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리고 너는 용이 되어-40화 (40/102)

2권 4장. 검은 제복의 악마-(2)

페르난도 바더를 깨운 것은 난폭하고 급작스러운 통증이었다.

희뿌연 시야가 서서히 자리를 잡아갈 때쯤, 그는 앞에 서 있는 게슈타포가 자신을 깨우기 위해 뺨을 한 대 친 것을 깨달았다.

“정신이 드셨나요?”

입 안이 찢어질 정도로 세게 후려쳐 놓고선 목소리는 상냥하다. 바더가 죽일 듯이 노려보자 그가 말했다.

“진정하시고요. 협조만 잘 해주시면 아무 일 없을 겁니다.”

바더는 손이 의자의 팔걸이에 묶여 있었다. 아까 게슈타포가 발로 차 쓰러뜨린 의자와는 다르게 바닥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어서 덜그럭거리지도 않았다. 손도, 발목도, 모두 의자와 한 몸이 된 것처럼 고정되어 있다.

그런 그에게 게슈타포가 바짝 다가선다. 그로 인해 드리워진 그늘이 바더를 압박했다.

바더는 자기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어쩔 수 없었다. 지금 그의 눈앞에 있는 자는 게슈타포, 검은 옷의 악마였다. 선량한 일반 시민으로 살아온 바더는 게슈타포와 엮일 일이 하나도 없었지만, 적어도 그들의 악명만은 희미한 소문으로 접할 수 있었다.

“기억해요? 그자의 얼굴을?”

“몰라.”

“기억나지 않아요?”

그는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평범한 공구였다. 집에서 쓰는 것과 하등 다를 바 없는 펜치. 하지만 그가 들고 있으니 그 어떤 칼보다도 무시무시한 흉기처럼 보였다.

바더가 그 펜치로 무슨 끔찍한 일이 벌어질지 오만 상상을 하는 동안, 그는 예고 없이, 아주 익숙한 손놀림으로 바더의 엄지손가락을 한 손으로 잡아 누르더니 펜치로 바더의 손톱을 뽑아 버렸다.

그 순간 바더는 잠시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이해하지 못했다. 기도가 순간적으로 닫히며 둔중한 숨소리를 냈다. 그렇게 숨을 멈춘 지 몇 초, 바더의 내장 깊은 곳에서 절규가 기어나오기 시작했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규칙은 간단해요, 바더 씨.”

그가 바더의 오른쪽 엄지손톱을 탁자 위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나는 질문하고, 당신은 대답해요. 답을 틀릴 수 있는 기회는 열 번이에요. 아니, 이제 아홉 번 남았군요. 자, 바더 씨. 이제는 기억나죠? 그 사람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나요?”

바더는 짐승처럼 헐떡였다. 도저히 대답할 수가 없었다. 말이 언어가 되어 나오지 않았다. 그렇기에 바더는 다른 방식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퉷.

바더가 뱉은 침이 게슈타포의 뺨에 맞았다. 천천히 볼을 타고 흘러내려온다. 그는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 닦았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화를 내지도 않았다. 그저 아까와 같은 표정으로 바더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소문은 들었다. 하지만 어떻게, 그리도 간단하게, 그토록 간단하게···

“뭘 걱정하는지 너무 뻔히 보여서 알려드리지만, 다시 재생시켜 드립니다.”

그가 가리킨 곳에는 의료용 용병기가 하나 있었다.

“물론 뽑을 게 하나도 없어질 때 재생해 드릴 거지만요. 자, 다시 질문을 하죠. 그 전에 지혈을 좀 해드려야 하지만.”

“하,하지 마, 하지 마!”

그가 무엇을 하려는지도 생각하지 못한 채 거부했다. 본능적으로 거부했다.

“고작 손톱 하나라도 계속 방치하면 위험하니까.”

그는 그렇게 말하며 다른 탁자 위에 놓인 걸 집어 들었다.

휴대용 토치였다.

방아쇠를 당기는 딸깍, 소리가 나자 조그마한 불이 타오르며 상처 부위를 지졌다. 날름거리는 화염이 피부 조직을 손상시키고 혈관은 오그라들었다. 살이 타는 역겨운 냄새가 스멀스멀 피어난다. 그러는 동안에 서서히 피는 멎기 시작한다.

