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권 2장. 동족상잔-(2)
“키리···에?”
내가 선회한 궤적의 끝으로 한 마법의 광풍이 들이닥치고 있었다. 드라헨킨더로서 발달된 여섯 번째 감각으로 무슨 마법인지 느껴졌다. 원소–분자계 마법 ‘키리에.’ 플루오린황산과 오플루오린화안티모니산을 1대 1로 섞은 마법산을 스프링쿨러처럼 광역 살포하는 마법이다. 3대 강산으로 불리는 염산, 질산, 황산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강하며 용의 신체 방벽마저 무력화시키는 아주 위험한 산이다.
소피는 자신의 생명력을 희생해 초강수를 둔 것이다. 마법은 시시각각 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하르트만의 마법으로는 저것을 막아낼 수 없었다.
마치 ‘내’ 마법을 쓰라고 강요받는 기분이었다. ‘나’라면, 저 죽음의 마법을 막아낼 수 있겠지. 마법을 쓴다면.
그리고 그 다음에는?
심장석이 어떻게 반응할지 모르지만, 최악의 경우 터진다. 그러나 저 마법에 맞아 죽으면, 터진다.
나는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 거지?
위험을 무릅쓰고 마법을 써야 한다는 생각으로 기울기 직전, 내 옆에 차폐막이 생겨났다. 히데가 내 넋두리를 듣고 재빨리 생성해 낸 테플론 막이었다. 마법산이 녹이지 못하는 신물질. 죽음의 산에게서 벗어났다. 그러는 동안 하르트만의 꼬리 끝, 띄워 놓은 10개의 금속 창 중 2개가 녹았다.
어쨌든 살아남는 데는 성공했다. 사선에서 벗어나기 위해 비스듬히 상승. 하르트만의 꼬리를 복구시켜 주고 싶지만 지금은 무리다.
빠른 속도로 직진하며 전장을 이탈. 그러나 용 하나가 집요하게 붙어서 쫓아온다. 수적 열세를 감안하고서라도, 이렇게 한 번 시야에서 놓치면 언제 기습을 받을지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확인해보니 소피는 아니었다.
나는 나선을 그리며 상승하기 시작했고, 적룡도 나를 따라온다. 두 용이 전장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드라헨킨더의 감각을 넓게 펼치니 전체 전황이 느껴졌다. 아들러들은 폭격룡을 사냥하고 있었고, 볼랑 티거들은 그런 폭격룡을 수호하며 아들러와 싸우고 있었다. 급조한 아들러 전대치고는 전력이 비등비등했다. 그것은 아마 우리가 ‘로브 노스’로 볼랑 티거를 전에 대량으로 죽여 버렸던 탓에 신인이 많이 들어왔기 때문일 것이다.
감응 범위를 한 번 더 넓히니 이 전장에서 무슨 마법이, 죽음이 벌어지고 있는지 생생하게 느껴졌다. 볼랑 티거가 호위중인 폭격룡은 아들러에게 공격당하면서도 필사적으로 폭격을 시행하고 있었고, 그 포탄들은 지상으로 떨어진다. 아무도 없는 산골짜기에 떨어질 때도 있고, 광장 한가운데에 떨어져 분수를 부수고 상점 유리창을 충격파로 전부 깨뜨리기도 했다. 그 파편이, 웅크리고 있는 길고양이에게 직격해 찢어놓는다.
어떤 것은 인가에 떨어지기도 했다. 지하실에서 웅크리고 있던 세 명의 인간이 와르르 무너지는 집과 석재 파편에 깔려 그대로 죽는다. 격추된 용의 사체가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건물을 부수기도 한다. 폭격으로 피해 입은 자의 절규가 메아리친다.
나는 참사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나는 그 모든 죽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지금까지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했던 경험이었다. 그동안 나는 사냥꾼이자 암살자였다. 내가 에리히 아벨이었을 때도, 하늘의 헤르만 예거였을 때도 그랬다. 내가 죽인 사람을 셀 수 있는 세계에서 나는 살았다.
나는 이런 지옥을 직접 마주하지 않았었다.
