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리고 너는 용이 되어-55화 (55/102)

3권 3장. 탈출 계획-(2)

우리는 본부 안으로 들어갔고, 대원들은 환전이나 하고 오라고 보낸 뒤 디터와 함께 들어갔다.

문이 닫히자 나는 디터에게 물었다.

“폭발지점이 테샤바 근처라는 것밖에 듣지 못했다. 자세한 이야기를 해줘.”

디터가 눈을 느리게 한 번 깜박인 뒤 말했다.

“실험실은 바스키에 있습니다. 테샤바 바로 옆에 있는 위성도시죠.”

디터가 벽에 걸린 지도를 짚어 주었다.

“바스키 주민들은 어떻게 했지? 격리시켰나?”

폭발장소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 숨길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게 마병의 증상이 드러났을 것이다. 당국이 역학조사를 하기 전에 봉쇄했어야 했다.

디터의 한쪽 입꼬리가 약간 비틀려 올라갔다.

“바스키 주민은 전부 죽었습니다.”

그 말에, 나는 한층 더 심각해질 수밖에 없었다.

도이체스에서도 가끔 불운한 마력유출사고가 일어난다. 산업에 쓰이는 용병기가 모종의 이유로 고장 나 장전된 마탄의 마력이 일시에 분출될 때. 당하면 공장 세 개 정도는 떼죽음이다. 범위 밖의 사람도 마병에 노출되기 때문에 도이체스 산업단지 건립원칙은 1순위가 안전, 2순위가 안전, 그리고 3순위도 안전이었다. 공단을 전멸시킬 정도의 마력유출은 아직 이번 세기 들어선 일어나지 않았고, 저번에 브리타니아에서 한 번 일어난 적 있었다. 이런 대규모의 유출은 전 세계적으로 따져도 매우 드물다.

위성도시 하나를 전멸시킬 정도의 유출은 한 세기에 한 번 일어날까말까 하는, 일어나서도 안 될 재앙이었다. 베르논이 기를 쓰고 은폐하려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드라헨킨더가 그 정도로 강력하단 말인가?”

실험체 하나가 터진 것으로 이렇게 되었다. 다른 실험체도 이 정도로 강하리라는 것은 가능한 추론이었다.

만약 그렇다면 용 몇 마리를 우리 넷이서 상대하는 수준이다. 절대적으로 화력이 부족하다.

디터가 고개를 저었다.

“그 정도는 아닙니다. 몸에 어느 정도까지 마력을 적재할 수 있을지 확인하는 실험이었습니다. 순간 실험체가 견디지 못하고 폭발하면서 동시에 마력을 공급하는 탱크까지 힘을 역류시켰고, 그게 한꺼번에 전부 터진 겁니다. 실험체 507은 적재 실험 전이었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강하진 않습니다. 단, 그 폭발에서 살아남을 정도는 되겠죠.”

크라쿠프는 최고급 마석이 생산되는 곳. 그래서 크라쿠프에 실험실을 지었구나.

“실험체의 이름은 뭐지?”

디터가 눈썹을 추켜올리자 나는 말했다.

“내 대원들은 드라헨킨더에 대해 모른다. 거기까진 알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 실험체 507이라고 부르는 순간 매우 어색해진다.”

그 말에 디터는 서류를 뒤적거렸다. 전혀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던 것 같았다. 그 서류가 맨 위에 있지 않았던 걸 보면. 하긴, 대원들을 데리고 온 것도 나 때문에 급히 바뀐 것이다. 사정이 충분히 전달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서류를 넘기던 디터의 손길이 금방 멈췄다.

“안토니나 코바르첵입니다.”

안토니나 코바르첵, 안토니나. 도이체스의 생체실험에 희생된 아이가 바로 저 소녀였다.

“살아 있거나, 죽을 경우 시체라도.”

내가 중얼거리자, 디터가 조심스레 묻는다.

“대원들은 어떻습니까? 그, 아무래도 여자들이니까···”

“초고속 마법 발동과 응용만은 게슈타포의 그 누구보다 뛰어나다.”

당연하지. ‘여자’ 용기사니까. 방아쇠에 의지할 필요가 없다면 발동속도는 거의 뇌가 자극에 반응하는 최소 속도에 가까워진다. 그리고 한 용병기 내의 모든 마법을 발동하지 않아도, 필요하다면 일부만 발현하고 다른 용병기에서도 마찬가지로 발동해 마법을 섞어 내 새로운 마법을 창조해낼 수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은 순식간에 일어난다.

