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권 1장. 실수하지 않는 타라-(1)
전쟁은 교착상태에 빠져 있었다. 연합군은 아무리 밟아도 다시 자라나는 잡초처럼 끊임없이 돋아났고, 그걸 밟고 있는 우리도 조금씩 지쳐 가고 있었다. 나는 변함없이 수많은 적들을 하늘에서 떨어뜨리며 세계 1위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전체의 거대한 구도로 보았을 때는 그러했다. 아마 연합군 측 해군이 더 강력한 이유도 있을 것이다.
나는 격추를 많이 하고 전술을 발전시킨 공로로 대령까지 승진했지만, 전대장이 되지는 않았다. 대신 우리 대대가 일종의 독립대대가 되어 하늘판 특수부대 취급을 받았다. 나의 너무 급속한 승진을 경계한 사람들의 압박도 작용했을 것이고, 실제로도 우리 대대가 특수부대 역할을 하기에 부족함이 없기도 했다. 우리 대대는 내 노란 눈을 본떠 노란색 눈동자를 안장 양 옆에 붙이고 다녔고, 그래서 아들러(Adler)* 대대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 별명은 곧 준 공식명칭이 되었다.
(*독수리.)
특수대대라는 위치에 걸맞게 우리는 또 다시 특수한 임무를 맡게 되었다. 공해상에 프랑크 국적으로 추정되는 폭격룡 전대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아마 새끼 용을 사육하는 더비슈어트 육성소를 지워 버리기 위해 출동한 것 같다는 분석이었다. 한 전대는 어마어마한 병력이었지만, 더비슈어트를 폭격하기 위해선 그 정도는 필요했다.
그리고 이어진 말은 놀라웠다.
“폭격룡만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사령관인 델 대장에게 반문하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델 대장이 말했다.
“관측 결과 전부 폭격룡이었대. 외형도 그렇고, 비행방식도 폭격룡과 유사했고.”
“호위기는 없단 말씀이십니까?”
“일단 없는 걸로 알고 있어. 아마 더비슈어트를 폭격하려면 적어도 한 전대는 필요한데, 들키지 않고 잠입할 수 있는 병력이 딱 한 전대라서 그렇겠지. 호위기까지 붙이면 너무 눈에 띌 테니. 실제로 이번에도 입대한지 딱 하루 된 !파라 신병이 우연히 발견하지 않았더라면 그대로 지나쳤을 거야. 운이 매우 좋았지. 그동안 너무 고생만 했으니까, 좀 편한 임무야.”
나는 얼마 전에 완료했던 끔찍한 임무, 데프트바흐 임무를 상기하며 잠시 몸서리쳤다.
“쉬운 임무라···”
“말 그대로지. 전투도 아니고 거의 사냥이나 다름없을 테니. 이번만은 거절할 수도 있어. 쉬우니까, 다른 대대에 맡겨도 문제없거든. 휴식이 필요하다면 말해.”
전쟁 상황이 이럼에도 배려를 제시하는 것은 역시나 저번 임무가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나는 이렇게 말했다.
“하겠습니다. 이런 시기에는 하나라도 더 많이 격추시켜야 하니까요.”
그 말을 들은 델 대장의 얼굴에 미소가 감돌았다. 그녀는 내가 애국심이 묻어나는 말을 할 때마다 저런 미소를 지었다. 보통 상황이라면 애국심 뛰어난 장교에게 보이는 사령관의 당연한 미소 정도로 해석했겠지만, 상대가 델 대장이다 보니 저 미소마저도 너무 미심쩍은 것이다. 하지만 하루 이틀 일도 아니었다.
나는 대대원들에게 작전을 설명하고 정신 바짝 차리라고 당부했지만, 폭격룡만 있다는 말에 벌써 대원들은 부담을 던 모습이었다. 프랑크의 공군은 공격적이기로 유명했고 그것은 대공 전투가 목적이 아닌 폭격룡조차도 그러했는데, 그럼에도 전투룡 없이 날고 있는 폭격룡은 손쉬운 먹잇감이었다. 우리는 진형을 이루어 더비슈어트로 향하는 프랑크의 폭격룡을 향해 날아갔다. 한참을 난 뒤 하늘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 히데 대위가 말했다.
“2시 방향에 용 무리들이 보입니다.”
히데는 !파라라 눈이 매우 좋기 때문에 내 요룡을 맡고 있다. 위치로 따지면 제1편대 제2번룡이었다. 1번룡으로 가장 선두에 서는 자는 물론 나다. 나는 느긋하게 말했다.
“모습은?”
“프랑크 도색에 폭격룡입니다.”
지상 관측소에서 전해 준 내용과 똑같았다. 나는 대대원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아직 적은 우리를 발견하지 못했다. 우리는 지금부터 위쪽에서 기습한다. 모두 구름 위로 이동하도록.”
그러면 적들도 기습 직전까지 우리를 제대로 보기 힘들 것이다. 우리 대대는 기수를 올려 상승했다. 구름이 우리 모습을 가려 주었다. 이정도면 그들이 사선에 놓일 때까지 아무도 우리를 발견하지 못한다.
