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리고 너는 용이 되어-77화 (77/102)

4권 2장. 동족-(3)

그 말은 마치 선고처럼 들렸다. 크라쿠프에서 어렴풋하게 남아 있던 추측을 확실하게 고정하는 선언.

나는 소피의 손을 잡았다. 신체접촉을 하자 더욱 확실하게 느껴졌다. 동족이다. ‘나와 같은’ 사람. 나는 손을 떼었다. 아직도 진한 여운이 남아 있다. 나는 소피에게 말했다.

“알고서도 날 공격했어?”

질책이나 힐난이 아니었다. 그저 신기했을 뿐이다. 이렇게 거대한 친밀감을 느끼고도 살의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 소피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몰랐어. 그때는 주변에서 또 다른 조난자가 있다는 말을 듣고, 얼굴이나 보러 갔을 뿐이야. 그런데 도이체스군 용기사복을 입은 남자가 있더군. 뺨에는 괴상한 무늬가 있는 ‘남자’ 용기사가. 내 대원들을 학살한 바로 그자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죽이려 달려들고 있었지. 하지만 자고 있는데 곧바로 반격이 들어올 줄은 상상도 못했어.”

“적이 많은 사람이라서.”

내가 자조적으로 웃자 히데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번에 8명이 내 집에 쳐들어 온 사건을 떠올린 모양이었다.

“그때까지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어. 하지만 네가 날 죽이려고 목을 조른 순간, 갑자기 공명했어. 아, 이 사람, 나의 동족이구나. 나와 같은 타라구나.”

히데가 말했다.

“저는 헤르만이 드라헨킨더라는 말을 들었을 때 별로 놀라지 않았습니다. 올 게 왔구나 싶었죠.”

내가 바라보자, 히데가 물을 한 모금 마신 뒤 말을 이었다.

“작년의 그 사건, 솔직히 당신이 드라헨킨더일 수도 있다는 단서는 충분했습니다. 다만 마법을 직접 쓸 수 없으니 반신반의하고 있었던 거지요. 마법을 쓰는 걸 본 순간, 납득했습니다.”

“뭐야, 얘도 드라헨킨더에 대해 알고 있어? 얘한테도 말한 거야?”

나는 말했다.

“어쩌다보니 알아야만 하는 사건이 생겼어.”

소피가 미심쩍은 눈길로 바라본다.

“흐음, 그래? 좋아. 그렇다고 치지. ‘관련자’는 아니지?”

“아냐.”

그러자 소피는 조금 누그러졌다.

나는 마력을 살짝 움직여 보았다. 원래부터 내 것이었던 것처럼 선명했다. 나는 중얼거렸다.

“신기하네. 이전까지는 절대 느껴지지 않았는데···”

소피가 말했다.

“자각해서 그래. 최종 실험체 중에도 자각을 한 아이들은 얼마 없었어. 나도 자각하기 전까지는 하나도 느끼지 못하다가, 어느 순간 마법을 쓸 수 있게 되었어. 카우프만도 마찬가지였지. 문제는 마력 주입 중에 완전히 자각을 해버려서··· 터져 버렸어. 카우프만이 바로 옆에 있던 나를 지켜 줘서 나는 무사했지만, 주위의 모든 것이 날아가 버렸지. 끔찍한 참사였어.”

소피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나는 안토니나를 떠올렸다. 안토니나도 동료 소녀가 폭발할 때 자신을 지켜 줘서 혼자 살았다고 했다. 비극은 왜 이렇게 반복되는지.

나는 다급한 어조로 물었다.

“그런 다음, 어떻게 되었어?”

“그 다음이라니. 나는 거기서 탈출해 프랑크까지 날아갔지.”

“아니, 그 지역은 어땠어? 어떻게 생겼어? 거기 사람들은 널 봤어? 그 상황을 최대한 자세히 설명해 줄 수 있어? 괴로운 기억일 수도 있겠지만, 부탁이야. 나에겐 매우 중요해. 그 날에 대한 단서가 너무 없어. 넌 너무 귀중한 증인이야.”

내 빨라진 말과 기울인 몸을 본 소피는 약간 흠칫하더니, 느릿하게 말했다.

“미안한데 기억이 안 나.”

“안 난다고?”

“그날의 기억이 희미해. 정신 차리고 보니 프랑크까지 날아가 있었어. 아마 지나친 마력에 노출되어서 기억이 손상된 것 같아.”

