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8장 몰려드는 파리 떼들 (19/82)

제8장 몰려드는 파리 떼들

“이야, 이거 오늘도 제대로 한 건 했는데요? ‘엔트의 지팡이’라니. 이거 못해도 20만 골드짜리 레어 지팡이잖아요.”

“엔트 현자를 잡았으니 그 정도는 나와줘야지. 그래도 명색이 녀석이 A급 보스 몬스터인데 말이야. 안 그래?”

“그럼요! 역시나 길마는 대단하십니다!”

“험험, 너무 띄워주지 마라.”

제법 휘황찬란한 아이템으로 전신을 도배한 무리들이 수도 그런트의 서쪽 성문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들은 바렌트 왕국에서도 최고의 유명세를 자랑하는, 아르니안 10대 길드 중 하나인 드림 길드의 수뇌부들이었다.

길드마스터인 도리아는 베놈 헌터(Venom Hunter)라는 히든 클래스의 소유자로, 이름처럼 독을 자유자재로 부릴 수 있는 유저였다. 천 제국으로 따지자면 사천당가의 독공을 익혔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독에 관한 한 아르니안 대륙 최고를 다투는 유명인이었다.

“응? 저 아이는 뭐지?”

“길드 건물 입구에 웬 거지람! 제가 가서 내쫓을까요?”

“…….”

기분 좋게 엔트의 현자를 사냥하고 돌아오는 길에, 거지로 보이는 소년이 길드 건물 앞에서 처량하게 쪼그리고 앉아 있는 모습을 확인한 도리아는 동료의 물음에도 천천히 그에게로 다가갔다.

‘냄새가 난다.’

도리아는 직감적으로 소년이 모종의 퀘스트를 부여하는 NPC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가 히든 클래스를 찾아낸 것도 다 이처럼 비밀 퀘스트를 찾아내는 능력이 탁월한 덕이었다.

“흑흑.”

“이름이 뭐지?”

도리아의 물음에 소년이 꾀죄죄한 몰골로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봤다.

‘몰골은 거지임에 분명하지만 얼굴에서는 귀티가 흐른다. 이런 경우는 십중팔구 몰락한 귀족의 자식이거나, 그에 준하는 중요 NPC지. 간만에 한 건 했구나, 도리아! 에구, 기특한 것.’

“흑흑, 아저씨는 누구세요?”

“아- 아저씨!”

“헉! 길마가 제일 싫어하는 말을!”

사실 도리아의 나이는 올해 겨우 스물셋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그는 남들은 절대 가지지 못하는 탁월한 노안을 지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를 보면 형이나 오빠라고 불렀다.

그 때문인지 그는 ‘아저씨’라는 말을 광적으로 싫어하게 됐고, 언제부터인가 그 말은 드림 길드 사이에서 금기어가 되고 말았다.

“아저씨는 도리아라는 착한 아저씨란다.”

“헉! 길마가 스스로 아저씨라고 했어!”

“이제야 정신이 좀 드는 건가? 솔직히 그동안 저 얼굴을 보며 말 놓기가 힘들었는데.”

도리아와 소년의 대화를 듣고 있던 드림 길드의 유저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내뱉으며 도리아의 신경을 살살 긁고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퀘스트를 부여해줄 소년 앞에서 본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기에 도리아는 꾹 참을 수밖에 없었다.

“전 로한이라고 해요.”

“오, 그래? 그런데 로한은 왜 여기에서 이러고 있어?”

“헉! 길마가 미쳤다! 저렇게 느끼한 말투라니!”

“나 길드 탈퇴할까 봐! 길마가 저렇게 버터 같은 줄 오늘 처음 알았어!”

도리아의 평소답지 않은 행동에 드림 길드의 유저들이 다시 수군거렸다. 어느새 길드 건물 내에 있던 유저들도 나와 도리아와 소년의 대화를 엿듣고 있었다.

‘내 저것들을 그냥! 휴, 참자! 참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전… 전……. 으아아앙! 아저씨, 저 좀 도와주세요!”

도리아의 물음에 갑자기 소년이 울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어찌나 구슬프게 우는지 급기야 지나가는 행인들까지 관심을 가지고 모여들 정도였다.

“애- 애야, 왜 우는 거야. 울지 마.”

“세상에! 길마가 애까지 울렸다!”

“길마가 아동 학대의 취미가 있는 줄은 몰랐는데?”

“꺄악! 싫어! 아동 학대 길마라니! 당장 길드를 탈퇴할 거야!”

