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리고 너는 용이 되어-62화 (62/102)

3권 4장. 용의 아이들-(2)

이것은 디터의 지각 범위를 벗어난 규모의 이야기였다. 2천만을 죽인다? 그것은 그저 폭격의 연장선일 뿐이었다. 하지만 2천만을 이동시키고, 경제를 움직이고, 타국의 행위를 이용한다? 디터가 무엇을 상상했던 간에 이 정도의 규모는 아니었다. 라인스가 말했다.

“그리고 그는 저에게 마법 조합을 부탁했습니다. 이미 그는 크라쿠프의 국영기업과 내통하고 있어요. 그는 그들의 마법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방도를 알아냈습니다. 그 마법들은 방아쇠를 떼고 움직일 거라 추적도 불가능하죠. 우리가, 바로 우리 용기사들이 그것을 발동시키면 되니까요. 아무튼 그는 내게 그 국영기업들이 보유한 산업용 용병기 목록을 보여 주며, 저에게 어떤 마법을 합성하라고 시켰어요.”

“그게 무슨 마법이지?”

“그 마법은 아무 쓸모도 없어요. 초내열 방수 플라스틱을 제조하는 메커니즘의 일부니까요. 헤르만 예거는 결계마법을 준비하고 있는 겁니다.”

“결계?”

“쉿! 목소리가 너무 커요!”

“하지만··· 크라쿠프 같은 나라에서 어떻게 결계 마법을······.”

“그러니 지금 여기서 합성해내려는 거죠! 이 메커니즘으로 시도할 수 있는 대형마법은 다 따져 봐도 지금 할 법한 건 결계밖에 없어요. 2천만은 많아요. 정말 많은 숫자에요. 그 2천만이 전부 탈출할 때까지, 폭격 당일까지도 탈출시키기 위해 최후에 그들을 지켜 줄 결계를 치는 거죠.”

디터가 황급히 중얼거렸다.

“항구, 항구를 봉쇄해야 해.”

“물론 그것도 해야죠. 하지만 타당한 이유 없이 그랬다가는, 바로 우리와 외국에게 수상한 낌새를 들킬 겁니다.”

“그 마법도 당장 못 발동하게 막아야 해. 결계라니, 맙소사. 이런 조그만 나라에선 볼 일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래서 마유브로 사람들을 모으자고 했군! 둘밖에 없는 평야지대인 걸 핑계 삼아 마유브로 오는 선박으로 크라쿠프인들을 탈출시키려고! 하지만 이제 와서 마유브로 모으지 말자고 할 타당한 이유가 없어······.”

디터는 이런 계획을 꾸민 헤르만을 무서워해야 할 지, 그것을 전부 간파해 낸 라인스를 경계해야 할 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충격에 빠진 디터를 보고 라인스가 여유로운 표정으로 말했다.

“일단 저라면 이렇게 막아보겠습니다. 마법 발동도 막을 필요 없어요. 발동하게 내버려 두면 돼요. 우리가 거기에 하나만 더 보탠다면 한 방 먹일 수 있어요.”

“대체 무슨 방법으로?”

라인스가 그 말을 듣더니 싱긋 웃었다.

“야만적인 방법으로요.”

*

금연을 계속 실패하는 돌고래와 골초를 T로 보내고, 나와 게랄드와 아인자츠그루펜 한 무더기는 P 도시로 향했다.

햇살은 쨍쨍했고 공기는 맑았다. 그것은 텅 빈 도시가 내는 적막감 때문일지도 몰랐다. 사람이라는 오염원이 전부 사라지고 깨끗하게 남은 거리. 아마 시간이 좀 더 흐른 상태였다면 폐허의 지저분함이 앞섰을 지도 모르지만, 아직 벽돌 포장길들은 완전히 생기를 잃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빈 공간 자체가 주는 스산함 같은 건 약간 있었다.

