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7장. 요정들의 히어로 카멜 (28/82)

제7장. 요정들의 히어로 카멜

“후우, 간신히 녀석을 처치했네.”

리버훌 성국의 북동쪽.

빙룡의 대지 입구와는 불과 5킬로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깊은 산속.

쇼타콘산이라는 정식 명칭도 가지고 있는 이 산의 중턱에서 한 남자가 거대한 아울 베어 무리의 시체 위에 앉아 연초를 피우고 있었다.

“역시 사냥을 마치고 피우는 담배가 제 맛이라니까. 그나저나 여기도 슬슬 질려 가는데, 이 위로 한번 올라가볼까?”

쇼타콘산은 전체가 A급 사냥터로 지칭될 정도로 위험한 사냥터였다. 리버훌 성국에서 이곳을 단신으로 사냥할 수 있는 실력을 지닌 이는 썬나이트 길드의 소수 고렙들뿐일 정도였다.

그런 이곳에서 사내는 상처 하나 없이 깨끗한 몰골로 사냥을 즐기고 있었다.

사내의 이름은 카멜.

천휘의 친구이자 혼원신공을 익혀 팔라딘에서 다크 팔라딘으로 전직한, 조금은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였다.

“후웁, 역시 담배는 맛있어.”

휘익, 탁.

카멜은 이내 물고 있던 담배를 발로 밟고는 곧바로 산 정상을 향해 걸어 나갔다.

A급 몬스터들이 즐비하게 출현하는 탓에 아직까지 그 누구도 정상을 밟아보지 못한 전인미답의 산, 쇼타콘.

카멜은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담배를 하나 다시 빼들고 천천히 위로 올라갔다.

쌔액.

팅.

“쳇, 제법 재빠른데?”

쇼타콘산은 과연 명성처럼 한시도 카멜을 가만두지 않았다. 만약 그에게 홀리 실드와 다크 실드라는 효과적인 방어막이 없었다면, 진작 목숨을 잃었을 정도로 살벌한 동네였다.

“너무 빨라서 잡을 수가 없다면… 못 움직이게 정지시켜 놓으면 되지!”

카멜을 괴롭히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숲의 정령들이라는 드라이어드들이었다.

나무와 동화되어 공격하는 데다 일종의 나무 화살을 사방에서 날려 대는 통에 카멜로서는 여간 곤욕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카멜에게는 복안이 있는지 시종일관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다크 퀘이크(Dark Quake)!”

끼야아악!

“좋았어!”

카멜의 스킬에 숲 이곳저곳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조금은 귀에 거슬리는, 흡사 쇠를 긁는 것만 같은 비명 소리였다.

위치를 파악한 카멜은 거칠 것이 없었다. 유니크 양손검인 데몬 슬레이어를 들고 스킬도 전개하지 않은 채 그저 베기 공격만으로 드라이어드들을 베어 넘기고 있었다.

끼야아악!

끼야아악!

“흐음, 비명 소리가 너무 단조롭네. 드라이어드들은 꽤나 예쁘다고 했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고. 더 올라가봐야 하려나?”

다크 퀘이크는 마법적인 공격력은 약하지만 스턴 상태를 오래 지속시킨다는 것이 강점인 다크 팔라딘의 스킬이었다. 하나, 효과에 비해 마나를 많이 소모하는 탓에 그렇게 애용되는 스킬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도 일반적인 다크 팔라딘에게나 해당하는 일. 팔라딘의 신성력과 다크 팔라딘의 신마력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카멜에게는 하등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이제 3레벨 남았나?”

마법 수련에 전념한 로빈이나 이래저래 퀘스트와 강시 제작에 전념한 천휘와 달리 카멜은 오로지 사냥에만 열중하며 레벨 올리는 데에 집중했다.

그 결과, 그의 레벨은 트리플 마스터가 될 수 있는 조건 중 하나인 300레벨에서 3레벨만 남겨 놓은 297레벨이었다.