절망적이다. 유일한 단서가.

“나도 기억이 희미했지.”

나는 중얼거렸다.

“그게 지나친 마력에 노출되어서라면, 납득이 되네. 왜 내가 드라헨킨더인데도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는지. 하지만 여전히 모르겠어. 나는 목록에 없었는데, 게다가 남자아이였는데···”

“넌 기억하지 못하는구나.”

소피가 말했다.

“흥, 그럼 너는 모르겠구나. 그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무슨 지독한 짓을 했는지.”

그 순간 소피의 마력이 갑자기 날카로워져서, 나는 황급히 소피의 어깨에 손을 얹고 잡아 눌렀다. 나도 모르게 소곤거렸다.

“여기엔 예언자 아랑이 있어! 네 마력을 감지할 수도 있다고!”

“이미 들켰습니다.”

히데가 체념한 목소리로 말했다. 잠시 후, 나는 무언가가 질질 끌리는 소리와 함께 발자국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노크 소리가 들렸다.

“들어오세요.”

내가 대답하자, 문이 열렸다.

아파 보이는 소년이 있었다. 누나처럼 갈색 머리에 뾰족한 귀, 보라색 눈동자를 하고 있지만 눈동자의 보라색이 조금 옅었다. 얼굴은 핼쑥했고 몸에서는 약간 아픈 사람 냄새가 났다. 열심히 몸을 닦아 주어도 물로 씻지 않는 이상 한계가 있는 법이었다.

옆에는 엘리카가 소년을 부축하고 있었다. 소년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안녕하세요. 이방인 씨. 아돌프라고 불러 주세요. 제가 여러분의 손을 잡아도 될까요?”

그의 귀가 쫑긋한다.

소피와 나는 서로를 쳐다보았다가, 체념하고 손을 내밀었다. 히데도 손을 내밀었다.

손을 잡아 본 아돌프는 휘청이며 주저앉았다.

“아돌프!”

엘리카가 황급히 아돌프를 받쳤다.

“나는 괜찮아, 누나··· 확실히 예상대로네.”

아돌프가 벽에 쓰러지듯이 기대며 앉았다. 내쉬는 숨이 거칠다.

“나는, 남자지만···”

아돌프가 말했다.

“그래서 감응은 못하지만··· 공명은 할 수 있어요. 속에 마력을 지닌 존재는 공명해서 알아볼 수 있어요. 그래서 다른 예언자를 알아볼 수 있지요. 하지만 당신들은··· 예언자 따위가 아니군요. 용을 만날 수 있다면 실제로 이럴 거 같아······ 나는 남자라 접근조차 못하겠지만···”

“무슨 소리야, 아돌프?”

“이분들은 평범한 인간이 아냐··· 인간인데도 마력을 지니고 있어, 그것도 아주 강력한···. 두 사람이라면 우리 모두는 종잇장처럼 구겨 버릴 수 있을 거야······”

“그러지 않아!”

나도 모르게 날카롭게 외쳤다.

“우린, 우린 전혀 그럴 이유가 없어. 소피, 맞지? 너도 그렇지?”

소피가 말했다.

“난 나를 이렇게 만든 도이체스 놈들을 전부 죽여 버리고 싶어.”

그 말에 분위기가 얼음장처럼 싸늘해졌다. 두 !파라 혼혈들과 히데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 말에 담긴 진심을 느꼈기 때문이겠지. 소피가 말했다.

“‘나를 이렇게 만든 놈들’ 말야. 그 외의 타라들은 관심 밖이야. 물론 하늘에서 적으로 만나면 죽여야겠지. 하지만 너희들은 용기사도 아니고, 날 이렇게 만든 놈들도 아냐. 아랑이 관련자일 리가 없잖아. 그러니 너희들은 해당사항 없어. 난 누구들과는 달라서 말이지.”

“다행이네요···”

아돌프가 힘없이 중얼거렸다.

“사실 아까 쓰러져 계셨을 때도 언뜻언뜻 공명했어요. 지금은, 아까의 방출 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지만요. 남자분은 쭉 몰랐지만, 손을 잡아 보니 알겠네요. 하지만 저 말고 아무도 모를 거예요. 예언자 아랑은 지금 나밖에 없고, 여기에 용기사를 할 정도로 감응력이 뛰어난 사람이 있었다면 진작에 당신들의 마력을 알아차렸을 테니까···”

소피가 한숨을 내쉬었다.

