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권 4장. 용의 아이들-(6)
“네에?”
게랄드가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외치자, 나는 게랄드에게 조용히 하라는 손짓을 하며 말했다. 나는 말을 이었다.
“그동안 우리는 마유브로 오는 빈랜드 국적 화물선을 통해 크라쿠프인들을 탈출시키고 있었지. 사람은 하나도 안 노리고 항구의 기능만을 방해한 것은 우리를 막겠다는 의도야. 아까 봤다시피 분명 아인자츠그루펜이 한 짓이었고, 디터가 지시했을 게 틀림없어. 아쉽게도 거기까지 알아낼 증거는 없지만, 상대도 증거가 없으니 그런 짓밖에 할 수 없었겠지.”
“그럼 어떡해요!”
게랄드가 패닉에 빠지려 하자 나는 재빨리 말했다.
“그래도 파스첵으로 다시 모이게 시켰으니 괜찮아. 아직 만회할 수 있어. 디터는 파스첵마저 폭파시키지는 못할 테니까. 그동안 들키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해. 거기도 국제항이야. 할 수 있어. 아마 디터는 다른 방식으로 날 방해할 거야.”
그 말을 듣자 라헬이 한탄했다.
“일이 더 어렵게 되었네요. 마유브에선 자연스러웠을지 몰라도 파스첵은 조금 다르잖아요. 빈랜드에서 파스첵까지 오는 선박은 조금 수상해 보일 텐데.”
“왜?”
라인스가 묻자 게랄드가 대신 대답했다.
“파스첵은 피에토 대륙과 무역하기엔 최고의 항구이고, 아르텐 대륙과는 그럭저럭 괜찮지만, 빈랜드에서 오기에는 너무 힘들어요. 아무리 지금 베네딕툼이 똥값이 되었다 해도 그쯤 되면 손해가 더 많을걸요. 그만큼 절실하다면 오겠지만요.”
“하지만 그렇게 하면 국제사회에 어떤 메세지가 전달될 가능성도 있겠네. 그렇게까지 해서 베네딕툼을 바라면 전쟁에 대한 어떤 신호로 보일 수도 있으니까. 어렵게 되었네.”
라인스가 태연하게 말했다. 라인스는 늘 침착한 편이었으니까. 나는 말했다.
“꼭 그렇게 어렵게 된 것만은 아냐.”
다들 궁금한 눈빛으로 이쪽을 바라보았지만 나는 설명을 중단했다.
“나중에 이야기하자.”
디터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디터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지?”
“검은 이빨에 대한 여론이 심상치 않습니다. 어떤 방식으로 숨길까요?”
“숨기지 마. 이미 너무 눈에 띄었어. 차라리 신종 전염병이라고 말해버려. 빨리빨리 솎아내자고. 그래야 불안감이 덜 조성될 테니. 격리한다고 공표하고 전부 죽여 놔. 실험체로 써 봐도 괜찮겠지만 우리는 그럴 시간이 없어.”
디터가 물러가고, 용기사들과 일부 아인자츠그루펜들은 그 옆 도시까지 가서 수색을 ‘가짜’ 수색을 재개했다. 그래, 가짜 수색이었다. 알고 있는 사람은 우리 중 일부밖에 없었지만.
분위기는 낙관적이었다. 정말로, 안토니나가 도망칠 곳은 거기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이틀 수색을 하는 동안 게랄드는 점점 초조해 했다. 내가 언제 마음을 바꿔 안토니나를 잡아갈지 짐작할 수 없는 탓이겠지.
그러던 이틀 째, 라헬이 나에게 다가왔다. 혼자였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라헬이 고개를 끄덕였다. 라헬이 탐탁찮은 표정으로 말했다.
“쓸데없는 의심일지 모르지만···”
그러면서 계속 주저하기에, 빨리 말해보라고 눈짓으로 재촉했다. 설마 안토니나의 일을 알게 된 것일까? 그러나 라헬이 말한 내용은 전혀 뜻밖이었다.
“라인스가 수상해요.”
“라인스가?”
그렇게 되물으며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나는 중얼거렸다.
“마침 안 보이는군.”
“그동안 같은 수색조가 되면서 느꼈는데··· 라인스는 이상해요. 정말 이상했어요!”
“어떤 점에서?”
라헬이 적당한 단어를 고르느라 눈살을 찌푸렸다.
“아인자츠그루펜 대원들과 이야기를 많이 해요.”
“그건 너도 그렇잖아.”
“하지만 라인스는 평소에 그런 성격이 아닌 것 같았고··· 아무튼 이거 말고, 라인스, 크라쿠프어 할 줄 알아요!”
