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9장 마지막 황제의 무덤 (10/82)

제9장 마지막 황제의 무덤

“누님, 여기 석판이 있는데요?”

“어머, 그래? 역시 카멜 동생은 눈썰미도 좋다니까. 어디 한번 봐볼까?”

“…….”

“…저거 계속 봐야 하냐?”

“…말 시키지 마라. 토 나오려는 거 간신히 참고 있으니.”

카멜과 하린의 저질 변태 사이코 행각은 계속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옆에 천휘와 로빈이 있건 말건 노골적인 농담과 농도 짙은 행동을 계속하고 있었고, 그로 인해 천휘와 로빈은 멀찍이 떨어져서 걷고 있을 정도였다.

“야, 이리 와봐. 입구 발견했다.”

“오냐.”

“저 자식 빨리 갱생시키든가 해야지. 이건 뭐.”

“아서라. 저 녀석 본성이 저런데. 아무튼 가보자.”

당연하다는 듯이 하린의 허리에 손을 두른 카멜을 보며 천휘와 로빈은 혀를 내두르며 다가갔다.

“왔어?”

“아, 네. 뭐 좀 발견하셨어요?”

“응. 사실 아까부터 입구를 찾았는데 없어서 곤혹스러웠는데 카멜 동생이 찾아낸 이 석판이 바로 열쇠였어.”

“뭐라고 적혀 있는 거죠?”

석판의 글귀는 천휘나 로빈은 읽을 수 없는 고대 문자로 적혀 있었다.

“‘마지막 황제 슈트라카이젠. 그가 영원의 잠에 빠지다’라고 적혀 있어.”

“마지막 황제?”

“슈트라카이젠?”

하린의 말에 천휘와 로빈은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하스렌 제국의 멸망과 함께한 비운의 황제 슈트라카이젠. 드래곤들의 사주를 받은 평민들의 쿠데타에 의해 나라가 멸망하는 그 순간까지 제국의 수도인 아슈리온의 황궁을 지켰다고 전해지지. 하지만 그의 무덤이 이런 곳에서 발견될 줄이야.”

“잘 알고 계시네요?”

“뛰어난 모험가라면 대륙의 역사에도 능통해야 하는 법이거든. 어쨌든 이 석판이 곧 입구야. 보통 하스렌 제국 시대의 무덤은 이 석판을 통해 입구를 막아뒀으니까. 이렇게!”

콰앙!

뿌지직!

“호오, 정말이네요.”

하린이 석판의 가장자리를 거칠게 내려치자, 석판이 정확하게 두 쪽으로 갈라졌고, 그 안으로 칠흑 같은 어둠의 입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부터는 저희가 앞장설게요. 연약한 누님을 가장 위험한 전면에 세울 수는 없으니까요.”

“호호, 그래줄래? 역시 카멜 동생은 뭘 좀 안다니까. 딱 봐도 난 연약한 여인이잖아.”

‘어딜 봐서.’

‘당신의 두툼한 배둘레햄은 어쩔 건데!’

두 사람의 저질 변태 행각에 결국 천휘와 로빈은 그 꼴을 보기 싫은지 서둘러 입구 안으로 들어섰다.

무덤의 입구는 계단으로 이어져 있어 한참을 내려가야 했는데, 기이하게도 마치 호리병 형태로 통로가 가면 갈수록 넓어지고 있었다.

[띠링! 미개척 던전 ‘마지막 황제의 무덤’을 발견하셨습니다.]

[띠링! 지금부터 경험치 150%, 아이템 획득률 150%로 상승하셨습니다.]

“빙고!”

“나이스!”

“왔구나!”

귓가에 들려오는 알림음에 세 사람은 즐거운 듯 비명을 내질렀다. 그 모습에 하린도 신이 났는지 즐거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카멜, 하린 누님과 로빈을 보호해라. 전방은 내가 책임질게.”

“오냐.”

“그리고 하린 누님은 탐색 스킬로 주변을 계속 경계해주세요.”

“그럴게, 천휘 동생.”

“그럼 갑니다. 나와라, 엄살쟁이!”

스파앗!

던전 탐험에 앞서 천휘는 이제는 천마강시로 변한 오베른을 불러냈다.

[으, 추워! 난 엄살쟁이가 아니다, 주인!]

“큭큭, 알았으니까 앞장서. 네가 그토록 원하던 강한 녀석들과 맞붙게 해줄게.”

