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권 4장. 미숙한 기사들과 사선의 끝-(4)
그 뒤에 히데 소위의 목소리가 멀거니 들려온다.
“안장에···총이 있습니다······.”
저들도 90퍼센트가 미숙한 용기사인 것은 똑같다. 그러나 그들은 대책을 마련한 것이다. 아직 마력을 잘 다루지 못하는 자도 손쉽게 적을 쓰러뜨릴 수 있는 무기, 지상에서 그 치명성을 입증한 무기.
기관총, 아니 기관총 정도가 아니다. 최소한 기관포 정도는 된다. 포탄 중 하나가 칼레샤 소령의 몸뚱이를 스친 것이다.
“편대장님? 편대장님? 응답해 주세요! 칼레샤 소령님!”
알비 소위가 채널에 대고 부질없는 고함을 질러보지만 당연히도 아무 반응도 없었다.
“대위님!”
갑자기 통신을 타고 히데 소위의 외침이 들려왔고, 나는 본능적으로 방향을 급히 틀었다. 기관포 소리와 함께 포탄의 일부가 아바셋의 날개에 맞는다.
“아바셋!”
그러나 내 놀람이 무색하게도 아바셋은 흔들리지 않는다. 이윽고 날개에 뚫린 구멍이 빠르게 수복된다.
생명계 마법 ‘체타 소’. 세포분열을 급속도로 촉진해 잘려 나간 조직을 재생한다. 물론 체타 소만으로는 완벽하지 않다. 그러나 일단 반흔조직만이라도 남겨두는 데 성공했다. 검은색 날개엔 약간의 회색 흔적만 남을 뿐, 다시 이전과 같이 기능한다.
왜냐하면, 아바셋은 생명계 마법을 사용하는, 스스로 생각할 줄 아는 생물이었기에.
공중에 거꾸로 매달린 채로 나는 외친다.
“공격 중단하고 고도 올려!”
이쪽은 대충 구름과 비슷한 높이.
“하지만 로켓이···”
“로켓은 버려! 두 개만 남기고! 당장 이쪽으로 와!”
지금 지상지원이 중요한 게 아니다. 칼레샤 소령은 지휘불능 상태. 따라서 지금 상태에서 가장 상급자는 나. 내가 지휘를 해야 한다.
로켓 두 개 정도로는 기동력을 크게 해치진 않을 것이다. 주위 상황을 살피며 히데 소위에게 외친다.
“기관포는 몇 명이 탑재했어?”
“황룡, 녹룡, 청룡 세 마리, 각각 두 정씩입니다!”
그렇다면 백룡에 탄 한 명만 정예 용기사이고 나머지는 전부 초보들이다. 그들이 마법을 쓸 가능성은, 일단 제로에 수렴한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기동력은 알비 소위 쪽이 위, 그러나 속력은 달린다. 히데 소위는 그 반대. 용기사의 특성에 따른다면 히데 소위가 압도적이어야 하지만 그렇지 않다. 그저 그 용들의 특성이 그런 것뿐이다.
“히데! 황룡을 맡아! 알비! 녹룡과 청룡을 마크해!”
“네,넷?”
귓가에 알비 소위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린다.
“두,두 명을요?”
“맞서 싸우라는 게 아냐! 지원 갈 때까지 살아남으라는 거다! 적군은 마법을 쓰지 못해!”
아닐지도 모르지만, 그걸 알비 소위에게 말해서 상황을 더 악화시킬 생각은 없다.
“그러니 적군의 정면에 잡히지 않도록 움직이기만 하면 된다. 버텨!”
녹룡과 청룡은 기관포를 탑재했다. 정면공격 이외에는 불가능하다.
히데 소위에게 녹룡과 황룡이 달라붙으려는 것을, 알비 소위가 돌진해 접근한다. 녹룡이 목표를 바꾸어 알비 소위 쪽으로 향했다. 분명 유도한 일임에도 알비 소위는 패닉에 빠졌다.
“으아··· 꺄아아악! 오지 마! 이쪽으로 오지 마!”
“알비!”
나는 고함을 쳤다.
“기억해! ‘자츠투’의 순서!”
알비 소위가 곡예비행을 하면서 말했다.
“으으··· 키리! 다드 3회전! 리리모 순행! 아애-리모-유 발동!”
위기는 사람의 잠재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린다고 하던가. 이 다급한 순간에, 한 번도 써보지 않은 마법을 알비 소위는 발동시켰다.
알비 소위의 모습이 하늘에서 지워졌다. 뒤이어 순간이동을 한 것처럼 다른 하늘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녹룡과 청룡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알비 소위는 청룡의 아래쪽에서 갑자기 나타났다! 내가 두 번이나 썼던 동작 그대로, 수직 상승해 솟구친다. 완전한 직각을 이뤄내진 못했지만, 적어도 가파른 곡선을 그리는 데에는 성공한다.
