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권 4장. 검은 제복의 악마-(1)
우리는 우선 장례식장 관리인을 긴급체포한 뒤, 프리몬트 연대지도자에게 보고했다. 라인스 중위를 대동한 채였다. 그의 입에서 얼른 내보내라는 말이 떨어지기 직전 우리는 말했다.
“지금 라인스 윈터 중위는 ‘바꿔치기’ 당할 위험이 가장 높기 때문에 항상 동행중입니다. 현 시점에서 유일하게 ‘안전이 확실하게 보장된’ 사람이니까요. 범인이 친위대원을 가장한 채 숨어 있으니 더더욱.”
라인스 중위는 학살이 벌어질 경우 이곳에 있던 사람 중 유일하게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이다. 친위대에서 탈영하는 건 어렵지만 비행금지령 받은 용기사가 기지로 돌아가는 길에 실종되는 건 쉽다.
“친위대원을 가장했다고?”
“예. 시신의 사라졌던 나머지 조각을 발견했고, 왼팔에 혈액형 문신이 있었습니다.”
창백하게 질린 프리몬트 연대지도자에게 말했다.
“따라서 범인은 친위대 내에 있고, 아직까지 안 들켰다는 말은 곧 그가 특수부대 내에 숨어 있다는 의미가 됩니다. 라인스 중위를 제가 직접 보호해야만 하는 이유도 그래서이고요.”
사실 라인스 중위는 드루드 베커만 조심하면 된다. 하지만 현 상황에서 범인이 드루드 베커를 가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없으니, 우리는 모든 친위대원이 의심스러운 척 해야 한다.
그가 탄식하듯 말했다.
“『계획』은 잠시 미뤄야겠군.”
“최대한 빨리 장례식장 관리인을 심문해 알아내도록 하겠습니다. 그 관리인을 거치지 않고 안치소에 들어가는 건 불가능합니다. 분명히 얼굴을 보았을 게 틀림없습니다. 사건당일 바서슈와인 시내에 있었던 친위대원 한 명만 조수로 붙여주십시오.”
“알았다. 결과가 나오는 대로 최대한 빨리 보고하도록.”
경례를 올리고 방을 나섰다. 문손잡이를 돌리기 직전, 그가 갑자기 말했다.
“잠깐, 그 ‘조수’도 결국 친위대원 아닌가. 가능성을 무시할 순 없어.”
“그럴 확률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사건당일 바서슈와인 시내에 있을 정도면 너무 멀어서 범인일 가능성이 낮습니다.”
“그리고 아르노 얀츠가 ‘그것’을 훔쳐낼 가능성도 원래 극히 낮았지. 안 돼. 그 조수란 게 꼭 필요한 건가?”
“없어도 가능하지만 조금 느립니다.”
“그럼 그럴 순 없어.”
우리는 도대체 어쩌란 말이냐라는 시선을 보내지 않도록 주의하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 또한 잠시 고민을 하다가, 갑자기 라인스 중위를 가리켰다.
“쟬 조수로 삼으면 되지 않나.”
“라인스 중위를요?”
“그래. 친위대원이 아니니 절대로 용의선상에 포함되지 않고, 군 인사이니 완전한 외부인도 아니야.”
지금 제정신인가? 조수가 드루드 베커만 아니라면 우리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이 사람은 우리도 모르는 가장 비밀스러운 특수부대의 지휘관이면서, 미쳤나? 우리는 처음으로 약간 대들었다.
“본인이 원하지 않는다면 그냥 혼자서 진행하겠습니다. 제 생각에 그녀는 적합하지 않아요. 라인스, 그냥 네 생각을 말해.”
어차피 라인스 중위와 그는 소속 부서가 다른 정도가 아니라 아예 다른 군이었다. 그는 라인스 중위의 직속상관이 아니었다. 따라서 그의 명령을 따를 필요가 없다.
원칙은 그러했지만 그는 동시에 계엄사령관이기도 했다. 그러면 조금 애매해진다. 계엄사령관은 이 지역의 모든 통제권을 갖는다. 모두의 시선이 라인스 중위에게 쏠렸다.
그녀가 말을 더듬었다.
“저,저는 괜찮아요.”