[오오! 정말이냐, 주인! 당연히 내가 주인의 검이 되어야지. 이쪽으로 가면 되느냐?]

“…반대편이다.”

[으하하하!]

천휘의 말에 오베른은 다소 민망한지 어색해하면서도 호탕한 웃음을 흘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동생, 천휘 동생은 직업이 뭐야?”

처음 보는 소환수를 데리고 있는 천휘를 보며 하린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물었다.

“그냥 격투가예요.”

“에이, 그럼 저 기사는 뭐야? 내가 『오벨리스크』를 몇 년째 하고 있지만, 생명력을 지닌 언데드는 처음 본다고.”

역시 아르니안 10대 모험가 중 한 사람이라더니, 아줌마가 눈썰미가 대단했다. 겉으로 보기에 오베른은 그저 풀 플레이트 갑옷을 착용한 기사에 불과한데도 그의 정체를 어느 정도 꿰뚫어 보고 있었다.

“저 녀석의 비밀이에요. 알면 제아무리 누님이라 해도 다치실 걸요?”

“호호, 알았어. 더 이상 캐묻지 않을게. 이런 모험을 할 수 있게 해준 것만으로도 고마운걸. 앗! 거기 보우 트랩이!”

슈슈슉!

카가가강!

[좀 빨리 말하라.]

“아- 알았어요.”

“대- 대단한데?”

“그- 그러게.”

엄청난 양의 화살이 전면에서 날아들었지만, 오베른의 단단한 풀 플레이트 갑옷에 모두 튕겨져 나갔다. 그 놀라운 그 광경에 천휘를 제외한 나머지 일행은 모두 다소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뭐야, 안 갈 거야? 다들 놔두고 간다! 누님도 뭉그적거리시면 마찬가지에요.”

“알았어, 천휘 동생.”

“간다, 가!”

일행은 그렇게 칠흑 같은 어둠의 통로를 밝히며 조금씩 전진해갔다.

“듀라한이다!”

“세상에 자기 머리를 들고 다니는 시체라니. 끔찍한데?”

“잔소리 말고 몸빵이나 해, 인마.”

“쳇, 몸빵의 중요성을 모르는 허접들.”

“걱정 마, 카멜 동생. 난 언제나 카멜 동생 편이니까.”

“감사해요, 하린 누님.”

“…이런 상황에서까지 저러고 싶을까.”

듀라한은 레벨 A-등급의 몬스터다.

추정 레벨 280 이상.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 카이젠 산맥의 몬스터들은 다른 지역의 몬스터들보다 1.2배 정도 더 강한 탓이다.

그토록 강력한 듀라한이 무려 5마리나 나타났음에도 일행은 그리 두려워하는 얼굴이 아니었다.

“잡담 그만 하고 사냥 준비해. 하린 누님도 지원 사격 좀 부탁드려요.”

“그럴 필요 뭐 있어. 천휘 동생의 기사가 조금만 움직이면 다 해결되는걸.”

“그래도 혹시나 더 강한 몬스터들이 나타나기 전에 파티 플레이를 해봐야…….”

“걱정 마. 듀라한이 나타나는 던전 수십 군데를 다녀 본 나야. 내 장담컨대 이 던전에서 천휘 동생의 기사를 이길 몬스터는 없을 거야. 듀라한을 단번에 베어내는 검술이라니. 이제껏 수천 명의 검사들을 봐왔지만, 저 정도의 검술을 지닌 검사는 단연 처음이야.”

“…….”

하린의 칭찬에 천휘는 당연하다는 표정이었다.

‘일전에 만든 천마강시는 그저 평범한 농민으로 만들었음에도 절정 고수 서넛은 상대가 가능했어. 하물며 그랜드 소드마스터의 검술을 지닌 키메라로 만든 천마강시야. 드래곤까지는 무리더라도 아류라는 히드라 정도는 단독으로도 잡을 수는 있겠지. 하지만 그래서는 소용이 없어. 녀석에 대한 복수는 내 손으로 직접 할 테니!’

“누님의 말이 옳을 수도 있지만, 여하튼 오베른은 그저 우리를 방어해주기만 할 뿐 직접 전투에 나서지는 않을 거예요. 카멜, 나와 선두에 서자. 로빈, 너는 간간이 마법 날려 주고. 하린 누님은 돕기 싫으시면 주변 탐색이나 해주세요. 혹시나 또 다른 트랩이 주변에 있을 수도 있잖아요.”

