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권 4장. 용의 아이들-(1)
안토니나가 갑자기 몸을 뒤틀어 나를 보더니, 오른손을 뻗어 내 얼굴을 향해 내민 것이다.
안토니나의 뻗은 손이 내 시야를 가리고 에메랄드빛 눈동자가 그 손가락 사이로 내 눈을 마주한 순간,
《이제 괜찮아.》
《네가 그 어떤 끔찍한 것을 보고 있더라도》
《이 손만은 진짜야. 네 얼굴에 닿는 이 손만큼은.》
어떤 여자아이의 음성. 녹색 눈의 소녀. 이것은 기억이다. 나에게 손을 뻗는 녹색 눈의 소녀. 안토니나와는 다르게 머리색은 금발이다. 소녀의 주위로는 온갖 기괴한 환상. 악몽에나 나올 법하다. 그 안에서 소녀만이 멀쩡했다. 소녀가 내민 손, 그 손이 얼굴에 닿는 감촉만이 멀쩡했다. 이것만은 현실이었다.
《누나는 이름이 뭐예요?》
내가 묻는다. 아니, 내가 아닌가? 저것은 에리히 아벨인가? 그 에리히 아벨이 된 게 나이니 저것은 나인가?
《나? 나는 1097. 하지만 원하는 대답은 이게 아니었겠지?》
《내 이름은 에리히에요.》
《그렇구나, 에리히. 나는, 나는···》
한참을 고민하던 소녀는 떠올렸는지 활짝 웃으며 말했다.
《내 이름은, 프리다···》
“···아커만.”
내가 나머지를 중얼거린 순간, 나는 터져 나오는 기억의 홍수에서 깨어났고 그 순간 굉음이 터졌다.
안토니나가 날개를 폈다.
그것은 날개였다.
살덩이가 어깻죽지에서 순식간에 자라나더니 박쥐 날개와 같이 피막에 덮힌 거대한 날개의 형상을 취했다. 그러더니 우리가 익숙하게 들어 알고 있는 소음. 사출비행의 소리다.
나는 전에 디터에게 말했던 ‘안토니나가 날아서 도망칠 가능성’을, 대화우위를 잡기 위해 했던, 나 스스로도 살짝 실현 가능성이 낮다고 느꼈던 그 대화를 떠올렸다.
라헬이 금속 침을 쏘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안토니나는 사출비행으로 저 멀리 날아가 버렸고, 산맥을 하나 넘어서 모습이 사라져 버렸다. 땅바닥과 일부 대원들의 얼굴에 안토니나가 흘린 피만이 점점이 떨어져 있었다. 그것은 마치 용의 뜨거운 피처럼 김을 피워 올리고 있었다.
나는 방금의 기억 폭발이 공황발작의 연장선인 것을 뒤늦게 깨닫고 품속에 넣어 두었던 빨간 알약, 의사가 긴급으로 먹으라며 주었던 빨간 알약을 물 없이 꿀꺽 삼켜 버렸다. 다행히 아무도 내 동작을 보지 못했다.
게랄드가 황급히 달려와서 말했다.
“헤르만! 헤르만! 괜찮아요?”
약효가 아직 돌지 않았는지 심장은 아직도 미친 듯이 뛰고 있었고 발작은 가라앉지 않았다. 나를 내려다보는 라인스가 말했다.
“심장이 지나치게 빨리 뛰어. 무슨 정신계 마법이라도 당한 거 같은데. 아까 손을 이쪽으로 뻗었으니까.”
“그럼 어떡하죠? 정신계라면 언제 풀려날지도 모르는데! 대처 방법도 모르고!”
“난 괜찮으니까 다들 좀 조용히 해. 머리 울려.”
내가 인상을 쓰면서 말했다. 일어서려는데 몸이 묵직하다. 타는 냄새가 불쾌할 정도로 선명하게 내 코를 찌른다.
