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리고 너는 용이 되어-58화 (58/102)

3권 3장. 탈출 계획-(5)

그렇게 오후 내내 수색을 했고,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저녁은 걷다가 보인 가장 가까운 식당에 들어가서 해결했다. 그렇게 그 식당은 뜻밖의 손님들로 복닥거리게 되었는데, 이런 대형 손님을 받게 된 주인의 심정은 어떤지 몰라도 먼저 식사를 하고 있던 크라쿠프인들은 똥 씹은 표정이 되었다. 주문은 크라쿠프어를 할 줄 아는 한 대원이 받아다가 전달했다. 그 대원이 이리저리 부지런하게 돌아다니는 걸 보면, 크라쿠프어를 잘 하는 병사가 그렇게 많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원래 맛이 그저 그런 음식은 삼키듯이 먹으며 거의 모든 식사를 5분 안에 끝내는 나였지만 혼자 먹고 있는 게 아니니 용기사들과 보조를 맞추며 먹었다.

“라인스.”

내가 부르자 라인스가 사무적인 말투로 대답했다.

“네.”

“밥 먹고 나서 키라 지수를 체크하고 오지 않겠어?”

“파스첵의 키라 지수라면 바다 쪽입니까. 그런데 왜?”

“우리 감응력이 교란되었을 수도 있으니까. 오차가 어느 정도인지 확인해야 해. 이렇게까지 철저할 필요는 없지만 혹시 모르니까. 정식 측정기기는 없지만 쳬페트 계수기는 있고, 넌 용기사니까 그걸 가지고 잴 수 있을 거야.”

“알겠습니다.”

라인스는 고개를 끄덕이고 식사를 순식간에 완료한 뒤 먼저 일어나 버렸다. 쌩하니 나가 버리는 바람에 나는 근처에 있는 소대장 하나를 불러 빨리 호위하라고 지시했다. 다 먹지도 못한 불쌍한 소대장은 역시 다 먹지 못한 병사들을 데리고 라인스의 뒤를 따랐다. 지금 용기사 전원이 중무장을 하고 있지만 혼자 보냈다가는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 힘으로 밀리진 않겠지만 마법을 사람에게 쓸 일은 없어야 했다.

남겨진 셋도 금방 식사를 끝냈고, 우리는 산책을 다녀오겠다는 핑계로 나갔다. 몇 명이 우릴 따라오기 위해 일어섰지만 나는 손짓으로 저지했다.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서 나는 도청 방지용 마법을 작동시켰다.

“세부 사항을 지금 말해줄게.”

그러자 라헬이 반문한다.

“라인스는요?”

“지금 이 자리에 없으니 어쩔 수 없어. 여긴 바다의 영향이 너무 크기 때문에 키라 지수가 높게 나올 수도 있어. 반드시 미리 측정해야 해.”

바다나 산 급의 거대 자연물들은 가끔 주변의 마력에 영향을 행사하기도 하여 감응력을 교란시킬 수도 있다. 모든 자연물이 그런 것은 아니기 때문에 재기 전까지는 모른다.

“쳬페트 계수기만으로 키라 지수를 잴 수 있는 사람은 지금 라인스밖에 없어. 나중에 내가 따로 전달할게. 셋이 혼자 남겨질 기회는 그렇게 많지 않아.”

나는 생명계 마법 ‘호빌라’를 발동, 후각을 !파라의 수준까지 끌어올린다. 두 사람에게 손 좀 내밀어 보라고 한 뒤, 각자의 체취를 맡고 기억한다. 나는 허공에 코를 조금 킁킁거렸다.

“좋아. 다른 사람 냄새는 나지 않아.”

마법을 계속 발동시킨 채 설명한다.

“크라쿠프인들은 여기 베네딕툼을 사러 온 빈랜드 선박에 태워서 탈출시킬 거야. 마유브는 대양을 낀 국제항으로 빈랜드 국적의 배들이 접근하기 쉽다. 그리고 폭격은 크라쿠프인들을 한 지역에 몰아넣은 뒤 그곳을 집중적으로 포격할 건데, 일부러 마유브에 모이도록 골랐어. 그쪽으로 인구가 이동하는 모습이 자연스럽도록.”

여전히 냄새에 주의를 기울이며 말했다.

