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권 프롤로그
크룬트에서 오던 모든 연락이 두절된 순간, 우나 브라운 여단지도자*는 즉시 육군 항공대로 향했다. 붉은 머리칼을 짧게 자른 육군 대령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용의 등 뒤에 올라탄다.
(*소장)
용의 움직임을 누가 관측할 수도 있었다. 이미 우나와 함께 2인승 안장에 탄 육군 대령에게도 무언가가 알려진다. 하지만 우나의 예감은 한시바삐, 가장 빠른 수단으로 크룬트에 도착해야 함을 느끼고 있었다.
우나는 당초 목적지를 드라헨킨더 실험장소 인근의 산으로 주문했지만 이루어지지 못했다. 용이 서크룬트까지 가는 걸 거부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할 수 없이 동크룬트의 공터에 임시로 착륙해야 했다.
그 잠깐 서크룬트의 하늘을 디딘 순간, 우나는 엄청난 마력의 파장을 똑똑히 느꼈다. 우나는 본능적으로 무엇이 되었든 최악의 형태로 파국에 치달았음을 자각했다.
드라헨킨더 실험지는 항상 우나에게 실시간으로 보고하도록 되어 있다. 그곳은 비밀 연구소 때문에 공단을 제외하면 수도권에서 가장 마탄이 많은 곳이다. 그리고 연락이 끊겼고, 지금 서크룬트의 마력은 용이 거부할 정도로 밀도가 높다.
마력이 누출되었다.
그렇다면 마병은 대체 어떤 형태로 나타날 것인가. 아니, 살아 있는 자가 있기라도 할까?
크룬트의 동서는 산맥을 경계로 나누어져 있다. 우나는 산맥을 가로지르는 통로를 막아 선 친위대원에게 설명을 요구했다. 그러자 그들은 어떤 ‘것’을 보여 주었다. 그것은 분명 사람의 형상을 하고 살아 있었지만, 벌써 살이 썩는 악취를 뿜어내고 있었다. 말도 알아듣지 못하고, 말을 하지도 못한다. 하지만 적의만은 선명했다.
‘그것’을 바라보는 우나에게, 다른 친위대원이 보고한다.
“사태를 파악하러 한 중대를 파견했지만,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마력 통신이 전부 고장 난 상태라 라디오 통신에 의지했지만, 연락이 없습니다.”
“죽었겠지.”
우나가 내뱉었다.
“이 마력에선 남자들은 견딜 수 없어.”
친위대원은 전원 남자였다. 그러니, 우나의 살갗을 찔러 오는 위험천만한 감각을 느낄 수도, 대비할 수도 없었다. 우나는 ‘그것’을 힐끗 보았다.
“아니면 저것처럼 되었겠지. 서크룬트로 가는 모든 통로는 봉쇄했나?”
“일단 봉쇄했습니다. 하지만 터널이나 정규 산책로가 아닌 루트까지 이 병력으로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 말까지 들은 우나는 결심을 했다. 조금 더 구체화된 최악의 가능성. 그리고 자신이 앞으로 할 일.
자신이 짊어져야만 하는 업.
우나는 멀찍이서 용을 데리고 있던 육군 대령을 불렀다. 우나는 대령의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너에게 임무를 주겠다. 내용은 나를 따라다니며 보조하는 것이다. 싫으면 거부해도 좋다. 문제 삼지 않겠어.”
애초에 우나는 소속이 다르다. 우나는 친위대, 그녀는 육군. 원칙적으론 타군 장성의 명령에 그렇게 충실히 따를 필요도 없다. 우나도 거부권을 주었다.
그러나 우나는 그러면서도 확신하고 있었다. 그녀의 에메랄드빛 눈동자를 똑바로 보고도 압도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젊은 대령은 흠칫 떨었다. ‘거부해도 좋다’는 말에서 무언가를 직감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결국, 그녀는 수락했다.
우나는 그 자리에서 간단한 짐을 꾸렸다. 각종 에너지 바, 초콜릿, 식수. 대부분은 대령에게 짊어지게 하고 우나는 대검들을 챙겼다. 일곱 자루나. 대령에게는 산탄총을 주었다. 격차가 큰 무장에 대령이 어리둥절해하지만, 설명은 아낀다.
우나는 터널 속으로 발을 내딛는다. 한동안 두 여자의 발소리만 울려 퍼진다. 터널 밖 빛으로 묵묵히 걸어가는 동안, 대령이 결국 참지 못하고 질문한다.
“저는 무엇을 하면 됩니까?”
우나는 잠시 멈춰 섰다.
이제 출구까지 남은 거리는 약 300미터. 지금은 말해 주어도 될 것이다. 우나는 다시 걸으며 말했다.
“내가 괴물들을 처리하는 동안 내 뒤를 봐주면 된다.”
“괴물···이라뇨?”
대령은 아까 친위대원들이 우나에게 보여 주었던 ‘그것’을 보지 못했다. 우나는 어깨만 한 번 으쓱하고는, 입을 닫았다. 묵묵히 걷는 동안, 웅얼거림이 점차 그들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대령은 오싹한 기분을 느꼈다. 그것은 한 도시의 살아 있는 음성들이 아니라, 말 그대로 무언가 ‘괴물’ 같은 것이기 때문이었다.
대령의 궁금증은 곧 해소되었다.