더욱이 팔라딘의 스킬들이나 다크 팔라딘의 스킬 모두 중급 이상으로 올려 어느 정도 승급을 위한 준비를 갖춰놓은 상태였다.

“열심히 레벨 올리자! 그래야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알 수 있을 테니까!”

카멜은 사실 지금 꽤나 불안해하고 있었다.

천휘가 건넨 혼원신공 덕에 팔라딘의 스킬과 다크 팔라딘의 스킬을 모두 사용할 수 있게 되긴 했지만, 만에 하나라도 두 직업 간에 불균형이 일어나 강제적으로 능력치가 떨어지거나, 최악의 경우 캐릭터가 사라지기라도 한다면 카멜로서는 게임을 접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아자, 아자! 나를 기다리는 수많은 누님들을 생각해서라도 이딴 생각 가지면 안 되지! 지금은 무조건 긍정적으로만 생각하자!”

카멜은 절대 『오벨리스크』를 접을 수 없었다.

『오벨리스크』를 하면서 현실에서는 만나기 힘든 수많은 연상의 누님들과 인연을 맺을 수 있었고, 가상현실인 덕에 현실의 여자 친구에게도 찔리지 않고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말과 달리 카멜의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다.

* * *

드라이어드들과 몇 차례 실랑이를 펼치던 카멜은 이후 한 시간이 넘도록 제대로 된 전투 한 번 펼쳐 보지 못하고 오로지 산만 오르고 있었다.

리버훌 성국이 타 왕국에 비해 서늘한 기후라고는 하나, 풀 플레이트 갑옷을 걸치고 산을 오르는 일은 꽤나 힘든 일이었기에 카멜의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터벅터벅.

“젠장! 내가 무슨 등산가도 아니고, 벌써 한 시간째 산만 오르고 있다니. 이럴 줄 알았으면 아울 베어나 잡으면서 레벨 올리는 건데……. 괜히 이쪽으로 올라온 건가?”

카멜은 산을 오르면서도 뭐가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지 연방 불만을 토로하고 있었다.

쏴아아악.

“응? 이게 무슨 소리지? 이 근처에 폭포라도 있는 건가?”

그렇게 다시 10여 분 정도를 더 올라갔을 때, 카멜의 귓가에 시원한 물소리가 들려왔다.

사실 확인을 위해 잠시 걸음을 멈추고 귀에 정신을 집중하자 이내 그것이 물 떨어지는 소리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오, 예! 마침 잘됐네! 그렇지 않아도 온몸에 땀이 배어 찝찝해 죽을 것만 같았는데! 좋았어, 폭포에서 땀 좀 식히고 가야지!”

카멜은 이내 기쁜 마음으로 물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달려 나갔다.

아니나 다를까, 한 5분 정도를 달려가자 그곳에는 과연 거대한 폭포가 있고, 그 앞에는 널찍한 호수도 자리하고 있었다.

“이야, 이건 뭐 천연 풀장이네. 좋았어! 근방에 몬스터들도 없는 것 같으니까 갑옷 다 벗고 물놀이 좀 해야지. 큭큭.”

오면서 둘러보니 주변에는 유저도 없었고, 몬스터도 없었다. 한마디로 이 폭포는 잠시 동안 카멜 자신이 전세 낸 것이나 다름없다는 소리였다.

결국 카멜은 풀 플레이트 갑옷을 벗어젖히고 오로지 속옷 하나만 걸친 채 호수로 뛰어들었다.

<어머, 저 인간 남자 좀 봐.>

<근육 쩔어. 딱 내 스탈인데?>

<그렇지, 그렇지? 나도 그 생각했어. 게다가 얼굴도 은근 귀엽게 생기지 않았냐? 가슴에 털도 복슬복슬한 게 너무 겨워.>

카멜이 시원하게 물놀이를 즐기고 있는 폭포의 위쪽에서 작은 빛들이 점점이 모여 주변을 밝혀 주고 있었다. 아직 해가 채 저물지도 않은 시간이건만, 그 빛들은 멀리서도 선명하게 보일 만큼 밝았다.

