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리고 너는 용이 되어-35화 (35/102)

2권 2장. 에리히의 방관-(6)

그리고 동시에 머리를 후려치는 생각.

—라인스를 어떡하지!

혼자였다면 공백에 대한 가장 핵심적인 서류만 담아서 유유히 나올 수 있을 것이다. 방어시스템이 엄청나게 위험하겠지만 그건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다. 목숨을 걸어야 할 때는 지금이었다.

하지만 라인스는? 라인스 중위와 함께 다니며 안 들키고 자료를 챙기는 게 가능한가?

좋아. 침착해지자. 상황판단과 위기를 헤쳐 나가는 기발한 발상이야말로 내 특기가 아니던가. 이번도 잘 헤쳐 나갈 수 있을 거다.

라인스 중위를 죽이고 혼자서 다닌다. 그럼 모든 위험요소가 제거된다: 기각! 어째서 처음 떠오르는 게 이딴 것이냐. 난 에리히가 아니라고.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에리히의 항의가 들려왔다. 자신을 살인귀 취급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라인스 중위를 떼어 놓고 다닌다: 이 수밖에 없다. 마침 발을 다쳤으니, 그걸 핑계로 여기 있으라고 한 다음—

“발이 다 나은 거 같아요!”

젠장할.

“무리해선 안 돼. 진통효과 때문에 잠시 괜찮아진 것으로 착각한 게 아닐까?”

“아, 아뇨. 진짜로 나았어요. 아까 인대 수복해주셨고. 격렬한 달리기는 못하겠지만 폐는 안 끼칠 수 있겠네요.”

그렇게 말하며 라인스 중위가 활짝 웃었다. 내 머릿속에서 선택지 2가 박살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럼 남은 건 1인데—

“소령님?”

나는 램프를 들고 있지 않은 손으로 뺨을 짝짝 때렸다. 뭐가 1밖에 안 남았다는 거냐. 선택지가 한정된 것처럼 보일수록 그 외의 해결책이 있는 거다. 섣불리 판단해선 안 돼.

“아무것도 아냐.”

어쩌면 그녀는 폐를 안 끼치려고 무리하는 게 아니라 진짜로 나았을 수도 있다. 돌고래들은 자연치유력이 뛰어난 것으로 유명했다. 생채기 정도면 몇 시간 뒤 흔적도 없이 사라질 정도라 한다. 이번에는 내가 마법까지 걸어 주었으니 더 가속되었겠지.

“아마 내 추측이지만, 이 건물의 설계도는 반드시 이 안에 있을 거야.”

헥사곤의 설계도다. 다른 데 보관해 두었을 리 없다.

“보안시설은 출구를 미로처럼 복잡하게 하는데 여기도 그럴지도 몰라. 길을 알거나 설계도를 알지 못하면 나가지 못할걸. 하나하나 헤매면서 돌파하는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시간이 없다. 최대한 효율적으로 빨리 찾아야 해. 그러니 우리는 각자 갈라져서 1층부터 하나씩 찾아보는 게 좋을 거 같아. 다행히 여기는 광장이 랜드마크 역할을 해주지. 불빛마법이라면 빌려 줄 테니까.”

라인스 중위가 곰곰이 생각하더니 말했다.

“둘이서 따로 찾으면 시간이 단축되겠지만 전 아무래도 같이 다니는 게 나을 거 같아요. 첫째. 저는 여기 보안시스템에 대해 모릅니다. 그대로 함정에 걸려들 거예요. 둘째. 설계도를 찾으려면 수많은 문서를 뒤져야 하는데 그러면 전 수많은 정보를 열람하게 됩니다.”

헥사곤은 수많은 ‘과거의’ 가장 더러운 비밀이 모이는 곳. 현재의 중요한 비밀—이를테면 중요 군사시설의 위치와 설계도 같은 것—은 없겠지만 헥사곤으로 흘러들어올 문서라면···

“문서라고 생각한 이유가 뭐야?”

“여기가 평범한 지하가 아니라는 건 알아요. 이런 방범시스템에, 위층도 존재를 모르는 공간···. 엄청난 기밀을 담고 있는 게 아닐까요. 기밀이라면 보통 기록물이고요. 그 이상은 상상력이 부족해서 잘 모르겠어요.

여기 있는 게 무엇이든, 제가 알아서는 안 될 것들이에요. 그리고, 그리고 전··· 조금 무섭네요. 알고 싶지 않아요. ‘들어오거라, 하지만 아는 자는 나갈 수 없다.’”

