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리고 너는 용이 되어-33화 (33/102)

2권 2장. 에리히의 방관-(4)

이튿날, 나와 라인스 중위는 어제보다 더 빠른 속도로 용병기를 수리했다. 아무리 천천히 하려 해도 이미 숙달되어 버려서 어쩔 수 없었다. 그나마 급속도로 빨라지지 않은 건 갈수록 어려운 걸 고쳐야 했기 때문이다.

용병기였기에 우리는 마법의 ‘도입부’만 알아도 충분했는데, 우리는 용병기와 감응하면서 이 마법이 무슨 마법들일지 추측하곤 했다. 주로 라인스 중위의 독주에 추임새를 넣는 식이었다. 심심해하면서 우리를 지켜보던 드루드 하급돌격지도자가 질린 얼굴로 말했다.

“보안의 의미가 없잖아요, 이거.”

그러면서 라인스 중위 쪽을 곁눈질한다. 나도 그의 말에 동감하는 차인지라 말했다.

“오늘만 같이 하고, 나머지는 내일부터 내가 하는 게 낫겠는데.”

그러자 라인스 중위가 말했다.

“사실 전 친위대도 아니고··· 더 이상 아는 건 부담스럽기도 해요.”

친위대로서도 라인스 중위가 진짜 용기사인 건 밝혀졌으니 더 이상 붙잡아둘 이유도 없다. 라인스 중위는 그걸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아쉬움은 남아 있다. 도시에 갇혀서 아무것도 못하는 것보다 이렇게 아는 사람과 함께 용병기를 고치며 소일하는 편이 더 좋으니까. 나는 그에게 말했다.

“그럼 지금 가서 보고하는 게 어때? 어차피 우리는 10분동안 꼼짝없이 이 자세로 있어야 해. 쉬는 시간에 찾아뵈면 분명 싫어하실 테니까.”

일부러 가볍게 말하려고 주의했다. 마치 아무 사심 없이 염려하는 것처럼.

우리 두 사람은 기관부에 손을 연결한 채 붙잡혀 있는 상태다. 섬세한 기계에 꽤 손상이 가해졌고, 지금은 마력이 돌고 있어서 손을 빼낼 수도 없는 상태다. 그의 임무가 우리의 감시인 이상, 지금 우리가 허튼 짓을 할 확률은 낮았다. 적어도 그가 보기에는.

드루드 하급돌격지도자는 곧 결단을 내리고 나갔다. 하지만 유지병단 쪽 사람을 우리에게 한 명 더 붙여 두었다. 말은 보조라지만, 역시나 감시다.

나는 떠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고 있었다. 시선을 돌리려던 찰나, 라인스 중위가 말했다.

“무슨 일이에요?”

“응? 뭐가?”

“아까, 무서운 얼굴을 하고 계셨잖아요.”

“아하하··· 피곤해서 잠시 그런 거 같네.”

실수다. 역시 에리히에게 맡겼어야 했나.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나도 모르게 적의를 대놓고 드러내 버렸다.

아무튼 그가 떠난 기회를 잡기 위해, 나는 본격적으로 집중해서 용병기를 수리하기 시작했다. 같이 있던 라인스 중위가 깜짝 놀랄 정도였다.

“생각보다 빨리 고쳐지겠는데?”

“역시 감응력이 좋으셔서 그런가, 반응속도가 정말 빠르네요.”

그러면서 라인스 중위는 보조를 맞춰갔다. 너무 앞서 나가봤자 라인스 중위가 못 따라오면 안 고쳐지니 나는 서서히 그녀의 속도보다 약간 빠른 정도로 조정했다.

그렇게 마법과 감응하던 중, 나는 갑자기 소름이 확 끼쳤다. 나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외쳤다.

“라인스! 당장 멈춰!”

“네···?”

그녀는 얼빠진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감응을 여전히 진행한 채로.

그 순간, 아주 조그맣게 엄청 높은 소리가 났다. 그러나 착각이었다. 소리가 작은 게 아니라 너무 높아서 내 귀가 조금밖에 듣지 못하는 거였다.

반면 라인스 중위는 온몸을 움츠리더니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용병기와 감응하고 있다는 것도 잊은 채 손을 강제로 빼내어 귀를 막는다.

