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장 태양의 진실
[띠링! 에이션트 히드라를 처치하셨습니다.]
[띠링! 레벨이 2 올랐습니다.]
“좋았어! 다음은 너희 둘!”
무려 30분 동안 이중극점으로 두드리고 나서야 에이션트 히드라를 처치할 수 있었다.
녀석에게서 나온 아이템을 혼자 독식한 천휘는 곧바로 다른 히드라에게로 다가갔다.
그때였다.
“끄윽! 젠장!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뭐야! 생명력이 바닥이잖아? 다른 길드원들은 다들 어디 갔지?”
갑자기 우후죽순처럼 그동안 보이지도 않던 드림 길드와 천공의 날개 길드의 유저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들은 모두 길드의 수뇌부들. 최소 250~300레벨을 상회하는 최고렙 고수들이었다.
‘빌어먹을! 왜 하필 이때 일어나는 거야!’
에이션트 히드라를 처치하고 다른 히드라들을 처치하려던 천휘는 이내 생각을 고쳐먹고 곧바로 호수 곁의 신전으로 뛰어갔다.
“그보다… 저 두 녀석은 그렇다 쳐도 우리를 이렇게 만든 다른 히드라는 어딜 간 거지?”
마스터답게 주변의 상황을 빠른 시간 안에 파악한 도리아는, 수천 명 유저들의 목숨을 빼앗아간 에이션트 히드라를 찾았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녀석은 찾을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길드원들의 목숨을 앗아간 스킬이 자폭 스킬이지 않았을까요? 제아무리 보스급 몬스터라도 그 정도의 스킬이라니……. 저희보다 레벨이 낮은 유저들은 단 한 번의 공격으로 모두 강제 로그아웃되었어요.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잖아요.”
“흐음.”
드림 길드의 수뇌부 중 가장 나이가 어린 페이노트의 말에 도리아는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마스터! 저기 신전 쪽으로 사람이 한 명 다가가고 있습니다! 저 정도의 빠르기라면 아마 도적이나 어쌔신인 것 같습니다.”
“뭐? 신전으로? 젠장! 당장 신전으로 향한다!”
“이 히드라는 어쩌고요! 이대로 뒀다가는 다시 살아날 수도 있어요!”
“…큭, 페이노트! 너를 비롯한 절반의 유저들은 이곳에 남아 이 히드라를 처치한다. 그리고 아이템 챙기는 것 잊지 마라.”
“네!”
페이노트에게 대충 지시를 내린 도리아는 곧바로 길드 수뇌부 3명을 이끌고 신전으로 내달렸다.
반대편에서도 상황을 파악한 레논과 천공의 날개 길드 수뇌부 3명이 신전으로 향하고 있었다.
2라운드의 시작이다.
그렇게 두 길드의 마스터들이 신전 안으로 사라지자, 남은 유저들은 곧바로 각기 히드라를 향해 스킬을 퍼붓기 시작했다. 거의 다 죽어가는 히드라라 할지라도 워낙 엄청난 생명력으로 쉽사리 죽지 않는 히드라를 보며 두 길드의 유저들은 질린 듯한 표정이었다.
“젠장! 레이드가 이렇게 어려운 거였나?”
“때려도, 때려도 끝날 기미가 보이질 않아. 이럴 바에야 차라리 그냥 마나 소모를 감수하고 강력한 스킬을 퍼붓는 게 나을 거 같은데?”
“형 말이 맞아요. 그럼 그렇게 해봐요.”
두 길드의 유저들이 방법을 바꿔 일반적인 물리 공격에서 스킬 공격으로 전환하려는 찰나, 불현듯 하늘에서 붉은 로브를 걸쳐 입은 미녀가 나타났다.
바로 하이 엘프 퀸 데보타 엘 클라리넨이었다.
“그럴 필요 없다, 멍청한 이방인들!”
“저건 또 뭐야?”
데보타가 로브로 얼굴마저 가린 상황이었기에 유저들은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다. 다만, 그녀가 하늘에서 내려왔기에 마법사라는 사실 정도만 눈치 챘을 뿐이었다.
“그럴 필요 없다니. 무슨 소리지?”
데보타의 말에 마곤이 나서며 물었다.
“너희들은 여기에서 다 죽을 테니, 그 녀석들을 힘들게 처치할 필요가 없단 소리다.”
