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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장 마지막 황제 슈트라카이젠 (11/82)

제10장 마지막 황제 슈트라카이젠

진짜 마지막 황제의 무덤으로 향하는 통로 가득히 사이한 기운이 넘실대고 있었다. 이번에야말로 진실로 시체에 다가가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넌 이런 느낌을 매번 경험했다는 거냐?”

로빈이 슬쩍 뒤로 물러나 천휘에게 물었다. 아무래도 도굴을 여러 번 했다는 것에 대한 물음인 듯했다.

“이보다 더한 곳도 훨씬 많다. 내가 도굴한 무덤 중에는 수천 명의 시체가 한꺼번에 묻힌 곳도 있었으니.”

“히익, 느낌이 어땠는데?”

천휘의 말에 로빈이 기겁하며 물었다.

“그곳은 무덤이 아니라 무림 세력 간의 다툼에서 목숨을 잃은 수천 명의 무사들이 묻힌 일종의 공동 매장지였지. 난 그곳에서 유능한 무사들의 시체들을 강시로 만들고자 찾아갔었고.”

“꿀꺽, 그래서?”

“작은 연못을 연상시킬 정도로 넘실대는 무사들의 핏물, 거기에 무사들의 죽기 직전 간직하고 있던 살기와 투기가 어우러져 몸을 가누기조차 힘들었지. 시체를 다루는 나로서도 버티기 힘들 만큼. 게다가 피비린내와 시체 썩는 냄새가 뒤섞여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만큼 지독했지.”

“으윽.”

“더 해줄까?”

“됐어, 인마! 으윽, 생각만 해도 구역질이 나네. 우웩!”

“큭큭.”

듀라한들이 나타났던 예의 그 홀에서 벌써 30분을 걸었다.

하지만 그들을 반기는 건 통로를 희미하게 밝히는 이끼들이 발산하는 빛과 천장에서 한 방울씩 떨어지는 물방울이 전부였다. 그 외에는 30분 동안 아무것도 본 것이 없을 정도였다.

일행의 긴장감은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고, 급기야 지루해지기까지 했다.

“위험한데.”

“아~ 함. 왜?”

“느낌이 좋지 않아.”

“뜬금없이 뭔 소리야? 아무것도 안 나타나는데. 그나저나 이 통로의 끝이 있긴 한 거냐? 젠장! 이러다가 우리 여기서 갇혀 영영 못 나가는 거 아냐?”

천휘의 말에 카멜이 불만을 토로하고 있을 때, 갑자기 천휘의 머리카락이 하늘로 삐죽 솟아올랐다.

“위험해!”

“응?”

“꺄아악!”

콰아앙!

천휘가 위기를 감지하고 소리친 순간 일행의 선두에 있던 하린이 비명을 내질렀고, 그와 동시에 강렬한 폭발음이 통로를 뒤흔들었다.

“뭐-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제길! 가디언이다! 무덤을 지키는 가디언이 나타났어!”

“누님은? 하린 누님은?”

“…아무래도 죽은 것 같다.”

“이- 이럴 수가.”

“정신 차려! 이 가디언은 어둠에 몸을 숨길 줄 아는 녀석이란 말이다! 흡! 엎드려!”

부웅.

콰아앙!

카멜의 멱살을 잡고 흔들던 천휘가 등 뒤에서 느껴지는 서늘한 기운에 카멜을 붙잡고 아래로 몸을 수그렸다.

그러자 그 위로 정체불명의 무언가가 스쳐 지나갔고, 바로 옆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쿵!

“으윽!”

“괜찮냐?”

폭발로 인한 충격으로 천휘와 카멜은 벽에 거칠게 부딪쳤다. 카멜이 먼저 벽에 부딪치고 천휘가 그 위로 부딪쳐 그는 무사했지만, 카멜은 생명력이 거의 바닥을 치고 있었다.

“빌어먹을! 오베른, 뭐 하는 거냐!”

[주인이 앞을 지키라 하질 않았나. 앞에는 적이 없다.]

“이런 멍청한 자식! 주변에 적이 나타난 것도 모르는 거냐?”

[알고 있다. 하지만 내 뒤에서 나타났으니, 내가 신경 쓸 바는 아니다.]

아무래도 천마강시로 변한 탓에 능력은 기존에 비해 배 이상 강화됐지만, 머리는 현저하게 퇴화된 모양이다.