나는 옆에서 씩씩하게 걷고 있는 게랄드를 내려다보았다. 언제나 제멋대로 구불거려서 본인조차도 반쯤 포기한 부스스한 머리카락이 놀랍게도 꽤 차분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머리는 어떻게 한 거야?”

내 말을 듣자 게랄드가 배시시 웃었다. 잠시 하늘을 바라본 게랄드가 말했다.

“대대장님은 뭔가 섬세하시네요. 이런 거 잘 알아차리지 못하는 남자들도 많은데.”

게랄드가 배시시 웃더니 말했다.

“숙소에 비치된 세면도구가 있었는데 그동안은 안 썼거든요. 가져온 게 있었으니까요. 그러다가 샴푸 이름이 너무 웃겨서 한 번 써봤는데 정말 놀라웠어요! 이렇게 되었죠. 경공업이 부실한 크라쿠프가 만들어 낸 샴푸만도 못하다니, 도이체스는 반성해야 해요.”

그렇게 말하며 게랄드가 쿡쿡 웃었다. 나는 물었다.

“이름이 대체 뭐길래?”

「‘침묵’이었어요.」

그 말을 듣고 나도 피식 웃었다.

「정말 적절한 이름이잖아. 네 머리를 침묵시켰어.」

「서른 통 씩은 사들고 도이체스로 돌아가고 싶다니까요. 이젠··· 이 나라에서는 그게 무리겠지만요.」

「그렇지. 파괴되지 않은 폐허가 될 테니까.」

그 뒤로 우리는 감각을 곤두세운 채 계속 걸었지만 잡히는 건 없었다. 피곤한 얼굴의 게랄드가 말했다.

「정말 느껴지는 것 없으세요? 사실 전 당신이라면 이렇게 좁은 범위 내에서 한 번에 찾아낼 줄 알았어요. 인간이 그 정도 거리를 탐지할 수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거든요. 그 정도면 거의 유도자 급이 아닐까요? 이러다 우리 대대장님 루프트바페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는 건 아닌가 모르겠다.」

「하하··· 그것만은 사양이야···. 나도 놀랐어. 하지만 내가 느끼지 못한다고 섣불리 단정 짓지는 말아야 할 거야. 안토니나는 이미 엄청난 마법을 써왔어. 이제 그 아이에게서 감지되는 신호는 매우 약할 거야. 그 정도면 베네딕툼 기반 마탄이래도 꽤나 많은 양이니까. 그리고 키라 지수가 개판이라 마법 잔향 추적도 상당히 어려울 거고. 뚝딱 끝나기는 힘들걸.」

그리고 다친 용은 존재감이 약해진다.

“저··· 연대지도자?”

우리의 뒤를 따르던 중대장이 곤란한 어조로 묻는다. 나는 돌아보았다.

「왜?」

“저희는 무엇을 하면 됩니까?”

「아, 이제 강을 기점으로 중대를 반으로 나눈 뒤—」

나는 말을 멈췄다.

“실례했군. 저 강을 기점으로 흩어질 거다.”

나나 게랄드나 크라쿠프어를 정말 자연스럽게 구사할 수 있다 보니 언어가 전환되어 버린 것도 어느새 잊어버리고 있었다. 하지만 크라쿠프어를 할 줄 아는 인력은 라헬과 라인스와 함께 전부 T로 가 버렸다. 모르는 언어로 계속 떠들기만 하고 명령을 내려주지 않으니 초조해졌겠지.

일명 ‘군기’는 친위대가 강한 편이었다. 우리는 시키면 뭐든지 했다. 말 그대로, 뭐든지. 양심이라는 게 남아 있는 자는 여기서 도태되어 살아남을 수가 없다.

그 대신 ‘명령’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는 경향도 강했다. 멀리 갈 것 없이 육군만 보아도 전쟁의 양상에 따라 일개 소대장이 독자적인 판단을 내려 작전을 바꿔야 할 때가 있다. 하지만 친위대의 대부분은 시가전 이상의 큰 단위로 싸운 적이 없고, 항상 서로 통신 중이다. 구조가 좀 더 경직된 것이다.

