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5장. 이그나혼 (26/82)

제5장. 이그나혼

아르니안 대륙의 중앙 대평원을 차지하고 있는 라그혼 왕국은 대륙 최강의 군사력을 보유한, 명실상부 아르니안 최강국이다.

기사들이 득세하는 서남부의 펜하르트 왕국과 달리 라그혼 왕국에는 기사뿐 아니라 마법사들도 대우를 받고 있어 군사력의 척도인 2가지 모두 최강의 힘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한 라그혼의 수도인 이그나혼은 대륙 제1의 도시라는 별명답게 규모 면에서나 심미적인 면 모두에서 최고라는 찬사를 받는 곳이었다.

그중에서도 이그나혼의 명물이라고 할 수 있는 진 마탑은 『오벨리스크』를 즐기는 유저라면 응당 한 번쯤 견식해볼 만한 이그나혼의 자랑거리였다.

웅성웅성.

“저게 뭐야?”

“낸들 아냐? 저 사람 대체 뭐야? 저 몬스터는 또 뭐고?”

이그나혼의 성곽 서쪽에 놓인 해자 앞에서 때 아닌 소동이 일어났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성안으로 들어서기 위해 줄을 서는 그곳에 거대한 괴물체가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역시나 대륙 최고의 도시인가? 들어가는 것만 해도 이렇게 시간을 잡아먹다니. 이 나라의 왕은 은근히 소심한 구석이 있네.”

음메에에.

“강쇠, 네가 봐도 그렇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는 괴물체는 다름 아닌 변강쇠였다. 그리고 그의 어깨 위에 걸터앉은 이는 당연히 천휘였다.

“아, 우리 차례다. 강쇠, 앞으로 가자.”

음메에에.

채채챙.

“멈춰라!”

“어라?”

하지만 천휘는 다른 이들처럼 성안으로 들어서지 못했다. 난데없이 경비병이 무기를 빼들고 나서서 변강쇠의 앞을 가로막은 탓이었다.

“무슨 일이지?”

“몬스터는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 게다가 당신은 신분 조회도 마치지 않은 이방인이 아닌가. 내려서 신분을 밝혀라.”

경비병들은 여느 도시의 경비병들과는 차원이 다른 강함을 보유하고 있었다. 천휘가 보기에 경비대장은 소드마스터에 근접한 실력을 지닌 검사인 듯했다.

‘준소드마스터가 고작 경비대장이라니… 대체 어떻게 돼먹은 나라야?’

제아무리 제멋대로 게임을 즐기는 천휘라 해도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난동을 피울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들을 천휘도 아니었다.

“이거면 됐나?”

휘익, 툭.

“이건 뭐지?”

“마탑 오베른 지부의 라이선스 카드.”

천휘가 경비대장에게 던진 것은 마탑 오베른 지부의 지부장 게렌 드 필리얀이 퀘스트 보상으로 준 라이선스 카드였다. 그것이라면 충분히 자신의 신분을 증명해줄 터였다.

“…틀림없군. 하지만 그 몬스터는 지나가지 못한다!”

“몬스터? 하아,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되나 본데, 이 자식은 몬스터가 아니라 소환수야, 소환수. 소환사가 자기 소환수도 못 데리고 가나? 그게 이 나라 국법이냐고!”

“끄응.”

천휘의 대꾸에 경비병들이 일제히 경비대장을 쳐다봤다. 어찌하면 좋겠냐는 물음이었다.

“소환수라면 상관없겠지. 좋다, 들어가라!”

“쌩유 베리 망치. 변강쇠, 들어가자.”

음메에에.

경비대장의 재가에 천휘는 감사의 인사를 건네고는 성안으로 들어섰다.

“…헐, 여기가 서울이냐?”

음메에에.