“으아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악!!”

“하하, 참 신기하죠? 이토록 엉망진창으로 해놓아도, 하루 안에만 처치하면 원래 손가락처럼 말끔하게 재생할 수 있어요. 마법이란 게 정말 대단하지 않아요?”

그는 재미 삼아 잠자리의 날개를 떼는 아이처럼 말했다. 그 어조는 계산된 것이었고, 그가 예상한 것과 한치도 벗어나지 않은 범위 내에서 바더를 공포에 질리게 하는 데 성공했다.

고작 손가락 하나였다. 손가락 하나를 불태운다고, 이토록 큰 고통이 기다리고 있을 줄은 몰랐다. 그러면 앞으로 얼마나 더 큰 고통이 그를 기다리고 있을까. 손가락 아홉 개만큼의 고통이 더 있을 것이다. 눈앞의 게슈타포라면, 저런 사악한 존재라면, 그 뒤에도 더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랐다.

딸깍, 토치의 불이 꺼지고, 게슈타포는 다시 물었다.

“그 사람 얼굴, 기억나죠?”

바더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이런 고통을 참을 수는 없었다. 앞으로는 더한 고통이 기다리겠지.

그럼, 차라리 죽어버리는 게.

아직 고통이 덜할 때 죽는 게.

혀를 깨무는 바더를, 게슈타포는 냉정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바더에게 그가 말했다.

“선생님, 소설을 너무 많이 보셨어요. 사람은 그렇게 쉽게 죽지 않아요.”

그는 손에 이상한 장갑을 꼈다. 그것은 장갑이라기보단 손등갑주나 손목보호대라고 불러야 적합한 것이다.

그가 마법을 발동했고, 부분적으로 돌고래의 것으로 변한 이로 꿰뚫린 혀는 빠른 속도로 수복되기 시작했다. 그는 제대로 피를 멈춰 줄 수단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그런데도.

고통이 사라지는 동안 그가 말했다.

“이쯤되면 얀츠가 당신에게 무슨 말을 해주었는지 정말 궁금하군요. 도대체 무엇이길래 자신의 목숨을 버려서까지 지키려 할까요.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일까요?”

그는 다른 장갑으로 바꿔 끼었다. 제국의 낙인이 있는 것으로 보아 용병기였다.

“그래도 자살은 안 돼요. 안 되죠.”

바더가 그 말을 이해하기도 전에 그의 묵직한 주먹이 배에 꽂혔다.

“커헉!”

딱 죽지 않을 정도의 일격. 그것이 무방비한 바더의 몸에 사정없이 내려꽂힌다. 그러기를 장장 20분. 무려 20분 동안 게슈타포는 쉬지 않고 계속 바더를 두들겨 팼다. 기절하면 수조에 머리를 처박아 깨우고 물고문도 한다. 질식 직전에 끌어올려지면 다시 구타. 바더에게 영혼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육신이 망가짐과 동시에 서서히 부서지기 시작했다.

20분 뒤, 구타가 멈췄다. 게슈타포는 숨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채였다.

경련하며 침을 질질 흘리는 바더에게 그가 다시 묻는다.

“얼굴, 기억나요?”

“모···모릅니다······ 제발······”

“틀렸어요.”

냉엄한 선언과 함께, 그가 다시 펜치를 집어든다. 그러나 아까의 날랜 동작과는 다르게, 이번에는 느릿느릿 다가온다. 그를 잡아먹으려는 사자처럼. 펜치의 한쪽 끝을 바더의 검지손톱에 걸면서, 그가 거의 속삭이듯이 묻는다.

“얼굴을 봤지요?”

바더가 공포에 질려 벌벌 떨기만 하자 그가 펜치를 살며시 닫았다. 아직 힘을 주지는 않았다.

그의 눈동자, 사냥꾼의 샛노란 눈동자가 그를 무자비하게 파헤치듯 응시한다. 그 눈동자는 예정된, 그러나 새롭게 끔찍할 사태를 예고하고 있었다.

