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리고 너는 용이 되어-26화 (26/102)

2권 1장. 한계-(1)

어느덧 전쟁도 벌써 1년차에 접어들었다. 그동안 제국의 서부전선과 동부전선은 점점 팽창해 갔고, 결국 동부는 키예프 공국의 코앞까지, 서부는 브리타니아의 대부분 지역을 점령한 상태다. 서부전선을 극한으로 몰아붙인 끝에, 대부분의 연합군은 참패했고 계속해서 밀려가다가 섬처럼 포위되고 말았다.

도이체스군은 삼면을 포위했고 뒤쪽은 바다였다. 퇴로는 막혔다. 외따로 떨어져 있는 프랑크 공화국을 제외하면 연합군은 거의 외통수에 몰린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대로라면 도이체스가 연합군을 밀어버리고 승리를 쟁취할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그러자 브리타니아 및 연합군의 군대는 도이체스 몰래 프랑크로 탈출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섬나라 프랑크 공화국이 전투함과 민간선박을 전부 긁어모아 구출작전에 나섰다. 도이체스는 뒤늦게 그들을 막으려고 애썼고 루프트바페를 동원해 배 여러 척을 침몰시켰다. 당연히 프랑크의 공군도 가만있지 않았고 배를 지키려는 자와 침몰시키려는 자 간의 혈투가 벌어졌다.

나는 거기서 수많은 적과 맞서 싸워 격추시켰고 제3편대원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편대 하나가 역사의 흐름을 막을 수는 없는 법이다. 게다가 하늘까지 잔뜩 흐려져 시계가 엉망이 되어버렸고, 결국 연합군 38만 명이 아르텐 대륙을 탈출해 프랑크에 주둔하게 되었다.

이제 서부전선 하늘의 전장은 프랑크의 영토 위였다. 마지막 연합군을 밟아버리려는 도이체스 제국과 그에 대항하는 연합군의 싸움. 서부에는 다른 연합군도 있었지만 이들만큼 중요하지 않았다. 우리 비행단은 전쟁 초기에 동부전선에 투입되었다가 서부전선의 전략적 중요성 때문에 그쪽으로 빠진 관계로 당연히 내 전장 또한 프랑크의 영공이었다.

현재 우리는 또 출격한 상태. 제1전투비행단 전체가 폭격룡 무리를 호위하며 날고 있다. 목표는 프랑크의 수도 아르망.

“편대장님! 8시 방향에 적 출현! 4체입니다!”

알비 중위의 목소리가 들리자 나는 그걸 그대로 대대장에게 옮기며 말했다.

“대열을 이탈해서 요격하겠습니다.”

“허가한다.”

요한나 중령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그 말을 듣는 즉시 제3편대 채널에 대고 말을 한다.

“게랄드. 추격 시작한다. 내 요룡이 되어라.”

그러자 머릿속에서 반응이 돌아왔다.

“저,저요? 통신 끝, 아니 수신양호!”

7개 이상의 마법을 중첩한 통신용 용병기의 성능이 지나치게 좋았던 나머지 그 목소리에 담긴 어리숙함과 겁먹은 태도가 생생하게 전달되었다.

요룡은 대형에서 날개 부분을 비행하는 용. 편대비행에선 보통 대장을 호위하는 용을 의미한다. 대체로 대장룡이 선두에 서고 요룡이 대각선 뒤쪽에 위치한다.

보통 내 요룡은 히데 중위가 맡았고, 사신 2인조라 불리며 연합군에 제법 악명을 떨쳤다.

게랄드 회플러 소위는 이름과는 다르게 여자였다. 제멋대로 구불거리는 암갈색 머리카락의 용기사는 비행훈련을 수료한 지 일주일도 되지 않은 신참이었다. 군인이 되고 싶은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지만 감응력과 시력이 훌륭했기 때문에 결국 군복을 입게 되었다. 본인이 그 사실을 유감스러워 할 때마다 친위대와 루프트바페를 겸하고 있는 내 쪽이 더 그만두고 싶다고 말할 뻔했으나 참았다.

게랄드는 제3편대의 세 번째 인원이었다. 이전 편대원은 용의 비늘을 맞고 튕겨나간 총탄이 눈에 직격하는 바람에 상이군인으로 전역했다. 그 전 편대원은 격추되어 탈출했으나 낙하산이 펴지지 않아서 사망했다. 첫 번째는 당연히 칼레샤 소령이었다.

또한 이번은 게랄드의 네 번째 실전이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나는 계속 히데 중위와 합을 맞췄다. 또한 우리의 명성도 들어본 이상 내가 갑자기 자신을 요룡으로 지목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한 것이다.