라인스 중위는 친위대의 유명한 격언을 말했다. 보통 보안이라는 것은 온 힘을 다해 침입자를 막는 쪽으로 발달하기 마련인데, 도이체스에선 특이하게 나가는 쪽에 더 신경을 쓴다. 그렇게 나가지 못한 자들은 잡혀가서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다. 초법적인 존재, 카이저가 있는 국가이니 가능할 것이다.

“무언가 문서가 있다면 반드시 소령님이 열람해야 해요.”

“어차피 나도 이 정도 기밀에 접근권한이 없는 건 똑같아. 하지만···”

어차피 우리 둘 다 제거될지도 모르니 그냥 서로가 입을 다물고 아무것도 안 본 척 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친위대원인 내가 부외자에게 기밀열람을 권장하는 모양이 되어 버린다. 더 이상 밀어붙이는 쪽이 수상쩍다.

라인스 중위가 어차피 입을 다물어야 하는 것을 이용해, 같이 다니더라도 그냥 맘대로 휘젓고 다닐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면 내 행적을 아는 사람이 한 명 더 생겨버린다. 말하면 라인스도 제 목을 찌르게 되겠지만, 친위대는 고발자에게 너만은 살아남을 수 있다고 희망을 심어주기도 한다.

“적어도 난 관계자고, 시스템도 알고 있으니, 그 편이 더 안전하겠지. 내 생각이 짧았어. 그래도 일단 밖에 나가면, 우연히 헤매다 탈출한 걸로 하자고.”

그렇게 나는 라인스 중위와 함께 가까운 문으로 가게 되었다. 나는 내 팔에 찰싹 들러붙어 있는 라인스 중위에게 말했다.

“그런데 이 자세는 뭐지?”

“부축 받는 거예요!”

“나았다며!”

“혹시 모르니까아?”

나는 착 달라붙은 라인스 중위에게서 빠른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이토록 적막한 공간이 아니었다면 미처 못 듣고 넘겼을 것이다. 돌고래 라인스에게 반응하는 내 심장도 같이 뛰고 있었다.

‘간질간질하네.’

이런 상황까지 오자 묘한 기분이 들었다. 아마 내가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루프트바페의 장교 식당에서 처음 라인스와 마주했을 때부터 운명처럼 사랑에 빠졌다고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내 신체의 반응조차도 관찰대 위에 올려두고 잠시 판단을 유보했다. 그리고 용에도 내 몸이 반응하는 걸 알게 되자 라인스 중위에 대해선 깔끔하게 치워버린 것이다.

사랑을 모른다. 연애를 안 해본 건 아니었지만, 그리고 나의 파트너들에게 최선을 다해 잘해주었지만 그녀들은 내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걸 견디지 못하고 떠났다. 나의 가식은 꽤 잘 먹혀들어간다고 자부했지만 이상하게도 사랑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그녀들은 나에게는 이미 누군가가 있다며 울었다. 그녀들은 도대체 나도 모르는 그 누군가를 어떻게 찾아낸 것일까. 몇몇은 나와 이텔이 서로 그런 사이인 줄 착각하기도 했는데,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면서도 나는 이것이 사랑과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텔은 나에게 정말 소중한 사람이었다. 이텔이 죽어 달라고 부탁하면, 아마 잠시 망설이겠지만, 죽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건 이텔도 마찬가지일 것이고. 하지만 그것이 사랑은 아니었다. 그러다보니 사랑이 무엇인지, 우정이 무엇인지, 그것을 구분 짓는 경계는 무엇인지 마음이 복잡해졌고, 그래서 몇 년 전부터는 누군가와 사귀는 걸 그만두었다.

나는 라인스의 증가한 심박수를 어떻게 대해야 할 지 갈피를 잡기 힘들었다. 내가 몇 분 전까지만 해도 라인스를 죽일지 말지 고민했다는 걸 생각하면, 더더욱 그랬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해지는 와중에도 우리는 첫 번째 층으로 올라갔다. 광장은 그저 광장일 뿐 벽면에 아무것도 없었고, 그 위층부터 차례로 문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었다.

“여기 구조를 보니 방범 시스템이 튼튼해도 방식은 구형일 거고 방치되었으니 아무도 업데이트를 안 해줬을 거야.”

그러면서 문에 손을 가까이 가져간다. 그러나 닿게 하지는 않는다.

“너는 이쪽에 한 번 봐줄래? 손 닿게 하지는 말고.”