그리고 마치 생명체라도 되는 양 모여서 카멜을 바라보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언니들에게 이야기해볼까?>

<그래, 언니들도 아마 저 귀여운 인간 남자를 보고 싶어 하실 거야. 얼른 신호 보내.>

<알았어.>

“응?”

한창 물놀이를 즐기던 카멜은 별안간 머리 위에서 뭔가 반짝이는 것을 느끼고는 하늘을 쳐다봤다. 하지만 그곳에는 느낌과 달리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푸른 하늘만이 그의 마음을 더없이 상쾌하게 만들어줄 뿐이었다.

<저 아이냐?>

<네, 어머니. 바로 저 인간 남자예요.>

<흐음, 튼실한 것이 참으로 귀엽게 생겼구나. 털도 복슬복슬한 것이 아주 잘 영글었고.>

<그렇죠? 저희도 거기에 대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고 있었어요.>

카멜을 바라보고 있는 이들은 다름 아닌 쇼타콘산에 마을을 형성해 살아가고 있는 물의 요정 님프들이었다.

쇼타콘산 정상에 있는 폭포와 호수를 중심으로 살아가는 이들은 물의 요정 중에서도 못된 사랑 일족이었다.

물의 요정들 사이에서 그릇된 애정관으로 빈축을 사고 있는 이들은 오로지 쇼타콘산에서만 볼 수 있었다.

<어떻게 할까요?>

한 님프의 말에 어머니라고 불린 님프가 서슴없이 대답했다.

<어떻게 하긴, 당연히 우리가 찾아가야지. 오랜만에 찾아온 먹잇감, 아니 손님을 못 본 척할 수야 있겠느냐? 루드와 웨어, 너희 두 명이 가보거라. 그나마 너희 둘이 가장 어리지 않느냐.>

<네, 어머니.>

<네, 어머니.>

촤아악.

“후아, 여기 물 제대로 시원하네. 이 근처에 사냥터만 있으면 이곳에 오두막 지어놓고 내 근거지로 사용하는 건데. 아깝다. …응?”

막 호수 바깥으로 나오려던 카멜은 문득 느껴지는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하이.”

“허억!”

“뭘 그렇게 놀래? 이렇게 예쁜 미소녀 처음 봤어?”

고개를 돌린 그곳에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아름다운 미소녀 2명이 므흣한 자태로 바위 위에 앉아 있었다.

“흐음, 꽤 귀엽게 생기긴 했다만… 패스. 내 취향 아니네.”

‘뭐라?’

‘…쟤 뭐야?’

수백 년 동안 쇼타쿤산을 드나들던 인간 남자들은 지금의 자신들과 같은 모습에 껌뻑 죽었었다. 아니, 이 모습을 한 자신들에게 간이며 쓸개며 모든 것을 토해낼 것만 같은 모습을 보여 왔다.

하지만 눈앞의 사내는 달랐다. 달라도 너무 다른 모습이었다.

“볼일 없으면 가봐. 난 너희랑 더 이상 할 말 없으니까.”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달콤한 말을 속삭이기는커녕 카멜의 목소리는 무뚝뚝한 데다 말투는 까칠하기 짝이 없었다.

<루드, 어떡하지?>

<어떡하긴 뭘 어떡해? 여기서 멈추면 어머니나 언니들이 우리를 어떻게 하겠어? 반드시 데려가야 해. 정 안 되면 끌고서라도!>

루드와 웨어는 그렇게 말을 맞추고는 카멜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하지만 카멜은 그녀들이 내뿜는 이상한 기류를 감지하고 이미 풀 플레이트 갑옷까지 착용한 상태였다.

“안 가고 뭐 하지? 설마 내게 해코지라도 하려는 심산인가?”

“후훗, 꼴에 나이트?”

“호호, 그러게 말이야. 고작 인간 따위가 우리를 이길 수 있을까?”

“…이런 이 계집들이 어디서 개수작이야!”

두 소녀의 속셈을 알게 된 카멜은 곧바로 땅을 박차고 양손검 데몬 슬레이어를 손에 쥐었다.

