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리고 너는 용이 되어-73화 (73/102)

4권 1장. 실수하지 않는 타라-(2)

나는 우측으로 선회했다. 동시에 통신 채널을 찢고 들어오는 히데의 날카로운 목소리.

“라리보입니다! 수직기동으로 대장님을 쫓고 있습니다!”

나는 선회 폭을 확 좁히면서 말했다.

“라리보인 거 확실해?”

“‘불타는 듯한 새빨간 머리카락, 푸른색 눈동자.’ 인상착의가 일치합니다!”

카플랑 종은, 빠르다. 슈미트무트 종은 선회능력이 우수하다. 카플랑으로는 아바셋의 선회반경을 그대로 따라올 수가 없다. 지금 나도 한계까지의 G를 받으며 밀어붙이고 있으니까. 그리고 빠르기 때문에 이쪽을 추월해버릴 수도 있다. 그쪽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경로를 길게 만드는 것이다. 사인 곡선을 그리며 날 추격하는 것.

나는 수시로 뒤를 쳐다보며, 라리보가 타이밍을 잡을 때마다 급선회했다. 원소-분자계 마법 ‘크리히’가 내가 있었던 자리를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빗나갔음에도 그 후끈한 여열이 나를 덮친다.

그렇게 나는 도망치고, 그녀는 추격한다. 각국의 슈퍼 에이스는 마치 비틀린 뜨개기동을 하는 것처럼 하늘에서 춤을 췄다.

여섯 번째로 선회를 했을 때, 라리보가 갑자기 날 추격하는 걸 관두고 왼쪽으로 선회했다. 그 뒤로 0.2초 후, 히데의 ‘카울’이 라리보가 있었던 자리를 훑었다.

실수하지 않는 자.

“그래도 이건 너무한데.”

남에게 들리지 않게 한탄한다. 수읽기에 매우 능한 용기사라고 들었지만, 이건 거의 예언 수준이 아닌가.

나는 360도 회전하는 기동으로 순식간에 방향 전환을 한 뒤 라리보의 정면으로 달려들려 했다. 그러나 라리보 또한 나와 똑같은 기동을 해서 선회하기 시작했다. 나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라인스에게 말했다.

“카오스! 진척상황은?”

“10초만 더 부탁드립니다!”

나는 마음속으로 욕설을 한 번 뱉은 다음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내 기동은 따라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간신히 따라왔다는 것은 내가 360도 회전으로 방향을 바꿀 걸 예측했다는 이야기다. 비록 내가 뒤쪽에 있다지만 정말 무서운 상대였다.

라리보는 직진하고 있었고 나는 라리보의 8시 방향에서 우측 선회를 준비 중이었다. 카플랑이라면, 어쩌면 슈미트무트 중에서도 불가능할 정도로 좁은 선회 반경이었지만 가능하다. 아바셋이었으니까. 내가 이런 움직임을 보일 것이라고는 예측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라리보는 내가 급격히 선회해 그녀에게 파고들기 직전, 갑자기 기수를 올렸다. 약간의 횡전*이 섞여 있어 그녀는 조금 꼬인 궤도로 상승했다. 뒤이어 하강. 작은 언덕을 만든다. 나는 그녀의 아래로 지나쳐 버리고 말았다.

(*동체를 축으로 해서 한 바퀴 옆으로 도는 기동.)

꼬리를 잡히기 직전 나는 임멜만 선회, 즉 상승하면서 횡전 후 반원을 그리며 다시 직진해 진행 방향을 바꿈으로써 위기를 벗어났다. 그와 동시에 귓전에 라인스의 목소리가 울린다.

“카오스 준비 완료입니다!”

“실행해!”

“‘로브 노스’ 발동!”

라인스가 전 채널에 대고 외친 순간, 제1편대는 황급히 기수를 올려 위로 달아났다. 나머지 아군 편대들이 밀집한 곳으로.

‘로브 노스’는 복잡계를 파국전환으로 이끄는 마법이다. 간단히 말해, ‘용’과 같은 복잡계, 그리고 궁극적으로 ‘마법을 지닌 존재가 여러 마리 모여 있는 상태’인 ‘복잡계’를 치명적인 파국으로 이끄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어느 정도의 파국으로 이끌지는 알 수가 없다. 초기 조건, 마력을 얼마나 넣었는지, 시전자의 공간적 배열이 어떠한지에 따라 전혀 예측 불가능한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어쨌든 ‘파국’으로 이끈다는 점에서, 예측이 가능하다고는 볼 수 있지만 그것이 심정지를 일으킬지 재채기 한 번으로 끝날지는 알 수 없다. 이것이 ‘로브 노스’를 유발하는 대형을 카오스 대형이라 부르는 이유이다. 특정한 상황으로 결과가 여럿 예상되지만 그 중 무엇이 될 줄 모른다는 점에서 ‘로브 노스’는 주사위 던지기와 비슷하다.

그렇다. 나는 대대원 전체의 목숨을 걸고 주사위 도박을 한 것이다.