“흥! 감히 마법사 나부랭이 주제에 우리를 처치하겠다고? 어림없는 소리!”
지금 이곳에 남아 있는 이들은 대부분 생명력이 높은 전사들이거나 성기사들이었다. 체력이 약한 사제나 마법사 등은 일전의 에이션트 히드라가 전개한 스킬에 모두 목숨을 잃고 말았다.
전통적으로 전사들과 마법사들은 사이가 좋질 못하다. 그 때문인지 페이노트의 말에는 가시가 날카롭게 돋쳐 있었다.
“어린노무 시키가 말이 많군. 모두 죽어라! 싸이오닉 스톰(Psionic Storm)!”
“헉! 이건 7서클 마법!”
“마- 말도 안 돼!”
데보타의 마법 싸이오닉 스톰이 유저들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실제 벼락으로 이루어진 마법이 아닌 마나의 폭풍이 유저들의 정신을 헤집고 다니는 탓에, 7서클 마법임에도 그 위력은 8서클과 비견되는 최강의 정신 마법, 싸이오닉 스톰.
단 한 번의 마법으로 드림 길드와 천공의 날개 길드 수뇌부들이 생명력과 마나가 동시에 소멸되며 강제 로그아웃되고 말았다.
“후훗, 이제 신물을 회수해보실까?”
자신의 마법에 모두 쓰러진 것을 확인한 데보타는 곧바로 로브를 뒤로 젖히며 천휘가 사라진 신전으로 향했다.
[띠링! 유저 최초로 태양신 라멘의 신전 ‘태양의 진실’을 발견하셨습니다.]
[명성이 10,000 상승하셨습니다.]
“드디어… 인가?”
신전 안으로 들어서자, 연달아 알림음이 들려왔다. 드디어 데보타가 안겨 준 퀘스트가 끝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
“아직은 안심할 수 없지.”
어찌 보면 자신은 지금 독 안에 든 쥐나 마찬가지였다. 확인하진 못했지만, 분명히 드림 길드와 천공의 날개 길드의 마스터들이 자신을 확인했을 터였다. 그렇다면 이곳으로 들어서는 것은 시간문제나 마찬가지다.
이래저래 최대한 서두르는 것만이 살길이었다.
타다다닥!
천휘는 경공을 전개해 빠르게 신전 아래로 내려갔다.
지상 위의 신전은 그저 맛보기에 불과한 듯 지하로 이어지는 계단은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신전을 지키는 몬스터가 없다는 건가?’
확실히 이곳은 일반 던전과는 조금 다른 형태인 듯했다. 보통 처음 발견한 던전이라면 미개척 던전이라는 칭호가 붙기 마련인데, 처음 천휘가 신전에 발을 들였을 때는 그런 알림음이 들려오지 않았다. 더불어 경험치나 아이템 획득률의 상승이 없기도 했다. 한마디로 이 신전 안에는 몬스터가 없다는 소리였다.
“우와, 대단한걸?”
그렇게 한참을 더 계단을 내려가서야 천휘는 푸른빛이 감도는 입구로 들어설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천휘는 마치 딴 세상에 온 것 같은 착각에 빠질 만큼 아름다운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아쿠아리움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빛깔이야.”
계단이 끝나고 이어진 입구 너머에서 호수의 전경이 훤히 들여다보이고 있었다. 투명한 유리벽이 펼쳐져 있는 그곳에는 유리보다 더욱 투명한 호수의 물결이 일렁이고 있었다.
“아!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호수에 한눈이 팔렸던 천휘는 곧바로 길을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더 이상 계단은 없었다. 그저 유리벽을 따라 일직선으로 쭉 이어진 복도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복도의 내벽에는 기이한 형태의 문양들이 마치 이야기의 줄거리처럼 조각되어 있었다. 천휘는 경공을 전개해 빠르게 움직이느라 그 조각들을 자세히 살피지는 못했지만, 대충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도는 알 수 있었다.
“태고의 인간들인 건가?”
조각은 하나같이 사냥하고 불을 피워 축제를 여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었다. 그 외에도 몇몇 다른 형태가 있었지만, 천휘의 눈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그리고 천휘는 그러한 조각들을 토대로 이 조각들이 아르니안 대륙 태고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 신전은 그렇다면 태고에 만들어졌다는 건가?”