돌고래들은 귀가 좋다. 초음파도 들을 수 있다. 인간인 나에게는 그저 신경 거슬리는 소리에 불과하지만, 돌고래인 라인스 중위에게는 견딜 수 없을 정도의 소음이다. 어차피 원래부터 초음파로 소통하는 생물이니 괜찮지 않냐고? 그러나 인간도 인간 가청주파수로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괴성을 귀가 터질 듯한 음량으로 들으면 괴로워하는 건 마찬가지다.

강제로 손을 빼냈기 때문에 라인스 중위의 손에선 피가 흐르고 있었다. 나는 반대로 손을 더 깊숙이 넣었다. 필사적으로 더듬으며 외친다.

“어딜··· 어딜 조작해야 멈추지? 여기요!”

문 바깥에서 대기 중인 유지병단 병사를 불렀다. 적어도 나보다는 이 기계에 대해 잘 알 것이다.

“이거 어떻게 멈춥니까! 드아리히 케스, 아티아까지 진행된 상태에요!”

“저···저는······”

힐끗 계급장을 보니 돌격병*이다. 젠장! 그럼 저 자는 단순 테크니션일 뿐 원리 같은 건 모른다!

(*상병)

라인스 중위가 거의 발작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외쳤다.

“빨리 데리고 나가요!”

그 말에 그가 황급히 이쪽으로 달려온다. 문지방을 타넘어 이쪽과 서른 걸음 정도 밖에 도달했을 무렵, 갑자기 이질적인 소리가 났다.

삑.

그건 돌고래까지도 갈 것 없이 인간도 충분히 들을 수 있는 소리였다. 그 이후로 미세하게 들려오던 고주파가 갑자기 끊겼다.

뒤이어 굉음.

저 돌격병이 다가오기 직전, 바닥에 금이 쫙 가더니 붕괴해 추락하기 시작했다. 기계를 지탱하던 바닥은 일부만 떨어졌기에 기계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무너지는 바닥에 있던 나는 황급히 그 기계를 움켜쥐었지만 손은 빠져버렸다. 날카로운 단면을 스치면서.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나와 라인스 중위는 끝없이 아래로 추락했다. 높이는 약 낮은 건물 3층 가량. 구멍으로 내리쬐는 보관소의 불빛으로 나는 점점이 흩뿌려지는 내 핏방울들을 볼 수 있었다.

나는 발로 착지했다. 골이 울렸다. 겨우 자세를 추스르려는 찰나 라인스 중위가 내 위로 추락하는 바람에 바닥으로 푹 꺾였다.

잠시 그렇게 포개진 채로 있었다. 먼저 정신을 차린 라인스 중위는 황급히 내 위에서 나왔다.

“소령님!”

사색이 되어 외친다.

“손바닥이, 손바닥이, 오, 세상에!”

나는 극심한 통증 속에서 턱짓으로 저 멀리를 가리켰다. 내가 항상 들고 다니던 검은 가방도 같이 떨어져 있었다.

“저거 열어서 3-4라고 적힌 거 빼내 봐.”

라인스 중위가 황급히 달려가 가방을 열려고 했다.

“악!”

라인스 중위가 걸으려다 주저앉았다. 이런, 발목이라도 접질렀나보지. 라인스는 가방까지 기어가서 잡았다. 내가 잠금장치를 안 해놓았기 때문에 라인스 중위는 힘주어 가방을 열었다.

틱.

“안, 안 열려요!”

“아, 맞아. 가방이랑 감응해 봐. 그럼 열릴 거야.”

내 목소리는 잘게 떨리고 있었다. 내가 용기사가 된 이후 나는 저 가방에 안전장치를 더했다. 아주 간단한 자물쇠 마법이었지만 내가 방아쇠를 없애 버렸다. 그러면 감응이 불가능한 남자는 죽어도 저걸 풀 수 없다. 너무 쉬워서 여자에게는 뚫린다는 단점이 있지만, 적어도 없는 것보단 나았다.

라인스 중위가 3-4를 들고 왔다. 스테인레스 스틸 반지로 인공 다이아몬드 4개가 박혀 있다. 방아쇠는 있지만 떼버렸다. 방아쇠는 모든 사람이 마법을 쓸 수 있게 해주는 대신 마력을 조금 소모한다. 용기사인 나에게는 하등 쓸모가 없는 물건이었다.

