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리고 너는 용이 되어-100화 (100/102)

5권 4장. 쿠데타-(1)

파티에서 폰조를 영입한 이후로, 계획은 순식간에 진행되었다. 원래 쿠데타는 일주일 이상 끌면 안 된다. 보통의 쿠데타와 다르게 가담자들에게 맹세까지 걸어뒀지만, 그 이상 움직였다가는 우리의 행동이 중앙에 포착되기 때문이었다. 반드시 신속해야 했다.

쿠데타의 원리는 간단하다. 우리가 장악할 권력을 이미 쥐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우리의 행동을 방해할 사람들을 제거하거나 억류시키고 자리를 빼앗으면 된다. 하지만 보통 쿠데타를 벌이는 인원은 무제한의 병력을 쓸 수 없기 때문에, 우선순위를 나눌 수밖에 없다. 목표는 그들의 완벽한 무력화가 아니라, 그들이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활동할 수 없게 하는 것이다.

쿠데타의 핵심인 이텔은 궁으로 가서 황제와 황태자를 억류한다. 나는 비밀경찰 신분이기도 하였으므로, 게슈타포의 수장과 수도방위사령군의 지휘체계를 전부 내려버린다. 경찰을 휘어잡는 것이다. 폰조는 K(크산티페)의 사보타주와 동시에 수도방위사령군들을 장악한다.

대충 계획은 이러했고, 나는 이 계획을 생각해낸 바로 당일에 필요한 사람을 포섭하며 다니기 시작했다. 성급해 보이지만, 그래야만 했다.

마침 적절하게도, 내가 장성이 되었기 때문에 인터뷰를 따러 온 사람이 있었다. 그에게는 악몽 같은 선택이었겠지만, 라인스의 설득과 내 영향력으로, 날 인터뷰하는 사람은 그가 되었다.

나는 한스 윈터를 내 집에 초대했다.

그는 칼럼작가이기도 했지만 요즘은 라디오에도 몸을 담고 있다. 방송국을 사보타주할 사람은 한 명이라도 많으면 좋기 때문에 나는 한스 윈터를 포섭할 생각이었다.

한스 윈터를.

라인스를 데려와도 된다고 미리 말해두었지만, 한스 윈터는 혼자 오겠다고 거절했다. 나는 집에서 윈터의 칼럼을 읽다가, 초인종 소리가 들리자 밖으로 나갔다.

눈앞에는 눈에 띄게 초췌한 한스 윈터가 있었다.

우리 둘은 잠시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고,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어서 오십시오.”

내 음성을 들은 한스는 크게 움찔하긴 했지만, 전처럼 발작하지는 않았다. 도대체 무슨 정신력일까. 자신을 고문한 자를 있는 힘을 다해 태연하게 마주한다. 나는 한스를 안으로 들여보냈다.

한스가 홍차를 좋아할지 말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나는 미리 준비한 커피를 내왔다. 김을 피워올리는 커피를 창백한 낯으로 지켜보던 한스는 내가 자리에 앉자 대뜸 물었다.

“나에게서 무얼 원하시오?”

내가 가만히 바라보자, 한스가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굳이 나를 부른 이유가 무엇이냔 말이오.”

나는 잠시 한스를 바라보다가, 대답했다.

“그동안 선생님의 칼럼을 쭉 읽었습니다. 당연히 당신의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몇 가지만은 알게 되었지요. 선생님에게 인륜이라는 게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제게서 갖은 고초를 당하고도 그대로 유지하셨던, 그런 인륜 말이죠.”

그 말을 하자 한스 윈터는 증오를 가득 띤 눈빛으로 나를 쏘아보았다. 나는 그의 ‘인륜’을, 기자로서의 ‘직업윤리’를 한 번 꺾은 사람이다. 한스는 내가 시행한 고문 때문에 내부 고발자이자 제보자의 이름을 누설했었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건 놀리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앞으로는 그 인륜을 유지할 수 없을 겁니다.”

내가 그렇게 말하자, 한스가 눈에 띄게 몸을 떨었다. 표정으로 보건대 분노와 두려움, 둘 다 섞여 있다.

“악마.”