“빈랜드 선박이 정치적 위험을 무릅쓰고 이곳에 오는 것이 자연스럽도록 크라쿠프의 베네딕툼 가격을 폭락시킬 것이고, 도이체스의 의심을 사지 않도록 베네딕툼 가격을 직접 내리는 대신 크라쿠프 즈워티의 가치를 휴지조각으로 만들어 실행할거야.”

“인플레이션이군요.”

라헬이 그렇게 말하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게랄드는 살짝 어리둥절한 표정이었으나 자세한 경제학 강의를 하기에는 시간이 모자랐기에 나는 간단하게 계속했다.

“보통 인플레이션 정도가 아니라 초인플레이션을 발생시킬 거야. 결론부터 말하자면 물가가 살인적으로 치솟는다. 하나에 5즈워티 하는 빵이 며칠 뒤엔 50즈워티, 그리고 또 시간이 흐르면 50000즈워티까지 올라가는 거지. 전부 환전하지 말라고 한 건 이것 때문이야. 아마 조금 시간이 지나면 크라쿠프인들은 전부 현물로 거래하기 시작하거나 아예 마르크화로 거래할 거다.”

“세상에···”

게랄드가 중얼거렸다. 나는 계속했다.

“이 물가 부분과 빈랜드와 교섭하는 건 다른 조력자에게 맡겨 두었어. 우리가 신경 써야 할 건 결계다.”

나는 손짓을 해가며 설명했다.

“2천만이야. 아무리 미리미리 대피시켜도, 거대한 화물칸에 적재해도 부담스러운 숫자야. 아마 폭격을 하는 최후의 순간까지도 사람을 태워 보내야 할 거야. 도이체스는 빈랜드 선박을 폭격할 순 없어. 그랬다간 빈랜드가 전쟁을 선포할 테니. 하지만 아직 크라쿠프 영토에 남아 있는 자는 얼마든지 할 수 있지. 그들이 배에 탈 때까지 시간을 벌어주려면 아주 강력한 결계가 필요해. 우리 대대의 마법 정도는 막을 수 있을 정도로.”

“그렇지만 결계 마법은 굉장히 고난도가 아닙니까? 크라쿠프 정도가 보유하기엔···”

라헬의 지적은 타당했다. 나는 말했다.

“맞아. 크라쿠프엔 결계 마법이 없어. 하지만 산업용 용병기를 총동원하면 그럭저럭 흉내는 낼 수 있어. 매우 비효율적이지만, 상관없어. 크라쿠프는 베네딕툼의 원산지야.”

라헬이 작게 탄성을 내질렀다. 라헬이 말했다.

“마유브는 국제항이니 크라쿠프의 수출품이 엄청나게 쌓여 있을 거고, 1차 정제만 완료한, 혹은 아직 광석 상태의 원료에 불과하지만 베네딕툼이고, 그 양이 막대하니 비효율적이더라도 충분히 유의미한 결과를 낼 수 있겠습니다.”

“바로 그거지.”

“그런데···”

라헬이 말했다.

“아인자츠그루펜 몰래 산업용 용병기를 징발하는 게 가능합니까? 아니, 그 기업이 선뜻 용병기를 내어줄 수 있게 설득하는 게 가능합니까? 아무리 연대지도자여도 너무 터무니없는 요구라 잡음이 생길 테고, 그러면 저쪽의 귀에 들어갈 텐데···.”

라헬이 말꼬리를 흐리자 게랄드가 말했다.

“가능할 수도 있겠는데요? 일단 물가조작이 가능하단 면에서 이미 국가권력의 일부가 협조적이라는 얘기고, 결정적으로 크라쿠프의 거대산업은 채광과 정제 이 둘 뿐인데 둘 다 국영기업이에요. 그 점에 대해 미리 이야기하고 오셨죠, 그렇지 않나요?”

“맞아.”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든지 협조하겠다고 연락이 왔대. 밤쯤엔 뭘 갖고 있는지 리스트가 올 거야. 조합법은 라인스와 상의할 거고.”

다들 라인스의 이름이 나오자 납득한 표정이다.