친위대에서 가장 비밀스러운 조직 아인자츠그루펜은 이런 특성이 집약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 용기사들의 감응력을 최대로 활용 중이지만 이번 수색의 최대 수단은 안토니나 본인의 마력이 아니었다. 수많은 마법을 쓰고 심한 부상을 입은 안토니나에게서 감지되는 마력은 매우 미미할 게 틀림없었다. 우리가 추적하는 건 마법의 잔향이었다. 큰 마법을 쓰면 한동안 대기 중에 그 흔적이 남는다. 그것이 내가 집에서 습격 받았을 때 내가 불법으로 입수한 마법들로 습격자들을 한 번에 날려 버리지 않은 이유였다.

안토니나는 유사 사출비행을 했고, 그건 전에 내가 디터에게 말했듯이 엄청난 마법이었다. 적어도 이틀간은 잔향이 남을 게 틀림없었다. 그 안에 찾아내야 했다.

강이 다가오자 나는 중대를 반으로 나누었다. 한쪽엔 게랄드를, 다른 한쪽엔 나를. 여기가 크라쿠프가 아니었다면 잔향을 일직선으로 추적할 수 있었겠지만 지금 이곳은 실험체가 터지고 방출해 버린 마력이 포화상태라 잡음 신호가 너무 많았다.

게랄드와 눈짓을 주고받고 흩어지려던 중, 게랄드 쪽에 가 있는 중대장이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발자국 소리가 들립니다.”

나는 중대 전체에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내고 귀를 기울였다. 나는 미심쩍은 목소리로 말했다.

“남자인데···?”

그 걸음걸이는, 확실히 좀 이상했지만, 묵직한 남성의 발소리였다. 이미 소개한 도시인데 아직도 사람이 남아 있었단 말인가?

발소리는 곧 둔탁한 달리기 소리로 변했고 다들 바짝 긴장하고 있었다. 나와 게랄드는 거의 동시에 용병기에 시동을 걸었다. 내 용병기는 검처럼, 게랄드의 것은 짧은 지팡이처럼 변했다.

우리가 바라보고 있던 방향에서 어떤 남자가 나타났다.

피부는 너무나 창백해서 시체 같았고 두 눈에는 초점이 없이 흐리멍덩하다. 짐승처럼 드러내고 있는 이와 잇몸은 검었으며 지독한 악취가 났다. 오른쪽 뺨은 부패해서 옥수수 알갱이 같은 검은색 이빨이 드러나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괴기한 모습이었다. 아마 내일 날씨를 물어보기는 힘들 것이다.

저 남자를 저지할 마법을 고민했다. 소멸에서부터 무력화까지의 다양한 선택지가 있었다. 그 중 하나를 골랐을 무렵 남자가 갑자기 이상행동을 취했다.

솔직히, 그것은, 나만은 그걸 예상했어야 했지만 이런 방식일 줄은 몰랐기에 나도 미처 손을 쓰지 못했다. 남자는 가장 가까이에 있었던 한 소대장에게 달려들더니 팔을 물어뜯었다. 온 힘을 다한 모양인지 남자의 이는 군복 섬유를 뚫고 소대장의 살점을 뜯어냈다. 남자가 그 살점을 느릿하게 씹는 동안 소대장은 비명을 질러 이 도시의 적막을 깼다.

그 전에 내가 총은 가급적 쓰지 말라고 했기 때문인지 다들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었다.

남자가 다시 달려들려는 순간, 게랄드의 원소-분자계 마법 ‘니조’가 남자의 머리를 날려 버렸다. 살이 타는 악취와 지글거리는 불쾌한 소리와 함께 남자의 몸뚱이는 쓰러졌다.

“빨리 환부를 보이게 해!”

내가 외치자 옆에 있던 병사가 나섰다. 찢어내기가 여의치 않아 병사는 오른팔의 옷을 단검으로 잘라냈다.

