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권 1장. 경계선-(1)
그걸 깨달은 순간 내 오른손이 주먹을 쥐고 괴한의 미간을 세게 쳤다. 오른손 중지에 낀, 사파이어가 박힌 반지가 상대의 살을 파고들었다. 괴한은 예상치 못했는지 한 발짝 더 굼뜨게 반응했지만, 내 몸도 예상과는 다르게 흐느적거렸다. 몸의 근육들이 아직 수면 상태에서 각성되지 못했다.
나는 그 상태로 침대에서 굴러 떨어졌고 미간을 맞은 괴한은 자세가 무너졌다. 괴한이 놓친 가느다란 주사기가 손전등 불빛 속에서 원형의 궤적을 그리며 땅에 떨어졌다.
그 주사기가 땅에 닿기 직전 나는 일어섰다. 몸을 수그리고 괴로워하는 괴한의 얼굴에 니킥을 먹였다. 충격과 더불어 상대의 안와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그럼에도 괴한은 달려들었다. 나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보통은 저 정도 부상으로 상황이 종료된다. 그러지 않았다는 건 상대가 고통에 익숙하거나, 고통을 견디고 싸우는 훈련을 받았다는 의미다. 그건 우리를 예로 들면 대인전투 훈련을 받는 게슈타포 중에서도 극소수, 아주 극소수의 현장요원들에게나 요구되는 능력이다.
즉, 전문가가 나에게 해를 끼치려 한다.
나는 괴한이 달려드는 방향을, 펄쩍 뛰어 옆으로 피했다. 내가 안구 쪽을 뭉갰기 때문에 저쪽의 시야는 이 캄캄한 방에서 안쓰러울 정도로 낮다.
피윳—!
갑자기, 기계가 재채기를 하는 듯한 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뒤이어 목 쪽에 홧홧한 작열감. 총알이 목을 정말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따끔거리고, 피도 나지만 부상 축에도 들 수 없다.
이런 멍청이! 애초에 손전등 불빛에 의지해 내 팔에 주사를 놓으려 했다면, 손전등을 든 놈도 있다는 이야기잖아! 나는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휙 돌아섰다. 손전등 하나와 권총을 쥐고 있는 검은 마스크의 괴한. 한 손으로 총을 다시 고쳐 쥐고 이쪽을 향해 쏘려고 한다.
제아무리 소음기 장착한 권총의 명중률이 형편없다지만 이 거리에서 못 맞히는 사람은 올해의 머저리 상을 수상해도 될 것이다.
방아쇠에 걸린 손가락이 움직이기 직전 나는 몸을 뒤로 홱 젖혔다. 그 반동으로 넘어간다. 총알이 벽에 박히는 소리가 난다. 손을 바닥에 짚으며 안정적 축 확보. 손이 닿은 걸 느끼자마자 왼발로 바닥을 차올리고 오른발로 더 높이 다리를 치켜 올린다.
발끝에 뭐가 걸리는 느낌이 났고, 나는 발차기의 반동을 그대로 유지한 채 반 바퀴 공중제비를 돌아 착지. 그러나 위치선정이 애매했던지 회전의 기세로 서랍장에 세게 척추를 부딪친다.
내가 차올린 건 총이 아니라 손전등이었다.
바닥에 떨어진 손전등이 마구 구르며 기괴한 그림자를 만들어낸다.
나는 그 오락가락하는 불빛을 보자마자 옆으로 굴렀다. 피윳, 피윳, 피윳! 내 궤적을 따라 총알이 따라오고 있다. 이젠 그가 두 손으로 권총을 잡을 수 있으니 사격이 더 안정되어 있다.
나는 착지하자마자 무언가 물렁하면서도 단단한 물체에 부딪혔다. 물체는 바람 빠지는 듯한 비명소리를 내더니 내 발목을 콱 붙잡았다.
얼굴 뭉갠 놈이 내 발목을 잡아 버렸다. 그런 우리 꼴을 마침내 정지한 손전등이 스포트라이트라도 비추는 것처럼 환하게 비췄다.
