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권 4장. 미숙한 기사들과 사선의 끝-(3)
“이대론 안 돼!”
히데 소위와 알비 소위가 앉아 있는 테이블에 책을 탕 내려놓으며 말했다. 알비 소위가 어리둥절한 눈으로 바라본다.
여기는 기지에 있는 카페. 알비 소위가 어제 출전 전에 말했던 그 디저트 카페다. 내가 살 테니 여기서 모이자고 했다. 지금 내려놓은, 둔기로 사용해도 적합할 두께의 책은 내 사관학교 시절을 함께해 온 마법학 교재 중 하나.
“어제는 특별한 거였어. 두 번 다시 그런 나날은 찾아오지 않을 거야.”
알비 소위가 디저트로 시킨 케잌을 오물거리며 말했다.
“그렇지만 저쪽도 사정은 비슷하지 않나요?”
“만약 숙련된 용기사만 모아 만든 편대를 출격시켰으면 어쩔래?”
알비 소위가 턱을 멈추었다.
“우리는 아직 미숙해. 적을 없앨 정도까지는 바라지 않아. 하지만 적어도 살아남을 정도는 되어야지. 가능한 한 빨리.”
거짓말이다. 공중은 거의 결투장이나 다름없다. 어느 한 쪽의 숨이 끊어질 때까지는 끝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생존은 곧 상대방의 격추를 의미한다.
히데 소위는 내 거짓말을 눈치 챈 모양이었지만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그러니 각자 조커 한 장 정도는 마련해야 해.”
“어떻게요?”
“당연히, 공부다.”
알비 소위가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선배들은 끊임없는 실전으로 감응과 마력 운용의 순서를 체화해 마법을 부린다지만, 우린 그래선 늦어. 답은 이론을 완벽하게 익혀서 실전경험 없이도 마법을 쓸 수 있게 만드는 거다.”
“으··· 어쩔 수 없네요.”
알비 소위가 투덜거리며 교재를 슬슬 넘겨보았다. 일부러 가장 쉬운 교재를 가지고 왔다. 지금 간단한 마법도 발동시키지 못하는 상태인데 고등기술을 가져와 봐야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대위님 글씨 예쁘네요.”
“그거 말고 내용을 봐야지, 내용을.”
“그치만 무슨 소린지 모르겠고···”
“너 오전에 마법학 배웠잖아.”
“으으! 그게 완전히 모르겠다는 건 아니고! 공식은 알겠는데 백지에 증명하는 건 못하겠는 그런 느낌!”
결국 나는 두 사람의 수준을 알아보기 위해 이것저것 질문을 할 수밖에 없었다. 수학으로 따지자면 알비 소위는 평면에서의 미적분을 배운 느낌이었고, 히데 소위는 선형대수의 초보적인 개념을 사용할 수 있는 정도. 하지만 그 모든 원리를 이해하고 증명한 게 아니라 외워서 머리속에 쑤셔 넣은 것에 가깝다.
이런 애들을 데리고 어떡하란 말인가. 솔직히 말해 히데 소위는 쓸만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외워서 구사할 수 있는 건 한계가 있는 법이다. 알비 소위는 ‘저게 뭔 소린지 감만 잡을 수 있는 정도’로 마법을 배운 거였고.
좀 더 시간이 지났더라면 다들 그럭저럭 실력을 갖췄을 것이다. 그러나 전쟁이 너무 빨리 터졌다.
“···각자 용의 속성을 말해보자고. 내 용은 생명계. 어쩌면 기세계도 같이.”
“기세계라는 마법도 있습니까?”
히데 소위가 질문했다.
“좀 임의적인 분류겠지만, 있어. 4대힘을 다루는 마법이지. 전자기력, 약력, 강력, 중력. 하지만 앞의 셋은 원소계의 기반이야. 유일하게 따로 노는 게 중력. 저번에 아바셋이 중력 마법을 사용하는 걸 봤어. 너희들은?”
히데 소위가 말했다.
“원소계입니다.”
“양자‧전자 단위? 아니면 분자 단위?”