“워터 애로우!”

“워터 애로우!”

루드와 웨어는 물의 요정답게 수 계열 마법을 난사했다. 하지만 고작해야 2서클짜리 마법인 탓에 카멜로서는 피할 필요조차 없었다.

“홀리 실드!”

팅, 팅.

홀리 실드는 신성 마법 중에서도 3서클의 방어 마법이다. 당연히 2서클의 워터 애로우는 뚫을 수가 없었다.

“쳇, 팔라딘이었나?”

“그게 무슨 상관? 달라질 건 없어! 워터 볼!”

“워터 랜스!”

2서클 마법이 막히자 두 요정은 곧바로 3서클 워터 볼과 4서클 워터 랜스를 전개했다.

제법 위력적인 마법이었지만, 이번에도 카멜은 여유로운 웃음을 지으며 제자리에 서 있었다.

“다크 실드(Dark Shield)!”

팅, 팅.

“이- 이럴 수가!”

“저- 저건 다크 팔라딘의 마법…….”

“큭큭큭.”

카멜이 팔라딘의 신성 마법 외에도 다크 팔라딘의 마법까지 구사하자 두 요정은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자, 이제 내 차례인가? 다크…….”

“잠깐!”

“응?”

막 두 요정에게 저주 마법을 펼치려던 카멜은 낯선 여인의 목소리에 멈칫하며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틀었다.

“오오오!”

그곳에는 루드, 웨어와는 사뭇 다른 매력을 풍기는 중년의 여인이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여인의 주변에도 그녀에 필적할 만한 빼어난 외모의 중년 여인들이 그녀를 둘러싸듯 서 있었다.

“그만 하세요. 그 애들은 나의 아이들이랍니다.”

“알겠습니다, 누님. 누님같이 아름다우신 분의 청이라면 응당 그래야지요. 안녕하십니까? 저는 카멜이라고 합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아름다운 레이디의 이름을 물어도 될까요?”

조금 전 루드와 웨어를 대할 때와는 백팔십도 다른 얼굴로 그녀를 대하는 카멜이었다.

그 모습에 루드와 웨어는 기가 막힌 듯 멍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봤다.

“호호호, 재밌으신 분이네요. 전 이들의 어머니, 세냐라고 합니다.”

“오오오! 이름에서도 고귀함이 느껴지는군요. 다시 한 번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또다시 드러나는 카멜의 여성 취향.

뭇 남성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완벽한 누님 지상주의.

눈앞의 꽃누님에게 카멜은 눈으로 하트를 날리며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야 말았다.

* * *

“이야, 역시 세냐 누님이 사시는 마을답네요. 어쩜 이리도 아름다울까요?”

“호호호, 카멜 동생은 말도 참 귀엽게 하네.”

“아이고, 세냐 누님의 칭찬이라니, 그저 감개무량할 따름이에요.”

카멜은 결국 세냐를 따라 그들의 마을로 갔다. 이미 그녀들이 물의 요정인 님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된 그였지만, 그런 것은 중요치 않았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눈앞에 꽃누님이 존재한다는 사실 그 자체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카멜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였다.

“아, 취한다. 세냐 누님, 저 더 마시면 취할 것 같아요. 그만 마시면 안 될까요?”

“어허, 왜 그래, 카멜 동생. 자고로 술이란 취하라고 마시는 거야. 어서 쭉 들이켜.”

“그래도 더 이상은 힘든데……. 우리 그러지 말고 이야기나 더 해요. 혹시 고민 같은 거 있으시면 서슴지 말고 제게 이야기하세요. 뭐든 다 들어드릴 테니.”

정말 더 이상은 술을 못 마시겠다는 듯 카멜이 엄살을 피우며 말했다.

“어머, 정말? 흐음, 사실 나 고민이 좀 있긴 한데.”

“그게 뭔데요?”

고민이 있다는 세냐의 말에 카멜의 눈이 초롱초롱하게 변하며 말을 재촉했다.

“사실은 말이야, 저 산꼭대기에 불꽃숭이라는 몬스터 녀석이 살고 있는데…….”

