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4장 죽은 기사들의 무덤 (5/82)

제4장 죽은 기사들의 무덤

탁.

“후아, 오늘도 피곤한 하루였어.”

영완은 녹초가 된 몰골로 집 안으로 들어섰다.

교사가 된 지 벌써 2년차이건만 영완은 아직도 학교를 가는 일이 곤욕이었다.

“일단 밥부터 먹고.”

학교에서는 동료 교사들 눈치를 보느라 제대로 점심을 먹지 못했었다. 아침도 먹지 않은 그에게는 너무도 가혹한 점심시간이었다.

영완은 대충 계란 프라이를 하나 만들어 저녁을 해결하고는 피로를 풀기 위해 따뜻한 물로 샤워까지 마쳤다.

“후우, 역시 피로를 푸는 데는 샤워가 최고지.”

영완은 샤워를 마치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집으로부터 독립을 하긴 했지만, 아직 돈이 많지 않아 원룸에서 생활하는 탓에 집에는 침대를 비롯한 최소한의 가구와 가전제품만 있을 뿐, 나머지 공간은 거대한 게임 캡슐이 차지하고 있었다.

“오시리스(Osiris)나 가봐야겠네.”

영완은 머리를 수건으로 말리면서 컴퓨터를 켰다. 게임 캡슐이 개발되어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이 줄었지만, 그래도 기본적인 정보는 간편하게 늘 컴퓨터로 확인하고 있었다.

“별 이상 징후는 없네.”

『오벨리스크』의 팬 사이트인 오시리스.

영완은 오시리스에 접속해 아르니안 대륙 서버 자유게시판을 돌아다니며 행여나 자신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돌지는 않을까 살펴봤다.

하지만 다행히 아직까지는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진 않은 모양이었다. 아직 모습을 감추고 있는 탓도 있지만, 아무래도 『오벨리스크』의 운영자들이 일부러 그의 정체를 숨기고 있는 듯했다.

“드래곤 산맥을 넘은 이가 존재한다고 하면 확실히 수많은 유저들이 너도 나도 드래곤 산맥을 넘으려고 할 테니까.”

게임을 즐기는 유저들은 모험심이 대단하다.

새로운 사냥터, 새로운 던전.

그리고 그 부산물인 새롭고 뛰어난 아이템.

유저들은 그러한 것을 얻기 위해 미개척지로 향하는 것을 서슴지 않는다.

그런 그들이니, 수많은 유저들이 드래곤 산맥을 넘어 타 대륙으로 넘어가리라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고 있었다. 천휘도 자신의 드래곤 산맥 통과를 밝히지 않고 있었고 『오벨리스크』 운영자들도 마찬가지인 탓이었다.

“응? 뭐가 이렇게 신규 게시물이 많지?”

비교적 한산한 아르니안 대륙의 게시판에 비해, 천 제국의 게시판은 난리도 아니었다. 1초에도 몇 건씩 신규 게시물이 생겨나는 것은 물론이고 각 게시물당 조회 수도 기본이 수천에 이르렀다.

“…나 때문이었어?”

최근 게시물 중 가장 조회 수가 높은 게시물을 읽은 영완은 어이가 없다는 듯 허탈해했다.

[제목:천하제일 비겁자의 행보]

먼저, 본인은 강시지존을 쫓던 마교 추격대의 한 사람임을 밝힌다.

본 교에서 마령혈천권법서를 훔쳐 달아난 강시지존을 잡기 위해 우리는 신강에서 운남의 밀림까지 그를 쫓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우리는 녀석을 잡지 못했다. 천하제일 비겁자의 명성에 걸맞게 녀석의 잔꾀에 속고 말았던 것이다.

녀석은 우리로 하여금 ‘괴물’ 녀석을 상대하게 하고 그 자신은 운남의 밀림을 넘어 천룡 산맥으로 향했다. 우리 마교 추격대는 ‘괴물’ 녀석에게 순식간에 목숨을 잃은 탓에 그 이후의 사정은 모른다. 하지만 우리의 희생으로 녀석이 천룡 산맥으로 진입했다는 것 정도는 능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자, 그러면 여기에서 문제!

천룡 산맥에서 녀석은 뭐 하고 있을까?

자신을 비겁자로 전락시켜 버리는 게시물도 게시물이었지만, 그 밑의 댓글들이 더욱 가관이었다.

강시지존 녀석은 천룡 산맥에서 천룡에게 죽었을 것이라는 둥, 마교와 무림맹에게 쫄아서 천룡 산맥 외곽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는 둥 모두 비관적인 의견들뿐이었다.

“헉! 이 사람 누구지?”

그렇게 댓글을 확인하던 영완은 한 댓글을 바라보고는 기겁해서 뒤로 넘어갈 뻔했다.

-Re:모르시는 말씀들. 내가 며칠 전에 강시지존 봤어요. 그 사람 천룡 산맥 너머 아르니안 대륙에서 살아가는 걸.