“진정하십시오. 제가 그러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도이체스는 아슬아슬하게 어떤 선을 넘지 않고 있지요. 이제 그 선을 넘기 일보 직전입니다. 그러면 엄청난 차별과 더불어 대학살이 일어나겠죠. 역사책에 기록될 만한, 그런 학살 말입니다.”

나는 잠시 숨을 골랐다가, 말한다.

“곧 극우 세력에서 ‘도깨비 법령’이라는 것을 통과시킬 겁니다.”

한스는 노련한 언론인답게 이 한 마디만으로도 많은 것을 읽어낸 듯, 표정이 일그러진다. 나는 내가 아는 도깨비 법령의 대략적인 내용을 설명해 주었다. 나는 다 들은 그에게 말했다.

“감각이 있으니 아시겠지요. 이 일이 어떤 일을 불러올 지. 도미노처럼 어떻게 파국에 치달을 지.”

“극우 세력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고는 느꼈지만, 이럴 줄은···”

결국 대화의 끝은 한스가 나에게 협력한다는 결론으로 좁혀졌다. 한스는 라인스에게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대강 들어온 바가 있었고, 엄청난 위기감이 증오를 이겨냈다. 그쪽 대화가 끝나자 한스 윈터는 나를 인터뷰했고, 나는 도이체스의 최고 에이스이자 장성으로서 인터뷰를 완료했다.

인터뷰까지 끝나고 한스가 짐을 갈무리하자, 나는 그에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고문을 해놓고, 정작 사죄는 하지 못했었다. 한스는 내 말에 대꾸를 않더니 현관 앞까지 가서야 입을 열었다.

“그때의 당신은 톱니바퀴였지. 그래서 용서하겠소. 하지만 당신은 내 인생과 신념을 꺾었어. 그러니 계속 미워하겠소. 아무리 라인스가 부탁해도, 그것만은 무리야.”

내가 그 라인스에게 건 조건을 들으면 또 뭐라고 할까. 말을 마친 한스는 뒤돌아보지도 않고 내 집을 나왔다. 나는 그 뒤에 대고 중얼거렸다.

“저는 끝을 맞이할 겁니다. 만족스럽진 않겠지만···”

어쨌든, 이로서 방송국의 요원을 한 명 확보했다.

히데와 알비를 포섭하는 건 무척 쉬웠다. 그들에겐 목숨이 달린 문제였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에게 거부할 수 없는 선택지를 준 것이나 마찬가지였고, 그 둘은 당연히 나의 제안을 승낙했다. 알비가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정말, 정말 고맙습니다. 이종족을 위해 이렇게까지···”

나는 그 말에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감각을 느꼈다. 내가 하는 일은 이종족을 위해서인가? 틀렸다. 그러면 나는 이종족이 어떻게 되든 말든 상관이 없나? 그 역시 틀렸다.

이때 내가 말을 하면 히데는 과연 어떻게 판별할 것인가. 나는 그 말에 긍정하거나 부정하는 대신 이렇게 히데와 알비에게 말했다.

“내가 해달라는 대로 힘써 줘. 안 그럼 너희들은 죽게 될 거야. 운 좋게 너희들만 망명시킨다 해도, 다른 이종족은 그 철퇴를 맞게 될 거야.”

이 말은 한 치의 거짓도 없었다.

그렇게 쿠데타에 필요한 인원들만 차례로 포섭한다. 이제쯤 적당하다 싶을 때쯤 나는 끊었고, 곧바로 쿠데타 실행에 돌입했다. 쿠데타를 계획한 지 4일 만이었다.

나는 알비와 히데, 클로리스가 있는 편대만 따로 뽑아내었고, 나머지 비행단의 용기사들에게는 절대 다른 지역에서 온 용기사들의 이착륙을 허가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다. 지금은 비상사태이며, 그들은 ‘쿠데타군’을 외부에서 지원하러 온 사람들이라고.

새빨간 거짓말이었지만 그럴듯했다. 용기사들 입장에서는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수도로 몰려오는 병력이 쿠데타군으로 보이지 않겠는가. 물론 저쪽이 혼신의 힘을 다해 설득한다면 방비를 풀고 맞아들일 수 있겠지만, 일단 우리는 최초의 몇 시간만 버텨주면 된다. 그리고 도약광장 쪽에는 라인스를 남겨두었으니 선동 면에서는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이다.