그러나 바더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또 다시 통증, 또 찾아오는 작열감. 그러나 그는 기절하는 것조차도 용납해주지 않는다.

그는 손톱 두 개가 사라진 바더에게 말했다.

“이따 봐요.”

그러더니 그가 무슨 마법을 부린다. 바더는 저항할 틈도 없이 순식간에 잠들었다. 그래, 차라리 이게 나을지도 몰라. 잠들면 이 고통은 없다, 잠들면···

그러나 잠은 짧았다.

다시 눈을 뜬 바더의 앞에는 여자가 한 명 있었다. 그의 얼굴을 스폰지로 닦아 주다가 바더가 눈을 뜨자 살짝 놀란 듯하다. 안에서 벌어진 일을 전부 보았기에 그녀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바더는 다시 취조실로 옮겨져 있었다. 다시 수갑이 앞으로 구속하고 있어서 아까보다는 비교적 자유롭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도망갈 수 없게 발만은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다.

바더가 눈을 뜨자 인간의태 돌고래는 맞은편에 앉았다. 여자는 만신창이가 된 바더에게 말했다.

“새로 조서를 쓰라고 하세요.”

그러나 연필과 종이를 들고 있는 건 저쪽이다. 바더가 그 점을 지적하자 여자가 말했다.

“죄송해요. 위험하다고, 허락해 주지 않으셨어요. 불러 주시면 제가 받아쓸게요.”

바더는 묵묵히 구술했다. 아까 말했던 내용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빠르게 옮겨 적던 그녀가 말했다.

“배고프시죠? 일단 식사를 가져왔어요.”

그러면서 그녀가 꺼낸 건 식사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유동식이었다. 그러나 배가 고픈 건 사실이었기에 그는 그 물통을 밀쳐내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미안하지만··· 내게···”

그는 너무 맞은 나머지 팔을 들어 올릴 수 없었다.

“좀··· 먹여 주지 않겠소······.”

그녀는 망설임도 없이 일어섰다. 그들이 보통의 인간들이었다면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수갑을 찼다지만 앞쪽으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고, 그러면 그녀를 인질로 잡을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그들은 돌고래였다.

동족에겐 절대로 그런 짓을 할 수가 없다.

동족이라면.

그녀가 그의 턱을 받치고, 물통을 기울여 안에 있는 유동식이 천천히 그에게 넘어가도록 했다. 의외로 맛은 괜찮았다. 돌고래의 입맛에 잘 맞추었다. 그걸 깨닫자 어쩐지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그가 한 병을 다 비우자, 그녀는 새로 작성한 조서를 챙겼다. 그녀는 나가기 직전, 여러 감정이 뒤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이해해요. 왜 그렇게까지 하는지. 하지만 괴로워요. 당신이 고통 받는 걸 보는 게 너무 괴로워요.”

돌고래는 공감능력이 무척이나 풍부한 종족. 그렇기에 인간이라는, 사는 터전조차 전혀 다른 생물을 이해할 수 있고 그들 자신들끼리는 끊어낼 수 없는 강력한 유대로 뭉친다.

“그냥 말해주시면 안될까요? 제발요. 다시 쓸 수 있어요. 어차피 당신은 결국 입을 열게 될 거예요. 제발 더 이상 고통 받지 말아요.”

그녀의 호소는 진심이었다. 그러나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하나의 진실을 알아버렸다. 이 제국은 정말로 끔찍했다. 존속할 가치가 없었다. 그리고 제국에게 위협적인 행동을 하려는 그 청년이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그 고통을 감내할 수 있었다. 다시 그가 고문을 시작해온다면 생각이 달라질지도 몰랐지만, 적어도 지금은 그랬다.

그녀가 나가고, 얼마 안 가 다시 그가 들어왔다. 그는 종이 두 장을 들고 있었다. 바더가 처음 쓴 조서, 그리고 방금 쓴 조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해봤는데, 세 번째 문단의 내용이 이전과는 다르더군요. 뭘 더 숨기고 있는 거죠?”

갑자기 암전하는 시야. 눈을 떴을 때는 다시 그 끔찍한 방 안이었다.