하지만 다행히 그 의견에 동의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그만큼 천룡 산맥, 즉 드래곤 산맥을 넘는 일은 그가 삼존의 한 사람일지라도 힘들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휴우, 간 떨어질 뻔했네. 그럼 이제 슬슬 『오벨리스크』를 해볼까?”

더 이상 게시물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에 영완은 곧바로 게임 캡슐 안으로 사라졌다.

스파앗.

“휴우, 지저분한데?”

새벽에 냥이를 만들어내고 곧바로 로그아웃했던 탓에 천휘의 눈앞에는 지난 며칠 동안의 폐해들로 가득했다.

“일단 이 녀석들을 빙옥에 넣고. 미친 소와 냥이, 그리고 고블린. 너네들 다 이리 들어와.”

그릉.

음메.

갸오오.

세 녀석은 마치 제 집인 양 곧바로 빙옥 안으로 사라졌다. 그에 천휘는 창고를 치우지 않고 곧바로 저택으로 향했다.

“오셨습니까, 주인님.”

“오, 집사. 마침 잘됐네. 가서 여행하면서 먹을 간단한 식량 좀 싸주고 애들 시켜 창고 안을 깨끗이 청소하도록 해. 그리고 환기도 해주도록 하고.”

“알겠습니다.”

이윽고 집사 그레엄이 주방에서 직접 갓 구운 호밀 빵과 소고기 육포를 한 아름 가져왔다.

“이렇게 많이 줄 필요는 없는데……. 뭐, 이왕 가져온 거 다 가져가지. 자, 그럼 나 나갔다 올 테니, 집 잘 지키도록!”

“다녀오십시오, 주인님.”

처음 왔을 때처럼 휑하니 나가버리는 천휘의 뒷모습을 향해 집사 그레엄은 오래도록 허리를 굽히고 있었다.

“가셨는데요?”

“그러냐?”

“왜 아직까지 허리를…….”

“저 녀석이 아닌 태양 신 라멘에게 허리를 굽히고 있는 것이다. 아직 저 녀석이 이 저택의 비밀을 눈치 못 챈 것 같으니, 계속해서 그럴 수 있도록 신께 기도를 올리는 거지.”

“아, 그럼 저도 할까요?”

막 세린이 허리를 굽히려는 찰나, 집사 그레엄의 허리가 세워졌다.

“넌 내 방으로 오기나 해라. 허리 다쳐.”

“…네.”

천휘는 인피면구를 착용하지 않은 채 본연의 모습으로 오베른의 북문으로 향했다.

“확실히 크긴 크네. 수도를 빠져나오는 것이 이렇게 오래 걸려서야.”

예전 천 제국의 수도 북경에서도 느낀 바지만, 『오벨리스크』의 대도시들은 현실의 대도시와 비교해도 전혀 꿀리지 않을 만큼 거대했다. 그나마 도로 정비가 잘되어 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도시 안에서 미아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퀘스트 기한이 벌써 열흘이나 흘렀어. 이제 닷새 안으로 다녀와야 해.”

‘마탑 지부장의 부탁’ 퀘스트를 받고 나서 강시 제작에 열을 올린 터라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지금 그에게 필요한 건 뭐? 스피드.

“젠장! 어떻게 성문을 빠져나오는데 세 시간이나 걸리는 건데! 마차를 하나 구입하든가 해야지! 이거 원!”

천휘는 성문을 빠져나오자마자 곧바로 경공을 펼쳤다. 그의 엄청난 빠르기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탄성을 내질렀다.

“와아아! 저 사람 뭐야!”

“어쌔신인가? 뭐 저렇게 빠르지?”

“헤이스트 마법이라도 썼나 보지.”

저마다 추측이 난무하는 상황이었지만, 당사자인 천휘가 그걸 알 리 만무했다. 그렇게 경공을 펼쳐 오베른 북쪽의 오크 군락이 있는 숲 속으로 들어선 천휘는 곧바로 빙옥에서 냥이를 불러냈다.

갸오오.

“그래그래, 네 마음 다 알아. 일단 오늘은 바쁘니까 다음에 놀아줄게.”

빙옥 밖으로 나오자마자, 천휘의 얼굴을 혀로 핥아대는 냥이의 애교에 천휘는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는 녀석의 등 위로 올라탔다.

“오늘부터 냥이 넌 내 전용 자가용이다. 알겠지?”

갸오?

천휘는 언제 구했는지 질긴 가죽 끈을 하나 들고 냥이의 목에 두르고는 양손으로 그곳을 부여잡았다.

“이럇! 조낸 뛰는 거다!”

갸오오오!

일인일수? 아니, 일인일강시가 숲을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구룩구룩.

“응? 어디에 돼지 농장이 있나? 돼지 소리가 들리는 거 같은데?”

냥이의 등에 타고 시원한 바람을 만끽하던 천휘는 간간이 들려오는 돼지 울음소리에 의아한 눈빛으로 주변을 살폈다.

“아, 오크인가?”

