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리고 너는 용이 되어-32화 (32/102)

2권 2장. 에리히의 방관-(3)

어째서인지라고 물으면, 그냥 알 수 있었다. 사실은 난 오래 전부터, 루프트바페에 있었을 때에도 돌고래를 구분할 수 있었다. 다만 그때는 일부 돌고래가 사람과 거의 똑같이 변신할 수 있다는 걸 몰랐기 때문에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을 뿐.

일단 가장 파손이 덜한 용병기로 향했다. 내부가 망가진 건 우리가 도와줄 수 없는 문제였다. 나는 그쪽으로 다가가다가, 잠시 멈칫하며 라인스 중위에게 말했다.

“네가 먼저 해 줄래?”

약간의 의문을 담은 검은 눈동자가 나를 올려다본다. 이제 자세히 보이는 그녀의 눈은 아주 새카맸다. 무엇이 동공이고 무엇이 홍채인지 구별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돌고래의 피부색과 같은 회청색 머리카락. 나는 덧붙였다.

“마법은 네가 훨씬 위니까, 더 잘할 거 같아서. 시범을 보여줬으면 좋겠어.”

“너무 기대하지 말아요, 소령님. 저도 처음이라고요.”

“괜찮아. 넌 맨땅에서 VX가스도 만들어냈잖아.”

라인스 중위가 싱긋 웃더니 방아쇠가 부서진 용병기에게 다가갔다.

“이게 방아쇠인 건가요. 알려주지 않았더라면 전혀 몰랐을 거예요.”

고대 용병기—칼, 창, 활 등의 냉병기—는 방아쇠가 무척 크고 뚜렷하다. 하지만 마도공학이 발전하면서 방아쇠는 점점 축소되고 기계의 일부처럼 보였다. 모르는 사람이 함부로 다루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드루드 하급돌격지도자에게 물었다.

“아르노 얀츠도 유지병단 출신이라고 했었지?”

“예.”

그래서인가, 유달리 방아쇠만 망가진 용병기가 많은 것은.

용병기를 파괴하려면, 즉 용기사가 와도 못 쓸 정도로 파괴하려면 마법이 새겨진 코어를 파괴해야 한다. 그리고 무척 어려운 일이다. 하물며, 도이체스에서 가장 경비가 삼엄한 곳에서는 더할 것도 없다. 하지만 잠시 장치를 무력화하는 데만 목적을 둔다면, 방아쇠만 부수는 게 훨씬 효율적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못 찾고 그냥 기계를 때려 부쉈겠지만 얀츠는 유지병단이었다. 뭐가 방아쇠인지 정도는 구별할 수 있는 것이다.

“원래 유지병단 출신이라지만, 용케도 이렇게 삼엄한 곳에 들어왔네.”

드루드 하급돌격지도자가 말했다.

“사실 어떻게 나갔느냐가 더 미스터리죠. 친위대식 경비구조를 아시지 않습니까.”

뚫릴 수는 있어도 나가는 건 거의 불가능하도록. 어떤 식으로라든지 경비는 돈과 인력이 든다. 하지만 나가는 것만 잡아낸다면 그 수고가 훨씬 줄어든다. 침입자는 이미 기밀을 봤을지도 모르지만, 어차피 게슈타포가 잡아가 영원히 침묵시키니 상관없다. 물론 여기는 다른 친위대식 경비보다는 출입에 대한 경비를 강화했겠지만, 기본적으로는 비슷할 것이다.

나는 라인스 중위가 용병기를 만지는 동안 얀츠가 어떻게 도주했을지 상상했다. 그러다가 생각을 멈췄다.

‘난 또. 왜 소용없는 짓을 하고 있지.’

그럼에도 내가 이러고 있는 건 뇌에 박혀버린 수사관 사고방식 때문이겠지.

“됐어요!”

라인스 중위의 목소리가 내 상념을 깨뜨렸다. 그녀가 우리를 돌아보며 말했다.

“작동시켜도 되죠?”

나는 드루드 하급돌격지도자에게 눈짓을 했고,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라인스 중위가 용병기와 감응하자 복도 한가운데에서 회색 흙이 쌓이기 시작하더니 곧 벽이 되어 천장까지 도달했다. 라인스 중위가 감탄했다. 나는 감상을 내뱉었다.

“가짜 벽이군.”

만져보면 딱딱하다. 하지만 승인된 사람은 저 벽을 통과할 수 있다. 게슈타포로서도 많이 접했고 몰래 잠입해 기밀을 빼돌리면서도 많이 접했다.

라인스 중위가 쫙 편 손바닥을 들어 올려 내밀었다. 나도 손바닥으로 하이파이브를 해주었다. 경쾌한 짝 소리가 났다.

그 뒤로 용병기 수리는 천천히 진행되었다. 마음만 먹으면 우리 둘 다 빨리 할 수 있었지만 라인스 중위는 서두르다 용병기가 고장날까봐 신중했고, 나는 문서고로 계속 갈 핑계가 필요해서 천천히 했다. 저녁이 될 때쯤에야 나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난 어디서 자?”