나는 게랄드에게 들리지 않게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지금 소령이자 제3편대의 편대장이다. 그리고 또 낙하산이었다! 두 번째 실전 후 주어진 휴가가 끝나고 복귀하니 장교회의가 소집되어 있었다. 나는 온갖 영관급 장교들 사이에서 홀로 긴장했다. 위관급이 없는 건 아니었다. 간간이 중위와 대위가 보였다. 소위를 빼고 다 집합시킨 느낌이었는데, 전에 말했던 대로 급하게 뽑아 소위로 임관시킨 사람들이 대부분이어서 그런지 위관급은 수가 적었다. 있어서는 안 될 장소에 있는 느낌이었다. 하긴, 언제 저번에는 안 그랬나. 이미 남자인 것만으로도 잘못된 시간에 잘못된 장소에 있는 게 분명하다.

나는 애써 위안을 삼았다. 그래도 최악은 아니다. 클로리스 중위가 있지 않은가. 제1비행대대의 다른 편대장들도 있었다. 당연히 요한나 중령도 있었다. 그쪽은 별로 반갑진 않았지만.

이번 회의의 주제는 인사이동이었다. 사령관이 직접 주관하는 회의에 중령 이하의 장교들도 모인 건 그래서일까. 그 사이에 죽은 사람들도 많았고 하니 이참에 전부 정리할 모양이었다.

그렇게 새롭게 재편성을 한 뒤 회의가 끝나려는 분위기가 보이자 요한나 중령이 발언했다.

“저희 쪽에 편대장이 아직 한 명 모자랍니다. 보충인원이 필요합니다.”

델 대장을 향한 말이다. 델 피셔는 전쟁이 터지고 대장으로 승진했다. 독자세력을 가진 군에 대장이 하나도 없는 건 말도 안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델 대장이 말했다.

“그냥 편대 찢어서 분산 배치하면 안 돼?”

“세 명이라 애매합니다.”

델 대장은 구성인원을 물었다. 요한나 중령이 대답하자 델 대장은 뭐 그런 간단한 거 가지고 물어봤냐는 듯이 말했다.

“헤르만이 편대장 하면 되겠네.”

이젠 델 대장이 뭘 말해도 놀랍지가 않다. 요한나 중령이 미처 반론에 들어가기도 전에 제25비행전대 전대장이 말했다.

“대위인데 편대장을 한단 말입니까?”

또 다른 반대의 목소리가 착착 더해졌다. 클로리스 중위가 슬쩍 내 얼굴 표정을 보는 듯했지만, 내 안면근육은 똑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난 루프트바페에서 잘 나갈 생각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루프트바페에 발을 묶여 친위대로 돌아갈 수 없게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최악이었다.

그것과는 별개로 소령 미만에게는 편대장을 시키지 않으려는 그들의 행태가 너무 속이 빤히 들여다보였다. 영관급 장교의 50퍼센트 이상은 귀족 영애들이었다. 나머지 장교들도 꽤 영향력이 있는 집안 출신이 대부분이었다. 그 사이에서 빈드발드 출신 칼레샤 소령이 얼마나 힘들었을지는 안 봐도 뻔했다. 그들만의 리그에 누군가를 초대하고 싶지는 않은 거다. 하지만 곧 그럴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전쟁으로 계속 용기사들이 죽어나가면 영관급 장교의 수가 모자랄 테니까. 편대장은 더 이상 그들의 성역이 아니다.

나는 아마도 델 대장이 그런 논리를 펼칠 것이라 생각했다. 불행히도 델 대장은 나한테 편대장을 시키고 싶은 모양이었고, 그녀는 언제나 하고 싶은 건 다 제멋대로 해버렸으니까. 델 대장은 손을 들었다 내리며 좌중을 침묵시킨 뒤 말했다.

“뭘 그렇게 어렵게 생각하고 있어?”

오, 제발. 그것만은 아니게 해주세요. 이쯤 되면 제 기대를 한 번 배신할 때도 되지 않았···

“그럼 헤르만이 소령 하면 되잖아?”

이번에는 표정관리를 해야 했다. 다른 전대장들은 별로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찬성해서가 아니라 할 말을 잃었기 때문이다.

제25비행전대장이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들어올 때부터 대위인 사람을 또 한 달 만에 소령으로 진급시킨단 말입니까···?”

“왜, 대위한테 편대장 못 시키겠다며. 그럼 헤르만이 대위가 아니면 되잖아.”

다들 목소리를 높이려는 찰나, 제24비행전대장, 즉 내가 속한 전대의 전대장 엘리자베트 대령이 말했다.

“나쁠 건 없지 않습니까? 기관총과 정예 용기사를 상대로 싸워서 생환했습니다. 편대원들을 지휘해 루프트바페 1기 중 처음으로 마법을 발동시켰고 처음으로 적을 격추했습니다. 이미 자질은 모자라지 않은 상태라고 봅니다만.”