“여기서 우리가 할 일은 조합법이 나오는 즉시 용병기들을 발동시키고 다니는 거야. 보통 그런 마법은 전부 발동시키는 데 몇 주나 걸리는 경우도 있으니까. 그 용병기들은 전부 방아쇠를 떼고 마유브로 운반되어 설치될 거야. 방아쇠의 움직임은 실시간으로 도이체스에 보고가 들어가니 방아쇠를 달았다간 아인자츠그루펜에게 들켜. 우리 임무는 안토니나를 수색하는 척 하면서, 아니 실제로 수색하면서 그 용병기들을 서서히 발동시키는 거다. 여긴 공군이 없으니 누가 감응력이 뛰어난지 한눈에 알아볼 수도 없고, 어차피 결계 밖 사람이 발동시켜야만 하니까.”

그렇게 말하던 나는 낯선 사람의 냄새가 공기를 타고 오는 걸 보고 말을 멈췄다.

“이상.”

나는 냄새의 방향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용기사들도 내 뒤를 따랐다.

모퉁이를 돌아서자 그 낯선 사람이 보였다. 디터와 라인스였다. 나는 디터에게 말했다.

“언제 여기로 온 거지?”

“바스키 수색을 끝내자마자 이쪽으로 왔습니다. 바스키에는 없었으니 바스키를 범위에서 제외할 수 있습니다.”

“빨리 왔군.”

“아시다시피, 바스키는 수색할 게 별로 없으니까요.”

폭발지점에는 거대한 크레이터가 생겼을 것이다. 그 벌판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만 찾으면 되었을 테니. 게다가 우리 쪽은 디터의 대대에서 한 중대만 데려갔다.

“윈터 최상급돌격지도자는 찾았지만 연대지도자, 당신은 어디 갔는지 보이질 않아서 찾고 있었습니다.”

용기사들 모두가 루프트바페 계급에 대응되는 친위대 계급을 부여받았다. 나는 말했다.

“이쪽도 별로 건진 건 없어. 대신 강 이남에는 없다고 봐도 된다.”

“그렇습니까. 우선 바스키는 어쩔 수 없이 저희만으로 진행했지만 용기사가 없으니 상당히 수색효율이 떨어졌습니다. 내일부터는 같이 다녀도 되겠습니까?”

우릴 감시할 속셈이다.

그러나 거절하면 더 이상하게 보일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나는 승낙했다. 어차피 디터를 비롯한 아인자츠그루펜들은 전부 남자다. 우리들이 마법을 발동시키는지, 마력이 어떻게 구체적으로 이동하는지 잡아낼 수 있을 리가 없다. 남자인 그들이 마력이동을 느낄 정도라면 이미 바스키 급의 대재앙이 일어난 것이다.

봉쇄선을 유지할 인력만 남기고 우리 모두는 테샤바의 주둔지로, 혹은 숙소로 돌아갔다. 이번엔 용기사들과 내가 따로 떨어져서 탔다. 디터가 나에게 보고할 게 있었기 때문이다.

디터는 테샤바로 가는 동안 바스키의 현재 상황이나, 그 외에 다른 용기사들 앞에선 꺼낼 수 없는 이야기들을 했다. 테샤바에 도착할 때쯤 디터의 보고나 앞으로의 논의가 끝이 났다.

“다른 용기사들에게도 드라헨킨더에 대해 숨기실 줄은 몰랐습니다.”

디터가 말했다.

“전 대대원에게 밝힐 필요는 없겠지만 적어도 함께 활동하는 자들에겐 알릴 줄 알았습니다.”

“알 필요가 없으니까.”

“혹시 발설할까봐 염려하시는 겁니까?”

“글쎄··· 친위대의 기밀을 발설할 만큼 배짱 있는 자가 도이체스에 몇이나 될까?”

디터가 침묵했다.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친위대의 이름은 공포스러운 메아리를 갖는다.

“그리고 그들을 의심해서 그런 게 아니야. 존재만으로 부담스러운 정보가 있지. 나는 내 대원들에게 그런 짐을 지우고 싶지 않아.”

나는 창밖을 내다보며 말했다.

“그들은 내가 정말 신뢰하는 사람들이니까.”

라인스 윈터는 명령대로 키라 지수를 재기 위해 쳬페트 계수기를 들고 항구로 나섰다. 계수기는 켠 순간부터 미약하게 찌직거리는 소리를 냈다. 보통 장소라면 이러지 않는다. 이 공간 자체에 마력이 풍부하거나, 아니면 키라 지수가 엉망이거나.

