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리고 너는 용이 되어-50화 (50/102)

3권 2장. 흔적들, 그리고 앞으로도-(2)

“도대체 어쩌다 그런 적을 만든 겁니까? 8명, 8명에게! 오직 당신을 죽이기 위해 8명이!”

“친위대가 그렇지, 뭐.”

잔인할 정도로 무심한 헤르만의 말에, 알비가 날카로운 목소리를 냈다.

“헤르만! 히데는 걱정하고 있는 거라고요.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세요.”

“걱정이라고?”

“당연한 거 아녜요? 우리 편대장이잖아요, 동시에 대대장이잖아요! 전우라고요! 그걸 꼭 낯간지럽게 제 입으로 말해야 해요? 걱정이 안 될 리가 없잖아요!”

실로 그랬다. 조직적인 암살시도라는 말을 들은 순간부터 공기가 바뀌었었다. 헤르만을 무서워하는 게랄드조차도, 여전히 무서워하고 있지만 걱정하고 있었다.

그런 헤르만의 얼굴에 얼핏 스친 건 당혹감.

!파라만큼은 아니지만 라인스도 사람의 표정을 잘 잡아내는 편이었다. 그러지 않았다면 그런 짓을 하면서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이다. 라인스는 기묘한 느낌을 받았다.

헤르만은 결코 둔한 사람이 아니다. 그가 해야만 하는 일이 그를 예민하고 섬세하게 만들었다. 그는 악의에, 거의 라인스만큼이나 민감하게 반응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자신을 향한 선한 감정은 잘 알아차리지 못했다. 타인의 호감을 잘 이용하는 걸 보면 그쪽 감각이 완전히 결여된 것이 아닐 텐데도 가끔 이런 데서 빈 구멍을 보인다.

마치, 스스로는 가치 있게 여겨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그에 관련된 모든 신호를 무의식중에 차단하는 것 같았다.

생사를 함께한 전우마저도 자기를 진심으로 걱정할 거라 예상조차 못하는 자의 삶은 어떤 것일까.

“미안, 내가 날카로워져 있었나봐.”

알비가 걱정스러운 기색을 숨기지 않은 채 말했다.

“괜찮아요?”

“8명이나 죽였는데, 멀쩡하면 조금 이상하겠지. 아직은 낯설어. 나에게 일어난 일이 아닌 것 같아. 그래서인가? 나 풀려났다는 소식 듣자마자 사령관님이 정신과 상담 일주일을 의무적으로 받도록 조치했어. 어쩌면, 그래··· 괜찮지 않은 걸지도. 아무튼, 나 없는 동안 잘 지내.”

그렇게 말하며 헤르만은 자연스럽게 돌아섰다. 라인스는 그를 따라가기 전, 힐끗 히데의 얼굴을 보았다. 히데만이 헤어 나오지 못한 모습.

!파라에게는 거짓말이 통하지 않으니까.

8명을 무참하게 살해한 것이 아무렇지도 않은 헤르만의 옆에서 라인스는 따라 걸었다. 그는 일부러 천천히 걷고 있었다.

히데의 청력 범위에서 벗어나자 헤르만이 드디어 본론을 꺼냈다.

“분명 친위대였어.”

지금까지의 평정심과는 다르게 이번에는 명백히 겁에 질린 투였다.

“보통의 절차라면 내가 진짜 정당방위여도 하루 만에 풀려나는 건 있을 수 없어. 하지만 이 사건, 게슈타포가 인계해 가더군. 전원 신원미상 처리가 되고, 나는 이상할 정도로 빨리 풀려났어. 그리고 날 습격한 인간들, 분명 게슈타포식 훈련을 받았다.”

헤르만이 말했다.

“친위대 혹은 전직 친위대를 암살자로 동원할 수 있는 자가 날 노린 거야. 배후가 전부 눈치 챈 걸까? 내가 한 것들을? 모두?”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불안감이 라인스에게만 터져 나왔다. 라인스는 자신이 유일한 사람이라는 것이 기쁘면서도 서글펐다.

“글쎄요. 그랬다면 고작 8명만 보내지 않았겠죠. 당신이 혼자서 해낸 일을 안다면 더더욱. 그리고 게슈타포가 아닌 척 하면서 끌고 가지도 않았을 거예요. 적당한 반역죄 아무 거나 뒤집어씌우고 게슈타포로써 잡아가지 않았을까요? 비슷한 일, 수없이 해 보셨잖아요. 없는 죄도 만들어 뒤집어씌울 수 있는 조직이 그런 식으로 정체를 감춘 건 분명 더 구린 목적이 있을 거라고요.”

“그럼 왜?”

여전히 당혹을 숨기지 않는다.

“그럼 왜 나를···?”

“어쩌면 당신 그 자체에 관심이 있었을지도.”

아직 사태 파악을 못한 헤르만에게 라인스가 말했다.

