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리고 너는 용이 되어-28화 (28/102)

2권 1장. 한계-(3)

히데 프롬이 일깨운 대로 아직은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다. 한참을 더 가자 적룡 30여 체가 4시 방향에서 공격해 온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히데 프롬과 알비 하스를 비롯해 제1비행대대의 인원 대부분과 제3비행대대, 그리고 제25전투비행단의 비행대대 일부가 대열을 이탈해 적들에게 향했다. 게랄드도 그들의 뒤에 붙어 따라갔다.

누가 말하지 않았는데도 약속한 듯이 히데가 대장룡, 알비가 요룡이 되었다.

사신 2인조에 가려진 감이 있지만, 이 조합도 꽤나 훌륭했다. 히데는 다른 용기사에 비해 공격각도의 범위가 훨씬 넓은 저격수 타입의 공격 전문 용기사였다. 반면 알비는 어느 포지션에 넣어도 무난히 보조가 가능했다.

또한 알비의 파트너 용 발다는 꽤 보기 드문 파동계 마법을 구사하는 용으로, 순간적으로 자신의 위치를 속이는 게 특기였다. 그래서 상대가 히데의 표적이 되어 패닉 상태로 쫓겨 다니는 동안 알비는 조용히 다가가 뒤를 쳤다. 그렇기에 히데는 저격수, 알비는 암살자라는 이명을 얻었다. 어느 쪽이든 공포의 대상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알비는 이 셋 중에서 가장 마법을 자주 쓰는 편에 속했다. 보통의 공격기들은 기관총의 사거리와 꽤 비슷한 거리를 나아갔고, 마법은 머릿속으로 복잡한 연산을 해야 하는 반면에 기관총은 버튼 하나만 누르면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알비의 파동계 마법은 그 연산속도를 감수할 가치가 있었다.

제3편대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날고 있는 자들은 제1편대의 클로리스 슈타인과 엘로이제 마틴의 2인조였다. 그 둘과 적은 거의 동시에 서로를 발견했고, 정면으로 마주본 채 서로에게 기관총을 쏴대기 시작했다. 그들도 상대도 전부 사거리 내까지 진입했을 때 잠깐 총을 쏴본 뒤 급강하 혹은 급상승해서 전략적 우위를 잡으려는 속셈이었다.

사거리에 도달하기 약 20초 전, 바람이 그들에게서 적 쪽으로 불기 시작했다. 엘로이제는 좋은 생각을 떠올렸고, 클로리스에게 정면기동을 하지 말라고 신호하는 데 1초, 마법을 연산하는 데 약 10초를 소모했다.

거기서 약 1초 뒤, 엘로이제의 용 디드리카가 원소-분자계 마법 ‘카이’를 발동, 인공적으로 생성된 가장 유독한 화합물, 일명 VX를 생성해 냈다.

VX는 유기인계 신경가스로, 현 단계에선 오직 용만이 생성해낼 수 있다. 그리고 그 위력은 현재 군부가 개발하여 전쟁에서 써먹고 있는 다른 그 어떤 독가스보다도 유독한 물질이다.

엘로이제가 만들어 허공에 에어로졸 형태로 살포한 이 유독한 액체는 1세제곱미터·분당 0.1밀리그램만 노출되어도 죽음에 이르게 된다.

제1비행대대에서는 헤르만 예거와 라인스 윈터를 중심으로 마법 스터디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상용되는 모든 독가스 제조마법을 시험해보다 라인스 윈터가 고안해낸 메커니즘으로 VX 제조마법이 탄생하였다. 메커니즘 자체는 간단했지만 라인스가 화학과 마법 모두에 능통하지 않았더라면 개발해낼 수 없었다.

대부분의 원소계·생명계 용들은 웬만한 가스에는 끄덕도 하지 않고 대기중에서 가스를 탐지하면 주변이 순간 진공이 될 정도로 세게 공기를 흡입해 용기사를 보호한다. 용기사는 산소마스크를 쓰고 있지만 완벽한 방독면은 아닌 탓이었다.

그렇게 마법을 발동하다 잠시 틈이 생긴 쪽은 그 사이에 역공을 맞을 확률이 높았다. 그래서 차라리 강산이나 강염기를 썼으면 썼지 독가스는 잘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VX는 그것들과는 차원을 달리할 정도로 강력한 유독물질이었기에 용마저 한 번에 죽여 버릴 수 있다.

