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리고 너는 용이 되어-101화 (101/102)

5권 4장. 쿠데타-(2)

다음날, 신문에는 대문짝만하게 헤드라인이 실렸다. 제목은 「800명을 죽인 사람」이었다. 헤르만 예거는 하늘에서 352명을 죽였다. 에리히 아벨은 땅에서 448명을 죽였다. 따라서 나는 총 800명을 죽였다. 나는 내가 죽인 사람들을 모두 기록해 두었기에, 저런 구체적인 수치가 나올 수 있었다.

당연히 도이체스 전역은 충격에 빠졌다. 아니, 도이체스는 연달아 거센 역풍을 계속 맞고 있었다. 쿠데타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서, 주동자 세력에서 전 정권의 악행을 대부분 언론에 공개했기 때문이었다. 그 정보의 투명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출처가 반드시 필요했고, 나는 내 행적을 모두 공개함으로써 그 증거들에 신빙성을 부여했다.

몇몇 언론은 이걸 이텔이 자행한 숙청으로 해석하기도 했다. 쿠데타에 내가 기여한 바가 너무 크니 제거한 것으로 여겼다. 궁금증은 증폭되었지만, 구치소에 있는 나는 모든 인터뷰 요청을 거절했다.

그래서 도이체스는 나라는 인물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나는 『공백』의 희생자였고, 드라헨킨더였고, 전쟁 영웅이자 가해자였다. 피해자 중 한 명인 한스 윈터는 그런 나에 대해 냉소적인 칼럼을 써내기도 했는데, 아쉽게도 소식만 접할 수 있을 뿐이었다.

일단 지금 당장 사형은 내릴 수 없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심장석 때문이었다. 나는 나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유포하도록 허락했고, 나의 과거사와 행적들은 뜨거운 찬반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나는 에리히였을 때 죽인 448명에 대한 수사가 종결될 때까지 6개월동안 구치소에 있었다. 그러는 동안 간간이 전해지는 외부 소식은 나의 예상대로였다. 황제는 자살한 채로 발견, 우나 브라운과 황태자는 사형을 언도받고 집행되었다는 소식 등등.

나는 드라헨킨더였기에, 일반 인간의 구치소가 아니라 광폭화된 용을 격리하는 시설에 수감되었으며, 심장석은 다른 곳에 두었다. 심장석과 나의 물리적 거리는 사실상 아무 문제도 되지 않았지만, 세간에 보이는 것이 문제였다. 나는 시간이 흐를수록 형량이 차곡차곡 더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사실 대부분의 시간 동안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보냈다. 아무것도 머릿속을 지나가지 않았다. 내가 그토록 바라던 순간이 지금 와 버려서, 너무나 비현실적이었다.

대통령이 독촉까지 해서 나에 대한 수사는 6개월만에 종결되었고, 나는 법정에 서게 되었다.

하루 전, 나를 찾아오는 사람이 있었다.

“면회 사절입니다.”

그렇게 말했지만, 찾아온 사람은 막무가내였다. 정장 차림의 여자가 유리막 뒤에서 말했다.

“저는 예거 씨의 변호사입니다.”

“변호인···? 됐습니다. 절 변호하면 당신에게 들어간 세금이 아까울 겁니다.”

“저는 국선변호인이 아닙니다.”

그 말에 고개를 들었다. 지적으로 보이는 변호사가 말했다.

“당신의 루프트바페 대원들이 모금해서 선임된 변호사입니다. 앞으로 당신을 변호할 겁니다.”

“그러니까 변호사는 필요 없···”

“필요하시게 될 겁니다.”

그 말을 하고 변호사는 나갔다.

아니야. 필요 없어. 필요해서는 안 돼.

마침내 재판 당일, 나는 법정에 출두했다. 그러자마자 온갖 플래시가 터지기 시작했다.

재판이 진행되었다. 검사가 400건 이상에 달하는 범죄행위를 전부 읊었기 때문에, 재판은 지루하게 진행되었다. 나는 남이 말하는 내 범죄를 듣고 있었다.

그 다음은 변호인의 차례였다. 꽤나 실력이 좋은 변호사였던지, 그녀는 나에 대한 정상 참작을 호소했다. 나는 그것을 멍하니 듣다가, 어느 한 대목에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또한 그는 전 정권이 학살할 뻔한 2천만 명의 크라쿠프인을 무사히 탈출···”

나는 급히 방청석으로 시선을 돌렸다. 기자들 사이로, 루프트바페 정복을 입은 사람들이 몇 눈에 띈다. 그리고 그 중에는, 나와 크라쿠프에 동행했던 게랄드 회플러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말하지 말라고 했었는데.

자폭 캡슐까지 심어 놓았는데.

내가 멍하니 바라보자, 게랄드는 그저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움직이는 입술을, 읽는다. ‘죽이든가 말든가, 맘대로 하세요.’

그러고도 한참 뒤에, 변호가 끝났다. 배심원단이 투표를 하고, 이제 판사가 판결을 낭독한다.

“헤르만 예거의 범행은 모두 고의성이 짙은 것입니다. 그가 끼친 사회적 영향을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그는 불의에 맞서 싸웠고, 피해자가 되었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의 일생 동안 448명 가량의 사람을 죽였어도 다음과 같이 판결합니다. 배심원단의 투표 결과 만장일치로, 539건의 위법 행위에 대하여 무죄 판결합니다.”

