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리고 너는 용이 되어-34화 (34/102)

2권 2장. 에리히의 방관-(5)

그제야 아까의 그 소리가 환풍기 꺼지는 소리가 아니라 용병기의 방아쇠가 동작할 때 나는 특유의 소리라는 걸 깨달았다. 맙소사. 환기시스템이 용병기라서 그런 줄 알았는데!

나는 내 가방을 확 잡아당겼다. 초록 불빛을 마주보는 위치로, 라인스 중위의 앞을 막아서며 가방을 치켜든다. 그렇게 해서 가리는 부분은 심장부터 머리까지.

검은 가방에 가려져 있으니 당연히 앞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아주 약간 비스듬하게 가방을 든 탓에 가방에 명중한 초록불빛이 반사되어 천장을 스쳤다. 천장에 상처가 난 것처럼 빨갛게 달아오른 줄이 생겼다.

“지금 무슨···!”

“미안해 라인스!”

가방을 뒤로 멘 뒤 라인스를 번쩍 들어 올려 옆으로 몸을 날렸다. 엄폐물은 묵직한 책상 뒤. 발로 차 쓰러뜨리고 그 뒤에 숨는다. 나는 라인스를 조금 거칠게 내려놓고, 가방을 내팽개친 뒤 열어서 그 안에 있는 용병기, 정확히 하면 용병기였지만 방아쇠를 떼어버렸으니 평범한 마력물질이 된 것을 꺼내어 착용했다. 천천히, 천천히. 서두르다가 일을 그르치면 안 된다. 그러면서 해설.

“열추적 레이저 방범장치야!”

나는 라인스 중위를 감싸듯 웅크렸다. 가방을 멘 등이 책상에 닿도록.

“여기는 앞으로 두 번이 한계. 문이 어느 쪽에 있었지?”

분명 열려 있는 문이 하나 있었다. 라인스 중위가 얼빠진 얼굴로 어느 쪽을 가리켰다. 나는 그쪽 방향을 확인했다.

“저건 7초 간격으로 레이저를 발사한다. 그리고 7초만에 내가 널 업고 문까지 가는 건 불가능해.”

“그럼 어떻게 해야 하죠?”

“정면돌파!”

“미쳤어요? 꺄악!”

등에 레이저가 닿은 것을 느끼자마자 라인스 중위를 예고 없이 휙 들어올렸다. 달리는 데 6초. 아직 문과의 거리는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남은 1초. 마법을 발동시킨다. 아까 위에서 숱하게 했는데다가 용기사 일을 하느라 초고속 발동에는 이골이 나서 약간 시간이 남을 정도. 그러나 바로 발사하지 않고 뜸을 들인다.

7초쯤 되었을 때 원소-분자계 마법 ‘니조’가 발동. 그러나 조절한 탓에 화염방사기처럼 길게 늘어지지 않고 방구석에 불덩이처럼 보인다. 녹색 빛이 불덩이를 꿰뚫는다. 그러나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또 다른 곳에서 레이저가 뻗어 나와 서로 교차한다. 달린다. 6초쯤 되었을 때 드디어 문에 도달. 녹색 레이저가 내 머리를 날리기 직전에 방을 나서고 문을 있는 힘껏 쾅 닫았다.

위기를 넘긴 우리에게 오싹한 침묵이 찾아왔다.

나는 호흡을 고르고 라인스 중위를 내려놓았다. 이번에는 최대한 부드럽게 내려 준다.

“열추적이라서 반대방향에 더 강력한 열원을 만들어 내 시선을 끌고 도망친 거군요.”

라인스 중위가 말했다.

“하지만 아까 가방으로도 막아졌잖아요. 그걸로 막았어도 되었을 텐데.”

“가방은 피탄면적이 너무 좁아. 그리고 아까 봤는진 모르겠지만 열원이 계속 잔류할 경우 다른 방향에서 또 쏘는 시스템이니까.”

“소령님 없었으면 그냥 죽었겠네요.”

라인스 중위가 절뚝거리며 섰다. 그녀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왕이면 밥 다 먹고 나서 저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배고프다고요. 물밖에 못 마셨지만.”