“정신 차려요, 헤르만. 당신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알려진 남자 용기사에요. 솔직히 말해 인체실험 하려고 끌고 가지 않은 게 이상하다고요.”

“그거야 검사 결과 내 몸은 보통 성인 남성의 표준적인 신체라고 나왔으니까.”

그리고 키는 더 크고 근육량은 우수함 범주에 들어가겠지. 라인스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한 뒤 말했다.

“바로 그게 문제에요! TL유사체마저 없잖아요.”

예언 가능한 아랑과 변신에 한정된 돌고래의 마법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사람은 혼자서는 마법을 사용할 수 없다. 그러나 여자만이 마력을 지닌 존재와 감응해 간접적으로 마법을 쓸 수 있는 것—바로 TL유사체 때문이다.

TL은 용에게 발견되는 기관으로, 뇌에 버금갈 정도로 중요한 기관이다. 현재까지 밝혀진 바로는 그것이 마법의 발현에 관여한다. 사람은 TL기관이 없지만, X염색체 상에 TL과 유사한 기관의 발현에 관여하는 유전인자가 있다. 이 TL유사체 유전자가 한 쌍 있을 때 사람의 몸에서 TL유사체가 생성된다. 즉, X염색체가 하나밖에 없는 남자는 생성 자체가 안 되므로 감응이 불가능하다.

XXY의 염색체를 가진 남자도 감응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Y염색체에 유사체 발현을 억제하는 무엇인가가 있을 것이라 추정되지만 아직 밝혀지지는 않았다.

헤르만 예거의 신체는 XY염색체를 가진 지극히 평균적인 남성의 몸이었다. 현대 과학에서는 아직 염색체 안에 뭐가 있는지도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Y염색체를 샅샅이 살펴볼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신체에 생성된 TL기관 혹은 유사체는 하나도 없었다. 단 하나도. 거의 일주일에 거친 정밀검사에도, 살아 있는 인간에게 합법적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검사를 다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헤르만 당신은 친위대 최고 장성 중 한 명의 아들이에요. 게다가 대부분 친아들로 알고 있죠. 하지만 당신이 한 일들은 장성의 아들이라도 극형을 피할 수 없는 것들. ‘게슈타포가’ 잡아가도 할 말이 없어요. 반면 몸이 목적이라면 절대 드러내놓고 할 수 없죠. 우나 브라운 씨의 귀에 들어갈 게 틀림없으니까요.

남자들이 마법을 얼마나 갈망해 왔는데요. 생체실험을 써서까지, 세계 최고의 에이스를 희생해서까지 원리를 파헤치고 싶은 사람은 반드시 있을걸요. 실험에 희생될 사람은 안타깝지만, 대의를 위한 것이다, 라는 이유 따위를 대면서요.”

“다른 의미로 소름 끼치는데, 그건.”

“적어도 전 아직 안 들켰다고 봅니다아. 물론 당분간 몸을 사릴 필요는 있겠지만요. 다음부턴 집에 치명적인 부비트랩을 설치하는 건 어때요? 이런 일을 겪었으니 아무도 의심하지 않을 테구.”

“참고해보지. 아니, 정말 진지하게 고려하겠어. 왠지 누구인지 알 거 같고··· 또 운에 맡길 순 없어.”

누구를 배후로 의심하는지 물었지만, 헤르만은 추측일 뿐이라며 말을 얼버무렸다. 그 뒤로 헤르만은 조합으로 ‘뷔티에’를 발동시킨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끝도 없는 주제이기 때문에 어느새 대화는 그쪽으로 옮겨져 있었다.

라인스는 이야기에 너무 열중한 나머지 기지를 나오고 공원 산책로의 끝까지 더 가버린 걸 깨닫고 발을 멈췄다.

“저도 모르게 약속 장소를 지나쳤네요.”

“그래. 이건 다음에 이야기하자.”

다시 산책로를 거슬러 올라가려 뒤를 돌아보니 붙박여 있는 남자의 실루엣이 보였다. 헤르만은 이제 라인스와 보폭을 맞출 필요가 없기 때문인지 성큼성큼 걷고 있었다. 헤르만이 그 남자에게 다다르기 직전 라인스는 손을 흔들며 말했다.

“오빠! 많이 기다렸지?”

한스 윈터. 청소년기의 라인스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고 많은 사람을 알았지만 기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다 성인이 되고 나서 만나게 된 한스 윈터는 어릴 때 자신을 거두어 준 노부부와 거의 비슷할 정도로 친밀한 사람이었다. 한스는 그런 사람이었다. 겨우 3년을 알았을 뿐이지만 한스는 정말로 가족 같은 소중한 사람이었다.

진짜 가족처럼, 진짜 오빠처럼.

—그런 그의 얼굴을 지배하는 것은 패닉.