“호호, 천휘 동생 은근 카리스마 있네? 알았어. 그렇게 할게.”

간단하게 지시를 내린 천휘는 카멜과 호흡을 맞추며 듀라한에게로 달려갔다. 무덤의 안쪽으로 향하면 향할수록 통로는 점점 넓어지고 있어 천휘와 카멜은 서로 거리를 넓히고 싸울 수 있었다.

“대지의 울음!”

콰앙!

“악마의 숨결! 연타!”

헤론 습지에서의 사냥으로 인해 천휘는 이제 완벽하게 자신의 공격 패턴을 이해하고 있었다.

대지의 울음으로 상대를 스턴 상태로 만들고, 뭉쳐 있는 적일 경우 악마의 숨결을 동반한 연타 공격으로 타격을 입히는 방법이 바로 그것이었다.

얼핏 보면 단순해 보이지만, 엄청난 마나를 소모하는 악마의 숨결이기에 아마 그런 식으로 스킬을 난무하는 유저는 천휘뿐일 터였다.

6서클 마법사이자 세이지인 로빈보다도 무려 2배나 많은 마나량과 마나 회복 속도.

오로지 그만이 악마의 숨결을 제대로 전개할 수 있다.

“뭐야, 뒤에서 보조해주라고 해놓고 너희 둘이서 다 해치우냐?”

“야! 나한테 그러지 말고 저 괴물 자식한테 투정해. 난 한 마리도 못 잡았다고! 저 자식이 다 잡았어!”

“누가 잡으면 어때! 어차피 경험치는 균등 배분인데.”

결국 천휘의 활약으로 듀라한은 이내 모두 쓰러졌고 할 일이 없어진 카멜과 로빈은 불만을 토로했다. 아마 그들도 자신들의 강해진 힘을 표출해보고 싶은 마음 때문일 터였다.

“그러지 말고 천휘 동생이 한발 물러나는 게 어때? 듀라한 세 마리 정도라면 카멜 동생과 로빈 동생이 해치울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만약 힘들 것 같으면 그때 천휘 동생이 나서주고. 그렇게 하면 되지?”

역시 나이는 괜히 먹는 것이 아닌 듯 하린이 나서서 세 사람을 중재했다. 그녀의 말에 세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좋아. 그럼 너희 둘이 한번 잡아봐. 여차하면 내가 나설 테니까.”

“좋았어! 보고 놀라지나 마라. 로빈, 준비됐지?”

“당연하지, 인마.”

천휘의 말에 두 사람은 고무된 듯 앞으로 나섰다.

그때 뒤에 있던 하린이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앗! 거기에 화염 트랩이…….”

화르륵!

“으악! 뜨거!”

“살려 줘! 으악!”

“…있었는데.”

결국 두 사람은 화염 트랩에 걸려 뒤로 물러나 냥이의 등에 업혀 가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젠장!”

“빌어먹을!”

“그러게 누가 천방지축으로 날뛰래?”

“넌 입 닥쳐!”

“꺼져, 이 쓰레기야!”

“…뭐야! 왜 나만 갖고 그래!”

천휘의 말 한마디에 냥이의 등에 업혀 있던 두 사람이 신경질적으로 대답했다.

그들의 모습에 하린이 웃으며 말했다.

“호호, 역시 젊음이 좋아. 별것도 아닌 일로 다투기도 하고. 내 나이쯤 되면 싸울 일도 거의 없어지는데 말이야.”

“…….”

“…….”

“…….”

“싸우지들 마. 싸워서 해결되는 일은 세상 그 어디에도 없어. 그리고 친한 사이일수록 그런 부분은 더욱 신경 써줘야 해. 너희들도 어린애들이 아니니까 알고 있겠지만 말이야.”

하린의 말은 어느 것 하나 틀린 부분이 없을 정도로 연륜이 묻어나오는 말이었다. 그에 세 사람은 서로 멀뚱히 쳐다보다가 이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우리가 지금 싸운 거냐?”

“큭큭, 모르겠는데?”

“입 닥치고 앞이나 잘 안내해. 형님들 피곤하시다. 누님이 화상약 발라주셨으니, 한 십 분 정도만 누워 있다가 일어나마.”

“마음대로 해, 이 멍청한 자식들아.”

“큭큭큭.”

“큭큭큭.”