남은 아인자츠그루펜들에게 비행경로를 추적하라는 지시를 내리고 우리는 귀환했다. 나중에 라헬을 문책한 결과, 순간 동생과 너무 겹쳐 보여서 공격을 망설였다고 한다. 나는 라헬을 따로 불러내 다그친 뒤 단단히 결심을 받아 두었다.
“그 애는 지금 크라쿠프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이야. 저 마법 운용력을 보라고. 나이를 감안하면 천재라 불러도 과언이 아냐. 그런 애가, 그런 짓을 저지른 애가 활개를 치게 놔두어서는 안 돼.”
새빨간 거짓말이지만, 어쨌든 라헬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인자츠그루펜들이 안토니나의 도주경로를 추적하는 사이 우리는 작전회의 시간을 가졌다.
“이렇게까지 강한 상대일 줄은 몰랐어요···”
게랄드가 풀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안토니나는 주머니가 많은 옷을 입고 있었지만, 어쨌든 가방 같은 건 들고 있지 않았다. 그 말은 마탄 없이, 있어도 아주 소량만 소지한 채로 마력물질만 가진 채 우리와 싸웠다—는 의미로 다른 용기사들에게 해석될 것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호각으로 싸웠고 라헬의 실수 때문이기는 했지만 도망치는 데까지도 성공했다.
“멀리 가진 못했을 거야.”
나는 말했다.
“부상이 너무 커서 날기도 힘들고, 발을 많이 재생하지도 못했을 거야. 기껏해야 옆 도시 정도가 한계일걸. 추적이 그렇게 힘들지는 않을 거야.
너희들, 사람 상대로 싸워본 건 처음이지? 그런 것치고는 매우 잘했어. 앞으로도 이렇게도 해. 단, 절대 동정심을 갖지 마. 안토니나가 대량학살을 벌였다는 점을 상기하라고.”
라헬을 비롯한 용기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내 조용히 있던 라인스가 툭 던졌다.
“하나 이상한 점이 있었습니다. 당신을 보고 웃은 거.”
게랄드도 거들었다.
“맞아요. 그 아이, 처음 당신을 보고 정말 활짝 웃었어요. 그리운 사람을 반기는 것처럼.”
나도 솔직하게 말했다.
“나도 그 점에 놀랐어. 분명 우리는 처음 보는 사이이고, 게다가 난 그 노부부를 위협하던 사람이기까지 했는데.”
그러자 게랄드가 조심스럽게 묻는다.
“혹시 안토니나가 조금 낯이 익다거나, 친근감이 든다던가, 그런 적 없었어요?”
“전혀.”
너무 빨리 대답해 버렸다. 내 말을 들은 게랄드는 “그렇군요···”하며 생각에 잠겼다.
그 뒤에 회의를 하는 사이 아인자츠그루펜에게서 연락이 왔다. 안토니나가 인접한 두 도시 안쪽에 있을 확률이 높으며, 그 두 도시를 둘러싼 채로 봉쇄한 상태라고. 크라쿠프어에 능숙하지 않은 두 사람이 이름을 발음하기 힘들어했기에 우리는 그냥 그 두 도시를 P와 T라고 부르기로 했다.
“둘로 나뉘어 동시에 수색하는 수밖에 없겠군. 늘 나누던 대로 두 사람씩—”
무심코 말하던 나는 게랄드가 손을 들자 도중에 말을 멈췄다.
“하고 싶은 말이 뭐지?”
“그게··· 이번엔 당신과 같은 조가 되고 싶어서요!”
“왜 굳이?”
“제가 일행 중에서 가장 감응 범위가 좁은 것 같아서요. 전투에서의 상성을 고려하더라도 일단은 찾아내야 이야기가 진행될 테니까······. 제가 감응 범위가 가장 넓은 대대장님이랑 같이 가는 게 좋을 거 같아서요.”
내 감응 범위는 이번 사건으로 20킬로미터 이상이라는 것이 판명되었다. 어마어마한 수치였다.