“거기엔 생명계 마법 ‘아트하렌-케이’가 있어. 발동원리는 사쿠하-리파-게히트-아스. 꽤 심각하게 베인 거 같으니까 그걸로 좀 치료해 줘.”

라인스 중위가 머뭇거리더니 말했다.

“베인 정도가 아닌데 이걸로는 부족할 거 같아요.”

“그래?”

“직접 보셔야···”

그래서 나는 고개를 들어 내 손을 봤다.

“이런 씨발.”

보자마자 욕설이 터져나왔다.

손이 세로로 세 줄 잘려 있었다. 손을 쫙 펼쳤을 때, 그 손가락 사이. 손뼈의 사이 부분이 절단되어 쩍 벌어져 있다. 그 절단선은 손바닥의 반 정도까지나 와 있었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그냥 극심한 고통 정도였는데 직접 보고 나니 견딜 수 없게 극심한 고통으로 바뀌었다.

“그럼 3-7 꺼내. ‘니히카트 데토레 즈조.’ 웬만한 절단부위는 그걸로 다 붙일 수 있으니까···”

물론 갓 생겨난 상처일 때 이야기이지만. 나는 갑자기 눈앞이 흐려지는 걸 느꼈다. 아니, 왜? 왜 내가 손바닥이 잘린 정도로 기절한단 말인가?

마치 미리부터 몸이 쇠약해져 있던 것마냥.

나는 3-7의 구동원리를 알려주자마자 정신을 잃었다. 확실히 이상했다. 오로지 고통만으로 기절한다기에는.

눈을 떴을 땐 내 몸에 담요가 덮여 있었다. 담요를 치우자 손의 움직임이 부자연스럽다. 보니 붕대가 칭칭 감겨 있다.

공기는 의외로 따뜻했다. 건조하고 따뜻한 바람이 맴돌았고, 위잉거리는 소리가 어디선가 들렸다. 그래서인지 얇은 담요 한 장만으로도 충분했다. 환기시스템이 동작한다면, 여기는 정식으로 존재하는 건물이라는 얘기다. 그런데 왜 계단으로 내려와 우릴 구하지 않는 걸까?

못 보던 꾸러미 옆에 앉아 있는 라인스 중위에게 말했다.

“안 해줘도 되었을 텐데.”

수없이 써봐서 안다. ‘니히카트 데토레 즈조’는 정말 효과가 뛰어난 접합마법이었다. 내 상처는 갓 생긴 상처였고 그 정도면 훌륭하게 붙었을 것이다. 붕대까진 필요 없을 정도로.

“그래도 그런 심한 부상이었으니까요.”

그렇게 말하는 라인스 중위의 오른발엔 발목에 부목이 덧대어져 있고 붕대가 감겨 있었다. 라인스 중위가 어깨를 으쓱했다.

“삐었어요.”

“다른 데는 괜찮아?”

“네. 이상할 정도로.”

나는 뻥 뚫린 천장 구멍을 올려다보았다. 높다. 천장 낮은 건물 3층 정도는 되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심각한 부상이 없었다. 내 손이 있지만 그건 고려하지 않기로 하자. 기계에서 떨어져나가며 생긴 부상이니까. 이 높이에서 어디 부러지지 않고 발만 삐었다면 정말 큰 행운이다.

“아마 전 소령님 위에 떨어져서 그런 것 같아요—어째서 소령님은 손 빼고 전부 무사한지는 모르겠지만요.”

3층에서 떨어졌는데 발만 좀 저린 데 그쳤고, 3층에서 떨어지는 사람을 몸으로 받아냈는데도 어디 골절된 데도 없다. 어째서일까? 내 엿같은 인생에 찾아온 행운일까?

“주무시는 사이 위에랑 고함지르기 대회를 했는데요.”

라인스 중위가 말했다.

“구조대를 보내줄 거지만 지금은 추가인원을 보충할 시간이 없어서 4일 후에 보내준대요. 그래서 손전등이랑 담요랑 식량이랑 이것저것 던져주고 가더라고요.”

라인즈 중위가 꾸러미들을 가리켰다. 그리고 그 꾸러미 한 켠에는 내 가방이 얌전히 놓여 있었다.

내가 가방을 다시 열어 라인스의 발목에 치료마법을 쓰는 동안 라인스 중위가 가방을 흥미롭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그런 게 들어 있을 줄은 몰랐어요. 저거··· ‘게슈타포의 상자’ 맞죠?”