어린 소년이 울기 시작하자, 이번에도 어김없이 드림 길드 소속 유저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내뱉었다. 그 소리에 결국 화를 참지 못한 도리아가 고개를 홱 돌려 그들을 쏘아보며 소리쳤다.

“조용히 하지 못해!”

“으아아앙!”

그 한마디에 더욱 울음이 커져 버린 소년.

결국 도리아는 소년을 데리고 길드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이제 좀 괜찮니?”

“네……. 죄송해요, 아저씨.”

“그래그래, 이제 그만 울고 이 코코아 좀 먹으면서 이 아저씨에게 이야기해보렴. 대체 무슨 일이야?”

소년의 울음이 어느 정도 잦아들자, 도리아가 따뜻한 코코아를 가져와 건네면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우리 아버지가 잡혀갔어요.”

“너희 아버지가 누군데?”

“우리 아버지요? 우리 아버지는 볼렌이라는 사냥꾼이에요.”

소년의 말에 도리아는 살짝 실망한 모습이었지만, 그래도 개의치 않고 물었다.

“아버지가 누구에게 잡혀갔는데?”

“히드라요.”

“히드라?”

“네, 히드라요.”

히드라라는 말에 도리아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히드라라면 아직까지 그 진정한 모습도 제대로 모른다는 S급 보스 몬스터가 아닌가. 요새 한창 이슈가 되고 있는 철혈 기사단의 터틀 드래곤 레이드보다 히드라 레이드가 충분히 이슈가 될 만하다!’

소년의 말에 도리아는 순간적으로 머릿속 정리를 마쳤다. 그리고는 로한을 바라보며 최대한 따스한 목소리로 물었다.

“로한, 혹시 너희 아버지가 잡혀간 곳이 어딘 줄 아니?”

“네! 알아요! 히드라들은 엘레이든 마을 동북쪽의 테헤른산에 살고 있어요. 아버지도 아마 그곳으로 잡혀가셨을 거예요.”

“히드라들?”

도리아는 로한의 말에서 묘한 위화감을 느끼며 되물었다.

“네! 그곳에 히드라 세 마리가 서식하고 있어요. 아마도 드래곤 산맥에서 넘어온 녀석들인 것 같아요.”

“세 마리!”

벌떡!

히드라가 무려 3마리라는 말에 도리아는 말도 안 된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르니안 몬스터 도감에 의하면, 히드라는 S급 몬스터 중에서도 상위에 랭크된 몬스터다. 지상형 몬스터 중에서는 드레이크와 함께 최강이라는 설도 있을 정도지. 한마디로 한 마리도 잡기 힘들 만큼 대단한 녀석인데, 그런 녀석이 세 마리나 모여 있다? 흐음,’

히드라가 3마리나 모여 있다는 말에 도리아의 안색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한 마리만 있다면 어떻게든 길드원을 총동원해서라도 레이드를 감행하겠지만, 그 이상은 절대 무리다. 대충 가늠해 봐도 그것은 절대적으로 무리였다.

“히드라들이 모여 있는 이유는…….”

“응?”

그런 도리아의 반응을 눈치 챈 듯 로한이 빠르게 말을 이었다.

“그곳에 하이 엘프의 보물이 묻혀 있기 때문이에요. 아버지 말로는 적어도 태양의 신 라멘의 힘이 담긴 신물이래요. 히드라들은 그걸 지키고 있대요. 하지만 아버지 말로는 녀석들이 그 신물을 가지고 보름 내로 떠난다고 했어요. 그걸 막지 않으면 대륙에 큰 재앙이 도래한다고.”

“신급!”

레전드급의 물건이라는 말에 도리아는 잔뜩 흥분한 듯 얼굴이 빨개졌다. 부가적인 설명은 귀에 들리지도 않을 정도였다.

‘무조건 고다! 아직까지 단 한 차례도 나타나지 않은 신급 아이템이다! 그것만 손에 쥐면 우리 드림 길드는 명실상부한 『오벨리스크』 최강의 길드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도리아의 눈은 어느새 탐욕으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흡사 당장이라도 테헤른산으로 달려들 기세였다.

하지만 도리아는 탐욕에 눈이 멀어 로한의 눈빛을 보지 못했다. 어린 소년이라고는 도저히 믿기 힘들 만큼 비열하게 변한 그의 눈을.

더불어 도리아는 한 가지 놓친 것이 있었다.

분명히 이것은 퀘스트라고 불릴 만한 일이었음에도 퀘스트 알림음은 여전히 들려오지 않고 있다는 것을.

그 모든 것이 그의 두 눈이 탐욕으로 멀어버린 탓이었다.