세 사람의 우정은 10년, 훨씬 이전부터 이어져 오고 있었다. 힘들었던 고등학교 생활도 늘 함께했고, 대학도 비록 과는 달랐지만 같은 대학을 갔었다.

거기에 더해 군대도 동반 입대를 할 정도로 사이가 막역했다. 다행히 2070년부터 동반 입대의 제한이 3명으로 늘어난 덕이었다.

아무튼 하린이 걱정하는 것처럼 세 사람의 우정은 얕지 않았다. 오히려 늘 이렇게 말다툼을 하고 몸싸움도 하며 더욱 우정이 다져지는 사이였던 것이다.

“하린 누님, 이 앞으로 트랩이 많이 있나요?”

“흐음, 좀 그런 거 같네. 왜?”

“하나하나 제거하고 가기 귀찮으니까 그냥 다 박살내 버리려고요.”

“어떻게?”

“보고만 계세요. 오베른! 앞으로 쭉 달려 나가! 뭐가 날아오든, 무슨 일이 일어나든 상관하지 말고. 알았지?”

[그렇게 하지.]

천휘의 지시에 하린도 그제야 그가 어떻게 하려는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오베른이 거대한 체구에도 빠른 속도로 통로를 달려 나가자, 나머지 일행도 그 뒤를 따라 뛰기 시작했다.

카앙!

휘익!

콰앙!

오베른이 지날 때마다 그 자리에서 다양한 폭음이 들려왔다. 하지만 오베른과 멀찍이 떨어져서 뛰고 있는 일행에게는 그다지 여파가 없었기에 그들은 마음 편히 움직이고 있었다.

[주인.]

“응? 왜?”

[앞에 듀라한 녀석들이 있군. 베어버릴까?]

“몇 마리 정도 있는데?”

천휘는 대략 서너 마리가량이 있다고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뒤이어 들려오는 오베른의 대답에 그의 눈은 휘둥그렇게 변할 수밖에 없었다.

[대략 백 마리 정도.]

“헉! 뭐라고?”

오베른의 말에 천휘는 경공을 전개해 순식간에 오베른의 곁으로 다가가 전방의 상황을 바라봤다.

“제- 젠장! 이건 너무 많잖아!”

오베른의 말은 사실이었다.

갑자기 통로가 끝이 나고 거대한 홀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그 안에 1백에 가까운 듀라한들이 진을 형성하고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 더해 그들 중에는 듀라한 나이트들도 있어 힘든 전투가 될 듯했다.

“누님, 그곳에서 두 바보 자식을 보호해주세요. 여긴 어떻게든 저와 이 녀석이 막아볼게요!”

“알았어, 천휘 동생.”

일단 천휘는 오베른을 뒤로 물리고 최대한 좁은 곳으로 듀라한을 이끌었다. 괜히 홀 안으로 들어섰다간 듀라한 1백 마리에 둘러싸여 순식간에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탓이었다.

[쓸어버릴까?]

“에? 뭐라고?”

[왠지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녀석들을 쓸어버리는 것이.]

듀라한은 이제껏 상대해왔던 몬스터들과는 차원이 다른 몬스터다. 보스 몬스터인 헤론 리자드맨 킹보다는 약하지만 숫자가 많기에 위험도는 더욱 대단했다. 그런 듀라한을 혼자서 쓸어버릴 수 있을 거라니.

믿기 힘든 이야기였지만, 왠지 오베른이라면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좋아, 해봐. 나는 이곳을 지킬게. 행여나 녀석들이 이쪽으로 빠져나오면 큰일이잖아.”

[그런 일은 없을 거다.]

척.

저벅저벅.

오베른은 거대한 클레이모어를 양손에 들고 천천히 듀라한들을 향해 걸어갔다.

크그크그.

오베른이 엄청난 기세로 다가가자, 듀라한들이 쇠 긁는 소리를 내며 그를 에워싸기 시작했다. 본래 듀라한들도 뛰어난 전사의 시체에서 생성된 몬스터들. 투기만큼은 그 어떤 몬스터보다도 뛰어났다.

[크아아앙!]

“윽!”

“커헉!”

“흐윽.”

오베른의 입에서 흉포하기 짝이 없는 함성이 흘러나왔다. 그것은 흡사 맹수의 포효와도 같아 뒤쪽에 있던 일행들에게도 심대한 타격을 입힐 정도였다.

크그크그.