다만 폭격룡은 전투룡과는 달리 탑승자가 두 명 이상이었으므로, 6시 방향을 잡았다고 완전히 안심해서는 안 됐다. 후방을 보고 있는 사수가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후방으로 마법을 사용할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후방으로 기관포를 쏴댈 수는 있었다. 내가 구름 위로 올라가라 지시한 이유이기도 하다.
적당한 위치가 되자 나는 하강 지시를 내렸다. 우리는 먹이를 발견한 독수리처럼 그들을 향해 내리꽂기 시작했다. 내 사선에 폭격룡 한 체가 잡혔다. 용 한 마리를 격추시키려면 조준선에 적어도 2초간은 모습이 잡혀야 했다. 그때까지 뒤에 악착같이 따라붙을 수 있는지가 관건이었다.
방아쇠에 손가락을 얹고 누르려는 순간, 내가 조준하고 있던 폭격룡이 마치 이쪽의 행동을 예측하기라도 한 듯이 순식간에 자리를 피했다!
“뭔가 이상해요!”
라인스 소령이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그녀의 말 대로였다. 조준을 시작한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었는데, 상대는 마치 미래를 보고 온 것처럼 동시에 모두 직전에 피해 버렸다. 분명히 그들은 우리를 발견한 적이 없었다!
“대장님! 함정입니다!”
히데가 평정을 잃고 외쳤다. 왜 그렇게 빨리 함정이라 단언하는가? 우리는 이것보다 더 지독한 임무도 성공시킨 적 있었고, 아들러는 수많은 적을 떨어뜨렸다. 겨우 이 이상한 일 하나 가지고 히데가 ‘함정’이라는 말까지 써야 했을까? 그러나 변화가 인간의 눈에도 식별이 가능할 정도로 진행되자 나는 히데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맙소사.
나는 이 말을 소리 내어 말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써야 했다.
프랑크군의 광학미채가 서서히 풀리고 있었다. 용의 덩치와 안장의 크기가 줄어든다. 다인승 안장은 1인승의 날렵한 안장으로, 프랑크군 폭격룡으로 자주 쓰지는 앙뤼아 종 용 대신 날렵하고 빠른 카플랑 종으로 모습이 바뀐다. 공격적이기로 유명한 전투룡이었다.
동시에 눈에 띄는 특수 도색. 프랑크군 도색을 기반으로 안장에 상어이빨과 동그랗고 작은 눈이 그려져 있다. 라헬이 공포에 질려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볼랑 티거···”
우리 아들러 대대가 연합군에 악명을 떨치고 있는 것처럼, 연합군 측에도 그러한 부대가 있다. 세계 3위의 슈퍼 에이스 소피 라리보 대령이 이끄는 ‘볼랑 티거(Volant Tigre)’ 전대. 도이체스어로 직역하면 날아다니는 호랑이로, 비호(飛虎)처럼 용맹하게 상대를 무찌른다고 붙은 별명이다. 그들은 저렇게 국가 도색에 앞서 상어 도색을 해서, 웬만한 용기사들은 그들의 상어 이빨만 봐도 공포에 질리기 일쑤였다.
세계 1위와 2위 자리는 나와 히데가 각자 차지하고 있지만, 이것은 동부전선의 함량미달 키예프 용기사들을 일방적으로 학살한 기록이 대부분이다. 반면 소피 라리보는 꾸준히 도이체스의 용기사들을 떨어뜨리며 3위까지 올라왔다. 실질적인 세계 1위는 바로 그녀라고 보아도 된다.
그녀는 상대의 움직임을 예측하듯 저 멀리서 수를 읽고, 절대 실수하지 않는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 ‘실수하지 않는 용기사.’
즉, 방금 우리가 공격한 것은 호위룡 없이 무방비하게 등을 내주고 있는 폭격룡이 아니라, 연합군에서 가장 위험하고 전투적인 볼랑 티거 전대였다. 함정이 맞았다. 그들은 폭격룡인 척 위장을 해 도이체스를 속인 뒤, 양 떼를 느긋하게 학살하러 온 루프트바페를 멸절시키려고 도사린 늑대였던 것이다.
죽는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이 그것이었다. 볼랑 티거라는 이름만으로 주눅 든 것이 아니었다. 일단 저 상어 도색을 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우리 아들러 대대만큼이나 혹독한 훈련을 받은 베테랑이라는 의미다. 그런데 우리는 한 대대고 저들은 4개의 대대가 모여 만들어진 전대다. 병력이 너무 압도적이었다.
나는 평이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군들, 그동안 허접쓰레기들만 상대하느라 고생 많았다. 이제 제대로 싸워보자고. 내 이름을 걸고 너희들을 반드시 무사히 돌려보낼 테니까!”
내 말에 대대원들 사이에 퍼진 동요가 조금 가라앉는 걸 느꼈다. 신뢰다. 나에 대한 신뢰. 정작 나는 몇 명이나 살아남을 수 있을지 전전긍긍하고 있었지만 절대 티를 내서는 안 된다.