아르니안 대륙이 판타지를 기반으로 한 세계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판타지의 단골손님 오크들이 숲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들은 저마다 녹이 슨 갑옷과 녹이 슨 글레이브를 들고 흉흉한 살기를 내뿜고 있었다.

크워어엉.

구룩구룩.

점점 주변으로 다가오던 오크들이 냥이의 포효 한 번에 걸음을 멈추고 흥분한 듯 소리를 내질렀다. 급기야 오크들이 선 채로 오줌을 지리자, 숲 사이로 지독한 냄새가 번지기 시작했다.

“으악! 돼지 지린내! 냥아! 앞을 가로막는 녀석들은 모조리 처치해버리고 빨리 이곳을 벗어나자!”

캬오!

천휘의 명령에 냥이가 다시 쏜살같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미 오크들은 전의를 모두 상실한 상태. 냥이의 앞길을 막는 녀석들은 전무한 상황이었다.

“어라? 저 녀석은 좀 특이하네? 오크 족장이라도 되는 건가?”

아직 아르니안 대륙에서의 경험이 일천해 눈앞에 보이는 오크가 어떤 존재인지 모르는 천휘였지만, 척 봐도 다른 오크와는 다른 존재감을 솔솔 풍기는 오크 한 마리가 냥이의 앞을 가로막았다.

구루욱!

녀석은 다른 오크들과 달리 녹슨 글레이브가 아닌 제법 구색을 갖춘 배틀액스를 손에 쥐고 있었다. 그리고는 냥이와 천휘를 향해 배틀액스를 거칠게 휘둘렀다.

크워어엉!

하지만 냥이는 가소롭다는 듯 하늘로 튕겨져 오르며 녀석의 공격을 피해냈다. 그리고는 하늘에서 아래로 내려오며 그대로 오크 녀석의 허리를 강력한 이빨로 물어버렸다.

구루우욱!

냥이의 강력한 물기 공격에 오크 녀석은 배틀액스도 떨어트린 채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제법 힘이 강한 듯 냥이의 턱을 양손으로 밀어내고자 안간힘을 썼지만, 냥이의 턱은 꼼짝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냥 부숴버려.”

자신의 앞길을 가로막는 오크 녀석으로 인해 기분이 나빴는지 천휘가 냉담한 얼굴로 명령했다.

우두둑.

크워어엉!

천휘의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오크 녀석의 허리가 두 동강 나며 녀석의 동강 난 시체가 아래로 떨어졌다. 피를 보자, 흥분한 듯 냥이가 승리의 포효를 내질렀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오크들은 다시 전신이 마비되며 꼼짝을 할 수가 없었다.

“흥! 가자!”

갸오오.

오크들과 더 이상 드잡이질을 하고 싶지 않은지 천휘는 냥이에게 지시를 내렸고 냥이는 다시금 나무 사이를 가르며 빠르게 숲을 가로질러 나갔다.

‘흐음, 생각보다 죽은 기사의 심장이라는 시약, 효과가 괜찮은데?’

보통 강시들은 살아생전의 감정과 욕구가 메마르게 된다. 식욕이나 성욕은 물론이고, 기쁨이나 슬픔 등의 감정 등도 완벽하게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냥이는 조금 달랐다.

죽은 기사의 심장을 사용한 탓인지, 아니면 이곳 아르니안 대륙의 시약들은 조금 다른 성분을 띠고 있는 것인지 녀석은 주인인 자신을 향해 기쁨을 표출할 줄 알고 살기를 발산하기도 한다.

게다가 강시 주제에 조금 전에는 승리의 포효까지 내질렀다. 그 말인즉, 승부욕이 있다는 소리였다.

‘내가 만든 최고의 걸작이었던 천마강시조차도 이런 모습은 없었어. 워낙 흉성이 강한 녀석인지라 지시 내리면 모든 것을 파괴하려는 성향이 짙긴 했지만, 그것은 천마강시 특유의 성향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지. 그런데 냥이는 달라. 강시 특유의 생식적인 결함은 차이가 없지만, 마치 감정을 가지고 있는 듯해. 뭐지? 만약, 이게 죽은 기사의 심장 때문이라면 그와 비슷한 시약을 대거 투약해서…….’

천휘가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는 동안 냥이는 폭발적인 움직임으로 숲을 벗어나 평원을 질주하기 시작했다. 체력이 떨어지지 않는 강시인 덕에 냥이의 움직임은 처음과 마찬가지로, 빠르게 북서쪽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흐음, 아무래도 실험을 더 해봐야겠어. 응? 여긴 어디지? 아나, 젠장! 너무 멀리 와버렸잖아! 냥이 스톱!”

끼이이익.

콩.

갸오?

“야, 누가 신나서 여기까지 오래! 목적지를 한참 지났잖아! 얼른 되돌아가!”

크릉.

천휘의 호된 질책에 냥이는 낮게 으르렁거리고는 곧바로 오던 길로 되돌아갔다.

죽은 기사들의 무덤.

본래 테오른 왕국을 위해 싸우다 전사한 기사들을 위한 무덤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의미가 퇴색되어 죽은 기사들의 원혼이 깃든 던전으로 변모되었다.