“라인스. 억지로 대답할 필요는 없어. 혼자서라도 최대한 힘써서 할 수 있으니까.”
“괜찮아요. 저도 돕게 해주세요. 저도 빨리 계엄이 풀려서 이 도시를 나갈 수 있게 되면 좋겠어요.”
졌다. 그런 우리를 바라보는 프리몬트 연대지도자는 살짝 흡족한 빛마저 띠고 있었다. 당했다! 그는 그저 나를 골탕 먹이고 싶었던 것이다. 그가 우릴 처음 만난 순간부터 싫어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런 멍청한 방식일 줄은.
결국 우리는 라인스 중위와 함께 장례식장 관리인을 심문해야 될 처지에 놓였다. 그가 구금된 곳으로 향하는 동안 라인스 중위가 물었다.
“그런데 저는 뭘 하면 되죠? 전 취조 같은 건 아무것도 몰라요.”
“괜찮아. 너에게 현란한 말솜씨를 기대하는 건 아냐. 네가 초보니까 우리는 아주 간단한 전략을 사용할 거야. 좋은 경찰, 나쁜 경찰 수법이지.”
“좋은 경찰 나쁜 경찰이요? 한 명은 나쁜 경찰이 되고 한 명은 좋은 경찰이 되는 거예요?”
“그래. 간단하지만 유서 깊고 효과적이지. 간첩 같은 전문가에겐 안 통하지만 살면서 한 번도 경찰에게 붙잡힌 적 없는 일반시민 정도에겐 잘 통할 거야. 나는 나쁜 경찰, 너는 좋은 경찰이 된다. 네가 할 일은 그저 그에게 상냥히 대하며 좋은 말로 진실을 털어놓도록 회유하고, 지금 말하면 모든 게 괜찮아질 거라고 말하면 돼.”
그리고 라인스 중위가 내게 갖고 있는 호감이 박살날 것이다.
“‘진실을 털어놓도록 회유하고’ 이 부분이 어려운 거 아닌가요?”
“아니야. 그냥 진심을 다해, 그를 걱정하면서 말해달라고 호소하면 돼. 일단 내가 밑밥은 다 깔아놓을 테니까.”
우리는 구치소로 들어갔다. 바서슈와인은 친위대 경찰병력이 아닌 일반 경찰의 관할에 놓여 있다. 그것은 이 도시에서 일어나는 가장 큰 일이라고 해봤자 절도죄 정도였기 때문. 라인스가 지구대 안으로 들어가며 소곤거렸다.
“그렇게 간단하게는 안 될 거예요. 그는 돌고래이고, 아르노 얀츠도 돌고래이니까요. 돌고래들끼리의 유대는 상상을 초월해요. 아마 그도 얀츠에게 협박당한 게 아니라 자발적으로 협력했을 거예요.”
“그런가. 아참, 라인스. 너는 근데 아무렇지도 않아?”
“뭐가요?”
“나는 지금 돌고래를 잡아내려 하고 있잖아.”
“그 사람은 엄청난 중죄를 저질렀다면서요. 그런 사람까지 옹호하는 건 아니라고요.”
“미안, 실언을 했네.”
실없는 말을 주고받으며, 현지의 인간 경찰이 가져온 장례식장 관리인의 신상을 보았다.
페르난도 바더. 그는 2세대 돌고래, 즉 부모는 출신지가 바다이지만 정착하여 도이체스의 국적을 가졌고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이라는 의미였다. 현재는 이 장례식장을 혼자서 운영하고 있다. 도시 크기에 비해 규모가 작아서 가능한 일이었다. 대부분의 돌고래들은 인간형으로 죽더라도 죽은 뒤에는 바다로 돌아가기를 원했다.
왼팔과 오른다리를 숨기러 온 아르노 얀츠가 그와 마주치지 않고 침입하기는 불가능했다. 그는 반드시 변장한 아르노 얀츠를 마주했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경찰에게서 공구상자 하나를 빌려 저 구석에 가져다 놓고 매직미러 너머의 바더를 바라보았다. 그는 다른 돌고래에 비해 상당히 짙은 회청색 피부에 머리가 조금 벗겨지려 하는 중년의 남자였다. 눈은 흐리멍덩하나 고집스럽게 다문 입술이 그의 성격을 짐작케 한다.