비슷한 원리로, 사보타주에 가담한 몇몇 인원을 제외하고 폰조의 병사들은 쿠데타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쿠데타에 있어서 가장 골치 아픈 게 현 정권에 충성하는 애국자 군이었다. 그들은 쿠데타 소식이 들리자마자 수도로 달려올 게 뻔했다. 폰조의 군은 프로이센을 둘러싸고 주요 출입구에 바리케이드를 쳐서 차단시킬 것이다. 하지만 역시 그들의 입장에서, 이전에 지휘부가 쿠데타 세력을 막기 위해 수도를 방어하는 것이라 말해버리면 이쪽이 더 믿음직한 것이 사실이다.

그렇게 역할배치가 되었고, 알비는 미처 거르지 못했던 나머지 방송국들을 다운시키러 떠났다. K(크산티페)가 다운되었으니, 파동계 마법의 방출만으로도 해낼 수 있을 것이다. 히데와 클로리스는 조를 이루어 각각 중요 인사들을 억류하러 떠났다.

나는 친위대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을 맡으러 떠났다.

내가 익히 아는 한 인물의 집. 그 집을 내 휘하의 게슈타포들이 포위하고, 나는 아랫부분에 투명화 마법을 건 용에게서 뛰어내린다. 군중이 하늘의 용을 보고 패닉에 빠지지 않고, 우리가 은밀행동을 할 수 있도록 계산한 조치였다. 문을 열쇠로 열고, 응접실로 향한다.

그곳에는 꼼짝 않고 서 있는 우나 브라운이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50배의 중력임에도 서 계시는군요, 어머니.”

“이래봬도 !파라의 피가 흐르고 있으니까.”

“이제 모두 끝났어요.”

나는 말했다.

“모든 게 끝날 거예요, 우나.”

그 말을 들은 우나가 옅게 웃었다.

그 순간 30대 같았던 얼굴이 비로소 제 나이를 찾아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정말 오랜 기다림이었다. 한 소년이 청년이 되고, 모든 진실을 알기까지.

이 자를 이제 어머니라 부를 필요도 없게 되기까지.

지금으로선 고작 서 있는 게 한계다. 나는 이 집에 걸린 중력을 조금만 약화시켜 주었다. 그것을 느끼자마자 우나는 양손을 내밀었다.

나는 우나에게, !파라 전용 수갑을 채웠다.

그 뒤로 나는 다른 우선순위의 인물들을 가두기 시작했다. 한 명씩 가둘 때마다, 이텔에게 마법 통신으로 보고한다. 마침내 내 마력을 동원한 모든 인물의 억류가 끝나자, 나는 기다렸다.

승전보가 울리기를.

***

이텔 마리아 폰 프로이센은 자신의 부대를 지휘해 궁으로 돌입, 아버지를 억류시켰고, 베르논을 구석으로 내몰았다. 동행한 부하장교는 마약으로 형을 잃은 사람이었기에, 도이체스에 마약이 퍼진 계기를 이야기해주자 분노하며 적극 협력하겠다고 나섰다. 자신의 아버지였지만, 헤르만과 함께 해 온 세월 동안 보고 들은 것이 너무나 많아서 이텔은 아무런 감흥이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베르논만은 직접 해결해야 한다고 느꼈다.

이텔이 무미건조하게 황제를 협박해 퇴위 서류에 날인을 하는 것을 지켜보던 베르논이 이죽거렸다.

“이런 야망을 숨기고 계셨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군요. 이십 년 넘게 숨기느라 좀이 쑤셨겠습니다.”

그 말에 이텔은 차갑게 대꾸한다.

“나에게 야망은 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없다. 다만 해야만 하는 일들이 자꾸만 생기는구나.”

이텔은 퇴위 문서가 완전히 작성된 것을 확인했다. 이제 이텔은 의회로 가야 했다. 이텔은 황제와 베르논의 감시를 그 부하장교에게 맡기고 방을 떠나려고 했다.

방문을 나서기 직전, 베르논이 외쳤다.

“절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거다! 이 긴 도이체스의 역사 중에서 여자가 황제가 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어! 널 대중이 용납할 것 같은가!”

그 말에, 이텔이 뒤돌아선다. 이텔의 시리도록 푸른 눈동자가, 자신의 동생을 응시한다.