노리는 것은 청룡의 목.
전혀 예상치 못한 공격에 청룡은 그대로 역린을 내어주고 만다. 용이 크게 경련하더니 핏빛 궤적을 끌며 추락한다. 곧이어 펼쳐지는 하얀 천. 죽은 용에 타고 있던 용기사가 비상탈출장치를 눌러 낙하산을 펼친 것이다. 아마 지상의 전장 한가운데에 추락하겠지.
‘자츠투’는 파동계 마법. 빛을 대기에서 굴절시키는 마법이다. 본래는 신기루를 만들어 상대가 자신과의 거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게 하는 마법이다.
역으로, 빛을 굴절시킨다는 것은, 원래 자리에 있던 물체가 그 위치에서 보이지 않는다는 것. 따라서 갑자기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순간이동이 아니다. 그건 원소-양자계 마법에서도 특히 고난이도 마법. 그러나 효과는 비슷하다.
이제 숫자가 비등하게 맞춰졌다는 안도감도 잠시, 녹룡이 갑자기 목표를 나로 변경했다!
“야! 너 어딜 가는 거야! 네 상대는 나라고!”
알비 소위가 외쳐 보지만 기관포를 탑재한 녹룡은 내 뒤꽁무니를 집요하게 쫓는다. 그러나 알비 소위는 무방비하게 뒤를 노출한 녹룡을 격추할 수 없다.
내가 어제 익힌 마법, ‘토코’. 생명계 마법. 신체 일부를 경질화시켜 무기처럼 날카롭게 만든다.
알비 소위가 어제 익힌 단 한 가지의 마법, 자츠투. 파동계 마법으로, 효과를 간단히 요약하자면 신기루.
히데 소위가 익힌 마법은 ‘카울’. 원소-분자계 마법으로 폭발하는 화염을 발사한다. 위력은 보통.
따라서 종합하면, 여기서 제대로 된 공격기를 지닌 사람은 히데 소위밖에 없다. 생체칼날은 유용하지만 접근전을 펼쳐야 한다. 알비 소위의 자츠투는 기만전술과 생존에 특화되어 있지, 공격용이 아니다. 게다가 알비 소위를 제외한 나머지 둘은 아직 한 번도 마법을 발동해본 적 없는 상태.
총체적 난국인가.
“우씨··· 기관포··· 기관포만 있었어도!”
알비 소위의 분한 목소리를 뒤로 하고, 나는 아바셋을 끌어올렸다.
차라리 잘 된 것일지도 몰랐다. 공중전술은 미지의 분야였지만 적어도 하나는 확실했다. 2대 1은 결코 더 우위에 서는 것이 아니다.
칼레샤 소령과 했던 진형이라면 유리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하지 않고 무작정 한 용에 여러 마리가 달라붙는 건 오히려 더 불리하다. 하늘의 전장은 방향이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날 쏘려다 서로에게 총을 쏘는 경우가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런 편리한 상황이 무조건 일어나 준다는 보장은 없겠지만.
녹룡과 백룡은 내 정면에 있다. 나는 정면돌파를 택했다. 어느 쪽이든 뒤꽁무니를 내밀고 달아나는 것보다는 살 확률이 높았다. 멀찍이서 기관포가 나를 반긴다. 스스로 총탄 속에 뛰어들기 위해서 뇌가 아드레날린을 분비하고 심박을 증가시킨다. 녹룡과 백룡이 점점 더 가까워진다. 나는 사거리에 도달하기 직전 기수를 아래로 내려 탈출하려 했다.
그러나 백룡은 원소-전격계 마법 ‘레 빈’을 발동. 수천 볼트의 고압전류가 작은 벼락이 되어 아바셋을 내려친다. 전류가 아바셋의 뿔을 파고들어 온몸으로 퍼진다. 아바셋은 생명계 용답게 별 타격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절연체로 이루어진 안장에 앉아있음에도 큰 충격을 받는다. 전류가 발, 손 등의 신체 말단에서부터 안구까지, 내 몸뚱이에 리히텐베르크 도형*을 그리며 빠져나간다.
(*번개 무늬. 물체의 방전이 일어난 경로를 나타낸 도형이다.)
아바셋은 지시하지 않은 곡예비행을 수행한다. 아바셋의 궤적을 기관포의 총탄이 훑는다. 서서히 정신이 들 때쯤 귓가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대위님! 죽었으면 대답하십시오!”
히데 소위의 목소리. 나는 남의 것 같이 낯선 혀를 움직여 말소리를 만들어 낸다.
“죽은 사람이 어떻게 대답을 하냐!”
“이런. 살아계셨군요.”
“이런이 뭐야 이런이!”
“쳇.”
“아쉬워하지마!”
