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마신의 성
“드디어 어느 정도 청소가 끝났네.”
싸가지와 파뱃이 하늘을 떠다니던 상급 마수들을 모조리 처치하자 천휘의 얼굴에 드디어 웃음꽃이 피어올랐다.
[역시 싸가지다, 주인. 대단한 실력이야. 나라면 절대 저렇게 못했을 거다.]
“오베른, 너도 충분히 강해. 그저 지금은 그의 공격 방식이 이 상황에 어울렸을 뿐이다. 그보다 이제 문제는 땅 위의 상급 마수들이 우리가 저곳을 넘어가는 걸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겠나 하는 거지.”
[걱정 마세요, 주인님.]
“응?”
천휘의 불안한 말에 쥬얼리 데보타가 웃으며 대답했다.
[제가 어떤 존재인지 잊으셨어요? 저 이래 봬도 8서클 대마법사예요.]
“…그래서 뭐? 네가 저 녀석들을 광역 마법으로 한 번에 처치할 수 있다는 소리냐?”
[그- 그게 아니라…….]
“아니면 됐어. 그리고 앞으로 내 앞에서 거드름 피우면… 알지?”
[죄- 죄송해요.]
천휘가 집어 드는 피리를 본 쥬얼리 데보타는 사색이 된 채 고개를 푹 숙였다.
끼에에엑!
“오오, 드디어 오네!”
천휘가 데보타를 나무라고 있는 그 순간, 멀리서 싸가지 슈트라카이젠을 태운 파뱃이 길게 울음을 터트리며 아래로 내려왔다.
[주인님.]
“그래, 내 싸가지 네 녀석이 해낼 줄 알았다! 간만에 멋진 모습이었어.”
[감사합니다, 주인님.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니었습니다.]
“어, 알고 있어.”
[…….]
그저 의례적인 말이었지만 천휘는 그것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며 싸가지 슈트라카이젠이 말문을 닫게 만들었다.
“그보다…….”
[네?]
“받을 건 받아야지?”
[아…….]
천휘가 내미는 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달은 싸가지 슈트라카이젠은 품 안에서 하나의 구슬을 꺼내들었다.
“…이게 뭐냐?”
[상급 마수를 잡고 얻은 아이템입니다.]
“누가 그걸 몰라? 내 말은 왜 이거뿐이냐고!”
[그- 그게…….]
불같이 화를 내는 천휘를 보며 싸가지 슈트라카이젠은 한 발자국씩 뒤로 물러났다. 직감적으로 그가 단단히 화가 났음을 깨달은 것이다.
그와 더불어 쥬얼리 데보타도 사색이 되어 뒤로 물러났다.
삐이익.
[크아아악!]
[꺄아아악!]
그들이 도망가기 전에 천휘가 세게 피리를 불자 순식간에 일대에 피리 소리가 퍼져 나가며 두 강시가 고통에 몸부림쳤다.
“빌어먹을. 저 녀석이 죽고 싶어 환장을 한 거야? 감히 아이템을 안 챙겨 와? 겨우 이따위 구슬만 주워오고!”
천휘의 손에 들린 구슬은 싸가지 슈트라카이젠이 처음 상급 마수를 잡고 나서 획득한 아이템이었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몬스터들과 공중전을 벌이느라 정신이 없어 아이템을 챙기지 못했다.
“젠장, 별 기대는 안 되지만 확인이나 해볼까?”
[블러드 스톤(Bloodstone)]
마신의 종자인 마수들이 죽으며 배출해내는 암흑 투기의 결정. 마신의 힘이 담겨 있어 최상급 마정석의 몇 배에 해당하는 기운이 응집되어 있다.
등급:유니크 내구력:-
분류:광석
제한:-
옵션:밝혀지지 않음
“…제기랄. 등급만 유니크고 완전히 잡템이잖아? 겨우 이런 템 하나 건지고 당당히 돌아와? 이런 개자식을!”
삐이익.
[끄아아악!]
[꺄아아악!]
천휘는 아이템을 챙겨 오지 못한 싸가지 슈트라카이젠이 괘씸해 다시 한 번 피리를 불어 두 강시를 고통에 몸서리치게 만들었다.
[주인, 여기서 시간을 지체하기보다 어서 저 성으로 가는 것이 좋을 듯하다.]
“네 말이 맞아. 좋아, 오베른. 너는 가서 저 두 녀석을 파뱃의 등 위에 태워. 바로 출발한다.”
[알겠다, 주인.]
천휘의 지시에 오베른이 아직도 고통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두 강시를 파뱃의 등에 태웠다.
드래곤에 비교할 수는 없지만 하늘에서만큼은 드래곤 부럽지 않은 크기를 자랑하는 와이번의 시체로 만들어진 파뱃인 만큼 일행을 모두 태우기에는 충분할 정도로 거대했다.
“자, 가자!”
끼에에엑!