“나도.”

“4일이나 기다릴 수는 없겠어요. 그 사이에 물이 없어 죽을 테니.”

“물병 하나는 있어.”

내가 자주 들고 다니던 물병과 비슷하게 생겨서 무심코 넣어 버렸다.

“음, 그럼 우리 목숨이 조금은 더 연장되겠군요. 정 안 되면 다시 저 방으로 가면 되고··· 하지만 그건 최후의 선택으로 남겨두고 싶네요.”

“동감이야.”

나는 가방을 더듬거려서 손전등을 찾았다. 강렬한 빛이 뿜어져 나온다. 이것저것 조작하자 마치 램프처럼 사방에 빛을 낸다. 라인스 중위가 감탄하며 말했다.

“별 게 다 나오네요, 그 가방은.”

“빛을 내는 마법도 있는데, 그걸 계속 쓰고 있으면 반응이 느려질 거 같아서. 이게 꺼지고 최후의 수단으로 쓰자. 하지만 이 전등, 3일 정도는 갈 거야.”

나는 라인스 중위에게 손전등을 들어 달라 부탁한 뒤 착용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내가 가진 용병기들을 착용하기 시작했다. 대부분 치료용 용병기들이고, 그 외 잠입용으로 편한 것들, 그리고 공격용 하나. 현장에서 뛰는 사람에게만 준다. 원래라면 기밀문서고에 가지고 들어오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탐지시스템은 방아쇠만 추적했고, 나는 미리 방아쇠를 다 떼어놓은 상태였기에 그냥 통과할 수 있었다.  그 외에도 내가 직접 개조한 특수장갑을 낀다. 그 장갑에는 조그마한 인조 다이아몬드가 안감에 촘촘히 박혀 있다. 모두가 마법 하나씩 담고 있는 마법물질이었다. 용병기를 밀수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지만 마법물질은 좀 더 쉽다. 그리고 나는 이런 짓을 하며 살아남으려면 가능한 한 많은 마법이 필요했다. 다들 소모품이니 쓸 때마다 돈 깨지는 소리가 들리지만. 이텔이 사치하지 않아 남아도는 사적인 품위유지비를 조금 떼어 지원해주었지만, 그래도 남의 돈을 펑펑 쓰는 것은 양심에 찔린다.

그렇게 말하던 나는 라인스 중위가 내 가방을 살펴보는 것을 깨달았다.

“엉망으로 되었네요. 금속판도 우그러졌고. 무슨 금속이에요?”

“납이야.”

“그래서 막아낼 수 있었나보네요··· 근데 웬 납?”

“가방으로 뭘 후려칠 일이 있을 때 좋아.”

내가 돌려 말하는 사이 라인스 중위는 금세 내 가방에 흥미를 잃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램프 형태로 광원을 바꾸었는데도 천장이 생각보다 높다.

“조명탄 쓸게.”

나는 손을 들어올렸다. 원소-분자계 마법 ‘디트’가 발동, 이 공간을 빛으로 가득 채운다.

우리는 광장에 있었다.

3층 정도 높이까지 천장이 위에 있고, 광장을 빙 둘러싸는 구조로 층이 있다. 복도개방형이다. 대형 도서관에서 자주 쓰는 건축양식이다. 광장은 원형이 아닌 육각형. 라인스 중위가 전체를 죽 둘러보더니 말했다.

“벌집 같네요. 육각형(Hexagon)이라니.”

그 말에, 들고 있던 손전등-램프를 떨어뜨릴 뻔했다.

헥사곤.

나는 친위대로 일하며 여러 가지의 비밀들을 훔쳤다. 그 비밀들은 그렇게 큰 게 아니었다. 특정 시기에 어떤 부대가 움직였다는 것, 어떤 사람이 체포되었다는 것. 그런 사소한 사실들이 커다란 데이터로 모이면—새로운 정보가 탄생한다.

그렇게 해서 나는 『공백』에 접근한다.