우리는 눈으로 시설을 훑어보았다. 친위대도 없는 군소 지구대 주제에 시설은 나름 최첨단으로 갖춰 놓았다. 심지어 방음설계까지 제대로 해 놓았다. 나름 한 도시의 유일한 경찰 본거지라 신경 써 놓은 것 같았다. 조금 과분하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지만.
우리는 서류더미를 탁자에 톡톡 두드려 가지런하게 만들면서 라인스 중위에게 말했다.
“내가 이렇게 손짓하면 들어와줘.”
집게손가락과 가운뎃손가락을 붙여 펴고, 나머지 손가락들은 자연스럽게 구부린 채 내버려두고 슬쩍 올리는 손짓. 특별한 의미는 없다.
그렇게 서류를 정리하면서 갑자기 떠오른 게 있었다. 뒷목을 잡는 우리를 보면서 라인스 중위가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일이에요?”
“아냐. 그냥 내가 바보 멍청이라서 그래···”
발견된 시신은 A형이었으니 혈액형이 A형이 아닌 친위대원을 데려가겠다고 말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면 라인스 중위가 여기 올 일은 없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생각해내지 못했다.
아니다. 어차피 우리는 라인스 중위와 항상 동행하며 지킬 의무가 있었다. 여기까지 동행하는 것도 당연한 수순이었다.
하지만 드루드 베커만 아니라면 별로 상관없다.
하지만 우리가 범인을 알고 있다는 걸 알릴 수는 없으니 우리는 계속 라인스 중위와 동행해야 하고···
라인스 중위가 피식 웃었다.
“지금 저 데려온 걸 후회하고 있는 거죠?”
슬쩍 시선을 피하자 그녀가 말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잖아요. 이왕 이렇게 된 거, 최선을 다해 도울게요.”
우리가 걱정하는 건 라인스 중위가 잘 해낼 지 여부가 아니었다. 우리를 보고 무슨 생각을 할 지였다.
그러는 우리 속내도 모르고 라인스 중위는 A형 친위대원들의 서류를 구경하려 했다. 우리가 슬쩍 손바닥으로 가리자 쳇, 하는 소리를 낸다.
취조실에 들어가기 전, 우리는 말했다.
“가능하면 내 선에서 끝내도록 노력할게.”
“그럴 수 있을 거예요.”
글쎄. 그건 지금부터 우리가 심문할 사람이 얼마나 독종이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
“그리고 나중에···”
문을 열기 전에 덧붙인다.
“나중에, 그냥, 보지 마. 보려고 하지 마.”
우리의 말은 약간의 간절함마저 띠고 있었다.
에리히는 자기와 상관없는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든 신경 쓰지 않았지만, 그리고 나 또한 그런 사람이었지만, 라인스 중위는 조금 달랐다. 그녀는 이 일이 끝나고도 앞으로 계속 얼굴을 봐야 하는 사람이었다. 좋은 동료에게서 그런 시선을 받는 것은, 우리의 추잡한 모습을 본 뒤 두려워하거나 경멸받는 것은 아무리 나라고 해도 상당한 스트레스였다.
어차피 정황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두 짐작 가능하겠지만, 직접 우리 모습을 보지는 말았으면 했다.
그 말을 남기고 우리는 취조실에 들어가 문을 닫았다. 동시에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사실 그가 순순히 증언을 해준다면 우리의 이런 걱정은 전부 의미가 없겠지. 그러나 일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
바더는 우리의 인사를 받고도 눈살만 찌푸릴 뿐, 대답을 하지 않았다.
“페르난도 바더 씨. 저는 프란츠라고 불러 주시면 됩니다.”
게슈타포는 신원누출을 막기 위해 군복에 이름을 달지 않는다. 이름도 프란츠로 통일이다. 실제로 내 군복에도 이름이 달려 있어야 할 부분에 가로줄 하나만 그어져 있을 뿐이다.