단, 상부에 보고한 결과 너무 위험하니 가능한 한 쓰지 말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하지만 바람만 완벽하게 불어준다면, 사거리 밖에서 격추시킬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었다.

이제 더 이상 정면으로 나아갈 이유가 없었기에 엘로이제와 클로리스는 급상승하여 고도를 높였다. 적룡에 탄 용기사들은 둘을 쫓아가려고 감응력을 움직였으나,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용이 반응하지 않았다.

에어로졸 형태로 분사된 호박색 유독물질을 전부 흡수한 용들의 의식이 끊겨버린 것이다.

용들은 극심한 고통을 느끼며 서서히 추락하기 시작했다. 여기엔 그들을 구할 아트로핀도, 옥심도 없었다. 엘로이제는 그들의 운명은 돌이킬 수 없음을 확인하고 기수를 돌렸다.

그렇게 조금 나아간 직후에, 대대원 통신 채널로 라인스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울리케!”

엘로이제와 클로리스는 거의 동시에 고개를 홱 돌렸다. 추락하는 용 중 하나가 저고도에서 비행 중이었던 제2편대원 울리케 한의 용과 충돌한 것이다. 용기사를 할 정도로 우수한 시력을 지닌 그들은 울리케가 즉사했음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울리케의 목은 충격으로 완전히 꺾여 있었다.

“안 돼··· 어떻게··· 저런······”

공황 상태에 빠진 엘로이제는 전진하는 것도 잊고 그 광경을 넋을 놓은 채 바라보았다. 곧이어 귓가로 클로리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불행한 사고다. 네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냐. 집중해! 지금도 적이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어!”

클로리스의 말은 아무 위안도 되지 않았지만, 엘로이제의 정신을 각성시키는 데는 성공했다. 아직 적이 남아 있었고, 또 그들을 표적으로 해 다가오고 있는 무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제2편대가 편대원을 한 명 잃는 동안 히데와 알비도 위기에 직면해 있었다. 눈앞의 적을 쫓아가려다가 다른 적에게 뒤를 잡혔기 때문이었다.

“7시 방향에 적! 총 4체! 프랑크!”

요룡인 알비가 외쳤다. 히데의 시력이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정면만 본 채로 뒤통수를 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평소의 히데라면 하지 않았을 실수였으나, 눈앞의 적이 너무나 유혹적인 위치에서 기동하고 있었기에 뒤를 살피는 것을 깜박했다. 히데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물었다.

“위? 아래?”

“위쪽!”

최악이다. 공중전에서 제일 최악인 게 6시 방향 뒤쪽을 잡히는 것이고, 두 번째로 최악이 위를 내어주는 것이다. 지금은 거의 둘 다 충족시키고 있는 상태다.

히데는 선택을 해야 했다.

“현재 시속 650킬로미터로 접근 중!”

알비의 말에 히데의 두뇌가 가속했다.

지금 고도는 거의 6000미터. 프랑크의 용이라면 카플랑 종에 속할 가능성이 높다. 그것을 감안하면 그들은 거의 한계 속도까지 밀어붙여 추격 중이다. 히데가 기동할 수 있는 방향은 직선·상승·하강·좌·우 중 하나. 그러나 직선으로 가서는 안 된다. 그러면 프랑크의 용이 바로 하강해 히데를 덮칠 것이다.

오른쪽은 안 된다. 현재 적은 7시 방향. 히데가 오른쪽으로 움직이는 순간 적은 히데의 6시 방향에 자리하게 된다.

그렇다면 남은 선택은 하나.

“왼쪽! 게랄드 너는 멀리서 엄호하거나 대기!”

그렇게 말하며 히데는 기수를 홱 꺾었다. 적이 발동한 원소-분자계 마법 ‘크리히’가 조종석을 아슬아슬하게 스쳐지나갔다. 직격을 간신히 면했을 뿐, 수천 도에 달하는 마법의 여열은 히데의 헬맷을 녹여 작은 구멍이 뚫리게 만들었다. 히데는 모발을 태우며 흘러내리는 액체 플라스틱 때문에 두피가 손상되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히데!! 괜찮아?”

알비의 목소리가 귀에 꽂혔다. 자기도 모르게 신음소리를 낸 모양이었다.

“괜찮아! 머릴 자르고 싶다고 말한 것뿐이니까!”