“분자 단위입니다.”
알비 소위에게 시선을 돌렸다.
“파동계라고 했어요.”
“파동계?”
“네.”
분자 단위 원소계 마법이 제일 흔하다. 그들이 절대다수를 차지하기에 원소계임에도 전위에 위치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그 다음은 생명계, 그 외에는 기타등등. 파동계는 흔한 속성이 아니었다.
나는 잠깐 책을 뒤적거린 뒤 마법의 이름을 세 개 적었다. 그것을 가운데에 올려놓으며, 말한다.
“오늘 목표는 각자 이 마법 하나만을 완벽히 익히는 거다.”
“딱 하나만요?”
“딱 하나만.”
“좋아요! 하나라면 자신 있어요!”
“···해보겠습니다.”
알비 소위의 얼굴이 울상이 되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우리는 저녁때까지 그걸 붙잡고 끙끙거리다가 각자의 숙소로 돌아왔다. 계속해서 중얼거리는 히데 소위에게 기습적으로 질문한다.
“카울의 발동조건은?”
“아라를 세 번, 키소를 역계산, 포템, 슈아, 아카네를 차례로 발동합니다.”
“잘했어.”
히데 소위는 나중에 잠들기 전에 기습적으로 나에게 물어보았고, 나는 제대로 대답했다.
다음날이 실전 출격인 것치곤 꽤 잠을 곤히 잤다. 이제는 익숙하게 돌아선 자세로 용기사복을 입고, 전투에 나선다.
다시 한 번 제3편대의 이륙. 칼레샤 소령이 방향을 지시하며 말했다.
“오늘 임무는 행커스의 육군들을 보좌하는 거다.”
도이체스 제국은 위쪽으로는 키예프 연방, 아래쪽으로는 브리타니아를 마주한다. 세계대전이 시작된 지금, 도이체스는 위아래로 적을 맞이하게 되었다.
지금의 격전지는 중부전선. 이것은 일개 대위인 나도 알 수 있는 정보다. 그러나 지금 가는 행커스는 그 중부전선을 한참 우회하는 경로다.
‘···브리타니아의 수도를 바로 함락할 생각인가!’
지금의 형세는 양면전쟁. 양쪽 모두를 상대하면 효율이 떨어진다. 한쪽부터 쳐부수는 게 낫다.
‘그 대상을, 키예프와 브리타니아 중에서 브리타니아를 선택했어.’
솔직히, 나는 키예프가 될 가능성도 높다고 생각했다. 키예프는 최근에 혁명이 일어나서 몹시 어수선한 상태다. 그 틈을 타 노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제국은 남쪽의 브리타니아를 더 큰 위협으로 본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이 병력이 향하는 곳은 브리타니아의 수도 빈단.
그곳으로 가기 위해선 행커스를 꺾어 놓아야 한다.
“지상의 육군 병력들과 교신이 연결되도록 해 놓았다. 적의 동태를 빠짐없이 보고하도록.”
저건 나에게 하는 말이었다. 이번은 저번 작전과 다르게 안장에 로켓을 탑재했다. 지상 병력을 지원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로켓들은 적국의 전차와 병사들에게 떨어질 예정이었다. 그러나 로켓을 많이 실으면 무거워지고 따라서 기동성이 떨어지는데다가 지상을 공격하려면 공중에 시선을 돌릴 틈이 없다. 그 빈틈을, 무기를 싣지 않은 내가 호위하는 것이다. 칼레샤 소령을 제외하면 적을 만나서 가장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 게 나여서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전장을 계속 빙빙 돌게 되었다. 가끔 적군이 우회기동을 시작하면 칼레샤 소령에게 슬쩍 알려줘서 로켓을 그쪽으로 보내기도 했다.
얼마나 로켓과 폭탄을 많이 실었던지 세 용 전부가 정말 느릿느릿하게 움직였다. 그동안 쏟아낸 로켓이 적지 않았는데도, 아직 그랬다. 도대체 얼마나 무장을 욱여넣은 거야.