“최근에 친위대원 중 하나가 국가기밀을 훔쳐 달아났습니다. 그 과정에서 친위대원 여럿을 죽이고 그 중 한 명의 신분을 도용했지요. 그가 인간의태가 가능한 돌고래여서 할 수 있었던 일입니다. 그는 자신이 다른 친위대원 행세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죽인 사람의 시신을 토막 내 친위대원임을 바로 알아볼 수 있는 증표를 감췄습니다. 바로 당신의 장례식장이지요. 당신은 틀림없이 그자의 얼굴을 보았을 겁니다. 그러지 않고서야 그 깊은 안치소까지 들어가는 건 불가능하니까요. 그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는지 협조해주시면 국가보안에 위협을 끼치는 간첩을 잡아내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우리는 혈액형이 A형인 친위대원의 얼굴 사진들을 탁자에 쫙 늘어놓았다.
“혹시 이 중에서 낯이 익은 얼굴이 있나요?”
사진들을 살펴보던 바더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없소. 그리고 나는 누가 침입한 지도 몰랐소.”
“저런, 바더 씨. 그런 거짓말은 통하지 않아요. 당신이 침입자를 볼 수밖에 없었다는 물증은 여러 개가 있으니까요. 자, 이 중에 낯익은 얼굴이 있나요?”
“없소.”
“그럼,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는지는 기억나시나요? 제가 몽타주를 작성할 수 있어요.”
우리는 그림을 제법 잘 그린다. 가끔은 전문 몽타주 작성가보다 더 잘 그리는 경우도 있었다. 우리가 미리 준비해 온 도화지와 연필을 꺼내자 바더가 말했다.
“누가 들어왔는지 보지도 못했소. 나에게 이런 걸 물어보는 건 무의미해.”
그 뒤로 끈질기게 질문을 했지만, 그는 그 거짓말만을 앵무새처럼 반복할 뿐이었다. 조서를 읽어가며 그의 허점을 지적해도 여전히 발뺌만 했다.
뭐, 이런 사람을 한두 번 만난 것도 아니다. 우리는 신호를 보냈다. 라인스 중위가 들어오자 우리는 말했다.
“커피 좀 가져올래? 내가 직접 타주고 싶으니까 물이랑 가루를 가져다 줘.”
잠시 후 라인스 중위가 잔 두 개, 커피가루, 주전자를 가져오자 우리는 수고했다는 눈짓을 보냈다. 그녀가 나가자 우리는 잔 두 개에 가루를 붓고 뜨거운 물을 부으며 말했다.
“이제쯤 목마를 때도 됐죠. 커피 드실래요?”
그렇게 힐끗 본 주전자는 내열마법이 걸려 있는 최신식 주전자였다. 일단 뜨거운 물이 담기면 그 온도를 거의 하루 동안 유지해 준다. 간단한 마법이지만, 어울리지 않게 장비는 첨단인 곳이다.
작은 스푼으로 휘저어 준 뒤 그 앞에 놓아 주었다. 수갑을 차고 있지만 앞쪽으로 차고 있으니 커피를 마실 수는 있을 것이다. 온도는 끓기 직전보다 5도 가량 낮아 보였다.
커피를 홀짝이며 말했다. 윽, 살짝 데일 뻔했다. 하지만 맛은 괜찮았다. 조금만 더 식으면 더 맛있어지겠지.
“음, 맛있군요. 사제 커피만은 못하겠지만, 군 보급품치고는 꽤 괜찮답니다. 아무래도 친위대 것이라 맛이 좋은 편이에요. 먹을 만 할 겁니다.”
바더는 우리를 노려보기만 할 뿐, 커피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우리는 낙담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 커피는 별로이신 모양이군요. 안타깝게 되었어요. 사실 저도 커피보단 홍차를 더 좋아한답니다. 그것 때문에 브리타니아인이냐는 놀림도 받았죠.”
우리는 탁자를 톡톡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말했다.
“사실 선생님의 입장도 이해가 가서 말입니다. 누가 자발적으로 반역자의 편을 들고 싶어하겠어요? 분명 얀츠가 협박했을 게 틀림없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협력하게 되었고, 그걸 인정하는 순간 반역자의 공범이 되어버리니 진술이 꺼려지는 것도 사실이겠죠.”
아마 그는 아주 자발적으로 얀츠에게 협력했겠지만,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준다.