천휘의 명령에 파뱃이 가뿐하게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이제 천휘 일행을 어찌할 상급 마수는 없는 상황. 파뱃의 움직임은 천휘를 배려한 것인지 유연하게 공기의 흐름을 헤쳐 나가고 있었다.
“허얼, 위에서 보니까 녀석들이 얼마나 많은지 더 실감나네. 그나저나 저 두 녀석들은 왜 싸우는 거야? 아니지. 마수라 본능적으로 전투를 즐기는 건가?”
[녀석들의 흉성은 지상의 몬스터들에 비할 바가 아니다. 이 지저 세계의 마수들이 만약 지상으로 들이닥친다면 그야말로 대혼란이 일어나고 말 거다. 어쩌면…….]
“그럴 일은 없을 거야. 어차피 이 마수들은 지저 세계에서 벗어날 수 없어. 마신의 힘이 이곳에 미치는 한 말이야. 녀석들은 마신의 힘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들이니까.”
[주인 말이 옳다. 하지만 세상에는 언제나 의외의 일이 벌어지곤 한다.]
“아, 글쎄 아니라니까.”
두 사람이 그렇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이, 어느새 파뱃은 상급 마수들의 바로 위를 지나고 있었다.
크워어어엉!
아우우우우!
“크윽! 뭐- 뭐야?”
[띠링! 상급 마수 고질라의 포효 영향으로 체력이 30% 하락했습니다.]
[띠링! 상급 마수 구미호의 포효 영향으로 체력이 30% 하락했습니다.]
[띠링! 급격한 체력 저하로 1분간 기절 상태에 빠집니다.]
일대를 진동시키는 두 마수의 울음소리에 천휘가 두 발로 서 있지 못하고 스르르 무너졌다. 다행히 오베른이 잡았으니 망정이지, 하마터면 그대로 땅바닥으로 떨어질 뻔했다.
피슈웅.
쐐애액.
[파뱃, 움직여라!]
그와 동시에 땅에서 거대한 불덩어리와 전격의 창이 솟구쳤다. 불덩어리는 상급 마수 고질라의 입에서 나온 것이고, 전격의 창은 상급 마수 구미호의 꼬리에서 튀어나온 것이었다.
끼에에엑!
[뭐라고? 피할 수가 없다고?]
돌아오는 파뱃의 대답에 오베른이 놀라 소리쳤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고질라가 뿜어낸 불덩어리와 구미호가 뿜어낸 전격의 창이 파뱃을 향해 쇄도하고 있었다.
[모든 것을 무로 돌릴지니, 앱솔루트 실드(Absolute Shield)!]
피잉, 피잉.
[헛, 무슨!]
[오베른, 지체하지 말고 앞으로 날아가요! 저들의 공격은 모두 내가 막아낼 테니!]
[나도 있다, 오베른!]
어느새 고통에서 풀려난 쥬얼리 데보타와 싸가지 슈트라카이젠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조금 전 마수들의 공격을 막아낸 것은 쥬얼리 데보타가 생성해낸 8서클 유일의 방어 마법 앱솔루트 실드였다.
[알겠다, 파뱃! 전속력으로!]
끼에에엑!
아우우우웅!
크워어어엉!
파뱃이 전속력으로 하늘을 가로지르자 고질라와 구미호가 연달아서 불덩어리와 전격의 창을 뿜어냈다.
하나하나가 7서클 대인 마법에 필적할 정도로 강력한 공격이었지만 다행히 쥬얼리 데보타는 8서클의 대마법사. 그녀는 그들의 공격을 무리 없이 잘 막아내고 있었다.
[앗, 저쪽에도 마수들이!]
[빌어먹을! 숨어 있던 마수들이 있었던 모양이군!]
분명히 허공을 부유하던 마수들을 모두 처치했건만, 아직 남아 있는 마수들이 있었던 모양이다. 모기 형상의 마수들이 삼삼오오 파뱃을 향해 날아들고 있었다.
[오베른, 주인님을 잘 보호해라! 녀석들은 내가 처치한다! 쥬얼리, 당신은 파뱃을 잘 보호해라!]
[어떻게 하려고?]
[내게 다 생각이 있다!]
아직 천휘는 스턴 상태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상황. 이런 경우에는 응당 싸가지 슈트라카이젠이 나서야 했다.
[온다!]
[…….]
오베른의 외침에 싸가지 슈트라카이젠이 파뱃의 꼬리 부근으로 향했다. 파뱃의 후미로 모기 형상의 마수 셋이 따라붙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베른, 너는 녀석들의 공격을 방어해내라! 녀석들의 공격 수단은 저 긴 대롱이다! 제법 묵직하니 전력을 다해야 할 거다!]
[알았다, 싸가지!]
[당신은 어쩌려고요?]
[난… 녀석들을 격추시킬 거다.]
[격추?]
[지켜봐라!]