다음 날, 『오벨리스크』는 발칵 뒤집혔다.

『오벨리스크』 팬 사이트인 오시리스에 익명으로 올라온 한 게시물 때문이었다.

[제목:신급 아이템이 나타났다!]

제목 그대로입니다.

드디어 아르니안 대륙에 레전드를 넘어선 신급의 아이템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동안 레전드 이상의 아이템은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말이 많았습니다만, 이번에는 확실합니다.

신급 아이템이 모습을 드러낸 곳은, 바렌트 왕국의 테헤른산! 하이 엘프의 마을로 유명한 엘레이든의 동북쪽에 위치한 테헤른산에 신급 아이템이 잠들어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신급 아이템을 지키고 있는 가디언은 다름 아닌 S급 보스 몬스터 히드라! 게다가 한 마리도 아닌 세 마리가 신급 아이템을 지키고 있다니, 과연 신급 아이템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입니다.

현재 바렌트 왕국의 크고 작은 길드들이 앞 다투어 엘레이든으로 향하고 있고, 더불어 필자 역시 정보를 접하고는 엘레이든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최초의 신급 아이템!

과연, 그 행방은 누구에게로 돌아갈까요?

게시물이 일으킨 반향은 엄청났다.

순식간에 조회 수가 50만이 넘어갔고 댓글 수도 무려 10만에 다다를 정도였다.

하지만 초기의 반응은 말도 안 된다는 것이 대다수였다.

게시물의 내용이 다 거짓말이라느니, 어디에서 허위 정보를 흘리고 있느냐는 댓글이 대다수였지만, 아르니안 10대 길드 중 하나인 드림 길드가 엘레이든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이 사실로 드러나면서 게시물의 내용이 사실이라는 쪽으로 굳어지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바렌트 왕국에서 활동하는 유저들은 물론이고, 인근의 테오른 왕국과 라그혼 왕국에서 활동하는 유저들까지 앞 다투어 엘레이든으로 향했다.

심지어는 리버훌 성국에서도 사제나 성기사를 직업으로 택한 유저들까지 바렌트 왕국으로 넘어올 정도였다.

아르니안 대륙에 때 아닌 대이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 * *

휘익.

타다다닥.

철컥.

바렌트 왕국 수도 그런트의 서쪽 빈민촌.

해가 저물면 고요한 정적으로 물드는 그곳에 정적을 깨는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산새처럼 하늘에서 떨어져 내려 곧바로 조심스럽게 허름한 집의 문을 열고 들어섰다.

“다들 모였네?”

남자의 정체는 다름 아닌 천휘였다. 그는 얼굴과 몸을 최대한 가리려는 듯 검은 로브로 전신을 은폐하고 있었다.

그리고 집 안에는 허름한 집만큼이나 낡고 해진 차림으로 앉아 있는 수십 명의 소년, 소녀가 앉아 있었다.

“좀 늦으셨네요?”

“미안해. 일이 좀 바빠서. 그나저나 내가 부탁한 일들은 제대로 수행했더군. 그것도 완벽하게.”

반가운 얼굴로 인사하던 천휘의 얼굴이 어느새 무표정하게 변했다. 하지만 그의 속내는 그리 나쁘지만은 않은지 목소리는 다소 들뜬 듯했다.

“당연하죠. 돈 되는 일이라면 목숨을 걸고서라도 하는 우리들인걸요.”

“그래. 그러니 너희들로 하여금 이번 일을 시킨 게 아니겠냐.”

놀랍게도 천휘 앞에서 똑 부러지게 말하는 소년은, 며칠 전 드림 길드 건물 앞에 나타나 처량하게 아버지를 찾던 바로 그 로한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로한은 이전처럼 아버지를 찾아 울고 불던 울보 로한이 아니었다. 그는 지금 아이들을 대표해 앞으로 나선 그들의 대장 로한일 뿐이었다.

“자, 받아라.”

“이건!”

“앞으로도 또 연락할 수도 있으니, 약속했던 것보다 조금 더 돈을 얹었다.”

“감사합니다.”

로한이 돈주머니를 받아들고 감사의 인사를 하자, 천휘는 몸을 돌려 문 쪽으로 다가가며 나지막하게 한마디 내뱉었다.

“오늘 밤, 이곳에서 날 봤다는 것을 모두 잊어라. 그렇지 않을 시엔… 모두 죽여 버리겠다.”

꿀꺽!

천휘의 엄포에 집 안에 모인 소년과 소녀들이 마른침을 삼키며 그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홀연히 빈민촌에 나타나 아이들에게 돈을 주며 모종의 임무를 수행하라고 한 검은 로브의 사내.

