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권 3장. 나무와 숲-(1)
발견된 시신의 신원은 전혀 알 수 없었다. 머리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전신은 전부 다 발견되었느냐 하면, 또 그것도 아니었다. 시신은 조각나 있었는데, 절단면이 매우 거칠었다. 수사관 생활을 하는 동안 이런 식으로 잘린 건 처음 봤다. 마치 곰이 힘으로 관절부를 뽑아낸 모양새라고 해야 할까. 우리는 퍼즐맞추기를 한 것처럼 검시대 위에 놓여 있는 몸 조각들을 바라보았다. 여긴 게슈타포도 없는 변변찮은 곳이라서 시체안치소의 시설을 빌려 쓰고 있다.
없는 부분은 머리, 왼팔, 오른쪽 무릎 아래.
‘그 급한 상황에서도 머리를 썼다는 건가.’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자는 드루드 베커가 분명했다. 그리고 그는 친위대이기에, 왼팔 안쪽에 문신이 있을 게 틀림없었다.
친위대원들은 왼팔 안쪽, 겨드랑이와 맞닿는 부분 근처에 자신의 혈액형을 문신으로 새긴다. 야전에서 수혈을 편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 부분이 소실될 수도 있겠지만, 그 정도 부상이라면 야전에서 더 이상 해줄 게 없을 것이다.
머리가 없으니 누군지도 확인 불가, 왼팔이 없으니 친위대원 중 한 명으로 변장해 숨어 있다고 경고해 주는 것도 불가능. 그렇다고 왼팔만 대놓고 없애면 의심할 테니 일부러 오른쪽 다리까지 같이 숨기는 치밀함을 보였다.
급히 쫓기는 와중에 이 정도로 해낸 건 정말 대단했다.
우리는 잠시 우두커니 서서 조각난 시체를 내려다보았다. 우리는 범인을 안다. 범인은 계속 우리 곁에 있었다.
드루드 베커의 탈을 뒤집어 쓴 아르노 얀츠에게 큰 충격을 가한다면 변신이 풀릴지도 몰랐다. 돌고래들은 출산 같이 온 몸의 힘을 집중해야 하는 상황에선 변신을 유지할 수 없으니까.
아마 아르노 얀츠를 고문한다면 언젠가는 변신이 풀리겠지.
그러나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이것은 게슈타포의 방식이었다. 게슈타포가 ‘몰래’ 하는 방식이었다. 우리끼리만 있다면 모를까 다른 친위대가 있는 자리에서 그럴 수는 없었다. 설령 그것이 친위대에서 가장 비밀스럽고 더러운 단체라고 해도 말이다. 그리고 프리몬트 연대지도자는 절대 허락해 주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증거가 하나도 없고, 게슈타포의 고문은 잔혹하기로 소문났으니까. 얀츠에게 물리력을 행사해 자백하도록 협박한다? 우리가 압도적으로 불리하다. 얀츠는 억울하다고 우기면 그만이었다. 그 의지를 거슬러서까지 물리력을 행사한다면 얀츠는 죽거나 중한 부상을 입는다.
방법이 없다. 1만 5천명을 학살하는 게 효율적이라고 말하는 인간들을 막기 위해선 정식으로 아르노 얀츠의 범행 증거를 찾아 체포하는 수밖에 없다.
상부도 역시 이 토막살인 사건을 아르노 얀츠의 소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들은 아무것도 몰랐지만, 적어도 그가 누굴 죽이고 신분을 탈취할 동기가 충분하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바서슈와인에 살고 있는 몇 안 되는 인간들을 전부 가택에 연금하고 감시하기로 했다.
‘소용없어. 당신들 안에 있다고.’
그러나 그렇게라도 행동해 주는 편이 나았다. 어차피 전부 다 죽이면 그만!이라고 나와 주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마웠다.
우리는 기밀서고의 구조를 알 필요가 있었다. 그러려면 잠깐 머물다 가는 아인자츠그루펜 말고 유지병단의 단장에게 물어보는 게 맞았다.
아마도 학살계획을 까맣게 모르는 듯한 현지 유지병단 부단장 아인하르트 상급돌격대지도자 중령
에게 1층의 설계도를 달라고 요구했다. 그는 약간 벗겨진 이마를 무심코 한 번 손으로 쓸고 말했다.
“기밀이다.”
딱 잘라 거절하는 말에 우리는 좀 더 밀어붙였다.
“유지병단 내의 인력만으로는 지금 수사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비밀이라도 말하는 것처럼 목소리를 낮춰 말한다.