“그 몬스터가 어때서요?”

“그 몬스터가 자꾸 우리 요정들을 괴롭히고 못살게 굴어. 녀석이 뿜어내는 불꽃 때문에 폭포도 점점 말라가고 있는 실정이고. 흑흑. 저 폭포가 없으면 우리 요정들은 모두 죽고 말 텐데…….”

세냐의 이야기에 카멜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니, 카멜 동생? 왜 갑자기 일어나고 그래?”

“당장 녀석을 처치하고 올게요. 감히 세냐 누님의 아름다움을 위협하는 놈이 있다니!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요! 당장 다녀올게요!”

“하지만, 그래도 어떻게……. 안 돼! 카멜 동생 혼자는 절대 보낼 수 없어!”

세냐의 만류에도 카멜은 그럴 수 없다는 듯 무기까지 꺼내들었다.

“걱정 마세요. 저 이래 봬도 무척 강하거든요. 그까짓 몬스터 자식, 반드시 없애드릴게요. 제가 하고 싶어서 그래요. 정말 꼭 세냐 누님께 도움이 되어드리고 싶어요.”

“하아, 카멜 동생은 정말! 날 너무 미치게 해! 좋아, 동생! 진짜 그 불꽃숭이를 처치해주면 우리 일족의 보물을 동생에게 줄게.”

[띠링! 퀘스트 ‘위험에 빠진 물의 요정’이 발동되었습니다.]

쇼타콘산에 거주하는 물의 요정들을 위협하는 불꽃숭이를 처치하라. 녀석을 처치하는 이에게는 물의 요정들의 축복이 내려지리니.

난이도:B-

기한:3일

보상:님프의 축복

옵션:요정들의 보물

“고마워요, 세냐 누님.”

“아니야, 오히려 내가 고맙지.”

“누님!”

“동생!”

…그렇게 카멜은 한참 동안 생쇼를 하고서야 마을을 떠날 수 있었다.

* * *

“이런, 빌어먹을 자식! 감히 우리 누님을 괴롭히다니!”

카멜은 마을에서 빠져나와 곧바로 불꽃숭이가 산다는 산 정상으로 향했다. 이름만 들어서는 정확히 어떤 몬스터인지 알 수 없었지만, 전혀 두렵지 않았다.

그만큼 최근의 그는 자신감으로 똘똘 뭉쳐 있었다.

“이쯤일 텐데, 왜 안 보이지?”

밤중에 출발해 아침나절이 되어서야 산 정상에 도착한 카멜은 휴식도 취하지 않은 채 곧바로 불꽃숭이를 찾아 나섰다.

하지만 불꽃숭이는 좀처럼 찾을 수 없었다. 마법에 능한 요정들을 핍박할 정도면 제법 등급이 높은 몬스터일 테고, 그러자면 크기도 꽤 클 터인데 산 정상에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그런 존재가 보이지 않았다.

“내가 잘못 들었나? 분명히 여기에 있다고 그랬는데?”

산 정상은 그저 작은 분지 형태의 지형이었다. 분지의 중앙에는 작은 샘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그 샘이 폭포를 만들어내는 발원지인 듯했다.

게다가 무엇에 타버린 듯 분지 안에는 나무나 풀들이 거의 없었다. 한마디로, 한눈에 분지 안의 모든 전경들이 들어온다는 소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꽃숭이라는 몬스터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녀석이 여기에 없다는 소리나 마찬가지였다.

“젠장! 아무래도 돌아가서 다시 물어봐야… 어라? 저 조그만 원숭이 녀석은 또 뭐지?”

카멜이 막 요정 마을로 되돌아가려는 그 순간, 갑자기 샘 부근에 작은 생명체 하나가 눈에 띄었다. 형상은 원숭이였으나 털 색깔이 붉고 머리 모양이 화염처럼 삐죽 솟아오른 것이 인상적인 생명체였다.

“불꽃숭이, 불꽃숭이… 설마 불꽃 형상의 머리를 한 원숭이를 뜻하는 거였나? 그렇다면!”

