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리고 너는 용이 되어-38화 (38/102)

2권 3장. 나무와 숲-(2)

앞서 말했듯이 나는 사랑이란 것을 잘 모른다.

그러나 그것을 알아차릴 눈치는 있었다. 일반적으로는 여자 쪽이 더 좋아한다 해도 남자가 먼저 교제를 신청하는 편이 사회적인 통념이었다. 그렇기에 누군가가 우리를 좋아한다면, 그리고 그 마음이 너무나 커서 얼른 이쪽에서 고백하기만을 바라고 있다면, 나는 그 기대대로 행동해 주었다. 그게 정상적인 것처럼 보여서 그랬다. 그러면 헤르만 예거라는 인간이 흠 잡을 데 없는 인생을 사는 것처럼 보일 것이니 그러했다.

그러나 우리 눈앞에 있는 사람은 그동안 공허하게 수락해온 애정과는 조금 다른 것을 내보이고 있었다.

우리는 겨우 이 말을 꺼낼 수 있었다.

“언제부터···?”

“처음 만난, 그 순간부터.”

라인스 중위와 처음 만난 순간은 우리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한참이나 눈을 마주하고 있었다. 고동치는 심장을 느끼면서. 옆에 있는 사람이 이상하게 쳐다볼 때쯤에야 비로소 시선을 돌렸었지.

“하지만 소령님이 친위대이기도 하다는 사실에 늘 마음을 접었어요. 지금이야 말할 수 있지만 그 전에는, 전 정부 사람은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상태였으니까···”

“그럼 어째서 지금은?”

“그럼에도 할 수 없었어요. 소령님이 정부 사람이든 말든, 그 악마 같은 게슈타포이든 말든. 그냥 보기만 해도, 가까이 가기만 해도 이렇게 심장이 뛰는데···”

라인스 중위의 얼굴은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하지만 역시 가장 큰 계기라면, 아까 헥사곤에서의 일 때문일까요.”

도대체 우리의 어떤 면이.

“오로지 진실만을 요구하셨죠. 말씀대로, 절 협박할 수도 죽일 수도 있었어요. 하지만 우선 제 의지로 말해줄 때까지 기다리셨어요. 나는, 나는 친위대라면, 한스 씨를 고문했던 게슈타포들은 전부 괴물일 줄 알았는데···”

우리가 바로 그 한스 씨를 고문한 게슈타포였다.

“그 때부터 돌이킬 수 없었어요.”

그것을 끝으로 한참 침묵이 흘렀다.

우리는 느릿느릿하게 말했다.

“나는, 너를 보면 심장이 두근거려.”

그것은 라인스 중위도 당연히 알고 있을 것이었다. 돌고래다. 그들은 소리에 매우 민감하다. 근처에 있는 사람의 심장 고동 따위는 진작에 눈치 채고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것을 알기에 우리에게 이 말을 꺼낸 것일지도 모른다.

“나도 왜 이런지는 모르겠어.”

거짓말은 하지 않고, 일부의 진실만을 흘린다.

“하지만 나의 마음이 너와 같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해. 왜 너를 보면 내가 이렇게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직 나의 마음을 잘 모르겠어.”

이미 답은 정해져 있지만 깨닫지 못하는 바보. 그 정도가 적당하다. 섣불리 받아들였다가는 우리가 이전에 사귀었던 여자들처럼 되어 더 적대적으로 변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그녀의 후견인을 고문했던 사람이다.

우리의 눈동자를 바라보던 라인스 중위가 토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소령님은 정말 바보에요.”

그러더니, 갑자기 지나가던 종업원을 불러 세워 비싼 술을 시키는 게 아닌가.

“라인스···?”

“말리지 마세요. 전 바보 소령님 때문에 기분 상했어요. 비싼 술 마시고 죽어버릴 거예요.”

여기는 뭐든지 선불이었다. 우리는 종업원이 가져다 준 가격표를 보고 마음의 비명을 질렀다.

그녀는 큰소리친 것 치고는 술이 그다지 센 편이 아니었기에 새로 시킨 술은 거기서 끝이었다.