“빌어먹을! 당장 주변의 적을 처치해!”

[알았다, 주인.]

세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오베른의 눈에는 적의 위치가 보이는지 오베른은 거침없이 통로의 한쪽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는 통로의 벽을 향해 거대한 클레이모어를 힘껏 내리쳤다.

휘익!

“녀석이다!”

“저- 저건!”

“엘프?”

오베른의 공격을 피하며 일행은 적의 존재를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늘씬한 몸매, 조각 같은 얼굴, 게다가 움직이면서 휘날리는 긴 머리카락까지. 틀림없는 엘프였다.

오베른의 공격을 재빠른 움직임으로 피해낸 엘프는 곧장 로빈을 향해 가시가 돋친 채찍을 휘둘렀다.

까아앙!

하지만 엘프보다 한발 앞서 로빈의 앞을 가로막은 이가 있었으니, 다름 아닌 오베른이었다. 그토록 거대한 체구에서 어찌 저런 움직임이 나오는지 기이한 일이었지만, 그의 움직임은 엘프보다도 빨랐다.

[흐앗! 내려 베기!]

엘프의 채찍을 몸으로 막아낸 오베른은 곧바로 기합을 내지르며 클레이모어를 위에서 아래로 내리그었다.

휘익!

하지만 엘프 역시 만만치 않다는 것을 반증하듯 오베른의 공격을 피해내며, 채찍을 마치 창처럼 꼬아 그에게 찔러 넣었다.

까아앙!

그러나 금강불괴를 자랑하는 오베른의 몸은 너무도 단단했다. 엘프의 강력한 찌르기 공격을 역시나 몸으로 받아내고는 이번에는 놓치지 않겠다는 듯, 조금 전과는 차원이 다른 속도로 클레이모어를 수평으로 그었다.

콰아앙!

“잡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천휘는 오베른의 공격에 엘프가 당했다는 것을 확인하며 환호성을 질렀다. 하지만 둘의 공방을 눈으로 좇지 못했던 카멜과 로빈은 조금 뒤늦게 환호성을 내질렀다.

[주인! 가까이 오지 마라!]

별안간 오베른이 크게 소리쳤다. 그에 천휘는 또다시 머리카락이 하늘 위로 삐죽 솟아오르며 본능적으로 옆으로 몸을 틀었다.

스차앗!

“크윽!”

정체를 알 수 없는 날카로운 물건이 천휘의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에 마치 불에 덴 것처럼 쓰린 어깨를 손으로 감싸며 그는 주변을 살폈다.

“젠장! 또 있는 거야?”

“크윽. 아무래도 그런 모양이다. 카멜! 당장 로빈을 지켜!”

“알았다!”

가까스로 피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이 주변에는 조금 전의 엘프와 같은 부류의 가디언들이 더 있는 모양이었다. 오베른은 녀석들의 존재를 한눈에 알아챘지만, 아직 실력이 미천한 천휘로서는 그들의 존재를 파악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따랐다.

‘녀석들은 어둠을 이용할 줄 안다. 아마도 다크 엘프라는 족속들이겠지. 하지만 나는 천 제국에서 최고의 살수 집단인 살막의 포위망에서도 벗어나본 몸. 이대로 포기할 수야 없지!’

천휘는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해 고루마공을 끌어올렸다. 평소에도 충분히 몸을 단단하게 만들어주지만, 실제로 작정하고 고루마공을 운용하면 웬만한 타격에는 상처조차 입지 않는다.

‘다음은 디텍트다!’

천휘는 슬그머니 무한의 행낭에서 장생본초집성을 꺼내들었다. 그리고는 곧바로 녀석들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디텍트를 시전했다.

“디텍트!”

파아앗!

장생본초집성에 내재된 디텍트 마법이 펼쳐지며 어둠에 잠들어 있던 다크 엘프들의 모습을 만천하에 공개했다. 그들의 주변에는 오베른이 상대하고 있는 한 명의 다크 엘프를 비롯해 3명의 다크 엘프가 몸을 감추고 있었다.

“네 녀석들의 위치만 알면 게임 끝이지! 하앗! 악마의 숨결! 연타!”

천휘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다크 엘프를 향해 빠르게 경공을 전개해 다가갔다. 그리고는 녀석이 도망칠 수 없도록 연타 공격을 퍼부었다.

카앙! 카앙!