이루 형용할 수 없이 맑고 깨끗한 호수.
그리고 그 호수를 품 안에 담은 지하의 신전.
도저히 인간의 손길이 닿았다고는 믿기 힘들 만큼 장엄하고 위대한 신의 산물이었다.
화아아악!
“아아…….”
복도의 끝에 이르자, 갑자기 환한 빛이 천휘의 두 눈을 감쌌다. 온몸에 느껴지는 성스러움과 고귀함에 그는 저절로 감탄사가 내뱉어질 정도였다.
“…대단해.”
드디어 신전의 중앙에 도달한 듯 천휘의 앞에 놓인 것은 태양신 라멘을 조각한 거대한 입상이었다. 지상에서부터 호수를 타고 흘러들어오는 햇빛이 그 입상에 머물며 환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이곳은 신성한 신의 성지.]
[침입자는 용서치 않는다.]
“쳇, 역시나 거저먹을 수는 없다는 건가?”
하지만 마냥 감탄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입상 주변에 갑자기 기사처럼 보이는 영체들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 숫자도 제법 되어 10명 정도 되어 보였다.
“하앗! 악마의 숨결!”
그러나 천휘는 영체 형태의 몬스터에게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는 스킬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악마의 숨결. 악마의 숨결의 옵션 중 하나가 바로 영체 형태의 몬스터에게 30퍼센트의 추가 데미지가 붙는다는 것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태양신 라멘의 입상을 지키던 신의 기사들이 천휘의 주먹에 하나 둘 사라지기 시작했다.
영체의 형태를 띤 탓에 천휘가 좋아하는 타격감은 느낄 수 없었지만, 자신의 공격에 힘없이 쓰러지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아질 수밖에 없었다.
“후우, 이 녀석이 마지막인가?”
드디어 마지막 신의 기사를 처치한 천휘는 복도에서 낯선 이의 발소리를 들을 수가 있었다. 제법 숫자가 많은 듯 발소리는 요란했다.
“젠장! 저 녀석들, 결국에는 여기까지 온 건가? 그렇다면 일단은… 응? 혹시!”
천휘 자신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지존 12인 중 2명을 상대로 이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오베른이 곁에 있었다면 모를까, 천휘의 힘으로는 아무리 계산해 봐도 불가능했다. 때문에 천휘는 몸을 숨기기로 작정하고 입상의 뒤편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천휘는 뜻밖의 수확을 얻을 수가 있었다.
“아직도 안 보이냐?”
“안 보입니다, 길마.”
“빌어먹을! 어디까지 사라진 거야? 우리보다 빠르다니! 믿을 수가 없군!”
드림 길드의 수뇌부 중 유일한 도적 유저인 카인의 말에 도리아는 인상을 찌푸리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그런 도리아를 보며 뒤따르던 레논이 한마디 했다.
“우리 몰래 기회를 엿보던 영악한 놈이다. 게다가 너도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겠지만, 우리가 기절하는 동안 홀로 히드라 한 마리를 처치한 녀석이야. 어쩌면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대단한 놈일 수도 있다.”
“…알고 있어.”
레논 역시 녀석이 엄청난 고수라는 것을 파악한 모양이었다. 그것도 이제까지 정체를 드러내지 않은 고수. 어쩌면 아르니안의 지존 12인인 자신들보다 강할지도 모르는 녀석이었다.
‘하지만 녀석은 혼자다. 그에 반해 이쪽은 여섯. 제아무리 강하다 해도 우리 여섯은 이길 수 없어!’
신전 안으로 들어온 유저들은 도리아 자신을 포함해 하나같이 280레벨을 넘어선 랭커들이었다. 이 정도라면 현재 아르니안 최강, 신의 검 파르테논도 이길 수 있을 만한 전력이었다.
“마스터! 드디어 끝이 보입니다!”
“좋았어! 녀석이 눈에 들어오면 잡설은 집어치고 녀석을 처치한다! 레논, 어떡할 거냐? 도울 거냐, 말 거냐?”
“…이미 답은 내려져 있지,”
레논의 대답에 도리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전방을 바라봤다.
“윽!”
“빛이!”
갑자기 눈을 따갑게 만드는 빛 무리에 그들은 한동안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었다. 행여나 먼저 신전에 들어선 상대가 자신들을 공격할까, 레논을 비롯한 성기사들이 전방에 방어막까지 펼쳤다.