아이들은 심장이 막힐 것 같은 사내의 포스에 그저 묵묵히 그가 사라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됐냐?”

“당연히 성공이지!”

“하여간 네놈의 잔머리는 알아줘야 돼.”

천휘는 그대로 빈민촌을 빠져나가 경공을 전개해 그런트 서문 부근의 성벽을 넘어섰다. 그리고는 서문 근처의 초원 지대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로빈, 카멜과 조우했다.

“이제 어떻게 하면 되냐?”

“어떻게 하긴. 우리는 이제 차분히 엘레이든으로 돌아가 준비를 해야지. 히드라에게서 나온 아이템을 독식할 준비와 하이 엘프의 보물 창고를 깨끗이 털어낼 준비를 말이야. 으흐흐.”

“…저 자식 변태 아냐?”

“…상종하지 마. 그러다 너도 옮는다.”

천휘의 사악한 웃음에 로빈과 카멜이 한마디씩 내뱉었다. 그에 천휘가 발끈해 크게 소리쳤다.

“네놈들한테 그런 소리 듣기 싫거든! 잔소리 말고 파뱃의 등 위로 올라타기나 해!”

“…파뱃도 그래. 파뱃이 뭐냐, 파뱃이! 명색이 레드 와이번한테.”

“…쯧쯧, 너도 불쌍하다. 이런 개 같은 주인을 만나서. 고생이 많지?”

끼에… 짹짹.

“봐봐, 이 울음소리가 와이번 울음소리냐? 참새 울음소리지.”

“독한 놈.”

두 사람의 빈정거림에 천휘는 급기야 폭발하며 두 주먹에 악마의 숨결을 전개했다.

“내일 다시 보자, 친구들아. 오늘은 일단 집에서 푹 쉬고.”

“그게 무슨… 커헉!”

“끄아악!”

결국 참다못한 천휘의 주먹은, 그날 밤 두 사람을 편히 쉬게 만들어줬다.

* * *

“저리 비켜!”

“드림 길드는 전속력으로 움직이세요! 고지가 코앞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다른 사람들보다 엘레이든에 도착해야 해요!”

“우와아아!”

드림 길드의 길마이자, 베놈 헌터라 불리는 도리아는 드림 길드 소속의 유저 5백 명을 이끌고 빠르게 클리든 산맥을 질주했다.

그리고 그들의 후미에는 그들보다 몇 배는 많은 유저들이 그들을 따라붙고 있었다. 더불어 그들 모두의 목표는 단 한 가지였다.

태양신 라멘의 신물.

즉, 아르니안 대륙 최초의 신급 아이템.

레전드급 아이템을 가진 것만으로도 랭커에 드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심지어 대륙의 지존 12인, 모두가 레전드급 아이템을 최소한 하나 이상 보유하고 있을 정도였다.

그런 상황에서 그보다 몇 배, 심지어는 수십 배 뛰어난 신급 아이템의 등장이라니. 탐욕에 눈이 먼 유저들이 벌 떼처럼 몰려드는 것은 어쩌면 인지상정과도 같은 일이었다.

“이야, 이거 진짜 『오벨리스크』에 길이 남을 대사기극이 되겠는데?”

“그 사기극의 중심에 내가 있다!”

“…왜 그중심이 너인 건데. 당연히 나지.”

천휘와 로빈, 그리고 카멜 세 사람은 파뱃을 타고 클리든 산맥 하늘을 돌아다니면서 엘레이든으로 모여드는 유저들을 바라봤다.

수도 그런트에서 엘레이든으로 향하는 유저들은 물론이고, 언제 이곳까지 당도했는지 리버훌 성국에서 파견된 유저들도 산맥 반대편에서 빠르게 엘레이든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야, 그나저나 마탑에서는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대? 그들이 움직여 줘야 조금이라도 쉽게 히드라들을 잡을 수 있을 텐데 말이야.”

천휘의 물음에 로빈이 약간 실망스럽다는 얼굴로 대답했다.

“아무래도 마탑에서는 그리 신경을 쓰지 않는 모양이더라. 일단 히드라들이 6서클 이하의 마법은 모두 튕겨 내는 비늘을 지녔고 7서클 마법도 생각만큼 데미지를 줄 수 없으니, 그들로서는 아무래도 조금 부담이 되나 봐.”

“하긴. 8서클 대마도사인 하이 엘프 퀸조차도 어쩌지 못하는데, 그들이라고 별수 있겠어? 젠장! 이렇게 되면 오로지 유저들의 힘만을 믿어야 하는 건가?”

