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리고 너는 용이 되어-79화 (79/102)

4권 3장. 균열-(1)

“무엇 때문에 누가 죽는지 알아냈다고?”

이장이 초조한 목소리로 물었다. 여기는 이장의 집. 장로들과 우리 셋은 여기 함께 모여 있다. 마을 사람 전체를 모으기 전에 우선 이들에게 먼저 말해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사정을 잘 아는 소피가 지도를 펼쳤다. 미리 부탁해서 얻은 것이었다. 14년 전보다 먼저 나온 지도였고, 도이체스가 이곳까지 와서 폐기할 수 없었기 때문에 크룬트의 위치가 표시되어 있었다. 우리가 추측한 위치와 거의 일치했다. 소피가 말했다.

“일주일 뒤 프랑크의 공군 특수부대가 크룬트를 지나칠 거예요. 이렇게.”

소피는 바다에서 크룬트를 지나치는 선을 하나 그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지나치는 선에 있는 모든 ‘도시’를 초토화시킬 예정이에요. 이곳, 아랑 격리구역은 바다와 닿아 있으니 그들이 맨 먼저 폭격하는 지점이 될 거고요. 그렇게 우리 모두를 죽이고 지나가면 이들은 마력 밀집 지역을 지나치게 돼요. 도이체스가 이곳에 대하여 완전히 은폐했기 때문에 프랑크군은 아무것도 모르고 지나치겠죠. 그러면 그 위로 지나가는 용기사들은 전부 몰살. 그렇게 모두가 죽어요.”

다들 할 말을 잃은 표정이었다.

나이 지긋한 노인 하나가 성난 얼굴로 외쳤다.

“네년이 불러왔지, 그렇지 않은가! 이 매국노! 이 더러운···!”

나는 소피 앞을 슬쩍 막아섰다. 소피를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노인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소피가 이 작전을 만든 것도 아니고, 소피 아니었으면 우리 모두 아무것도 모르고 죽었을 겁니다. 오히려 우리는 소피에게 감사해야 해요. 지금부터 할 작전은 소피 없이는 아무것도 안 될 테니까요.”

나는 노인을 조용히 노려보며 말했다. 그렇게 기세를 올리지도 않았지만, 게슈타포로서 보낸 숱한 세월이 내 시선을 저절로 위협적으로 만든다. 노인이 순간 기세에서 밀렸다. 이장이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해결방법이 있단 말이오?”

나는 대답했다.

“이게 해결해 줄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이거 말고는 방법이 없어요.”

“그게 무엇이오?”

소피가 말했다.

“일단 그들은 선발대를 하나 보낼 거예요. 그들이 정찰을 하고, 나머지 특수부대원들이 뒤를 따르겠죠. 그 선발대를··· 거의 전멸시키기만 하면······ 그렇게만 하면 후발대는 여기 오지 않을 거예요. 들켰다는 걸 아니까요.”

소피의 어조는 비통했다. 수가 줄어든다 해도, 동료는 동료였다. 그들을 이제 소피의 손으로 죽여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소피는 그들 모두가 죽는 것보다는 낫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아주 잘. 이장이 말했다.

“여긴 한때 군사시설이었지.”

나는 반색하며 말했다.

“그렇습니까? 그러면 일이 더 쉬워지겠군요.”

“하지만 방아쇠가 죄다 망가진 데다가, 공중을 겨냥한 무기가 아니야. 14년 동안 기술이 얼마나 발전했겠나. 한참 구식이지. 그리고 마탄도 없어.”

“방아쇠는 문제없습니다.”

히데가 손을 들며 말했다.

“저는 용기사입니다. 용병기를 방아쇠 없이 발동하는 것은 저에겐 매우 쉽습니다. 저는 여기 남아서 공격용 용병기들을 발동시킬 겁니다. 그리고 저를 매개한다면, 마탄 없이 여러분의 생명 에너지만으로 이 무기를 발동시킬 수 있습니다. 물론, 끝나고 나면 전부 탈진할 거고, 모든 사람의 생명 에너지를 다 써봐야겠지만요. 하지만 모두 죽는 것보다는 나을 겁니다.”

나는 말했다.

“우리는 선발대를 거의 전멸시켜야 하는데, 그것도 아주 공포스럽게 전멸시켜야 합니다. 그래야 프랑크군이 여기를 완전히 단념할 테니까요. 저희는 이곳의 아주 특수한 상황을 이용할 겁니다. 마력 농도가 아주 높다는 것을.”

현재 이곳은 실험체가 터져 전역에 마법이 퍼졌던 크라쿠프보다도 마력 농도가 높았다. 따라서 에르제망 법칙을 적용할 수가 있다.

일정 농도 이상으로 마력 밀도가 높은 공간에서 마력은 그 구역에서 가장 마력이 높은 생명체에게 흐른다. 지금 마력 밀도가 제일 낮은 이곳조차도 크라쿠프보다 대기 중 마력이 높다. 그러면 이곳의 상공을 지나는 용이 이 공간에서 마력이 가장 높은 생명체가 되므로, 마력은 그쪽으로 흐르게 된다.