그러자 드루드 하급돌격지도자가 난처한 얼굴이 되었다.

“죄송합니다! 전달해드리는 걸 깜박했네요. 저분이랑 같은 여관에서 묵으시면 됩니다. 지금 장교숙소가 만원이어서 일부 장교님들은 바깥에서 주무세요. 방은 제가 묵고 있는 방으로 오시면 되고 요금은 저희가 지불합니다.”

“다인실이야?”

“2인 1실입니다.”

어째서 나는 2인 1실의 마수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일까. 행동을 더욱 조심해야 한다. 단순히, 내가 하는 수상쩍은 행위를 들킬까 봐 이러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가장 떠들썩한 반역자와 함께 밤을 보내는 건 꽤나 스릴 넘치는 일이니까.

나는 드루드 하급돌격지도자의 푸른 눈동자를 스쳐 보았다.

그는 돌고래다. 인간과 완전히 똑같은 모습으로 변신할 수 있는 돌고래.

알 수 있었다. 루프트바페에 있었을 때는 몰랐지만, 내가 라인스 중위에게 반응한 것도 그녀가 돌고래이기 때문이다.

나는 용에게서 항상 기묘한 감각을 느낀다. 그리고 길을 지나치는 돌고래 남자에게서도 똑같은 걸 느꼈다. 그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일단 인간이 아닌 고등생물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나는 !파라와 아랑에게선 한 번도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이 없다.

그들의 두 번째 공통점은, 현생생물 중 유일하게 모든 개체가 마법을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예언자도 일종의 마법사로 분류되지만 예언자는 아랑 중에서도 극소수라 내가 직접 접촉하지 못했다.

따라서 나는 마법을 지닌 존재와 반응하고, 용이 인간 크기로 변신하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에, 인간 모습을 한 사람에게서 그 감각을 느낀다면 곧 그자가 돌고래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어째서일까? 왜 나는 마력을 지닌 존재와 반응하는 것일까? 나는 평범한 남자가 아니었던가? 아니, 생각해보니 평범한 남자는 용기사가 될 수 없다. 하지만 왜?

일단 해결할 수 없는 의문은 접어두자. 라인스 중위에게선 원래부터 그런 느낌을 받고 있는 중이었지만 혹시나 얀츠가 그녀를 죽이고 껍질을 뒤집어쓰고 있을 가능성이 5퍼센트 정도 있었다. 그래서 용병기를 작동시키게 했다. 결과는 성공. 라인스 중위는 절대 아르노 얀츠가 아니다.

그리고 우리를 감시하게 된 드루드 베커. 이 자도 돌고래임이 틀림없다. 그런데, 그토록 희귀하고 비밀스러운 돌고래, 인간과 똑같이 변신할 수 있는 돌고래가 하필이면 아인자츠그루펜에 둘이나 있다는 건 말도 되지 않는다. 당연히 그는 드루드 베커를 제거하고 그의 껍데기를 뒤집어 쓴 아르노 얀츠이다. 아마 진짜 드루드는 죽었을 것이다. 친위대 중에 숨어들었을 수도 있다는 의심도 그들도 해볼 법했지만 시체가 발견되지 않았으니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생각을 마치고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 모든 추리는 나의 특수성, 즉 마력을 가진 존재와 반응하는 것을 토대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내 말을 믿어줄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범인까지 알아냈는데 가만히 있는다면, 또 어떻게 되어버리지? 1만 5천. 그들은 말 그대로 개죽음을 당할 것이다. 그리고 아르노 얀츠는 바서슈와인을 벗어나는 순간 탈출해 연합국 쪽으로 망명할 거다.

어떻게든 아르노 얀츠가 범인이라는 것을 밝혀내야 한다.

‘결국 게슈타포스러운 일이야.’

범인을 먼저 알아냈고 그를 잡아낼 단서를 추가로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드루드의 감시가 성가시게 여겨졌지만, 이제 보니 오히려 다행이었다. 게다가 같은 방을 쓴다. 내가 역으로 그를 감시하기 쉬울 것이다.

“후우—”

내가 한숨을 내쉬자 드루드 하급돌격지도자가 나를 바라본다.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좀 부서졌다지만, 제국에서 최고의 보안수준을 자랑하는 문서고에 가서 몰래 자료를 빼돌려야 한다. 동시에 범인이라는 증거까지 잡아내야 한다. 내 역량 밖의 일이다. 동시에 해내려면.

하지만 우선순위는 명확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이제 쉬고 싶으니까 빨리 가자고.”

살짝 걸음을 빨리 하자 드루드 하급돌격지도자가 속도를 높였다. 그는 내가 들고 있는 묵직한 검은 가방을 보며 물었다.

“거긴 뭐가 들었습니까?”