싸가지 슈트라카이젠이 후미에서 레이피어를 꺼내들었다. 가냘프기 짝이 없는 그의 레이피어. 마수들의 거대한 덩치에 비교하면 바늘에 불과할 정도로 작은 무기였다.
왱왱왱.
[하앗!]
마수들의 날갯짓 소리가 들려오자 싸가지 슈트라카이젠이 살짝 허공으로 뛰어올라 레이피어를 전방으로 휘둘렀다.
[라그나 블래스트(Ragna Blast)!]
싸가지 슈트라카이젠의 레이피어가 검은 오망성을 그려 내기 시작했다. 눈으로 좇을 수 없을 만큼 쾌속하게 레이피어를 움직여 그려 낸 검은 오망성.
이윽고 그 검은 오망성에서 모든 것을 집어삼킬 어둠의 프라즈마가 뿜어져 나왔다.
쿠와아아!
흡사 어둠의 그림자가 집어삼키듯 어둠의 프라즈마가 마수 2마리를 휘감았다.
[헉!]
[이- 이럴 수가!]
단 한 번의 공격으로 2마리의 상급 마수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도무지 믿을 수 없는 그 공격에 흉성이 대단한 마수들은 물론이고 오베른과 쥬얼리 데보타도 전율에 휩싸였다.
[뭣들 해? 마수들이 또 공격해오잖아! 쥬얼리, 정신 차려!]
[앗! 앱솔루트 실드!]
퍼엉, 퍼엉.
[크윽.]
찰나지간에 마법을 펼치느라 제대로 마나를 운용하지 못한 쥬얼리 데보타가 짧은 신음과 함께 파뱃의 등 위로 쓰러졌다.
[파뱃, 전속력으로!]
끼에에엑!
싸가지 슈트라카이젠의 명령에 파뱃의 동체가 빠르게 날아 마수들의 시야에서 벗어났다. 다행히 모기 형상의 마수들도 쫓아오지 않아 일행은 쉽게 마수들의 영역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크윽.”
[주인, 드디어 깨어났는가?]
겨우 1분 동안 기절 상태에 빠졌던 천휘였지만 워낙 긴박했던 상황이기에 1분이라 해도 일행에게는 무척이나 길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여긴 또 어디고?”
[그게 어떻게 된 거냐 하면…….]
천휘가 기절해 있던 1분 동안에 벌어진 일을 오베른이 차분히 설명했다.
이윽고 그의 말을 모두 들은 천휘가 새삼스러운 눈으로 싸가지 슈트라카이젠을 바라봤다.
[무- 무슨……?]
“무슨 일은, 그냥 네가 처음으로 예뻐 보여서 그렇지. 큭큭. 역시 소드엠페러라는 건가?”
천휘의 따뜻한 눈빛에도 싸가지 슈트라카이젠은 두려워하며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천휘는 그를 해코지할 생각이 없는지 그의 손을 잡아주었다.
“잘했다, 싸가지. 이제는 정식으로 네게 이름을 지어주마. 쥬얼리, 그건 너도 마찬가지다. 흐음, 어떤 이름이 좋을까?”
사실 싸가지와 쥬얼리라는 이름은 천휘의 괴팍한 성격이 만들어낸 별명에 불과했다. 그렇다고 슈트라카이젠이나 데보타라 부르기에는 조금 껄끄러운 면이 있었다. 행여나 두 강시의 정체를 다른 이들이 알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데보타에 관한 것은 철저히 함구해야 할 비밀이었다.
“흐음, 귀찮네. 싸가지, 넌 뭐라 불리고 싶냐?”
[주인님께서 괜찮다면 카이젠이라 불리고 싶습니다.]
“카이젠이라… 무난하네. 쥬얼리, 너는?”
[저는 하이 엘프의 역사상 가장 아름다웠다는 미의 여신 로즈란으로 불리고 싶어요.]
“로즈란? 뭐, 그렇게 해. 그런데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인데… 어디서 들어봤더라? 뭐, 아무튼 괜찮겠지. 좋았어! 그럼 너희는 이제 카이젠과 로즈란이다. 로즈란, 저 앞에 마수들이 남아 있는 거냐?”
[후훗, 제가 확인해볼게요. 주변의 모든 것을 내 앞에 비출지니, 옵저버(Observer)!]
로즈란을 중심으로 푸른 마나의 파동이 주변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하더니 이내 일행의 머리 위로 희미하고 거대한 원이 생성되었다.
[이럴 수가!]
“무슨 일이야?”
[옵저버 마법으로도 탐색을 할 수가 없어요.]
“흐음, 그럴 수도 있겠지. 이 주변은 마신의 힘이 가장 강렬하게 미치는 그의 앞마당일 테니 말이야. 이제부터는 우리의 눈과 귀로,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확인하며 전진한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
천휘의 말에 세 강시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옵저버 마법으로 마수들은커녕 주변의 식물이나 야수들도 분간할 수 없다는 말은 이 근방 모든 생명체에 마신의 힘이 절대적으로 미치고 있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일행을 에워싸는 나무들이 워낙 오밀조밀하게 얽혀 있는 탓에 한 치 앞도 분간하기 어려운 최악의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천휘의 말처럼 오감을 극대화시켜 주변을 철저하게 경계하며 움직여야 했다.