지상의 인간 하나하나에게 공감하기 직전에 나는 감응을 중단했다. 생각하지 말자. 다른 모든 이의 슬픔 따위는 생각하지 말자. 나 자신의 슬픔조차도 생각하지 말자.
지금은 동족상잔에 집중해야 한다.
나의 세상에 유일하게 남은 타라를, 계획적으로 살해해야만 하니까.
나는 나선 상승의 반지름을 점점 좁히기 시작했다. 하르트만은 아바셋이 아니었지만, 그동안 숙련된 나의 조종술과 이 슈미트무트 종의 선회력을 믿었다.
슬슬 엄청난 G가 걸리기 시작했다. G가 커질수록 피는 아래로 몰리며, 시야가 회색빛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거기서 더 G가 커지면 시야가 완전히 캄캄해지며 정신을 잃는다. 지금의 선회대결은, 튕겨나가지 않을 경우 급증하는 G 사이에서 누가 먼저 의식을 잃지 않고 생존하느냐의 대결이었다. 내가 의식을 먼저 잃으면, 격추당하겠지.
하지만 나는 더 오래 버틸 것이라 확신했다.
마침내 나를 따라오던 적룡이 통제를 잃었다. 한 번의 데자뷰가 느껴졌지만, 별 소용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힘없이 자동 기동하는 적룡의 6시 방향으로 다가갔다. 사선에 적룡을 정렬하고, 방아쇠를 당긴다.
적룡의 사출공에 정확히 맞은 포탄이 폭발.
그렇게 적을 하나하나 제거하다보면, 마침내 소피에게 도달하겠지.
남은 적은 2체.
소피가 출력을 높였다. 전장을 이탈하려는 듯이.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4대 2면 도망치는 것이 낫다. 하지만 도망치게 내버려둘 생각은 없었다.
내 편대 전체에 각자 다른 방향으로 도망치는 두 용을 추격하도록 지시를 내렸다. 공중에 한정시킨 감응력을 확대시키자 나는 그들이 무엇을 노리는지 알 수 있었다.
“모두 집중해! 저들은 의태를 노릴 셈이다!”
그들은 아군 대형 속으로 파고들려 하고 있었다. 소피와 그 요룡이 탄 용은 카플랑 종 중에서도 가장 흔한 색깔을 띠고 있었다. 한 번 시야에서 놓치면 추적이 불가능해진다.
나는 그들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알비에게 통신을 넣었다.
“알비!”
“예!”
“‘오카’로 지금 접근하는 푸른색 용을 겨냥해!”
내 말을 듣자마자 알비가 ‘오카’를 발동시키는 동시에 덧붙인다.
“이 위치에서는 격추가 힘들어요!”
“상처만 내면 상관없어!”
그런 바쁜 대화를 나누는 도중에 파동계 마법 ‘오카’의 강력한 레이저가 소피의 청룡에게 뿜어진다. 거리가 너무 멀어 절단 등의 타격은 없었지만, 푸른 용에게 붉은 흉터를 남기는 데에는 성공한다.
표식을 남겼으니 이제 은신할 수 없다. 나는 허공에 띄운 강철 창을 소피에게 던졌다. 한 번의 데자뷰가 느껴지더니, 소피가 피한다. 또 다른 창을 발사하고, 소피가 계속 피하는 구도. 그렇게 계속 한쪽으로 몰아간다.
그리고 마침내, 소피가 내 사선에 들어온다.
또 시간 되돌리기로 피할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이 위치라면 격추할 수 있다. 방아쇠만 당긴다면.
방아쇠 한 번만 당기면.
손가락을 걸고 힘을 주기까지의 그 모든 시간이 수백 배 느려져서 세분화되는 기분이 들었다.
소피 라리보, 게르발트 로렌츠는 드라헨킨더 실험의 희생자이다. 그녀 또한 나처럼 고통스러운 실험을 받고, 도이체스를 증오하며 이 자리에 섰다. 다른 실험체 친구를 잃기도 했다. 안토니나 코바르첵이 죽었으니 소피는 이 세상 유일의 동족이다.
