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리고 너는 용이 되어-43화 (43/102)

2권 4장. 검은 제복의 악마-(5)

한참 동안 나의 흔들림 없는 총구를 바라보던 얀츠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왜 이제 와서 이러는 거죠?”

“두 가지 이유지. 하나는 네가 이겼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네가 방금 선택했기 때문이야.”

얀츠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말했다.

“동족이라고 너무 안심한 게 잘못이었네요. 하지만 날 본 첫날 바로 고발하지 않았으니 앞으로도 그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왜 생각을 바꾼 거죠?”

나는 좀 더 편안한 자세로 그를 겨누며 말했다.

“정정할 게 있는데, 난 의태한 돌고래가 아냐. 평범한 인간이다. 아버지가 인간이니까. 돌고래와 인간 사이에 자손이 수태되는 건 불가능하다고, 그건 알고 있지 않아?”

얀츠의 눈이 놀라움으로 커졌다.

“왜? 어째서? 그럼 왜 나는 당신의 파장을 느끼는 거죠? 왜 당신과 나는 공명하죠?”

“거짓말이라 여겨도 좋아. 왜냐하면 나도 모르기 때문에 그 질문에 대답해 줄 수 없어. 일단 난 너를 잡기 위해 계속 노력했어. 가능하면 절차를 지켜서 정식으로 널 체포하려 했지. 그게 모두에게 좋으니까. 하지만 나는 시간이 없고 결국은 네가 이겼어. 그러니 이제부터 난 절차 밖의 수단으로 갈 수밖에. 범인에게 직접 자수해달라고 부탁하는 식으로.”

“보통 그런 건 협박이라고 부르는데요.”

“아, 그렇지.”

나는 순순히 총을 내린 채 넣었다. 더 의심스러워하는 눈초리를 보며 말했다.

“원활한 대화를 위해 말해두자면 난 네가 아까 화장실에 간 사이 맥주에 독약을 넣었어.”

그렇게 말하자, 얀츠의 얼굴이 공포와 분노로 일그러지더니 나에게 달려들었다. 나는 일부러 피하지 않았다. 거의 목을 조르듯이 멱살을 잡은 얀츠가 으르렁거렸다.

“게슈타포식 설득 방법인가요? 해독제는? 날 협박하려면 해독제도 당연히 만들어 두었겠지.”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해독제는 없어. 필요 없기 때문이야. 네가 먹은 건 독약의 반쪽이야.”

무해하지, 라고 덧붙인다.

“짝독약이라고, 각각 다른 두 물질을 따로 섭취하면 몸에 아무 이상이 없지만, 그 둘을 한꺼번에 먹는 순간 죽게 되는 독약이 있지. 넌 짝독약의 한쪽만 먹었어. 나머지 한쪽은 여기 있지.”

나는 알약 형태로 뭉쳐 놓은 짝독약의 다른 한쪽을 꺼냈다. 쓴맛이 나기 때문에 일부러 나중에 먹는 약으로 남겨 두었다.

“넌 이걸 먹게 될 거야.”

“내가 왜 그럴 거라고 생각하지?”

“그러지 않으면 1만 5071명이 죽기 때문에.”

묘하게 구체적인 숫자에 얀츠는 잠시 멍한 표정이 되었다. 나는 갑자기 표정을 굳히며 얀츠를 노려보았다.

“아인자츠그루펜. 그들은 너 하나, 오직 너 하나를 잡기 위해 여기 바서슈와인의 1만 5천명을 죽일 거다.”

“뭐···?”

“1만 5천을 다 죽이면 그 중 하나에 너는 있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지. 내가 친위대 중에 한 명 있다고 말했는데도 계획은 진행할 예정이야.”

나는 용의자를 심리적으로 압박할 때 짓는 무시무시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네가 어떤 사람인지 몰라. 너는 오직 너 때문에 죽어갈 1만 5천을 짊어지고도 흔들리지 않는지, 네 손으로 직접 무고한 동족을 학살하면서도 과연 태연한 얼굴을 유지할 수 있을지. 일단 그들은 네가 동요할 거라 생각해. 혈액형이 A형인 친위대원만 철저히 감시해 그 중 주저하는 자를 잡아낼 거야.”