[나와 카이젠이 앞장서겠다.]
“그렇게 해라. 마신의 성으로 추측되는 곳이 그리 멀지 않은 것 같으니 조금이라도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될 거다.”
[알겠다.]
드디어 지저 세계 여행에 종지부를 찍을 마신의 성이 그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앞장서던 오베른이 나무를 걷어내 전방의 시야가 조금씩 트이는 덕이었다.
“다행히 더 이상 마수들은 없는 모양이네.”
[아직은 방심할 수 없어요. 잊으셨어요? 마수들 중에는 움직이지 않는 식물형 마수들도 더러 있었다고요.]
“괜찮아, 이젠. 더 이상 마수들이 다가올 수 없을 테니까.”
[그게 무슨……?]
“저길 봐라.”
천휘가 가리키는 곳에는 거대한 성문이 자리하고 있었다. 아르니안 대륙에 존재하는 성문과는 확연하게 그 형태가 다른 거대한 성문이었다.
“드디어 찾아온 건가, 마신의 성으로?”
눈앞에 드러난 거대한 성문의 중심에는 머리에 뿔이 둘 달린 악마를 형상화한 조각이 새겨져 있었다. 더불어 그 주변에는 지저 세계를 형상화한 듯 크고 작은 마수들이 악마를 중심으로 조각되어 있었다.
[부숴버릴까, 주인?]
성문에는 특이하게도 문고리가 달려 있지 않았다. 더불어 목재가 아닌 거무튀튀한 암석으로 만들어져 있어 오로지 근력으로 미는 것 역시 버거워 보였다.
“별수 없겠지. 그런데 할 수 있겠어?”
[물론이다, 주인.]
천휘의 물음에 오베른이 자신 있게 성문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성문을 부드럽게 매만지더니 살짝 두드려 봤다.
[…미안하다, 주인. 도저히 엄두가 안 난다.]
“큭. 카이젠, 너는?”
[저도 힘들 것 같습니다. 아까 살짝 만져 본 결과, 그 두께를 측정하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제 검술로도 불가능합니다. 죄송합니다.]
“흐음. 젠장, 예기치 못한 난관인걸?”
거대한 성문은 끝도 없이 하늘 위로 솟아 있었다. 더불어 성문의 좌우에도 성문에 버금가는 거대하고 단단한 성벽들이 병풍처럼 늘어서 있었다.
스파앗.
[암흑의 힘을 얻고자 왔는가?]
“뭐- 뭐지? 어라? 오베른! 카이젠! 로즈란!”
갑작스러운 빛무리가 천휘의 눈을 휘감더니 그의 귓가로 텁텁하면서도 끈적끈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윽고 눈을 떠보자 자신의 주변을 지키던 오베른과 카이젠, 그리고 로즈란이 흡사 석상처럼 그대로 굳어져 있었다.
[그대에게 암흑의 힘이 느껴진다. 암흑의 힘, 본좌의 힘을 지니고 있어! 그대는 누구인가?]
“암흑이라… 왠지 당신이 마신일 것 같지만, 거기에 앞서 본좌라… 무슨 무협도 아니고 본좌라니, 눈에 훤하네. 당신! 운영자 맞지?”
귓가로 들려오는 목소리의 주인공이 운영자임을 직감적으로 깨달은 천휘는 큰 소리로 소리쳤다.
[본좌의 물음에 대답하라. 그대는 누구인가?]
“호오라, 끝까지 오리발을 내미시겠다?”
[마지막 질문이다. 그대는 누구인가!]
“…빌어먹을. 천휘라 한다!”
음성에서 느껴지는, 뼈를 에일 것 같은 살기에 천휘는 결국 굴복하고 말았다. 하지만 상대가 운영자라는 자신의 믿음은 여전한 상태였다.
[이 세상의 인물이 아니로군. 주신 라멘이 보낸 작자인가?]
‘주신 라멘… 맞아! 암흑석!’
마신의 말에 주신 라멘이 준 암흑석의 존재를 깨달은 천휘는 재빨리 무한의 행낭에서 암흑석을 꺼내 보였다.
“암흑석이다! 난 당신의 힘을 필요로 한다! 당신, 아니 마신의 힘을 내게 넘겨라!”
[과연 암흑석이로군. 드디어 주신 라멘과의 맹약을 지킬 때가 된 것인가? 하나! 녀석의 뜻대로 일이 굴러가도록 놔둘 수야 없지!]
그그그긍.
천휘가 암흑석을 내보이자 마신이 혼잣말을 지껄였다. 그와 동시에 절대 열리지 않을 것만 같던 거대한 성문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천휘 한 사람이 비집고 들어갈 만한 틈이 벌어졌다.
