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권 4장. 용의 아이들-(3)
타당한 가설이었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게랄드의 다음 말을 기다렸으나, 게랄드는 거기서 멈췄다. 나는 그 부분에서 참기 힘든 찜찜함을 느꼈다. 이 임무에 게랄드를 데려오지 않으려 했던 두 번째 이유는, 그녀가 너무 궁금증이 많다는 것이었다. 용기사로서는 꽤 괜찮은 자질일지 모르지만 친위대 임무 중에는 치명적이다. 라헬은 눈치껏 의문점을 묻지 않았고 라인스는 말없이 짐작해낸 뒤 입 밖에 내지 않을 것이었지만, 분명 게랄드는 이것저것, 물어봐서는 안 될 것까지도 물어볼 게 거의 확실했다. 그리고 저 검은 이빨은 확실히 너무나 수상했다. 그런데도 묻지도 않고 받아들이고 있다. 게랄드가 갑자기 눈치가 좋아졌다는 쪽에 걸기에는 그동안 봐왔던 게 너무 많았다.
이번 마병은 단순히 식인 성향을 강화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훨씬 더 위험한 변화를 여럿 일으키는 것 같았다.
그 뒤로는 T에 가 있는 라헬에게서 통신으로 보고를 받았다. 그쪽도 의미 있는 잔향을 찾아내지는 못했다. 그렇게 수색 완료 구역을 지운 뒤 야간 수색을 지시했다. 3교대이니 낮을 담당한 우리가 늦은 저녁까지 수색을 하고 10시부터 야간 교대조가 새벽 동안 열심히 수색을 할 것이었다. 3교대는 오랜만이었다.
저녁을 먹고 한 숨 돌리려는 찰나, 게랄드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 조금만 산책할 건데 같이 가주시면 안 될까요?”
나는 무심하게 대답했다.
“해 지고? 별로 권장하진 못하겠는데. 대원들을 붙여 주도록 할게.”
“아니, 그게 아니고요. 좀 있으면 황혼이잖아요. 여기, 꽤 예쁠 것 같다고요. 야경 좋아하셨잖아요?”
우리 대화를 들으며 채비를 하던 대원들이 게랄드의 말을 듣더니 도로 앉기 시작했다.
나는 야경에 손톱만큼도 관심이 없었지만 게랄드가 P에 와서 꼭 할 말이 있다고 했던 게 떠올라 맞장구를 치며 자연스럽게 일어섰다. 중대장은 둘만 나가는 것에 살짝 우려를 내비치고 있지만 우리 무장을 보고는 그냥 괜찮다고 판단한 것 같았다. 하긴, 오후에 ‘검은 이빨’들을 문자 그대로 썰어대던 내 모습을 다른 소대장이 묘사해 줬던 게 떠오르기라도 한 모양이다.
엄밀히 말하면 야경은 아니었다. 이곳은 이미 죽은 도시였다. 살아 있어야만 생겨나는 게 야경이다. 그러나 게랄드의 말대로 곧 황혼이었고, 죽은 도시의 황혼은 꽤 으스스하고 아름다운 핏빛으로 물들 것이다.
대원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된 지 한참 되었을 무렵 게랄드가 말했다.
「검은 이빨들이 마력에 이끌린다면 인근에서 가장 마력 밀도가 높은 우리에게 그렇게 악착같이 달려든 건 당연한 일일 거예요.」
맙소사. 게랄드는 아무도 듣지 못하는 이곳까지 와서도 혹시나 그들이 우리 대화를 들을까봐 크라쿠프어로 말하고 있었다!
「하고 싶은 말이 뭐지?」
이 질문을 벌써 세 번째로 게랄드에게 하고 있다.
「그런 우리를 보고도 지나친 무리들이 하나 있었어요.」
「보고도?」
「네. 우리를 분명하게 ‘인식’하고도요.」
게랄드가 말을 이었다.
「우리에게 달려들지도 않았으니 쓸데없이 추적해서 힘 빼진 말자고 해서 그냥 지나갔지만요. 그 녀석들이 이상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만에 하나, 그들이 ‘마력을 좇아’ 가고 있었던 거라면요?」
「‘우리’보다도 더 유혹적인?」
「그거죠.」
그 순간 나는 게랄드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알 것 같았다. 게랄드가 물었다.
「그 애는 발을 재생했을까요?」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힘들어. 절단된 걸 붙이는 거면 몰라도 재건은 전문가가 필요해. 완벽하게 재건하진 못했을 거야.」
게랄드가 모퉁이를 돌았다. 어두운 거리가 길게 늘어서 있었다. 게랄드가 어둠 속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쪽 방향으로 갔어요.」
「아무것도 없네.」
게랄드가 씁쓸한 어조로 덧붙인다.