죽은 기사들의 성지나 다름없었던 그곳이 그렇게 변해버린 데에는 100여 년 전, 그곳에 흑마법사들이 둥지를 틀게 된 탓이 컸다.

흑마법사들은 기사들의 시체로 여러 가지 실험을 했고 그로 인해 죽은 기사들의 시체가 좀비화되어 무덤 안을 돌아다니게 되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죽은 기사들의 무덤이 헌터들의 사냥터가 된 건.

“흐음, 스산한데? 이런 분위기 내가 정말 원츄하는 분위기지.”

언제나 시체들과 함께하는 강시술사인 천휘에게 죽은 기사의 무덤은 마치 안방과도 같은 곳이었다.

“일단, 어느 정도 수준인가 확인해볼까? 이번 기회에 이 레전드 아이템들의 성능도 확인해보고 말이야.”

[발록의 주먹]

테오른 왕국의 전설적인 격투가, 에머튼이 사용하던 건틀릿. ‘투마’라 불리는 마족 발록의 기운이 깃든 건틀릿으로, 엄청난 공격력과 뛰어난 성능을 자랑한다.

등급:레전드 내구력:50,000/50,000

분류:건틀릿

제한:레벨 250 이상

제한:악명 100만 이상

옵션:공격력+600

제한:근력+100

제한:민첩+150

제한:공격 속도 50% 상승

제한:속성 데미지 10% 추가

제한:적 공격 시 데미지의 1%를 체력으로 흡수

[발록의 심장]

테오른 왕국의 전설적인 격투가, 에머튼이 사용하던 무복. ‘투마’라 불리는 마족 발록의 기운이 깃든 무복으로, 엄청난 방어력과 저항력을 자랑한다.

등급:레전드 내구력:100,000/100,000

분류:무복

제한:레벨 250 이상

제한:악명 100만 이상

옵션:방어력+500

제한:민첩+300

제한:최대생명력+3,000

제한:이동속도 30% 상승

제한:모든 속성 마법에 대한 저항력 30% 상승

발록의 주먹과 발록의 심장은 이 드넓은 아르니안 대륙에서 몇 없는 레전드 아이템인 만큼 그 옵션이 어마어마했다. 천휘가 가진 돈의 대부분을 투자했음에도 전혀 아깝지 않다고 여길 정도였다.

아이템도 어느 정도 갖춰졌으니, 천휘는 자신의 힘을 당장에라도 시험하고 싶었다. 예전에는 늘 강시들을 앞에 세우고 자신은 뒤에서 조종하는 데에만 급급했지만, 그랜저(시영)를 박살내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이 강해져야 한다고 생각한 탓이었다.

무덤의 입구 안으로 들어선 천휘는 고루마공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고루마공은 내공이 아닌 일종의 외공이었다.

외공은 내기, 즉 마나를 몸 안에 축적하는 내공과는 차이가 있었다. 말 그대로 몸의 외적인 것을 강화하는 무공, 그것이 외공이었다.

현재 천휘의 고루마공 숙련도는 중급 5단계.

천 제국에서는 5성이었지만, 아르니안 대륙으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숙련도를 지칭하는 명칭이 변한 것이다.

“아직 마령혈천권법을 익히지 못했으니, 저번에 암시장에서 산 스킬들을 이용해야겠다. 아직 격투가 직업을 얻진 못해서 최고의 위력을 발휘할 순 없겠지만, 그런대로 쓸 만하겠지. 그런데 이 자식들은 대체 다 어디로 사라진 거야? 누가 먼저 쓸고 지나갔나?”

냥이와 미친 소를 뒤에 대동하고 무덤 안으로 들어선 지 꽤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몬스터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있었다.

음메.

크르응.

천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냥이와 미친 소가 살기를 뿜어냈다. 그 모습을 보며 천휘는 다시 한 번 녀석들이 자신이 만든 여느 강시들과 다름을 재차 알 수 있었다. 강시가 살기를 뿜어내다니!

마치 그것은 사탄의 인형이 괴기스럽게 웃으며 인간을 죽이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었다.

스르륵.

“윽!”

녀석들이 살기를 내뿜는 것에만 신경 쓰던 천휘는 자신의 바로 앞에 마치 좀비와 같은 형상으로 모습을 드러낸 몬스터에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흐음, 나이트 좀비라…….”

눈앞에 나타난 몬스터는 나이트 좀비라는 이름을 하고 있었다. 아직 녀석들을 잡지 못해 그 이상의 정보를 알 순 없었지만, 풍기는 기세만으로 천휘는 그들이 적어도 B급 이상의 몬스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오크 전사가 B급 중에서 가장 서열이 낮은 몬스터니까, 그보다 살짝 더 강하다고 생각하면 되려나? 좋아. 내게는 최고의 연습 상대로군.”