휘이잉.
“어어어!”
난데없이 뒤에서 거친 바람이 휘몰아쳤다. 그 바람은 천휘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를 성문 안으로 밀어 넣었고, 천휘는 얼떨결에 성안으로 들어서고 말았다.
[띠링! 유저 최초로 S급 이벤트 ‘던전 마신의 성’을 발견하셨습니다.]
[명성이 100,000 상승하셨습니다.]
[띠링! 대륙 퀘스트 ‘주신과 마신의 맹약’이 발동됐습니다.]
대륙의 향후 판도를 뒤흔들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아주 먼 옛날, 대륙의 모든 생명체를 관장하는 주신 라멘과 지저 세계의 모든 생명체를 관장하는 마신 데카론이 맹약을 맺었다.
먼 훗날, 이 땅의 생명체가 아닌 이세계의 존재가 이 땅에 발을 내딛는 그날, 지상 세계와 지저 세계가 하나로 이어지리라는 맹약이 그것이었다.
그러나 마신 데카론은 주신과의 맹약을 지킬 의지가 없어 보인다. 지상 세계와 지저 세계가 하나로 이어진다면 그것은 곧 마신인 자신의 소멸을 의미하는 탓이었다.
과연, 마신은 어떠한 선택을 내릴 것인가.
그의 힘을 얻고자 한다면 그를 직접 만나봐라! 그는 마신의 성안 마신의 홀에 칩거하고 있다.
난이도:S
기한:1일
보상:알 수 없음
“젠장, 빌어먹을 운영자! 어쩐지 순순히 마신의 힘을 얻게 내버려 둔다 했어! 유저를 상대로 이런 빌어먹을 사기를 쳐? 두고 봐라! 내 반드시 마신의 힘을 얻어 주신 라멘이라는 놈을 해치우고 말 테니!”
퀘스트 설명을 차분히 몇 차례 읽어본 천휘는 자신에게 암흑석을 건네준 라멘의 얼굴을 떠올리며 분노에 치를 떨었다.
그가 말하길, 마신의 성으로 암흑석을 가져가기만 한다면 마신의 힘을 얻을 수 있는 것은 물론 마신의 무구까지 얻을 수 있다 했거늘, 상황은 그와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일단 퀘스트에 나온 대로 움직여 봐야겠지. 그런데… 밖에서 본 것보다 안은 훨씬 좁네?”
밖에서 본 마신의 성은 높이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높았다. 그리고 성벽 또한 그 넓이를 가늠하기 힘들 만큼 좌우로 넓게 퍼져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안은 협소하기 짝이 없었다. 마치 망망대해 위에 홀로 떠 있는 작은 무인도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스차아앗.
“흡!”
푸욱.
“누구냐!”
갑작스럽게 전방에서 쏘아진 화살에 천휘가 놀라 몸을 뒤로 젖히자 검은색 촉을 가진 화살이 천휘의 가슴을 스치고는 빠르게 뒤의 벽에 꽂혔다.
휘이잉.
‘누군가 있다. 응?’
천휘의 외침에도 들리는 것이라고는 성안을 가득 메우는 기이한 바람 소리뿐이었다.
이윽고 천휘가 고개를 돌려 화살이 꽂혀 있을 벽을 쳐다봤다. 그러나 그곳에 있어야 할 화살이, 자신의 가슴을 스치고 생채기를 낸 화살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마법인가? 아니지. 이 경우에는 흑마법이라고 해야겠지?’
분명히 화살을 회수해가는 움직임은 없었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소멸되었다는 소리인데, 이런 경우는 한 가지밖에 없었다. 바로 마나로 만들어진 마법의 화살일 경우다.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되겠어. 젠장!’
분명히 미지의 존재가 주변에 있었지만 천휘의 감각으로는 그 존재를 찾을 수 없었다. 이렇게 된 이상 한시라도 빨리 마신이 칩거하고 있다는 마신의 홀로 가는 수밖에 없었다. 물론 주변을 최대한 견제하면서.
터벅터벅.
천휘의 발걸음이 점차 더뎌지기 시작했다.
분명히 앞을 가로막는 것은 그 어디에도 없건만 천휘는 본능적으로 주변에 어떤 존재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땀을 비 오듯 흘리면서 발을 조심스럽게 내딛고 있었다.
‘하나가 아니야. 최소한 서넛이다. 젠장, 역시 마신인가!’
중급 마수도 혼자서 서넛은 상대가 가능한 천휘였지만 눈으로 좇을 수도 없는 미지의 존재들에게는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그렇다고 천휘가 그들을 두려워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랜저가 이룩한 『오벨리스크』에서의 세력을 깨부수기 전까지는 그 누구에게도 무릎 꿇지 않겠다고 다짐한 그 자신이 아니던가.
천휘는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앞으로 천천히 발을 내딛고 있었다.