라인스는 바다와 가까워지자 마음이 조금 안정되는 것을 느꼈다. 바다에서 나온 그 날 이후로 계속 육지에 살았지만 라인스에게 바다는 말 그대로의 고향이었다. 아마 인간들이 말하는 향수라는 감정이, 라인스가 바다를 바라보며 느끼는 것과 같을 것이다.

라인스는 일부러 연산에 집중했다. 그녀를 따라온 소대장이 계산기를 내밀었지만 정중하게 거절했다. 머릿속을 꽉꽉 채우고 싶었다. 다른 생각이 수면 위로 떠오르지 못하도록.

라인스는 한 발자국 소리가 그녀를 향해 똑바로 다가와 바로 뒤에 멈추자 비로소 생각을 멈췄다.

“윈터 최상급돌격지도자.”

이쪽 아인자츠그루펜의 지휘자였다. 이름은 디터 바우어라 했던가. 라인스는 경례를 올렸고, 디터는 병사들을 뒤로 물렸다. 라인스는 그런 디터를 조용히 바라보며 말했다.

“제게 하실 말씀이라도 있나요?”

“그렇지. 꽤 중요한 이야기를.”

“저는 연대지도자의 명령대로 움직일 뿐이라 그다지 중요하지는 않은···”

“오라비의 이름이 한스 윈터, 맞지?”

디터가 내뱉은 위협적인 말이 순식간에 분위기를 바꾸어놓았다. 라인스가 정색을 했다.

“또, 또 오빠에게 무슨 짓을 하려는 거죠? 또 다시 오빠를 망가뜨릴 셈인가요?”

눈앞의 사람이 상관이라는 것도 잊은 채 라인스는 화를 냈다. 디터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한스 윈터에게 손댈 생각은 전혀 없네. 이런 기밀임무에 참여하는 사람의 신상명세를 조사하는 건 당연한 일 아니겠나?”

“그러면 왜 오빠 이야기를 꺼내신 거죠. 친위대에서.”

라인스는 친위대에 강세를 두며 말했다. 디터가 말했다.

“최상급돌격지도자, 한스 윈터를 누가 고문했는지 아는가?”

그 말을 듣자 라인스는 속에서 뭔가가 울컥 치밀어 오르는 걸 느꼈다. 괜찮은 것처럼 다녔다. 하지만 되새길 때마다, 전혀 괜찮지 않은 자신을 발견할 뿐이었다.

라인스가 억눌린 목소리로 말했다.

“알아요.”

“안다고?”

예상치 못했는지 오히려 디터가 놀란 목소리로 반문한다. 라인스가 말했다.

“내 대대장님인 루프트바페 중령, 동시에 친위대 연대지도자인 헤르만 예거, 바로 그 사람이 오빠를 고문해 망가뜨렸죠.”

라인스의 말을 끝으로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들 사이를 뱃고동 소리가 스쳐 지나갔고, 이어서 파도 소리가 조용하게 맴돌았다.

디터가 말했다.

“알고 있다니 이야기가 빠르겠군. 헤르만 예거는 갓 장교로 임관했을 때부터 고문에 아주 출중한 재능을 보였어. 한 달 동안 전문가가 들러붙어도 불가능했던 걸, 그는 윈터가 일주일 만에 입을 열게 만들었지. 윈터는 아직도 다리를 절지 않나? 몸은 다 나았지만, 정신에 새겨진 충격은 영원해서, 멀쩡한 다리임에도 절 수 밖에 없는 그런 상황. 예거가 그를 그렇게 망가뜨렸지.”

라인스는 디터를 노려보았다. 유달리 우묵한 그의 눈엔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속내를 알 수 없었고, 심지어 섬뜩하기까지 했다. 라인스가 천천히 말했다.

“당신은 뭐 하는 사람이죠?”

디터가 옅은 비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나는 헤르만 예거의 적이자 곧 그를 해칠 사람이지. 라인스 윈터. 너는 헤르만 예거를 어떻게 생각하나?”

오래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라인스 윈터는 정직하게 대답했다.

“저는 헤르만 예거를 증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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