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권 - 제1장 임페리얼 길드의 결정 (32/82)

제1장 임페리얼 길드의 결정

펜하르트 왕국의 수도 라인하트는 왕국 중남부에 위치한 거대 도시다.

여느 왕국의 수도답게 거대한 외성과 내성으로 구성되어 있고, 도시 주변에 넓은 규모의 해자가 설치되어 있는 것까지 다를 바가 없었다.

하지만 라인하트에는 여느 도시에는 없는 거대한 구조물이 하나 세워져 있었다. 그것은 바로 펜하르트 왕국의 건국왕인 라인하트 폰 펜하르트의 거대 입상이었다.

무려 높이 80미터에 둘레 15미터에 이르는 이 거대 입상은 거대한 롱 소드와 카이트 실드를 쥐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었다. 더불어 기사들의 상징인 풀 플레이트 갑옷을 걸치고 있고, 머리에는 펜하르트 왕국 나이트의 상징인 매의 투구를 착용하고 있었다.

퍼엉. 퍼엉.

그 황제의 입상 앞 매의 광장에서 연방 폭죽이 터지기 시작했다. 마법적인 시약을 이용해 만들었는지 폭죽은 화려한 문양을 밤하늘에 연출해내며 보는 이들로 하여금 절로 탄성을 터트리게 만들고 있었다.

“여러분!”

마지막 폭죽이 하늘 위에 붉은 거미의 형상을 만들어내며 수그러들자 광장 한복판의 단상 위에 서 있던 한 사내가 크게 소리쳤다.

“그랜저다!”

“소울 스타 그랜저다!”

“와아아아!”

단상 위에 모습을 드러낸 사내가 그랜저임을 알게 된 사람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펜하르트 왕국에서 그의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를 여실히 증명해주는 모습이었다.

“앗! 그 옆에 백의의 천사 베라다!”

“아, 어쩜 저리도 성스러운 오러를 뿜어낼 수 있을까?”

“아름다워!”

그랜저의 옆에는 그의 애인으로 알려진 베라가 서 있었다.

현존하는 『오벨리스크』의 사제 중에서 가장 신성력이 뛰어나다는 그녀는 백의의 천사라는 별명으로 더욱 유명했다.

“모두 조용히 해주십시오!”

“…….”

그랜저의 외침에 떠들썩했던 광장이 삽시간에 고요해졌다. 과연 소울 스타라는 명성답게 그가 발산하는 오러의 힘은 경악 그 자체였다.

“여기 모인 분들께서는 모두 알고 계실 테지만, 오늘은 저 소울 스타 그랜저가 드디어 길드를 세우고자 여러분께 선포하는 날입니다.”

“와아아! 펜하르트 최강의 남자 그랜저가 드디어!”

“드디어 우리 펜하르트에도 최강의 길드가 세워진다!”

그랜저의 외침에 유저들이 탄성을 내지르며 저마다 기뻐했다. 그도 그럴 것이, 펜하르트 왕국은 아르니안 대륙의 타 왕국과 달리 10대 길드에 들 만한 거대 길드가 없었기 때문이다.

10대 길드의 절반 이상이 아르니안 최강국인 라그혼에 있었고, 나머지 10대 길드도 펜하르트가 아닌 다른 왕국들에 분산되어 있는 실정이었다.

그렇다고 펜하르트 왕국이 타 왕국에 비해 국력이 약하거나 군사력이 뒤처지는 것도 아니었다. 문제는 펜하르트 왕국 최강인 소울 스타 그랜저가 길드를 세울 생각이 없었다는 데에 있었다.

그를 중심으로 펜하르트에서 활동하는 각 분야의 최고렙들이 모여들긴 했지만, 그럼에도 그랜저는 길드를 세우지 않고 사냥을 다니거나 던전을 클리어하는 데에만 주력할 뿐이었다.

그런 그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도 펜하트르 왕국 고렙 유저들의 태반을 길원으로 거느리고 뭇 사람들의 기대에 걸맞은 퍼포먼스와 함께 수도 라인하트에 나타난 것이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그랜저의 나지막한 외침에 사람들의 환호성이 다시 잦아들었다.

“그동안 저 그랜저는 여러분의 기대에도 불구하고 길드를 세우지 않고 독자적으로 활동해왔습니다. 하지만 저의 이러한 독선 때문에 펜하르트에서 활동하시는 많은 유저 분들께서 큰 곤란을 겪고 계시다는 걸 알고 부족하나마 이렇게 여러분의 앞에 나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

그랜저의 발언에 유저들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그동안 당했던 서러움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제 저는 이곳에서 길드를 만들어 우리 펜하르트를 업신여겨 온 저들을 처단할 것입니다. 아울러 감히 우리 펜하르트의 사냥터를 장악하고 있는 타국의 길드 세력을 몰아내고 당당히 펜하르트 최강 길드로서의 면모를 보여 줄 것입니다.”