라그혼 왕국의 수도 이그나혼은 도로 정비가 완벽한 도시였다. 거리별로 딱딱 정비된 것은 물론이요, 사람이 지나는 인도와 마차가 지나는 차도가 완벽하게 분리되어 있어 마치 현대의 대도시를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젠장! 고작해야 성문 근처에 이렇게 사람이 많으면 번화가에는 사람이 대체 얼마나 많은 거야? 미치겠네. 응?”

생각보다 훨씬 심각한 체증에 짜증을 내던 천휘는 이내 거리 한쪽에 세워진 도시 안내판을 발견하고는 그쪽으로 변강쇠를 움직였다.

“호오, 이건 마음에 드는데? 어디, 진 마탑으로 가려면 어느 쪽으로 가야 하지? 앗, 여기다! 도시의 북동쪽에 있다고 했으니까, 대충 이그나혼 중앙 헤레온 광장을 지나가면 되겠어. 변강쇠, 이대로 직진이다!”

음메에에.

헤레온 광장에는 각종 생산 시설들이 모두 모여 있어 이그나혼을 근거지로 삼고 게임을 즐기는 대부분의 유저가 드나드는 곳이었다. 한마디로 장사를 하기에도, 그 밖에 쓸 만한 아이템을 갖추기에도 이곳만큼 좋은 곳이 없을 정도였다.

변강쇠와 천휘는 그렇게 헤레온 광장으로 향했다.

“자, 모두들 모이세요! A급 철광석 판매합니다! 대량으로 구입하시는 분께는 섭수 드립니다!”

“동물 가죽 대량으로 매입합니다. 바로 거래요!”

역시나 헤레온 광장은 수천 명의 유저들로 북적거렸다. 마치 동대문 시장을 보는 것처럼 유저들의 얼굴에는 생기가 어렸고, 지나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즐거움이 묻어나왔다.

“역시나 이런 데서 사람 냄새를 풀풀 맡을 수 있는 것이지. 자, 나도 어디 한자리 차지하고 장사 좀 해보실까?”

천휘는 그동안 카이젠 사이클롭스들을 처치하고 획득한 아이템들을 팔 요량이었다. 카이젠 사이클롭스는 명실 공히 A급 몬스터이니, 녀석들이 드롭하는 아이템들은 분명히 유저들에게 비싸게 팔릴 터였다.

그리고 그렇게 번 돈으로 마지막 황제 슈트라카이젠과 하이 엘프 퀸 데보타를 강시로 제작할 요량이었다. 천마강시 이상의 강시를 만들자면 그에 해당하는 엄청난 수준의 시약이 필요할 터. 역시 중요한 건 쩐이었다.

“자, 일단은 카이젠 사이클롭스의 가죽인가?”

[카이젠 사이크롭스의 가죽]

카이젠 산맥의 외눈박이 괴물의 보금자리에 서식하는 카이젠 사이클롭스의 가죽. B급 철광석에 견줄 만한 강도를 자랑하며, 흉성이 강한 카이젠 사이클롭스의 영향으로 A급 이하의 몬스터로부터의 피어 상태에 면역력이 있다.

등급:레어 내구력:10,000/10,000

분류:가죽

제한:없음

옵션:물리 방어력 +100

옵션:근력 +30

옵션:민첩 +10

옵션:체력 회복속도 10% 상승

고작해야 재료 아이템에 불과하건만 카이젠 사이클롭스의 가죽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레어 등급의 가죽 갑옷에 버금가는 옵션이 달려 있었다.

이런 가죽을 가죽 갑옷 장인의 손을 거치게 한다면 분명히 유니크 등급의 가죽 갑옷으로 재탄생하게 될 터였다.

“이 정도 가죽이라면 충분히 50만 골드 이상이지. 자, 시작해볼까?”

천휘는 미리 준비한 거대 팻말에 글자를 적기 시작했다. 외치는 것이 귀찮아 거대한 덩치의 변강쇠로 하여금 이 팻말을 들게 해서 광고 효과를 거두려는 심산이었다.

“자, 변강쇠야, 이것 좀 들고 있어라.”

음메에에.

어때, 입질이 슬슬 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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