찌릿.

“헙!”

불꽃숭이의 정체를 깨닫고 목소리를 크게 내던 카멜은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불꽃숭이의 날카로운 시선에 얼른 입을 틀어막았다. 혹시라도 녀석이 도망치지나 않을까 하는 조바심 때문이었다.

‘휴우, 그래도 다행히 도망가지는 않네.’

여전히 카멜을 쳐다보고 있기는 했지만, 불꽃숭이 녀석은 도망치지 않았다.

거기에 용기를 얻은 카멜은 천천히 분지를 내려가 녀석에게로 다가갔다.

“미안한데, 좀 죽어줘야겠다.”

끼익, 끼익.

조금이라도 빨리 녀석을 처치하고 세냐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에 카멜은 곧장 데몬 슬레이어를 들고 녀석에게 쇄도했다.

우갸갸갸.

“헛! 내 공격을 피해? 고작 원숭이 따위가?”

카멜은 자신의 공격을 매끄럽게 피해내고 자신을 비웃는 불꽃숭이를 바라보며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두 번째는 절대 자신의 공격을 피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계속해서 녀석에게로 쇄도했다.

끼익, 끼익.

“빌어먹을! 이것도 피해봐라!”

끼익, 끼익.

“이것도!”

끼익, 끼익.

“이것도! 이것도! 이것도!”

카멜의 연속되는 공격에도 불꽃숭이는 마치 쥐새끼처럼 잘도 피해냈다. 무거운 양손검을 사용하기에 카멜의 공격이 다소 느린 탓도 있지만, 불꽃숭이 녀석이 원체 재빨랐다.

카멜도 그러한 것을 깨달았는지 무작정 달려들지 않고 제자리에 서서 녀석을 매섭게 노려봤다.

“고작 원숭이 따위에게 스킬을 사용한다는 것이 좀 우습지만… 조금이라도 빨리 세냐 누님을 만나야 하니. 하앗! 다크 퀘이크!”

끼익.

카멜의 스킬이 작렬하자 시종일관 여유로움을 유지하던 불꽃숭이의 움직임이 배는 더 빨라졌다.

“헛, 말도 안 돼! 다크 퀘이크의 범위에서 벗어났다?”

다크 퀘이크의 장점은 바로 넓은 범위를 장악한다는 데에 있었다. 무려 반경 10미터에 달할 정도였다.

그런데 그런 다크 퀘이크의 범위에서 벗어났다면, 불꽃숭이는 순간적으로 10미터를 이동했다는 소리나 마찬가지였다.

“…….”

끼기기긱.

귀여운 외모 속에 자신의 실력을 숨기는 영악함을 내재하고 있는 불꽃숭이.

카멜은 불꽃숭이를 보며 자신의 역량으로는 녀석을 어찌할 수 없음을 인정해야 했다.

‘너무 빨라. 로빈이라도 곁에 있다면 모를까, 나 혼자서는 절대 녀석을 잡을 수 없다. 어떻게 해야 하지? 지금이라도 내려가서 세냐 누님의 도움을 받을까? 안 돼, 그럴 수는 없어! 그건 너무 쪽팔리는 짓이야! 무조건 내 힘으로 처치해야 해! …하지만 어떻게? 젠장,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네!’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녀석을 처치할 방법은 전무했다. 다크 퀘이크의 범위에서 벗어날 정도의 빠르기를 지닌 녀석에게 먹힐 만한 스킬이나 마법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끼기기긱.

“저놈의 원숭이 자식이 날 비웃네? 으윽, 제기랄!”

불꽃숭이 녀석이 주변을 뛰어다니며 자신을 농락하자 카멜은 분통 터져 미치겠다는 표정으로 녀석을 바라봤다.

그러다 문득 물을 뿜어내는 샘이 카멜의 눈에 들어왔다.

‘샘이라. 저 샘은 어째서 물이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거지? 보통의 샘은 그저 고여 있는 데에 그치는 것이 아닌가. 혹시… 지하수?’