“걱정 마라. 매에는 장사 없다고 계속해서 두드리다 보면 언젠가 녀석들도 쓰러지게 마련이다. 개 떼 근성, 모르냐? 원래 레이드는 그렇게 하는 거야.”

“큭큭큭, 네 말이 맞다.”

카멜의 말에 천휘가 키득키득 웃으면서 아래를 내려다봤다.

‘이제 보름도 채 안 남았다. 난 할 만큼 했어. 남은 건 저들이 얼마만큼 제 몫을 해주느냐에 달렸다.’

판은 벌어졌다.

그 누구도 멈출 수 없는 거대한 판이…….

* * *

‘젠장! 누가 이렇게 소문을 퍼트린 거야!’

엘레이든에 도착한 드림 길드의 길마 도리아는, 엘레이든 근처에 집결한 엄청난 숫자의 유저들을 보고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본래 엘레이든은 관광 명소로 유명한 마을이기에 상주 유저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한마디로 지금 엘레이든 외곽에 모인 유저들은 하나같이 히드라들을 처치하고 태양신 라멘의 신물을 차지하려는 심산인 것이다.

‘다른 이들은 문제가 안 된다. 하지만 저 녀석들은!’

어차피 현재 엘레이든에 모인 유저들은 단독으로 움직이거나, 중소 길드에서 행여나 떨어질 콩고물을 노리고 온 이들뿐이었다. 한마디로 대륙 10대 길드 중 하나인 드림 길드를 저지할 만한 이들은 없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드림 길드가 엘레이든 외곽에서 히드라 레이드를 위해 정비를 하고 있는 사이에 나타난 일단의 무리 때문에 도리아는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천공의 날개.

그들은 리버훌 성국에서 활동하는 유일한 길드로서 드림 길드와 마찬가지로 대륙 10대 길드이며, 길드 소속 유저 모두가 성기사 또는 사제들이라 성기사 길드라는 별명으로도 불리고 있었다.

‘저 녀석까지 왔군!’

“주신 라멘의 이름으로……. 오랜만이다, 도리아.”

“확실히 오랜만이긴 하군. 썬나이트 레논.”

썬나이트(Sun Knight) 레논.

도리아와 같은 10대 길드의 수장이며, 더불어 대륙 지존 12인의 자리에 올라 있는 명실상부 아르니안 최강의 성기사였다. 그는 트리플마스터로서, 직업은 팔라딘의 상위 직업인 크루세이더(Crusader)였다.

바렌트 왕국에서 활동하는 도리아의 드림 길드와, 인접한 리버훌 왕국에서 활동하는 레논의 천공의 날개 길드는 이제까지 크고 작은 사건들에서 서로 충돌하며, 대륙에서도 가장 유명한 앙숙지간으로 거듭났다.

특히 두 길드의 마스터인 베놈 헌터 도리아와 썬나이트 레논은 이제까지 열 번의 대결에서 각기 5승 5패를 기록하며 최고의 라이벌로 각광받을 정도였다.

“네놈도 신급 아이템을 노리고 이곳을 찾은 것인가?”

“네놈처럼 한낱 내 욕심을 채우고자 이곳에 온 줄 아나? 난 성국의 계시를 받고 태양의 신 라멘의 신물을 회수하기 위해 이곳으로 온 것이다!”

“여전히 레논 네놈은 입만 번드르르한 녀석이군. 뭐, 상관없지. 각자의 방법으로 그 아이템을 노리면 되는 거니까. 그럼 이만.”

더 이상 레논과 말을 섞기 싫다는 듯 도리아가 몸을 돌려 드림 길드원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레논도 돌아서는 그에게 한마디 말을 건네고는 천공의 날개 길드원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향했다.

“아이템은 내 것이다. 누구에게도 주지 않아.”

그렇게 엘레이든에는 난데없이 폭풍이 일어나고 있었다.

* * *

“퀸! 큰일 났습니다!”

“흐응. 무슨 일이야, 로렌스.”

꿀맛 같은 낮잠을 즐기던 하이 엘프 퀸 데보타 엘 클라리넨은 자신의 단잠을 깨우는 집사 로렌스의 목소리에 침대에서 살며시 일어났다.

“큰일 났습니다, 퀸.”

“그러니까 무슨 일이냐고. 그렇게 큰일 났다고만 하면 내가 어떤 큰일이 일어났는지 어떻게 알아. 흥분하지 말고 천천히 이야기 해봐. 그리고… 만약 큰일이 아니라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감히 내 단잠을 깨운 벌을 받아야 한다는 거.”

꿀꺽!