오베른의 흉성에 듀라한들이 살짝 겁을 먹은 듯 몸이 움츠려졌다.

그때, 오베른의 클레이모어가 움직였다.

[회오리 베기!]

오베른의 클레이모어가 소용돌이치며 주변을 휩쓸었다.

그러자 그 여파로 주변에 있던 듀라한 5마리의 허리가 매끈하게 베어졌다. 오우거의 피부와 맞먹는다는 듀라한의 단단한 피부가 일격에 베어진 것이다.

[십자 베기!]

뒤이어 오베른의 클레이모어가 상하좌우로 빠르게 베어졌다.

그러자 이번에는 전방에 있던 듀라한 서너 마리의 허리가 끊어졌고, 그 뒤에 있던 듀라한들은 충격파로 인해 끈 떨어진 연처럼 멀리 튕겨져 나갔다.

[일자 베기!]

그런 오베른을 막아서고자 뒤에서 일제히 듀라한들이 달려들었지만, 수평으로 베어지는 오베른의 클레이모어에 모조리 허리가 끊어지며 무너졌다.

“참으로 독특한 검술 스타일이야. 오로지 베기뿐이라니.”

“클레이모어가 베는 데 특화된 무기잖아요.”

어느새 천휘의 옆으로 다가온 하린이 오베른을 보며 신기한 듯 말했다.

“그렇긴 해도 오베른처럼 의외의 상황에서도 무조건 베기 공격만 고집하진 않을걸? 게다가 이상하게 단순해 보이는 기술만 펼치고 있어. 저 정도 실력의 검사라면 충분히 훨씬 고급스러운 검술을 쓸 수 있을 텐데 말이야.”

하린의 물음에 천휘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아, 그건 말이죠. 아마 전력을 다해서 기술을 전개했다간 이 무덤이 무너져 버릴까 염려되어서 그럴 거예요.”

“무덤이 무너져?”

“아마도요.”

“에이, 동생도 농담이 심하다. 이제껏 수많은 랭커들이랑 던전 사냥을 해봤지만, 던전이 무너진 경우는 없었어. 보스 몬스터들의 엄청난 스킬에도 던전이 무너지진 않았다고. 말이 된다고 생각해?”

하린의 말에 기분이 상한 천휘는 약간 퉁명스러운 어투로 대답했다.

“못 믿으시는 거예요?”

“못 믿는 게 아니라 불가능하다니까.”

“흐음, 그렇다면 보여 드리죠, 오베른의 힘을.”

하린의 의심을 풀기 위해서 나서는 것이 아니다. 천휘 그 자신도 가늠하기 힘든 오베른의 힘을 어느 정도 미리 알아두기 위함이었다.

“오베른!”

[왜 그러지, 주인?]

“시간 없다. 한 방에 다 죽여 버려, 네 최강의 스킬로.”

[내 최강의 스킬? 하지만 그랬다간 이 던전이 무너질지도 모른다. 그래도 괜찮겠나?]

역시 오베른도 자신이 지닌 힘이 어느 정도인지 조금씩 깨닫고 있는 듯했다. 그의 말에 천휘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러니까 최대한 힘을 줄여서 스킬을 펼치란 말이야. 이 던전 무너지면 나도 죽는 거 몰라?”

[흐음, 아직 힘 조절이 익숙하지 않는데. 알았다, 한번 해보지. 대략 10퍼센트 정도의 힘만 쓰겠다.]

천휘의 말에 오베른은 잠시 고심하는가 싶더니, 곧바로 회오리 베기로 듀라한들을 떨쳐 내기 시작했다.

“정말 하는 거야?”

“기다려 보세요, 누님. 멋진 광경을 보게 되실 거예요.”

“야, 뭘 하는 건데?”

“잠자코 보고나 있어.”

하린은 물론이고 카멜과 로빈도 온몸에 화상약을 잔뜩 바른 채, 오베른을 기대 어린 눈초리로 바라봤다.

[흐아앗!]

오베른이 드디어 마나를 끌어 모으는지 그의 주변으로 검붉은 마나의 소용돌이가 몰아치기 시작했다.

크그크그.

듀라한들도 직감적으로 오베른이 큰일을 벌이려는 것을 아는 것인지 일제히 그를 향해 라지액스를 내리쳤다.

카가가강!

하지만 그 정도의 공격으로는 천마강시가 되어 금강불괴가 된 오베른의 피부에 생채기 하나 낼 수 없었다.