군용 치유마법은 절단된 손가락도 다시 자라게 해줄 만큼 뛰어나지만 머리카락을 길게 기르는 데까지는 허용해 주지 않을 것이다. 이제 히데의 머리칼은 엉덩이까지 온다. 자를 때도 됐지.

적룡은 이제 히데를 지나쳐 비스듬히 강하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알비의 바로 6시 방향을 잡은 탓인지 그녀는 강하를 멈추지 않고 오른쪽으로 선회하며 용의 추력을 높였다. 알비는 점점 적 기총의 사거리에 접어들고 있었다.

“쏘게 두고볼까보냐아아앗!”

알비가 기합을 내지르며 기수를 위로 올렸다. 곧이어 좌측선회. 그렇게 죽음의 영역에서 벗어나는 것처럼 보였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동체를 축으로 삼아 90도 회전한다. 횡전을 구사한 것이다. 알비의 용 발다는 배를 하늘로 드러낸 채 배면비행을 하고 있었다. 그 상태 그대로 강하. 뒤틀린 원을 그리며 바로 추격하던 적룡의 6시 방향에 도달한다. 상황이 역전된 것이다!

알비의 기관총이 불을 뿜었다. 예광탄이 적룡의 사출공에 맞았고, 나머지 총알들이 그 뒤를 따랐다. 큰 폭발음이 나며 용의 살점이 튀었다. 사출공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질은 인화성 기체다. 정통으로 맞으면 폭발할 수밖에 없었다.

멀리서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게랄드는 그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용기사의 세계였고, 에이스의 세계였다. 앞의 세 번의 출전에서 그들의 실력은 실감하고 있었지만, 다시 보아도 감탄이 나온다.

하지만 넋 놓고 볼 수만은 없었다. 게랄드의 아래쪽 12시 방향에 적룡이 둘 있었다. 좋은 위치였다. 적룡이 선회를 시도하면 위에서 찍어 누르면 되고, 강하하려면 그대로 추격하면 된다.

그렇게 결심한 순간 적룡 중 하나가 역회전을 하며 선회했다가 급격하게 우측으로 꺾었다. 뇌가 흔들릴 정도의 강력한 중력을 받았겠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견뎌내며 그녀는 게랄드의 뒤를 잡았다.

‘카플랑 종은 슈미트무트 종보다 속도가 빠르다. 그 점을 조심하지 않으면 안 돼.’

맙소사, 이런 거 가르쳐 줄 거였으면 그 빠른 카플랑에게 뒤를 잡혔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가르쳐 주셨어야죠! 게랄드는 비행교관으로 있었던 헤르만의 목소리를 원망하며 갈팡질팡했다.

그 순간, 헤르만의 심술궂은 미소가 떠오른다.

‘그 무엇이든지 약점이 될 수 있지. 그걸 잊지 마라. 완전무결한 장점은 없다. 완전히 똑같은 전장도 없어. 모든 건 상황에 따라 달렸다. 지상의 전투가 지형지물에 영향을 받는다면 이 공중전은 「상황과 위치」에 영향을 받아. 거기 잘 대처하지 못하면 도태되는 거다.’

각기 다른 날에 다른 상황에서 한 말이었지만, 게랄드의 뇌 속에서 그 둘이 퍼뜩 연결되었다.

게랄드는 기수를 올리고 위로 상승했다. 상승, 거기다 종의 차이. 둘의 간격은 미처 대처할 틈도 없이 순식간에 가까워졌다.

이건 몰랐을 거다! 게랄드가 이를 빠득, 악물었다.

가깝다고 능사가 아니다. 6시방향의 격추는 필연적으로 사출공의 폭발을 같이 데려온다. 폭발에 휘말리지 않으려면 적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카플랑은 슈미트무트보다 빠르다. 그 속도 때문에 게랄드에게 너무 가까이 붙을 수밖에 없다. 이 거리에서라면 사격은 불가능. 임시방편이라지만 당장 격추되는 건 면했다. 이 추세라면 저 적룡은 게랄드를 추월해 버린다!

그러나 적룡도 임기응변이 상당한지 ‘빠른 속도’라는, 지금 와선 약점이 되어버린 것을 극복하기 시작했다. 게랄드의 비행경로를 축으로 삼아 용수철처럼 나선을 그리며 게랄드를 쫓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속도는 아까와 똑같았지만 비행거리가 늘어났기 때문에 적룡은 이제 게랄드와 점점 거리를 벌리고 있었다.

