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권 프롤로그
나는 방금 죽은 시체다.
턱은 옥수수 알갱이 같은 이를 흩뿌렸고 팔다리는 이상한 각도로 뒤틀려 있다. 손에 들렸던 망치는 저 멀리 무력하게 나뒹군다.
가끔은 그런 상상을 한다.
그녀의 바람대로 행동하는 대신, 나의 원초적인 복수심만 표출하면 어떻게 될 지.
그저 망치를 휘둘러 그녀의 머리를 가격하기만 해도 끝나는 일.
그러나 그녀는 그 모든 상상조차도 패배시킬 정도로 강력했다. 상상하는 것조차 용납되지 않는다. 그렇게 나를 간단하게 짓눌러버린 그녀는, 곧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태연하게 읽다 만 경전을 마저 암송하기 시작한다.
「내가 내 손의 지팡이로 쿠루 강을 치면 그것이 피로 변하고 쿠루 강의 고기가 죽고 그 물에서는 악취가 나리니 호텐 사람들이 그 강 물 마시기를 싫어하리라 하라.」
그녀의 신은 전능하다. 그녀의 신은 가혹하다. 그녀의 신은, !파라들을 위해, 핍박받는 그들이 도망칠 수 있도록 바다를 갈라 주기도 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신자들을, 피조물들을 냉엄하게 벌한다.
그녀는 10살의 나에게, 그리고 사관학교를 다니기 전의 나에게도, 토라를 읽어 주었다. 나는 믿지 않으면서도 !파라들의 경전을 들었다. 그렇게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며 하루를 끝냈다. 그것이 나의 일상.
그녀는 나를 박살내 놓고도 변함없이 토라를 암송하고 있다. 나는 그런 존재인 것이다. 너무 하찮고, 짓누르기 좋은 인간. 약해빠진 인간. 오직 흥미 때문에 살려둔 인간.
「티카가 곧 손을 바다 위로 내밀매 야와께서 큰 동풍이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 !파라 자손이 바다 가운데를 육지로 걸어가고 물은 그들의 좌우에 벽이 되니 !파라들이 모두 그 땅을 밟은 순간 바다가 갑자기 그들을 삼키니라.」
순간 위화감을 느꼈다. 그걸 느낀 순간, 내 떨어진 이들이 다시 와서 붙고 뭉그러진 뼈가 다시 복원되기 시작했다. 서서히, 서서히.
「그리하여 야와는 그들을 버렸느니라.」
아니다, 저 내용이 아니다! 원래는 모든 !파라들이 전부 갈라진 바다를 따라 도망치고 나서, 그들을 억압하던 호텐의 병사들이 뒤따라 들어오자 비로소 바다가 오므라들어 그들을 지워 버린다.
「야와께서는 이 기회에 도깨비를 지우고자 세상 전역에 커다란 홍수를 일으켰느니라.」
어느새 일어날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된 나는 비틀거리며 자세를 바로 했다. 또 저것은 훨씬 앞에 일어난 대홍수 이야기이다. 순서가 섞였다.
그걸 깨달은 순간 어긋나고 있던 현실감각이 되돌아오며, 여기가 꿈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그녀가 토라를 잘못 외울 가능성은 절대 없으니까.
나는 그녀의 뒷모습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왜 그랬을까? 어쩌면 꿈이라는 걸 깨달아서 그럴 수도 있다. 적어도, 꿈에서라도, 한 번은 그녀를 죽일 수 있을까. 그녀가 원하지 않는 죽음을.
내가 서서히 손을 뻗자 갑자기 그녀가 뒤돌아보았다.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은 마구 뒤틀리고 일그러져 있었다. 순간 공포를 느낄 정도로. 그녀가, 그것이 여전히 아름다운 목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넌 안 돼.”
그렇게 말하며 내 왼팔을 갑자기 강한 힘으로 콱 잡았다. 분명 가볍게 잡은 것인데도 칼에 찔린 것처럼 따끔했다.
내 팔을 붙잡은 이는 곧 그녀에서, 낯선 남자로, 중년의 남자로, 어린 소녀로 시시각각 바뀌며 웃었다.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며 시야가 암전.
그렇게 진짜 현실에서 눈을 떴을 때 가장 처음으로 본 광경은 손전등 조명에 비추어진 누군가의 모습.
어떤 괴한이 내 왼팔을 붙잡고 막 주사를 놓으려던 참이었다. 그녀가 붙잡았던 바로 그 자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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