“글쎄다. 한 번 맞춰볼래? ‘게슈타포의 상자’에 무엇이 들었는지를?”

질린 표정을 한 그에게 웃어보였다.

“농담이야. 단기체류용 옷가지들이 있어.”

“아 그렇군요.”

“그리고 다른 것도 들어 있지.”

사실 간소화한 ‘게슈타포의 상자’나 다름없다. 일단 계몽결사를 조사한다는 핑계로 온 도시이니만큼 맨몸으로 오면 그게 더 수상할 테니까.

“그러니까 이 가방은 항상 들고 다닐 거야.”

“무거워 보이시는데···”

“그렇게 무겁진 않아. 아마 이곳에 비밀국가경찰 지부가 있었더라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겠지만, 여긴 유지병단을 제외하면 일반 경찰의 관할이니까. 거기다 맡기기도 영 그렇고.”

나는 그와 잡담을 하며 여관에 도착했다. 그가 안내한 2인 1실은 좁지만 아늑했다. 침대도 괜찮았다. 생각한 것보다 좋았다. 나는 가방을 쿵 내려놓으며 말했다.

“아, 그런데.”

쪽지에 무언가를 적고 있던 드루드 하급돌격지도자가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

“이번 임무는 뭔데?”

그가 의문스런 눈길을 보내자 부연설명했다.

“아까도 말했지만 아인자츠그루펜인거 알고 있고, 어쩌다 이 도시에 오게 됐는지 궁금해서. 아, 기밀이면 말 안 해도 돼.”

그가 어깨를 으쓱했다.

“이미 저희의 존재를 알고 계시니 상관은 없을 거 같네요. 저희는 크라쿠프로 가는 길입니다. 거기서 해로운 피를 처단하러 가는 길이죠.”

“국내에서 작업한 적은 있나?”

“아직요. 제가 알기론 저희 연대는 제국 바깥쪽만 취급하는 것 같습니다. 선배들이 국내에서 작전을 수행하는 연대들이 부럽다고 투덜댄 적 있었거든요. 바서슈와인은 어쩌다 들른 것 같습니다. 높으신 분들 마음은 잘 모르겠어요.”

나는 알려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드루드 하급돌격지도자는 오늘 비번이 아니었기에 나를 데려다 준 뒤 곧바로 떠났다. 나는 그의 빈 침대를 바라보았다.

“너 때문에 1만 5천명이 죽는 건 하나도 모르고 있구나. 그러니 저렇게 태연할 수 있겠지.”

하급돌격지도자급으로 낮은 장교에겐 바서슈와인 학살계획이 전달되지 않은 것 같았다. 아마 당일 알게 되겠지. 그때가 되어서야 얀츠는 비로소 자신의 선택의 결과를 알게 될 것이다. 어쩌면 신경 쓰지 않을 수도 있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에니그마를 훔쳐서 타국으로 망명하지 않는다.

당연히 그렇게 허술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면서도 나는 드루드의 짐을 뒤졌다. 친위대로 일하면서 느는 쓸데없는 기술이 몇 가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하나도 손 안 댄 것처럼 방 뒤지는 방법이다. 예상대로 수상한 물건은 나오지 않았다. 다만 조금 모순적인 흔적이 있었는데, 드루드 베커의 원래 습관과 아르노 얀츠의 몸에 밴 습관이 달라 생기는 괴리감 정도였다. 이 정도로는 증거로 채택될 수가 없다.

결국은 드루드 베커의 시신을 찾아내야 한다.

내가 범인을 밝혀내면 바서슈와인의 1만 5천명은 죽지 않을 것이다. 그의 말대로 이 연대는 국외에서만 작업하고, 바서슈와인 학살의 명분을 ‘범인찾기’로 들먹였으니 범인을 잡아버리면 자동으로 목적은 소멸된다.

반면 내가 밝혀내지 못하면 1만 5천명은 말 그대로 개죽음이다. 아르노는 유유히 탈출해 연합국에 에니그마를 팔아넘길 것이다.

그러니 최선을 다해 증거를 찾는다. 하지만 나에게는 문서고가 있다는 것도 기억하자. 내가 바서슈와인에 온 것은 기밀 때문이었으니까. 보안이 약해져 있고 정식으로 들어갈 기회까지 얻었다. 다시는 이런 기회가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내가 증거를 찾아내지 못해도 그저 할 수 없는 일이다. 나는 그 둘을 동시에 해낼 정도로 뛰어난 사람은 아니니까.

“만약 내가 실패한다면, 그래서 1만 5천명이 죽게 된다면.”

나는 안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전해져 온다.

손끝에 걸리는 권총의 감각을 느꼈다.

하지만 이 권총을 직접 쓸 일은 없었으면, 하고 바란다. 어차피 잡히면 사형이지만, 내가 직접 죽이는 것과 잡아서 넘기는 건 커다란 차이가 있었다.

나는 내가 최후의 수단을 쓰지 않을 정도로 강한 사람이기를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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