판사가 망치를 들고 땅, 땅, 땅 하고 내려쳤다.

나에게는 그 소리가 머리를 울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아니야.”

“예거 씨? 이제 나가시면 됩니다. 옷을 돌려드릴 테니, 이쪽으로···”

“이건 아니야.”

그러나 일은 나의 의사를 무시하고 착착 진행되었다. 나는 누가 대기시켜놓기까지 한 자동차에 올라타서, 멍하니 집으로 향했다.

나는 자유의 몸이었다.

그 뒤로 며칠, 나는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나오지 않았다. 기자들이 계속 시끄럽게 인터뷰 요청을 해서 방음 결계까지 쳤다. 담을 넘으려는 자들까지 있어서 나는 결계를 더욱 강화했다. 그 며칠 동안 나는 물이나 우유만 간간이 마시며 유령처럼 앉아 있었다.

그 침묵이 깨진 건 히데 프롬이 내 눈앞에 나타나면서부터였다. 히데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엉망이군요.”

“여긴 어떻게···”

며칠 동안 한 마디도 안 한 내 목소리는 무척 탁하고 여기저기가 갈라져 있었다.

“담 넘어서 왔습니다.”

“하지만 결계가,”

“그 정도 결계로는 용병기를 충분히 장비한 용기사를 막을 순 없습니다. 우선, 씻죠. 그 뒤에 이야기하도록 합니다.”

그러면서 히데는 나를 잡아 일으켰다. 버텼지만 !파라의 힘을 이겨낼 수 없어서 질질 끌려갔다. 히데는 날 샤워실에 밀어 넣고 문을 닫아 버렸다.

말끔히 씻고 면도까지 하고 나오자 히데가 이미 홍차를 한 잔 우린 뒤였다.

“드시죠.”

“고마워···”

나는 홍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제야 내 배에서 크게 꼬르륵 소리가 났고, 히데는 찬장 속의 쿠키를 몇 개 꺼내왔다. 그것들은 눅눅했지만, 어쨌든 맛있었다.

“왜 왔어?”

“걱정되니까요.”

“나는 괜찮아.”

“거짓말은 안 하셨지만, 헛소리 마십시오.”

히데가 홍차를 한 입 마시고 말을 이었다.

“게랄드가 참 결정적인 일을 했지요.”

“···역시.”

“단체를 만들어 조직하고, 구명을 위해 적극 나서고, 크라쿠프의 건에 대해선 빈랜드에 있는 망명정부에게서 인증까지 받았습니다. 게랄드가 절반은 크라쿠프인이라는 것, 아셨나요?”

“···전혀 몰랐어.”

“게랄드 입장에선, 자신의 반쪽 조국을 지켜 준 영웅이었던 거죠. 그래서 최고의 변호사를 선임하는 비용을 모금하는 등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여론전에도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고요. 그러니 무죄를 이끌어낼 수 있었던 거겠죠.”

그 말을 듣고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히데가 그런 나를 바라보더니 말했다.

“하지만 그 당사자는 전혀 기뻐하지 않는 것 같군요.”

“기쁘지 않아.”

“왜지요?”

“난 무죄가 아닌걸.”

“그럼 어떻게 되었어야 한다고 생각하셨죠?”

“···”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나요?”

“···아마도.”

“왤까요?”

“그게 당연하니까?”

“하지만 배심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죠.”

“그렇지만, 그래선 안 되었어.”

정리되지 않은 말이 쏟아진다.

“난 기다렸다고. 내가 심판받을 날만을 기다렸어. 그래서 견딜 수 있었어. 그래서 참을 수 있었어. 언젠간 죗값을 치를 테니 악해질 수 있었어. 하지만, 하지만 이게 뭐지? 난 아무것도 치르지 못했어. 내가 이 순간만을 기다렸는데···”

그런 내 말을, 히데는 잠자코 듣고 있었다. 히데가 말했다.

“게으르군요.”

어줍잖은 위로 대신 들려온 냉정한 평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히데가 말했다.

“편안하게 단죄받으려 하신 것, 무리는 아니지만, 결국은 게으르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재판에서 사형을 받았더라도, 그런 태도는 잘못되었다고 생각해요. 남이 대신 해주는 속죄에 무슨 의미가 있나요? 아니면 설마, 자신의 목숨이 800명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신 겁니까?”

그 말에,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했다. 히데가 말했다.

“저는 죄니 뭐니 하는 건 잘 모르지만, 그렇게 생각합니다. 속죄는 스스로에게 가장 고통스럽고 알맞은 방식으로 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걸 할 방법은, 적어도 여기 틀어박혀서 말라가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이제 자유의 몸이니, 더 많은 걸 할 수 있겠죠.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해 봐요.”

나는 그녀의 말에 눈을 끔벅거렸다. 히데의, 얼핏 들으면 잔인하기까지 한 말들은 내 안의 무언가를 일깨웠다. 나는 간신히 이 말만 할 수 있었다.

“고마워.”

그러자 히데가 애처롭게 웃었다.

히데를 돌려보내고 이틀간, 나는 고민했다. 집 안에서 계속 고민했다. 무엇이 좋을지. 무엇을 해야 좋을지.

이틀이 지나자, 나는 정장을 갖춰 입고 문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몰려든 인파에게 말했다.

“내일 기자회견을 갖겠습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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