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리고 너는 용이 되어-69화 (69/102)

3권 5장. 배신자의 길-(2)

그 뒤 라인스는 디터가 마유브의 항구를 폭파시키도록 부추겼다. 사고가 한쪽으로 몰려 버린 디터는 헤르만의, 라인스의 예측대로 정확히 움직였다. 헤르만은 짐짓 디터를 몰아세운 뒤 파스첵으로 사람을 모으도록 명령을 내렸다.

이게 그들이 노리던 것이었다. 마유브는 눈속임이다. 그들의 진정한 목적은 파스첵에 있었다.

이제 라인스가 안토니나를 잡아갈 차례였다. 라인스는 라헬 몰래 아인자츠그루펜 대원들 몇을 빼내어 안토니나가 숨어 있는 집으로 향했다. 혼자선 위험하다고 말리는 대원들을 뿌리치고 집으로 들어갔다.

굉음, 폭발음. 그것들은 라인스와 안토니나의 몸에 점점 흔적을 남기기 시작했다. 라인스는 착실하게, 안토니나의 몸에 철심을 하나씩 꽂아 넣기 시작했다. 이미 진통제를 대량으로 미리 맞은 안토니나는 고통스러워하지는 않았지만, 움직임이 눈에 띄게 느려졌다.

모두 미리 합의한 사항이었다.

마지막 한 개의 철심을 꽂아 넣은 라인스가 안토니나에게 말했다.

「넌 이제 끝났어. 가자.」

「연극하느라 수고했어, 언니.」

「난 수고란 말을 들을 자격이 없어. 그리고 아직 나는 끝나지 않았는걸.」

라인스가 다시 마법을 발동시켰다. 예정에 없던 일이라 안토니나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라인스를 올려다본다.

마법으로 도끼 하나를 공중에 띄운 라인스가 말했다.

「너 저번에 양쪽 발목이 잘렸었지?」

「설마, 언니···」

「헤르만이 그거 정말 미안해했어.」

말을 마친 라인스는, 그 도끼를 자신의 왼쪽 발목에 내려친다. 진통제 같은 건 없었다. 이미 안토니나에게 다 써버렸다. 라인스는 아득해지는 고통을 참으며 주저앉았다.

「그 대신이라고 하기는, 이게 다 내 멋대로 벌이는 짓이라서 하기가 그렇지만, 이쪽도 한 번 해야만 했어. 널 혼자서 잡아오려면 이정도 부상은 있어야 하지 않겠어?」

「언니···」

「나는 괜찮아.」

라인스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난 무엇이든지 할 수 있어. 원하는 게 있으면 그 무엇이든지.」

무엇이든.

라인스는 밖에 있는 대원을 불렀고, 안토니나와 함께 실렸다. 헤르만은 사무실에서 딱 한 번의 문책을 했다. 발에 대해서였다.

그 뒤로 그들은 파스첵에서 대형마법을 발동할 준비를 착실하게 해나갔고, 라인스는 ‘원래 계획’보다 일찍 마법을 발동시킨 뒤, 디터가 함께 두었던 공격용 용병기의 마법과 조합해 기세계 마법 ‘뷔티에’를 만들어 냈다.

헤르만이 집에서 습격자들에게 썼던 것만큼이나 조악했지만, 어쨌든 ‘뷔티에’는 ‘뷔티에’였다. 라인스는 그것을 쏘았고, 배들의 변장은 벗겨졌으며, 디터는 의기양양했다.

라인스가 ‘뷔티에’를, 안토니나를 가둔 마력 방해 결계 감옥에도 쏜 지는 하나도 모르고.

“아직 안 끝났습니다.”

라인스는 그동안 수많은 배신을 해 보았다. 그 배신들은 다 씁쓸했었다. 그러나 이번만은, 이번만큼은 정말로 유쾌했다.

라인스는 디터가 가져온 용병기의 마법 구성을 바꾼 뒤, 그 누구도 이제 멈출 수 없도록 방아쇠를 부숴 버렸다.

