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리고 너는 용이 되어-67화 (67/102)

3권 4장. 용의 아이들-(7)

게랄드는 떨리는 목소리로 간신히 대답했다.

“스피커로 전환했어요. 바로 보고하시면 돼요.”

이 통신기는 빨리 입고 벗기가 힘들다. 게랄드가 발신기를 황급히 떼어내는 동안 라인스가 보고를 시작했다.

“P 남남서쪽 가정집에서 안토니나를 체포했습니다. 무슨 수를 썼는지 사용했던 용병기를 회수하는 데에는 실패했지만, 일단 완전히 무력화시키는 데는 성공했습니다.”

게랄드가 발신기를 다 벗어 나에게 건네자 나는 게랄드의 속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발신기를 착용하며 말했다.

“그 지역은 이미 수색을 끝낸 구역인데, 어떻게 찾아낸 거지?”

“검은 이빨들의 움직임으로 찾아냈어요. 전원 토벌을 하지 않았는데도 유독 P에서 교전이 잦았다는 말을 듣고 혹시나 해서 총살시키기로 했던 검은 이빨들을 일부 빼내어 P에 풀었습니다. 용병기를 가진 저를 무시하고 몰리는 지점이 있길래 그곳으로 갔더니 안토니나 코바르첵이 있었습니다. 교전 결과 왼쪽 발목이 절단되었지만 발도 보존되어 있고 절단부가 깔끔해서 처치해주신다면 금방 원래처럼 걸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라인스의 목소리는 지나치게 침착했다. 나는 조용히 말했다.

“지금 보고도 하지 않고, 격리구역의 검은 이빨들을 멋대로 빼돌린 뒤 허가받지 않은 교전을 했다고?”

“대원들은 잘못이 없습니다. 다 제가 강권해서,”

“윈터. 넌 지금 아인자츠그루펜 소속, 친위대 소속이라고. 하늘에서 교전 중인 용기사가 아니라! 아니지, 통신상으론 적절치 않군. 라인스, 넌 징계다. 나중에 내 임시 사무실로 와. 안토니나 코바르첵을 잡아왔으니까 이 정도 선에서 끝내겠어.”

나는 통신을 끊었다.

라인스는 금방 도착했다. 양 손을 등 뒤로 해서 묶이고 입에 재갈을 물린 안토니나와 함께였다. 안토니나는 온몸에, 죽지만 않을 정도로 온 몸 가득 굵직한 철심이 꿰뚫고 있었다. 몇몇은 치명적인 곳을 아슬아슬하게 비껴 가 있었다. 안토니나는 치료에만 집중하느라 다른 그 어떤 행동도 할 수 가 없었다.

발목이 잘린 라인스는 대원 한 명에게 업혀서 돌아왔다. 다른 대원은 지혈하고 차게 운반한 라인스의 왼발을 들고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나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방아쇠를 당겨 생명계 마법 ‘니히카트 데토레 즈조’를 발동해 라인스의 발을 원상태로 붙였다. 무려 마탄 하나가 통째로 소모되었다.

“땅에 내려놓지 마. 하루 정도는 걸으면 안 돼.”

잘리자마자 붙였더라면 바로 걸어 다닐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하루 정도 안정을 취해야 했다.

안토니나와 라인스가 각기 다른 방향으로 실려가는 동안 게랄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안토니나는 어떻게 하나요···?”

“일단 마력 방해 결계가 쳐진 감옥으로 들어갈 거야. 그리고 저 철심을 제거하고 수술을 해주지. 물론 전부 비마법적으로. 방해 결계 안에서 수술해야 하니까.”

나는 게랄드의 시선을 피하며, 그렇게 말했다. 게랄드는 잠시 멍청히 서 있더니, 이내 있는 힘껏 어딘가로 뛰어가 버렸다.

사무실로 들어가자 라인스가 창백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이제, 임무를 완수한 겁니까···?”

그렇게 말하는 라인스의 얼굴은 몹시 지쳐 보였다. 나는 착잡한 마음으로 대답했다.

“그래. 거의.”

그 뒤 우리는 사무실에서 단 둘이 남았고, 남들이 기대하는 고성은 오가지 않았다. 나도 라인스도 그런 종류의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라인스의 발이 낫는 동안 우리는 이제 파스첵 근처에 비치한 용병기들을 열심히 발동시키며 다녔다. 저번에 라인스와 함께 마법 조합을 전부 완성했기 때문이다. 발이 나은 뒤에는 라인스도 같이 참여했다. 라헬은 여전히 미심쩍어하는 듯했지만 라인스가 안토니나를 잡아온 뒤로는 의심을 조금 푼 것 같았다.

그러는 동안에도 크라쿠프인들은 열심히 탈출하고 있었다. 디터가 항구의 검문을 강화한 모양이었지만, 게슈타포로 살아온 나를 방해하기에는 조금 역량이 달렸다. 크라쿠프인들은 무사히 빈랜드로 탈출하고 있었다.