이전까지의 대화가 마치 없었다는 듯이 우리는 태연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번엔 부끄러움이 아닌 술기운 때문에 얼굴이 발개진 라인스 중위가 물었다.

“그런데 뭘 하고 계시나요?”

질문을 해놓고 라인스 중위는 갑자기 깔깔 웃었다. 취했구나.

“경솔한 질문이었네요. 대답해주지 않으셔도 돼요.”

“아냐, 기밀 급의 비밀은 아니니까.”

우리는 아르노 얀츠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물론 그가 무엇을 훔쳤는지, 아인자츠그루펜의 존재는 빼고 말했다.

“나는 그가 친위대원으로 변장하고 있다고 거의 확신해. 하지만 사라진 왼팔을 어디서 찾아야 할 지 모르겠어. 오른다리는 아마 덤으로 숨겼겠지.”

“그가 저와 비슷한 종류의 돌고래란 말이죠······.”

그러더니 그녀가 목소리를 낮추어 속닥거렸다.

“저 실은, 범인이 누구인지 알 것 같아요.”

“정말?”

일부러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라인스 중위는 한참 망설이더니 말했다.

“돌고래들은 서로를 알아볼 수 있어요.”

“어떻게?”

“그냥요. 딱 보는 순간 알 수 있어요. 몸이 반응하거든요. 마력을 지닌 존재끼리는 서로를 알아볼 수 있어요. 그렇기에 사람처럼 감쪽같이 변한 돌고래도, 예언 능력을 지닌 아랑도, 용도 몸이 반응해 알아볼 수 있는 거죠.”

느닷없는 정보에 머리가 어지러워지려는 것을 겨우 참아낸다.

“아무튼 돌고래인 친위대원이 있었어요. 사실 너무 의외였죠. 돌고래와 가장 어울리지 않는 직업이 친위대원이니까요. 하지만 완벽하게 의태한 돌고래에게는 아는 척을 안 하는 게 불문율이라 그냥 말았어요. 비록 저는 인간으로 여겨질 수 있지만, 딱히 동족이라고 더 친한 척을 해야 할 이유는 없으니까요. 물론 그가 위기에 처했더라면 발 벗고 나섰겠지만요.”

“그래서? 그 사람이 누군데? 이름을 알아? 아니면 생긴 거라도—”

“드루드 베커.”

우리의 표정이 굳는다. 의도된 경직.

“뭐···라고?”

“그 사람이었어요. 그 사람이 돌고래였어요. 아닐 수도 있겠지만 하필 친위대에 인간의태가 가능한 돌고래가 둘이나 있는 게 더 이상하네요.”

라인스 중위가 살짝 몸을 흠칫 떨었다.

“생각해보니 아찔하네요. 저번에 화장실 가셨을 때를 제외하고는, 저와 그가 단 둘이 남겨진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소령님과 제가 떨어진 적이 없었죠. 의도치 않게 저를 계속 지켜준 셈이었어요.”

“베커는 네가 자신을 알아봤다는 걸 역시 아니까.”

“그렇죠. 하지만 어떻게 되었을지는 잘 모르겠어요. 아마 제가 외부인이고 무엇 때문에 계엄이 내려졌는지 전혀 모르고 수사 내용도 모르니까 가만히 내버려뒀는지도 몰라요. 그거 아니면 돌고래끼리의 유대를 믿었을지도 모르죠. 바다라는 같은 고향을 둔 동지애는 인간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끈끈하거든요.”

“그럼, 네가 증언하면 그자를···”

“죄송해요.”

라인스 중위가 딱 잘라 말했다.

“그러면 제가 돌고래인 것을 밝혀야 해요······. 그러면 저는 영영 하늘을 날지 못하게 되겠죠. 그래도 범인을 미리 아시니까, 어떻게든 밝혀낼 수 있지 않을까요? 제발요, 소령님. 전 하늘이 너무 좋아요. 다시는 날 수 없게 된다면 미쳐 버리고 말 거예요.”

네가 증언하지 않는다면 며칠 안에 바서슈와인의 1만 5천명이 죽는다.