전쟁 초기에는 다들 마법이 미숙해서 기동술과 기관총 사격만으로 적을 떨어뜨릴 수 있었지만, 지금은 치열한 마법전이 포함될 때도 있다. 에이스는 그 때에도 살아남아야 한다.

“‘여자들’, 그래, 여자들이지. 전쟁을 매우 훌륭히 수행하고 있는 여자들. 대인전투는 처음이지만 내가 주 전투원이고 다들 나를 보조한다. 더 이상 내 대원의 자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군.”

내가 단호하게 말하자 디터는 약간 떨떠름한 얼굴이었으나, 수긍했다.

디터는 지도를 펼치고 더 구체적으로 상황을 설명했다. 일단 폭발장소인 바스키 주변은 전부 봉쇄했다고 한다. 크라쿠프 정부가 질문하고 출입을 허가해 달라고 해도 계속 기각하고 있는 중. 인근 지형, 크라쿠프 국내에 생성된 2차 봉쇄선, 그렇게 결론이 난다.

“범위가 이렇게 압축되는군. 폭발장소인 바스키, 그리고 테샤바, 마유브, 파스첵.”

나는 언급한 네 개의 도시를 손으로 죽 훑었다. 연속되고, 구부러진 띠처럼 되어 있다. 사고 소식을 듣고 도이체스에서 즉시 사람을 파견해 오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바람에 이렇게 구역이 확대된 것. 그것도 마침 크라쿠프로 향하고 있었던 제9대대를 포함한 베르논 직속 아인자츠그루펜이 아니었더라면 이 정도를 확보하는 데에도 실패했을 것이다.

“여기 둘은 항구인가?”

마유브와 파스첵을 가리키며 물었다. 알면서도 물어보는 질문이었다. 디터가 말했다.

“예. 마유브는 대양 횡단 국제화물선이 주로 다니고 파스첵은 국제항이긴 하지만 여기 아르텐 대륙 국가들이나 피에토 대륙 쪽으로 치우쳐 있고요.”

피에토 대륙은 아르펜 대륙과 아주 가까이 붙어 있는, 엄청나게 거대한 대륙이었다. 그러나 이상하게 총기 등이 발달하지 못해 초기의 식민지 개척 때 마구 점령되어 강대국의 입맛대로 국경선이 그어져 있다. 아르텐 대륙 쪽의 북피에토는 그나마 무기와 산업이 발달해, 비록 무릎 꿇었다지만 어느 정도 정치적 권리를 보장해 낸 식민지배관계를 형성한 반면, 남피에토는 부족국가가 대부분이어서 노예와 자원을 일방적으로 수탈당했다. 물론 그들도 열심히 싸웠지만 총을 든 적에게 맞서 조금이라도 승리를 거두는 건 !파라나 해볼 짓이었다. 결국 그 !파라조차도 무릎 꿇었지 않은가.

그래서 피에토 대륙은 딱 중립이었다. 추축국 소속 식민지와 연합국 소속 식민지가 딱 반반이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가리킨 파스첵은 피에토 대륙과 무역하기에 정말 최적화된 위치의 항구였다. 불행히도 파스첵 쪽 방면엔 도이체스의 식민지가 하나도 없었기에 도이체스가 파스첵을 방치하고 있는 것이겠지.

“안토니나가 파스첵을 통해 도망갈 가능성은 없나?”

“봉쇄선은 시가지까지입니다. 시가지에서 한참 먼 파스첵 항구로 우리 몰래 도망갈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항구를 오가는 모든 배에 마력탐지를 실시해 신고된 양 이상의 마력이 나가지 못하도록 막고 있습니다.”

“나는 안토니나가 바다를 건너거나 날아서 갈 수 있는지를 묻는 거다.”

“실험체 50···아니 안토니나는 인간형입니다. 혹 드라헨킨더라 하여 진짜 용처럼 날개가 달린 걸 상상하신 거라면···”

“생명계 마법 ‘호흐’. 뼈를 일시적으로 특수탄소섬유로 치환하여 무게를 낮춘다. 원하는 자리에 임시로 뼈를 만들어내는 것도 가능.”

나는 이어서 말했다.

“생명계 마법 ‘디샤보’, 세포분열을 급속도로 촉진해 원하는 모습의 살덩이를 조형. 생명계 마법 ‘세모’, 용의 사출공과 비슷한 압축공기분사구를 형성.”