내 어머니 행세를 하고 있는 『살인자』, 우나 브라운은 혼혈임에도 !파라 내에서도 최상위 등급에 속하는 전사다. 당시, 내가 아직 에리히 아벨이었을 때, 아벨 가문에 소속된 가족은 날 제외하면 다섯. 게다가 당시 브라운은 젊었다. 전사로서 최전성기를 보내고 있을 때다. 그녀라면 그 다섯을 죽이는 것은 일도 아니다. 쓸데없이 사람을 더 죽여 일을 키울 필요가 없다.

하지만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아직도 똑똑히 기억난다. 아니, 어쩌면 유일하게 기억나는 것일지도. 나는 그 때 대저택의 지붕 위에 앉아 있었다. 무엇을 보기 위해서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별을 볼 수 있는 시간도 아니었지만 어째서인지 올라가 있었다. 그러다가 저택 입구로 다가오는 인영을 보았다.

내가 꼬마였음에도 그 사람이 키가 작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왜 그랬을까, 그녀는 그저 걸었을 뿐인데 주위와 조금 달랐다. 그러나 그녀가 지나쳤을 뿐인데 갑자기 경비의 머리가 폭발하고, 큰 저택의 문이 저절로 열리는 순간 나는 공포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었다.

숯처럼 까만 흑발에 흰 피부를 지닌 젊은 여자는, 그 하얀 피부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피투성이였다. 남의 피로 얼룩진 여자는 위를 올려다보았고, 지붕 위에 앉아 있는 나에게 싱긋 웃었다. 무시무시한 악귀의 모습인데도 너무나 아름다웠다.

그리고 여자는 사람들을 죽이기 시작했다. 한 명이었다. 단 한 명에게 모두가 죽었다. 여자는 용병기와 신체와 칼을 이용해 자르고 베고 찢고 우그러뜨렸다. 압도적인 강함이었다. 압도적인 아름다움이었다. 나는 그 둘 다를 이전엔 본 적이 없었다. 그녀의 몸짓은 춤을 추는 것처럼 우아했다. 그 우아한 몸짓이 스치는 길에는 오로지 죽음만이 있었다. 분명 진저리쳐질 살육의 현장인데도, 나는 그녀에게만 홀려 있었다.

마침내 저택이 조용해졌을 때, 나는 곁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려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천천히 돌아보니, 그 여자가 지붕 위에서 완벽하게 균형을 잡은 채 내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앉아 있는 나와 내려다보는 여자의 시선이 교차했다. 나는 처음으로 그녀의 눈동자를 볼 수 있었다. 숲 같은 에메랄드빛 눈이었다. 악귀라기엔 믿기지 않는, 어쩌면 악귀의 광기가 스며 있기에 더 아름다운 눈이었다.

여자가 붉은 입술을 열었다.

“며칠 전에, 어떤 소년이, 아벨 가문의 숙청을 경고했다지. 물론 사생아의 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여자의 목소리는 통통 튀는 은구슬처럼 맑고 깨끗했다.

나는 악마에 사로잡힌 것처럼, 오직 그녀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떨리지도 않았다. 두렵지도 않았다.

“그리고— 나는 지금 여기에 있다. 아이야, 너는 아랑인 것이냐? 그래서 예언해냈니?”

“그렇지 않아요. 나의 아버지도 인간, 어머니 또한 인간. 예언은 아니었어요.”

그러자 그녀가 피식 웃는다.

“사내아이인데도 지금 이성을 유지하고 있구나.”

그녀는 엉뚱한 소리를 하고 있었다.

“정말 재미있어.”

그녀가 곧 환하게 웃었고, 나는 심장이 쿵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래, 어떻게 예측했니? 미리 정보를 입수한 거니?”

“그렇게 대단한 비밀은 아니었지만··· 그게 모이니 좀 무서운 사실이 되더라고요.”

“지금 몇 살이니?”

나는 열 살이었다.

“그게 중요한가요? 내가 구체적으로 몇 살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죠. 중요한 건 그저 내가 어리고, 정말 어리고, 아무 힘이 없는 아이라는 것이죠.”