남아 있는 마법을 계산했다. 살점을 복구해줄 수는 있지만 써야 하는 마탄의 수가 너무 많다. 그런 건 후방의 몫으로 남겨두어야 할 것이다. 소독과 지혈 정도로.

그렇게 결심한 나는 환부를 보자마자 약간 생각을 바꿨다.

물어뜯긴 팔은 이미 검푸르게 변해 있었고 상처 주위의 살갗은 기이하게 희었다. 마치 아까의 저 남자처럼. 그리고 그 흰 부분이 서서히 넓어지고 있었다. 소대장은 이제 완전히 패닉에 빠져 다급한 신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나는 내 용병기를 높이 치켜든 뒤, 내리그었다. 검의 형태로 있던 나의 용병기가 소대장의 오른팔을 깔끔하게 절단. 그의 혈액형 문신도 동시에 절반으로 잘린다.

절단면에는 하얀 뼈와 노란 지방층, 그리고 선홍색 살점이 보였다. 인간의 살점이다.

나는 베어내는 동시에 소독과 지혈을 해준 뒤, 아직도 자신에게 벌어진 일을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소대장에게서 눈을 떼고 말했다.

“후방으로 이송해서 재건 치료소에 보내. 그리고 저 팔과 시체는 당장 소각해 버려. 긁히지 않도록 조심하고.”

연구소에 보낼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그렇게 한가하지 않았다.

나는 용병기를 탁 털었다. 내가 팔을 자르자마자 거의 동시에 지혈을 해줬기 때문에 바닥은 깨끗했다. 그 말끔한 거리에 내가 털어낸, 용병기에 묻었던 핏자국이 흩뿌려졌다.

“수색 시작. 그리고 방금처럼 수상한 행동을 하는 괴생명체는 즉시 처리해도 좋다. 총보다는 곤봉으로 처리하도록. 계속 총을 쏴대면 표적이 지레 겁먹고 도망칠 수 있으니까.”

도망칠 상태이기는 한 건지 의심스럽긴 했지만 신중을 기해야 했다. 나는 돌아서서 게랄드에게 향했다.

“괜찮아, 게랄드?”

공중에서 격추시키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지상에서 서로 맞대고 직접 죽인 경험은 이번이 처음일 게 분명했다. 충격을 받았을 수도 있다. 게랄드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저는 괜찮아요···. 대체 저 괴물은 뭐죠?”

그 말을 듣자 나는 게랄드가 충격을 덜 받은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나와 같은 인간이 아니라 괴물을 죽였다고 인식하고 있어서 그런 것이었다.

“괜찮다면 다행이고. 보다시피 전염성이 있어. 조심해.”

본의 아니게 게랄드를 더 겁준 뒤 우리는 나뉘어서 수색을 시작했다.

해질녘까지 수색을 했지만 소득은 없었다. 그러한 ‘검은 이빨’들만 잔뜩 마주쳤을 뿐이었다. 나는 교전 횟수보다 더 상세한 것, 이를테면 주로 어느 위치에서 습격 받았는지 보고하라 했다. 중대장이 표시한 위치를 보며 나는 중얼거렸다.

“대부분 마탄을 운반하고 있는 병사나 용병기를 장비하고 있는 우리에게 몰려들었군.”

총소리는 너무 주의를 끌 위험이 있었고, 저까짓 것에 마법을 쓰기엔 마탄이 아까웠기 때문에 나는 ‘검’이 된 용병기로 그것을 처치했다. 중세의 기사가 된 기분이었다. 후방의 대원들, 즉 마탄을 나르고 있던 대원들은 나머지 다른 대원들과 마찬가지로 그러한 나를 질린 눈으로 바라보다가, 검은 이빨들이 자기들에게 계속 달려들자 곤봉을 고쳐 잡았다. 그들의 시선은 곧 무감각하고 따분하게 변해갔다. 나처럼.

내 말을 들은 게랄드가 말했다.

“이것들, 마력에 이끌리는 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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