하지만 다크 엘프는 단검 2자루와 빠른 움직임으로 천휘의 공격을 잘 막아냈다. 막기 버거운 공격은 지체 없이 빠른 몸놀림을 피해냈고, 힘이 덜 실린 공격은 단검을 쳐내며 그를 농락하고 있었다.

‘제길! 천 제국의 살수들만큼이나 빠른 움직임이구나.’

살수들이 어둠에 동화되기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기울였다면, 눈앞의 다크 엘프들은 본래 타고난 천부적인 능력으로 어둠에 동화할 수 있는 존재들이었다.

게다가 움직임은 또 어찌나 빠른지 천휘에게 천 제국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게 할 정도였다.

‘이럴 땐 방법이 있지.’

천 제국에서는 무림 공적으로 불릴 정도로 무수히 많은 적대 관계를 맺고 다녔던 천휘다. 그중에는 살수도 많았고 더불어 동영에서 넘어왔다는 인자들도 많았다.

하지만 그런 전문적인 살인기계들에게도 천휘는 한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적게 죽었다. 죽은 것 역시 그들에 대한 대처 방법을 잘 몰라서 초반에만 죽은 것이지, 대처 방법을 알고 나서는 거의 죽지 않았었다.

“하앗!”

천휘는 조금 전보다 훨씬 더 빠르고 간결하게 주먹을 내뻗었다. 더 이상 악마의 숨결도 운용하지 않았다. 그저 연타 스킬만 계속해서 전개하며 다크 엘프를 압박했다.

그러다 천휘는 은연중에 가슴 어림에 허점을 드러냈다. 마치 ‘나 잡아줍쇼’라고 할 정도의 눈에 훤히 들여다보이는 허점이었다.

다크 엘프 역시 그 허점이 눈에 들어왔는지 차츰차츰 가슴 어림으로 반격하기 시작했다.

천휘는 그 공격을 힘겹게 막아내는 듯 연기하며 다크 엘프가 미끼를 덥석 물기를 기다렸다.

쐐애액!

까앙!

“으윽, 어림없다! 하앗! 악마의 숨결!”

이윽고 다크 엘프가 오른손에 든 단검을 천휘의 가슴 어림으로 찔러 넣었다. 누가 봐도 심장이 꿰뚫려 즉사할 듯 보이는 빠르고 군더더기 없는 공격이었다.

하지만 천휘는 죽지 않았다. 그의 가슴에는 천 제국에서부터 가져온 내갑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교룡이라 불리는 마수의 가죽으로 만든 교룡갑이 그것이다.

죽지 않았다고는 해도 꽤나 큰 충격을 입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천휘는 그것을 노리고 허점을 드러낸 것이기 때문에, 고통스럽다고 해서 기다리고 있던 공격을 펼치지 못할 정도로 어수룩하지 않았다.

끼에에엑!

천휘의 주먹은 여지없이 다크 엘프의 관자놀이를 파고들었다.

고루마공으로 단단해진 주먹, 그리고 악마의 숨결이 만들어내는 엄청난 공격력에 다크 엘프는 단말마의 비명을 내지르며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띠링! 레벨이 올랐습니다.]

“휴우, 오베른 녀석은 다 처리했나?”

간신히 다크 엘프를 처치한 천휘는 오베른 쪽을 바라봤다. 녀석은 이미 두 다크 엘프 중 한 명을 처치하고 나머지 한 명을 상대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이윽고 오베른이 나머지 한 명의 다크 엘프를 처치하자, 그제야 더 이상 주변의 위기가 사라졌는지 천휘의 머리카락이 아래로 내려앉았다.

“너희 둘 다 괜찮냐?”

“우리가 뭐 한 게 있나. 너랑 오베른이 다 처치했는데. 아무튼 고생했다. 저런 괴물이 가디언이라니. 이번에야말로 진짜 마지막 황제가 묻힌 곳인가 보다.”

로빈의 말에 천휘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일어나. 드디어 클라이맥스다.”

“당연하지! 하지만 그 전에 아이템부터!”

“큭, 대단한 자식!”

“아껴야 잘산다는 말도 못 들어봤냐? 카멜, 어서 아이템 챙겨!”

“그러고 있다, 인마.”

그렇게 한바탕 소동이 끝나고 일행은 약 1분여를 더 걸어서야 이전의 관과 비교조차 할 수 없이 화려한 관이 중앙에 놓여져 있는 묘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멋진데?”