“나쁘진 않네. 일단 찾아내는 게 우선이니까, 네 말대로. 다만 문제는 저 둘을 붙여 놓으면 크라쿠프어를 하나도 모른다는 건데··· 할 줄 아는 대원들을 전부 저쪽 조에 붙여 놓으면 해결되겠지. 우리 쪽은 필요가 없으니까. 그럼 P는 나와 게랄드가, T는 라인스와 라헬 둘이서 조를 짜고 수색해. 한 구역씩 수색 완료할 때마다 수시로 보고하고. 수색은 그렇게 힘들진 않을 거야. P와 T는 크라쿠프인들을 마유브로 전부 모으기 위해 소개시키게 된 도시 중 하나니까. 완전히 비었어.”
그렇게 상황파악을 마치자 이번에는 라인스가 손을 들었다. 내가 눈짓으로 묻자 라인스가 질문했다.
“에르제망 법칙으로 추적할 수는 없는 겁니까?”
“에르제망 법칙?”
나를 포함한, 용기사 모두가 한 마음으로 어리둥절해 질문한다. 라인스가 해설했다.
“마력 밀도가 높은 공간에서 마력은 그 구역에서 가장 마력이 높은 생명체 쪽으로 흐른다는 법칙입니다. 기억나요?”
그래서 마력누출사고가 나면 돌고래나 예언자 아랑부터 치명적인 타격을 입는다. 다른 인간들에 비해 마력이 높기 때문에 마력이 그들 쪽으로 몰려들어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기 때문. 단, 용도 비슷한 원리의 적용을 받지만 그들은 매우 강력한 존재이기 때문에 어지간한 세기에 노출되지 않는 이상 오히려 그 마력을 흡수해서 더 강력해진다. 아마 실험체 509가 터진 직후 라인스가 크라쿠프에 왔다면 마병에 심하게 걸렸을 가능성이 높지만, 다행히 대기의 마력에 비해 라인스 정도의 마력원은 그렇게 강한 편이 아니라 현재의 라인스에게는 에르제망 법칙이 성립하지 않는다.
하지만 안토니나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용급의 생명체에게는 이 정도 농도에서도 지속적으로 마력이 밀려들어올 것이다. 그 말은, 안토니나가 생각보다 더 빨리 회복할 수도 있다는 의미와 같다.
라헬은 어렴풋한 기억 속에서 그 정보를 끄집어내는 데 성공했는지 작은 감탄의 소리를 냈고, 게랄드는 여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나는 기억해 내고 고개를 끄덕였다. 라인스가 말했다.
“키라 지수를 조사하기 위해 돌아다닌 결과, 이 공간의 마력은 비정상적으로 높습니다. 크라쿠프 전역이··· 용에 대해 관측 가능한 에르제망 법칙이 성립될 정도로 굉장히 높습니다. 그렇다면 이 공간에서 마력은 안토니나 쪽으로 흐르지 않을까요?”
“아아!”
그렇게 탄성을 내지른 라헬이, 다시 고개를 갸우뚱한다.
“하지만 안토니나가 용이라면 몰라도, 용병기, 그것도 마탄도 별로 없는 용병기만 잔뜩 가진 인간일 뿐인데, 에르제망 법칙을 써먹을 만큼의 ‘존재’가 될 수 있겠어?”
그 말은 예상하지 못했던 듯 라인스가 당황한 표정이 되었다. 라인스가 말했다.
“그렇네. 그럼 이 말은 못 들은 걸로 해줘.”
라인스의 제안은 유효했다. 안토니나는 용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라인스의 말대로 에르제망 법칙을 써먹을 수 있는 조건이다. 하지만 지금 용기사들에게, 안토니나가 드라헨킨더라는 사실은 알려져 있지 않다.
그래도 쓸만한 정보라고 생각하며 나는 그것을 머릿속에 넣었다. 정 안 되면 나중에 아인자츠그루펜들을 따로 시켜서 조사하면 된다.