나는 다른 쪽 발로 놈의 얼굴을 한 번 더 걷어차서 빠져나왔다. 무언가 영영 부서져버리는 소리가 났지만 그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다시 총알 소리가 뒤따르지만, 나는 저 망할 손전등 때문에 눈이 빛에 익숙해져 버렸다. 다른 쪽을 보자 3초간 시야가 암전되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몸을 웅크려 안 맞기를 바라며 일단 움직이는 수밖에.
침대를 밟고 건너편으로 도약한 나는 비로소 어느 정도 시야가 돌아왔다. 내 눈에는 총을 든 괴한이 정확히 그쪽에 있는 것이 보였다.
괴한이 총을 들어 정확히 나를 겨누고 있다. 그리고 움직이는 검지.
죽는다.
철컥.
소음기에 파묻힌 권총 발사음이 아니라 탄창이 비었음을 알리는 소리가 났다.
그대로 돌진. 주먹으로 어퍼컷을 날린다. 주먹이 괴한의 턱을 스친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뇌가 뒤흔들리며 괴한은 자기도 모르게 무릎을 꿇었다. 나는 괴한의 손을 발로 걷어차 권총을 저 멀리 암흑으로 보내 버렸다. 빈 권총이라지만 재장전을 해버리면 끝장이었다.
명치를 걷어차 전투불능으로 만들려 했지만 적은 간신히 후퇴. 발은 허공을 스친다. 괴한은 비틀거리며 일어선 뒤 나의 간격에서 벗어났다. 괴한의 발에 채인 손전등이 그의 하반신에 그림자를 드리웠다가 말았다가 하면서 굴러간다.
잠깐의 대치상태.
괴한은 카키색 상의에 검은색 바지를 입고 있었다. 길거리에 돌멩이처럼 흔하게 보이는 옷차림이었다. 한 가지 다른 점은 코 아래부터 얼굴을 감싼 검은 복면. 그러나 저걸 벗는 순간 그는 무리 없이 군중 속에 섞여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신원을 파악할 수단이 없다.
나의 거친 호흡소리가 귓전에 울린다. 이 정도로 지칠 내가 아니다. 더 이상 몸 굴릴 일이 없는 친위대 연대지도자*로 승진한 지금까지도 나는 훈련을 게을리 한 적이 없다. 하지만 미처 근육이 풀리지도 않은 몸으로 격렬하게 움직이고, 습격 받았다는 공포가 내 온몸을 후들거리게 만들었다.
(*대령)
등 뒤로 흐르는, 식은땀인지 뭔지 할 것이 찝찝했다. 그에 비례해 나의 감각은 이 조용한 새벽 속에서 누구보다도 날카로워졌다.
괴한의 오른손이 바지로 슬그머니 움직이자 나도 뒤쪽으로 손을 뻗었다. 괴한이 단검의 손잡이를 잡고, 내가 손끝에 닿은 촛대를 움켜쥔 순간 우리는 서로에게 달려들었다.
나는 둔기가 된 촛대로 상대의 두개골을 노리며 반원의 궤적을, 상대는 흉기가 된 날카로운 칼날로 나의 살갗을 찢어버리기 위해 직선의 궤도로 움직였다.
내 촛대가 허공만을 가르고 상대의 칼날은 내가 몸을 비틀어 잠옷과 더불어 가슴의 진피층 일부만을 찢는 데 그쳤다. 빗나간 촛대의 힘을 그대로 보전한 채 마치 8자를 그리듯 방향을 전환, 동시에 오른발을 축으로 삼아 회전해 내려친다. 그 곡선의 끝에는 상대의 뒤통수가 있다.
촛대가 닿기 직전, 적이 양손을 교차해 X자를 만들어서, 윗부분의 양 손등으로 내 촛대를 받아내었다. 손등에 큰 충격을 받았겠지만, 적어도 머리가 박살나는 것은 면했다.