B급 몬스터라면 최소한 원마스터는 되어야 상대가 가능하다. 레벨로 따지자면, 천 제국의 일류 무사 수준. 하지만 아이템이 무궁무진한 아르니안 대륙과 달리 스탯과 무공을 중시하는 천 제국이기에, 굳이 비교를 하자면 천 제국의 일류 무사가 훨씬 더 강하다.

천휘 역시 고루마공을 통해 일류 무사에 근접한 실력을 지닌 덕에 B급 몬스터 정도는 가뿐했다. 더욱이 발록의 주먹과 발록의 심장이라는 레전드 아이템을 가지고 있으니, B급 몬스터가 성에 찰 턱이 없었다.

“하앗! 대지의 울음!”

콰아앙!

나이트 좀비 3마리가 자신을 향해 느릿느릿 다가오자, 천휘가 하늘로 뛰어오르며 거칠게 땅을 내리밟았다.

천휘가 펼친 스킬은 암시장에서 구매한 3가지의 스킬 중 ‘대지의 울음’이라는 유니크 스킬이었다. 그 이름처럼 땅에 충격파가 주변으로 퍼져 가며 그 반경에 있는 상대에게 피해를 입히고 1초간 스턴 상태로 만들어버리는 유용한 스킬이었다.

“좋았어! 곧바로 연계 공격이다! 악마의 숨결!”

스턴 상태에 빠져 움직이지 않는 나이트 좀비들은 한마디로 잘 차려진 밥이나 마찬가지였다. 천휘는 그 사이로 파고들며 이번에도 역시 암시장에서 구매한 스킬을 전개했다.

쿠오오오!

마치 악마의 음성처럼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무덤 안을 뒤흔들며 암흑의 기류에 휩싸인 천휘의 주먹이 나이트 좀비들을 강타했다.

“이욜! 이거 진짜 쓸 만하잖아?”

악마의 숨결 역시 유니크 스킬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엄청난 위력으로 나이트 좀비들을 산산조각으로 만들었다. 고루마공으로 단련된 단단한 천휘의 육체가 더해진 악마의 숨결은 말 그대로 악마가 뿜어내는 죽음의 숨결이나 마찬가지였다.

“순간적으로 물리 공격력을 300퍼센트로 올려 주고 주변 5미터 범위에 스플래쉬(Splash) 데미지를 입게 한다라……. 거기에 마법 공격력까지 50퍼센트 상승. 역시 유니크 스킬인가?”

악마의 숨결은 마지막까지 어느 어린 귀족 소년과 치열하게 경합을 벌였던 스킬이었다. 그 귀족 소년은 어떻게든 악마의 숨결을 얻고 싶었던 듯 경매가 끝나고 자신을 협박하기까지 했다.

“확실히 사길 잘했네. 이 정도면 앞으로 계속해서 주력으로 써도 되겠어.”

캬오.

천휘가 그렇게 자신이 구매한 스킬들에 감탄하고 있을 때, 냥이가 슬쩍 다가와 천휘의 가슴팍에 머리를 들이밀었다.

“놀아주라고? 안 돼! 여기는 나 혼자 사냥해도 될 것 같으니까, 냥이 네 녀석과 미친 소는 다시 빙옥으로 돌아가.”

음메!

크르릉.

쾅!

쾅!

“이 자식들이 누구한테 대드는 거야! 당장 못 들어가!”

자신을 향해 이를 드러내는 두 녀석을 간단하게 제압한 천휘는 룰루랄라 휘파람까지 불어대며 무덤 안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죽은 기사의 무덤은 총 3층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모두 지하에 세워진 층들로, 특이한 점이라면 테오른 왕국의 수많은 기사들이 묻힌 탓에 그 규모가 크고 각 층마다 천장이 높이 세워져 있다는 것이었다.

“오물오물, 이제야 겨우 3층까지 온 건가?”

조금 전 지하 2층에서 천휘는 나이트 좀비 스물과 장군 좀비 둘을 처치한 뒤, 지하 3층으로 내려오는 계단에서 육포를 씹어 먹으며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오물오물, 3층이라면 이 던전의 보스 몬스터가 있겠지? 흐음, 어떤 녀석이려나? 고블린 강시라도 보내볼까?”

어차피 고블린 강시는 실험장에 불과했다. 때문에 언제 버리더라도 하등 상관이 없었다.

“좋아.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랬지. 오물오물. 일단은 분위기상 죽은 기사의 심장이 있는 곳은 3층일 테고. 마탑에서도 얼마 보유하지 못하는 레어한 시약임을 감안한다면? 분명 이 아래층에는 보스 몬스터가 있겠군.”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천휘는 곧바로 빙옥에서 고블린 강시를 꺼냈다.

“일단 녀석의 눈을 영성으로 나와 연결시킨 다음에…….”

천휘는 고루마공을 운용해 고블린 강시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띠링! 고블린 강시가 패밀리어로 지정되었습니다.]

“패밀리어? 그건 또 뭐야? 흐음. 아르니안 대륙으로 넘어오면서 변화된 게 너무 많아. 따로 공부라도 해야 하려나? 오물오물. 아, 이 녀석부터 보내야지.”