데보타의 살기 어린 눈빛에 로렌스가 침을 한 번 삼키고는 말했다.

“갑자기 엘레이든에 수천 명에 달하는 이방인들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현재 그들의 의중을 알 수 없어 엘레이든의 입구를 봉쇄해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했지만, 저들의 거센 반발로 더 이상 버티기 힘든 지경입니다.”

“이방인? 그냥 여행객들 아냐? 고작 그런 일로 날 깨운 거야, 지금?”

계속되는 퀸 데보타의 엄포에 로렌스는 다급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그녀가 화를 내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잘 알고 있는 탓이었다.

“그- 그들은 절대 여행객이 아닙니다, 퀸.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아무래도 테헤른산을 찾아온 모양입니다.”

“테헤른산? 그곳엔 왜?”

그제야 좀 호기심이 동한 듯 데보타가 침대에서 일어나 의자에 앉으며 되물었다.

“그곳에 히드라들이 있질 않습니까. 이방인들은 본래 자신들이 죽더라도 어떻게든 거대 몬스터들을 잡으려 하는 족속들. 그들을 잡고자 나선 듯합니다.”

“뭐야, 그럼 잘됐잖아. 그 골칫덩이들을 드디어 청소할 수 있는 기회니까.”

데보타의 말에 로렌스가 답답한 듯 가슴을 두드리며 말했다.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문제? 무슨 문제?”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이방인들이 이미 알고 있습니다.”

“뭘 안다는 소리야? 빙빙 돌리지 말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죽고 싶어?”

“…….”

도저히 눈앞의 하이 엘프 여인이 우아하고 성스러운 하이 엘프 퀸이라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을 만큼 데보타는 터프하고 급한 성정을 지닌 듯했다. 집사 로렌스도 그걸 아는지 더 이상 말을 돌리지 않고 직접적으로 말했다.

“그들이 그곳에 주신의 신물이 묻혀 있다는 걸 눈치 챘습니다. 그 때문에 어제저녁부터 오늘 오후까지 수천 명이 엘레이든에 도착했고, 앞으로도 더욱 많은 숫자의 이방인들이 클리든 산맥을 넘어 우리 엘레이든으로 모일 듯합니다.”

“마- 말도 안 돼! 어떻게 그 비밀을! 리버훌에서도 모르는 기밀을 어떻게 이방인들이 알고 있느냐는 말이야!”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하지만 그것은 사실입니다. 이방인들 사이에서는 이미 우후죽순처럼 퍼져 있을 정도입니다.”

“…….”

집사 로렌스의 말에 데보타의 얼굴은 멍해졌다.

그렇게 거의 5분여를 멍한 채로 앉아 있던 데보타는 별안간 탁자를 손으로 내려치며 의자에서 일어섰다.

“그놈! 바로 그놈이다!”

“그놈이시라면… 어떤…….”

“저번에 내가 골탕 먹이려고 퀘스트를 내준 바로 그놈 말이야, 그놈!”

“저는 잘…….”

“빌어먹을! 그놈이야! 이런 일을 벌일 놈은 그놈밖에 없어! 이방인들은 히드라가 테헤른산에 있는지조차 몰랐었어. 그곳으로 향하는 길목에는 A급 몬스터인 타우렌들이 무리를 지어 서식하고 있으니까. 히드라가 그곳에 있다는 사실은 오로지 그놈만 알고 있어!”

데보타는 이번 일의 배후에 천휘가 있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별다른 힘도 없어 보이던 그가 이 정도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 의심이 가기도 했다. 데보타, 그녀가 보기에 천휘는 여자라면 사족을 못 쓰는 숙맥 같은 남자였다. 이런 일을 벌일 위인이 절대 아니었다.

“그자를 찾아야 돼! 아무튼 녀석이 열쇠를 쥐고 있어!”

“퀸! 퀸! 어디 가시는 겁니까, 퀸!”

하이 엘프의 퀸이자, 8서클 대마도사인 데보타 엘 클라리넨이 그렇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저 녀석들이 히드라야?”

“우와, 진짜 천하의 강시지존께서 지레 겁부터 집어먹게 생겼다. 진짜 포스가 장난이 아닌데?”

“카멜아, 자꾸 내 신경 긁어대면 여기서 확 밀어버린다.”

“…죄송합니다.”

천휘와 친구들은 파뱃을 타고 테헤른산 정상을 유유히 날고 있었다. 테헤른산은 클리든 산맥에서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한 탓에 유저들에게 그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하이 엘프들에게는 그들만의 성지 ‘태양의 진실’이 그곳에 있기에 매우 유명한 산이었다.