물이 뿜어져 나오는 샘이라면 당연히 지하수를 의심해봐야 한다. 그것도 저 아래에 제법 큰 규모의 폭포를 만들어내려면 유량도 제법 많다는 소리였다.

‘녀석의 이름은 불꽃숭이다. 이름 그대로 불 속성의 몬스터겠지. 그렇다면…….’

불 속성의 몬스터들은 모두 물 속성의 마법이나 스킬에 약하다. 그것은 제아무리 대단한 몬스터라도 마찬가지였다.

카멜 역시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기에 순간적으로 그것을 이용해 녀석을 잡을 수 있는 묘안이 떠올랐다.

“으흐흐.”

끼긱?

“네놈은 이제 끝났다. 하앗!”

별안간 카멜이 사악한 웃음을 지으며 불꽃숭이에게로 쇄도했다. 하지만 불꽃숭이는 그것을 또다시 여유롭게 피해냈다.

“다크 퀘이크!”

다시 한 번 다크 퀘이크를 전개하자 그와 동시에 땅바닥이 진동하며 녀석에게로 그 충격파가 이어졌다.

끼기기긱.

하지만 역시나 녀석은 다크 퀘이크의 범위에서 순식간에 벗어나 카멜을 비웃으며 그에게로 다가왔다.

“다크 퀘이크!”

또다시 대지가 진동했다. 그러나 불꽃숭이는 여전히 재빠른 몸놀림으로 그것을 피해냈다.

“다크 퀘이크! 다크 퀘이크! 다크 퀘이크!”

하지만 카멜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다크 퀘이크를 전개했다. 그러자 조금씩 주변 지반이 흔들리더니 샘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의 양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끼기기긱.

카멜이 하는 바보짓이 우습기만 한지, 불꽃숭이는 주변 지반이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했다. 녀석이 생각보다 지능이 떨어져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카멜이 끊임없이 공격을 퍼붓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다크 퀘이크!”

끼기기긱.

다시 한 번 다크 퀘이크가 전개되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불꽃숭이는 공격을 피해 멀찌감치 뒤로 물러났다.

“으흐흐.”

끼긱?

“네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아냐? 큭큭, 잘 기억해둬라. 거기가 바로 네 사지이니까 말이야. 다크 퀘이크!”

콰아앙!

끼이이이익!

불꽃숭이 녀석이 발을 내딛고 있던 곳은 다름 아닌 샘의 바로 옆이었다. 이미 약해질 대로 약해진 지반에 다시 한 번 카멜이 충격을 가하자 드디어 샘 주변이 굉음을 내며 폭발했다.

너무도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불꽃숭이 녀석도 미처 피해내지 못하고 샘에서 터져 나온 물살에 휩쓸려 내려갔다. 그리고 카멜은 그것을 놓칠세라 녀석에게 따라붙었다.

끼이이익!

“뭐냐, 그 소린? 나보고 지금 살려 달라고? 큭큭. 그런데 이걸 어쩌나? 난 전혀 그럴 생각이 없는데 말이야. 다크 슬래쉬(Dark Slash)!”

물에 휩쓸려 내려가는 불꽃숭이에게로 따라붙은 카멜은 녀석에게 마지막 철퇴를 가했다.

혼신의 힘을 다한 그의 일격에 불꽃숭이는 대번에 생명력이 다했다. 아무래도 몸놀림은 빠르되 생명력은 무척이나 낮은 모양이었다.

[띠링! 레벨이 올랐습니다.]

[띠링! 레벨이 올랐습니다.]

[띠링! 레벨이 올랐습니다.]

[띠링! 300레벨을 달성하셨습니다. 승급할 조건이 모두 갖추어졌습니다. 승급하시겠습니까?]

“오브 코오~ 스!”

귓가에 울리는 청명한 알림음에 카멜은 지금 자신이 어떠한 상황에 빠졌는지도 잊은 채 경쾌하게 대답했다.

[띠링! 히든 클래스 카오스 팔라딘으로 전직합니다.]

[띠링! 근력과 체력이 100씩 상승합니다.]