“그리고 아시잖습니까. 저쪽에선 에니그마를 찾기 전까진 계엄령을 풀 생각이 없다는 것을.”
아인하르트 상급돌격대지도자는 낙담한 표정이 되었다. 그는 부단장이다. 단장이 부재중인 때에 이런 일이 터진 것이다. 게다가 계엄사령관이 그보다 상관이어서 그는 독립적으로 행동하지도 못하고 꼼짝없이 그의 명령에만 복종해야 하는 처지다. 이런 상황에서 또 결단을 내리려니 미칠 노릇이겠지.
사실 그의 고민은 얼마 안 가 간단히 해결된다. 프리몬트 연대지도자가 곧 돌고래들을 전부 죽여 버릴 것이고, 그 뒤에는 시체의 도시가 된 바서슈와인이 자유를 되찾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모르고 있다.
아무튼 그가 스스로의 처지를 비관하거나 말거나 상관없었기에 우리는 답을 기다렸다. 결국 허락이 떨어졌다.
“단!”
아인하르트 상급돌격대지도자가 말했다.
“나도 동행한다.”
예상 범위 내의 반응이었다. 그 뒤 그가 조그맣게 덧붙인다.
“게슈타포가 어떻게 수사하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그쪽이 본심이었나.
우리는 설계도의 복사본을 받았다. 그때 있었던 사람들의 위치를 표시하면서 물었다.
“혹시 숨겨진 비밀통로 같은 거 있습니까?”
“없어.”
그가 딱 잘라 말했다. 우리가 지그시 바라보자 그는 못마땅한 얼굴로 말했다.
“사실 있어. 비상시 문서를 대피시킬 통로가 있기는 해. 딱히 그렇게 비밀스러운 건 아니다. 영관급 이상 장교들에겐 열린 정보니까. 하지만 하급돌격지도자가 아는 건 불가능해. 그리고 거기는 한 번 열리면 반드시 흔적이 생기고, 확인 결과 최근 몇 년 동안 열린 적은 없었어.”
그렇게 말하며 끝끝내 비밀통로는 알려주지 않았다. 우리는 그쪽에 대한 미련을 버렸다.
얀츠가 보통사람이라면 적어도 탈출경로 정도는 찾기 쉬웠을 것이다. 죽은 사람의 위치를 선으로 이으면 되니까. 하지만 얀츠는 변장과 살인을 번갈아 사용한 모양이었다. 그가 탈출하는 과정에서 죽인 사람들의 위치는 일관성이 없었다.
“그런데 왜 이들이 문서보관소에 들어온 거죠?”
기존 유지병단 인원이 아닌, 새로 들어온 아인자츠그루펜 대원들을 가리키는 거였다. 그가 말했다.
“여기에 새로 넣을 문서가 있다고 이곳에 주둔했다더군. 문제는 우리에게 인계하지 않고 자기들이 직접 넣겠다고 고집을 부렸어. 결국 몇 명을 안에 들였지.”
프리몬트는 연대지도자이고 아인하르트는 상급돌격대지도자이다. 단장 부재 시 그가 결정권한을 갖는다지만 역시 계급이 깡패였다.
“특수부대들이 배타적이고 비밀 지킨다고 지랄··· 실례했군. 아무튼 보안이 철저한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사람들은 특히 심했어. 자기들 명칭이 뭔지도 가르쳐주지 않더군. 안전하다며 호언장담하더니 이딴 사고나 쳐버렸어.”
여기저기서 치이는 그의 애환이 느껴졌다.
사실 어떻게 나갔는지를 조사하는 건 의미 없었다. 하지만 이 단계를 건너뛸 수는 없었다. 그래야 수사하는 척을 제대로 할 수 있으니까.
우리는 사건 당일 발생지점(에니그마를 도둑맞은 곳)에서 반경 3.2킬로미터 이내에 있었던 친위대원을 모두 한 명씩 조사했다. 굳이 3.2킬로미터로 한 이유는 그래야 드루드 베커를 조사대상에 포함시킬 수 있어서다.
지루하지도 않던지 마지막 사람을 취조하는 것까지 흥미롭게 지켜 본 아인하르트 상급돌격대지도자가 물었다. 저기, 당신 굳이 여기까지 따라올 필요는 없지 않나요.
“설마 자네는···”
그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벗겨진 이마와 함께.
“얀츠가 친위대원 중 한 명으로 변장했다고 의심하는 건가!”