그곳의 정상에 있는 거대한 분화구.

그 분화구에는 작은 호수와 거대한 신전이 하나 자리하고 있었고, 그 옆에 마치 제집 안방처럼 널브러져 있는 거대한 크기의 히드라 3마리가 있었다.

“저 녀석들을 과연 유저들이 잡을 수 있을까? 세 마리라고는 하지만 각기 세 개씩의 머리를 가지고 있으니까 한 번에 아홉 마리를 상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잖아.”

“유저들의 개 떼 정신을 믿어봐야지. 그들이 해낼 수 없다면 나도 별수 있냐. 그냥 퀘스트 포기해야지.”

천휘의 자신 없는 말에 카멜이 물끄러미 쳐다보다 그의 등을 세게 후려쳤다. 그러자 로빈도 갑자기 주먹을 복부에 꽂았다.

퍼억! 퍼억!

“크윽, 뭐야, 너희들!”

“야, 천하의 강시지존께서 그렇게 힘없는 소리 할 거냐? 안 되면 되게 하라! 몰라?”

“그래! 카멜 말이 맞다! 무조건 되게 해야지, 안 되는 게 어디 있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네가 원하는 걸 얻어야지! 이렇게 판을 크게 벌여놓고 그게 가당키나 한 소리냐!”

“…너희들.”

친구들의 격려 어린 말에 천휘는 힘을 얻은 듯 두 사람을 지그시 쳐다봤다.

퍼억!

퍼억!

“크허억!”

“끄아악!”

“그딴 소리가 나한테 먹힐 거 같아? 감히 이 고귀하신 몸을 때렸다 이거지? 어디 한번 죽어봐라!”

퍼버버벅!

“끄악! 살려 줘!”

“이러다 우리 또 죽는다고!”

“죽어! 그냥 죽어!”

* * *

이틀 후, 엘레이든에 모인 유저들이 드디어 테헤른산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들 대부분이 레벨 200 이상의 고렙들로서, 그러한 유저들을 이끄는 중심에는 드림 길드의 마스터 도리아와 천공의 날개 길드의 마스터 레논이 있었다.

그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테헤른산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들은 엘레이든을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첫 번째 난관에 부딪혀야 했다.

“전사들은 앞으로 나서서 녀석들을 저지하고, 궁수들과 마법사들은 녀석을 공격해!”

유저들의 앞을 가로막은 것은, 클리든 산맥 동북부에 살고 있는 타우렌들이었다. 나름대로의 원시적 문화를 가지고 살아가는 그들은 인간을 증오하며, 자신들의 영역을 침범한 인간들을 작정하고 죽이고자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 자리에 모인 이들은 하나같이 제몫을 톡톡히 해낼 수 있는 고렙 유저들.

생명력이 많은 전사 유저들과 기사 유저들이 앞에서 몸빵을 해주고 데미지가 좋은 궁수들과 마법사들이 타우렌들의 생명력을 깎으며 조금씩 전진하고 있었다.

“후우, 벌써 이틀째네.”

“역시 마스터 말대로 공복을 채워줄 식량을 확보하길 잘한 것 같습니다.”

“당연하지. 일단 길드원들에게 식량을 최대한 아끼라고 전해. 특히, 전사들! 자식들 틈만 나면 식량을 호시탐탐 노리는데 절대 넘겨주지 마! 돈 줘도 마찬가지야. 레이드에서 제일 중요한 건 마지막에 얼마나 힘을 비축하느냐 하는 걸 잊지 말라고 전해!”

“알겠습니다, 마스터. 그나저나 천공의 날개 녀석들,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드림 길드의 부길마 웨폰 브레이커 마곤의 말에 도리아가 의아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무슨 말이지?”

“아무래도 이곳에서 세력을 구축하려는 심산 같습니다. 녀석들이 우리보다 숫자가 좀 더 적으니, 어떤 길드에도 들지 않는 독불장군 유저들을 하나 둘 포섭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뭐야? 그게 정말이냐?”

“네! 이미 길드원들 사이에서는 이런저런 말이 많습니다. 대부분의 길드원들이 우리도 시급히 유저들을 끌어 모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흐음,”

부길마 마곤의 말에 도리아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신급 아이템을 차지하려면 마지막에 가서 얼마나 세력을 유지하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 만약 저들이 자신들보다 월등히 많은 숫자로 밀어붙인다면, 실력이 비등한 드림 길드로서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좋아! 우리도 당장 유저들을 포섭한다. 이쪽으로 오려는 유저들이 없으면 돈을 쥐어줘서라도 끌고 와!”

