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권 3장. 탈출 계획-(7)
게랄드가 식은땀을 흘리며 말했다.
“말도 안 돼···. 이 정도로, 이 정도로 강력하다고요?”
라헬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간단했으면 이렇게 번거롭게 우릴 부르지도 않았겠지.”
라헬은 여전히 안절부절 못하는 게랄드의 등을 손바닥으로 팡 소리 나게 치며 말했다.
“하늘처럼 행동해.”
그것이 게랄드를 한 발짝 더 나아가게 했는지, 게랄드는 아까만큼 좌절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는 동안 나는 주택의 구조를 눈에 담았다. 도이체스와 비슷한 양식이었다. 하지만 일단 우리보다는 크라쿠프에 오래 머물렀을 아인자츠그루펜에게 특이한 문 같은 게 없는지 물어보았다. 특별히 개조하지 않는 한 도이체스와 그렇게 다를 건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전 수색에서 계속 허탕을 치며 크라쿠프의 주택들을 여럿 방문했기 때문에 나도 그럴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나는 게슈타포들이 짜는 포위진으로 아인자츠그루펜들을 허름한 집 주위에 매복시켰다.
생명계 마법 ‘레타’를 발동, 집 전체를 눈으로 훑는다. 적외선 시선이 집 안의 열원을 파악한다. 1층에 두 명, 2층에 한 명.
엄청난 존재감의 한 명.
내 주변이자 동시에 주요 창문 근처인 곳에 라헬과 라인스를 대기시키고 나는 게랄드를 데려갔다. 대문을 배려 없이 쾅쾅 두드린다. 세 번째로 문을 두드리고 대문을 부술 준비를 할 무렵 문 너머에서 쉰 소리가 났다.
「누구쇼?」
「도이체스의 친위대다. 문을 열어라.」
그러자 문이 조금 열렸다. 아직 체인이 걸려 있었다. 문틈으로 보인 건 남자 노인의 얼굴이었다. 노인이 말했다.
「대체 무슨 일이오? 영장 없이는 열어주지 않겠소.」
그러자 좀 멀리서 가냘픈 노파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 도이체스군에게 대들지 마.」
그러자 노인이 고개를 뒤로 돌려 외쳤다.
「나츠카, 괜한 소리 마시오. 나는 크라쿠프의 준법시민이야. 영장도 없는 놈팽이들에게 문을 열어줄 순 없소.」
그것을 지켜보고 있던 나는 노인에게 말했다.
「영장은 없다, 하지만···」
나는 노인의 눈에 권총을 들이대며 말했다.
「중범죄자를 은닉하고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소만.」
「거짓말이군.」
나는 노인의 눈을 쏘아보며 말했다. 최대한 에리히를 흉내 내어, 그 냉혹한 게슈타포의 눈동자를 재현하면서.
노인은 내 눈과, 텅 빈 눈처럼 그를 응시하는 내 권총의 총구를 번갈아 바라보더니 날카롭게 외쳤다.
「얘야, 도망치거라!」
노인이 그 말을 하기 직전 나는 금속 절단 마법으로 체인을 잘라버리고 문을 발로 찼다. 노인이 나동그라지는 소리가 났다. 나는 모두에게 같이 돌입 사인을 보낸 뒤 안으로 들어갔다. 가정집에는 겁에 질린 표정의 노파가 털실 뭉치를 움켜쥔 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바닥에 쿵 소리를 내며 넘어진 노인이 분노에 차서 외쳤다.
「이 나쁜 게르만 돼지 놈들! 저 애가 뭐라고! 아무 짓도 안 한—!」
나는 노인이 그 이상 말을 해서 게랄드에게 쓸데없는 정보를 알리기 전에 머리를 후려쳤다. 노인이 맥없이 쓰러졌다. 게랄드가 헉 하고 숨을 들이키는 소리가 났다. 게랄드의 걱정과 달리 노인은 아직 살아 있었다. 수없이 해보았다. 수없이 이런 식으로 사람을 때려 봤다. 어느 정도로 해야 죽기 직전에 딱 멈추는지는 이제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이런다고 해서 나중에 노인이 아인자츠그루펜의 손아귀에서 무사할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동시에 용병기를 활성화. 손잡이가 패인 네모난 봉처럼 생긴 기계가 길게 늘어나며 일종의 기묘한 검과 같은 형상을 만들어낸다. 나는 그 끝을 치켜들어 천장을 비스듬하게 가리키며 게랄드에게 외쳤다.
“‘켄나’를!”