쭈그리고 앉은 라인스 중위가 손바닥을 펴면서 말했다.

“뭐 하면 돼요?”

“마법이 있는지 감응해 봐.”

어떤 장소나 사물에 마법이 걸려 있는지 판별하는 마법이 있고, 그건 비싼 편이다. 하지만 내가 용기사란 걸 알게 된 이상 필요 없다. 감응해버리면 그만이니까. 마법이 걸려 있는지 판별하는 마법을 막는 마법도 있어서 아무것도 못 느낄 수도 있지만, 그건 2년 전에나 개발되었다. 그리고 여기 쌓인 먼지를 보건대 최소한 5년 이상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라인스 중위는 곧 집중하기 시작했다.

“왼쪽 세 번, U 회전, 교차흐름··· 래소네요. 그 다음, 비티카. 또···”

그러는 동안 나도 곰곰이 느끼고 있었다. 십 분 뒤 우리는 각자가 느낀 패턴을 이야기했다. 라인스 중위가 턱을 손으로 감싸며 말했다.

“무슨 마법인지 알 거 같군요. 복잡하지만. 정말 복잡하지만. 일단 카자타의 3대마법이랑 그 외··· 다 생략하고 아티크-네사-드쿠트를 포함하는 마법이 중간에 끼어든다면···”

“그게 저해제로 작용한다는 거지?”

“네! 맞아요. 사실 경쟁적 저해제 쪽도 두 개 있긴 했는데, 이 상황에서 여길 해주하려면 비경쟁적 저해제여야 하니까요. 혹시 그런 거 있어요?”

나는 라인스 중위에게 진심으로 감탄하고 있었다. 이렇게 똑똑하다는 건 알고 있지만 늘 새롭게 감탄 중이다.

경쟁적 저해제였더라면 문을 여는 데는 성공했겠지만 훗날 수색팀이 여길 점검하는 순간 우리가 수작을 부렸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거다. 반면 비경쟁적 저해제는 알로스테리 자리에 결합하니 우리가 아무것도 안 한 것처럼 속일 수 있을 거다. 정밀검사를 하면 들키겠지만 그러려면 시스템을 거의 파괴해서 분해해야 한다. 그때쯤에는 우리가 한 짓 정도는 티끌 정도로 보일 것이다.

마법 인식 마법만 사용해 개고생을 했던 지난날을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린다. 만약 그때마다 라인스 중위가 곁에 있었다면 난 이만큼 자료를 모을 때까지 반도 안 걸렸을 거다.

가지고 있는 마법이 워낙 많아서 기억의 서랍장을 끄집어내야 했다. 줄줄 읊으면 라인스 중위가 알아서 찾아 주겠지만 수상쩍은 마법이 워낙 많은지라 곤란했다. 결국 나는 10분 뒤에 하나를 찾아냈고, 그것을 발동했다.

문은 어이없을 정도로 쉽게 열렸다.

책장에서 피어오른 먼지 때문에 기침을 하며 말했다.

“이제부턴 무척 빨라지겠네. 최악의 경우래도 층마다 다른 정도일 테니···”

나는 묵직하게 등에 붙어 있는 가방을 생각했다.

좋아. 지금은 설계도만 찾는다. 그리고 나가기 직전에 가방을 두고 왔으니 다시 찾으러 가겠다고 하는 거야. 그 틈에 챙길 걸 챙기고 복귀한다. 늦은 이유는 길을 잃어서라고 하면 되겠지. 필요하다면 그녀의 다리에 몰래 상처를 입혀서라도 날 따라올 수 없게 한다. 그리고 돌아오면 라인스를 업고 완전히 나가면 돼.

라인스를 죽이자는 계획에선 내 양심이 격렬하게 반발했었으나 부상을 입히자는 생각엔 미동도 없었다. 불구로 만들겠다는 것도 아닌걸.

방은 일종의 서고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대충 훑어보며 무슨 주제를 다루는지 살펴보려는 찰나 라인스 중위가 갑자기 살짝 몸을 숙인 내 귀에 대고 말했다.

“소령님.”

나는 그녀를 옆에 두고 있었다. 내 등 뒤에 누군가를 맡겨두려고 하지 않는 성미 때문이다. 이런 때에서조차도 발동하는 내 편집증이 저주스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왜?”

“그런데, 아무리 우리가 몰래 다녀도 발자국이 남으면 끝나지 않아요?”

“괜찮아.”

나는 바닥으로 불빛을 향했다.