“한 60퍼센트쯤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왜 유지병단 사람들은 제외시킨 거지?”
“오래 속일 수 없으니까요.”
우리는 바서슈와인 지도를 짚으며 말했다.
“우선 범위 내의 시설은 총 넷입니다. 보관소, 유지병단 식당, 장례식장, 술집. 사실 식당이나 장례식장이나 술집 사람으로 변장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혼자서 수사하고 있기 때문에 한꺼번에 하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친위대 대상으로 하는 중이고요.
일단 가장 가까이에 있는 친위대를 생각해보자면, 유지병단은 바로 제외입니다. 비록 아르노 얀츠가 유지병단 출신이라 하더라도 내부의 인간관계를 알기에는 시간이 너무 흘렀습니다. 유지병단으로 변장하는 건 위험성이 너무 커요. 급하면 어쩔 수 없었겠지만 그랬다면 진작 들켰을 겁니다. 아직까지 들키지 않은 건 익숙한 특수부대로 변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거죠. 어디까지나 그가 친위대원으로 변장했을 때 이야기지만요.”
“그래서 결론은 어떻게 된 거지?”
“동선이 애매한 자가 10명 정도 있네요.”
그나마 범위를 압축했다지만 여전히 많은 수다. 아인하르트 상급돌격대지도자가 으음, 하며 곤란한 탄식을 자아냈다.
반면 우리는 10명을 골고루 살피는 척 하면서 드루드 베커의 동선을 살피고 있었다. 17시 26분에서 18시 37분까지의 행방이 묘연하다. 그 한 시간 동안 갈 수 있는 범위는 우리가 아까 잡았던 사건반경보다 더 넓다. 그리고 그 중에 토막사체가 발견된 장소가 들어간다.
그럼 도대체 왼팔은 어디 숨겼을까?
일단 우리는 드루드 베커의 사라진 1시간 11분 동안 갈 만한 범위를 수사하기로 마음먹었다. 역시나 호기심이 많은 아인하르트 상급돌격대지도자가 이유를 꼬치꼬치 캐물었지만 게슈타포를 질문으로 곤란하게 만들기는 상당히 힘든 법이다. 우리는 대충 대답해주고 사체를 안치해 놓은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이때도 아인하르트 상급돌격대지도자는 우리를 따라왔다. 우리는 경고했지만 막무가내였다. 어차피 우리는 그의 한참 하급자였기 때문에 그와 함께 안치소에 들어갔다.
“욱!”
그가 헛구역질을 했다. 일반적인 시체도 아닌, 참혹하게 뜯겨나간 시신을 보고 반응한 것이다. 우리는 그를 내버려두고 같이 들어온 의사와 함께 검시를 시작했다. 원래라면 우리는 편하게 의자에 앉아 검시관이 가져온 보고서를 읽으면 그만이었지만 바서슈와인에는 검시관이 없었다. 근처에 있는 의사 아무나 불러온 뒤 의사도 아닌 우리가 같이 동행해 살펴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 뒤론 의사와 함께 우리가 읽어볼 보고서를 같이 쓰며 시간을 보냈다. 그 과정은 재미없어 보였는지 아인하르트 상급돌격대지도자는 우리를 떠났다. 한참 후에 보고서가 완성될 무렵 저녁시간이 되었다. 장례식장을 나서던 우리는 입구에서 서성이는 사람을 보고 조금 놀랐다.
“라인스?”
라인스 중위가 웃으면서 말했다.
“이제 나오시네요.”
“여긴 어떻게 알고 온 거야?”
“물어보니 여기 있다고 하셔서요. 장례식장은 문서고 근처에 있고, 문서고 가는 길은 이미 알고 있으니까 찾아올 수 있었어요.”
“한 번 온 길을···”
말을 이으려던 우리는 바보 같은 짓이라는 것을 깨닫고 입을 다물었다. 딱 한 번 본 설계도의 길을 전부 외우고 몇 초 만에 미로찾기도 끝냈던 그녀다. 한 번 온 길을 그대로 외워서 찾아오는 것도 일이 아니겠지.
“저녁 같이 먹으러 갈까요?”
라인스 중위는 신분이 군인으로 밝혀진 뒤에는 문서고 근처에 있는 구내식당—구내라고 부르기에는 그곳이 문서고 건물 밖에 있었지만, 아무튼 친위대원들이 이용했다—에서 무료로 식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같이 먹으려고 우리를 기다린 걸까. 그러나 문을 나서서 오른쪽으로 꺾으려는 순간, 라인스 중위가 우리 소매를 살며시 붙잡았다.