그것과 동시에 감옥에서 나온 안토니나가 자신의 마력과, 설치해 둔 마법과, 주변에 엄청나게 널려 있는 베네딕툼의 마력을 이용해 마법을 발동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빈랜드와 이소프티아에 수출하던 베네딕툼은 다 광석이었지만, 이번만큼은 정제 베네딕툼 괴들을 최대한 실었다. 그리고 안토니나는 드라헨킨더였기에, 저 멀리 배에 실린 베네딕툼의 마력마저 소녀의 손아귀에 있었다.

라인스가 방아쇠를 부순 순간 헤르만이 무선으로 지시를 내렸다.

“알프리다. 지금이다. 폭격 개시.”

허공에서 폭격 대기중인 알프리다는 그때까지 망설이고 있었으나, 출전 전에 헤르만이 했던 말을 상기하고, 헤르만을 믿으면서, 나머지 편대들에게 폭격을 지시했다. 거대한 불덩이들이 시민들의 위쪽에 떨어지기 시작했고, 다들 죽음을 예감했다.

그 불덩이는 허공에서 아무런 해도 끼치지 못하고 흩어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바닷물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티카가 곧 손을 바다 위로 내밀매 야와께서 큰 동풍이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 !파라 자손이 바다 가운데를 육지로 걸어가고 물은 그들의 좌우에 벽이 되었더라.”

헤르만이 도이체스어로, 뜻 모를 구절을 암송한다. 그리고 바깥은 정확히 그가 말한 대로 되어가고 있었다.

물이 갈라져 솟아오르고 있었다. 그 솟아오른 물은 장벽이 되어 그 바닥의 마른 땅을 드러내었다. 피에토 대륙을 향한 마른 바닷길이 생겨나고 있었다.

또 다시 불덩이. 그러나 여전히 결계에 가로막혀 크라쿠프인들에게 닿지 않는다.

사태를 파악한 크라쿠프인들은 갈라진 땅으로 몰려가기 시작했다. 파스첵에서 이소프티아까지는 육안으로 보일 정도로 가까운 거리. 수백만의 사람이라도 짧은 시간 동안 이동하기 충분했다.

감옥에서 나와 그 거대마법을 발동시키고 있는 소녀는 온몸이 빛나고 있었다. 목숨이 타오르는 빛이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모르는 눈에는 소녀가 무척이나 성스럽게 보였다.

마치 『용』이 된 것처럼.

디터가 총을 쐈지만 소녀는 이미 강력한 결계를 몸에 두른 뒤였다. 그는 헤르만을 향해 총을 쏘려고 했지만, 헤르만이 먼저 선수를 쳐서 디터를 제압했다. 그는 디터에게 수갑을 채운 뒤, 디터의 부관에게 차갑게 말했다.

“내통죄와 반역죄, 그리고 실험체를 감옥에서 내보내 크라쿠프인들을 탈출시킨 죄로 디터 바우어를 체포한다. 너는 당분간 권한대행을 맡아라.”

“이게 무슨!”

디터가 온몸을 몸부림치며 항의하자 헤르만은 비웃음을 날리며 말했다.

“라인스를 이용해 날 모함하려고 준비한 모양이겠지만, 이미 크라쿠프에 왔을 때부터, 라인스는 네놈이 반역을 준비하고 있다는 증거를 착실히 모아 왔다. 막으려고 했지만 결국 늦어버렸군. 하지만 네놈만은 반드시 잡아넣을 거다.”

그러자 라인스가 디터와 한 대화 녹음본을 틀었다. 변조하진 않았다. 다만 맥락을 잘라내 편집했었고, 따라서 매우 수상쩍게 들리기는 충분했다.

그제야 디터는 완전히 당했다는 걸 깨닫고 울부짖었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모든 증거는 디터에게 불리하게 조작되어 있었다.