나는 디터의 눈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그 외의 일곱 가지 원소-분자계 마법도 함께 조합하면, 뼈의 무게를 줄여 가벼워졌고, 박쥐와 같은 피막 날개를 단, 용처럼 유사 사출비행을 할 수 있는 존재가 완성된다. ‘세모’는 용의 사출마법에 비하면 극히 허술하기 때문에 활강, 바람을 잘 탄다면 약간의 상승 정도에 그치지만, 유의미한 추진력을 얻을 수 있다.”

“그런···게 가능하단 말입니까?”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 상용화되지 않은 건 저 골격 치환 마법만으로도 인체엔 상당히 무리가 가는데 거기다가 9가지나 되는 마법적 조치를 더 가하기 때문이다. 소모하는 마력도 엄청나고. 하지만 이미 실험을 견뎌낼 정도로 개조된 인체라면, 저걸 버티는 것도 가능성이 있어.”

나는 크게 떠진 디터의 눈을 보며 말했다.

“그리고 용과 아주 깊이 감응하면 용과 한 몸이 되는 걸 느끼는데, 그때 자기가 모르고 있던 마법마저 자각하는 현상이 벌어진다. 나도 몇 번 겪었지. 그런 용기사의 과몰입 덕에 새로운 마법이 발견되고, 발전해가고 있는 것이고.”

전투와 같은 긴박한 상황이 아닌 한 그 정도로 깊게 몰입하는 건 불가능하다. 전쟁은 피를 대가로 마법을 풍요롭게 살찌우는 것이다.

“그런 ‘우리’는 마법을 간접 체험하는 존재에 불과해. 하지만 안토니나는 마법을 사용할 수 있으며, 그 재앙을 견뎌낼 정도로 우수하다. 거의 살아 있는 용이라고 봐도 무방해. 그렇다면 이론적 토대 없이 저 결론에 다다를 수 있다. 안토니나는 생명계와 원소-분자계의 주입이 주로 이루어졌다 하지 않았나?”

“맙소사, 파스첵과 피에토 대륙 간의 최단거리라면 충분히···!”

처음으로 평정이 깨진 디터가 다급하게 지도를 들여다보았다. 그러나 곧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그 비행가설은 안토니나가 최선의 상태일 때를 가정하신 겁니까?”

“그렇겠지.”

나는 순순히 수긍했다.

“그걸 컨디션이 나쁠 때 해낼 수 있을 정도라면 이미 그 바스키를 날려버린 정도의 마력을 갖고 있어야 해.”

“그렇다면 날아서 갈 수는 없을 겁니다.”

디터가 말했다.

“실험 과정이 상당히 고통스럽기 때문에, 실험효율에 위배되지 않는 한 진통제를 최대한 많이 놓아줍니다.”

“···마약성 진통제인가?”

“예. 대개 모르핀입니다. 즉, 안토니나의 상태는 중증 마약중독자와 유사합니다. 이제 진통제를 구할 길이 없으니, 완전히 망가지고 판단력을 상실하기 시작할 겁니다.”

그런 고통스러운 실험을 아이에게 하다니. 중독자가 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몰아넣다니.

내 감정의 동요는 드러나지 않은 채 디터는 지도에서 손을 뗐다.

“그래도 용이··· 그러니까 과몰입 상태에 대해서 처음 알았습니다. 잠시나마 가능성이 실존하기도 했죠. 저쪽에서 그 어떤 기상천외한 수법을 동원할 수도 있다는 걸 항상 염두해 둬야겠습니다.”

디터가 나를 보는 눈이 약간 달라졌다. 나는 연대지도자가 된 지 몇 주도 되지 않았다. 그것도 정상적인 루트를 밟아 올라가지도 않았고, 게슈타포이기 때문에 수색의 전문성은 가질지언정 대규모 병력 지휘—디터의 전문분야에서는 약간 달린다.

그러나 방금 대화로 디터는 나의 전문성을 제대로 인정한 것이다. 게슈타포뿐만 아니라, 마법과 그 전투에 관한 전문가로서.

이대로 대화가 끝나기 전, 나는 말했다.

“그리고 작전 몇 개가 변경되었다.”

디터가 듣고 있었다.

“우선 크라쿠프인을 한 장소에 모아야 한다. 시 한 개에서 두 개 정도로 압축해둬야 해.”

“어째서···입니까?”

디터가 의문스러운 눈길을 가득 보냈다. 나는 해설했다.