하지만 그들이 시력을 되찾을 때까지 아무런 공격도 일어나지 않았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분위기를 보아하니 여기가 끝인 것 같은데. 녀석은 어딜 간 거지?”
“아아! 태양신 라멘이시여! 당신의 사자가 이곳에 왔나이다!”
도리아가 천휘의 종적을 찾는 동안 레논을 비롯한 성기사들은 태양신 라멘의 입상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지랄 염병을 해라, 아주.”
그런 레논이 못마땅한 듯 도리아는 입상이 세워진 홀 안을 살피기 시작했다. 확실히 이곳 말고는 더 이상 이어진 통로가 없었다. 분명히 녀석은 이 안에 있었다.
휘이익.
“응? 웬 바람이지? 조금 전 바람이 불지 않았나?”
“저도 느꼈습니다, 마스터. 확실히 미미하지만 바람이 일었습니다.”
“그렇지? 그런데 그게 말이 되나? 이렇게 밀폐된 공간에서? 그것도 이토록 깊은 지하에서?”
“말이… 안 되겠지요?”
마곤의 대답에 도리아는 불길한 예감이 들어 급히 지상 위에 있을 페이노트와 연락을 시도했다. 다행히 이곳이 던전이 아니라 귓말을 주고받는 것은 가능했다.
[To. 페이노트:페이야! 위쪽에 무슨 일 있냐?]
[띠링! 상대방은 현재 로그아웃 상태입니다.]
“빌어먹을!”
“왜 그러십니까, 마스터?”
“아무래도 위에 무슨 일이 벌어진 모양이야. 히드라들이 정신을 차렸거나, 아니면…….”
“또 다른 불청객이 있거나. 나도 방금 위와 연락을 시도했는데, 우리 길드의 유저들도 로그아웃 상태다.”
갑자기 대화에 끼어든 레논의 말에 도리아의 불안감은 더 짙어졌다. 그를 더욱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자신으로 하여금 불안하게 만든 상대에 대한 정보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겉보기에는 영락없는 아저씨에 말보다 주먹이 앞설 것 같은 그지만, 언제나 머리로 미리 계산이 되지 않는 사항에 대해서는 절대 먼저 움직이지 않았다. 그 때문에 그는 베놈 헌터라는 별명 말고도 닥터 도리아라는 별명도 함께 가지고 있었다.
“레논! 아무래도 심상치 않다! 입구를 봉쇄해라! 위의 녀석들을 처치한 녀석들이 온다!”
“…네 녀석 말을 한번 믿어보지! 간트, 데먼, 나를 도와 입구를 봉쇄한다!”
도리아의 말에 레논이 자신과 함께 온 2명의 성기사를 불렀지만, 두 사람의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대신 낯선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올 따름이었다.
“그들은 이미 죽었어요.”
“누구냐!”
붉은 로브를 걸치고 있는 낯선 여인의 등장에 도리아가 뒤로 빠르게 물러나며 전투태세를 갖췄다.
“그건 알 것 없어요. 어차피 당신들은 영원의 생명을 약속받은 이방인들. 이제 날 귀찮게 하지 말고 이곳에서 죽으세요.”
“어림없는 소리! 타아앗!”
“하아앗!”
여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도리아와 레논을 비롯한 살아남은 유저들이 그녀에게로 쇄도했다. 그들 대부분이 근접전에 능한 직업들이기에, 마법사로 보이는 여인은 금세라도 목숨을 잃을 것만 같았다.
스파앗!
“쳇! 블링크인가!”
하지만 그녀는 캐스팅도 하지 않고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대번에 그녀가 순간 이동 마법인 블링크를 펼쳤다는 것을 깨달은 도리아는 곧바로 주변을 살폈다.
“저기다!”
도리아는 물론이고 다른 유저들도 블링크 마법을 펼쳤을 때의 현상인 마나 뒤틀림을 확인했다. 그리고는 곧바로 그 지점을 향해 각자의 스킬을 퍼부었다.
“베놈 크러쉬!”
“썬 대시!”
콰아아앙!
총 6명의 유저가 펼친 스킬들이 한 지점에 집중되면서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 그 정도라면 그 누구도 무사하기 힘들 만큼 대단한 위력이었다.
