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권 - 프롤로그 (1/82)

프롤로그

습하고 후텁지근한 중원 남방의 날씨.

그중에서도 운남 땅의 날씨는 예측을 불허한다. 그리고 그곳의 밀림은 사람의 발길을 허락하지 않는 험지(險地). 운남 땅에서도 내로라하는 사냥꾼조차 그곳에는 발을 딛지 않는다.

그곳에 괴물이 살고 있는 탓이다.

휘익, 휘익.

“허억, 허억.”

그런 운남의 밀림이 별안간 나타난 사람들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그 사람들의 목적은 단 한 가지였다. 맨 앞에서 도주하는 검은 장삼의 사내를 쫓는 것.

“이런 미친 마교 코쟁이들. 어떻게 된 게 무림맹 악질들보다 더 끈질긴 거냐고!”

사내는 이제 겨우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청년이었다. 얼굴도 무척이나 잘생긴 미남자였지만, 문제는 지금 수십 명의 절정 고수들에게 쫓기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젠장! 마교 코쟁이 자식들 진짜 인간의 탈을 쓴 거머리들 아냐?”

“거기 서라! 천휘!”

“헉! 저 녀석은 마교 부교주 전귀 녀석이잖아? 젠장! 녀석에게 잡히면 끝장이다! 나와라, 철인 28호!”

천휘라 불린 사내는 추격자가 바로 등 뒤까지 쫓아오자, 기이하게도 머리카락이 쭈뼛 세워졌다. 그리고는 사내는 등 뒤에 메고 있던 커다란 행낭 속에 손을 집어넣고는 그 안에서 사람의 형상을 띤 무언가를 꺼냈다.

“28호! 당장 저 녀석을 저지해!”

그릉.

“천휘! 넌 끝장이다!”

“이크! 28호, 부탁한다!”

마교 부교주가 이제는 한 번의 도약으로 천휘라는 사내를 잡을 수 있는 위치에 당도했다.

하지만 마교 부교주는 천휘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의 앞에 검은색 무복을 차려입은 철인 28호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철골강시! 이런 빌어먹을! 천휘! 또 도망가는 것이냐!”

“도망가건 어쩌건 내 맘이다! 날 잡고 싶거든 그 철인 28호나 이기고 쫓아와라. 으하하하!”

“이런 비열한!”

마교 부교주는 천 제국에서도 알아주는 초절정 고수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 혼자서는 눈앞의 철골강시, 철인 28호조차도 상대하기 버겁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가 만든 강시는 그만큼 특별하다.

마교 부교주를 떨쳐 내고 천휘는 밀림에서 방향을 선회해 북쪽으로 향했다.

자신이 현재 목표로 삼고 있는 곳은 서대륙으로 넘어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인 천룡 산맥. 그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본래 서장을 통해서 가야만 하지만 마교의 추격대 때문에 서장이 아닌 운남을 통하는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운남의 그 유명한 ‘괴물’ 자식을 어떻게 구워삶느냐는 건데. 내가 가지고 있는 최고의 강시로도 그 ‘괴물’ 녀석만큼은 힘든데 말이야.”

운남에는 ‘괴물’이라 불리는 천 제국 최강의 마물이 살고 있다. 사신수(四神獸)와 같은 신수들을 제외하고는 명실상부 천 제국 최강으로 군림하는 마물, 천자혈령지주(天刺血靈之蛛)가 그것이었다.

녀석에 대한 일화는 대단하다.

천 제국에서는 삼존으로 분류되는 최고의 고수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마교의 현 교주이자, 천마신공을 대성한 마존 구마적은 천 제국의 지존이었다.

그런 그가 천자혈령지주를 잡기 위해 마교의 고수 2백 명을 이끌고 운남의 밀림으로 들어섰다.

하나, 2백 고수 모두가 절정 고수 이상으로 강기를 뿜어낼 수 있는 강자들이었음에도 밀림으로 들어선 지 보름 만에 모두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다.

후에 마존 구마적이 부활하여 말하기를, ‘그 녀석은 ‘괴물’이다. 지금 수준의 나로서는 녀석에게 생채기조차 낼 수 없다’라고 했다.

지금으로부터 현실 시간으로 반년, 게임 시간으로 1년 반 전의 이야기였지만, 아직까지도 마존 구마적은 녀석에 대한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그만큼 녀석에 대한 충격이 컸단 말이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나의 최종 병기 천마강시로도 녀석을 이길 수 없다는 말이지. 흐음. 하지만 녀석을 지나쳐야 천룡 산맥으로 들어설 수 있는데…….”

천휘가 그렇게 고심을 하고 있는 동안 밀림 저편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들은 분명히 마교 부교주 전귀와 그의 수하들일 터였다.

“호오, 이거 잘하면 꿩 먹고 알도 먹을 수 있겠는데?”

천휘는 조소를 흘리며 어두운 밀림 속으로 스며들었다.