“와아아아! 그랜저 만세!”

“그랜저 최고다!”

그랜저의 자신감에 찬 외침에 유저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소리를 내질렀다. 그동안 누려 오지 못했던 권리를 이제야 되찾을 수 있다는 생각에 몇몇 심약한 유저들은 눈물마저 흘리고 있을 정도였다.

그만큼 그들은 게임을 현실처럼 즐기고, 현실에서 겪는 슬픔마저도 공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저 그랜저가 만들어갈 명실 공히 펜하르트 최강의 길드, 임페리얼 길드의 부길마들을 소개합니다!”

“오오, 철혈의 전사 레만!”

“저기 폭염법사 알무니아도 있어!”

“앗, 저 사람은 광속의 격투가 세스크!”

그랜저가 소개한 부길마들은 하나같이 각 직업의 최상위 랭커들이었다. 그들 모두 랭킹 10위 안에 드는 절대 강자들로, 펜하르트에서 활동하는 유저들은 한 번쯤 이름을 들어봤을 법한 이들이었다.

“이들 외에도 수많은 유저들이 저와 함께할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여기에서 만족하지 않을 겁니다! 지금 아르니안 대륙의 정세는 조금씩 변화하고 있습니다. 이미 국가 간의 경계는 허물어져 가고 있고, 그 때문에 강한 이들만이 살아남는 약육강식의 세상에 치닫고 있습니다. 저는 이 약육강식의 세상에서 살아남을 야수가 되고자 합니다! 하지만 지금의 제 힘만으로는 그 뜻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힘이 필요합니다! 저 소울 스타 그랜저와 함께 임페리얼 길드의 일원이 되어 야수가 되지 않겠습니까?”

“와아아아! 임페리얼 길드 만세!”

“소울 스타 그랜저 만세!”

그랜저의 뜨거운 열정이 담긴 연설에 유저들이 우레와도 같은 함성을 내질렀다. 그 소리가 어찌나 큰지, 라인하트의 경비병들마저도 광장 주변을 경계하고자 나설 정도였다.

그렇게 펜하르트 왕국 최강 길드인 임페리얼 길드가 탄생했다.

아르니안 대륙의 절대 지존 12인 중 한 사람인 그랜저가 길드를 형성했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아르니안 전역으로 퍼졌다.

이미 몇몇 길드는 그랜저가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는 정보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드러난 것처럼 엄청난 규모의 길드를 세우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임페리얼 길드의 등장으로 펜하르트 왕국으로 진출했던 거대 길드들이 하나 둘 발을 빼기 시작했다. 자국에서라면 모를까, 타국인 펜하르트 왕국에서 임페리얼 길드를 당해내기란 어렵다고 판단한 탓이었다.

그 결과, 임페리얼 길드는 당당하게 아르니안 10대 길드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고, 세간의 평가를 통해 10대 길드 중에서도 수위에 꼽히는 최고의 길드로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

“동북부 페가트 협곡의 일은 어떻게 됐지?”

“어제저녁부로 그곳을 점령하고 있던 오색 사자 녀석들을 모두 퇴치했다.”

“역시 레만이로군. 수고했다고 전하고, 철혈대에게는 보상으로 10만 골드를 보내라.”

“그렇게 하지.”

그랜저는 임페리얼 길드를 세우자마자 펜하르트에 진출해 있는 모든 길드를 나라 밖으로 패퇴시켰다.

하지만 여전히 몇몇 거대 길드는 자신들이 구축해놓은 사냥터를 뺏기지 않으려는 듯 발악하며 저항했고, 그런 그들을 임페리얼 길드의 수뇌부들이 직접 나서서 처치했다.

그 결과, 펜하르트의 국민이 아닌 탓에 사냥터 근방에 근거지를 마련하지 못한 타국의 길드들은 임페리얼 길드의 강력한 힘과 쪽수에 버티지 못하고 모두 자국으로 쫓겨나고 말았다.

마지막까지 저항하던 라그혼 왕국의 볼트론 길드가 페가트 협곡에서 빠져나가자 그제야 그랜저의 얼굴에 살짝 미소가 감돌았다.

지난 몇 주 동안 쉬지도 못하고 고생한 보람이 드디어 결실을 이룬 것이다.