천휘는 여전히 육포를 맛있게 씹으며 고블린 강시를 아래층으로 내려 보냈다. 녀석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천휘는 육포를 씹다 말고 고루마공을 운용해 녀석의 눈과 영성을 통한 연결을 시도했다.

‘보인다!’

고블린 강시의 눈을 통한 세상이 시야로 들어오자, 천휘는 쾌재를 불렀다.

‘역시! 이곳에 있었군.’

3층 바닥에는 죽은 기사의 심장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게다가 크기도 크고 특유의 붉은빛을 선명하게 발산하고 있었다.

‘그런데 좀비들은 없나? 뭔가 있을 법도… 큭.’

“커헉!”

잠시 한눈을 판 사이, 고블린 강시와 연결이 끊어졌다. 그와 동시에 천휘는 가벼운 내상을 입어야 했다.

“뭐야, 이 고통은!”

이전에 천 제국에서 만들었던 강시들이 부서졌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고통에 천휘는 깜짝 놀랐다. 그리고는 급히 자신의 상태를 확인했다.

“확인!”

레벨:281 칭호:강시지존

주직업:강시술사 부직업:무직

명성:5,000 악명:3,500,000

생명력:4,600(+15,000) 마나:248,000(+120,000)

기력:77% 포만감:75%

물리 공격력:52~56(+600) 물리 방어력:105~110(+500)

마법 공격력:118~124 마법 방어력:68~72

<기본 스탯>

근력:180(+100) 민첩:100(+450) 체력:140

지능:620 지혜:360

<특수 스탯>

손재주:420 의지:160 감지:440

“헐. 뭐야, 이거. 무려 생명력이 1,000이나 깎였잖아? 세상에, 패밀리어라는 것 완전히 사기 아냐? 젠장! 좋다 말았네.”

천휘의 본래 생명력은 5,600. 그런데 지금 남아 있는 생명력은 4,600이었으니, 고블린 강시의 죽음으로 무려 1,000이나 생명력을 하락한 것이었다.

“오물오물. 잠깐 한 눈을 팔긴 했지만, 그건 그야말로 잠깐에 불과했어. 불과, 1~2초 정도? 그런데 고블린 강시가 순식간에 기능이 정지될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그렇다면 적어도 이제까지 만나왔던 좀비들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빠른 놈이라는 소린데……. 오물오물.”

하락한 생명력을 채우기 위해 다시 육포를 먹기 시작한 천휘는 이윽고 생명력이 가득차자, 빙옥에서 미친 소를 꺼냈다.

음메.

“아무래도 네 녀석이 몸빵 좀 해줘야겠다.”

음메!

천휘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듯 미친 소가 계단을 성큼성큼 내려가기 시작했다. 천휘는 그 뒤를 역시나 육포를 씹어 먹으며 내려갔다.

쭈뼛!

“머- 머리카락이!”

지하 3층으로 들어서자마자, 천휘의 머리카락이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올랐다. 그에 천휘는 가슴을 엄습해오는 불안감에 긴급히 계단 위로 올라갔다.

그것도 모른 채 미친 소는 지하 3층을 저벅저벅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천휘가 녀석을 불러 세우려는 찰나, 기어코 사단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휘익, 휘익.

푸욱, 푸욱.

“화살!”

지하 3층에는 이제껏 다른 층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트랩이라도 있는 모양인지 미친 소에게로 화살 세례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음메에?

하지만 미친 소는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못하고 방금 뭐가 지나갔냐는 표정으로 후방을 바라봤다.

“트랩이었나? 흐음, 저 정도 가지고 내 머리카락이 곤두설 리가 없는데.”

그렇게 천휘가 여전히 불안해하고 있을 때, 별안간 지하 3층 바닥이 푹 내려앉았다. 순식간에 거대한 구멍이 생겨나며 미친 소를 집어삼켰지만, 이게 웬걸? 인간의 몇 배에 달하는 큰 키와 거대한 체구로 인해 구멍의 입구에 꽉 끼이고 말았다.

“쳇, 덩치 큰 게 이럴 때 쓸모가 있을 줄은 몰랐네. 그나저나 앞으로도 쭉 이런 트랩이 설치되어 있겠는데? 뭐, 이 정도야 미친 소 녀석을 앞세워서 가면 될 테니. 그럼 마지막 스테이지를 클리어해 보실까?”

구멍에 끼인 미친 소를 간신히 끌어낸 천휘는 곧바로 녀석을 앞장세워 앞으로 전진해나갔다.

피슝.

“으윽, 이번엔 또 뭐야!”

천휘의 귓가로 뭔가 끊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니나 다를까, 전방에서 거대한 도끼날이 자신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미친 소!”

천휘는 다급하게 미친 소를 자신의 앞으로 내세웠다.

콰앙!

음메에?

“휴우, 역시 단단하긴 더럽게 단단하군.”

거대한 도끼날이 제 몸을 강타했음에도 미친 소는 마치 길 가다가 파리에라도 부딪친 양 멀쩡했다.