“그 식당 말고요.”
“···다른 데를?”
“저도 오후 동안 놀고만 있던 게 아니라고요. 맛있는 데를 발견했어요. 같이 가요. 제가 살 거니까.”
“아,아냐. 그러지 않아도···”
갑자기 라인스 중위가 소곤거렸다.
“덕분에 헥사곤에서 무사히 탈출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렇게까지 말하자 우리는 어쩔 수 없었다. 우리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좋아서 팔짱을 꼈다. 아마 평상시의 도시였다면 제법 다정한 연인처럼 보일 자세였다. 하지만 계엄령이 내려진 바서슈와인은 무척 썰렁했다.
라인스 중위가 안내한 식당은 고급 레스토랑과 일반 가정식 식당의 사이에 있는 곳이었다. 조명이 은은했고 분위기는 조용했다. 시국이 시국인 이상 외식하러 나오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우리는 주위에 아무도 없고 종업원도 대화를 들을 수 없는 구석자리에 가서 앉았다. 우리는 조용히 물었다.
“라인스. 돌고래는 얼마나 힘이 세지? 인간과 비슷하다고 들었는데.”
“대체로 인간보다 약간 강한 정도죠? 그건 도이체스 부근에 사는 돌고래의 대부분이 큰돌고래니까 그렇죠.”
“팔을 뜯어낼 만큼 강한 돌고래도 있어?”
그러자 라인스 중위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밥 먹기 전에 할 만한 이야기는 아닌 거 같아요.”
“미안.”
“그 정도로 힘이 강한 돌고래라면 범고래 정도는 되어야 할 걸요.”
“범고래? 그건 고래잖아.”
고래 급부터는 변신능력이 있다 해도 질량이 너무 커서 제대로 된 인간 모습으로 변신할 수가 없다. 뭍으로 올라올 수도 없다.
“아뇨. 범고래도 돌고래에 속해요. 사실상 돌고래의 최고 한계에 속하죠.”
새로운 지식을 알았다. 물을 홀짝이자 라인스 중위가 물었다.
“뺨에 그것은, 지우는 기준이 있나요?”
전에 클로리스 중위도 똑같은 질문을 했었다. 그리고 우리는 대충 둘러대었지.
우리는 라인스 중위의 새까만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클로리스 중위와 달랐다. 그녀는 동지 중 한 명이었다.
“의식이야.”
이텔을 제외하고 처음으로 말을 했다.
“나를 구별하는 의식이지.”
우리는 그 이상 말을 하지 않았고, 라인스 중위는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식사는 맛있었다. 그동안 죽어라 혹사당한 탓에 맛있는 것도 먹지 못한 참이라 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기분이 좋아진 우리는 술을 사기로 했다. 라인스 중위가 술값도 내겠다고 했지만 이번에는 우리가 고집을 부렸다.
우리의 잔에는 얼음을 넣어 달라 주문했다. 라인스 중위는 그냥 마시기로 했다. 우리는 술을 자주 홀짝이며, 그러나 취하지 않을 정도로는 주의하면서 두 사람이 취기가 오르기를 기다렸다. 라인스 중위가 굳이 비싸고 주위에 친위대가 없는 식당으로 우리를 불러낸 목적을 듣기 위해서.
분명 목적이 있을 게 틀림없었다. 우리는 순수한 호의일 거라는 생각은 아예 하지 않았다. 그게 무엇이든 일단 들어 볼 가치는 있을 것이다. 마침내 라인스 중위가 힘겹게 입을 떼었다.
“사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우리는 미소를 지으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저쪽은 무엇을 제시할 것인가? 그러나 라인스 중위의 태도는 예상을 전혀 벗어난 것이었다.
그렇게 말해놓고도, 라인스 중위는 무척이나 머뭇거렸다. 그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앞으로 그녀가 할 말이 무엇이 되었든 우리 예상과는 전혀 다를 것이라는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한참을 시선을 피하며 우물쭈물하던 라인스 중위는 갑자기 얼굴이 눈을 질끈 감고 말했다.
“조, 조···”
“응?”
웅얼거린 탓에 무슨 말을 한 건지 잘 들리지 않아 반문한다. 그러자 라인스 중위의 얼굴이 순식간에 홍당무처럼 새빨갛게 물들었다. 라인스 중위가 이번에는 나도 알아들을 수 있게 말했다.
“좋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