그렇게 지상의 전장과 하늘의 전장을 널리 둘러보던 나는 이쪽으로 다가오는 점을 발견했다.
“적입니다!”
지원 온 아군일 리가 없었다. 우리는 추가 파견 요청도 하지 않았다. 애초에 이쪽은 로켓이 남아돌고 있는 실정이다.
“알비, 히데. 너희는 계속 지상을 지원해라. 적은 이쪽이 해결하겠다.”
“···두 사람으로 되겠습니까?”
“어쩔 수 없지 않나?”
그 말에는 참 많은 것이 들어 있었다. 히데 소위는 힐끗 그쪽을 봤는지 이렇게 말했다.
“어느 나라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너무 멀어서 식별할 수 없지만 안장에 못 보던 장치를 달아 놨어요.”
나는 느릿느릿한 칼레샤 소령을 보며 걱정스럽게 물었다.
“잘 기동하실 수 있겠습니까?”
“적이 얼마나 멀리 있나?”
“3K만큼입니다.”
“좋아. 2K까지 다가오면 말해라.”
그렇게 말한 칼레샤 소령은 거대한 크레이터라도 만들 기세로 한 곳에 로켓탄을 퍼부었다. 그 아래엔 전차 하나가 있었다. 용에 탑재한 로켓탄만으론 전차를 완전히 부수기는 힘들었지만, 그걸 하나에 몽땅 집중하니 기동을 못할 정도로 망가져 있었다.
“2K입니다!”
“쳇.”
칼레샤 소령이 이쪽으로 온다. 여전히 평소보단 둔하지만 아까보다는 낫다. 나는 실눈을 뜨고 다가오는 것을 확인했다. 네 마리였다.
“브리타니아 아니면 프랑크겠죠?”
“그렇겠지. 여기는 남부니까.”
사실 브리타니아일 가능성이 거의 90퍼센트였다.
“어느 쪽이든 저들이 최정예 용기사일 확률은 10퍼센트. 저번 조우 때 같은 상황에 마주치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이젠 그런 아름다운 상황은 벌어지지 않을 거야. 우리는 이미 브리타니아군을 죽였다. 그 시점에서 우리는 선을 넘었다. 도중에 멈추는 건 있을 수 없지.”
이제 그들은 용의 모습을 한 커다란 실루엣으로 보일 정도로 가까이 와 있었다.
“네 말대로 저들이 우리 편대원처럼 미숙한 용기사일 확률은 거의 90퍼센트다. 하지만 최상의 시나리오만을 바랄 수는 없어. 일단 적어도 한 명 이상의 정예 용기사가 있을 거다.”
이 편대에 칼레샤 소령이 있는 것처럼.
“헤르만, 몇 명까지 있을 것 같나?”
칼레샤 소령이 나에게 조언을 구한다. 나는 살짝 놀라며 내 예상을 말했다.
“여긴 중부전선도 아닙니다. 중요한 격전지도 아니에요.”
큰 그림에서는 중요한 격전지이지만.
“그러니 많아봐야 2명입니다. 만약 저들이 프랑크군일 경우, 기껏해야 한 명일 겁니다.”
“왜지?”
“섬에서 아르텐 대륙까지 오는 최단경로는 공교롭게도 중부전선을 지납니다. 거기서 정예가 전부 빠집니다. 이런 변방의 전장에서는, 기껏해야 편대장 한 명만 딸려 보냈을 겁니다.”
도이체스 제국이 그러했던 것처럼.
따라서 두세 명의 허수를 제외한 정예. 그 정예를 얼마나 빨리 처치하느냐가 핵심이다.
“저번의 그 기동으로 간다.”
내가 유인하고 칼레샤 소령이 뒤를 잡는다. 지금 칼레샤 소령의 기동력은 불리할 정도로 떨어진 상태. 미끼 역할을 할 사람은 나밖에 없다. 애초부터 전위이기도 했고.
백룡, 황룡, 녹룡, 청룡 네 마리 중 세 마리는 사방으로 흩어졌고 백룡만이 우리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정예다. 저 흩어진 용 중에 하나가 더 숨어 있을지도 모르지만, 일단 저 백룡 쪽이 정예인 건 확실했다.