「그러게요. 너무 늦었나 봐요.」
「방법이 없진 않아. 네가 조명을 맡아. 내가 어떻게든 해볼 테니.」
게랄드가 그녀의 지팡이 끝에 넓게 퍼지는 조명을 만들어 내자 나는 방아쇠를 두 번 당겼다. 각각 생명계 마법 ‘호빌라’와 ‘쿠르츠’. 후각과 청각이 엄청나게 강화되어 일순간 ‘세상’이 무척이나 자극적으로 변한다. 나는 눈살을 조금 찌푸렸다가 말했다.
「네 냄새는 기억하고 있어. 이제 다른 냄새를 찾으면 돼.」
나는 공기의 냄새를 맡았다.
「이건 네 냄새고, 이건 네 소리고, 그리고, 너의 것이 아닌 이 감각은···」
나는 눈을 감고 냄새와 소리에 주의를 집중했다가, 몸을 홱 틀었다.
「이쪽!」
나는 ‘다른 생명체’의 냄새와 소리가 있는 쪽으로 달려갔다. 여기는 수색 완료 구역이어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우리’ 말고는.
한참을 달리다 우리는 한 무리의 검은 이빨들과 마주쳤다. 온갖 용병기와 마탄으로 중무장한 우리를 그들이 흘끗 보더니 그대로 지나쳐 갔다. 우리는 그들이 가는 방향으로 따라가기 시작했다. 냄새는 점점 진해져 갔고, 이제 그 악취들은 감각을 강화하지 않은 게랄드도 맡을 수가 있었다. 헛구역질을 하는 게랄드를 잠시 돌아본 뒤 나는 계속 뛰어갔다.
그들이 한 중심을 향해 까맣게 몰려들어 있었다.
그곳에는 갈색 머리의 소녀, 13살의 소녀가 주저앉아 있었다. 동그란 눈매는 피로감으로 거웃했고 귀와 코에선 피를 흘리고 있었다. 절단된 발목은 발뒤꿈치까지 재생되어 있었으나, 거기까지였다. 검은 이빨들은 탐스러운 먹이를 눈앞에 둔 것처럼 까맣게 몰려들었으나 일정 거리 이상 다가가지는 못했다. 안토니나가 결계 비슷한 것으로 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언젠간 소녀의 마력도 바닥날 거고, 그때에는 식사가 시작될 것이다.
나와 게랄드는 거의 동시에 용병기를 치켜들었다.
소리를 낼 수도 없고 마법을 펑펑 사용할 수도 없으니 물리적으로 죽인다. 그들이 안토니나에게 정신이 팔려 있어서 일이 어렵지는 않았다. 게랄드는 손을 타고 올라오는, 두개골이 으스러지는 감촉에 울 것 같은 얼굴을 하면서도 착실하게 하나씩 없애 나갔다.
마지막 하나의 몸통을 절반으로 갈랐을 때, 안토니나는 결계를 해제했다.
우리 셋은 잠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먼저 입을 연 사람은 게랄드였다.
「이 아이가 우릴 보고 활짝 웃었지만 아무도 이유를 몰랐죠. 분명 우리는 ‘은인’을 핍박한 ‘적’이었는데도요. 하지만 알고 계셨어요? 당신도 이 소녀를 보고 활짝 웃었어요.」
「내가 웃었다고?」
「역시 모르셨군요. 걱정 마세요. 저밖에 못 봤으니까요. 그래서 처음엔 둘이 아는 사이인 줄 알았어요. 그것도 아주 친밀한 사이로요. 당신의 그 무자비한 공격을 보고 아니라고 다시 생각했지만요. 그리고 얘는 당신에게만은, 당신에게만은 치명적인 공격을 안 했어요. 아무리 당신이 아프게 하더라도요. 마지막 그건 빼고요.」
「마지막 그건 얘가 공격한 게 아냐.」
「그랬어요? 그렇다면 얜 당신을 한 번도 공격하지 않았어요.」
게랄드가 말했다.
「그래서 이번엔 억지를 써서 같은 조가 되었어요. 분명 여기엔 뭔가 있다고···. 왜냐하면 아무리 천재라도 그 정도로 마법을 맨몸으로 써댈 수는 없을 거 같아서······. 둘이 서로 전혀 모르는 사이 맞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인상착의를 들어 알았을 뿐, 안토니나의 얼굴조차 몰랐다. 크라쿠프의 소녀 안토니나 코바르첵 역시 도이체스의 비밀경찰 헤르만 예거를 개인적으로 잘 알고 있을 확률이 매우 낮았다.
그럼에도 ‘우리’는, 환한 반가움과 이유 모를 친밀감에 맞닥뜨려야 했다.