“이 정도가 10퍼센트라니! 말도 안 돼!”

“후훗.”

하린의 놀란 얼굴을 바라보고 있자니, 괜히 자신이 뿌듯해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내심 천휘로서도 오베른의 힘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엄청나다는 걸 느끼고 행여나 던전이 파괴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들기 시작했다.

[드래곤 스크류!]

“헉! 드래곤의 형상이!”

“하늘로 솟구친다!”

크그그그.

기어코 오베른의 클레이모어에서 검붉은 드래곤이 뿜어져 나왔다. 드래곤은 주변의 듀라한들을 완벽하게 집어삼키더니, 이윽고 승천하려는 듯 하늘로 솟아올랐다.

“모두 엎드려!”

콰아앙!

마치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 같은 떨림이 일행을 덮쳤다. 그와 동시에 천장에서 돌 부스러기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로빈! 마법!”

“알았어! 레인보우 실드!”

다행히 어느 정도 상처를 회복하고 마나를 운용할 수 있게 된 로빈이 일행과 냥이를 감싸며 방어 마법을 펼쳤다.

투두둑.

“으윽, 젠장! 버티기 힘들어! 떨어지는 돌조각이 너무 많아!”

“좀만 더 버텨! 떨림이 멎어간다!”

다행히 1분 정도가 지나자, 떨리는 것이 어느 정도 가라앉았다. 하지만 로빈은 사력을 다해 레인보우 실드를 유지시켰고, 그 결과 다시 몸져눕는 신세가 되어야 했다.

“이제 좀 믿으시겠어요?”

“그- 그래. 하지만 저 정도로 엄청난 소환수라니. 난 들어본 적도 없어. 현재 아르니안 대륙 소환사 중 최고수인 뫼신사냥꾼도 고작해야 카이젠 오우거 정도를 소환할 수 있는 정도인데……. 이거 아무래도 대륙의 판도가 바뀌겠는데? 천휘 동생 때문에.”

“하하하, 뭘요. 전 그저 평범하게 살아가고 싶은 건실 청년입니다. 대륙의 정세나 판도 따위에는 전혀 개의치 않아요. 그저 제 자신이 즐길 수 있으면 된 겁니다. 일단 홀로 가실까요?”

“호호호,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아무튼 가보자고.”

천휘의 말에 하린은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고는 오베른이 정리한 홀로 걸어갔다.

‘무슨 일이 있건 나는 마이 웨이를 걸을 겁니다. 반드시!’

“흐음, 이상하네.”

“뭐가?”

“또 다른 출구가 있을 줄 알았는데 출구가 없어.”

“여기가 무덤의 끝인가 보지. 저기 봐. 휘황찬란한 금관도 있잖아. 저 금관에 마지막 황제라는 사람이 묻혀 있을 거라고.”

천휘의 말에 카멜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며 듀라한들이 떨어트린 아이템을 줍는 데 집중했다.

“바보냐. 딱 봐도 저건 가짜야. 명색이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제국의 마지막 황제가 묻힌 무덤인데 이렇게 쉬울 리가 없잖아. 더욱이 마지막 황제의 무덤치고 이렇게 규모가 작다는 것도 이상해. 안 그래요, 누님?”

어느새 천휘는 하린과 일정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무래도 단순한 카멜이나 이쪽 방면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로빈보다는 경험이 풍부한 하린이 더 믿음직스러웠기 때문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천휘 동생. 이곳은 진짜 관을 숨기기 위한 위장에 불과해. 아마 이 홀에 진짜 무덤으로 가는 출구가 있을 거야. 기다려 봐. 내가 한번 찾아볼게.”

“부탁드려요, 누님.”

그렇게 하린이 홀 곳곳을 누비며 출구를 찾는 동안 카멜과 로빈은 홀에 널브러진 아이템을 찾아 줍기에 바빴다.

“괜찮아?”

[흠, 역시나 아직 힘 조절이 잘 안 된다. 조금 전만 해도 10퍼센트의 힘만 쓰려 했는데 결국 30퍼센트가량의 힘을 쓰고야 말았어.]

“차차 적응될 거다. 아직 네 몸은 완벽한 게 아냐. 시약들이 피부 조직, 뼈 조직 요소요소에 모두 완벽하게 깃들게 되면 그때부터는 자연스럽게 힘을 제어할 수 있을 거다.”