“공격을 마력에 실어 보내면, 이 상황에서 마력은 용으로 흘러가게 되어 있습니다. 마치 저절로 추적하는 것처럼 보이겠지요. 아직 그 어떤 나라도 저절로 위치를 추적하는 포탄이나 마법을 개발한 적이 없습니다. 이런 ‘무기’의 존재를 깨닫는 순간, 특수부대 정도의 규모로는 기습이 불가능합니다. 단념하겠죠. 그러면 ‘많은 죽음’이라는 예언은 이루어지면서도, ‘몰살’이라는 파국에는 치닫지 않게 됩니다.”

“말은 쉽지.”

“그렇죠. 이곳이 ‘도이체스가 버린 땅’만 아니었다면요.”

그 말에 이장의 안색이 조금 나빠졌다. 이상이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까부터 신경 쓰였는데, 도이체스가 이곳에 대해 완전히 은폐했다는 게 무슨 말이오?”

그 말에 나는 소피와 눈짓을 주고받았다. 이 부분은 서로 말하기로 동의한 부분이었다. 나는 심호흡을 하며, 더러운 이야기를 시작했다.

“옛날에 도이체스는 서크룬트에 실험실을 짓고 비밀리에 실험을 시작했습니다. 드라헨킨더라는, 마법을 쓸 수 있는 인간을 만들어 내는 실험이었죠. 14년 전, 한 실험체가 실험 도중 폭발했고, 엄청난 마력이 크룬트에 유출됩니다. 아마 영향권 내에 있는 사람들은 전원 사망하거나 끔찍한 마병에 걸렸을 겁니다. 그렇게 크룬트에는 고밀도의 마력이 남아 있게 되었고, 그래서 서크룬트 최외곽에 있는 당신들은 고립되었고, 도이체스는 이 사실을 덮기로 합니다. 산맥 너머의 동크룬트 사람도 전부 쫓아낸 뒤 크룬트 전체를 봉쇄했지요. 지금 여러분의 땅은 지도에도 이름이 제대로 표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도이체스는 여러분을 완전히 버린 겁니다.”

그 말에 충격이 감도는 대기. 14년간 갇혀 있었다지만, 그들 나름대로 희망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언젠가는 나갈 수 있으리라는 믿음, 언젠가는 구해준다는 믿음. 살아남은 자가 아랑밖에 없다는 건 도이체스도 모를 테니.

나는 말을 이었다.

“어쨌든 매우 마법적인 실험이기 때문에 진원지 부근에는 용병기가 정말 많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것도 굉장히 강력한··· 그것을 이용하면 ‘자동 추적하는 포탄’ 마법을 눈속임용으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적절한 마법이 없다면 끝이지만, 적어도 가능성이라도 생긴 셈이지요.”

“하지만,”

이장이 말했다.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러 갈 것이오? 들어가면 죽는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소. 저기 쳐져 있는 울타리를 보았겠지만, 저 안으로 1킬로미터 이상 들어가면 반드시 죽소. 마력도 그렇고··· 저긴 괴물이 있소. 해골이 그 경계선을 표시하고 있지.”

변수가 고밀도의 마법 외에도 있다는 이야기다.

“저희 셋이 갑니다.” 나는 나와 소피를 가리키며 말한다.

“저희 셋이 그 실험지로 들어가서 용병기를 탐색하고 작동시킬 겁니다.”

“돕는 건 고맙지만, 구해준 대가로 목숨을 내놓으라고 할 만큼 우리를 뻔뻔한 사람으로 생각하시오?”

그 말에는 살짝 노기가 배어 있었다.

아랑은 지저분하고, 구걸하는 거짓말쟁이에 신의 따위는 없다는 편견이 있다. 그러나 실제 아랑은 이들처럼 손님을 환대하고 서로를 믿으며 의지한다. 워낙 박해받다보니 다른 종족에게는 조금 배타적이긴 하지만, 결코 소문 같은 종족이 아니다.

나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들이 설사 뻔뻔스럽게 요구했더라도 나는 움직였을 테지만, 이런 반응을 보니 기분이 좀 괜찮아졌다.

“저희 둘은 그곳의 중심에서도 죽지 않습니다.”

의아해하는 이장에게, 말한다.

“저희들은 그 금지된 실험의 생존자입니다. 저희는 죽지 않고 접근할 수 있는 신체를 가지고 있어요.”

소피에게 눈짓하자, 소피는 손을 내밀었다.

가장 간단한 원소-분자계 마법 ‘시마’가 발동, 손 위에서 조그만 불꽃이 피어오른다. 소피가 말했다.

“그들은 내 몸에 끔찍한 실험을 했고, 나는 이렇게 마법적인 존재가 되었지요. 보통 인간보다는 훨씬 내성이 높을 거예요. 옆에 있는 헤르만도 나와 같은 실험을 받았을 게 틀림없고요. 우리 둘이라면 거기 가까이 갈 수 있어요.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일이고요.”

“그게 문제가 아니오. 저긴 괴물이 있단 말이오.”

“그렇다고 가지 않으면 다 죽습니다.”