“그러게. 역시나 마지막 황제의 관이라서 그런지 분위기부터가 다르다야.”

묘실의 내벽에는 하르센 제국의 영광을 상징하는 푸른 사자의 조각이 멋들어지게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그 중앙에 하르센 제국의 마지막 황제 슈트라카이젠 폰 하르센의 관이 있었다.

“야, 근데 이게 전부냐? 왜 보물 같은 건 없는 거지?”

“젠장! 마지막 황제라 보물 같은 건 같이 묻지 않은 건가? 그럼 우리가 이제까지 노력한 게 모두 수포로 돌아가잖아.”

자신들이 생각했던 묘실과 많은 차이가 있자, 카멜과 로빈의 얼굴에는 짙은 실망감이 어렸다.

“바보들. 보물들을 눈에 띄게 놔두면 개나 소나 다 가져가지.”

“그럼 어딘가에 숨겨 놓는다는 거냐? 이 좁은 묘실에?”

“빙고! 일단 저 관을 옆으로 밀어봐.”

“알았다!”

천휘의 지시에 로빈과 카멜이 재빨리 관에 다가가 그것을 들어 옆으로 내려놓았다.

“오오!”

“역시!”

관을 받치고 있는 받침대 안에는 그야말로 눈이 휘둥그레지는 엄청난 보물들이 숨어 있었다. 조금 전 듀라한을 상대했던 홀에서의 보물을 참새에 비유한다면, 이곳의 보물들은 봉황에 비유될 정도였다.

“좋아! 그럼 다음은 저 석상!”

“저 석상?”

“보통 저런 석상의 안은 비어 있는 법이거든. 비켜 봐. 내가 주먹으로 부숴볼게.”

묘실의 한쪽을 지키던 사자 석상의 허리를 천휘가 주먹으로 내려쳤다.

쿵!

“이야! 정말이잖아!”

“역시 전직 도굴꾼다운데?”

“큭큭, 말을 가려서 해, 인마. 이래 봬도 현실에서는 교사야.”

“말세다, 말세. 선생이라는 놈이 도굴이나 하고 다니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려나.”

“잔소리 말고 보물이나 챙겨.”

“예예, 알아서 모시겠습니다요.”

카멜과 로빈이 그렇게 보물들을 챙기는 사이, 천휘의 시선은 마지막 황제의 시체가 눕혀 있을 관으로 향했다.

‘사상 최강의 군사력을 자랑했던 대제국의 황제다. 분명히 그 자신도 엄청난 무력을 자랑했을 터. 게다가 마법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였다는 그 시대라면 영구적으로 시체를 보존하는 마법을 개발했겠지?’

보물도 보물이지만, 천휘의 진짜 목적은 바로 이 관 안에 담긴 시체에 있었다. 이곳으로 오며 역사에 박식한 하린을 통해 그가 어떤 인물이었는지 대충 가늠할 수 있었고, 또한 어느 정도의 힘을 지녔는지도 알 수 있었다.

“역사상 최악의 폭군.”

민중의 쿠데타에 의해 멸망한 나라답게 하스렌 제국에 대한 사료는 현재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하지만 마지막 황제인 슈트라카이젠과 관련해서는 그를 묘사한 간략한 단어가 전한다.

‘악마’, ‘폭군’.

단 2개에 불과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슈트라카이젠의 성품을 여실히 알 수 있었다.

‘성격은 중요하지 않지. 강시에게 성격 따윈 필요 없으니까. 내가 필요한 것은 그의 무력!’

천휘는 조심스럽게 관의 뚜껑을 열었다. 관에는 역시나 푸른 사자 한 마리가 양각되어 있어 무척이나 고급스러워 보였다.

드르륵, 철컹.

1천 년 전의 관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관의 뚜껑은 부드럽게 열렸다. 게다가 분명히 석관이었음에도 뚜껑은 천휘 혼자 열 수 있을 정도로 가벼웠다.

화아앗!

“흐읍.”

관을 열자마자 뼈를 시리는 한기가 느껴졌다. 어찌나 차가운지 살짝 떨어져서 보물 줍기에 여념이 없던 두 사람까지도 한기를 대번에 느낄 정도였다.

“으, 추워.”

“그러게. 어라? 천휘가 관을 열었잖아?”

“시체는 봐서 뭐 하게?”