엘리자베트 대령이 나를 두둔하자 요한나 중령은 배신감어린 표정으로 엘리자베트 대령을 바라보았다. 어쨌든 그녀의 말이 여론을 돌렸고, 나는 그렇게 소령이 되었다. 델 대장이라면 여론이 나빴어도 날 진급시켰을 게 틀림없었지만.

소령 계급장을 받고 돌아가는 길은 클로리스 중위와 함께 했다. 클로리스 중위가 축하해주자 나는 고맙다고 한 뒤, 찜찜한 기분에 혼잣말을 했다.

“거기서 내 편을 들어줄 거라 생각도 못했는데···”

“아뇨. 상당히 합리적인 선택이었죠.”

클로리스 중위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대위··· 아니 소령님. 생각보다 큰 뒷배를 가지고 계시더라고요.”

순간 이텔의 존재가 들켜버린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사관생도 시절의 절친인 건 우리 둘 중 한명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정말 자명한 사실이었지만, 그 이상의 깊은 관계를 맺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니, 그래야만 할 것이다. 그저 친구 사이인 것만으로 ‘뒷배’라 생각한 걸까?

그 혼란스러움을 숨긴 채 시치미를 뗐다.

“아냐. 난 그냥 지극히 평범한 평민···”

“제국에 열 명밖에 없는 상급집단지도자*의 아들이잖아요?”

(*대장)

얼굴이 잠깐 굳었다. 에리히라면 좀 더 자연스럽게 넘겼을 텐데. 나는 너무 어설프다.

“잡아떼는 건 이제 의미가 없겠네.”

“조금 놀랐다고요. 숨겨둔 아들이 있다는 건 알았는데, 그게 소령님일 줄은. 보니까 머리색도 판박이고요.”

!파라의 혈통이라 생긴 새까만 머리카락과 유전자의 농간으로 우연히 생겨난 검은 머리. 원인은 다르지만 사람들의 눈에는 결과만 보이는 법이다.

“민감한 주제였다면 미안해요.”

“아냐. 비밀이라지만, 공공연한 비밀인걸.”

아달베르토 집단지도자가 나를 주시하는 건 내가 유능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나 브라운의 아들이라서 그렇다.

“어머니의 위광을 업고 이뤄내는 건 싫다, 그런 건가요?”

“그 비슷한 거지.”

그녀의 아들임을 이용하면 더 빠르게 승진하고 더 많은 인맥을 얻어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살인자』를 죽이기 위해 그녀에게 도움을 받는 건 얼마나 수치스러운 일인가.

“아무튼, 전대장님은 얼마 전에 그걸 아신 모양이에요. 만날 일 없는 타군이라지만 장성의 아들. 그걸 알고도 적대하는 건 부담스러운 거죠. 합리적인 선택이었어요.”

“그러지 말라고 안 밝히고 있었는데···”

내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하자 클로리스 중위가 미소를 지었다.

“소령님은 별로 기쁘지 않은가보죠?”

“그다지? 일단 그 소령님 칭호도 어색해.”

“권력욕이 별로 없으신가보네요. 이런. 전 소령님이 높으면 높을수록 좋은데 말이죠.”

“내가 얼마나 탐욕스러운 인간인 줄 알아? 권력의 화신이라고.”

“그럼 친위대에서만 그런 건가요?”

정곡을 찔렸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아무튼, 최고 에이스이시니까 원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점점 높이 올라갈 거예요.”

나는 저번에 클로리스 중위에게 대답을 했었다. 그녀의 파벌에 협력하겠다고. 내 인맥은 너무 군사 쪽으로 치우쳐 있었다. 문관 파벌 쪽이 하나쯤은 있어야 했다. 클로리스 중위가 나에게 바라는 것은 일단 더 높이 올라가서, 그리고 살아남았을 때 말해주겠다고 했다.

“에이스? 난 하나만 격추했는걸.”

통상 에이스는 다섯 체를 격추해야 붙는 칭호다. 격추가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기관총이 없던 시절이었으니 더했을 것이다.

“믿어요. 곧 에이스가 될 거란 걸.”

“내가 그때까지 생존한다면 말이지.”

“하지만 소령님이 격추되는 모습은 상상이 안 되는걸요?”

클로리스 중위가 빙긋 웃더니 나와 작별했다.

그리고 지금, 프랑크의 영공을 날고 있는 현재, 나는 168체를 격추해 격추수 세계 1위를 달리고 있다. 세계 2위는 147체를 격추한 히데 중위, 그리고 알비 중위는 105체를 격추해 세계 7위이다.