“안토니나 코바르첵을 확보한다고 끝나지 않아. 아직 우리에게는 크라쿠프 섬멸이라는 과제가 남아 있다. 그리고 원래 계획은 루프트바페의 내 대대가 전원 폭격을 시작해 이곳을 소거하는 것이지만, 그래선 안 돼.”

여전히 납득하지 못한 디터에게 말했다.

“창공에 있는 용은 눈에 띈다. 주변국의 눈에 용이 보이고, 그들이 폭격을 하고, 크라쿠프가 사라졌다. 이와 같은 결론에 도달해선 안 돼. 식민지라지만 같은 추축국을 무자비하게 지운 것을 보고 이탈해 버릴 수 있다.”

나는 지도를 가리켰다.

“따라서 폭격은 매우 신속해야 한다. 10분을 넘겨선 안 돼. 10분이 용에게 광학 차폐막을 형성해 숨길 수 있는 한계 시간이다.”

계획의 최초 입안자인 베르논은 마법의 전문가가 아니다. 그러니 이렇게 약간 현실과 어그러지는 부분이 생겨난다.

“10분 안에 마법난사를 완료하는 것은 내 대대만으로는 절대 불가능해. 그렇다고 그 이상의 인원을 동원하는 순간, 보안은 한층 취약해진다. 제한된 인원으로 전부 죽이기 위해서는 크라쿠프인을 전부 한 장소에 집결시키는 수밖에 없어.”

나는 마유브를 가리켰다.

“지형상 마유브와 파스첵은 평야지대다. 많은 인구를 몰아넣기 좋아. 게다가 한쪽 면이 바다이기 때문에, 다른 국가에게 들킬 위험도 적다. 그렇다면 둘 중에 마유브 쪽이 훨씬 상책. 마유브는 대양으로 통해 있다. 인구를 모으는 범위가 옆의 조그만 위성도시까지 확장된다는 단점은 있지만, 산맥으로 가로막힌 것도 아니니 거의 같은 지역으로 봐도 무방하겠지. 반면 파스첵은 피에토 대륙과 가까워. 다행히 근처에 연합국의 식민지도 추축국의 식민지도 없긴 해. 마유브와 달리 프로이센만큼 큰 땅이니 이 한 곳에 전부 모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마유브가 있는데 굳이 파스첵을 고를 이유가 없어.

어차피 크라쿠프는 봉쇄했다. 외부로 소식이 새어나갈 일이 없어. 우리는 크라쿠프 정부에다가 마유브로 전 국민을 집결시키라는 명령을 내리고, 안토니나를 확보하고 마유브로 전부 모인 순간 폭격을 개시한다.”

내 말이 끝나자 디터는 약간 멍한 눈을 했다가, 말한다. 솔직히 좀 얕보았었다고. 그렇게 생각해서 미안하다고.

솔직하다. 그리고 난 솔직한 사람을 좋아한다. 베르논은 이것마저 염두에 둔 것일까?

디터가 어떻게 말하든, 설령 진짜로 날 다르게 인식하게 되었다 해도, 지금 나의 가장 위험한 적인 건 변하지 않는다. 다행히 나는 의심이 많기 때문에 이런 것으로 마음을 놓지 않는다.

의심이 많았기 때문에 내가 라인스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도 즉시 깨달았었지. 갑자기 마음이 어두워지려는 걸 애써 떨쳐낸다.

“국민 대이동은 오늘부터 서서히 준비하라고 지시하고, 이 바스키-테샤바-마유브-파스첵 라인은 마유브 쪽으로 좁혀가. 포위망을 좁혀가면서 안토니나를 잡을 거다. 일단 나는 수상을 만나고, 그 뒤에 수색을—”

무심코 말하다, 멈춘다.

“바스키에선 조사해보지 않았던 건가?”

최초근원지이니 당연히 거기부터 조사해 없는지 확인하는 것부터 순서다. 디터가 말했다.

“마력이 너무 강해 접근할 수 없었습니다.”

바스키 사람들은 죽게 만든 주제에 자기들은 피폭이 두려워 안에 실험체가 남아있는지도 확인하지도 않았다. 이 뻔뻔스러움엔 감탄이 나온다.

“그럼 도대체 안토니나가 살아 있다는 건 어떻게 안 건가?”

“그들은 최종 실험체여서 몸 안에 추적용 판을 하나 넣어두었습니다. 하나는 터져서 꺼지고 안토니나의 것은 계속 작동 중이었지요.”