“페가트 협곡은 자국에서도 가장 고렙의 사냥터다. 그곳의 몬스터들인 페가트 유니콘과 페가트 나이트들은 경험치는 물론 아이템 드롭률도 굉장하니 반드시 점령할 필요가 있어. 레만에게 그곳을 확실하게 점령하라고 일러둬.”

“그렇게 하지.”

그랜저의 지시에 폭염법사 알무니아가 레만에게 연락을 취했다.

“새로운 길원들의 모집은 어떻게 되어가지?”

“순조롭게 모집하고 있다. 역시나 광장에서 생쇼를 한 것이 효과가 있는지 제법 난다 긴다 하는 유저들이 속속 몰려들고 있다. 그중에는 각 직업 상위 100위 안에 드는 랭커들도 종종 눈에 띌 정도다.”

“그거야말로 좋은 소식이네. 아, 그리고… 테오른 왕국 쪽 일은 어떻게 됐지?”

그랜저의 물음에 알무니아가 다소 곤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거냐?”

알무니아의 어두운 표정에 그랜저가 되물었다.

“실은 그곳으로 계속해서 사람을 보내고 있는데… 방해자가 있어 계곡으로 들어서기는커녕 산맥에 들어서지도 못하고 죽임을 당하고 있다.”

“방해자?”

뜻밖의 말에 그랜저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물었다.

“아무래도 저번에 우리를 처치한 그 소환사 유저가 손을 쓰고 있는 모양이다.”

“역시 그 자식인가? 그 자식에 대해서는 아직도 알아낸 바가 없고?”

“그 정도 실력의 소환사는 어디에도 없다. 소환사 랭킹 1위인 마수왕 플렙이라는 유저도 고작해야 블랙 아울 베어 정도를 소환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 소환사는…….”

“몇 마리의 소환수만으로 우리를 몰살시켰지. 으득!”

그랜저는 자신의 계획을 물거품으로 만든 그 소환사를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당시 녀석의 방해로 인해 자신이 길드를 형성하는 것이 몇 개월 더 늦춰지고 말았기 때문이다.

“내 공적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그곳에 다시 들러야 한다. 어차피 지금은 길드의 기반을 다지는 것이 중요하니까 당장 나설 수는 없어. 하지만 꾸준히 사람을 보내 그곳의 동향을 살피도록 해. 그래야만…….”

“네가 자작의 작위, 그 이상을 얻을 수 있겠지.”

아르니안 대륙에서는 NPC뿐 아니라 유저들도 귀족의 작위를 얻을 수 있었다. 그 대부분이 퀘스트를 통한 것이었지만, 그랜저만은 달랐다. 뇌물, 그것도 엄청난 수준의 골드를 쏟아 부어 남작의 작위를 가난한 귀족에게서 사들였고, 이후 여러 고위 귀족들의 비위를 맞춰가며 자작의 작위에 오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이상은 돈으로 얻을 수 없었다. 오로지 퀘스트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었고, 그렇지 않으면 그에 상응하는 공적을 쌓아야만 했다.

때문에 그랜저는 공적을 쌓기 위한 한 방편으로 고대의 서적을 뒤져 테오른 왕국에 위치한 제황의 계곡을 찾아냈다.

고대 하스렌 제국 황제들의 무덤으로 쓰인 제황의 계곡.

그랜저는 오랜 공을 들여 그곳에 있는 한 물건이 자신의 국가 공적치를 높여 주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마디로 말해, 자신이 『오벨리스크』 최초의 유저 백작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제황의 계곡을 다시 찾아야 한다는 소리였다.

* * *

“뭐야, 누가 나를 욕하는 건가?”

[왜 그러나, 주인?]

“어떤 개자식이 날 욕하는지 귀가 간지러워서 말이야.”

[흐음, 남이 주인을 욕하면 귀가 간지럽나? 그럼 주인은 허구한 날 귀가 간지럽겠군.]

“…그건 또 무슨 말이지?”

오베른의 자극적인 말에 천휘의 얼굴이 굳어지며 그를 쳐다봤다. 그러자 오베른은 아무렇지도 않게 손으로 쥬얼리 데보타와 싸가지 슈트라카이젠을 가리켰다.

[두 사람이 주인 없을 때 늘 주인 욕을 한다. 한시도 쉬지 않고.]

[이익! 이런 멍청한 자식!]

[빌어먹을! 그러니까 내가 저 자식 있는 데서는 입 조심하라고 했잖아!]

[네가 언제! 난 그런 소리… 으아악!]

[끄아아아악!]

삐이이익.