얀츠는 어느새 침대에 걸터앉아 있었다. 서 있지를 못하는 것이다.

“너는 선택했지. 다수의 목숨을 살리겠다고. 그리고 현직 게슈타포인 내가 보증하는데 잡혀서 고문당하기 직전에 죽는 게 훨씬 도움이 될 거야. 내가 일부러 고통 없이 죽는 약물로 신경 써서 골랐어.”

“만약···”

얀츠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만약 내가 그래도 거부한다면?”

무너진 게 뻔히 보이는 그가 애처롭기까지 했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사실 그쪽은 잘 생각해두지 않았어. 그만한 수의 죽음을 직접 짊어질 수 있는 괴물은 살아오면서 딱 한 번 봤거든.”

그녀의 에메랄드색 눈동자를 잠시 생각한 뒤, 말을 잇는다.

“에니그마는 1만 5천명의 목숨을 감수할 가치가 있을까? 그럴 지도 몰라. 한 나라를 패배시키는 데 1만 5천명이면 쌀지도 모르지. 하지만 이건 윗대가리들의 전쟁놀이와는 조금 다른 문제야. 네가, 정말로, 직접 짊어질 문제니까. 어쨌든 자유롭게 선택해. 그러라고 이러는 거니까.”

거짓말이다. 나는 합법적인 경로, 절차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그 모든 게 좌절될 경우 법을 어기고 악행을 저지르면서까지 결국 원하는 것을 이룬다. 내가 생각하는 얀츠의 최후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선택지를 준 건 얀츠라는 사람이 어떤 자인지 알고 싶었기 때문에.

나는 말했다.

“왜 에니그마를 훔쳤지?”

나를 노려보던 얀츠는 결국 털어놓기 시작했다. 인간인 척 하며 김나지움을 다니던 얀츠는 군인을 동경했다. 그리고 친위대의 차별이 극심한 것을 알기에, 안에 들어가서 바꾸어 나가겠다고 꿈에 부풀어 있었다. 기밀서고에서 일하던 나날은 조금 따분했지만, 훗날을 위해서라고 참았다.

갑자기 아인자츠그루펜이 되기 전까진.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죽여야 한다. 심지어 같은 인간일지라도 죽인다. 동료들은 희생자들이 자기가 묻힐 구덩이를 스스로 파게 하면서 낄낄거렸다. 잘린 머리를 들고 기념 촬영을 했다가 상관에게 혼나기도 했다. 기밀을 누설해서는 안 된다고.

군을 동경하던, 그리고 이상에 부풀어 있던 청년이 도이체스의 모든 것을 증오하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결국 그는 그의 신분에서 도이체스에게 가장 치명타를 먹일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그런 뻔한 이야기였다.

“숭고한 대의네.”

나는 심드렁한 어조로 말했다.

“어쩌면 1만 5천을 감수할 가치가 있을 지도 모르겠어.”

나는 총을 한 바퀴 빙글 돌리며 말했다.

“하지만 네가 자발적으로 협조할 이유를 나도 하나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

얀츠는 어디 한 번 말해보라는 듯히 팔짱을 꼈다. 나는 말했다.

“나는 도이체스의 적이다.”

그는 놀라지 않은 척 하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나는 말을 이었다.

“정확히 하면, 도이체스라는 국가엔 유감이 없어. 내가 적대하는 건 현 카이저다. 뭘 그리 놀라는 표정을 하고 있어? 자기는 에니그마 훔쳐서 망명하려고 했으면서.”

“첩자···?”

“아니지. 방금 말했잖아. 도이체스 그 자체에는 유감이 없다고. 내가 찾는 건 도이체스의 모든 역사서와 지도에서 지워진 사건이야. 직계 황손조차도 모르는 그 사건. 귀족 가문 하나가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지워진 사건. 아마 밝혀지면 황제가 하야하는 게 확실해질 정도의 사건.”

얀츠는 혼란스러운 표정이었다.