그렇게 수색조를 짜고, 지도에서 구역을 지정하기 위해 나는 잠깐 남아 있었다. 게랄드는 비흡연자니 이제 라헬에게서 나는 담배 냄새는 안 맡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다들 힘든 전투에 지쳐 비로소 쉬러 가는 가운데, 게랄드만이 내 주변에서 쭈뼛거리고 있었다.
“하고 싶은 말이 뭐지?”
이 말도 벌써 두 번째다. 게랄드가 무언가 말하려다, 이내 결심한 얼굴로 입을 닫아버린다. 내가 계속 바라보자 게랄드가 말했다.
“P에서 말씀드리는 게 훨씬 나을 거 같아서요.”
“P에서? 엿듣는 사람이 없는 지금이 더 낫지 않아? 방해결계라면 쳐줄 테니까.”
“아,아뇨! P여야 해요. 꼭, 그때 꼭 말씀드릴게요. 중요한 일이에요.”
나는 잠시 게랄드를 바라보았다.
제멋대로 구불거리는 머리카락에 전반적으로 말괄량이 같은 인상. 그러나 약아빠진 것과는 거리가 멀다. 순진하다면 순진하다고 해야 할지. 무슨 거창한 음모를 꾸밀 위인은 못 된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하던 일을 계속했다.
디터 바우어는 라인스 윈터에게 흰색 알약을 내밀었다. 라인스는 그것을 받아들었다. 디터가 말했다.
“해독제네.”
물론 새빨간 거짓말이었으나, 라인스가 알 길은 없었다. 디터가 말했다.
“먹고 하루 뒤쯤엔 자유가 될 거야. 하지만 계속 신중한 상태, 이 상태 그대로 있어 줬으면 좋겠군. 배신은 최후의 최후에 해야 더 위력적인 법이니까.”
흰색 알약을 내려다보던 라인스는 고민하다가 결국 꿀꺽 삼켰다.
약이 목을 넘어간 것을 느낀 라인스가 말했다.
“이제부터 최선을 다해 협조하겠어요. 하지만 직접 드릴 수 있는 정보는 많지 않아요.”
“아직도 바라는 게 있나?”
“그런 게 아녜요. 아무래도 헤르만 예거는 날 완전히 믿지 못하는 거 같아요.”
자폭캡슐까지 먹여놓고서도 여전히 그러고 있단 말인가? 디터는 헤르만의 의심에 혀를 내둘렀다. 게슈타포란 작자들이 다 저런 건지. 라인스가 말했다.
“그래도 내가 아는 선에선, 그리고 추측할 수 있는 선까지는 최대한 전부 협조하겠습니다. 일단 헤르만 예거의 최종목표만은 확실하니까요.”
디터는 내심 이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방심할 수 없고 수상쩍은 인간이라는 언질은 미리 받았지만 도대체 무슨 꿍꿍이가 있을 지는 미리 짐작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꿍꿍이가 없이 이번 명령은 고분고분 따르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예측은 헤르만이 용기사들끼리 대화할 때는 항상 도청 방지 장치를 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라인스가 ‘최종목표’ 운운한 시점에서 이미 수명을 다했다.
라인스 윈터가 말했다.
“크라쿠프에서, 헤르만 예거의 최종목표는 2천만의 크라쿠프인 섬멸을 저지하는 것입니다.”
“뭐라고?”
“즉 2천만 명을 폭격 전에 미리 탈출시키자는 계획이죠. 이 정보만은 그가 정보를 대폭 한정한 저조차도 알고 있습니다.”
디터는 어안이 벙벙했다. 왜? 도대체 왜? 왜 남의 나라 사람, 그것도 비천한 슬라브인 따위를 살리기 위해 자기 목숨까지 판돈으로 건단 말인가? 이 정도는 가장 엄중한 간첩죄 몇 개를 뒤집어 씌워서 총살시킬 수도 있는 중죄였다.
“하··· 차라리 잘 됐다고 해야 하나.”