나는 검처럼 된 용병기 끝을, 검은 이빨의 시체들에 둘러싸인 안토니나에게 겨누며 말했다.
「넌 누구지? 그리고···」
소녀의 눈이 나를 올려다보았다. 안토니나의 에메랄드색 눈동자는 내가 아는 사람의 그 눈동자와는 조금 달랐으나 나는 강한 기시감에 시달려야 했다. 나는 여전히 느껴지는 이유 모를 친밀감에 당혹스러워하며 말했다.
「나는 누구지?」
그래. 나는 안토니나 코바르첵과 처음 만난 순간 엄청난 반가움과 긍정적 감정을 맞닥뜨리게 되었다. 설마 나도 모르게 미소까지 지었으리라곤 생각하지 못했지만. 그것은 아주 익숙하지만 낯설었다. 익숙한 건 이미 겪었기 때문이고, 낯설었던 건 그 신호의 강도가 너무 셌기 때문이었다.
마치 용이나 라인스 윈터를 처음 만났을 때처럼, 그보다 훨씬 더 강력하게.
소녀가 입을 열었다.
「나는 507, 당신들이 ‘용의 아이’로 만들어 낸···」
이름마저 잊어버린 소녀의 목소리는 지친 종달새처럼 아름다웠다.
「그리고 아저씨는 아마도 나와 같은 타라.」
‘사람’이 인간, 아랑, !파라, 돌고래를 가리키는 말이라면, 타라는 가리키는 대상은 같지만 의미는 더 넓은 단위다. 타라는 지성을 가지고 의사소통이 가능한 존재 전체를 의미한다. 따라서 고대의 용이나, 먼 훗날 하늘을 쳐들어 올 지도 모르는 외계인도 전부 타라로 지칭할 수 있었다. 따라서 용처럼 변해간, 한때 인간이었을 생명체도 타라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요즘도 쓰이는 말이지만 꽤나 고풍스럽고 문학적인 말이라서, 보통은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이 쓰인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에 타라만큼 어울리는 단어는 없을 것이다.
안토니나는 그 말을 마치고 스르르 눈을 감았다. 소녀의 몸이 기우뚱했다. 게랄드가 황급히 달려가 안토니나의 머리가 땅에 부딪히기 전에 받쳐 들었다. 게랄드가 소녀를 안으며 말했다.
「이제 어떡하실 건가요?」
그 눈에는 약간의 두려움마저 있었다.
게랄드는 내가 삽날로 암살자의 목을 찍어버리는 것을 직접 보았다. 내가 대원의 팔을 망설임 없이 자르는 것을 보았다. 그토록 강렬한 친밀감을 느꼈으면서도 소녀의 발목을 절단한 것을 보았다. 나는 게랄드에게, 안토니나를 이쪽으로 넘기라는 손짓을 했다.
나는 건네받은 소녀를 업으며 말했다.
「일단 쉴 곳을 찾아보자. 이 아이, 많이 지쳐 있을 테니까······.」
근처에 있는 적당한 이층집의 문짝을 걷어차 강제로 열어버린 다음 안으로 들어갔다. 차갑게 식은 벽난로에 다시 불을 붙이고 안토니나를 1인용 소파에 뉘었다. 미처 다 재생되지 못한 발은 땅에 닿지 못하고 허공에서 흔들거리고 있었다.
어딘가에서 담요를 가져온 게랄드가 말했다.
「이 아이, 사실 아무도 안 죽였죠?」
공식적으로 안토니나에게 걸린 혐의는 용병기 탈취 및 대량살상행위다. 나는 대답했다.
「아마 그럴 거야.」
나는 찬장을 뒤져 꺼낸 코코아를 끓이기 시작했다. 팔팔 끓었던 코코아가 알맞은 온도로 식어갈 무렵, 안토니나는 눈을 떴다. 게랄드가 나를 쳐다보았지만 나는 그저 불꽃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자 게랄드가 일어섰다.
「안토니나, 배고프지 않니? 코코아 마실래?」
안토니나는 그저 멍한 눈으로 있었다. 그러다가 코코아가 자신에게 오자, 깜짝 놀란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그제야 그 눈동자가 조금 살아 있는 느낌이 들었다. 안토니나는 게랄드가 내민 손을 경계하는 빛으로 바라보았다.
「언니는 나 잡아갈 거야?」
그 말에 게랄드는 잠시 망설였다.
「언니는 그걸 결정할 권한이 없어.」
「그럼 누가 정해?」
「저분이.」
게랄드가 나를 가리켰다. 나는 결국 입을 열었다.
「나는 널 잡아가기로 되어 있어.」
그러자 안토니나의 녹색 눈동자가 슬픈 빛을 띠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