적은 여전히 내 촛대를 눌러 잡아둔 상태로 칼을 잡고 있지 않은 한쪽 손목을 비틀어 촛대를 움켜쥐었다. 완전히 잡자마자 몸을 빙그르르 돌려 나와 마주보는 자세. 빈손이 내 촛대를 잡고 홱 당겨서 내 몸이 앞으로 쏠린다. 내가 가까워지면서 동시에 가까워지는 적의 칼날. 내 자유로운 왼손은 아무것도 들려 있지 않다. 내 오른손은 봉쇄되었다.
다가오는 적의 칼날.
칼날이 다가오는 선으로 똑같이 내 왼손을 뻗는다. 손을 활짝 폈다가, 칼날이 왼손을 지나가려는 순간 엄지와 검지로 칼의 옆면을 잡아챈다.
적의 칼은 날이 한쪽에만 있고 옆면이 매끄러운, 가장 단순한 형태. 내가 수없이 다루어 보았던 군용 나이프다. 그렇기에 이런 미친 짓이 가능한 것. 그러나 이것으로 상대를 멈출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성인 남성의 손아귀 힘이 아무리 세도 훈련받은 성인 남성이 체중을 실은 찌르기를 멈출 도리는 없다.
내가 필요한 것은 그저 아주 약간의 시간.
1초간 칼날의 속도를 늦추는 데 성공했다. 1초면 충분. 몸을 왼쪽으로 비틀어 다시 칼날의 궤적에서 회피. 적이 내 심장이 아닌 팔을 노렸기에 가능한 일이다.
적은 나를 막기 위해 내 촛대를 힘껏 잡아당기고 있다. 몸을 비트는 관성으로 오히려 촛대를 적 쪽으로 뻗는다. 칼날은 이제 놓는다. 적이 균형을 잃는다. 더욱 빠르게 촛대로 상대를 찌른다.
촛대는 그저 초를 거치하는 용도로 설계된 게 있고, 가운데 뾰족한 심이 돋아서 초를 더욱 단단하게 고정하는 종류가 있다. 내 집에 있는 건 후자다. 끝은 양궁 경기용 화살 정도로 뭉툭하지만, 그래도 찌르기는 가능하다.
노리는 건 상대의 쇄골하동맥.
적은 가만히 당하지는 않는다. 내 촛대를 붙잡은 팔의 팔꿈치를 치켜 올리더니 굉장한 기세로 찍어 누른다. 그렇게 치명적인 찌르기를 피한다.
그러나 이미 자세가 무너져 있었던 탓에 치명타를 피했을 뿐, 후속타로 이어지지는 못한다. 나는 강제로 몸이 숙여진 상태로 상대의 안면에 주먹 한 방. 그것이 결정적으로 상대의 균형이 상실된다. 그가 처음으로 마구잡이로 칼을 휘두른다.
눈먼 칼이라지만 스치기만 해도 위험. 치유마법이 있다면 너무 하찮은 부상일 테지만 나는 잠옷 차림이다. 달빛을 받아 번쩍이는 은의 궤적을 피해 다닌다. 다행히 상대가 촛대를 포기한 탓에 나는 촛대로 칼날을 쳐내며 대치한다.
분명, 저기에 아마도 죽어서 누워 있는 놈은 나에게 주사를 놓으려 했다. 독약일 수도 있지만 그러면 이렇게 무장을 하고 온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다. 정황상 날 납치하려 했다고 봐도 좋을까.
지금, 단 한마디도, 기합도 내지르지 않은 우리 둘 사이에는 오로지 똑같이 찍어낸 살의만이 감돌고 있다.
상대는 아까 팔을 노렸다. 그러나 그것이 상대가 날 죽이려 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될 수 없다. 서로가 단검을 가지고 있을 경우 곧바로 몸의 중심부 급소를 찌르긴 힘들다. 그러니 팔다리의 동맥들을 자르면서 실혈사하게 만든다. 이것은 단검술의 기본이었다.