이텔이 입을 뗐다.

“무언가 착각하고 있구나, 베르논.”

이것이 이텔이 헤르만 예거에게 건 조건.

“나는 이 나라의 지도자가 될 거다.”

“그건 불가능해.”

“네 의견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베르논. 나는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될 것이니.”

충격으로 휘둥그렇게 뜬 베르논을 보며, 이텔이 덧붙였다.

“황제는 없다. 폰 프로이센 황가는 내 대에서 끝이다.”

이텔은 다시 돌아서서, 방 밖으로 나갔다.

베르논의 앞에서 문이 쾅 하고 닫혔다.

그리고 한 시간 뒤, 복구된 도이체스의 통신과 라디오 방송에서는, 황제가 자신의 치부에 대한 책임으로 스스로 퇴위 문서에 서명했으며, 공주 이텔 마리아 폰 프로이센이 의회에서 9대 1의 비율로 찬성표를 받아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는 소식이 일제히 흘러나왔다.

***

나는 그 이후로 주요 범법자들을 체포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당연히 우나를 비롯해서 『공백』의 책임자였던 사람들, 현 드라헨킨더 실험에 가담했던 자들, 헥사곤을 털어내 찾아낸 도이체스의 치부들. 이텔이 친위대를 해체하기 전에 모두 잡아 두어야 했다. 다행히도 나는 전쟁이 끝나기 직전 아슬아슬하게 모두 체포할 수 있었다.

이텔은 프랑크가 항복 문서에 서명을 하고, 키예프와 정전협정을 맺자 직후 부패의 온상인 친위대를 해체했다. 나 같은 내부 인물이 있으니 도저히 남이 손쓸 도리도 없었다.

나는 이텔과 함께 궁에서 프로이센 전체를 내려다보았다. 나는 이텔에게 말했다.

“각하.”

“여긴 사적인 자리니 편하게 불렀으면 하군.”

“좋아요, 이텔.”

“말까지 놓았으면 하는데.”

그 말에 새삼 이텔을 다시 보았다.

사적인 자리에서도, 이텔은 공주였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이텔은 이제 한 자연인으로서, 나와 대등하게 서 있을 수 있었다. 사적인 자리에서는.

이텔이 덧붙였다.

“나는 너와 똑같은 사람이다.”

그렇게 말하며, 이텔은 황족이라는 겉옷을 마지막으로 파괴해 버렸다. 이텔이 프로이센 전경을 멍하니 바라보며 말했다.

“어쩌면 필연적이었을지도 모르지. 이번 전쟁으로 많은 귀족이 죽었다. 몰락하는 가문들도 많아질 거고. 자연히 권력은 귀족과 황족을 비롯한 엘리트 계층이 아니라 아래로 서서히 내려가겠지. 내가 한 것은 빨리 잘라낸 것뿐이었어.”

“너는 좋은 대통령이 될 거야, 이텔.”

“그러길 바라야지. 다음 선거 때까지 제대로 된 후임이 나와 줬으면 좋겠군.”

“기틀을 다 잡을 때까지 있질 않고?”

“설마 나를 독재자로 보는 것인가, 헤르만?”

마지막으로 떠본 말에 결국 웃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주머니에서 두 가지 물건을 꺼냈다. 하나는 친위대 연대지도자* 계급장, 다른 하나는 루프트바페 준장 계급장.

(*대령.)

나는 이텔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정말 고마웠어. 나의 길을 함께 걸어 주어서. 난 이제 마지막으로 마무리를 할 거야. 이걸 받아주지 않겠어?”

이텔은 한참 내 눈을 바라보았다.

주마등처럼 많은 일이 스친다. 이텔과 함께 사관학교를 보냈던 나날들,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분투했던 날들, 쿠데타를 함께했던 날들······.

이텔은 눈에 약간 눈물이 고이긴 했으나, 내 계급장들을 받아들었다. 나는 이텔에게 마지막으로 인사했다.

“안녕히.”

이텔의 표정을 더 보았다간 견딜 수 없어질 것을 알기에, 뒤로 돌아선다. 모든 계급을 내려놓은 한 사람 헤르만 예거로 이곳을 떠난다.

나는 방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에게 순순히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들에게 체포되었다.

이제는 나의 죄값을 치를 시간이다.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