“갈림길이라…….”
성문에서 성 내부로 연결된 통로는 한길뿐이었다. 처음으로 나온 갈림길에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를 못 잡던 천휘는 결국 전통적인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카악, 퉤!”
타악.
“오른쪽!”
오른 손바닥에 침을 뱉어 왼손으로 내려치자 침이 오른쪽으로 튀었다.
천휘는 자신의 운을 믿으며 오른쪽으로 향했다.
‘녀석들의 살기가 짙어졌어.’
천휘가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향하자 미지의 존재들에게서 느껴졌던 살기가 더욱 짙어졌다. 그래봐야 미미한 수준에 불과했지만 녀석들에게 온 정신을 쏟고 있던 천휘였기에 느낄 수 있었다.
타타탁.
“따라와 봐라, 이놈들!”
자신이 가는 길이 확실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천휘가 갑자기 앞으로 쏜살같이 내달리기 시작하자 그와 더불어 천휘의 주변을 감싸던 미지의 존재들의 움직임도 빨라졌다.
‘녀석들, 똥줄 타는 모양인데? 빠르게 움직이느라 기척도 조금씩 드러내는 걸 보니!’
천휘의 움직임은 보법으로 움직이는 것이기에 웬만한 도적이나 사냥꾼들보다 빨랐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그러다 보니 천휘의 주변을 에워싸던 이들도 전력으로 뒤따라야 하는 탓에 은신이 조금씩 풀리는 것이었다.
‘아직 난 마신의 힘을 얻지 못했다. 내가 쓸 수 있는 스킬이라고는 몸을 단단하게 해주는 고루마공과 발걸음을 가볍게 해주는 보법뿐이다. 그리고…….’
천휘는 품 안에서 알 수 없는 스크롤을 꺼내들었다. 마탑에서 일반적으로 판매되는 스크롤과는 사뭇 다른 형태의 스크롤이었다.
‘로즈란이 제작해준 이 스크롤에는 6서클 마법인 스톤 에지(Stone Edge)가 담겨져 있다. 속도는 느리지만 확실한 물리적 타격을 입힐 수 있는 마법이지. 문제는 발록의 심장이 그걸 버텨 낼 수 있느냐 하는 건데…….’
스톤 에지는 6서클 마법이지만 물리적인 타격에서만큼은 7서클을 상회하는 효능을 지녔다. 워낙 시전속도가 느린 탓에 실전에서는 그 효능이 현저하게 떨어지지만, 이러한 비좁은 던전에서라면 충분히 그 효능을 발휘할 수 있었다.
문제는 피시전자는 물론이요, 시전자마저도 마법의 여파에 휘말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어차피 해보지 않고는 모르는 일.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고 이기리라는 생각은 버리자!’
“이 븅신들아! 그렇게 느려 터져서야 쓰겠냐? 마신의 종자라는 것들이 굼벵이를 잡아먹었나! 내가 기어가는 것보다 느리잖아?”
앞으로 쭉쭉 뻗어나가던 천휘가 뒤를 돌아보며 자신을 뒤따르는 미지의 존재들을 도발했다.
그의 도발이 효과가 있었는지, 은신한 채 따라붙던 미지의 존재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건 또 뭐야? 젠장!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어디 있어? 천 제국도 아니고 아르니안 대륙에 닌자라니!”
천휘의 뒤를 따랐던 미지의 존재들은 흡사 일본의 닌자와 비슷한 복장을 갖춘 이들이었다. 얼굴 전체를 복면으로 가린 것은 물론이요, 등 뒤에는 짧은 쌍수검이 메어져 있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녀석들은 마치 허깨비처럼 흐릿한 잔상을 남기며 좌우로 왔다 갔다 했고, 급기야 천휘에게 아르니안 대륙에서는 찾아볼 수 없던 암기를 내던지기 시작했다.
쐐애액.
까앙.
“크윽, 말도 안 돼! 이건 표창이잖아?”
뒤통수를 엄습하는 예기에 천휘는 재빠르게 오른팔을 휘둘렀다. 그러자 천휘의 오른팔에 만화에서나 볼 법한 표창이 튕겨져 나가며 벽에 부딪혀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이익, 빌어먹을! 잡힐 것 같아?”
천휘가 표창에 한눈을 판 사이, 닌자로 보이는 이들이 천휘와의 거리를 좁혀 왔다.
하지만 천휘 역시 그리 호락호락하지는 않았다. 그 역시 따라잡히면 순식간에 목숨을 잃을 것이라는 걸 알기에 이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앞으로 나아갔다.
쐐애액, 쐐애액.
등 뒤로 들려오는 파공성에도 천휘는 그저 앞만 보고 달렸다. 닌자들이 던지는 표창이 허벅지를 찢고 등에 꽂혀 들어와도 발을 멈추지 않았다.
‘조금만 더!’