‘좋은 선택이지만 네 뜻대로 되진 않을 거야. 일단 넌 날 조준할 수 없어. 스스로 나선으로 움직이며 조준하기는 불가능할테니까.’

아까 전에 나선 하강하는 적을 나선 하강하면서 격추시켰었지만 전투가 주는 흥분감 때문에 새까맣게 잊어버린 게랄드였다.

게랄드는 이 지루한 추격전을 계속 할 수도 있었다. 방향을 바꿔서 국면을 바꿔볼 수도 있었고, 속도를 바꿔볼 수도 있었다. 어쨌든 영원히 이 꼬리잡기를 계속할 수는 없었다. 이 각도로 상승하며 계속 고도를 올려갈 경우 결국은 실속한다. 그리고 그것은 더 위쪽에 있는 게랄드에게 발생할 확률이 높았다.

게랄드는 속도를 늦추는 편을 택했다.

도박이었다. 게랄드의 조종술이 조금이라도 어긋나는 순간 먼저 실속해버릴 것이다. 하지만 실속의 부담감은 저 적 쪽이 더하다. 적은 연속 횡전으로 용수철 궤도를 그리며 게랄드를 쫓아오고 있다. 꽤나 불안정한 상황. 게랄드가 속도를 늦추면 다시 거리가 너무 가까워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적도 속도를 늦출 수밖에 없었다. 실속의 부담감은 저쪽이 두 배로 지고 있었다.

적은 결국 속도를 더 늦추지 못하고 게랄드를 추월했다. 게랄드는 방아쇠를 쥐었다. 적은 어렵게 기동하고 있었지만, 적어도 나선 하강하면서 나선 하강하는 적을 맞추는 것보단 나았다. 게랄드는 방아쇠를 눌렀다. 굉음이 울리며 기관포탄이 적룡을 마구 때렸고, 적룡은 피를 흩뿌리며 격추되어 추락하기 시작했다.

한숨 돌린 게랄드는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히데와 알비는 대장룡-요룡 대형을 유지하지 못하고 서로 흩어져 있었다. 하늘에서 난전이 벌어지는 탓이었다. 수많은 용이 가상의 구형 결계 내부에서 기동하는 모습은 마치 2차원의 콜로세움 경기장을 3차원 입체 방식으로 구현해낸 것 같았다.

히데는 한 마리에게 쫓기면서도 적들을 하나하나 격추시키고 있었다. 무시무시한 저격술이었다. 문제는 알비였다. 알비는 두 마리에게 동시에 쫓기고 있었다. 알비는 신들린 ‘암살’기술로 악명을 떨치고 있었지만, 암살의 허점은 기습에 실패한 순간 더 역공을 받기 쉽다는 것이다. 알비의 파트너 용 발다가 사용하는 파동계 마법은 도주에도 능했지만, 두 명에게 동시에 견제받고 있는 지금으로선 벗어나기가 어려웠다. 그 두 대는 더 쉬운 위치에서 지나가고 있는 도이체스군을 보고도 지나쳐갔다. 아예 알비를 확실히 죽여 버리기로 작정한 것 같았다.

게랄드는 다시 히데를 힐끔 보았다. 여전히 괴물 같은 솜씨였지만, 알비를 도와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도울 사람은 게랄드밖에 없었다. 게랄드는 알비를 엄호하기 위해 적들에게 강하했다. 그러나 너무 흥분한 탓인지, 게랄드는 지나치게 빨리 강하해 그들을 휙 지나쳐 버렸다.

게랄드는 마음속으로 작게 욕설을 내뱉었다. 절호의 기회는 놓쳐버렸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다시 상승해서 도와야 한다.

그렇게 게랄드는 조종간을 당겼지만 파트너 용 에밀리가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실수이겠거니 여기며 게랄드는 다시 조종간을 당겼다. 조종간이란 도구에 너무 익숙해져서 기본 원칙을 잊어버린 모양이었다. 조종술은 결국 용과 감응하는 기술이다. 용에게 집중해야지 조종간에 모든 의식을 맡겨 놓으면 어쩌자는 걸까. 게랄드는 감응력에 집중했다.

그러나 에밀리는 반응하지 않았다.

패닉에 빠져 수차례 조종간을 당겨도 마찬가지였다. 에밀리는 반응하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에도 지상, 프랑크의 한 도시지역은 게랄드를 향해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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