오베른과 꽤나 오래 이야기를 나눴음에도 아직 하린은 또 다른 출구에 대한 이렇다 할 단서조차 찾아내지 못했다. 홀이 워낙 거대한 탓이었다.

“저희가 도와드릴까요, 누님?”

“아니, 괜찮아. 어차피 내가 해야 할 일인걸. 그보다 저 금관이나 확인해봐. 아마 못해도 꽤나 값나가는 보석들과 금화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을걸?”

“그래요? 야, 로빈! 어서 가보자!”

하린의 말에 카멜과 로빈이 부리나케 금관 쪽으로 달려갔다. 다행히 금관에는 아무런 트랩도 설치되어 있지 않았는지 두 사람은 무사히 금관의 뚜껑을 열어젖힐 수가 있었다.

“와우! 대단한데?”

“천휘야! 이리 와봐! 누님 말대로 보석과 금화가 엄청 쌓여 있어!”

“무한의 행낭에 모두 집어넣어. 분배는 나중에 수도로 가서 하자.”

“오케이!”

천휘의 말에 카멜과 로빈은 그에게서 받은 무한의 행낭에 모조리 보석과 금화를 집어넣기 시작했다.

“아, 찾았다!”

“찾으셨어요?”

“응. 생각지도 않은 곳이 출구여서 고생 좀 했네. 이곳이 출구야.”

“이 조각이오?”

하린이 가리킨 출구라는 곳에는 벽면에 레이피어를 들고 있는 호리호리한 체구의 기사가 양각되어 있었다.

“좀 의외지? 그래서 나도 찾느라 애먹었다니까. 잘 봐. 이 기사의 레이피어를 이쪽으로 돌리면…….”

쿠르릉.

“오오! 벽이 돌아간다!”

“어찌 보면 보잘것없는 트릭인데, 찾기는 힘든 트릭이기도 하지. 역시 던전 탐험은 이래서 재미있다니까! 늘 이렇게 새로운 트릭들이 날 반겨 주다니. 꺅, 너무 좋아!”

“…….”

소녀의 감성이 풍부한 하린의 모습에 천휘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40이 넘은 아줌마의 꺅이라니. 사실 친분만 아니라면 당장에라도 멱살을 잡고 그딴 짓 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을 정도였다.

“야, 대충 챙겼으면 가자.”

“무슨 소리! 부스러기 하나도 놓칠 수 없어!”

“이거 하나에 얼만데! 좀만 기다려 봐!”

‘…자식들, 현실에서는 몇십만 원짜리 양주도 자주 마시면서 고작 몇만 원에 쩔쩔매는 꼴이라니. 확실히 게임에서의 돈과 현실에서의 돈은 다르다는 건가?’

자신의 나이쯤 되면 게임에 돈을 투자한다거나, 게임으로 돈을 벌겠다는 생각은 조금 수그러든다.

물론 직업이 없어서 돈이 없다면 이걸로라도 돈을 벌어야 하겠지만, 세 사람은 각자 버젓이 직장이 있는 사람들이기에 그러고 싶은 마음은 없었던 것이다.

때문에 두 사람은 게임 내에서 구하는 아이템이나 돈을 무척이나 소중히 여길 수밖에 없었다.

“됐다! 이제 가자.”

“후우, 현실에서는 연봉 몇천만 원씩 받는 녀석이 고작 몇 골드에 쩔쩔매기는.”

“그거랑 이거랑 다른 거야, 인마. 하긴 수도에 그토록 큰 대저택을 소유하고 있는 놈이 우리 같은 서민의 마음을 알 리가 있나.”

“저택? 호오, 천휘 동생 돈 좀 있나 보네?”

카멜의 말에 하린이 흥미로운 표정으로 천휘를 바라봤다. 하지만 귀찮은 일에 휘말리기 싫은 천휘는 살짝 카멜을 째려보고는 덤덤한 어투로 말했다.

“아니에요. 그냥 조그만 집이에요. 저 녀석이 그냥 농담 삼아 한 거예요. 아무튼 출발하죠. 드디어 대단원의 화룡점정을 찍어야죠.”

“화룡점정이라……. 멋진 말이네.”

“자식, 꼭 재수 없는 티를 내요. 아무튼 가자! 내가 앞장설게!”

“꺼져! 네놈이 나서면 될 일도 안 돼!”

“이익! 죽여 버리겠어!”

“호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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