잠시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이후 볼랑 티거들이 대거 정지. 그 상태로 추락하기 시작한다. 새어나온 배설물과 혈액을 포함한 타액만이 공중에 흩어질 뿐 조용했다. 추락하는 용기사들은 통제력을 회복하려 애쓸 수도 없었다. 용들은 고깃덩어리처럼 추락했다.

‘로브 노스’로 ‘신체’라는 복잡계가 붕괴해 완전히 기능이 정지되었기 때문이다. 용과 인간 모두.

볼랑 티거의 다수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살아남은 볼랑 티거들은 마력을 일시적으로 소진한 채 떠도는 우리 아들러들을 바라보기만 할 뿐, 그 어떤 행동도 취하지 못한다.

문자 그대로 파국인 대량살육에 넋이 나간 것이다.

연습만 열심히 해 보았을 뿐, 실제로 사용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굉장히 파괴적인 마법이었지만, 대대원 4분의 3의 마법을 한꺼번에 중첩해야 했고 한 편대 정도를 없애기에는 너무나 위력적인 마법인데다 적이 가만히 있어 준다는 보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한 전대 정도가 통째로 우리를 향해 몰려드는, 그런 특수한 상황이 아니고서야, 절대 쓸 일이 없는 비효율적인 마법이다.

히데의 냉정한 목소리가 상황을 정리한다.

“4대 1에서 2대 1이 되었습니다.”

히데의 말대로 볼랑 티거는 절반으로 줄어 있었다. 이것만은 예측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실전에서 한 번도 쓴 적 없는 마법이고, 이걸 예측하려면 처음에 우리가 따로 기동할 때부터 카오스 대형을 준비했다는 것을 미리 생각했어야 했다. 미지의 단계에선 그 정도 추론까지 할 수 있는 괴물은 그렇게 많지 않다.

우리가 상대하는 소피 라리보는 실수하지 않는 괴물이었지만, 그 정도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여전히 2대 1이었다. 나는 냉정해져야 했다.

라인스 윈터는 간신히 숨을 골랐다. 히데의 전황판단이 흘러온 뒤, 헤르만의 지시가 또 이어졌다. 라인스를 향한 단독채널이었다.

“나중에 하나 더 준비해.”

“또요?”

따져 묻는 모양새가 되었지만, 불가항력이었다. 그들은 방금 ‘로브 노스’를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불가능하다고 말하려는 순간, 헤르만이 말했다.

“‘실수하지 않는 자’를 잡으려면 이 수밖에 없어. 이번처럼 성공하지 않아도 돼. 중요한 건 발동 그 자체야.”

그렇게 말하는 헤르만의 목소리는 확신에 가득 차 있었다.

지금 이 대대장은 절망하지 않았다. 그는 정말로 우리를 생환시킬 작정이다. 하지만 전부는 불가능하다. 반드시 죽는 이는 나온다. 그는 그것을 최소화하고자 한다. 그러기 위해 또 다시, ‘로브 노스’를 준비해 달라고 하는 것이다.

무리한 부탁이었지만, 헤르만 본인이 제일 무리하고 있는 만큼 라인스는 있는 힘껏 최선을 다해 명령을 완수해야 했다.

라인스는 우왕좌왕하는 볼랑 티거 하나의 밑으로 파고들었다. 그들은 난생 처음 당하는 공격에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라인스가 그녀의 6시 방향 살짝 아래를 점했을 때는 정신을 차렸지만, 그때는 이미 늦어 있었다.

라인스가 기수를 올림과 동시에 원소-전양자계 마법 ‘마그나’를 발동, 초근접거리에 있는 용의 금속을 움직인다. 노리는 건 혈액 속의 철분. 그것들이 전부 헤모글로빈에서 분리되어 라인스가 유도한 한 지점에 몰린다.

철막이 용의 대동맥을 포함한 모든 동맥을 파열시켜 죽음으로 이끈다.

이 용은 ‘로브 노스’의 파국에서 죽지는 않았지만, 분명 큰 영향을 받은 걸 눈여겨봤다. 그러지 않고서야 마법 내성이 강한 용의 신체 내부에 직접 작용하는 마법을 시도할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주 효율적으로 적 하나를 떨어뜨린 라인스는 곧바로 다음 표적으로 향했다. 볼랑 티거 하나가 라헬의 꼬리를 잡고 있었다. 라인스가 구하러 가지 않으면 잔뜩 독이 오른 볼랑 티거에게 죽을 판이었다. 라인스는 재빨리 감응해 볼랑 티거의 꼬리를 잡으려고 애썼다. 라인스는 볼랑 티거의 4시 방향에 있었다.

라인스의 손에 라헬의 목숨이 달려 있었다.

라인스는 십자선에 볼랑 티거를 정렬시켰다. 또 한 번 ‘로브 노스’를 발동해야 하는 만큼, 지금부턴 최대한 마법을 아껴야 했다. 적어도 3초는 십자선에 고정시켜야 격추할 수 있었다.