헤르만도 안토니나에게 손을 써 보려는 시늉을 했으나 마법이 너무 강력해 접근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안토니나는 하루 내내 그 자리에서 마법을 발동시키고 있었다. 최후의 한 사람이 이소프티아의 육지를 밟자, 하루 동안 바다를 가르고 파스첵 상공과 바닷길 하늘을 결계로 지키며 빛나던 안토니나는 그 자리에서 고꾸라지더니 두 번 다시 움직이지 않았다. 그 순간, 폭발과 함께 안토니나의 몸이 사라지더니, 재만 남았다. 디터의 부관은 허망한 눈길로 그 재를 바라보았다.

폭발은 헤르만이 일으킨 것이었다. 안토니나의 시신이 놈들에게 유린되지 않도록.

그렇게 모든 일이 끝났다.

라인스와 헤르만에게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헤르만은 징계를 받고 진술을 하느라, 라인스는 중요 참고인으로 출석하느라 이리저리 바빴다. 그러나 디터의 혐의가 너무 명확했으므로 그들은 뚜렷한 불이익을 받지는 않았다.

정말로 모든 일이 끝나고 나서 헤르만은 그들을 집에 초대했다. 페인트 냄새가 새로 나는 말끔한 집은 마치 새 집 같았다.

정원에서 차게 식힌 맥주를 나누어 주며 헤르만이 말했다.

“속여서 미안해.”

그리고 헤르만은 모두에게 거의 모든 내막을 알려 주었다.

“디터를 진짜로 속이려면 라인스가 우리와 반목하는 것처럼 보여 줘야 해서, 너희들까지 속일 수밖에 없었어. 그 점은 미안해. 라인스는 전부 내가 지시한 대로 움직인 거니까 잘못이 없어.”

안토니나의 결심과 운명에 대해 들은 게랄드는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넷 중에서 가장 정보가 적었던 라헬이 말했다.

“아무튼, 구해냈네요. 2천만 명. 2천만을.”

그 말에 분위기가 조금 달라졌다.

라헬의 말대로, 그 수많은 사람을 구해낸 것이다. 그것만은 변하지 않았다.

헤르만은 세 사람에게 자폭캡슐에 대해 상기시켜 다시 은근한 위협을 가한 뒤, 절대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말라고 압력을 넣고는 그들을 돌려보냈다.

라인스는 가지 않고 남아 있었다. 게랄드와 라헬이 가고 나자 헤르만이 씁쓸한 어조로 말했다.

“그래도 사람을 죽여 버렸어.”

“이번엔 아무도 죽지 않았어요, 헤르만.”

안토니나를 보호하고 있었던 노인들도 무사히 탈출에 성공했다. 헤르만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라인스. 안토니나 말야. 안토니나는 내가 죽인 것이나 다름없어.”

“어차피 안토니나는 죽거나 죽는 게 더 나을 꼴을 당했을 거예요. 당신이 구할 수 없었을 거라고요.”

“안토니나까지 구할 수 있었더라면···”

헤르만이 허망하게 중얼거리자, 라인스가 말했다.

“‘용’이라도 될 생각이세요?”

신이라도 될 생각이냐고, 라인스가 그렇게 묻는다. 헤르만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 이상 어떻게 할 수가 없었어요, 헤르만. 최선을 다한 거라고요.”

“그런 걸까···”

“그 소녀를 죽인 것만큼이나, 우리가 2천만을 구한 것도 확실하니까요. 그 둘은 결코 같이 비교되어서는 안 되지만, 둘 다 엄연한 사실이에요. 안토니나는 처음부터 구할 수 없었잖아요? 안토니나는 자기 최후를 스스로 선택할 기회를 받은 걸지도 몰라요.”

그렇게 말하고, 라인스는 돌아섰다. 이 말은 헤르만의 기분을 조금 낫게 해주겠지만, 완전히 없애버리지는 못할 것이다. 헤르만은, 그 냉혹한 길 위에서, 그 작은 소녀를 곱씹을 것이다.

그래서 아마도 라인스가 헤르만을 완전히 증오하는 게 불가능할 것이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