이번에도 게슈타포가 뺨을 때려서 깨어났다. 고개가 휙 돌아간 채 멍하니 바닥을 바라보자, 갑자기 잡히는 멱살. 게슈타포는 다시 손을 치켜들고, 다시 바더의 뺨을 때렸다. 그리고 다시, 또 다시, 또 다시. 얼굴의 살갗이 터지고 진피층이 찢어질 때까지, 흔들거리던 어금니가 하나 빠질 때까지, 입 안이 피범벅이 될 때까지, 바더가 제발 그만하라고 애원할 때까지.

바닥에 피가 섞인 침을 뱉는 바더를 내려다보며 그가 말했다.

“얼굴 기억나요?”

“모,몰라요.”

하지만 말할 수는 없다. 절대 말할 수는 없다.

“정말요?”

이번에 그가 꺼낸 건 군에서 지급해 준 게 분명한, 날이 시퍼렇게 선 단검이었다. 바더는 눈을 질끈 감았다. 게슈타포는 바더의 어깨를 콱 찔렀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

“꽤나 위험한 자리에요. 중요한 관들이 여럿 지나거든요. 하지만 잘 찌르면 꽤나 효과적인데, 왜냐하면···”

그가 찌른 손에 힘을 주더니 칼을 살살 비틀기 시작했다. 근육의 틈을 억지로 벌리고, 뼈를 살살 긁는다. 바더의 절규가 방을 뒤흔들었다. 방음장치 너머에 있는 라인스 중위에게도 들릴 정도였다. 그는 목이 쉬어서 더 이상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때까지 비명을 질렀다.

“기억나요?”

바더는 대답할 수 없었다. 그는 고통 때문에 기절했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취조실 안. 다시 여자가 와서 조서를 받아 적는다. 이젠 한층 더 진심이 된 호소는 덤이다. 그러나 바더는 아까와 거의 똑같은 내용을 부를 수밖에 없었다.

다시 들어온 악마는 다섯 번째 줄이 저번과 다르다며 또 그를 ‘그 방’으로 끌고 들어갔다.

그는 바더의 머리에 비닐봉투를 씌웠다. 목이 살짝 졸릴 정도로 단단히 밀봉한다. 바더가 숨을 들이쉴 때마다 비닐이 조여들어 피부를 덮었고, 숨을 내쉴 때마다 빵빵하게 부풀어 올랐다.

하지만 새로운 공기는 들어오지 않는다.

비닐 내부의 이산화탄소 농도가 급격히 높아지고, 바더는 괴로워하기 시작했다.

죽는다. 이번에는 정말로 죽는다. 그런 공포가 바더를 꿰뚫었다.

질식.

바더의 눈이 까뒤집어지기 직전, 갑자기 비닐이 벗겨진다. 바더는 쿨럭거리며 공기를 맛보았다. 눈물을 줄줄 흘리며 그를 올려다보자 다시 비닐을 든 손이 다가온다.

“안 돼.”

힘없이 중얼거려 보지만 무자비한 손은 다시 바더의 머리에 비닐을 씌운다.

그러기를 다섯 번, 바더는 이제 환각까지 보았다. 끅끅거리는 바더에게 다시 묻는다.

“얼굴 기억나요?”

“모릅,모릅니다.”

바더는 다시 손톱이 뽑혔다.

또 다시 눈을 뜨니 취조실 안, 또 다시 반복되는 조서, 또 다시 반복되는 트집, 그리고 고문.

일곱번째 손톱이 뽑혔다. 앞의 여섯 번을 견뎌냈다고 해서 이번을 견딜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것은 언제나 새로운 고통이었고, 언제나 새로운 공포였다. 아니, 겪었기 때문에 아는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끔찍한 지. 얼마나 영혼을 부숴버리는지. 당할 때마다 두 번 다시는 견딜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가 조서를 위해 다시 바더를 잠재우기 직전, 바더가 묻는다.

“어째서···”

게슈타포의 샛노란 눈동자를 바라본다.

“어째서, 너는 동족에게 이렇게 잔혹할 수 있는 거지?”

바더는 그가 처음 들어온 순간부터 알아보았다. 몸이 반응했다. 그 여자와 마찬가지로, 반역자 아르노 얀츠를 처음 보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가 말했다.