이 말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려면 아인자츠그루펜에 대해서도 밝혀야 한다. 우리는 아직 교차검증을 끝내지 못했다. 그 말은 라인스 중위를 아직 신뢰할 수 없다는 뜻이다.

“···알았어. 일단 네 말대로 일이 급격히 쉬워진 건 사실이니까. 그럼 그 시체는 짐작했던 대로 친위대원의 시체겠군. 왼팔을 은닉한 것도 혈액형 문신을 숨기기 위해서.”

“그럼, 이제 어쩌죠?”

“드루드 베커가 널 노릴 가능성이 있네. 서로 알아본다니, 그 점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어.”

“그 사람이 위험요소를 내버려 둘까요? 이제 그 여관엔 저 혼자 남겨지게 되는데···”

“지금부터 나와 계속 함께 있자.”

동그랗게 떠진 그녀의 눈을 보고 말을 잇는다.

“나는 드루드··· 아니 얀츠와 같은 방을 써. 나와 같이 있는 동안엔 허튼 짓을 못하겠지. 그리고 일과시간엔 나와 계속 함께 다니자. 지루하고, 가끔은 역겨운 것도 보겠지만 내가 널 지켜주려면 이 방법밖에 없어.”

“지켜···주···”

라인스 중위가 무얼 생각했는지 말을 더듬었다. 우리는 웃으며 말했다.

“그래, 지켜줄게.”

가슴이 두근대는 건 우리만의 일방통행이 아닌, 쌍방의 반응이었다.

그녀는 마력을 지닌 존재—곧 변신 능력을 지닌 돌고래, 예언 능력을 지닌 아랑, 마법을 지닌 용과 서로 반응한다고 했다.

우리는 돌고래와 용과 반응했다. 예언자 아랑은 만나본 적이 없으니 모른다.

이로써, 용과 감응한다뿐이지 평범한 남자인 헤르만 예거의 육신이 도대체 무엇인지는 더욱 미스터리에 빠졌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건, 우리가 라인스 중위를 보고 두근대는 것과 마찬가지로 저쪽이 우리를 보며 반응하는 건 단순히 ‘서로 알아본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라인스 중위의 저 감정은 철저히 거짓. 본인만 모르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쪽에서 굳이 일깨워주고 싶은 마음은 없다. 저쪽에서 알아서 호감으로 착각해준다면 고마운 일이다. 더 이용하기 편해지겠지.

“···고마워요.”

기어들어가는 그 목소리에 그저 빙긋 웃어주었다.

식당을 나서고,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그녀를 부축하며 함께 여관으로 걸어갔다. 가면서 계속 왼팔이 어디 있을지를 함께 토론했다. 여관에 다다랐을 무렵 라인스 중위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모르겠네요.”

우리 또한 한숨을 쉬었다. 그러자 그녀가 말했다.

“하지만 그렇게 기발한 장소는 아닐 거 같아요.”

“그래?”

“그럴 시간도 없었잖아요. 원래 나무를 숨기려면 숲에 숨기라는 말도 있고. 기상천외한 트릭보다는 흔해빠져서 오히려 놓쳤던 곳에 있지 않을까요?”

“그런가···”

사람들은 ‘자기가 보기에 기발한’ 곳에 물건을 감추려는 성향이 강했다. 물론 사람 생각이라는 게 거기서 거기라 게슈타포가 털어가기 딱 좋았다. 라인스 중위의 말처럼 놓치기 쉬운 장소를 고르는 사람 쪽이 드물었다. 오히려 그쪽이 더 기상천외한 발상이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다.

라인스 중위를 올려 보내고 우리는 방으로 돌아갔다. 안에서 얀츠가 구김살 없는 미소로 우리를 맞이했다. 은근슬쩍 수사 진척 상황을 물어 오길래 적당한 수준까지 대답해 주었다. 적대감을 드러내지 않으려 주의할 필요도 없었다. 에리히는 그런 쪽으로 아주 능숙했다.

다음 날 우리는 수사를 계속했다. 단, 이번에는 라인스 중위와 함께였다. 이미 어제 시신을 보았던 뒤라 라인스 중위가 드루드 베커의 참혹한 시신을 볼 필요는 없었다. 그녀에게 말했던 대로 지루한 탐문수사의 연속이었다.