“바닥에는 먼지가 쌓이지 않았어. 원래 비밀문서고 시스템이 그래. 가장 먼저 하는 게 환기랑 바닥먼지 자동 제거야. 환기가 돌아가고 있다는 건 바닥먼지 제거도 돌아간다는 뜻이야. 뭐, 족적을 조사하면 들키겠지만—내가 이 방에 들어오면서 마법을 걸었거든. 발밑에 공기층을 형성하는 마법이야. 들어오면서 좀 바닥이 미끄럽다는 느낌을 받지 않았던가?”

라인스 중위가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네···!”

“이 방을 나가면 다시 해제할 거야. 그럼 복도에만 발자국이 남겠지. 아무것도 보지 않은 채 복도만 헤매다 나간 것처럼 말야.”

나는 장갑을 낀 손으로 서류를 빼냈다. 책장에 쌓인 먼지를 건드리지 않게 조심하면서. 라인스 중위가 멍한 목소리로 말했다.

“대단해요, 그 집요함과 편집증.”

“혹시 칭찬이라고 한 거니?”

“앗! 죄송해요! 그런 뜻이 아니라 그냥 소름끼칠 정도로 꼼꼼하시다고—”

“욕 맞잖아!”

무작위로 서류 몇 개를 뽑아들어 알아낸 사실은 우리가 들어간 방이 50년 전 사건을 다루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 건물 건설 당시의 서류고쯤에 설계도가 있을 것이다. 뭐, 처음부터 찾아내리란 기대는 안 했다.

그렇게 돌아 본 1층은 50년 전~25년 전까지의 사건을 다루고 있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라인스 중위가 불쑥 말했다.

“이런 식으로 중앙이 뻥 뚫린 건축양식은 15년 전 다고베르트 가르브가 처음 탄생시켰고, 그 뒤로 약 6~7년간 유행하다 급속도로 인기가 식었죠. 나머지 두 층이 25년을 다루고 있으니까 2층에선 곧장 끝쪽, 15년 전부터 시작하면 될 거 같아요. 그 이전엔 이런 건축양식이 존재하지도 않았으니까요.”

나는 그 말을 듣고 너무 기뻐서 그만 라인스 중위를 덥썩 껴안고 말았다. 황급히 실수를 깨닫고 팔을 놓았지만 이미 라인스 중위의 얼굴은 홍당무처럼 새빨개져 있었다.

“미안해.”

“괘괘괘괘괜찮아요! 소소소령님이라면 절 안으셔도! 이렇게 저렇게 하셔도!”

“뭘 이렇게 저렇게야! 날 뭘로 보는 거야?”

“돼,됐어요! 소령님은 바보니까!”

“윽···”

라인스 중위에 비하면 한참 바보인 건 틀림없기에 나는 말문이 막혔다. 나는 어색한 분위기를 없애기 위해 화제를 돌렸다. 사실 이쪽도 진심이었다.

“넌 정말, 정말로 내가 만나본 사람 중에 가장 똑똑해. 어떻게 그런 것까지 알고 있는 거야?”

“인간의 건축물에 관심이 많아서요.”

방금 아주 자연스럽게 ‘인간’이라고 지칭했다. 그러나 곧 정정한다.

“!파라 쪽은 제 맘에 들지 않더라고요.”

내가 찾는 건 13년 전의 사건. 수색범위 내에 들어간다. 잘 하면 미리 찾아놓을 수도 있겠다. 그럼 수고가 덜하겠지.

우리는 2층 끝쪽 복도로 걸어갔다. 육각형이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끝이 없지만, 여기는 계단에서부터 시작해 반시계 방향으로 시간 순이었다. 그 말은 계단에서 시계 방향으로 나오는 첫 문이 끝쪽 문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다시 한 번 더 문의 잠금마법을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다. 역시 1층과는 달랐다. 1층과는 달리 딱 들어맞는 저해제가 없었기 때문에 마법 두 개로 조금 꼼수를 부려 해제했다. 나는 문을 열면서 말했다.

“너희 집 사람들은 전부 똑똑할 거 같아. 아, 맞아. 너희 오빠는 기자라고 했었나?”

“네. 한스 오빠가 여길 보면 정말 눈이 튀어나갔을 거 같네요.”

“한스 윈터? 어디서 들어본 거 같은데.”

“흔한 성이고, 흔해빠진 이름이니까요. 그래도 스툰데 지에 소속되었으니까.”