“늦지 않았어요, 바더. 협박 때문에 협력한 건 얼마든지 정상 참작의 사유가 된답니다. 친위대가 그렇게 꽉 막힌 데가 아니에요. 보통 사람은 협박받으면 어쩔 수 없이 움직이죠. 저희는 보통사람에게 그 이상의 용감함을 요구하지 않아요. 지금 진술하는 것으로 당신에게 피해 가는 건 아무것도 없을 거예요. 자, 바더. 이 중에 보았던 사람이 있나요?”
그 뒤로 또 끈질기게 설득한다. 내열 처리가 되어 있지 않은 커피잔 속의 내용물이 차갑게 식어갈 때까지. 우리는 한숨을 내쉬었다.
“바더. 계속 입을 다물수록 죄가 무거워질 뿐이에요. 하지만 지금이라도 말씀하신다면 없던 일로 할 수 있어요. 협조 바랍니다.”
바더는 여전히 그 고집스런 눈으로 우리를 삐딱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우리는 오래 앉아 있어서 찌뿌드드한 몸을 일으켰다. 쟁반에 우리 커피잔과 주전자를 올리고, 바더의 커피잔도 가져가기 위해 다가간다.
바더의 커피잔을 탁자 위의 쟁반에 마저 올리고, 우리는 바더가 앉아 있는 의자를 확 걷어찼다.
당황한 바더는 몸의 중심이 쏠리자 허우적거렸다. 완전히 옆으로 넘어가기 직전 바더는 탁자 모서리를 잡았다. 탁자가 워낙 육중했던 탓에 바더의 체중이 쏠려도 흔들리지 않는다.
우리는 주먹을 쥐고 탁자를 잡은 바더의 손가락을 내려쳤다. 그가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그의 가슴팍을 걷어차 완전히 넘어뜨린다. 미처 대응하지 못하는 그의 관자놀이를 콱 밟아 움직이지 못하게 한다.
그리고 손을 뻗어 닿는 걸 잡는다. 헐떡거리는 바더에게 주전자를 천천히 기울여 그 내용물을 붓는다.
“으아아아아아악!!”
내열 마법이 걸린 주전자의 물은 아직도 뜨거웠다. 우리는 그 물을 연약한 살갗에 부었다.
그의 주둥이가 툭 튀어나오는 걸 보며, 감상을 덧붙인다.
“죽을 때뿐만 아니라 쇼크를 받아도 변신이 일부 풀리는군요. 흥미로운데요.”
“으윽, 아아악!”
주전자를 기울이는 것을 멈춘다. 그리고 다시 묻는다.
“봤죠, 범인? 이제 얼굴이 기억나나요?”
그가 헐떡이며 말한다.
“해구에서 뒈져버려.”
돌고래들의 욕은 저런 방식인가보다. 우리는 남은 물을 한꺼번에 쏟았다.
“아아아아아악!!! 아악!!! 으아아아아!!!”
“저런, 선생님과 저는 좁힐 수 없는 입장 차이가 있군요. 유감이에요.”
빈 주전자를 탁자 위에 올려두고, 그의 명치를 때렸다. 기절할 정도로만. 그의 몸이 축 늘어졌다.
더운 김이 올라오는 바닥을 내려다보며 쟁반 위에 잔과 주전자를 올리고 취조실을 나섰다. 바깥에는 매직미러로 이 모든 걸 지켜 본 라인스 중위의 경악한 표정이 있었다.
우리는 쟁반을 내려놓고, 라인스 중위에게 말했다.
“지금부터 내가 나쁜 경찰 하고 네가 좋은 경찰 할 건데.”
아마 우리의 표정은 평소와 같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잘 할 수 있겠지?”
왜냐하면 이게 우리가 하는 일이었으니까. 일이라는 그늘 아래에서, 그리고 사적인 조사 시간에서도, 우리는 이런 것을 했다.
따라서 일이라서 어쩔 수 없이 악행을 저지른 선량한 나, 라는 합리화는 불가능하다. 우리가 하는 일은 똑같았다. 그저 그것이 국가기관의 이름으로 하는 것인지, 헤르만 예거라는 개인이 집행하는 것인지만 다를 뿐.
역겨운 일이었지만 너무 익숙했기에 이 정도로는 우리의 마음을 동요시킬 수 없다.
그녀는 우리와, 주전자와, 그리고 우리가 아까 가져다놓은 공구상자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리고 모든 것을 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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