말이 돼? 말이 되냐고!”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네. 난 아버지 회사 같은 거 물려받지 않아. 난 그냥 평범한 게 좋아. 저기 봐. 차도 포르줴에서 경차 바티즈로 바꿨어. 작아서 아직 적응하긴 힘들지만, 뭐 아무튼 탈 만해.”

미연의 능수능란한 대답에 희영은 더욱 화가 나는 듯 언성을 높였다.

“야!”

“소리치지 마. 여긴 엄연히 직장이야. 그리고 교내에서는 반말하지도 마. 깎듯이 이 선생이라고 부르란 말이야! 알아들어? 그리고 이제 이렇게 불러내지도 마! 너 따위와는 더 이상 친구도 아니니까!”

미연은 조금 전과는 판이하게 표독스러운 눈빛으로 희영을 쏘아붙이고는 곧바로 그 자리를 빠져나갔다.

“치잇.”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희영은 분한 듯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어찌나 세게 깨물었는지 입술 사이로 피가 배어나올 정도였다.

그렇게 두 여인 사이에 칼날 같은 기류가 형성되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