“아인자츠그루펜은 나도 이번에 처음 알았지만, 이 정도의 비밀조직이 황제 몰래 운영되는 건 불가능해. 적어도 이번 대 황제는 아인자츠그루펜을 계속 사용했다는 얘기다.”

“잠시만, 그럼 아까 ‘나에게 에니그마를 달라’고 한 건···!”

“맞아. 내가 훔쳐낸 그때의 기밀들을 해독하기 위해서. 얀츠, 사실 네가 그냥 첩자였으면 적당히 게슈타포에 넘겨버렸을 거야. 하지만 너의 목숨엔 너무 많은 게 걸려 있어. 네 적은 결국 카이저야. 이 모든 걸 만들어 낸. 카이저에 대한 복수는 내가 대신 한다. 넌 나에게 에니그마를 넘겨. 날 돕는 대가로 편안한 죽음을 주겠어.”

내가 독약을 싼 종이포장지를 그쪽으로 던지자 얀츠가 받았다.

“계획은 이래. 지금부터 넌 그 약을 먹고, 숨겨둔 에니그마를 꺼내 문서를 해독할 거야. 분량은 매우 적어. 그러니 밤 안에 끝낼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에니그마는 원래 숨겨둔 곳에 놔두고. 아침식사가 끝나면 나는 널 체포할 거야. 너는 그 후 한 시간 이내로 죽어. 딱 그때쯤 약효가 돌거든. 그러면 바서슈와인은 무사할 거야.”

만약 얀츠가 거부할 경우, 나는 이 자리에서 바로 얀츠를 쏴버릴 예정이었다. 이미 나의 비밀을 들은 사람이니까.

얀츠는 독약과 나를 바라보더니 결국 오열했다. 남이 들을까 봐 소리를 죽여서. 사람의 죽음과 괴물의 삶 중에서 택하라고 하면, 누가 선뜻 선택할 수 있을까.

아르노 얀츠는 알약을 삼켰다.

에니그마는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 숨겨져 있었다. 우리는 몰래 그것을 꺼내 가져온 뒤 밤을 새 가며 문서를 해독했다. 암호화된 문서의 제목은 이런 내용이었다. 얀츠가 물었다.

“Batiza Mannisks가 무슨 뜻이죠? 설마 이중 암호화?”

얀츠의 끔찍한 예상을 듣고 잠시 몸서리치며 대답했다.

“고대 게르만 족, 고트 족의 언어다. 직역하자면 더 나은 인간.”

나를 바라보는 얀츠의 시선에 왠지 부아가 치밀어 덧붙였다.

“왜, 알 수도 있지.”

“윤리와 사상에 이어 고대 게르만어까지 하다니··· 또 외국어 다른 것도 배웠나요?”

“고트어, !파라어, 현지인처럼 말할 수 있는 건 브리타니아어, 크라쿠프어··· 키예프어와 프랑크어··· 생활회화 정도만 가능한 언어는 몇 개 더 있고, 마력인공어까지 언어로 친다면, 나는 엘파와 기리트를 짜넣을 수 있어.”

“대체 마법학과는 왜 간 거예요?”

“나름 쓸만하다고. 게슈타포로 배치될 때 외국어 잘 하면 가산점이야.”

“하지만 그냥 배우고 싶어서 배웠던 거죠?”

“···응.”

나를 괴짜 보듯 하는 시선이 꽂힌다. 나는 화제를 돌렸다.

“작전 제목도 그렇고 굳이 고트 족의 언어를 썼다는 건··· 느낌이 좋지 않군.”

고트 족의 언어는 이제 학술적 가치를 넘어 순수한 게르만이라는 선전에 사용되고 있었다. 나는 이 문서가 어떤 내용을 말하려 할 지 감이 잡히기 시작했다.

표지의 나머지를 해독하자 이게 현 카이저의 승인을 받은 비밀 프로젝트라는 것이 드러났다. 그리고 이름 하나.

『총책임자 아인자츠그루펜 사령관 우나 브라운 여단지도자*』

(*소장)

“이게 무슨···!”

얀츠는 내가 평정을 잃은 것에 놀라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나는 방금 읽은 게 너무 충격적이어서 도저히 진정할 수가 없었다.