“나는 인간입니다.”

“거,거짓말.”

“믿고 안 믿고는 당신 자유지만요. 정말 눈물겹군요, 돌고래들의 동족 사랑이란.”

다시 잠들었다. 다시 깨어나서 조서를 구술한다. 이제 여자는 거의 애원조가 되어 바더에게 말한다.

“제발요. 제발 그만둬요.”

그러나 바더는 꿋꿋이 앵무새처럼 똑같은 말을 반복할 뿐이었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선 패배감이 몰려온다. 지금까지 버틴 것은 거의 기적이다. 다음 고문까지 견뎌낼 수 있을까. 다음번도 견뎌낼 수 있을까? 결국 전부 말해버리지 않을까. 그러면 내가 겪은 그 고통은 무슨 의미가 있나?

“당신처럼 끈질긴 사람에게는 사실 전기고문이 최고인데 말예요,”

그는 오늘의 메뉴라도 말하는 것처럼 말을 이었다.

“여긴 그럴 수 있는 시설이 없네요. 전기는 섬세해서 제대로 다루지 않으면 죽거든요.”

죽여, 차라리 죽여. 이 고통에서 끝내 줘. 제발.

이번에 그는 주전자, 아까의 그 주전자를 기울여 얼굴에 뜨거운 물을 부었다. 살이 익으며 바더의 회청색 피부를 분홍색 고기로 만든다. 뜨거운 물은 눈꺼풀을 손상시켰다. 입술과 점막을 헤집어 놓는다.

그리고 바더의 얼굴을 문지르는 커다란 손.

“끄아아아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아악!!! 으윽,으윽,으으으으으으으!”

알갱이가 거친 소금을 손바닥에 잔뜩 묻힌 채, 적어도 2도 화상 이상을 입은 피부를 세게 문지른다. 삼투압에 의한 통증이 바더를 무자비하게 헤집었다. 눈앞이 번쩍번쩍했다. 착란을 일으키는 뇌가 시각중추에 이상한 신호를 보냈다. 바더는 무너져 내렸다. 이제는 기절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그가 각성 마법을 걸어놓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한참을 괴로워하던 바더는 고통이 서서히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게슈타포가 재생마법을 써주고 있는 것이다.

“조서 쓸 때 그 얼굴이면 흉측하니까요.”

바더는 덜덜 떨고 있었다.

“이런 얘기가 있어요. 우리는 검은 제복의 악마. 그리고 친위대 지하실의 의사는 백의의 악마. 그럼, 당신을 상처 입히고 치료까지 해주는 나는 무엇일까요? 회색?”

딱히 대답을 바란 질문은 아니었던지 그는 그 직후 다시 바더를 잠재웠다.

몇 번째일지 모르는 조서를 구술하는 바더는 눈에 띄게 위축되어 있었다. 그의 굳건한 신념조차도 이제 흔들리는 것 같았다.

이젠 더 이상 뽑힐 손톱도 없었다. 이제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그는 재생해 주겠다고 했다. 그는 손톱을 전부 재생해 주고, 이 모든 과정을 또 다시, 또 다시! 반복하려는 것일까? 하지만 견뎌야 했다. 쇼크로 죽는 한이 있어도 견뎌야 했다.

이종족, 이민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학살하는 나라는 죽어야 했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이전과는 조금 달랐다. 그는 비스듬하게 앉아 있었다. 뒤로 기울인 치과의자에 앉은 것과 비슷했다. 그러나 고개는 뒤로 젖혀져 있었다.

몸과 목과 손과 다리가 결박되어 있다. 고개를 돌릴 수조차도 없었다. 입을 다물 수도 없었다. 겸자로 입이 강제로 벌려져 있었다. 악마가 말했다.

“일반인이실 텐데 이 정도까지 버티셔서 정말 놀랐어요.”

그가 바더의 눈을 바라본다.

“전쟁 직전에 독종으로 소문난 조직원을 제가 작업한 적이 있었어요. 그가 입을 여는 데 얼마나 걸렸게요? 한 시간이었어요. 그땐 전기고문이 가능했긴 했지만요. 전 솔직히 한 손 만에 끝날 줄 알았어요.”