오베른의 말에 선두에서 동굴을 걷고 있던 쥬얼리와 싸가지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소리를 내질렀다. 그에 천휘는 천천히 피리를 입에 가져가며 가만히 불었다.

“오베른.”

피리 소리에 비명을 내지르는 두 강시를 보며 천휘가 나지막하게 오베른을 불렀다.

[왜 그러지, 주인?]

피리 소리에 고통받는 두 강시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베른이 천휘의 부름에 대답했다.

“앞으로도 종종 이런 이야기 해주기 바란다.”

[당연하지 않은가, 주인. 난 주인의 충실한 머슴이다! 잊었는가?]

“크크. 그래, 네가 그래야 저 녀석들에게 마음껏 피리 소리를 들려줄 수 있지.”

삐이이익.

[끄아아악!]

[으아악! 제발… 제발!]

그렇게 심연의 밀림 깊은 곳에서 한동안 끊이지 않고 끔찍한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 * *

“그랜저.”

“무슨 일이지?”

임페리얼 길드의 길드 건물은 라인하트에서 가장 번화한 매의 광장 인근에서도 무려 3층에 달할 만큼 규모가 큰 건물이었다.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임페리얼 길드가 얼마나 부유한지 알려 주는 척도가 될 정도였다.

“사신 길드가 길드전을 선포해왔다.”

“사신 길드가?”

폭염법사 알무니아의 말에 그랜저가 눈썹을 치켜떴다.

사신 길드라면 임페리얼 길드가 생성되기 전 펜하르트 왕국 최대 길드로 명성을 떨치던 길드였다.

하지만 그 규모나 세력 면에서는 형편없어 10대 길드에 들기는커녕 타국으로 치자면 다섯 손가락 안에도 들지 못할 만큼 작은 중소 길드였다.

그런 사신 길드가 길드전을 선포했다는 것은 기존에 자신들이 누리던 지위를 빼앗기지 않겠다는 반증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들로서는 신생 길드에 불과한 우리 임페리얼이 이토록 빠르게 세력을 확장할 줄 몰랐겠지. 게다가 너도 알다시피 사신 길드의 길마 파보네는 야망이 큰 사람이야. 하지만…….”

“그 야망만큼 실력이 뒷받침되는 인물은 아니지. 좋았어. 이참에 사신 길드를 흡수해서 펜하르트 최강의 길드가 어디인지 다른 이들에게 확실히 각인시켜 주지. 당장 길원들에게 연락을 돌려라! 녀석들이 길드전을 선포해온 이상 당장 녀석들을 쳐부순다!”

“그렇게 하지.”

임페리얼 길드 최초의 길드전 상대가 결정되었다.

그들은 예전의 명성을 되찾으려는 사신 길드.

진정한 펜하르트 최강 길드의 자리를 놓고 두 거대 길드가 격돌하려 하고 있었다.

길드전의 소문이 펜하르트 전역으로 퍼져 나가자 『오벨리스크』 시간 이틀 만에 수도 라인하트로 50만에 이르는 유저들이 모여들었다.

공식적으로 펜하르트에서 활동하는 유저들의 숫자가 70만 정도라고 할 때, 50만이라는 숫자는 거의 80퍼센트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수치였다.

“대체 언제 시작하는 거야?”

“알려진 바로는 오늘 정오에 길드전을 시작한대.”

“지금 11시잖아? 어디서 하는데?”

“사람들 움직이는 거 안 보여? 라인하트 남쪽의 배리 대평원에서 한다잖아!”

라인하트에 속속 모여드는 유저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곧바로 배리 대평원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직경 50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배리 대평원에는 이미 수십만에 달하는 유저들이 이번 길드전을 보고자 장사진을 연출하고 있었다.

“중급 7단계 요리사가 만든 딸기 주스 팝니다! 먹으면 시야가 늘어나서 멀리까지 관전할 수 있어요!”

“중급 3단계 유리 세공사가 제작한 일회용 매의 눈 안경 팝니다!”

배리 대평원엔 수많은 유저들이 모여든 만큼 장사치들도 어마어마했다. 특히 길드전을 좀 더 손쉽게 관전하기 위해 멀리까지 내다볼 수 있는 아이템이나 요리 등을 파는 이들이 대다수였다.

거기에 더해 그곳에는 뜻밖의 인물들도 하나 둘 얼굴을 내비치고 있었다.

“앗! 저 사람은 드림 길드의 부길마 웨폰 브레이커 마곤 아냐?”

“어라, 정말? 헉! 저 사람은 그 유명한 전장의 마녀 베라 아냐?”