“수사관은 생각보다 힘든 시간이 더 많네요.”

“그래도 네 덕분에 훨씬 편해진 거야.”

그러나 소득은 별로 없었다. 해질녘이 가까워질 무렵, 우리는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도대체 어디에 숨겼을까? 일단 그것만 찾아내면 학살의 날을 순식간에 미룰 수 있다.

문서고가 있는 방향을 한참 바라보던 우리는, 갑자기 떠오른 생각에 그쪽으로 가기 시작했다. 거의 달리다시피 해서 문서고가 보일 무렵, 뒤에서 라인스 중위가 외쳤다.

“소령님!”

돌아보니 라인스 중위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한참 뒤처진 채 달려오고 있었다. 라인스 중위도 용기사이니만큼 구보는 그럭저럭 해냈으나 우리가 배려 없이 달린 탓에 말 그대로 전력질주를 하다 온 셈이었다.

우리는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장례식장 관리인이 의문 가득한 얼굴로 우리를 맞이하자 나는 그에게 말했다.

“시신을 다시 한 번만 더 보고 싶은데요. 어디 있나요?”

이미 시신은 검시가 끝났고 정식 안치소에 들어간 상태였다. 하지만 아직 수사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화장하지는 않았다.

회청색 피부를 가진 돌고래 남자는 우리를 안내해 주려고 일어섰다. 우리는 관리인에게 손을 흔들어 거절의 뜻을 표했다.

“아니, 괜찮습니다. 방해받지 않고 보고 싶어요. 위치만 알려주시면 됩니다.”

그는 위치를 알려 주었고, 우리는 그 장소로 내려갔다.

그 방은 하얀 타일로 덮여 있었다. 한쪽 벽에는 서랍장 같은 것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그러나 저것은 서랍이 아니라 시신이 한 구씩 들어가 있는 작은 공간이었다. 시신들이 저기 수납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는 들어서기 전 라인스 중위에게 말했다.

“죽은 사람 본 적 있어?”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말했다.

“그래도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닐 테니 뒤돌아 있어도 돼.”

“괜찮아요.”

이런 답변이 돌아오자 우리는 더 이상 묻지 않고 서랍장으로 향했다. 성큼성큼 걸어가는 우리를 보며 라인스 중위가 말했다.

“소령님, 거기는 3-A가 아닌···”

라인스 중위의 말은 거기서 끊겼다. 우리가 거침없이 맨 위 첫번째 서랍부터 열어젖히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하나씩, 하나씩 전부 열어 보았다. 개중엔 빈 서랍도, 시신이 들어 있는 서랍도 있었다. 바서슈와인이니만큼 시신은 대부분 돌고래였다. 인간형의 형태는 유지하고 있지만 죽음 때문인지 일부는 변신이 조금씩 풀려 있었다. 주둥이라든지, 손이라든지 하는 부분.

“뭐 하시는···?”

“네 말을 생각해 봤어.”

여전히 서랍장을 휙휙 열어대며 말했다.

“어설프게 숨기다간 오히려 독이 되겠지. 네 말대로, 나무를 숨기려면 숲에 숨겨야 해. 마찬가지로, 시체를 숨기려면 시체에 숨긴다.”

4-D까지 왔을 무렵, 우리는 멈췄다. 아마 얼굴에는 일종의 희열 같은 게 새겨져 있겠지.

“찾았어.”

우리가 연 서랍장에는 돌고래 남자의 시신이 있었다. 아마 절반쯤만 열었더라면 멀쩡한 상반신만 보여서 아무것도 눈치 채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발끝까지 전부 보이도록 열었고, 그의 다리 옆과 사이에는 불청객이 둘 있었다.

각각 팔 하나와 다리 하나.

가방에서 라텍스 장갑을 꺼내 착용했다. 그 손으로 팔을 끄집어낸다. 왼팔이었다. 어깨 쪽 팔뚝 안쪽에는 선명하게 새겨져 있는 A.

친위대의 혈액형 문신(Blutgruppentätowierung).

학살의 날은, 이로써 조금 더 뒤로 미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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