우선 내 쪽에서 도발을 시작한다. 칼레샤 소령 쪽으로 시선을 돌리지 못하도록.
나는 백룡의 정면으로 돌진했다. 마치 이대로 가다간 충돌할 기세로. 지금의 내 모습은 마치 무식한 정면대결을 투우사에게 신청하는 황소 같다.
백룡의 눈동자 색을 판별할 수 있는 거리에 다다르는 순간, 나는 직각을 그리며 아래로 급격히 낙하했다. 아바셋이 아니었더라면 불가능했을 거라고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아래쪽을 점했다. 이제 내리꽂은 것만큼이나 갑작스럽게 위로 솟구친다. 목표는 역시 역린. 위쪽으로 가면 내리꽂히며 그 위에 탄 인간을 씹어버릴 수 있고 아래에서 솟구치면 역린을 물어뜯을 수 있다. 나는 그 중 아래쪽을 택한 것이다. 백룡의 촘촘하게 난 비늘 사이에 시커먼 색깔로 거꾸로 꽂혀 있는 역린이 보인다.
입을 벌려서, 단숨에 숨통을 끊을 기세로 흰 이빨을 번득인다!
백룡은 자신의 목을 축으로 회전하는 길을 택한다. 아바셋의 이빨은 백룡의 단단한 비늘을 뚫고 붉은 살점을 뜯어내었다.
하지만 그게 역린은 아니었다. 백룡은 살을 내주고 역린을 얻어낸 것이다.
아바셋의 기세가 굉장했기 때문에 두 용의 몸뚱이가 충돌했다. 뇌가 흔들리는 충격에 잠시 정신을 놓는다. 통제력이 끊긴 아바셋. 그러나 용은 기계가 아니기 때문에 여전히 비행하고, 여전히 피한다. 그럼에도 지금의 이 틈은 꽤 컸지만, 상대는 어째서인지 공격해오지 않는다. 충격을 받은 건 이쪽만이 아니다.
“헤르만! 이대로만 해! 계속 유인해라!”
칼레샤 소령의 목소리가 귓가에 윙윙 울리자 겨우 정신을 차렸다. 필사적으로 적의 뒤를 잡으려고 하는 척 하면서 자연스럽게 내 뒤를 내준다. 정말 위험한 단계는 지금부터. 어떻게든 진짜로 격추되지 않고 도망쳐야 한다.
그러나 칼레샤 소령이 잘 해줄 것이다.
꼬리잡기를 한참 했을까, 칼레샤 소령이 마법을 발동했다. 어째서인지, 그냥 알 수 있었다. 원소계 마법 ‘켄나,’ 따로 떨어지면 무해한 두 물질이 한데 섞여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킨다. 그것은 말 그대로 폭발. 주위의 산소를 순식간에 고갈시킬 정도로 거대한 화염이다. 그 화염이 나를 뒤쫓는 백룡을 향한다.
“소령님!”
그때, 갑자기 비명과도 같은 히데 소위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
“피해요!”
동시에 익숙하면서도 내가 프로이센에서는 한 번도 들어볼 일이 없었던 소리가 들렸다.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우선 백룡이 있다. 그리고 화염, 폭발이 있다. 그 너머엔 칼레샤 소령이 있었다.
선바이저 너머로 얼핏 보인 표정은 놀란 것처럼 눈을 뜨고 있다. 얼굴은 새하얗게 질렸다. 가슴 아래에는, 몸의 오른쪽에는 농구공보다 큰 동그란 구멍이 조금 잘린 채 뻥 뚫려 있었다. 그것은 칼레샤 소령의 상반신 3분의 1정도를 날려버렸다. 나는 비산하는 혈액을 볼 수 있었다. 총탄, 아니 포탄이 칼레샤 소령의 척추를 부숴놓았기 때문인지 그녀는 부자연스러운 각도로 조종간에 픽 고꾸라진다.
그녀의 뇌가 죽어 버리면서 동시에 통신 채널도 뚝 끊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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