“스툰데? 진짜 유명한 데서 일하는구나. 대단하다.”

“네. 지금은 몸을 크게 다쳐서 취재는 쉬고 있고 칼럼을 쓰고 있어요.”

“나는 플랫타이트 신문을 봐서. 아마 스툰데를 봤다면 바로 알아들었을 거 같네.”

도대체 저 이름을 어디서 들었더라? 라인스 중위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플랫타이트? 소령님이요? 그거 스툰데보다 더 좌파적인 신문이잖아요. 의외다.”

“오해하지 마. 나는 블라우 지도 읽으니까.”

블라우 지는 극우와 중도우파 사이 정도에 있는 신문이다. 즉, 전형적인 우파. 극우 쪽은 토나와서 읽지도 못한다.

“오오, 균형 잡힌 시선이라는 건가요!”

저 감탄하는 눈빛 부담스럽다.

“그냥 좋아하는 칼럼작가가 한 명은 플랫타이트로 갔고 다른 한 명은 블라우로 가버려서.”

“그래도 한쪽만 읽으시는 분보단 낫네요. 아무튼 신문기자는 대단하죠. 진실을 캐내고, 그걸 알리고. 그게 가족이라면 조금 반대지만요. 적이 많은 직업이니까.”

사실 라인스 중위가 말하는 기자는 소수다. 대부분은 국가, 특히 베르논 황태자의 선동에 휘둘리며 그와 같은 의견만 줄줄이 찍어내는 앵무새로 전락했을 뿐. 만약 그녀의 오빠가 정의감 넘치는 사람이라면, 상상도 힘들 고초를 겪게 된다.

나 같은 사람들로 인해서.

“소령님?”

“아, 미안. 잠시 다른 생각을 하느라.”

이제 기억났다. 나는 한스 윈터를 만난 적이 있다. 그는 4년 전에 정말 큰 사건을 찾아내 터뜨린 적 있었고, 그것 때문에 여단지도자~집단지도자(타군은 소장~중장)급 장성들이 몇 명 박살났고, 해군 대장 한 명은 옷을 벗어야 했다. 내부고발자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고, 노발대발한 상부는 당장 그 내부고발자를 잡아내라고 성화였다.

그렇게 해서 친위대가 한스 윈터 기자를 납치해 와 고문실에 가두었고, 그는 한 달 동안 내부고발자가 누구인지 입을 열지 않고 버텼다. 그래서 다른 부서였던 햇병아리 친위대원인 내가 배정되었고, 일주일에 걸친 고문 끝에 그 내부고발자의 이름을 알아낼 수 있었다. 그 이후는 내 관할이 아니라서 뒷이야기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내 기억으로는 한스 윈터의 외상은 전부 치료해주고 보냈었다. 제국 최고의 외상 치료 병원은 친위대 지하에 있다는 말은 진실이었으니까. 그가 취재를 못 다니는 건 신체가 아니라 정신에 새겨진 고통 때문일 것이다. 한스 윈터는 정말 지독한 사람이었고 그래서 나도 온 힘을 다해 일할 수밖에 없었다. 나중엔 그렇게 당당하던 사람이 돼지처럼 울부짖으며 유아퇴행 직전까지 간 것을 보고 고문의 힘에 진저리치기도 했었지.

그 상태에서 칼럼을 쓸 정도로 정신을 회복시킨 것만으로도 대단한 집념이었다.

“기밀문서고 밑에 숨겨질 정도로 기밀인 서류라면 정말 엄청난 것들이겠죠. 그걸 읽는 소령님 표정도 심상치 않았고요. 오빠는 반드시 밝혀내려고 애썼겠죠. 그리고 난 말렸을 거 같네요. 그렇게 하면 얼마나 크게 다칠지 상상도 하기 싫어서···”

라인스 중위가 코를 훌쩍였다.

“미안해요.”

“아니지. 네가 미안할 게 어딨어.”

나는 라인스 중위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있잖아, 라인스.”

나를 물끄러미 올려다보는 저 얼굴은, 조금의 다정한 말을 기대하는 것일까.

나는 말했다.

“한스 윈터에게는 여동생이 없어.”

그랬다. 그의 소중한 것도 전부 똑같이 해주겠다는 말에 마침내 그는 무너졌었다. 그의 부모님, 애인, 친구···

거기에 여동생은 없었다.

그는 외동아들이었으니까.

몸을 굽혀 그녀의 새까만 눈동자와 눈높이를 맞추며, 물어본다.

“너는 누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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