“제1편대는 적측 전대장 소피 라리보를 노린다!”
즉, 우리 편대가 최고로 위험한 미끼가 되는 것이다.
“2, 3, 4편대는 카오스 대형으로! 지휘는 라인스가! 이들이 더 흩어지기 전에 실시해!”
다음에 다시 채널을 우리 편대로 돌린다.
“뜨개기동을 실시할 거다. 나와 히데가 라리보를 노리는 동시에 둘이서 선도룡 역할을 하고, 너희 둘이 요룡 역할을 해서 우리를 노리는 자들을 처치해줘.”
“예!”
알비와 게랄드가 긴장된 어조로 대답했다.
뜨개기동은 마치 뜨개질을 하는 것처럼 두 용의 비행궤적이 얽혀서 붙은 이름으로, 라인스가 고안해낸 이후 루프트바페의 기본전술로 채택된 기동이다. 기본적으론 용 두 마리가 쓰는 전술이다.
한 마리가 S자로 뱀처럼 구불구불하게 비행하면, 다른 한 마리는 좌우 대칭된 모양으로 똑같이 비행한다. 그러면, 위에서 보면 두 마리가 끊임없이 8자를 그리며 뜨개질을 하듯이 궤적을 교차시키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게 하면 적룡이 앞서 가는 선도룡을 쫓아갈 때, 요룡이 사각에서 튀어나와 적룡을 요격할 수 있다. 상당히 많은 적룡을 이 전술로 떨어뜨렸고, 살아 돌아간 자들이 그렇게 많지 않았기에 전술이 유출되지도 않았다.
관건은 선도룡이 얼마나 민첩하게 기동해 요룡이 적룡을 격추시킬 때까지 죽지 않느냐이다. 그리고 기동이야말로 내가 가장 자신 있는 분야였다. 이번에는 그걸 네 마리가 한다는 것만이 달랐다.
우리는 선두 편대 쪽으로 향했다. 아들러와 볼랑 티거의 공통점은 지휘관이 가장 선두에 선다는 것이다. 소피 라리보는 저쪽에 있을 확률이 높았다.
2, 3, 4편대가 볼랑 티거를 최대한 파고들기 위해 흩어지고 우리 1편대가 대형으로 진입하자 화염이 빗발쳤다. 각각 기관포와 폭발마법이었다. 볼랑 티거는 공격적인 명성에 걸맞게 거의 전원이 원소-분자계 용을 타고 다녔고, 그 중에서도 화염을 남발하는 강력한 마법들을 순식간에 써댔다. 화력만큼은 최강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내가 상승하자 날 겨냥한 몇몇 용들이 같이 상승을 했다. 나는 거의 실속할 정도로 가파르게 상승을 해서 그들의 시선을 끌었다. 2, 3, 4편대가 카오스 대형을 완성하기까지 우리가 미끼가 되어야 했다.
히데가 나에게 이를 가는 소리가 들렸다. 이것은 무모한 도박이었다. 내가, 우리가 먼저 실속하면 그들의 먹잇감이 될 게 분명했으니까. 적당히 시선이 쏠리자 나는 상승을 멈추고 갑자기 방향을 전환했다. 2시 방향의 용이 곧 12시 방향이 되고, 나는 기관포를 발사한다. 용의 사출공에 기관포가 정확히 들어갔고 용은 폭발했다. 나는 튀어 오르는 살점과 검게 불타는 잔해를 그대로 통과했다.
그리고 또 눈앞에 보이는 용에게 돌진. 이번엔 둘이서 마주보고 있다. 나와 그자가 점점 가까워진다. 아무도 속도를 늦추지 않는다. 이 치킨 게임에서는 먼저 굴복하는 쪽이 죽는다. 사거리에 진입한 즉시 우리는 서로에게 공격을 퍼부었다. 이러면 둘 다 공격을 계속 맞는다. 장갑이 더 얇은 쪽이 먼저 폭발하는 것. 아바셋은 생명계 용이라 ‘장갑’이 매우 튼튼한 편이니 내 쪽에 승산이 있다. 그러나 내가 쓰는 것치고는 조금 무식한 전법.
용은 자기 운명을 갑자기 깨달았는지 아예 탈출을 시도했다. 이 치킨 게임 자체를 무위로 돌리려고 한 것이다. 누가 아바셋의 두꺼운 장갑을 그녀의 귀에 대고 속삭여 알려 준 것처럼. 그녀는 내 사선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아직 히데가 있었다.
히데는 적룡의 사각에서 갑자기 튀어나와 요격을 가했다. 이번만은 피하지 못했다. 머리가 날아간 용은 빙글빙글 돌며 추락하기 시작했다.
스코어 2대 0.
나는 하늘을 수놓은, 불타는 주황색 점들을 바라보았다. 블랑 티거는 카플랑 중에서도 주황색 용들을 엄선해 뽑았다. 방금 둘을 줄였지만 그들은 많았다. 정말 많았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이것은 그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는 고독한 한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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