나는 1초간 망설이고 말았다.
그 망설임의 순간, 소피는 위치를 바꾸었다. 그리고 소피의 기관포가 불을 뿜었다.
그 궤적의 끝은 라헬 융.
기관포가 사출공에 맞아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거무튀튀한 파편들이 하늘에서 흩어진다. 그 생명을 잃은 파편 중에는 라헬도 있겠지. 나는 라헬이 죽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단지 나의 망설임 때문에.
내가 그 지엄한 사실을 깨닫는 동시에 라헬이 만들어 놓았던 강철 창 일부가 낙하했다. 내가 충격으로 통제력을 잠깐 상실했기 때문이었다.
‘결정적 순간에 망설여서, 그래서 대원 모두의 목숨을 위험에 빠뜨린다면 가만 두지 않을 겁니다. 당신을 믿는 아들러를 저버리지 마십시오.’
히데의 목소리가 잘못된 메아리처럼 뒤늦게 내 머릿속을 스쳤다.
나 때문이었다.
내가 주저해서 라헬이 죽었다.
그리고 잔인하게도 전장은 내가 슬퍼하거나 절망할 시간조차 주지 않는다. 소피가 횡전해서 비행궤도를 바꾸고는 히데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소피의 뒤를 쫓아가기 시작한다. 나의 뒤는 다시 소피의 요룡이, 그녀 뒤는 다시 알비가 쫓아가 꼬리를 문다.
총합 다섯 체의 용이 꼬리잡기를 하며 큰 폭으로 선회하기 시작했다.
모두가 2바퀴를 돌았을 때, 나는 히데에게 지시를 내렸다.
“히데! 직진해!”
이대로 직진하면 히데는 소피에게 자신의 6시 방향을 내어주게 된다. 무익하고 위험천만해보이는 명령. 하지만 히데는 나의 지시에 따른다. 히데가 선회를 그만두고 직진하자마자 소피가 기회를 잡고 히데를 추격한다. 아직은 사정거리 밖에 있지만 카플랑은 빠르다. 곧 히데는 따라잡히고, 격추당할 것이다.
나는 11초를 기다렸다.
11초 후, 소피와 소피의 용이 피를 뿜었다. 그들을 죽인 것은 강철의 창. 그러나 소피는 보고 피하지 못하고 즉사했다.
왜냐하면 내가 신기루 마법을 강철 창들에게 걸었기 때문이었다.
소피는 라헬이 죽자 내가 강철 창을 떨어뜨린 것을 보았다. 그 뒤로 하늘에 아무것도 없는 것을 보고, 강철 창이 전부 사라진 것으로 판단했겠지. 하지만 나는 처음부터 신기루로 숨긴 강철 창 2가지는 여전히 통제력을 갖고 있었다. 소피가 눈치 채지 못하게 10초 넘게 기다린 후, 소피에게 보이지 않는 강철 창으로 조종석 째로 꿰뚫었다. 데자뷰도 느껴지지 않고, 감응 범위를 넓혀도 ‘약화된 드라헨킨더’의 존재가 잡히지 않는다.
소피는 죽었다.
나는 통신으로, 이제 폭격룡 공격에 집중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소피의 요룡은 나와 히데가 정리하기로 했다. 내 목소리는 이상하게도 탁했다.
소피의 요룡까지 떨어뜨리자 실감이 났다.
나는 소피 라리보를 죽였다.
히데가 개인 채널로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대령님···?”
나는 모든 통신을 잠시 내려버렸다. 공허했다. 나의 장기를 누가 도려내 간 것처럼 느껴졌다.
아무도 듣지 않게 되자 나는 말했다.
“소피, 왜 이따위로 돌아가는 걸까.”
메마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왜 이러지 않으면 안 되는 걸까.”
그 말까지 한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흐느껴 울었다. 나의 동족을 애도하고 동족을 살해한 자를 저주하면서. 심장석은 오열하는 나의 살갗 위에서 유달리 차가운 감촉으로 와닿았다.
6월 4일의 하늘, 볼랑 티거는 괴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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