게랄드가 원소-분자계 마법 ‘켄나’를 이층집의 일층 천장에 발동, 바닥이 터져나가며 커다란 구멍이 생겨난다. 제일 나중에 돌입하기로 되어 있는 라헬을 빼고 밖에 있는 인원에게 들어오라는 신호를 보낸다. 게랄드는 마법을 발동하자마자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으로 즉시 달려가 올라가고, 라인스가 그 뒤를 따른다. 그리고 나는,
‘슈타흐!’
기세-중력계 마법 ‘슈타흐’를 발동, 만유인력상수를 확 낮춰 몸을 가볍게 만든 뒤 뛰어올라 단숨에 천장의 구멍을 통해 2층으로 돌입한다!
내가 안착한 곳은 어느 침실. 갈색 머리의 소녀의 뒷모습이 침대에 걸터앉아 있다. 13살의 소녀치곤 키가 작은 편이었다. 햇살이 쏟아지는 창밖의 하늘을 바라보던 소녀가 천천히, 천천히 내 쪽으로 몸을 틀었다.
제 나이보다 앳된 얼굴이 꼭 히데를 떠올리게 했다. 뺨엔 주근깨가 퍼져 있고 마약 중독자 특유의 흐리멍덩한 눈동자가 나를 느릿하게 응시한다. 그것이, 아마 이 집 노인들이 입혀 주었을 아동복과 언짢은 불협화음을 내고 있었다.
그것과 동시에 마음에서 강력하게, 아주 강력하게 피어오르는 감정을 무시하며 땅을 박찬다. 기본 중력 하에서도 나는 매우 잘 싸우는 편에 들지만 ‘슈타흐’를 손에 쥐었을 경우 나는 더 잠재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 마법 삼중 발동까지는 무난히 해낼 수 있는 탓이다.
오차 없이 착지한 나는 그대로 땅을 박차 원소-생명계 마법 ‘피라’로 안토니나의 체내에 수면제를 합성시켰다. 마법 이중 발동. 동시에 용병기를 쥐지 않은 쪽 손을 주먹 쥐어 안토니나의 급소를 겨냥한다. 일단 신체강화는 하지 않고 내 본연의 속도로 주먹을 날린다.
나를 본 안토니나의 얼굴에 갑자기 생기가 돌며 흐릿한 눈에 갑자기 에메랄드처럼 또렷한 광채가 생겨났다. 그리고 이어지는 환한 미소. 그것은 자신의 체내를 침범하는 마법과 무시무시하게 뻗어오는 주먹을 통해 당혹감으로 번진다. 내 주먹에 맞기 전 아슬아슬하게 뒤로 넘어져 직격을 피하는 안토니나.
어느새 뛰어올라와 있던 게랄드와 라인스에게 말한다.
“셋!”
이것이 안토니나의, 용 등급이다.
야생 용을 포획할 때는 수면마법을 용에게 사용한다. 그 뒤 자극을 주어 완전히 잠들었는지, 그 이후로도 민첩하게 움직이는지 측정한다. 표준 용량의 수면마법을 사용하고도 움직일 수 있으면 무조건 3등급 이상이다.
어쨌든 눈앞에 있는 소녀는 ‘용’ 그 자체, 그것도 3등급 이상이라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개인이 대량의 용병기를 탈취하는 사건은 역사상 언제나 발생했다. 그리고 그 개인이 마법에 아주 능통하다고 간주될 경우, 아예 그 개체를 용으로 간주하고 용 등급을 매긴다. 한 세기에 한두 번 일어날까 말까 한 일이었지만 글쎄, 이번 세기에는 이런 사건이 한 번도 없었다. 게랄드가 투덜거렸다.
“3이면 대체 왜 우릴 부른 거예요? 차라리 포획사를 데려가지!”
용을 잡아들이는 걸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세간의 인식과는 다르게 감응의식을 수행하며 거의 용에게 저자세로 나서야 되는 업종이었지만, 지금 게랄드의 생각을 정정해주고픈 마음은 없다.
생명계 마법 ‘기키’를 발동, 두꺼운 거미줄과 같은 강화섬유를 방사해 바닥을 짚은 안토니나의 손을 묶는다. 안토니나는 쉽게 손을 내뺀다. 내 시선을 보고 미리 그곳에 결계를 쳐둔 까닭이었다.
그러나 곧 안토니나는 내가 직접 휘두르는 용병기, 검을 맞닥뜨려야 했다. 데굴데굴 굴러가려던 안토니나는 게랄드가 발동한 원소-분자계 마법 ‘소우사’를 향해 손을 내뻗어 마력간섭을 시도, 성공시켜 게랄드의 거대 마법을 취소시킨다.