이내 카멜과 로빈이 천휘에게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천휘와 함께 관을 살펴보고는 화들짝 놀라 뒤로 넘어졌다.

“뭐- 뭐야!”

“시체가 웃고 있어!”

“…….”

관 안은 마치 냉동고처럼 얼음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게다가 1천 년 전의 인물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시체에는 생기마저 돌고 있었다.

더욱 가관인 것은 그의 얼굴이었다. 그는 확실히 웃고 있었다.

“확실히 죽은 건 맞는데, 도저히 죽었다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생기발랄한 모습인걸? 그리고 이렇게 잘생긴 꽃미남이 악랄한 폭군이었다니.”

“폭군? 이렇게 선하게 생긴 사람이? 말도 안 돼.”

로빈의 말처럼 마지막 황제 슈트라카이젠의 얼굴은 너무도 선한 인상이었다. 게다가 그가 품은 미소 또한 천사라고 불러도 될 만큼 선해 보였다.

“사람은 겉모습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되는 생물이니까. 이런 사람일수록 가슴에 독을 품고 살아갈 수도 있지.”

잠자코 있던 카멜이 나서서 한마디 하자, 두 친구가 그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지랄하네.”

“꼴값을 떠세요.”

카멜이 멋진 말을 하는 것이 못마땅한 듯 두 사람은 그에게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대단한 자로군.]

“응? 뭐라고 했어?”

묘실이 좁은 탓에 통로에서 대기하고 있던 오베른이 별안간 입을 열었다.

[그자, 나도 감당하기 힘들 만큼 엄청난 자다. 소드엠페러의 경지를 밟아본 자야.]

“소- 소드엠페러?”

“마- 말도 안 돼!”

“…너희들은 놀라면 말 더듬는 것밖에 할 줄 모르냐?”

“자식이 민망하게. 쩝.”

침착한 척했지만 천휘 역시 놀라기는 매한가지였다.

아르니안 대륙 역사상 소드엠페러의 경지를 밟았던 사람은 공식적으로 3명이다. 그 3명 모두 역사적으로 추앙받았던 인물들이었고, 현재까지도 회자되고 있을 정도로 소드엠페러는 엄청난 경지였다.

“확실한 거지?”

[믿기 싫으면 말든가.]

“또, 또! 주인한테 그따위로 말하지 말랬지!”

[그건 주인 사정이고. 아무튼 그자, 대단한 자임에는 틀림없다.]

“흐음, 그렇단 말이지.”

오베른의 눈썰미를 믿지 않을 리가 없다. 천휘 자신도 그에게서 느껴지는 마나의 기류가 심상치 않다고 여기던 찰나였으니,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야, 나 좀 도와줘. 이 관 좀 행낭 안에 넣자.”

“이게 거기 들어가냐?”

천휘의 말에 까칠한 표정으로 카멜이 반박했다.

“이래 봬도 유니크 아이템이다. 이 정도는 충분히 들어가니까 얼른 집어넣어 봐.”

“재수 없는 자식. 아주 온몸에 돈을 쳐 발랐네.”

“맞아. 흑흑. 우린 겨우 1골드에 목숨 거는데…….”

“이것만 옮기면 너희들에게 유니크 스킬 하나씩 쏜다.”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주인님!”

“시켜만 주세요, 주인님! 왈왈!”

슈트라카이젠의 관을 빙옥 안으로 집어넣은 일행은 나머지 보물을 마저 챙기고는 곧바로 무덤 밖으로 나왔다. ‘천공의 깃털’이라는 던전 탈출 아이템을 사용한 것이다.

“이제 어쩔래? 오늘은 그만 할까?”

“그럴까? 벌써 열 시다야. 내일 직장도 가야 되고 피곤하기도 하고.”

“너희들 먼저 로그아웃해라. 난 좀 더 하다가 잘게.”

천휘의 말에 두 친구는 약간 미안해하며 안전지대를 설정하고 먼저 로그아웃을 했다. 그러자 홀로 남은 천휘는 곧바로 냥이와 미친 소를 빙옥에서 꺼냈다.

캬오!

음메!

“자식들. 강시 주제에 꼭 심심했던 것처럼 엉겨 붙기는. 아무튼 참 신기하네. 정말 죽은 기사의 심장이 녀석들을 이렇게 만든 걸까? 흐음, 만약 그렇다면 하이 엘프의 눈물을 시약으로 사용하면 어떻게 될까?”