라인스는 방아쇠를 눌렀다. 다섯 발 들어 있었던 예광탄*이 발사되었다. 번쩍거리는 불빛이 마치 빛의 띠가 적을 관통하는 것 같았다. 사출공에 맞은 기관포는 곧 용을 폭파시켰다. 용기사가 탈출할 틈도 없었다.

(*총포에서 발사되었을 때 앞부분에서 빛을 내며 날아가게 한 탄알. 신호하거나 목표물을 지시하는 데에 쓴다.)

두 번째 격추.

라헬의 목숨을 구한 라인스는 다른 볼랑 티거에게 급강하했다. 상대보다 높은 에너지 우위를 점하는 게 중요했다. 이번에도 라인스는 발포를 했고, 상대는 폭발했다.

세 번째 격추.

라인스는 점점 절망이 사라지고 자신감이 살아나는 걸 느꼈다. 볼랑 티거를 셋 격추시켰다. 이제 라인스의 몫인 두 명보다 더 많은 자를 해치웠다. 이제 더, 더 격추시킬수록 동료의 부담이 덜할 것이다. 라인스는 볼랑 티거의 진형으로 파고들었다. 네 번째 사냥감을 찾을 생각이었다. 순간 라인스는 완전히 겁을 상실하고 자신이 무적이라 느끼기 시작했다.

라인스가 네 번째 볼랑 티거를 향해 날아가는 순간, 귓전에서 제4편대장 알프리다 하브너 소령의 비명 같은 외침이 울렸다.

“라인스! 6시!”

그 말에 라인스는 돌아보았다.

축구공만한 불덩이가 그녀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라인스는 급히 횡전해 기관포를 간신히 피했다. 강하하려는 라인스를 향해 이번엔 총탄이 쇄도했다. 카플랑보다 선회력이 우수한 슈미트무트였지만 라인스가 워낙 완벽하게 뒤를 잡힌지라 떨쳐내기가 무척 힘들었다.

라인스가 격추되기 직전, 알프리다 소령의 파동계 마법 ‘오카’가 강력한 레이저로 라인스의 적을 조종석 째로 절단했다. 볼랑 티거가 마지막으로 쏜 총탄이 유리창을 뚫고 들어와 라인스의 손목시계에 명중했다. 유리 파편이 뺨을 살짝 스쳤다.

라인스는 피가 차갑게 식는 것을 느꼈다.

무전으로 알프리다 소령에게 짧게 감사 인사를 전한 다음, 라인스는 볼랑 티거의 진형에서 탈출하려 했다. 라인스가 우측으로 선회하자 한 마리가 따라붙었다.

라인스는 엄청나게 좁은 선회반경으로 선회했다. 육중한 힘이 그녀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G였다. 볼랑 티거도 그녀를 따라 같이 선회하기 시작했다. 라인스는 하강하면서 선회하기 시작했다. 볼랑 티거도 나선 하강을 하기 시작했다.

세 바퀴 하고도 조금을 돌자 서로 아주 가까워졌다. 그리고 지면과도 아주 가까워졌다. 두 사람 다 이제 도망칠 곳은 없었다. 선택의 여지 또한 없었다.

땅에 부딪히기 직전 라인스와 그녀는 수평 자세로 돌아왔다. 라인스는 자세를 바로 하고 바짝 쫓았다. 이번엔 적의 측면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는 구도였다.

라인스는 방아쇠를 당겼다.

라인스와 볼랑 티거는 아주 가까이에 있었다. 용기사를 할 정도로 시력이 좋은 라인스는 조종석 내부에 앉아 있는 타라가 똑똑히 보였다. 그녀는 회청색 피부를 지닌 돌고래였다. 용의 존재가 너무 거대해 그동안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이렇게 가까이 있으니 알게 되었다. 공명한다. 그녀의 동족. 적이 라인스의 파장을 느꼈는지 역시 이쪽을 본다.

그녀의 새까만 눈동자가 보였다. 큰돌고래다. 라인스의 손가락은 이미 방아쇠를 누르고 있었다. 조종석만 날릴 예정이었기에 이번에는 기관총만을 사격했다.

돌고래 여자는 공포에 질려 있었다. 라인스가 방아쇠를 당기는 동시에 그녀 또한 원소-분자계 마법 ‘카울’을 발사했지만 방향 때문에 라인스에게 닿지 않았다. 총탄이 그녀에게 들어갔다. 그녀의 고개가 바로 푹 떨어졌다. 이내 공포에 질린 눈동자는 생기를 잃고 조종석에 처박혔다. 주인 잃은 용이 속도를 줄인 것을 라인스는 가볍게 지나쳐 갔다.

라인스는 방아쇠에 얹은 손이 어느새 떨리고 있는 것을 느꼈다. 그 눈동자부터, 푹 고꾸라지기까지의 과정이 머릿속에서 느리게 재생된다.

아마 라인스는 평생 그녀의 눈을 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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