“그나저나 언제까지 이런 조잡한 트랩들이 나오는 거야? 대체 몇 시간째 이러고 있는 거냐고!”

죽은 기사의 무덤으로 들어서고 나서 천휘가 지하 3층까지 내려오는 데 걸린 시간은 총 3시간. 그런데 지하 3층에서만 벌써 3시간째 트랩들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중이었다.

“젠장! 안 되겠어! 이따위 트랩에게 이 몸이 주춤해서야 말이 안 되지. 미친 소, 들어가! 냥이, 나와!”

천휘는 느려터진 미친 소를 들여보내고 광속의 스피드를 자랑하는 냥이를 꺼냈다. 그리고는 곧바로 녀석의 등 위로 올라탔다.

“고고! 무비무비무비! 다 뚫어버려!”

크워어엉!

천휘의 명령에 냥이가 포효를 내지르며 전방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전광석화. 어찌나 빠른지 냥이가 지나는 자리에는 잔영까지 남을 정도였다.

휘익, 휘익.

부웅, 부웅.

냥이가 빠른 속도로 달려 나가자, 트랩이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냥이가 지난 한참 후에야 발동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편하게 지켜보며 천휘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혀를 내둘렀다.

“젠장! 웬놈의 트랩이 이렇게 많은 거야! 아, 맞다! 죽은 기사의 심장!”

엄청난 숫자의 트랩 때문에 그동안 잊고 있었던 중요한 것이 떠올랐다. 자신이 이곳에 온 목적인 죽은 기사의 심장 채취가 그것이다.

“흐음. 뭐, 일단 지하 3층 끝까지 가보고 돌아오면서 천천히 채취하자. 그래도 늦지 않으니까.”

어차피 기호지세다.

냥이의 속도는 더 이상 자신이 제어하기 힘들 정도로 빨라진 상태였다. 차라리 이 여세를 몰아 단번에 죽은 기사의 무덤 보스를 처치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았다.

“스토오옵!”

끼이이익.

드디어 트랩이 사라지고 음산한 분위기의 석상이 버티고 선 문 앞에 도착했다. 석상은 강인한 전사의 형상을 본 따 만들었는지 한 손에는 거대한 그레이트 소드를, 다른 한 손에는 거대한 사각방패를 들고 매서운 눈빛으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흐음, 이 문 뒤에 드디어 최종 보스가 있는 건가? 제법 그럴싸한데?”

천휘의 눈빛은 마치 장난감을 앞에 둔 어린애처럼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별안간 머리카락이 치솟자 그는 뒤로 멀찌감치 물러났다.

구오오오.

“이런 미친! 저거 몬스터였어?”

천휘의 머리카락은 어김없이 들어맞았다.

문 앞을 굳건히 지키고 있던 석상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 천휘는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미친 소를 빙옥에서 꺼냈다.

“젠장! 나이트 골렘이라니. 딱 봐도 좀비들이랑은 차원이 다른 놈이잖아!”

미친 소에 육박하는 거대한 체구.

거기에 미친 소가 들고 있는 거대한 배틀액스가 초라해 보일 만큼, 거대한 그레이트 소드와 사각방패.

나이트 골렘의 위용은 천휘가 아르니안 대륙에 발을 디딘 이래 단연코 최강이었다.

“미친 소, 몸빵! 냥이, 급소 공격!”

나이트 골렘을 맞아 천휘는 최초로 두 녀석과 파티 플레이를 하고자 했다.

이미 이곳 죽은 기사의 무덤으로 오면서 두 녀석에게 명령 키워드 몇 개를 지정해놓은 상황.

천휘의 명령에 미친 소는 배틀액스를 치켜들고 굳건히 천휘의 전방을 지켰고 냥이는 천휘가 지정한 급소 세 곳을 노리기 위해 날카롭게 눈을 빛냈다.

“네놈이 적어도 A급에 준하는 녀석이라는 건 알겠는데… 미친 소랑 냥이도 살아생전에는 A급 몬스터였거든? 넌 우리 밥이야!”

구오오오!

천휘의 도발을 알아듣기라도 한 것일까.

이제까지 잠자코 있던 나이트 골렘이 드디어 그레이트 소드를 위로 치켜 올려 미친 소를 향해 휘둘렀다.

콰아아앙!

“윽.”

천휘의 신체는 고루마공으로 단련되어 있다. 웬만한 충격에는 고통조차 입지 않을 만큼 단단하건만, 두 녀석의 무기가 맞부딪쳐 생겨난 충격파는 천휘로 하여금 흡사 고막이 뻥 뚫리는 듯한 고통을 안겨줬다.

크워어엉!

하지만 냥이는 아무렇지 않은 듯 녀석이 미친 소를 공격하는 찰나를 노려 나이트 골렘의 오른쪽 발목을 물어뜯었다.

“잘한다!”

샤벨 타이거의 시체로 만들어진 냥이다.