천휘는 한동안 『오벨리스크』 팬 사이트인 오시리스에서 불거졌던 하나의 아이템을 떠올렸다.

일명, 하이 엘프의 눈물이라 불리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한 유명한 유저 사냥꾼이 바렌트 왕국의 클리든 산맥에서 하이 엘프의 마을 엘레이든을 최초로 목격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하이 엘프들에게 퀘스트 아이템으로 받은 하이 엘프의 눈물이 『오벨리스크』 유저들에게 크게 염문을 뿌린 적이 있다.

하이 엘프의 슬픔이 고스란히 담긴 하이 엘프의 눈물.

그 슬픔이 어찌나 깊고 또 깊은지, 그것을 매개체로 흑마법사들이 키메라를 만들면 그 키메라는 언제나 실패작이 되었다.

하이 엘프의 슬픔 때문에 투지를 잃어버리는 키메라들.

그리고 그 슬픔 때문에 명령조차 듣지 않고 제멋대로 움직이는 키메라들.

한마디로 하이 엘프의 눈물은 그들의 감정이 담긴 시약이나 마찬가지였다.

“뭐, 아직 시중에 많이 풀리지 않아 구하기 어렵겠지만, 엘레이든 마을로 가면 구하기 쉽겠지. 저 계곡을 하루라도 빨리 해치우고 그쪽으로 넘어가야겠다.”

천휘는 냥이의 등에 업힌 채로 카이젠 산맥을 유유자적 내려가고 있었다. 근처에 자주 출몰하는 카이젠 사이클롭스는 미친 소와 오베른이 처리하니, 천휘에게는 카이젠 산맥의 풍경을 즐기면 되는 것이었다.

‘역시 가상현실은 대단해. 현실에서 느낄 수 없는 숲의 푸르름과 상쾌함을 동시에 안겨 주다니…….’

“후~ 아.”

천휘는 냥이의 등에 업힌 채로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내쉬었다.

『오벨리스크』는 시각이나 촉각 이외에도 미각이나 청각, 후각 등도 세밀하게 구축하고 있었기에, 천휘가 한가로움 속에서 느끼는 감정이란 실제로 산을 등산하고 난 뒤 내려오는 기분과 별반 다를 것이 없을 정도였다.

콰아앙!

“응?”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폭발음에 천휘는 냥이의 등에서 벌떡 일어섰다.

콰앙! 콰앙! 콰앙!

“마법… 인가? 모두 들어가!”

천휘는 연이어 들려오는 폭발음을 듣고는 그것이 마법으로 인한 폭발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호기심에 그곳으로 가볼 생각으로 세 강시들을 빙옥으로 들여보냈다.

“이곳에서 사냥할 정도면 중렙 이상은 되는 건가?”

카이젠 사이클롭스는 적어도 200렙 이상의 투마스터는 되어야 사냥이 가능한 몬스터였다. 하지만 그들이 집단생활을 하는 몬스터임을 감안한다면 최소한 250레벨 이상의 고렙 유저들이나 사냥이 가능했다.

콰앙!

쿠오오오!

“법사들은 계속해서 화염 마법 날려! 궁수들은 일점사로 녀석들의 미간을 노리고! 전사들 뭐 해! 전선이 무너지면 끝인 거 몰라? 정신 바짝 안 차려!”

천휘가 발을 옮길수록 폭발음이 선명하게 들려왔고, 카이젠 사이클롭스들의 울음소리가 천휘의 귓가를 자극했다.

“역시 꽤나 많은 유저들이 파티를 이뤄서 사냥 온 모양이네? 어디 실력 구경이나 좀 해볼까?”

아직 자신 외에 다른 파티가 사냥하는 모습을 본 경험이 없는 천휘는 고렙 유저들의 파티 사냥은 어떤 것인지 견식이라도 할 요량으로 주변에서 가장 우뚝 솟은 나무 위로 올라갔다.

“오오, 제법 집단 사냥을 많이 한 모양이네? 전사들은 방패를 들고 사이클롭스들의 접근을 막아내고, 궁수들과 마법사들이 데미지가 큰 공격을 퍼붓는다? 시간은 좀 걸리지만, 가장 확실한 사냥 방법이지. 사이클롭스 녀석들이 좀 많긴 하지만 저 정도면… 저- 저 녀석은!”