벌써 등판에 10개가 넘는 표창이 꽂힌 상태로 움직이는 천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움직임은 전혀 떨어지지 않은 채 닌자들을 떼어놓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곧 한계에 도달했다.
저 멀리 앞을 가로막는 거대한 석벽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한마디로, 이 앞은 막다른 길이라는 소리였다.
그것은 곧 천휘에게 있어 죽음을 의미하는 것과도 다를 바가 없었다.
그 순간, 천휘의 눈이 이전과는 달리 흥분으로 물들었다.
“하아앗!”
마지막 발악이라도 하려는 것인지 마지막 마나를 쏟아 부어 현재 자신이 낼 수 있는 최고의 속도로 앞으로 뻗어나갔다. 어찌나 빠른지, 천 제국의 초절정 고수들이나 보일 법한 궁신탄영과도 비슷한 지경이었다.
그런 천휘의 속도에 놀란 듯 닌자들도 죽을힘을 다해 그를 뒤쫓았다. 하지만 천휘는 어느새 막다른 석벽에 다다르고 있었다.
“이 개자식들! 모두 죽어버려!”
찌이익.
“스톤 에지!”
닌자들이 어느새 코앞까지 도달한 바로 그때, 천휘가 품 안에서 꺼낸 마법 스크롤을 찢었다.
푸슉, 푸슉.
반경 5미터 범위에 지하에서부터 거대한 돌기둥이 하늘로 치솟았다. 해당 범위 안에 있는 것이라면 그 어떤 것도 피해갈 수 없을 정도로 촘촘하게 하늘 위로 돌기둥들이 치솟고 있었다.
“고루마공! 끄윽!”
스크롤을 찢은 장본인인 천휘도 돌기둥들을 피해갈 수 없었다. 오히려 마법의 중심에 있는 탓에 더욱 많은 돌기둥들이 천휘를 강타하고 있었다.
그러나 천휘는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하나같이 엄청난 위력의 돌기둥들이었지만 고루마공으로 강화된 육체와 레전드 방어구 발록의 심장의 영향으로 어느 정도 돌기둥의 피해를 감소시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천휘를 뒤쫓던 닌자들은 달랐다.
워낙 빠른 속도로 쫓아오던 그들이었기에 갑작스럽게 땅바닥에서 솟아오르는 돌기둥을 피하지도 못했고, 변변한 방어구도 걸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그들은 사방에서 솟구치는 돌기둥에 온몸이 으스러지며 이리 채고 저리 채는 참상을 겪고 말았다.
“끄으윽… 끝났나?”
얼굴을 가리고 온몸을 두들기는 돌기둥을 견뎌낸 천휘는 이내 주변이 잠잠해지자 얼굴을 가렸던 손을 천천히 치워냈다.
“젠장, 몸을 움직이기조차 힘드네. 대체 한 번에 얼마나 많은 생명력이 떨어진 거야? 상태창 오픈!”
레벨:315 칭호:강시지존
주직업:강시술사 부직업:격투가
명성:136,000 악명:3,801,000
생명력:660(+0) 마나:245,000(+120,000)
기력:40% 포만감:60%
물리 공격력:52~56(+600) 물리 방어력:125~135(+500)
마법 공격력:118~124 마법 방어력:68~72
<기본 스탯>
근력:220(+100) 민첩:280(+450) 체력:200
지능:620 지혜:410(+300)
<특수 스탯>
손재주:540 의지:200 감지:520 집중:110
“말도 안 돼! 30,000을 넘어서던 생명력이 고작해야 이것밖에 안 남다니!”
이 정도 생명력이라면 적에게 살짝 스치기만 해도 사망할 정도였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자신을 뒤쫓던 닌자들이 모두 사망했다는 것이었다.
“녀석들이 죽었으니 아이템이나… 헉!”
분명히 자신을 쫓던 닌자들의 숫자는 넷이었다. 그러나 지금 땅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닌자들의 수는 겨우 셋. 한마디로, 한 녀석이 돌기둥을 버텨 내고 주변에 은신해 있다는 소리였다. 게다가 아직 쓰러진 닌자들의 숨도 확실하게 끊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미치겠네!’
시간을 지체했다가는 다른 닌자들도 정신을 차리고 일어설 기세였다.
그렇게 은신해 있는 한 닌자에 대해 긴장하고 있을 무렵, 천휘는 문득 상대가 한 명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 명이라면 어떻게든 해볼 수 있지. 게다가 이전과 달리 이번에는 녀석이 어떤 존재인지 알고 있어. 다행히 마수가 아닌 닌자이니 내게도 승산이 있어. 일단 그 전에 녀석의 위치부터 파악한다!’
천휘는 무한의 행낭에서 「장생본초집성」을 꺼내들었다. 「장생본초집성」에는 디텍트 마법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에 녀석의 위치를 대번에 알 수 있을 터였다.