지금 세계 격추 순위는 거의 다 루프트바페가 쓸어간 상태다. 거기엔 여러 원인이 있었지만, 일단 루프트바페 용기사의 수가 연합군 측 용기사보다 적었고 동부전선 키예프 연방의 공군은 말 그대로 엉망이었기 때문이다.

우선 연합군 중에서 공군을 본격적으로 양성한 나라는 브리타니아, 프랑크 이 두 나라다. 반면 추축국 중에서는 도이체스 하나밖에 없었다. 게다가 델 대장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초기 루프트바페를 거대하게 키우지 못한 탓에 연합군과 우리의 전력을 비교했을 때 이쪽이 많이 불리했다. 연합군 입장에선 격추할 적의 수 자체가 적었고 우리는 수많은 적을 상대로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좀 더 많이 출전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격추수가 차이난다.

물론 다른 나라도 손 놓고 있던 것만은 아니어서 부랴부랴 공군을 양성하기 시작했다. 그 중엔 동부전선의 키예프 연방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원래 그 지역은 용이 서식하지 않는 곳이었다. 따라서 용을 수입해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중부 아르텐 대륙의 용 생산지는 대부분 도이체스가 점령했고 브리타니아와 프랑크는 자국 공군을 양성하기도 바빠 키예프에게 대대적인 지원을 해줄 수가 없었다.

결국 키예프는 저 멀리 남쪽에서 용과 알들을 데려올 수밖에 없었는데, 따가운 햇살과 타오르는 온도 속에서 자라난 용들이 혹독한 키예프의 추위에 대응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알도 부화되지 않기 일쑤였다. 겨우 태어난 용들은 느긋하게 자라는 걸 기다릴 시간이 없으니 급성장 마법으로 몸체를 키웠지만, 지능은 급성장하지 않은 탓에 마법을 잘 사용하지 못했다.

종합하자면, 도이체스의 용보다 더 혹독하게 추위를 치르는데다가 용기사도 용도 실력이 미숙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동부전선은 기사들의 1대1 대결이 아닌 한쪽의 일방적인 학살이었다.

그래서 난 기록의 5분의 4는 동부에서 세웠고, 나머지 5분의 1은 아르텐 대륙을 탈출하는 연합군을 호위하는 프랑크인들을 격추시키며 세웠다. 후자는 일주일 동안 세운 기록이었다.

그리고 8일째, 나는 또 출전했다. 이번엔 프랑크 본토 폭격룡을 호위하기 위해서. 거울을 보진 않았지만 분명히 몰골이 엉망일 것이다. 나는 지난 7일동안 19번 출전했고, 8일째인 오늘도 또 나갔으니까.

나는 뻑뻑한 눈꺼풀을 깜박이며 선회했다. 그 궤도가 부드러운 호를 그린다. 내 요룡 게랄드 소위도 날 따라 선회했다. 내가 비행하고 내 사선으로 뒤쪽에 게랄드 소위가 따라오는 모양새. 비행하는 적은 총 셋. 안장 도색을 보니 브리타니아 군이었다.

“저기, 맨 뒤의 적을 노리겠다.”

나는 게랄드 소위에게 전달했다. 지금부터 궤도가 바뀌기 때문이었다.

바로 그 순간 우리가 노리던 적룡이 우리의 적의를 알아차렸는지 재빨리 대형에서 이탈했다. 나는 즉시 궤도를 수정하고는 적룡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급한 궤도변경인데다가 속도가 매우 빨랐기 때문에 온몸이 짓눌렸다. 대략 6G 정도의 힘이다. 강하게 받는 원심력이 힘의 실체이지만 편의상 중력의 몇 배인지 표시하는 편이 편하기 때문에 저런 단위를 쓴다. 이때 넋을 놓으면 시야에 문제가 생긴다. 본능적으로 온몸의 근육에 힘을 바짝 주고, 목의 성문을 힘주어 닫은 뒤 달리다 지친 개처럼 헐떡거린다. 통상의 몇 배나 되는 중력가속도를 척추로 받아내며 적룡의 꼬리를 잡아내려 했다.

적룡이 직진했다. 나는 현재 적룡의 6시 방향. 요격하기 너무나 좋은 위치였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기관총 발사 버튼을 눌렀다.

공기를 찢는 소리와 함께 발사되는 예광탄*. 예광탄은 빛을 내며 적룡의 날개 아래로 아슬아슬하게 지나갔다. 이제 다른 총알이 적룡에게 도달할 것이다. 그러나 후속탄이 이어지지 않았다.

(*총포에서 발사되었을 때 앞부분에서 빛을 내며 날아가게 한 탄알. 신호하거나 목표물을 지시하는 데에 쓴다.)

나는 다시 기관총 발사 버튼을 눌렀다.

철컥.

그러나 기관총이 발사되는 굉음 대신, 버튼이 헛돌며 딸각이는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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