“정신을 잃어 버려서 내 마력을 통제하지 못했네. 평소에는 아무도 몰랐는데. 너한테만 들켜서 다행인가.”

나는 병약한 소년에게 말했다.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니? 모두에게 말할 거야?”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데요?”

그러자 엘리카가 아돌프를 나무랐다.

“아돌프!”

“누나, 난 그냥 저분들의 생각이 듣고 싶었어. 누나가 말하겠다면 막을 생각은 없지만···”

엘리카는 생각이 많아진 표정으로 서 있더니, 입을 다물었다.

나는 말했다.

“아직은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나는 말을 이었다.

“짐작한 대로 우리는 특별한 존재야. 그리고 대화 내용에서 짐작했겠지만, 만들어졌지. 나는 이쪽과 달리 아직 능숙하지 않지만, 내 힘이 필요한 일이 있다면 기꺼이 협력할 거야. 예언이 그대로 실행되는 건 막아야 하니까. 하지만 나는 사람들이 우릴 두려워할 것이 두려워.”

“두려워한다···”

“그래. 너는 대량의 죽음을 예언했고, 때마침 14년 동안 폐쇄된 곳에 이방인이 나타났지. 그리고 그 이방인이 매우 강력한 힘까지 가지고 있다면···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겠어?”

엘리카가 말했다.

“우리가 보증해 줄게요! 당신들이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 걸!”

“개인은 똑똑하지만 군중은 그렇게 이성적이지 않아.”

나는 냉정하게 말했다.

“한 번 적대적으로 변한 공기는 되돌리기 힘들어. 머리로는 납득하더라도 공포는 남아 있어. 우리는 무엇이 죽음을 불러올지조차 모르는데, 벌써부터 그런 분위기가 생성된다면 좋은 꼴은 못 볼 거야. 사람들도 꺼림칙해할 거고.”

아돌프와 엘리카는 복잡한 표정이었다.

“우리 힘을 써서 재앙을 확실히 막을 수 있다면, 반드시 그렇게 할게. 약속이야. 대신, 그때까지는 말하지 말아 줬으면 좋겠어. 부탁할게.”

“나도 약속할게.”

소피가 말했다.

“나는 네가 느낀 것만큼 거대한 마법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아니야. 하지만 없는 것보단 훨씬 낫겠지. 반드시 돕도록 할게. 무고한 사람이 죽는 건 나도 싫어. 그리고 이 마을에 구출되지 않았더라면 나도 무사하지는 못했을 거야. 그리고 나도 이쪽과 같은 생각이야. 필요한 순간이 아니라면, 말하지 말았으면 좋겠어.”

아돌프는 열이 나는 이마를 짚고는 한참 말이 없었다. 아돌프가 느릿하게 말한다.

“생각해 볼게요.”

그것이 신호였다. 엘리카가 부축해서 아돌프는 다시 일어섰고, 병상으로 향했다. 이곳으로 직접 오느라 무리한 것 같았다. 가기 전, 나는 외쳤다.

“잠깐만.”

엘리카가 뒤돌아본다.

“회복 마법을 써줄 수 있어. 한 번도 한 적 없지만, 용병기로는 숱하게 써왔으니 괜찮을 거야.”

아돌프는 뒤돌아선 채로 고개를 저었다.

“아랑의 신병은 마법으로 나을 수가 없어요. 내가 이겨낼 수밖엔··· 제안은 고마워요, 아저씨.”

남매는 이윽고 모퉁이를 돌아 사라졌다.

다시 마법을 걸고 대화할 수는 있었지만, 우리는 더 이상 그 주제에 대해 말을 꺼내지 않았다. 나는 다만 이렇게 물었을 뿐이었다.

“프리다 아커만이라고, 알아?”

“몰라. 나라고 모든 실험체를 아는 건 아냐.”

내 기억 속에 갇힌 소녀에 대한 단서는 거기까지였다.

다음 날, 우리는 산사태 방지 공사현장으로 투입되었다. 이장이 우릴 불러내지 않은 것으로 보아 아돌프와 엘리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 같다. 히데는 환자이니 쉬라고 말했지만 도무지 말을 듣지 않았다. 오히려 푹 자고 일어나서 몸이 가뿐해진 히데는 즉시 여러 사람 몫을 해내기 시작했다. !파라라서 환영받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에 대해 말하게 되는 순간은 생각보다 일찍 찾아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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