“마- 말도 안 돼!”
“이럴 수가!”
그러나 정작 스킬을 펼친 당사자들의 얼굴은 사색으로 변해 있었다. 자신들의 스킬이 고작해야 평범한 실드 마법을 뚫어내지 못했다는 것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끝인가요?”
그들의 스킬이 두드린 것은 여인이 펼친 평범한 실드였다. 평범한 실드 마법이었지만, 그들의 스킬은 그녀가 펼친 실드에 흠집 하나 내지 못하고 소멸하고 말았다.
“그럼 이번에는 내 차례네요. 라이트닝 캐논(Lightning Cannon)!”
“끄아아악!”
“크허어억!”
워낙 지근거리였던지라, 유저들은 여인의 마법을 피해내지 못하고 그대로 강제 로그아웃되고 말았다. 그들 모두가 아르니안에서는 내로라하는 랭커들임을 감안한다면, 그녀의 마법이 얼마나 위력적인지 알 수 있었다.
“다- 당신 누구야!”
이제 남은 사람이라고는 도리아와 레논뿐이었다.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두 사람은 일직선으로 뻗어나가는 마법의 범위 바깥에 있어 목숨을 부지할 수가 있었다.
“내가 누구냐고? 호호호호. 이 신전의 수호자라고 하면 알려나?”
“그대는 절대 수호자가 아니다! 태양신 라멘의 수호자가 그토록 파괴적인 마법이라니! 그것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여인의 말에 레논이 말도 안 된다는 듯 소리쳤다. 그에 여인은 더욱 크게 웃음을 터트리더니, 이내 싸늘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봤다.
“난 이 땅의 수호자다. 이 땅을 노리고 날아드는 너희 이방인들로부터 이 땅을 지키는 수호자란 말이다! 죽어라! 이 탐욕에 물든 버러지들아! 라이트닝 캐논!”
“끄아아악!”
“크허억!”
다시 한 번 펼쳐진 마법에 마지막까지 살아 있던 두 사람이 끝내 강제 로그아웃되었다. 이제 신전 안에는 오직 그녀 혼자만 남게 되었다.
“이제 나와도 돼요. 당신은 정말 훌륭히 임무를 수행해냈어요, 천휘.”
여인의 정체는 다름 아닌 하이 엘프 퀸 데보타였다. 그녀는 이제 자신을 숨길 필요가 없다는 듯 얼굴을 가리던 로브를 벗어 던졌다.
“거기 숨어 있는 것 다 알아요. 그러니 나와요. 제가 힘을 쓰기 전에.”
로브로 가려진 그녀의 본모습은 여전히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역시나 붉은색을 좋아하는 그녀답게 로브 안에 초미니 레드 드레스를 입고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태양신 라멘의 입상을 쳐다봤다.
“역시나 당신이었군, 데보타.”
저벅저벅.
“태양신 라멘의 땅에 이따위 이방인들을 들여보낼 수는 없는 것 아니겠어요? 물론 천휘 당신은 예외예요. 당신은 특별하니까.”
“내가? 호오, 금시초문인데? 내가 특별하다니. 나 역시 저들과 마찬가지로 평범하기 짝이 없는 이방인일 따름인데 말이야.”
데보타의 부름에 천휘 역시 여유로운 표정으로 천천히 입상 뒤에서 빠져나왔다.
“당신은 제가 말한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해냈어요. 축하해요. 당신에게 아공간을 만들어줄게요.”
“그거 좋은 소식이군. 그런데 말이야, 이곳에 네가 말한 최상급 마나석과 시공의 화석, 그리고 아다만티움은 어디에 있지?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가 없어서 말이야.”
데보타의 말에 천휘가 비아냥거리듯 말했다. 그에 데보타가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여기에 있지요. 아공간 오픈!”
‘저게 아공간인가!’
데보타의 말에 그녀의 손 위로 작은 공간의 문이 열렸다. 그 안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둠으로 점철된 이세계의 공간. 그때 그 안에서 그녀의 손바닥으로 3가지의 물품들이 떨어졌다.
“역시나……. 역시나 이번 퀘스트는 날 골탕 먹일 생각으로 내준 것이었군. 처음부터 그따위 것들은 존재하지도 않았던 거였어.”