나 역시 수없이 단검을 사용해본 적 있다는 점에서 볼 때, 상대는 나의 중요한 동맥을 노리거나 치명상을 입히기 위해 공격하고 있다. 즉 이 수수께끼의 괴한들은 날 납치하려 했지만 동시에 죽여도 상관없다는 것이다. 상대는 망설이지 않고 있다. 그것은 내가 죽이지 않고 제압하기 어려운 상대라는 걸 깨달아서일까, 아니면 처음부터 내가 죽어도 상관없다는 것일까.
반짝이는 칼날과 새카만 무광 코팅이 되어 있는 촛대의 격돌. 상대는 이 어두운 방에서 용케 막아내고 있었다. 아마 손전등에 비친 촛대의 길이를 한 번 파악한 뒤, 촛대를 쥐고 있는 내 오른손에서 반짝이는 사파이어를 보고 위치를 예측하고 있겠지. 그 점만 봐도 나보다 한 수 위. 적이 쏟아낸 칼날을 내가 막아내고, 내가 휘두르는 촛대에 으깨지지 않기 위해 상대가 피해 다닌다. 촛대가 훨씬 더 무겁기 때문에 적은 정면으로 받아치지 않고 힘을 흘려보내는 선에서 그치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내가 먼저 지친다. 촛대는 휘두르라고 만든 물건이 아니다. 무게중심도 엉망이고, 위력에 비해 힘이 더 든다.
속도가 빠른 저쪽에서 나를 쉴 새 없이 몰아붙이는 형국이어서 나는 막아내면서 점점 밀려나고 있었다. 허벅지에 침대가 닿고서야 더 이상 도망칠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순간 적이 칼날을 뻗어온다. 노리는 곳은 경동맥. 찔리면 즉사이기 때문에 나는 촛대를 수직으로 휘둘러 막아낸다.
그때 날 강타하는 묵직한 일격.
내가 미처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상대의 주먹이 무자비하게 꽂힌다. 혼란스러운 머리는 사태를 이해하려 애쓰지만 고통 앞에선 무력하다. 침대에 거의 누울 듯이 몰아붙여져서 맞는 다. 상대가 드디어 주먹 대신 칼로 똑같은 짓을 하려는 순간 옆으로 굴렀다. 아까의 칼 공격은 페이크였고 처음부터 주먹이 본론이었던 것이다. 설령 내가 칼 공격을 못 막아내도 그것으로 상관없었다. 어차피 급소였으니까.
적이 칼이 침대에 박혀서 잠시 빼내려 애쓰는 동안 죽음의 침대에서 빠져나왔다. 촛대는 놓쳐 버렸다. 시야각 최언저리 즈음에서 침대 위에 뒹굴고 있는 게 느껴질 뿐이다.
칼날을 아직 놓지 못하는 적에게 올라타서 이번엔 내가 주먹질을 시작했다. 다리를 버둥거려 날 때리지만 참고 계속 때린다. 경험상 급소에 적중하지 않는 이상 구타만으로 사람이 죽기에는 조금 시간이 걸린다. 왼손으로 적의 저항을 막아내면서 오른손으론 마구 때린다. 오른손 중지에 있는 사파이어가 달빛을 받아 반짝였다.
갑자기 섬뜩한 느낌이 들어 몸을 젖혔을 때, 드디어 침대에서 뽑아낸 적의 칼날이 방금 전까지 내가 있었던 자리를 베고 지나갔다.
다시, 형세가 역전된다. 무기를 든 적이 맨손의 나를 일방적으로 찍는 구도. 아직 한 번도 맞지 않았다지만 곧 한 번은 찔릴 것이다. 그러고 그렇게 끝나겠지.
침대 위에서 버둥거리다 손끝에 차가운 감각을 느낄 때쯤, 적이 칼날을 역으로 잡았다. 찍기에 온 힘을 쏟겠다는 뜻이다. 날 처형하려는 것.
칼날이 내려온 동시에 나는 내 왼손에 잡힌 것을 뻗었다.