결국 우리가 계획한 대로 진행되기로 했다. 이장은 끝까지 반대하다, 소피의 설득에 결국 고개를 떨어뜨렸다. 이장은 마을 사람들을 전부 모아 놓고 우리가 말한 내용을 그대로 이야기했다. 반신반의하는 사람이 반, 연민하는 사람이 반이었다.

그 연민하는 사람들의 반 정도는, 그 ‘위험한 곳’에 우리가 들어가게 된 것에 대한 연민이었다.

“거긴 괴물이 살아요.”

건장한 청년이 두려운 듯한 어조로 말했다. 나는 좀 더 자세히 물었다.

“괴물이라니, 어떤 종류의?”

“직접 보면 알아요. 지옥에서 기어 나온 모양새니까. 십 년 전쯤에는 그래도 마력밀도가 낮은 지역을 찾아 탐사대도 여러 번 보냈는데, 이젠 완전히 포기한 이유가 바로 그 괴물 때문이에요. 거기선 괴물이 기어 나오니까요. 가끔 이곳까지도 흘러오죠. 얼굴이 일그러진 채 육식을 하는 토끼, 다리가 여덟 개인 개구리··· 이런 것들이 가장 온건해요.”

“···마병이군요.”

“그래요. 그 염병할 것들은 지옥의 생명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아마 원래 살던 짐승들이 그렇게 이상하게 변한 것 같은데··· 조심해요. 뭐가 튀어나올지 몰라요.”

지나치게 높은 마력은 생명체에게 영향을 끼친다. 크라쿠프에서는 바스키 주민들을 전멸시켰고 일부 국민들을 사람 살을 뜯어먹는 걸어 다니는 시체로 만들었다. 동물이라고 그다지 예외가 될 수는 없었다.

‘가면 반드시 죽는다’고 단언한 이유 중 하나가 이것이었나. 그러나 또한 마법을 잔뜩 부릴 수 있는 사람이 지나갈 때 어떨지는 아무도 몰랐다.

우리는 크룬트 지도를 받았다. 누군가는 며칠 내로 비가 올 거라며 우산까지 챙겨 주었지만, 그건 거절했다. 우산까지 들고 가면 너무 거추장스럽다. 대신 우리는 우비를 한 벌씩 받아갔다.

계획은 이렇다. 히데가 구시가지 중심부까지, 히데가 마력을 견딜 수 있는 지역까지 우리를 따라와 베이스 캠프를 차린다. 나와 소피는 그곳을 거점으로 삼고 수색을 진행한다.

나와 소피도 짐을 한가득 짊어졌지만 히데의 짐이 가장 크고 무거웠다. 물론 히데는 우리보다도 가뿐한 걸음으로 걸어 나갔다. 가방 속에는 보존식이 잔뜩 들어 있었다. 히데의 경우는 방아쇠가 고장 난 공격용 용병기도 같이 여럿 착용하고 있었다. 몸을 보호할 수단이었다.

우리는 마을 사람들의 배웅을 받으며, 해골 표식이 되어 있는 울타리를 타넘어 갔다.

“밀도가 더 높아졌습니다.”

히데가 우리 모두의 감상을 대표해서 말했다.

구시가지로 가는 포장도로는 14년간 방치되어 나무와 풀이 무성했다. 후각과 청각을 비롯한 감각이 매우 우수한 히데가 선두에 서서, 정글도를 들고 풀을 베며 전진했다. 저 무거운 짐을 메고 칼을 휘두르며 지나가는 히데가 식량만, 그것도 히데보다 덜 짊어지고 걷기만 하는 우리보다도 훨씬 나중에 지칠 것이다. 그게 !파라였다.

히데의 엄청난 감각은 무척 의지가 되었지만, 나와 소피는 완전히 마음 놓고 다니지는 않았다. 우리 둘은 히데를 꼭짓점으로 한 삼각형 대형으로 좌우와 후방을 경계하며, 히데가 닦아 놓은 길을 나아갔다. 히데는 물리적인 위협을 경계하고, 두 드라헨킨더는 감응력을 총동원해 혹시 범위 내에 용병기가 있는지 탐지한다. 아직 이쪽에서는 우리가 찾는 게 없을 확률이 굉장히 높았지만, 우리는 가능성을 전부 따져봐야 했다.

한참을 걷고 나자 히데가 말했다.

“14킬로미터 밖에 구시가지 초입처럼 보이는 구조물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지금 걷는 길 주변에도 드문드문 폐허가 있었다. 히데가 칼을 늘어뜨리며 말했다.

“잠시 쉬었다 가죠.”

그것은 그녀 자신이 아닌 우리 인간들을 배려한 말일 것이다.

나와 소피는 조금 가빠진 숨을 내쉬었다. 완전군장보다 무거운 식량을 짊어지고, 빽빽한 마력 밀도 속에서 감응력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며 행군했으니 평소보다 더 체력이 소모되었다. 소피는 벌써 육포 하나를 꺼내 질겅질겅 씹고 있었고, 나도 주머니 속의 육포에 손을 뻗으려는 찰나였다.

바스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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