“안다고? 하지만 전에는 전혀 모른다고—”
“그런데 할 줄 알았어요! 말하는 건 좀 더듬거렸는데 듣는 건 문제 없는 거 같더라고요. 말하는 걸 어쩌다 듣게 됐어요. 그 정도면 외국어를 엄청 잘하는 축에 들지 않나요? 그 정도면 보통 할 줄 안다고 말하지 않나요?”
그리고 라헬이 심각한 표정이 되어 말했다.
“그리고 몰래 밖으로 나가요.”
“어디를?”
“거기까진 모르겠는데, 일단 저희는 수색할 때 검은 이빨들을 전부 소탕하면서 했거든요. 안전을 위해서요. 수색 마지막 날, 전부 소탕한 날, 라인스가 어디 잠시 나갔다 왔는데 용병기에 피가 묻어 있었어요. 사람을 죽였을 리가 없으니 당연히 검은 이빨이겠죠. 그런데 적어도 T에는 검은 이빨이 하나도 없었어요. 그럼 다른 도시까지 나갔다 왔다는 말인데, 제가 어디 갔다 왔냐고 물어봤을 때는 잠깐 가볍게 산책만 하고 왔다고 거짓말을 했거든요.”
“···우리는 P에서 검은 이빨들을 전부 죽이진 않았어. 우리에게 달려드는 것들만.”
“라인스가 P로 갔을지 그 옆의 다른 도시로 갔을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멀리 나갔다 온 건 확실하고, 당신에게 보고도 안 했네요. 그리고—”
라헬은 말을 더 이으려다가, 내 어깨 너머를 보며 표정이 굳었다. 라헬의 시선을 따라 나도 몸을 틀었다.
“···그리고 저기 저분이랑 오네요.”
라인스가 디터와 함께 오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다 말했다.
“네가 들려준 건 꼭 참고하도록 할게.”
나는 디터가 가까이에 오자 말했다.
“무슨 일이지?”
그러는 동안 라인스는 우리 옆으로 와서 섰다. 게랄드도 우리를 보더니 이쪽으로 왔다. 디터가 말했다.
“슬슬 항구봉쇄령을 내려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서 말입니다. 추축국 이외 선박들이 여기 오는 걸 금지시켜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날 여기를 얼쩡거리다가 괜한 걸 봐서는 안 되니까요.”
“지금 완전히 봉쇄하지 않고 다른 추축국 선박은 금지하지 않은 이유는 크라쿠프인이 불안해져서 소동을 일으킬까 봐?”
“예.”
이제 빈랜드 선박이 올 수 없을 것이다. 디터의 어깨 너머로 이 대화를 들은 라헬과 게랄드의 얼굴이 창백해지는 것을 보았다. 라인스는 속내를 알 수 없는 무표정이었다.
“좋아. 그것도 수상에게 얘기해.”
우리에게 정말 불리해 보이는 이야기였지만 거절할 수는 없었다. 디터의 제안은 이 시기에 매우 타당했다. 거절하면 의심을 살 것이다. 내가 저렇게 말하고 디터가 돌아서서 나가자 라헬과 게랄드가 사색이 된 얼굴로, 눈빛으로 묻는다. 이제 어떡할 거냐고. 나는 손을 내저어 불안해하지 말라는 손짓을 하며 말했다.
“저래도 괜찮아.”
나에게는 대비책이 있었다. 그러나 옆의 라인스를 힐끔 곁눈질한 라헬은 전혀 안심한 기색이 아니었다.
사건은 하루 뒤에 일어났다.
“라인스가 사라졌어요!”
라헬이 사색이 되어 말했다.
“잠시 자리를 비운 게 아니고 진짜로 사라졌어?”
“임무를 수행하겠다며 아인자츠그루펜 대원까지 몇 이끌고 갔어요! 당신에게 보고 안 했죠?”
“한 적 없어.”
그렇게 술렁이는 우리를 근처에 있던 몇몇 아인자츠그루펜 대원들이 긴장한 채로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라헬을 다그쳤다.
“얼마나 됐는데?”
“세 시간 즈음 되었을 거예요.”
“그러면—”
내가 말을 이으려는 순간 게랄드가 손을 번쩍 들어 우리 이목을 집중시켰다.
“—응답 바랍니다.”
라인스의 목소리가 게랄드가 장착하고 있던 통신기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게랄드가 일찌감치 인이어로 착용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게랄드가 말했다.
“응답. 여기는 본부입니다.”
“어, 게랄드야? 이거 연대지도자에게 전해 줄래? 안토니나를 잡았어.”
그 순간 게랄드는 표정 관리에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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