「아?」
소녀의 비명은 딱 생긴 것처럼 가냘펐다. 라인스가 조종한 금속 창이 안토니나의 쇄골을 부수고 급소 쇄골하동맥을 아주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가서 관통한다. 그 반동으로 몸을 꿈틀하는 안토니나.
나는 약간 짜증스럽게 외쳤다.
“라인스! 너무 위험해! 게랄드, 우리 모두를 태워죽일 셈이야?”
1밀리미터만 더, 조금만 더 위쪽으로 갔어도 라인스의 창은 안토니나의 중요 동맥을 꿰뚫었을 것이다. 게랄드가 시전한 ‘소우사’는 너무 뜨거운 나머지 플라즈마까지 발생시킬 정도다. 이 좁은 곳에선 최악의 마법이었다.
라인스가 가져온 나머지 6개의 창을 허공에 띄우며 말했다.
“다음번엔 좀 더 조심하겠습니다.”
게랄드도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
“죄,죄송합니다! 다음엔 좀 더 괜찮은 거대마법을!”
“이젠 거대마법 필요 없어!”
내가 주 전투원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가장 중요한 사람은 창을 띄우고 있는 라인스다.
안토니나는 마법을 아주 많이 지닌 만큼 예측할 수 없는 존재다. 재워도 언제 깨어날지 모른다. 무력화시키는 방법은 이렇게 온몸에 철심을 박아 고통과 치료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태로 만드는 것. 그렇다고 방심하는 순간 나에게 썰리거나 게랄드의 폭발마법에 팔 다리 한두 개는 날아갈 것이다. 나와 게랄드의 역할은 안토니나가 라인스의 창에 당할 수밖에 없도록 안토니나의 시선을 교란시키는 것.
안토니나가 창에 꽂힌 채로 우리를 노려보았다.
순간, 거의 용의 속도로 원소-분자계 마법 ‘카울’을 안토니나가 앞뒤로 발사, 화염이 우리를 덮치는 동시에 벽이 파괴. 그러나 우리는 또한 용의 속도로 싸우는 용기사였기에 라인스와 내가 동시에 금속과 특수플라스틱을 합성해 방열벽을 형성해서 우리의 몸을 보호한다.
탄화된 방열벽을 걷어차 치워버린 뒤 나는 내 양 옆의 두 사람에게 ‘슈타흐’를 걸어 가볍게 만들고 내 몸도 가볍게 만든다. 그리고 2층에서 뛰어내려 안토니나가 쓰러져 있는 정원에 사뿐하게 착지. 갑자기 몸이 들어 올려진 게랄드와 라인스는 정신이 없는 표정이다.
중력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전투에 익숙지 않은 우리 전투원들을 배려해 살짝 내려준 뒤, 다시 안토니나를 쳐다본다. 안토니나는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라헬이 즉석에서 생성해낸, 대바늘처럼 굵은 금속 침들을 피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후로 우리는 착실히 안토니나의 몸에 금속들을 하나씩, 하나씩 꽂아나갔다. 겨우 금속을 피하더라도 나에게 맞고 팔이 부러지거나, 불을 미처 파훼하지 못해 화상을 입는 등 점점 부상을 입고 있었다.
안토니나는 훈련받지 않았다. 움직임에서 딱 티가 났다. 그럼에도 본능적으로, 거의 짐승의 감각처럼 움직이며 싸우고 있었다. 불완전하다지만, 드라헨킨더가 되면 얻는 것이 마법뿐만은 아니었나 보다.
라인스의 창을 피한 안토니나는 내 앞으로 휙 떠밀려 왔다. 소녀의 등이 가까워지자 나는 검처럼 변한 용병기를 들어 가로로 베었다.
안토니나 코바르첵의 양쪽 발목이 사선을 그리며 절단되었다. 나는 날카롭게 외쳤다.
“라헬!”
마침 라헬은 안토니나를 마주보고 있었다. 최적의 위치였다. 발이 사라져서 무릎을 꿇고 주저앉아버린 안토니나에게 또 다른 창 하나, 이제 마지막 일격이 될 창 하나를 꽂아 넣기에.
그러나 소녀의 얼굴과 마주한 라헬은 주저하는 빛을 띠며 쏘지 못했다.
“라헬!!”
나는 분노를 담아 외쳤다.
“쏴! 쏘라고!”
마침내 라헬이 떨리는 손을 치켜들었을 때는 이미 늦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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