“하지만.”

“돈이 부족하면 길드 자금을 풀어서라도 끌어 모아! 어차피 신급 아이템 하나면 우리 길드는 향후 대륙에서 최고의 길드로 성세를 구가하게 될 테니까!”

“알겠습니다, 마스터!”

결국 넘어서는 안 되는 강을 넘고야 말았다.

이제는 녀석들보다 한발 앞서 신급 아이템을 손에 쥐는 일만 남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차지한다!’

두 세력은 서로를 견제하며 점차 테헤른산의 정상에 다가갔다. 처음 엘레이든에서 3천이 출발했던 것에 비하면 대략 절반 정도로 숫자가 줄었지만, 그것만으로도 히드라 3마리를 잡기에는 충분하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 누구도 히드라가 얼마나 강한지에 대해서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들의 목표는 오직 신급 아이템. 서로의 세력은 동지가 아니라 그저 적일 따름이었다.

“마곤, 도적이나 모험가 한 명을 보내 위쪽의 상황을 살피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마스터.”

도리아의 지시에 드림 길드 진영에서 발 빠른 도적 유저 한 명이 은신 스킬을 펼쳐 테헤른산의 정상으로 다가갔다. 천공의 날개 길드 진영에서도 마찬가지 생각인 듯 도적으로 보이는 여성 유저가 몸을 일으켜 산 정상으로 향했다.

그렇게 30분이 흘렀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왜 연락이 없어?”

“길드창을 보니 아직 죽은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무래도 최대한 많은 정보를 가져오고자 시간이 지연되는 모양…….”

“끄아아악!”

“꺄아아악!”

마곤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산 정상 부근에서 끔찍한 비명이 들려왔다. 남녀의 비명이 연달아 터져 나온 것으로 봐서, 드림 길드 진영과 천공의 날개 길드 진영에서 파견된 두 유저가 동시에 목숨을 잃은 모양이었다.

“어떻게 할까요, 마스터.”

“흐음, 일단 녀석들이 먼저 움직일 때까지 기다린다. 괜히 먼저 나섰다가 개죽음당할 필요는 없겠지.”

“현명하신 생각이십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났다.

대낮이었던 시간은 흐르고 흘러 자정에 이르렀다. 그때까지 양 진영의 유저들은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야 했다. 결국 도리아와 레논은 서로 연락을 취해 중간에서 회동을 가졌다.

“먼저 나서라!”

“약 먹었냐? 그쪽이 먼저 나서! 우리가 뒤를 받쳐 줄 테니! 그쪽은 어차피 성기사와 사제들뿐이잖아! 우리 마법사들과 궁수들이 보조해줄 테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 우리 측에도 대거 마법사들과 궁수들을 영입했다! 그딴 소리는 통하지 않아!”

“그딴 소리? 이런 빌어먹을! 너희들 마음대로 해! 협상은 결렬이다! 어디 너희들끼리 잘해보라고! 우리는 우리끼리 움직일 테니!”

더 이상 화를 참지 못하고 도리아가 자리를 박차고 자신의 진영으로 돌아갔다. 그 모습에 레논도 격분을 토해내며 자신의 진영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다시 하루가 흘렀다.

“이제 남은 시일은 고작해야 사흘입니다. 그 안에 히드라들을 잡아야 합니다!”

“흐음,”

부길마 마곤의 말에 도리아가 침중한 신음을 흘렸다. 그 역시 알고 있었다.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한다면 신급 아이템은커녕, 히드라 레이드도 물 건너가고 만다.

게다가 지금 드림 길드를 압박하고 있는 것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시간은 둘째 치고 식량도 바닥나기 시작했다. 게다가 이곳에서 유저들이 하염없이 시간을 지체할 수도 없는 노릇. 이제 내일이 지나면 현실에서의 일요일이 지나가고 유저들이 잠자는 시각이 되고 만다. 그렇게 되면 레이드는 실패다! 레논 녀석도 그것을 알고 있을 터! 녀석도 나와 생각이 같다면 내일 새벽을 기점으로 움직일 것이다. 그때를 노린다.’

“마곤.”

“말씀하십시오, 마스터.”

도리아의 진중한 어조에 그가 어떤 결심을 내렸다는 것을 안 마곤이 허리를 숙이며 대답했다.

“길드원들과 나머지 유저들에게 전해라. 내일 새벽, 이곳 시간으로 정확히 새벽 6시가 되면 레이드를 시작하겠다고.”

“알겠습니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남은 건 패가 얼마만큼 생각처럼 나와 주느냐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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