칼날보다 리치가 긴 촛대가 적의 빈틈을 파고든다. 내 오른손에 들었다면 반지 때문에 알았겠지만 내 왼손은 완전한 어둠에 파묻혀 있었다. 왼손은 마치 암살자처럼 조용하게 적에게 향한다.
손가락 두 마디만큼의 거리를 남기고 적의 칼날이 내 목 앞에서 정지.
동시에 내 손끝을 타고 내려오는 감각. 나는 지그시 힘을 주어 적을 밀어낸다. 내가 몸을 일으켰을 때, 왼손을 거둔다. 촛대의 뾰족한 부분에 꽂혀 같이 딸려오다 빠져나와 대롱대롱 매달려 떨어지는 상대의 안구. 곧이어 나는 혈액과 유리체로 얼룩진 촛대의 끝으로 상대의 목을 찌른다. 저 정도로 긴 가시라면 이미 뇌도 일부 관통했을 거라고 속에서 누군가가 속삭이지만, 나는 적을 제거해야 했다.
완벽하게.
목을 꿰뚫는 감각이 메아리칠 무렵 나는 촛대를 빼냈다.
적의 경동맥에서 힘없는 물총이라도 쏜 것처럼 찍, 하고 핏줄기가 튀어나와 침대와 내 옷을 적신다. 핏줄기는 몇 번 더 찍찍 뿜어져 나오더니 적의 몸뚱이가 뒤로 넘어갈 때쯤에는 졸졸졸 흘렀다.
내 거친 숨소리만이 소음이 될 뿐, 방은 고요해졌다.
불을 켜려다 너무 멀리 있는 걸 깨닫고 침대맡을 더듬어 작은 독서용 스탠드만 켰다. 아직도 바닥에서 뒹굴고 있는 손전등이 보여서 그걸 집어 들고 시체가 된 적들을 비춘다. 나는 얼굴이 함몰된 적을 보며 물었다.
“왜 나를 노린 거지?”
내가 칼 든 자와 싸우는 동안 완전히 죽은 모양이다. 당연히 대답은 없다.
나는 어제, 가끔 잠옷으로도 입는 편한 바지와 셔츠를 입고 밖에 나갔다가 일이 갑자기 많이 생겨 밤늦게 돌아왔다. 너무 피곤해 신발도 못 벗고 잠들었지. 아마 맨발이었다면 발끝으로 차는 위력이 경감되었을 것이다.
습격자들은 정말 흔해빠진 옷을 입고 있었다. 소속이나 목적을 짐작할 수 없었다. 복면을 벗겨봤지만 품에는 신분증 하나 없었다. 그러나 군용 나이프, 그리고 단검술의 형태가 내가 아는 것과 정말 흡사했다.
시계를 보니 새벽 네 시 반.
아무리 봐도 게슈타포의 소행이다. 쓰는 체술이나 습격하는 시간 같은 걸 볼 때면. 새벽 네 시는 인간이 가장 취약한 시간. 그건 게슈타포들의 철칙이었다. 이들은 게슈타포이거나 적어도 게슈타포였던 사람들이다.
도대체 왜?
일단 시체를 뒤졌고, 칼을 들었던 적에게선 탄창 하나를, 주사기를 들었던 적에게선 소음기를 낀 권총 하나와 탄창 하나를 발견했다. 총은 딱히 특색이 있는 건 아니었다.
권총의 안전장치를 풀고 주머니에 넣은 뒤 일어섰다. 바닥에 나뒹구는 단도를 손에 단단히 쥐었다. 저들이 전부라는 걸 확신할 때까진 안심할 순 없다. 그러나 나가야 할 시간이다. 복도 건너편의 작업실에는 수많은 탐색마법들이 있다. 그것들로 검사를 하면 뭔가를 더 얻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때까진 시체는 그대로 두는 것으로.
그렇게 안방의 문을 열고 나간 순간, 갑자기 차가운 것이 내 관자놀이에 닿았다. 나에게 총을 들이댄 메마른 목소리가 말했다.
“고함지르면 죽인다. 칼 내려놓고 조용히 손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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