우나는 현재 친위대의 상급집단지도자*이다. 현 신분은 친위대 참모총장. 그만큼 카이저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어서, 우나의 행적을 조사하면 공백의 단서도 나올 것이라 생각했다.

(*대장)

그런데, 아인자츠그루펜이라니, 단순히 인종청소 부대가 아니었단 말인가? ‘더러운 피’를 학살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더 나은 인간’을 만들기 위한 무엇을 하는?

황급히 다음 장을 해독했다.

『본 실험은 인류가 한 단계 더 진보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하필 중요한 내용들이 이것저것 훼손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결국 실험은 실패하고 ······는 특수재난구역으로 모든 국민의 접근을 차단한다.』

『감응력을 고려해 실험체는 전부 여자아이로 선택. 다음은 최종 단계까지 생존한···』

그리고 명단이 있었다.

이라만 압트

게르발트 로렌츠

이다 카우프만

프리다 아커만

기오르기아 메츠거

클레이튼 피터

그들에 대해서는 딱 한 줄이 적혀 있었을 뿐이었다.

『전원 소멸.』

그리고 그들을 지칭하는 용어가 있었다.

『드라헨킨더』

용의 아이.

이 이상의 내용은 없었다.

“이게 뭐죠···?”

그러나 똑똑한 그의 두뇌는 모든 정황을 끼워 맞출 수 있을 것이다.

나 또한 그럼에도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말해본다.

“13년보다 훨씬 이전, 그때에도 아인자츠그루펜이라는 조직은 존재했다. 당시 책임자는 우나 브라운. 그리고 그들은 더 나은 인류를 만들기 위한 실험을 했으며, 그 여자아이 실험체들을 드라헨킨더라고 불렀어.

실험은 실패했고, 모종의 이유로 특정 지역 전체가 특수재난구역이 되어서 영원히 출입이 끊기게 되었어. 출입을 통제하기만 하면 궁금해 하는 사람이 생길 테니 아예 그 실험, 그 지역, 그 시간이 존재했었다는 모든 증거를 지워 버린 거야.

그리고 나는 그 모종의 재앙에서 살아남았다. 정확히는 우나가 날 살려 준 거라고 봐야겠지.”

“잠시만. 참모총장님과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에요?”

“내 어머니야.”

“뭐라고요?”

“조용히 해. 거짓말이니까. 내 진짜 어머니가 아니야. 아무튼 그녀는 최후의 생존자인 나를 죽이지 않고 데려갔어. 그리고, 그리고···”

나는 갑자기 밀려오는 두통에 머리를 감쌌다. 뇌를 찌르는 듯한 불쾌한 통증이 마구 날뛴다. 뇌는 통증을 못 느끼는 기관인데 왜 쓸데없는 생각을.

필사적으로 노력해 봐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얀츠가 괴로워하는 나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당연히 다정하게 토닥이는 것일 리가 없으니 불쾌함을 표시해보지만 얀츠는 눈을 감은 채 가만히 있었다. 잠시 후에 얀츠가 말했다.

“누가 당신 기억에 손을 댔어요.”

“···뭐?”

“내가 여자가 아니라서 자세히 아는 건 불가능한데, 방금 갑자기 머리에서 마법의 파장이 느껴졌어요. 나는 마법을 쓸 수 있는 존재고 그 중에서도 특히 정교하게 마법을 쓸 수 있는 부류죠.”

얀츠가 완벽하게 도이체스 인간과 똑같아 보이는 손을 흔들며 말을 이었다.

“용의 마법은 우리와 다르니 여자만 감응할 수 있지만··· 이런 거예요. 용의 마법에 대해 여자는 소리를 완전히 들을 수 있고 남자는 청각장애인인 셈이에요. 청각장애인이니 당연히 소리를 못 듣지만요, 오케스트라 맨 앞좌석에 앉으면 그 소리들이 내뿜는 진동, 음압 그 자체는 ‘느낄’ 수 있어요. 난 방금 당신이 뭔가를 기억하려는 순간 머리에서 갑자기 볼륨이 높아진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누가 마법적인 조치를 한 거예요.”