“뭐, 그렇다고 해둘까요? 하지만 당신에게 놀란 것은 사실이에요. 당신이죠? 이 많은 이방인들을 이곳으로 끌어 모은 사람이.”
“글쎄, 무슨 소린지 모르겠는데?”
데보타의 물음에 천휘는 천진난만한 미소를 품으며 응수했다. 그런 천휘를 바라보는 데보타의 눈빛이 조금 싸늘하게 변했다.
“당신은 두 가지 커다란 잘못을 저질렀어요. 감히 우리 하이 엘프의 성지인 이곳에 이방인들을 들인 것이 그 첫 번째 잘못이고, 주제도 모르고 나를 기만한 것이 그 두 번째예요.”
“호오, 내가 언제 당신을 기만했지? 그거야말로 전혀 모르는 일인걸?”
데보타의 말에 천휘가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내가 당신에게 내린 임무는 그저 히드라 처치였을 뿐이었는데, 당신은 그걸 어기고 이 신전 안까지 들어왔어요. 그게 바로 저에 대한 기만이지요.”
“…참으로 대책 없는 아줌마로군.”
“아줌마?”
“그래, 이 아줌마야! 얼굴은 그래 보여도 이백 살이 넘은 아줌마라는 것 다 알고 있어!”
“감히!”
천휘의 아줌마라는 말이 그녀에게는 치명적인 공격이었는지 그녀의 고운 이마에 핏줄이 두드러지게 치솟았다. 어찌나 화가 났는지 그녀의 두 손에 곧바로 엄청난 마나가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그에 천휘가 다급하게 등 뒤에서 작은 펜던트를 하나 꺼내들었다.
“멈춰! 멈추지 않으면 이 신물을 부숴버리겠다!”
“그- 그것은!”
이제까지 단 한 번도 당황한 모습을 보이지 않던 그녀가 처음으로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천휘가 들고 있는 펜던트를 쳐다봤다.
“이게 뭔지 정도는 알고 있겠지. 그렇지 않아?”
“네까짓 이방인 따위가 지닐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당장 내려놔!”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모양인데… 지금 이게 누구의 손에 있지?”
빙글빙글.
데보타를 놀리는 것에 재미 들렸는지 천휘는 펜던트를 손으로 빙글빙글 돌리기 시작했다. 순간 데보타의 얼굴은 사색이 되어 애타게 입을 열었다.
“뭘 원하는 거지?”
“지금 당장 내게 아공간을 종속시켜! 그러고 난 다음에 이걸 어떻게 할 것인지 말해주지.”
“좋다! 기다려라!”
데보타의 말에 천휘가 득의양양한 미소를 띠며 펜던트를 바라봤다.
‘태양의 진실. 태양신 라의 기운을 품은 신물.’
태양신 라멘의 입상 아래쪽에 고이 보관되어 있던 신물, 태양의 진실.
신전 자체가 이 태양의 진실을 수호하기 위해 세워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중요하고도 신성한 펜던트였다. 태양신 라멘의 삼신기 중 하나인 이것은 대대로 하이 엘프들이 수호해오던 신물로, 하이 엘프 퀸인 데보타에게는 목숨보다 소중한 물건이었다.
[태양의 진실]
아르니안 대륙의 주신이자, 태양신인 라의 기운이 담긴 신의 펜던트.
태양신 라멘의 삼신기 중 하나로 알려져 있으며, 지니고 있는 것만으로도 신의 힘을 퍼트릴 수 있다.
등급:신 내구력:無
분류:액세서리
제한:지혜 1,000 이상
옵션:공격속도 100% 상승(인듀어런스 오라)
옵션:이동속도 100% 상승(윈드워크 오라)
옵션:생명력 회복속도 100% 상승(언홀리 오라)
옵션:마나 회복속도 100% 상승(브릴리언스 오라)
옵션:물리 방어력 20% 상승(디보션 오라)
옵션:물리 공격력 20% 상승(커맨드 오라)
별다른 능력치의 상승은 없지만, 착용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주변의 아군을 강화시키는 태양의 진실은 장차 엄청난 숫자의 강시들을 이끌 천휘에게 있어 반드시 필요한 아이템이었다.
‘놓칠 수 없어!’
절대 놓칠 수도, 놓쳐서도 안 되는 아이템.
그것을 얻기 위해 천휘는 데보타를 어떻게든 뿌리쳐야 했다.
- 3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