출구로 나오자마자 달려든 사람을 우나가 거침없이 대검으로 내려찍었다. 우나의 검술실력에 힘입어 두개골이 깔끔하게 절삭된다. 대령이 미처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우나의 옆에서 달려드는 다른 한 놈을, 깔끔한 돌려차기로 눈구멍을 으깨 버린다. 생경한 살육의 현장을 눈앞에서 본 대령이 덜덜 떨면서 중얼거렸다.
“사···살인이야··· 사람이···”
“아니지.”
우나가 정정했다.
“적어도 지금은 사람이 아니야.”
그제야 대령은 그들이 어딘가 이상하다는 걸 비로소 눈치 챌 수 있었다.
지금 우나를 향해 몰려오고 있는 그들은 눈의 초점이 제멋대로였으며, 표정에서 이질감이 느껴졌다. 일부는 팔의 살점이 뜯겨 나가 하얀 뼈가 보이는데도 아무 찡그림 없이 흐느적흐느적 걸어오고 있었다. 이후 우나가 그들을 절단하고 깨부수면서 말을 몇 번 걸어보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최대의 의사소통은 웅얼거림뿐이었다.
그 뒤로는 평탄한 살육의 행진이었다.
대령은 우나의 뒤를 지켜주며 보조하는 역할이었지만, 사실상 우나는 거의 보호할 필요가 없었다. 우나가 지나가는 대로 피비린내 나는 길이 생겨났다. 아무도 우나를 막을 수 없었다. 원시적인 검으로 살해를 거듭하는 우나의 몸가짐은 춤추는 것처럼 아름다워서, 대령은 멍하니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우나는 기합 하나 없이, 침묵 속에서 검을 휘두르고 괴물들을 죽였다. 우나가 말을 할 때는 잠시 휴식을 취하며 에너지 바를 질겅질겅 씹어 삼킬 때뿐이었다.
대령이 물었다.
“왜 총기를 사용하지 않으십니까?”
일단 용병기를 사용하는 건 불가능하다. 대령은 뛰어난 용기사였고, 지금 피부로 와닿을 정도로 거세게 휘몰아치는 대기 마력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데 용병기를 들여왔다간 죄다 고장 난다. 하지만 전통적인 총포는 이런 곳에서도 쓸 수 있다. 게다가 훨씬 빠르다.
“시끄럽거든.” 우나가 대답했다.
물을 벌컥벌컥 마신 우나가 말했다.
“서크룬트의 괴물을 조용히 몰살시키려면 구식 무기로 하나하나 잡을 수밖에 없어. 그리고 할 만한 사람이 너와 나밖에 없지. 나머진 죄다 남자니까. 샷건을 준 건 널 지키라고 준 거야. 다행히도 쓸 일이 없었지만.”
우나의 말대로, 대령이 할 일은 그저 짐을 지고 따라다니는 일밖에 없었다. 대령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파라···이십니까?”
저 무거운 대검을 이렇게 오랫동안 자유자재로 다룰 사람이라면 !파라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우나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마음대로 생각해.”
그렇게 말하는 우나의 녹색 눈동자가 기묘하게 빛났다.
새벽에 시작된 학살이 어느덧 정오가 되고, 늦은 오후가 될 때쯤엔 서크룬트의 괴물들도 대부분 정리되었다. 우나는 잠시 대기하라 말하고, 어느 대저택에 들어갔다. 대령은 한참을 기다렸다.
대령이 슬슬 불안감에 휩싸일 때쯤, 우나는 돌아왔다. 등에 한 소년을 업고. 소년은 놀랍게도 살이 썩지 않았다.
그러나 대령은 소년에 대해 묻지 않았다. 이미 대령은 너무 많은 것을 보았다. 거기에 무언가를 더 추가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 뒤로는 괴물이 하나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들은 순조롭게 터널까지 걸어갈 수 있었다. 그때쯤에는 가져갔던 일곱 자루의 대검 중 다섯 자루가 부러져 있었다.
깜깜한 터널로 접어들자 우나가 불쑥 말했다.
“이 아이는 지금부터 내 아들이야.”
“그렇습니까.”
“개인적으로 무척 기대하고 있어.”
무엇을? 그러나 대령은 묻지 않는다.
우나는 터널을 빠져나와 다른 루트로 향했다. 용이 있는 곳이었다. 우나는 안장에 잠든 소년을 앉혀놓고, 대령과 함께 친위대원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우나는 서크룬트로 향하는 모든 통로를 봉쇄하라 지시한 뒤, 용을 타고 그 과정을 하늘에서 지켜보았다. 마지막 통로가 메워지자 우나는 육군 항공대 본부로 돌아왔다.
우나는 소년을 안고 내려오면서 대령에게 물었다.
“네 이름이 뭐지?”
이 모든 일은 지나치게 빠르고, 지나치게 비밀스럽게 이루어졌다. 우나가 그 사이에 이름을 잊어버릴 정도로. 대령이 말했다.
“육군 항공대 223부대 소속 델 피셔 대령입니다!”
그 말을 들은 우나가 웃었다.
“그래, 피셔···. 델 피셔. 부디 편안한 밤 되었으면 좋겠군.”
그 말에, 우나의 품속의 소년이 뒤척였다. 마치 악몽이라도 꾸는 듯, 찌푸린 얼굴이다.
그 소년의 눈가엔 세로로 내려오는 줄무늬가 춤추듯 아로새겨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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