“추적용 판이 있다면 어째서 그걸로 위치를 추적하지 않은 거지?”

“추적가능범위가 크라쿠프 절반 정도나 됩니다. 사실 저렇게 4도시로 좁힐 수 있었던 것도 추적장치 덕입니다.”

“그럼 제9대대는 이제 바스키부터 조사해. 지금쯤이면 마력이 고르게 흩어졌을 거다.”

그래도 주저한다. 겁쟁이. 나는 일부러 쏘아붙이는 말투가 되지 않도록 주의하며 말했다.

“쳬페트 계수기 확인하고 기준치 이하면 들어가. 어차피 바스키는 너희 대대가 수색해야 한다. 순수한 마력노출만으로 죽은 걸 본 루프트바페 대원들이 실험에 대해 아는 걸 원하지 않는다면.”

명백한 명령이었기에, 디터는 별 수 없이 경례를 올리고 나갔다.

안토니나가 정말 내가 말한 대로 거의 용과 가까운 신체를 지녔다면, 생체 마약물질 정도는 본능적으로 합성해 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생각보다는 멀쩡한 상태겠지. 그러나 이것까지 말해줄 필요는 없었다.

나도 몇 가지 사항을 확인한 뒤 나섰다. 나가니 환전을 마치고 돌아온 대원들이 아인자츠그루펜 병사들과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게랄드는 쭈뼛거리고 있고 라인스는 무시 중이고 라헬이 대화의 중심이 되어 이야기 중이다. 외향적인 것부터 알아봤는데 사교술도 제법인 모양이었다.

디터는 출동 준비를 하면서도 우리 숙소를 안내할 장병 한 명은 딸려 보냈다. 짐을 풀기도 풀어야 했지만 빨리 사복으로 환복하는 게 절실했다. 식민지인 이상 도이체스인이 어슬렁거려도 이상할 것 없었지만 너무 눈에 띄니까.

숙소에 도착하고 짐을 풀자마자 내 객실로 오라고 말해두었다. 대원들이 모두 모이는 동안 나는 천천히 감응을 준비했다. 내가 가져온 용병기와 마력물질, 대원들이 가져온 것들,

그리고···

아주 미세한 신호가 느껴지자 나는 그쪽으로 향했다. 나는 싸구려 그림이 그려진 액자를 들췄고, 거기서 도청장치를 발견했다. 나는 피식 웃으며 상쇄간섭용 용병기를 켰다.

마침내 대원들이 모두 모였다. 내가 문을 닫자 게랄드가 말했다.

“말씀대로 반만 환전했어요!”

그러면서 보는 눈초리는 이유를 묻는 것이다. 나는 무시한 채 그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하나씩 가져.”

녹색 캡슐이었다. 날 제외하고 사람 수만큼 준비되어 있었다. 모두가 받아들자 나는 말했다. 말투는 딱딱한 명령.

“삼켜.”

그러자 전원의 얼굴에 미세한 경직.

전투 중 지휘하며 명령을 내리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용기사라고 싸우기만 하는 건 아니다. 용기사들도 보아야 할 업무가 있고, 나는 항상 이유를 말해 주었다. 부당한 명령은 시키지 않도록 노력했고, 딱히 권위적으로 굴지도 않았다.

그러니 이런 상황이 낯선 것이다.

그리고 지금 나는 웃고 있지 않고.

손을 입에 가져가려는 게랄드의 손목을 라인스가 낚아챘다.

“라인스!”

놀란 게랄드가 말했다. 게랄드는 뿌리치려 했으나 라인스는 강한 악력으로 붙들고 있었다.

“라인스. 손 놔.”

내가 그렇게 말하자 라인스는 정말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응시했다.

잠깐의 대치상태가 지나고 가장 먼저 입을 연 건 뜻밖에도 라헬이었다.

“지금은 작전 중이고, 연대지도자는 분명 명령하셨고, 거부하는 것은 하늘 위에서 대대장님의 명령을 거부하고 마음대로 편대를 이탈하는 것과 비슷한 무게를 지니겠지.”

라헬이 라인스의 손을 잡고 떼어 놓았다. 조심스러운 손길에 분위기가 살짝은 누그러진다. 게랄드의 손목엔 손자국이 남았다. 라헬이 나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초소형 용병기를 먹는 건 선뜻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이것이 작전에 어떻게 필요한 겁니까?”

이 자리의 전원이 용기사이고, 조금 예민한 사람이라면 손 위에 있는 극소량의 마력을 눈치 챌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말했다.