나는 그녀의 피 묻은 칼날을 바라보았다. 이제 곧 저것이 나의 목숨을 가져갈 것이다. 하지만 그녀라면 죽어도 좋을 것 같았다.

그녀라면—

“그건 그렇게 문제가 되지 않는단다.”

그녀가 몸을 숙여 나와 눈을 맞췄다.

“일단 살아 있으면 어떻게든 힘을 찾을 방법이 있겠지.”

그 말에 나는 처음으로 놀랐다. 나를 죽이지 않겠다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얼굴이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나는 심장이 미친 듯이 뛰는 것을 느꼈다.

“네가 마음에 들었다. 너에게 삶을 주마.”

바짝 붙은 그녀가, 얼굴을 틀어 내 귓가에 속삭였다.

“대신 너는 날 죽여라.”

그 말에 몸이 굳었다.

“나는 내 죽음의 방식은 스스로 선택할 거란다. 나의 죄는 너무 크고 깊어 나에게는 평범한 죽음이 어울리지 않지. 나는 모든 층위에서 완전히 죽고 싶단다. 너는 무슨 뜻인지 알아들었겠지?”

“그런 고된 일을 나에게 맡기려는 건가요?”

“네 목숨값이란다. 아이야.”

“비싸게 불러줘서 고맙군요.”

나는 일어섰다. 그녀를 바라본다.

“좋아요. 내 새로운 삶의 대가로, 당신을 죽이겠습니다.”

그렇게 나는 헤르만 예거라는 이름을 얻었고, 우나 브라운은 내 어머니가 되었다. 하지만 너무나 큰 선택이었던지, 아니면 그 일 자체가 열 살짜리의 뇌가 도저히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인지, 그 소년은 둘로 쪼개져 버렸다. 나는 새로운 삶을 받아 헤르만 예거가 되었고 다른 한 명은 과거의 삶을 놓지 않기 위해 에리히 아벨로 남아 있었다.

그 뒤 나는 왜 아버지가 숙청당했는지, 왜 브라운이 직접 나섰는지 기를 쓰고 찾아보았다. 게다가 그녀는 피칠갑을 한 채 정문으로 당당히 들어왔다. 저택에 오기 전 누군가를, 그것도 많은 사람을 이미 죽인 뒤라는 것이다. 죽은 게 우리 가족만이 아니라는 이야기. 그러다가 발견한 건 그때 관련된 기록이 모두 지워졌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없었다.

아벨 가문이 존재했다는 사실도, 그들이 머물렀던 지역이 어디인지도, 그 참살사건이 있었다는 것 자체도.

설상가상으로 내 기억에도 구멍이 뚫려 있었다. 나는 그 사건 이전이 기억나지 않았다. 보통 사람들의 첫 기억은 5살 즈음. 그러나 내 시작은 언제나 열 살의 그 날이었다. 그 이전은 살아 있던 아버지가 나에게 정말 친절했다, 같은 이런 ‘정보’만이 남아 있을 뿐. 나중에 의사나 최면술사도 찾아가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너무 충격적인 사건을 겪으면 뇌가 기억을 지우기도 합니다.’라는 말을 들었을 뿐.

친위대에 들어와 더 본격적으로 찾아보아도 여전히 그 사건에 대해선 모든 기록이 사라져 있었다.

나는 이것을 『공백』이라고 부른다.

나는 공백의 단서를 찾기 위해 온갖 정보를 다 모았다. 그것은 내가 어떤 지적 승부를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공백에 관련된 모든 문서가 말소되어서 선택할 길이 이것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전쟁 전에 어떤 괴담을 듣게 되었다. 최고 등급 기밀문서 보관소에도 들여놓을 수 없는, 그러나 완전히 파기할 수는 없는 문서들이 가는 곳이 있다고. 역대 황제의 ‘비밀의 방’이라 불리는 곳이 있다고. 그 방의 이름은 헥사곤이라 했다.

우리는 지금 육각형 광장에 서 있었다. 기밀문서보관소에 숨겨진 지하, 최고 등급 보안시설, 오래도록 어떤 자도 왕래하지 않았던 곳.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별천지가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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