그의 시선이 바더의 양 손, 모든 손톱이 뽑히고 불에 지져진 살덩이에 닿았다.

“나도 살짝 피곤하네요.”

이 자는 미친 게 아닐까. 그 오랜 시간을 고문해놓고 이제 와서 조금 지친다고 한다니.

“아마 그 상태로 3일만 내버려두면 당신은 무엇이든 다 말할 거예요.”

같은 자세로, 고개도 돌리지 못하고, 꼼짝 않고 3일. 이미 붕괴한 정신으로는 버틸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시간이 없어서요. 당신은 상상도 못하겠지만, 나도 나름의 사명을 가지고 임하거든요. 그 많은 사람이 죽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으니까.”

에니그마가 유출되고, 그로 인해 패배할 도이체스에 대한 이야기인가. 바더의 눈에는 저 악마가 암세포를 유지하려 애쓰는 멍청이처럼 보였다.

“그래서 좀 빠른 방법을 쓰겠어요.”

그는 주사기를 하나 들고 왔다.

바더는 미친듯이 버둥거렸다. 저렇게까지 말한다. 저게 최후의 수단이라면, 그동안 겪은 것에 비하면 과연 무엇일지.

바더의 저항이 부질없게 주사가 놓였다. 일반적으로 맞아 보았던 주사보다 많이 아팠다. 하지만 그동안 겪은 고문에 비하면 깃털이 내려앉는 수준. 악마는 돌아서서 무언가를 뒤적거렸다. 바더는 곧이어 찾아올 것,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엄청난 공포를 기다렸다. 하지만 몇 분이 지나도 바더는 멀쩡했다.

의아해하는 바더에게, 악마가 설명한다.

“평범한 항생제에요. 물론 조금 아팠겠지만, 그건 내 잘못이 아니에요. 용매의 제형이 제형이다보니.”

그렇게 말하는 악마의 손에 들려 있는 건 알코올로 꼼꼼히 소독한 몽키스패너였다.

이제 악마가 무엇을 할 지 알아차린 바더는 두려움에 떨며 바둥거렸다. 하지만 악마는 착실히도 묶어 놓았다.

바더는 무력했다.

“여기서 이렇게 만나 유감이에요, 바더.”

강제로 벌려진 입 안으로 차가운 스패너의 금속이 닿는다. 그것이 이리저리 움직이더니, 이 하나를 단단히 잡는다.

무자비한 스패너는 생니를 그대로 뽑았다.

눈앞이 새하얘질 정도의 고통.

역겨운 피가 목구멍에 고인다. 억지로 삼키자 꿀꺽, 하는 굉장히 큰 소리가 난다. 눈물과 콧물을 흘리며 짐승처럼 흐느끼는 바더에게 악마가 말한다.

“다시 말하지만, 정말 유감이에요, 바더.”

그러더니 악마는 무언가를 꺼냈다.

기역 자로 구부러진 금속이었다. 바늘처럼 가느다랬다. 그는 그런 금속을 두 개 꺼내 양손에 쥐었다. 악마의 그림자가 바더에게 드리워졌다.

악마는 섬세한 치과의사처럼 그 기구를 움직였다. 그 금속들은 입 안에 들어와 아까 뽑힌 자리를 파헤쳤다.

단순히 상처를 희롱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 바늘 같은 기구들은 정확히 치아 신경을 마구 찔렀다.

바더의 절규는 이제 도저히 살아 숨 쉬는 사람의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러는 동안에도 악마는 착실히 치아 신경을 난폭하게 찔렀다. 보통이라면 진작에 쇼크로 사망했을 테지만 각성마법이 바더의 목숨을 붙잡고 있었다. 각성마법이, 바더가 정신을 잃지도 못하게 하고 있었다.

치아 신경이 자극되며 울리는 저릿저릿한 통증이 턱과 뇌를 뒤흔들었다. 바더는 온몸을 경련했다. 그러나 치아 신경을 파내는 손길은 멈추지 않았다.