샤벨 타이거의 이빨은 몬스터 헌터들이 꿈에도 그리지 않을 만큼 탐내는 물건이다. 제아무리 나이트 골렘이 단단한 돌로 만들어졌다고는 해도 냥이의 이빨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구오오오.

냥이의 공격으로 순식간에 발목을 잃어버린 나이트 골렘은 천천히 오른쪽으로 무너졌다. 하지만 완전히 무너지려는 찰나, 오른손에 든 그레이트 소드로 몸을 지탱했다.

“어림없지! 이거나 먹어라! 악마의 숨결!”

나이트 골렘의 발을 완벽하게 묶어둘 의향으로 천휘는 녀석의 왼쪽 발목을 공격했다. 물리 공격력을 무려 600이나 올려 주는 발목의 건틀릿. 거기에 더해 다시 물리 공격력을 3배로 향상시켜 주는 악마의 숨결.

나이트 골렘의 왼쪽 발목은 마치 잘 다져진 순두부처럼 천휘의 주먹에 다져졌고 결국 녀석의 동체는 땅으로 무너지고 말았다.

“일제 공격!”

녀석의 발이 완벽하게 묶인 상황.

천휘는 일제 공격을 명령했고 냥이와 미친 소는 나이트 골렘을 샌드백 삼아 전후좌우에서 공격을 퍼부었다.

“이런 기회가 흔치 않지! 이번에는 그 스킬을 써봐야겠다.”

이제 암시장에서 산 스킬 중 천휘가 사용하지 않은 스킬은 단 하나다. 천휘가 그 스킬을 사용하지 않았던 건 바로 준비 시간이 많이 걸리는 탓이었다. 무려 10초의 준비 시간을 요하는 필살의 스킬. 천휘는 지금 드디어 그 스킬의 봉인을 해제했다.

“하아압!”

천휘는 나이트 골렘의 그레이트 소드가 닿지 않는 바깥쪽에서 기합을 불어넣으며 스킬을 전개했다. 그러자 천휘의 오른손, 발록의 건틀릿을 착용하고 있는 주먹에 푸른 아지랑이가 피어 오르기 시작했다.

“일제 퇴각!”

천휘가 두 녀석에게 명령을 내리자, 말 잘 듣는 애완견처럼 두 녀석이 뒤로 물러났다.

“받아라! 이중극점!”

땅을 오른발로 박찬 천휘의 신형이 미끄러지듯 나이트 골렘에게로 향했다. 어찌나 빠른지 나이트 골렘이 미처 알아채기도 전에 천휘의 신형은 나이트 골렘의 가슴 앞으로 다가갔다.

콰앙!

짧지만, 굵은 충격음.

하지만 나이트 골렘은 아무렇지 않은지 천휘의 공격을 받고도 그를 죽이기 위해 그레이트 소드를 휘둘렀다.

“하나, 둘, 셋! 죽어라!”

자신에게 그레이트 소드가 날아오든 말든 상관없다는 듯 천휘는 입으로 나지막하게 셋까지 세었다.

그리고 터져 나온 죽음의 선고.

구오오오.

그에 화답하듯 나이트 골렘의 동체가 가슴에서부터 균열을 일으키기 시작하더니, 이내 돌 부스러기가 땅으로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캬아, 죽이는 이 손 맛!”

이중극점은 한마디로 때린 곳을 또 가격하는 원리의 스킬이었다. 하지만 이중극점의 경우에는 그것을 한 단계 고차원화 시켜 한 번의 충격으로 두 번의 충격을 연달아 입혔다. 실제적으로는 거의 실현 불가능에 가까운 스킬이었겠지만, 『오벨리스크』는 엄연한 가상현실.

가상현실에서 안 되는 게 어디 있지? 다 되지.

“아, 이게 바로 골렘의 핵이라는 건가?”

나이트 골렘이 완벽하게 돌 부스러기로 변해버리자, 천휘의 눈에 영롱한 푸른빛을 뿜어내는 둥그런 돌이 들어왔다. 천휘는 직감적으로 그것이 말로만 듣던 골렘의 핵이라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확인!”

[나이트 골렘의 생명 구슬]

나이트 골렘의 생명력이 담긴 구슬.

골렘을 지탱하는 핵과 같은 것으로 엄청난 생명력을 지녔다.

분류:재료 아이템

제한:일반 무기나 방어구의 제련 아이템으로 사용될 수 없다.

“역시 시약의 일종이었나? 흐음, 생명력이라……. 쓸 만한데? 근데 이게 전부야? 완전 거지새끼잖아? 겉만 번드르르한. 젠장!”

나이트 골렘은 보스 몬스터에 근접한 능력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고작해야 재료 아이템 하나를 떨어트리고는 이렇다 할 아이템 하나 떨어트리지 않았다.

천휘는 속상한지 나이트 골렘의 돌 부스러기를 발로 꾹꾹 지르밟아 주고는 석상을 지키고 서 있던 거대한 문 앞에 섰다. 그의 뒤에는 마치 시립하듯 미친 소와 냥이가 서 있었다.

드디어 보스 타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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