나의 기억은 부자연스럽게도 10살 이전을 칼로 뚝 자른 듯이 사라져 있다. 장면은 전혀 기억나지 않으며 기껏해야 기억할 수 있는 건 아주 단편적인 정보들. 보통 사람들이 5세 언저리부터 기억하는 것을 고려하면 이상하다.

“생존자··· 생존자가 더 있다면······”

그러나 나의 눈길은, 『전원 소멸』이라는 글귀에서 멈추어 버리는 것이다.

모든 암호를 해독해 내고 에니그마를 제자리에 갖다 놓은 시간은 새벽 4시였다. 앞으로 두세 시간 정도 더 눈을 붙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둘 중 그러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침이 되고 얀츠가 최후의 식사를 하는 동안 나는 친위대원을 대동한 채로 에니그마를 찾아냈다. 그 뒤 몇 가지 말장난을 동원해 정상적인 추리처럼 보이게 한 뒤 얀츠를 체포했다. 얀츠는 순순히 잡혔다. 그는 이 광경을 보러 온 프리몬트 연대지도자에겐, 다시 아르노 얀츠의 얼굴로 돌아가 비웃었다. 너희들은 전부 괴물이라고. 그토록 핏줄을 자랑스러워 해봐야 소용없다고. 그들은 사람 이하의 존재이니까.

얀츠는 주위의 아인자츠그루펜에게 한 대 맞으면서도 멈추지 않았다. 그들의 얼굴을 이상하게 일그러뜨린 채로 변신하면서 계속 그들을 조롱했다.

또 얀츠를 구타하려는 움직임이 보이자 나는 제지했다. 다들 불만스러워하는 기색이었지만 게슈타포에 넘길 때까진 온전한 상태여야 한다고 설명하자 납득했다.

그러나 이렇게 떠드는 사람을 끌고 갔다간 이목을 끌기 때문에 나는 재갈을 물렸다. 재갈을 물리기 직전 얀츠는 뭐라고 속삭였다. 내가 전혀 모르는 말이었다.

말을 할 수 없게 된 얀츠는 내 눈을 바라보았다. 나도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수백 마디 말보다 더 많은 걸 주고받은 우리는 동시에 시선을 뗐다.

호송되는 얀츠를 보며, 나는 프리몬트 연대지도자에게 운을 떼었다.

“이젠 작전지역으로 떠나십니까?”

“···왜 그럴 거라고 생각하지?”

“그 편이 더 효율적이니까요. 국내 담당하는 분들은 따로 있다고 들었고.”

나는 효율에 강세를 두어 말했다. 프리몬트 연대지도자는 끙 하고 앓는 소리를 내더니, 결국은 계엄을 해제하고 떠날 채비를 하기 시작했다. 이런 부류의 사람은 자기 자신의 말이 되돌아오면 부정하지 못하는 사람이니까.

1만 5천을 겨눌 뻔 했던 칼날의 끝은 다른 곳으로 향했다. 지금의 학살을 막는다 해도 그들은 크라쿠프로 가서 또 다시 학살을 벌일 것이다. 어쩌면 국내를 담당하는 아인자츠그루펜 연대가 와서 바서슈와인을 쓸어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이번만은 막아냈다. 나에겐 그것으로 충분했고, 그것이 나의 최선이었다.

이 도시를 떠날 모든 준비를 마치자 아르노 얀츠가 심장마비로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들이 내가 상황을 봐주길 바랐지만 나는 다음 사람에게 맡기라고 하고 떠났다. 나는 또한 루프트바페이기도 하다. 더 이상 이 도시에 묶여 있을 수는 없었다.

그것은 검출이 거의 불가능한 독약, 혼수상태로 만들어 의식을 날린 뒤 심장을 멈춰 버린다. 죽음을 앞둔 그는 무엇을 생각했을까? 그는 죽음 앞에서 어떤 모습이었을까? 나와 눈을 마주할 때처럼 의연할 수도 있었다. 짝독약의 마지막 한 쪽을 받아들 때처럼 괴로워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어느 쪽이든 그는 사람답게 죽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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