영원 같은 고문이 끝난 뒤, 악마는 바더를 풀어 주었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바더의 손도, 발도, 몸도 구속되지 않았다. 바더는 처음으로 온전히 있었다.

그러나 바더는 일어나지 못한다.

바닥에서 신음하며, 피와 침을 질질 흘리는 바더에게 악마가 묻는다.

“기억나요?”

“네, 네! 기억납니다! 제발, 제발 살려주세요. 뭐든지 하겠습니다.”

“뭐든지?”

거의 울부짖으며 긍정하자, 악마가 말한다.

“그럼 이제, 사진을 보여주면 그 중 누가 반역자인지 알아낼 수 있겠죠?”

바더는 게슈타포의 발치에 엎드려 애원했다. 반역자이든 뭐든, 저 고문을, 고통을 다시 겪지만 않는다면, 이 나라가 무엇이든, 이 바서슈와인에 주둔한 특수부대의 정체가 무엇이든, 아무 상관없다.

그는 그저 저 게슈타포에게 복종하는 돼지일 뿐이었다.

바더는 손을, 손톱이 전부 뽑혀 나가고 불타버린 숯 같은 그 손으로 게슈타포의 바지자락을 붙들었다.

게슈타포가 몸을 숙여서 손을 들었다. 그는 경련하듯 몸을 떨었다. 그러나 그 손은 단지 바더의 엉망진창이 된 얼굴을 닦아줄 뿐이었다.

“협조 감사합니다.”

떨림이 잦아들자 바더는 고개를 들었다. 역광이라 어두웠지만 게슈타포의 얼굴이 똑똑히 보였다.

···그리고 그의 얼굴은—————

*

우리는 바더를 다시 취조실로 끌고 갔다.

라인스 중위가 다시, A형 친위대원의 사진을 탁자 위에 늘어놓았다. 그러는 동안 바더는 쉴 새 없이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기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 중얼거렸다. 극도의 고문으로 정신이 망가진 자에겐 흔히 있는 일이기에 우리는 너무 헛소리 같은 자백은 적당히 걸러 들었다.

그렇게 해서 바더가 가리킨 사진이 있었다.

라인스 중위는 그 사진을 경악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우리가 처음으로 그를 싸늘한 눈초리로 내려다보자, 바더가 소스라치며 말했다.

“믿어주십시오! 이 자입니다! 제발, 제발, 거짓말이 아닙니다!”

그러더니 바더가 꿇어 앉아 신발이라도 핥을 기세로 매달린다. 우리는 발을 재빨리 치우며 짐짓 떠본다.

“다시 들어가고 싶어요?”

그러자 바더가 발작한다. 라인스 중위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소···아니 최상급지도자······”

이 지경까지 와서 거짓을 말할 수는 없다. 물론 방금 바더가 지껄인 허무맹랑한 자백이 있긴 했지만, 이런 간단한 일에서 속일 수는 없다.

바더가 가리킨 것은 A형 혈액형을 지녔다고 아마 검사관을 속였을 아르노 얀츠의 사진이었다.

바더를 응급실로 보낸 뒤, 우리는 현장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라인스 중위에게는 취조실과 대기실 청소만 시켰다. 항상 이렇게 뒤처리가 귀찮다. 우리는 고문실의 피를 혼자서 열심히 닦아내었다.

하급돌격지도자 시절 늘 해봤던 일이라 우리는 순식간에 청소를 끝냈다. 매직미러 너머 대기실에 멍하니 앉아 있던 라인스 중위의 시선이 문을 열고 나오는 우리를 좇는다.

“진짜 철저한 녀석이야. 드루드의 얼굴로 도망치다가 사람을 만나야 할 때가 되니 바로 얼굴을 원래대로 바꿔버렸어.”

바더의 고통은 정말 허무한 것이 되어버렸다. 우리는 ‘게슈타포의 상자’를 들며 말했다.

“슬슬 가자, 라인스.”

“어떻게···”

라인스 중위가 힘겹게 입을 뗐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그 말에 대기실엔 잠깐 침묵이 내려앉았다.