사냥의 전반적인 전술을 살피던 천휘는 파티의 최중심에서 유저들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한 남자를 발견했다.

그 남자는 척 보기에도 비싸 보이는 은색 풀 플레이트 갑옷을 멋지게 차려입은 채 감색 망토를 휘날리는 미남자. 게다가 그의 갑옷에 새겨진 붉은 거미의 문양이 더욱 그를 돋보이게 만들고 있었다.

“으드득, 시영! 아니, 그랜저!”

『오벨리스크』에서는 처음 만났지만, 게다가 그랜저는 자신의 얼굴을 더욱 부각시키기 위해 성형 마법이라도 받은 듯 현실과는 조금 괴리가 있는 모습이었지만, 천휘는 한눈에 그를 알아봤다.

어찌 몰라볼 수가 있겠는가.

그에 대한 원한으로 산을 쌓는다면 태산이라도 쌓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이거늘.

“저 녀석이 여긴 웬일이지? 녀석의 활동하는 주 무대는 펜하르트 왕국이 아니었나?”

펜하르트 왕국은 아르니안 대륙의 서남쪽에 위치한, 철저한 스파르타 정신으로 무장된 군사 국가였다.

그에 반해 테오른 왕국은 대륙 동남쪽에 위치해 있는 일종의 자유 국가였다. 국왕의 권력도 강하지 않은 데다, 국법도 그리 강하게 처벌하지 않는 곳이라 『오벨리스크』를 처음 접하는 유저들 대부분이 선택하는 곳이기도 했다.

두 왕국은 극과 극의 분위기 탓에 아르니안 대륙에서도 대립 구도를 형성하고 있었지만, 양 국가 사이에 라그혼이라는 아르니안 대륙 최강의 국가가 자리하고 있어 두 국가 간의 전쟁은 발발하지 않고 있었다.

“펜하르트 왕국 국민은 테오른 왕국으로 입국할 수 없을 텐데……. 그건 유저라고 해도 마찬가지. 나처럼 밀입국이라도 한 모양이군. 으드득.”

어떤 이유에서인지, 녀석은 국경을 넘어 수천 킬로미터를 이동해 이곳 카이젠 산맥에까지 이르렀다. 게다가 그와 함께하는 유저들도 하나같이 비범한 듯, 카이젠 사이클롭스를 상대로 단 한 명의 희생도 없이 잘 버텨 내고 있었다.

‘저 정도의 유저들이라니……. 내가 알기로 녀석은 길드를 형성하지 않고 독불장군을 즐긴다고 들었는데, 그게 아니었나? 그건 그렇고 녀석들은 여길 왜 온 거지? 서- 설마!’

천휘는 불현듯 머리를 스치는 불안한 기분에 유저들이 있는 곳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천 제국에서도 은신과 경공 하나만큼은 자신이 있었던 그이기에, 유저들의 이목을 속이고 불과 20미터 앞까지 다다를 수 있었다.

“정말 이번 일만 잘되면 우리한테 100만 골드씩 떨어지는 거지?”

“당연하지! 이번 임무가 뭔지 몰라? 고대 하스렌 제국의 황제들이 묻혀 있는 무덤들을 도굴하는 거라고! 못해도 수억 골드 상당의 보물들이 묻혀 있을 거란 이야기가 지배적이야. 그런데 우리한테 100만 골드가 문제겠어?”

“그렇겠지?”

‘역시!’

천휘의 생각이 맞았다.

녀석은 다른 루트로 제황의 계곡이 이곳에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자신을 따르는 유저들과 함께 제황의 계곡에 묻힌 보물들을 집어삼키기 위해 이곳을 찾은 것이다.

‘막아야 돼! 녀석이 더 이상 강해지면 녀석을 갱생시킬 수 있는 길은 더욱 멀어지게 돼!’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야 했다.

마지막 황제 슈트라카이젠의 무덤에서만 해도 그 정도의 보물이 나왔으니, 아마도 제황의 계곡 안쪽의 무덤에는 더욱 많은 보물들이 매장되어 있을 터였다.

만약 그 보물들이 모두 녀석의 수중으로 떨어지게 된다면…….

천휘의 머리는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너무도 급작스럽게 터진 일인지라, 천휘의 마음은 다급하기만 할 뿐 딱히 이렇다 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고 있었다.

- 2권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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