“천휘 이 자식! 대체 어디로 도망친 거야?”

“혹시 그 녀석에게로 간 건…….”

“말이 되냐! 녀석은 마존께서도 어쩌지 못한 ‘괴물’이야! 약아빠진 천휘 그 자식이 그 정도도 분간 못할 것 같아? 잔소리 말고 애들 풀어서 이 근방을 샅샅이 뒤져 봐! 천휘 그 자식은 강시만 없으면 일류 무사도 이기지 못하는 허접이니까, 우리의 눈을 속이고 다른 곳으로 갔을 리가 없어!”

“충!”

부교주 전귀의 명령에 마교 무사들이 사방으로 흩어지며 밀림을 이 잡듯 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록 천휘의 종적은커녕 그림자조차 찾을 수가 없었다.

“이제 남은 곳은 그곳뿐입니다.”

“젠장! 그 자식이 정말 그 근처에 숨었다는 건가! 큭. 할 수 없다. ‘괴물’의 거처로 이동한다. 최대한 녀석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도록 애들에게 입단속 철저히 시켜!”

“알겠습니다.”

[띠링! ‘천자혈령지주의 거처’ 필드에 들어섰습니다.]

[띠링! 천자혈령지주의 영향으로 능력치 15% 하락합니다.]

결국 마교의 추격대는 천자혈령지주가 있는 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하지만 그들의 발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 무겁기 짝이 없었다.

‘드디어 이쪽으로 오는군.’

과연 그들의 생각대로 천휘는 천자혈령지주의 거처 근방에서 은신하고 있었다.

그가 그곳에서 이틀이 지나도록 건사할 수 있었던 건 거미들이 싫어하는 액체를 몸에 바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식초와 산성이 강한 모과를 일정 비율로 혼합하여 만든 액체로, 이런 일이 있을 때를 대비해 미리 만들어둔 것이었다.

‘이제 건담들을 움직여야겠군. 녀석들이 잘 걸려들어야 할 텐데.’

마교의 추격대가 자신이 은신하고 있는 곳으로 접근하자, 천휘는 곧바로 미리 준비해놓은 건담 1, 2, 3호를 움직였다.

“앗! 저것은!”

“천휘 자식이 건담이라 부르는 혈강시들이로군! 좋아! 이로써 녀석이 이 근방에 있다는 것이 확실해졌군! 당장 녀석들을 뒤쫓아 간다!”

“충!”

건담 3기를 따라 멍청한 마교의 추격대가 천자혈령지주의 거처로 일제히 들어서자, 천휘는 득의에 찬 미소를 지으며 그 뒤를 따라갔다.

천휘는 비록 무공은 뛰어나지 않았지만, 삶에 대한 엄청난 집착으로 이루어진 뛰어난 경신술과 은신술이 있었다.

“더 이상은 안 됩니다!”

“지금 명령에 반하는 건가! 조금만 더 쫓으면 녀석을 잡을 수 있단 말이다!”

“하지만 이 이상은 그 ‘괴물’ 녀석의 심기를 건드릴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부교주께서도 아시지 않습니까!”

부하의 말에도 부교주 전귀는 냉담한 표정으로 일관했다.

“우리가 여기에서 목숨을 잃는 것은 상관없다. 어차피 한 번 죽는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도 없으니까. 하지만 마령혈천권법(魔靈血天拳法)을 회수하지 못한다면…….”

꿀꺽.

“우리는 마교에서 제명될 수도 있다.”

부교주 전귀의 말에 추격대원들의 표정이 사이하게 변했다. 더불어 그들의 눈빛에서는 반드시 해내겠다는 투지가 일렁이고 있었다.

“들어선다!”

“충!”

‘흐흐, 역시 들어가는군.’

마교 추격대가 ‘괴물’의 아가리로 들어서자, 그제야 천휘는 녀석들의 꽁무니를 쫓지 않고 우회하기 시작했다.

‘건담 세 기가 아깝긴 하지만 천룡 산맥으로 무사히 들어설 수 있으니, 그 정도는 버려 주지.’

“끄아아악!”

“드디어 시작인가?”

난데없는 비명 소리에도 천휘는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경공을 더욱 빠르게 전개했다.

툭.

[띠링! 혈강시 3기와의 연결이 끊어졌습니다.]

“큭, 건담 세 기가 동시에 부서졌다?”

강시들은 제작자인 자신과 영성으로 연결되어 있다. 때문에 강시들이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파괴될 경우, 천휘는 정신적인 충격을 입게 된다.

“젠장! 서둘러야겠어. 아무래도 예감이 좋지 않아.”

이제껏 게임을 해오면서 천휘의 위험한 예감이 맞아떨어지지 않았던 경우는 없었다. 덕분에 천휘는 천 제국의 모든 고수들을 생사대적으로 돌리면서도 이제껏 게임을 접지 않고 계속해서 해올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천휘의 탁월한 위기 감지 능력이 발휘되며 머리카락이 다시 한 번 쭈뼛 세워지고 있었다.