라인스는 저런 얼굴을 본 적 있었다. 악몽을 꾼 한스가 깨어나서 발작할 때 가끔 볼 수 있는 그런 얼굴.

바로 그런 얼굴을 하고 있었다.

헤르만 예거도 멈춰 서 있었다. 도망치고 싶지만, 도망쳐야 하지만, 움직이질 못한다.

온몸이 뻣뻣하게 굳은 한스 윈터의 입술에서 가느다란 말이 새어나왔다.

“···살려주세요.”

그 말을 뱉자마자 한스 윈터는 무너졌다. 그 뒤의 외침은 거의 짐승의 것에 가까웠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제가, 제가 전부 잘못했습니다. 그만, 그만해, 아파, 하지 마, 싫어요, 살려주세요, 말할게요, 전부, 전부!!”

바닥에 무릎을 꿇고 헤르만의 바짓단을 붙들면서 애원하는 남자가 있었다.

“싫어, 싫어, 날 그 의자에 앉히지 마! 프란츠, 잘못했어요. 이빨만은, 또 그것만은!! 뭐든지, 아아, 그만해, 하지 마, 죽여요. 날 죽여요! 날 살리지 마!! 아니, 살려주세요!”

비명을 지르며 깨어난 한스 윈터의 손을 잡아주러 갈 때마다 되풀이하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들은 사람이 아니라 좀 더 기계에 가까우며, 옷에는 이름도 없다. 그들의 이름은 전부 프란츠이다. 그들의 얼굴은 검은 마스크로 가려져 있다. 펜싱 경기용 헬멧처럼 얼굴 전체를 반원으로 감싸는 마스크에서는 어떠한 인간의 흔적도 읽어낼 수 없다.

그러나 딱 하나만은 인간인데 그것이 바로 목소리였다. 목소리뿐이었다. 한스가 절대로, 절대로 잊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마지막 일주일을 고문했던 ‘프란츠’의 목소리.

한스는 그를 스쳐지나가며 나누는 두 남녀의 대화에서 ‘프란츠’를 찾아낸 것이다.

라인스는 그녀가 애정하는, 존경하는, 아끼는 어른이 바닥에서 개처럼 기는 광경을 보았다. 그토록 당당하고 멋진 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그는 다시 친위대 지하실의 그 때로 돌아가서, 그 때의 인간 이하의 돼지 같은 존엄으로 추락하면서, 유아처럼 애원하고 있었다.

라인스는 달려가려고 했다.

충격 받은 건 헤르만도 마찬가지였는지 비로소 그는 움직였다. 몸을 숙이더니 한스의 경동맥을 손가락으로 5초간 누른다.

그 순간, 헤르만이, 아니 에리히가 진심으로 라인스를 죽이려 목을 졸랐을 때의 기억이 플래시백으로 스치면서 라인스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라인스는 숱한 죽을 고비를 넘겼다. 그러나 몇몇 경험은 무디어지지 않는다. 라인스에게 있어서 그때는 그런 경우였다.

몇 초 뒤 한스는 풀썩 쓰러졌고 헤르만은 머리를 다치지 않게 조심스럽게 안아든 뒤 벤치에 뉘었다.

“기절시킨 것뿐이니까 몇 분 뒤면 깨어날 거야.”

헤르만의 목소리는 너무나 아득하게 들렸다. 라인스는 헤르만의 노란 눈동자를 응시했다. 고요한 감정. 8명을 죽이고도 고요했던, 그런 것처럼. 헤르만이 말했다.

“미안해. 모두 다.”

그는 뒤돌아서서 걷기 시작했다. 라인스는 멍하니 그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를 잘 안다고 생각했었다.

그와 생사를 함께하는, 그 누구보다도 친밀할 제3편대원의 전우들보다 그를 더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가 속한 조직이 어디인지 알았고, 그 또한 손을 더럽혔으며, 비록 에리히였다지만 그가 어떤 식으로 사람을 철저히 망가뜨리는 것까지 전부 알고 보았다.

그럼에도 그는 라인스와 같은 것을 보았고, 같은 정의를 가졌고, 같은 방식으로 행동했다.

그렇게 그를 사랑했다.

하지만 사실 라인스는 그를 완전히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이었다. 이런 감당하기 힘든 것일 줄은 몰랐다.

생각해보면 처음 그 순간부터, 어째서 헤르만 예거가 한스 윈터를, 라인스를 만나기 전 한스 윈터가 외동아들인 걸 기억하고 있는지부터 의심했어야 했다. 하지만 라인스의 무의식이 그 주제를 치워버린 것이다. 마주하고 싶지 않은 추론에 다다르는 걸 피하기 위해.

결국 가장 큰 형태로 파국에 치달았다.

그럼에도, 그 모든 것이 증오로 치환되지 않는 자기 자신을 저주하며,

라인스는 한스 윈터를 바라보며 울었다. 그가 깨어날 때까지, 깨어나고 나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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