[띠링! 특수 스탯 카오스가 생성됩니다.]

“브라보!”

드디어 자신이 바라고 또 바랐던 히든 클래스로의 전직을 마쳤다. 어찌나 기쁜지 카멜은 제자리에서 펄쩍 뛰며 환호성을 내질렀다.

콰아앙!

“으어어억! 사람 살려!”

하지만 기쁨도 잠시, 한 번에 대량의 물이 지반을 뚫고 나오는 바람에 주변의 지반까지 약해져 카멜이 서 있던 곳도 폭발과 함께 물이 터져 나오고 말았다.

그리고 조금 전의 불꽃숭이가 그랬던 것처럼 카멜 역시 거대한 물의 흐름에 휩쓸려 갔다.

* * *

그로부터 열흘이 지난 후, 쇼타콘산 요정 님프의 마을에 낯익은 인간 남성이 나타났다.

“꺄아악! 어머니, 어머니! 그가 나타났어요!”

낯선 인간 남성의 등장에 요정들은 마치 전쟁이라도 난 것처럼 호들갑을 떨며 마을 안으로 사라졌다.

“어라? 내가 나타난 게 그렇게 의외였나?”

요정 님프의 마을에 나타난 인간 남성은 다름 아닌 카멜이었다. 불꽃숭이를 멋들어지게 처치하고는 바보처럼 급류에 휩쓸려 목숨을 잃은 바로 그 카멜이 사내의 정체였다.

“카멜 동생!”

“앗, 세냐 누님!”

요정들의 반응에 찝찝해하던 카멜은 이윽고 멀리서부터 자신을 부르며 달려 나오는 세냐를 보고는 반갑게 그녀에게로 달려갔다.

“카멜 동생! 모두 동생 덕분이야!”

“뭘요, 세냐 누님이 믿어주신 덕분이죠!”

세냐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카멜이기에 그녀의 뜬금없는 말에도 적절히 대답해줄 수 있었다. 당연히 불꽃숭이를 해치운 것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였다.

“자, 이거.”

“이게 뭔가요?”

다짜고짜 내미는 세냐의 손에는 물방울 모양의 보석이 달린 목걸이가 하나 들려 있었다.

“‘님프의 손길’이라는 목걸이야. 우리 부족의 보물이지. 받아, 이제 동생 거야.”

“아, 너무 예뻐요. 감사해요.”

[띠링! 퀘스트 ‘위험에 빠진 물의 요정’이 종료되었습니다. 보상으로 요정의 보물 ‘님프의 손길’을 얻었습니다.]

[님프의 손길]

물의 요정 님프들의 축복이 담긴 목걸이.

물방울 모양의 아쿠아마린으로 만들어져 있어 물 속성 마법이나 스킬에 절대적인 방어력을 자랑한다.

등급:유니크 내구력:3,000/3,000

분류:목걸이

제한:물의 요정 님프의 인정을 받은 자

옵션:물 속성 마법(스킬)에 대한 저항력 100%

옵션:특수 스탯 매력 +200

옵션:물 속성 마법(워터 실드, 워터 힐)

“이- 이렇게 엄청난 보물을!”

여태 많은 액세서리들을 봐왔지만, 이 정도로 뛰어난 목걸이는 맹세코 처음이었다. 특히 카멜의 눈길을 끈 것은 다름 아닌 특수 스탯인 ‘매력의 생성’.

특수 스탯 중에서도 가장 생성하기 힘들다는 매력은 이성 NPC에 대해 호감도를 상승시켜 주고 퀘스트를 얻을 수 있는 확률을 높여 주는 매우 중요한 스탯이었다.

“카멜 동생이 우리에게 해준 것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야. 아, 그리고 이건 또 하나의 선물이야.”

쪽.

“헉!”

[띠링! 요정의 축복을 받으셨습니다. 영구적으로 매력 스탯이 100 상승합니다.]

기습적으로 받은 세냐의 키스.

카멜은 그대로 그 자리에서 굳어 돌부처처럼 하염없이 세냐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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