그곳에 모여드는 유명 인사들은 하나같이 유명 길드에 가입했거나, 혹은 유명 길드에 가입하기를 원하는 이들이었다.

아르니안 대륙이 워낙 거대한 탓에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만한 명성을 얻기란 쉽지 않았지만 그들에게는 그러한 것이 하등 상관이 없을 만큼 명성이 자자한 이들이었다.

“어떻게 됐지?”

“역시 생각대로 각국의 길드에서 우리 임페리얼 길드를 탐색하기 위해 사람들을 보낸 것 같다. 그중에서도 저기 저 남자…….”

알무니아가 가리킨 곳은 거대한 바위산이 있는 곳이었다. 웬만한 유저들은 올라갈 엄두도 내지 못할 그 바위산 정상에 흑갈색 망토를 휘날리며 한 사내가 오연하게 서 있었다.

“최강의 남자, 아렌인가?”

『오벨리스크』에 지존 12인이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중에서 누가 최강인지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랜저의 입에서 최강의 남자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그 자신도 지존 12인에 속해 있는 절대 고수 중 한 명이서면서 그렇게 말한다는 것은 그 역시 아렌이라는 남자를 인정한다는 소리였다.

아렌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저 그의 별명이 최강의 남자라는 것만 알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의 별명은 그 자신이 지은 것이 아닌 그랜저를 비롯한 지존 12인이 붙여 준 것.

단신의 힘으로 지존 12인 중 무려 4명을 쓰러트린 아렌이라는 사내야말로 명실 공히 『오벨리스크』 최강의 남자라는 데에 이견이 없을 정도였다.

그런 그가 이곳에 나타났다.

‘녀석도 곧 길드를 만들 모양인가?’

아렌 역시 그랜저와 마찬가지로 길드를 구축하지 않고 단순히 몇몇 유저들을 규합해 가시적인 세력만을 형성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가 활동하는 주 무대는 라그혼 왕국. 펜하르트 왕국과 인접해 있는 곳이기에 그로서도 그랜저가 마스터로 있는 임페리얼 길드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녀석을 신경 쓸 때가 아니다. 지금은 우리의 힘을 이 아르니안 대륙에 널리 알려 줄 때다. 알무니아, 파보네에게 연락을 취해라. 공식적인 회견을 가질 때다.”

“그렇게 하지.”

절대 질 수 없는 한판이었다.

세상의 이목이 집중된 것 역시 부담되기는 매한가지였지만, 그랜저에게는 아렌의 눈이 자신을 향하고 있다는 데에 더욱 신경이 쓰였다.

자신이 인정한 유일한 남자, 자신의 야망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될 것이라 생각하는 유일무이한 남자가 이곳에 왔다.

히이잉.

“워워.”

히잉. 푸르르.

“멈춰.”

2기의 필마가 전장의 한복판으로 나섰다.

사신 길드에서는 하얀 백마 위로 붉은색 휘장을 멋지게 두른 길마 파보네가 모습을 드러냈고, 임페리얼 길드에서는 금색의 휘장을 두른 채 거대한 흑마를 여유롭게 타고 있는 그랜저가 나섰다.

“제법 많은 인원을 끌어 모았군.”

“게임을 돈으로 처바르면서 하는 네놈과 견주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지. 안 그래, 돈벌레?”

그랜저의 도발에 파보네가 걸쭉한 입담으로 맞받아쳤다.

“돈 없는 놈의 아우성 따위는 내 알 바가 아니지.”

“이익!”

그런 파보네의 말을 그랜저는 여유롭게 받아넘겼다.

“너희같이 사회에서 뒤처진 쓰레기들을 처치하는 데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느냐마는, 형식상 물어보지. 내 밑으로 들어올 생각 없나? 그렇다면 필드를 비롯해 던전 몇 개 정도는 양보하도록 하지.”

“빌어먹을 돈벌레 새끼! 네놈 아비가 얼마나 잘났는지는 몰라도 그따위 지랄 맞은 회유, 개나 줘버려라! 기다려, 네놈의 그 시궁창 냄새나는 아가리를 찢어버릴 테니!”

“기다리고 있지.”

파보네의 욕설에도 침착하게 대꾸하고 아군 진영으로 되돌아온 그랜저는 곧바로 이번 길드전의 선봉을 맡은 레만에게 말했다.

“하나도 남김없이 처치해버려.”

“훗, 당연한 거 아닌가? 임페리얼 길드, 진격하라!”

“와아아아!”

펜하르트 왕국에서 펼쳐지는 사상 유례가 없는 대규모의 전쟁, 아르니안 대륙의 역사에 길이 남을 그 전쟁이 지금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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