“이제 남은 강시라고는 천마강시 한 구랑 혈강시 다섯 구, 그리고 철골강시 열두 구가 전부인데……. 어쩔 수 없지. 여기까지 와서 죽을 순 없으니 철골강시 두 구를 소모하는 수밖에. 나와라, 철인 15호, 16호.”

천휘의 등에 메인 커다란 행낭 속으로 또다시 손이 들어갔다 나오니, 철골강시 2구가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처음 보여 줬던 철인 28호에 비해 이번에 모습을 드러낸 철골강시는 어딘가 어색한 면이 역력했다.

“어차피 버릴 녀석들, 실패작들을 써야겠군. 너희 둘! 이 자리를 어떻게든 지켜 내라! 절대 그 누구도 그곳을 못 넘도록 하란 말이야.”

그릉.

그릉.

철인 15호와 16호가 명령을 알아들었다는 듯 낮은 소리를 내며 몸을 돌렸다. 그 모습을 확인한 천휘는 다시 경공을 전개해 서쪽으로, 서쪽으로 내달렸다.

툭.

“젠장! 시간이 얼마나 지났다고 철골강시들이 부서지는 거냐고! 마교 녀석들이라면 제아무리 녀석들이 실패작이라고는 해도 이렇게 빨리 부수지 못해. 역시 ‘괴물’ 녀석인가?”

이제 일각 정도만 더 경공을 전개하면 운남의 밀림을 벗어나 천룡 산맥으로 들어서게 된다. 그렇게만 되면 ‘괴물’ 녀석도 자신을 쫓지 못한다.

자신이 알고 있는 바대로라면 녀석은 천룡 산맥의 입구를 지키는 문지기. 문지기는 문을 넘어서지 못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윽! 녀석이 벌써!”

경공으로라면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고 자부하던 천휘였지만, ‘괴물’ 녀석의 빠르기는 상식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천 제국 최고의 경공 고수라는 무영신투조차도 녀석에게는 한 수 뒤질 정도라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젠장! 그래! 여기서 죽으면 죽도 밥도 안 돼! 철인 시리즈 다 나와라!”

천휘가 경공을 전개하면서 행낭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그러자 그의 뒤편으로 각양각색의 철골강시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철골강시들의 모습이 모두 다른 이유는, 강시들을 제작할 때 천휘의 강시 제작 숙련도가 모두 다른 탓이었다. 때문에 위력도 제 갖가지. 그러나 어느 것 하나 허투루 여길 만한 것이 없을 정도로 철골강시들은 뛰어났다.

“너희들은 거기서 뒤쫓아 오는 ‘괴물’ 녀석을 막아!”

천휘는 신경질적으로 철골강시들에게 명령을 내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서쪽을 향해 경공을 전개했다. 어차피 ‘괴물’에게 박살날 철골강시들, 미련을 두지 않으려는 생각에서였다.

그릉.

뚝.

“큭, 제길!”

강시는 본래 죽은 존재들이기에 비명을 지르지 않는다. 하지만 천휘는 지금 철골강시들이 비명을 내지르는 것과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들과 자신을 이어주고 있는 가는 선이 점점 끊어지는 상황. 천휘는 그럴수록 주먹을 으스러지게 움켜쥐었다.

[띠링! 혈강시와의 연결이 끊어졌습니다.]

“드디어 마지막 녀석이 부서진 건가?”

다행히 마지막 철골강시와의 연결이 끊어진 시점은 일각 무렵이 지났을 때였다. 절정 고수도 상대 가능한 철골강시들은 역시나 천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이제 저 능선만 넘어가면… 헉!”

다시 한 번 천휘의 머리카락이 쭈뼛 솟아올랐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가공할 만한 속도로 자신의 뒤를 쫓고 있는 것이 아닌가.

“빌어먹을, ‘괴물’ 자식! 어쩔 수 없어!”

더 이상 강시들을 훼손시킬 수 없었다.

천룡 산맥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자신의 행낭 속에 고이 잠들어 있는 강시들이 반드시 필요했다.

천휘는 굳은 표정을 하고는 등에 멘 행낭이 아닌 허리춤에 매인 작은 행낭에서 검붉은 단약을 하나 꺼내 입으로 가져갔다.

“끄아아악!”

[띠링! 모든 스탯이 2배로 상승합니다.]

단약을 먹기가 무섭게 천휘의 입 안에서 끔찍한 비명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와 동시에 천휘의 머리카락이 하늘로 용솟음치며 그의 전신에서 검붉은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두고 봐라, ‘괴물’! 내가 만약 다시 천 제국으로 돌아온다면 네놈을 나의 귀환 후 첫 제물로 삼아줄 테니까!”

천휘는 악에 받친 고함을 내지르고는 곧바로 서쪽의 능선을 향해 경공을 전개했다.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빠르기.

그의 신형은 한 줄기 빛살과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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