그 말을 내뱉기도 잠시, 나는 급강하를 해야 했다. 한쪽 방향에서는 녹룡의 기관포이, 다른 쪽 방향에서는 백룡의 원소-분자계 마법 ‘크리히’가 쇠도 녹여버릴 고열로 나를 반긴다. 지상이었다면, 이게 바로 십자 포화였을 것이다.
“교차 사격에 갇혀버렸네.”
탄식하듯 중얼거렸다. 우선 빠져나와야 한다! 나는 상승해서 고도를 확보했다. 방향은 둘 중 하나. 기관포 쪽이냐, 아니면 ‘크리히’ 쪽이냐. 당연히 전자였다. 수천 도에 달하는 고열이면 나와 아바셋은 즉사다.
내 마음이라도 읽었는지 아바셋은 온 힘을 다해 고도를 높였다. 수직으로 향하고 있는 머리는 눈부신 태양 때문에 눈이 탈 것처럼 뜨겁다. 사정거리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이럴 수는 없다. 언젠가는 멈추어야 한다. 언젠가는 내려와야 한다.
—이렇게 태양을 등지고!
벼락과 같은 깨달음이 온몸을 관통한다. 이대로 내려가면 난 태양을 등지고 내려온다. 용기사들도 보통의 눈을 가진 인간이다. 선바이저가 태양빛을 조금 걸러내고 있지만, 그럼에도 태양은 부담스러운 존재.
즉, 태양을 등지고 하강하면 적은 날 볼 수가 없다!
그러나 공격기가 없으면 이 기습도 아무 쓸모가 없다. 하기 위해선 아바셋의 마법을 발동시켜야 한다. 신체재생 따위와는 다른 공격적인 마법을. 해낼 수 있을까?
의미 없는 질문이다. 해야만 한다.
나는 태양을 등진 채로 급강하하기 시작했다. 목표는 기관포를 장전한 녹룡. 나의 아래에서 선회하고 있는 녹룡.
하강하는 찰나의 시간 동안 내 뇌는 어제 배운 걸 되새긴다. 라카, 오른쪽으로 툴구스, 그라스 순행, 니와-아이파우-다트!
아바셋은 칼날과 같이 녹룡에게로 내려꽂힌다. 그러나 목표는 녹룡의 몸체가 아니다. 그보다 조금 오른쪽, 녹룡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갈 수 있는 공간.
아바셋의 머리가 녹룡의 머리와 같은 위치에 있다.
뒤이어 내가 녹룡의 머리를 마주 볼 수 있는 위치로 내려왔다. 녹룡의 눈은 푸른색이었다.
아바셋의 몸뚱이가 녹룡의 머리 위치를 스치듯 내려온다.
그리고, 아바셋의 꼬리가, ‘토코’로 인해 경질화되어 칼날처럼 날카로운 꼬리가, 그대로 휘어져 녹룡의 목을 휘감는다!
용의 머리가 절단.
용의 잘린 대동맥에서 뜨거운 피가 솟구친다. 말 그대로 ‘뜨거운 피’였다. 냉혈동물처럼 생긴 주제에 용의 피는 인간보다 훨씬 뜨겁다. 피가 차가운 대기와 만나며 구름 같은 김을 뿜어내었다.
첫 격추였다.
그러나 감상에 젖어 있을 시간은 없었다. 적은 아직 두 명이었다. 기관포 하나와 숙련된 용기사 하나.
“꺄아아악! 왜 나만 계속 쫓아와!”
알비 소위가 질색하며 왼쪽으로 선회한다.
“아까는 또 왜 나만 상대 안하냐고 투덜거리더니, 이번엔 왜 불평해? 바라던 대로 됐잖아.”
“전 쫓기는 것밖에 할 일이 없단 말이에요!”
알비 소위는 공격기가 없고, 아까처럼 역린을 잡을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을 것이다.
“파동계의 업보라고 생각하렴.”
“대위님 미워요!”
알비 소위가 거의 비명을 지르듯이 외친 뒤 직진했다. 그리고 역시나 점점 거리가 좁혀진다. 속력대결은 무리겠군.
적은 벌써 둘을 잃었다. 하지만 백룡은 돌아갈 것 같지가 않았다. 지금 여기 있는 사람 중 원격 공격기를 사용한 자가 아무도 없다는 걸 적도 알아차린 것이다.
파동기를 구사할 줄 아는 자는 도망치기만 하고 공격하지 않는다.
생명기를 구사할 줄 아는 자는 아까부터 원거리 공격은 하나도 못하고 있다.
나머지 한 명은 몇 번 결정적인 기회를 잡았어도 상대를 그냥 보내준다.
상대측에서, 우리 모두가 신참이라고 추론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신참 셋, 베테랑과 기관포 하나씩의 대결은 당연히 후자 쪽이 유리하다.
그런 우리를 향해 냉혹한 백룡이 울부짖었다.
소름끼치는 시간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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