“맞아. 들어 있는 게 세간의 인식과 달라서 놀랐지?”

“좀 더 무시무시한 게 들어 있을 줄 알았어요.”

사실 무시무시한 것도 들어 있지만 말하지 않기로 했다.

“응급 상황이 생겼는데 주위에 의사가 없으면 게슈타포를 부르면 돼. 친절한 게슈타포가 웬만한 응급처치는 해줄 거야.”

“친절한 게슈타포라니 문법적으로는 전혀 하자가 없는데 왜 이렇게 잘못된 문장 같죠?”

“착각이야. 우리가 얼마나 선량한데. 자, 됐다.”

발목을 움직여보려는 라인스 중위에게 손짓으로 막으며 말했다.

“뼈는 문제가 없는 거 같아서 인대 수복 마법이랑 진통마법을 걸었어. 하지만 완치는 아니니까 그래도 조심히 걷는 게 좋아. 아마 한결 나을 테지만.”

“정말 한결 나아요. 고맙습니다.”

“뭘. 난 친절한 게슈타포니까.”

그러자 라인스 중위가 킥킥 웃었다.

4일 후라. 집행일 근처다. 라인스 중위가 학살을 목격해봐야 좋을 일이 없으니 이 기회에 잠시 치워놓겠다는 속셈인 것 같았다.

꾸러미는 두 개가 모여 있었다.

“아마 밥···이라고 준 거 같아요.”

“친위대 전투식량이야. 사이즈를 보아하니 행군용 전투식량(Marschverpflegung). 개당 4일씩 버틸 수 있어.”

용기사는 하늘 아니면 기지에만 머물러 있다보니 전투식량을 먹을 일이 적다.

그 말을 한 순간 갑자기 배가 고파졌다.

“일단 먹자.”

우리는 각자의 꾸러미를 풀었다.

우선 700~750그램의 빵 하나. 왁스를 입힌 종이에 포장되어 있다. 라인스 중위는 뒤에 금속박을 입힌 종이로 싸여 있었다.

200~300그램 가량의 고기류. 우리 둘 다 부어스트*가 나온다.

(*소세지)

125~175그램의 야채. 보존 처리가 된 야채일 경우 50그램.

5그램의 커피. 5그램의 설탕. 여섯 개비의 담배.

“쇼카콜라도 있네요!”

커피를 함유한 초콜릿. 다 먹으면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걸로 끝나지 않는다. 작전시에도 한 번에 한 조각씩만 섭취하라고 지침이 내려와 있다. 극한의 각성을 요구하는 보직, 이를테면 용기사 등등에게 보급되기도 한다. 전시보급품치고 맛도 준수한 편이라 은근히 맛들린 사람이 많았다. 나는 물병을 무심코 가방에 하나 넣은 뒤, 다른 하나를 집어들었다.

“좀 건조하네.”

텁텁한 물을 목구멍으로 넘기며 말했다.

“라인스, 저거 잠시 꺼줄래? 난 어디서 켜는지 몰라서.”

“뭘요?”

“어디선가 돌고 있는 온풍기 있잖아.”

나는 그렇게 말하며 빵을 집어 들었다. 뻣뻣한 손으로 이것저것 해보려는 순간, 갑자기 소리가 났다.

아주 미세한 소리. 톱니바퀴가 서로 맞물리면 저런 소리가 날까, 싶다. 그와 동시에 더운 바람소리도 멎었다.

“소령님···”

구멍으로 쏟아지는 빛을 받고 있는 라인스 중위의 얼굴이 창백했다.

“전 온풍기를 켠 적이 없어요.”

“그렇지만 너 말고 누가 켜? 처음부터 켜져 있지는 않았을 거 아냐.”

우리가 있는 공간은 삭막한 방이었다. 얼핏 둘러본 책상과 의자에는 두터운 먼지가 쌓여 있었다. 아주 오래 전부터 아무도 관리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그러니 처음부터 온풍기가 켜졌을 리가 없다. 라인스 중위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방금은 누가 끈 거죠?”

순간 등줄기로 차가운 느낌이 후욱 타고 내려갔다.

“···분명 여기 우리밖에 없죠?”

나는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일 수가 없었다. 그저 라인스 중위의 시선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거기엔 못 보던 녹색 불빛이 점멸하고 있었다.

천천히, 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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