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권 에필로그
라몬 브란트는 지친 몸을 이끌고 퇴근했다. 베르논은 이 전쟁을 틈타 매우 열성적으로 일했고, 그의 유능한 보좌관인 라몬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수밖에 없었다.
역겨운 일들이었다.
집에 들어온 라몬은 그의 집 응접실에서 태연하게 커피를 마시는 사람을 보고 심장이 내려앉을 뻔했다. 곧 라몬은 정중하게 인사하며 말했다.
“지도자님을 뵙습니다.”
지도자는 고개를 까딱해 인사를 대신했다. 처음엔 ‘지도자’라는 호칭마저 낯설어했던 사람은 어느새 훌륭한 지도자가 되어 있었다.
이 사람이 없었다면 계몽결사는 진작 게슈타포들에게 와해되었겠지.
“무슨 일입니까?”
지도자는 철두철미한 계획파로, 즉흥적으로 행동하는 일이 드물었다. 지도자가 말했다.
“변수의 변수가 생겼지.”
“헤르만 예거의 귀환 말씀이십니까.”
“오, 알고 있었네?”
“계몽결사의 비주류 의견—즉 저 혼자 생각만 해본 가능성이었습니다. 혁명에 그를 끌어들이자는 것.”
“그 비주류 의견에 내 의견을 더해 줘. 난 진심이야. 두 종류의 군사력을 통제 가능하고, 그 중 한쪽은 수도 쪽 병력. 그가 게슈타포란 건 오히려 이점으로 작용하지.”
“가능하시겠습니까? 계몽결사 내의 결사반대는 차치하고서라도, 예거 본인이 우리에게 가담할 가능성이 거의 없습니다.”
“가담하게 될 거야.”
지도자가 웃었다.
“그에게,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하면 되니까.”
잠시 침묵이 흘렀다.
지도자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 수 없다. 항상 그랬다. 지도자는 전쟁을 일으키겠다고 말했고, 진짜로 전쟁을 일으켰다. 이제 지도자는 헤르만 예거를 끌어들이겠다고 말했고, 아마 그것도 이루어질 것이다.
라몬이 말했다.
“직접 대면은 안 하실 거죠?”
“네가 가는 게 좀 더 믿음직해 보이니까.”
“교섭은 제가 담당합니까.”
“내가 가면 너무 불리하거든.”
라몬은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습니다. 늘상 하는 이야기지만, 이만 은퇴하시면 안 되겠습니까? 계몽결사는 지도자님이 단체 운영에만 전념할 수 있을 정도의 생활비는 지급 가능합니다. 너무 위험해요.”
“싫다.”
지도자가 단칼에 잘라 말했다.
합리성의 결정체라 불릴 이 사람이 유일하게 비합리적으로 집착하는 게 있었다. 라몬은 처음부터 반대했고, 지금도 반대했지만 지도자는 막무가내였다.
라몬의 얼굴에서 익숙한 체념을 읽어낸 지도자가 말했다.
“그렇지만, 나는 루프트바페가 좋은걸.”
지도자가 웃었다.
“하늘을 나는 건 좋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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