엄밀히 말하면 지금 가는 그들은 빈랜드로 탈출하는 게 아니었다. 그들은 빈랜드의 식민지인 이소프티아로 가고 있었다. 파스첵 항구에서 맨눈으로 보이는 바로 그 피에토 대륙의 국가로. 항구봉쇄령을 내린 상태지만 이소프티아의 배들은 추축국 소속 배로 변장해서 항구를 방문하고 있었다. 마법적 장치를 좀 동원하면 완전히 다른 나라 배로 보이게 할 수 있었다. 전쟁에서는 당연히 조약 위반이었지만, 이소프티아는, 물론 그 주인인 빈랜드도 전쟁 중이 아니었고 이것은 군사 작전도 아니었다. 디터는 항구를 봉쇄했지만 그렇게 빈랜드 소속의 배는 열심히 드나들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폭격일이 다가왔다.

차폐는 완벽할 것이기에 저 배들은 지상이 폭격당하는 것조차 모르게 될 것이었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어제부터 항구의 기능을 정지시켰다. 항구 쪽 인력을 전부 뺀 것이다. 배들은 알아서 떠날 수는 있지만 들어올 수는 없었다. 억지로 들어오려면 할 수 있지만 그 순간 용병기가 발동될 것이 분명했다.

우리는 파스첵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작은 산꼭대기에 가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용기사들은 몰래 마법을 발동시키느라 분주했다. 파스첵 전체를 감싸는 결계마법을.

라인스는 내 옆의 거대한 기계에 손을 올려두고 있었다. 이것은 정식 용병기로, 아인자츠그루펜이 원래 가져다 둔 것이었다. 시민들이 파스첵을 탈출하는 걸 막기 위해서였다. 루프트바페가 초토화시키지 못하는 외곽 지역을 탈출하려는 자들을 마저 처리하는, 매우 강력한 공격마법이 들어 있는 용병기였다.

본국에서 출발한 우리 대대가 몇 분 뒤면 파스첵에 도착한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다. 긴장감이 감돌고, 용기사들은 각자가 발동시킬 마법에 집중했다.

이제 내가 폭격명령을 내리는 순간 마지막으로 라인스가 마법을 발동하면 결계가 완성된다. 그렇게 다들 초조하게 하늘에서 날아올 용들을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라인스···?”

라헬이 경악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건 게랄드도 마찬가지였다. 용기사인 나 역시, ‘원래 계획’에 없던 이변을 눈치 채고 있었다.

“왜 지금···?”

라헬은 거기까지 중얼거리고, 근처에 있는 디터를 보더니, 이제야 모든 걸 깨달았다는 듯이 라인스에게 달려들려고 했다. 그러나 그 순간 갑자기 아인자츠그루펜 대원들이 튀어나와 라헬을 저지했다.

라인스가 예정보다 일찍 마법을 발동시킨 것이다.

라인스는 뒤이어 자기가 기대어 서 있던 아인자츠그루펜의 거대 용병기의 방아쇠를 당기고, 우리가 그동안 만들어 두었던 마법에 함께 조합시켰다!

그렇게 엄청난 규모의, 아마 남자인 디터조차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하게 결계 마법 대신 기세계 마법 ‘뷔티에’가 쏘아져 나갔다. 모든 마법을 무효화하는 보이지 않는 폭풍이 지나가자 전방에 정박해 있는 모든 이소프티아 선박의 추축국 변장이 전부 깨졌다.

“라인스! 지금 뭐 하는 짓이에요!”

게랄드가 절규했다. 그런 게랄드를 보며, 라인스는 태연하게 중얼거린다.

“어머나, 추축국인줄 알았는데, 전혀 모르는 배가 와 있네요? 이소프티아인가?”

“누군가와 내통한 거지.”

디터가 말하고는 씨익 웃으며 나를 보았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헤르만 예거 연대지도자? 아니, 반역자!”

그러자 용기사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나는 표정을 변화시키지 않으려 애쓴 뒤 말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당황스러우십니까? 하지만 이미 끝났습니다. 여기 이 라인스 윈터 최상급돌격지도자가, 당신이 그동안 외국과 내통해 명령을 거스르려 했다는 걸 전부 말해주었으니까요. 이제,”

디터가 변장이 풀린 이소프티아의 선박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증거마저 있으니 당신은 이제 끝입니다. 반역자!”

친위대인 디터가 말한, 그 ‘반역자’라는 말은, 이 공간에 소름 끼치는 여운을 남기며 맴돌았다.

의기양양한 디터는 나에게 총구를 겨누고 체포해가려 했으나, 그 순간 멈칫했다.

라인스가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었다.

“아직 안 끝났습니다, 디터.”

그러더니, 라인스는 용병기에서 발동되고 있는 마법을 한 차례 바꿔버린 뒤, 방아쇠를 부숴 버렸다. 그 누구도 지금 발동된 마법을 멈출 수 없도록!

곧 이어서, ‘뷔티에’ 대신, 무언가 다른 마법이 발동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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