라인스 중위는 정말 배신감이 어린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고문실과 취조실은 다르다. 방음장치는 되어 있었지만 정식으로 고문실로 설계된 곳이 아니었기에, 마음만 먹으면 우리 모습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보지 말라고, 우리의 모습을 보지 말라고 미리 당부했었다. 그러나 라인스는 결국 보았던 모양이다.

결국 이렇게 되고 말 일이었지. 결국은.

“나는 게슈타포야.”

오늘따라 이 단어가 정말 무겁게 들렸다.

“그 점은, 미리 알고 있지 않았어? 멋대로 기대했다가 실망하지 마.”

“아뇨, 그건 각오했어요.”

의외의 말에 라인스 중위를 바라본다.

“그건 각오했다고요. 소령님 혼자서 고결할 거라고 생각 안 했다고요. 그랬다면 거기서 최상급돌격지도자까지 올라갈 수 없었을 테니까. 내가 알고 있는 인간쓰레기들과 같은 짓을 할 사람이라고, 당연히 그랬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라인스 중위는 눈물이 고인 눈으로 말했다.

“그런데 왜, 어째서, 당신은, 거기서.”

라인스 중위의 그 다음 말은, 우리의 머리를 망치로 한 대 후려갈긴 것처럼 묵직했다.

“웃을 수가 있죠?”

“뭐···?”

“어째서 그렇게 웃을 수 있냐고요.”

비틀거릴 뻔했다. 그런 우리에게 라인스 중위는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냈다.

“못 느꼈어요? 자신이 무슨 얼굴을 하고 있는지도 몰랐던가요? 어떻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그의 얼굴은, 숨길 수 없는, 저열하고 잔인한 환희로, 추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고문실에 들어가는 게슈타포는 항상 검은 마스크를 착용한다.

위생의 목적도 있지만 그것은 비인간화를 위해서이기도 하다. 얼굴은 표정이 드러나고, 표정은 대상을 인간적으로 만든다. 친위대의 고문기술자들은 인간이어서는 안 된다. 고문실 안에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고문기계와 돼지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것이, 한스 윈터를 고문한 우리가 검은 마스크를 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번에는 마스크가 없었기에 우리의 맨 얼굴은 적나라하게 드러났었다.

에리히는 살인귀가 아니다. 단지 필요하면 죽일 뿐이다. 에리히는 폭력을 쓴다. 그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의 자부심이었다. 그것이 그의 선이었다. 그는, 우리는 괴물의 영역에 발을 반쯤 들이밀었음에도, 그 최후의 선을 지키는 것을 긍지로 삼았다.

그것을 무참히 깨뜨린 라인스 중위가 우리의 눈을 바라보다가, 우리의 뺨을, 에리히가 지워 놓은 뺨을 바라본다.

그녀는 갑자기,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움찔했다.

“소령님···”

이내 그 말은 날카롭게 변한다.

“아냐. 소령님이 아냐. 당신. 당신은 누구지?”

라인스 중위의 시선은 우리의 눈동자를 꿰뚫어볼 것처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그 너머의 에리히를 보는 것처럼.

이전과는 달리 섬뜩한 적막이 흘렀다.

마침내 에리히가 느릿느릿 입을 열었다.

“똑똑해··· 정말로, 너는 정말로 똑똑해······”

에리히가 웃자 라인스 중위가 흠칫했다.

“그래.”

에리히가 한 걸음 내딛자 라인스 중위가 한 걸음 물러났다. 에리히가 낮게 웃으며 말했다.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 거니?”

“저···저리 가···”

에리히가 말한다.

“대답을 해야지, 윈터.”

순간 나는 다급히 몸의 주도권을 되찾으려고 했다. 그러나 에리히는 나의 몸을 놓아 주지 않았다.

순식간이었다. 에리히는 방금 전까지 바더를 고문하던 손으로, 그 억센 손아귀로, 벽에 내몰린 라인스 중위의 목을 졸랐다. 버둥거리는 라인스 중위에게, 나직하게 속삭인다.

“안녕, 나의 두 번째 사람.”

라인스 윈터의 새까만 눈동자에 비친 에리히는, 아마도 아까 우리가 짓고 있었을, 그런 추한 미소를, 그러나 좀 더 분노에 가까운 무언가로 일그러져 있었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