디터는 헤르만에게 없는 죄를 뒤집어 씌워야 하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그가 알아서 진짜 죄를 짓고 있었다. 라인스가 말했다.
“그리고 지금부터는 정보가 한정된 탓에 제 추론밖에 없으니 참고만 하세요. 그는 어떻게 사람들을 탈출시킬 것인지에 대해서는 저에게 하나도 알려 주지 않았지만, 짐작 가는 것이 있습니다.”
“2천만을 어떻게···”
디터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인간 몇 명 빼돌리는 정도야 성공시킬 수 있을지 몰라도, 2천만 명이나 하는 인구를, 현재 국경을 봉쇄중인 아인자츠그루펜 몰래 어떻게 탈출시킨단 말인가? 육로라면 땅굴? 터무니없는 이야기다. 지금 항구도시로 모이고 있으니 수로인가? 하지만 크라쿠프의 배들이 수상한 움직임을 보인다는 정보는 없었다. 그들은 그저 평상시처럼 무역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라인스가 말했다.
“지금 물가가 미쳐 날뛰고 있지요?”
디터가 고개를 끄덕였다. 라인스의 말대로 지금 크라쿠프의 경제는 거의 파탄 직전으로, 같은 면적의 휴짓조각보다 돈이 더 가치가 없어졌다. 도이체스 마르크를 바로 받는 상점들이 생겨날 정도였다. 신뢰가 가는 타국의 화폐를 차라리 가지고 있겠다는 것이다. 크라쿠프에서 나는 베네딕툼이 중환자실에 입원한 크라쿠프의 등불 같은 목숨을 하루하루 연명해주고 있었다.
“그건 헤르만 예거의 짓입니다.”
“그가 직접 말했나?”
“그는 이 나라에 오기 직전에, 우리들에게 환전은 반만 하라고 했어요. 마르크화를 전부 즈워티로 바꾸지 말라고··· 이 사태를 미리 알았던 거지요. 하지만 제가 아는 한 그가 교양 있는 일반인 그 이상으로 경제학에 해박해 크라쿠프의 재앙을 예측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시기도 그렇고, 그가 이 사태를 직접 일으켰을 게 분명해요.”
디터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헤르만 예거가 이 초인플레이션 사태를 일으킨 것 자체가 아니라, 그 동기가 이해되지 않았다. 구출하려는 사람들의 경제를 파탄시켜서 얻을 이득이 무엇이란 말인가?
“즈워티가 휴짓조각이 되고 환율이 박살난 지금, 계산해보니 크라쿠프산 베네딕툼의 가격은 원래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습니다. 덕에 수출량이 늘었죠.”
“그래봐야 반값일 텐데···”
“아뇨. 그가 원하는 건 수출량이 느는 것 그 자체입니다. 한 번 확인해 보세요. 초인플레이션 사태 이후 새로이 큰손으로 등장한 고객이 있을 겁니다. 연합국은 이곳에 접근조차 할 수 없으니 논외, 추축국 중에서 약간 증가한 수입국들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도이체스의 우방인 추축국으로 탈출시킬 리가 없죠. 그랬다가는 도이체스의 여론은 끝장이고, 추축국들은 우리에게 등을 돌릴 테니까요. 물론 그가 진짜 반역자라면 가능하겠지만요.”
“추축국과 내통은 불가능해. 우리가 감시하고 있으니까.”
“그러니 가능성이 있는 건 제 3국, 연합국도 추축국이 아니면서 이 전쟁을 관전하고, 산업에 베네딕툼이 필요한 강대국···.”
라인스가 말했다.
“아마 확인해 보면 빈랜드로 향한 수출이 어마어마하게 늘었을 겁니다. 허용 범위 내라서 눈에 띄지는 않겠지만요. 그 화물선에 가득 실린 것 중 절반은 베네딕툼이 아니라 사람이겠지요.”
그 말을 끝으로 침묵이 흘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