이전에 이것을 쓰지 않은 이유는 행여나 마법을 시전할 때 미지의 존재들이 어떤 식으로든 훼방을 놓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상대가 겨우 한 명이고 어떤 존재인지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미리 대비할 수 있으니 디텍트 마법을 시전하려는 것이다.
“디텍트!”
스파앗.
천휘가 시전한 디텍트 마법으로 주변에 환한 빛이 빠르게 퍼져 나갔다. 그와 동시에 천휘를 향해 뼈를 저며 오는 살기가 느껴졌다.
“왔구나!”
휘익.
미리 대비하고 있던 천휘였기에 상대 닌자의 기습 공격에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
간신히 몸을 비틀어 상대의 공격을 피해낸 천휘는 그 자세 그대로 상대를 향해 한 발 앞으로 내디디며 주먹을 내질렀다.
콰앙!
“쳇.”
그러나 상대도 빠른 몸놀림을 주 무기로 삼는 닌자였다. 천휘의 반격은 애꿎은 석벽만 두드리고 무위로 돌아가고 말았다.
하지만 이미 일대에는 디텍트 마법이 걸려 있는 상태. 녀석의 위치는 파악되어 있기에 천휘는 곧바로 녀석을 향해 빠르게 쇄도하기 시작했다.
부웅, 부웅.
그러나 상대 닌자는 천휘와 대적할 생각이 없는지 그저 천휘의 공격을 피하는 데에 급급했다. 일부러 허점을 노출시켜도 녀석은 전혀 공격해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어라? 이것 봐라?’
천휘가 한창 녀석이 회피하기만 하는 것에 짜증을 내고 있을 무렵, 불현듯 녀석의 움직임이 일순간 어색해지는 곳을 찾아냈다. 바로 녀석의 동료들이 기절해 있는 곳이었다.
‘이거다! 저 녀석들을 미끼로!’
천휘는 닌자를 쫓다 말고 빠르게 뒤돌아 땅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한 닌자에게 오러를 담아 주먹을 내질렀다. 돌기둥에 뼈가 으스러져 버린 녀석들이었기에 주먹에 적중당하는 것만으로도 목숨을 잃을 공산이 컸다.
그런 천휘의 돌발 행동에 놀란 닌자는 동료들을 지키기 위해 천휘보다 한발 앞서 땅바닥에 널브러진 동료의 앞에 버티고 섰다. 그리곤 천휘를 향해 양손에 들린 표창을 내던졌다.
“그럴 줄 알았다. 하앗!”
닌자가 던진 표창이 궤적을 그리며 천휘의 가슴과 허벅지를 향해 날아들었다. 그러나 천휘는 닌자의 공격을 예상한 듯 표창의 궤적보다 한발 앞서 닌자의 코앞까지 쇄도했다. 그리고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닌자의 복부를 향해 주먹을 여러 번 내질렀다.
“스킬이 없다고는 해도 내 주먹은 발록의 주먹이야! 변변한 방어구도 없는 네놈 따위는 이걸로도 충분하다고!”
퍼억.
쿠웅.
“이 자식들도!”
콰앙! 콰앙! 콰앙.
마지막까지 발악하던 닌자를 처치한 천휘는 곧바로 나머지 닌자들도 깨어나기 전에 발로 머리를 짓밟아 목숨을 거뒀다.
[띠링! 마신을 추종하는 4대 닌자를 모두 처치하셨습니다. 대륙 퀘스트 ‘주신과 마신의 맹약’의 서브 퀘스트 ‘마신의 무구’ 퀘스트가 발동되었습니다.]
마신의 성은 마신이 칩거하고 있는 마신의 홀과 마신의 무구들이 잠들어 있는 마신의 보고 두 곳으로 나뉘어져 있다. 마신의 보고를 여는 열쇠는 마신의 4대 닌자들이 가지고 있다. 그 열쇠를 통해 마신의 무구를 획득하라!
난이도:A
기한:없음
보상:마신의 무구
[띠링! 마신의 열쇠가 보상으로 주어집니다.]
“마신의 무구! 이거로구나!”
천휘는 자신의 손에 들린 열쇠를 살펴봤다. 거무튀튀한 빛깔에 열쇠의 꼭지 부분에 악마의 뿔이 매달려 있는 형태였다.
“라멘 자식! 내가 설마하니 이 마신의 무구를 얻을 줄은 꿈에도 몰랐겠지? 아니, 아마 여기서 살아나가는 것조차 힘들다 생각했겠지. 두고 봐라, 라멘! 그랜저를 처단한 뒤에 어떤 방식으로든 네 녀석이 이 땅에 주신이라는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게 만들 테니.”
아르니안 대륙에서 주신 라멘에 거역한다는 것은 모든 NPC들과 척을 진다는 것과 매한가지였다. 하지만 천휘로서는 자신을 골탕 먹인 주신 라멘을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었다.
“신이고 나발이고, 설사 운영자라고 해도 날 건드린 대가는 톡톡히 치르게 해주지! 기대해도 좋아, 주신 라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