“설명해줄 순 없어. 먹어. 싫으면 나가. 그건 항명으로 쳐주지 않을 거니까.”

평소와는 너무 다른 내 태도에 다들 갈등하는 표정이었다.

한참 침묵이 흐른 뒤, 먼저 움직인 건 게랄드였다.

“전 헤르만을 믿어요.”

그렇게 말하며, 삼킨다. 그 눈은 너무나 올곧게 신뢰를 표현하고 있다.

나는 저런 걸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 아닌데.

게랄드가 먹자 라헬도 무척 갈등하더니 결국 삼켰고, 그 광경을 지켜보던 라인스는 한숨을 내쉬더니 캡슐을 삼켰다.

라인스가 캡슐을 목 너머로 넘겼을 무렵 나는 말했다.

“내가 너희에게 준 것은 생명계 마법 ‘레리’, 생명계 마법 ‘지투’, 생명계 마법 ‘스룰’. 몇 개 더 있지만 여기까지.”

그 말을 들은 라인스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다. 반면 원소-분자계 마법에만 집중하느라 생명계는 비교적 소홀했던 게랄드와 라헬은 어리둥절한 표정. 라인스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특정 신호에 반응해 뇌혈관을 장악, 뇌 전체를 괴사시키는··· 생체병기······.”

사태를 이해하지 못해 멍하니 서 있는 세 사람, 아니 두 사람에게 말한다.

“당연히 그 신호는 내가 통제하며, 발동하는 즉시 너희들은 죽는다. 1차로 전기신호가 뇌의 감각계통을 직접 자극, 극심한 고통을 유발하고 2차로 괴사가 시작된다. 사망하기까지는 약 10분.”

셋의 얼굴에 배신감이 어리기 직전, 말한다.

“이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말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내 쪽에서 목숨을 걸어야 하고, 한 명이라도 발설하면 나는 죽을 거거든. 바로 교수형이다.”

후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말을 꺼냈다면, 훗날 나는 끊임없이 의심하고 또 의심하겠지. 여기 있는 사람 중 한 명이 언제 발설할지 모른다는 공포에 떨 거야. 유감스럽게도 난 그런 식으로 일을 처리하지 않아. 나는 너희들의 목숨을 담보로 잡았으니, 지금부터 너희를 완전히 신뢰하겠어.”

“아, 그렇죠. 헤르만은 게슈타포였죠.”

새삼 깨달았다는 듯이 게랄드는 말했다. 저 소심한 사람이 나에게 대놓고 빈정거릴 정도면 정말 화가 난 거겠지. 합당한 분노였다. 내가 결정하는 순간 게랄드는 죽게 될 처지니까.

“뭔데요.”

오랜만에 게랄드가 분노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렇게까지 해서, 우릴 믿지 못하며 말해야 하는 게 뭔데요?”

“이 작전의 진짜 목적.”

나는 그들에게 앉으라고 손짓했지만, 그들은 여전히 서 있었다. 나는 그냥 계속했다.

“아인자츠그루펜의 두 번째 목적은 크라쿠프의 섬멸이다.”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바라보는 그들에게 못박아줬다.

“그것은 말 그대로 모든 크라쿠프인의 멸절을 의미한다. 우리가 찾아야 하는 소녀 안토니나 코바르첵을 확보하는 순간부터 시작이야. 루프트바페가 갑자기 아인자츠그루펜 소속이 된 건 그것 때문이야. 병사들이 크라쿠프를 봉쇄하는 동안 우리 용기사들이 마법으로 크라쿠프에 폭격을 날리기로 되어 있다. 그렇게 해서 죽는 인원은 총 2천만 명.”

얼이 빠져 있는 게랄드와 너무 많은 생각으로 머리가 혼란스러워진 라인스를 대신해 라헬이 반문했다.

“민간인이지 않습니까?”

“맞아. 그리고 죽여야 해. 도이체스는 그들을 모종의 목적에 이용했고, 그 과정에 문제가 생겼어. 그걸 은폐하기 위해 아예 전 크라쿠프인을 모조리 멸절한다. 그렇게 명령이 내려왔어.”

손가락을 딱 튕겨서, 분위기를 환기시킨다.

“어차피 폭격 그 자체는 폭격 당일 우리 대대 모두가 알게 될 거다. 내가 이런 짓까지 한 진짜 이유는···”

잠시 심호흡을 한 뒤, 말한다.

“나는 그 2천만 명을 전부 탈출시킬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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