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리고 너는 용이 되어-17화 (17/102)

1권 3장. 비행과 광기의 시작-(7)

오후 훈련이 있었지만 상관없었다. 우리는 히데 소위에게 우리의 불참을 전해달라고만 말하고 헌병대대로 향했다. 대대장은 오후에, 그것도 친위대 복장을 하고 온 우리를 보고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두 명만 빌려주십시오.”

그의 의문은 더욱 짙어졌지만 순순히 헌병 두 명을 빌려 주었다. 그 사이에 신뢰라도 얻은 모양이다. 우리는 그 두 명을 데리고 가서 기지에서 일하고 있던 한 사람을 체포하고 돌아왔다.

구치소에 처넣는 동안 대대장이 말했다.

“허튼짓을 할 사람이 아니라 내버려두긴 했지만 여긴 친위대가 아니야. 체포를 한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할 거다.”

“당연히 이유는 있습니다. 혐의는 용병기 밀반출, 반정부단체 협력죄.”

“···용병기가 있었단 말인가?”

“거의 확실합니다.”

우리는 벽에 붙어 있는 커다란 보드로 향했다. 사건 진행상황을 모아 놓은 게시판이었다. 우리는 막대기로 금요일을 가리키며 말했다.

“지난 주 금요일, 엘샤 크라우스는 룸메이트인 클로리스 슈타인 중위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바하르트 블라우 상병의 안경을 그에게 전달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몸이 너무 좋지 않아 직접 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죠. 클로리스 중위는 근무를 쉬는 토요일에 그 안경을 이바하르트 상병에게 전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일요일, 이바하르트 상병은 제 이사를 돕기 위해 바이어를 벗어나 프로이센에 왔죠. 이것으로 확실해집니다. 이바하르트 블라우가 안경 형태로 각인된 용병기를 기지 밖으로 빼돌린 것이.”

“···어째서지?”

“왜냐하면, 일요일에 만난 이바하르트 상병은 안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말했다.

“저를 처음 본 이바하르트 상병은 저를 상급돌격지도자라고 부르는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토요일에 갑자기 진급한 상태여서 제 계급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바하르트 상병은 제 계급장을 바로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눈이 나빴기 때문이었죠. 꽤 가까운 거리였지만 그는 제 계급장을 식별해낼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막대기를 내려놓았다.

“그 정도로 눈이 나쁜 사람이라면 항상 안경을 착용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실제로 지난 주 목요일 루프트바페 홍보자료 촬영일에선 그는 안경을 끼고 있었습니다. 그가 안경을 잃어버리고, 엘샤와 클로리스 중위의 손을 거쳐 다시 되찾은 날은 토요일. 그런데 그 다음날인 일요일에 또 안경을 잃어버린 상태이다? 이건 좀 부자연스럽죠.”

대대장은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따라서 전말은 이렇게 된 겁니다. 목요일, 엘샤와 이바하르트는 루프트바페 홍보자료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이바하르트가 자신의 안경을 엘샤에게 전달한 겁니다. 그리고 어떤 수단을 써서 가짜로 아픈 척을 해 병원으로 갑니다. 그날 밤 엘샤는 프리데리케의 마력을 전부 빼내어 그 안경에 각인했고, 그 반동으로 진짜로 앓아눕게 됩니다. 거동을 할 수 없었던 엘샤는 룸메이트인 클로리스 중위가 문병을 오자 그 안경을 이바하르트에게 전달해 달라고 부탁했죠. 이바하르트는 그 안경을 받았고, 마침 기지를 벗어날 기회가 생겼습니다. 프로이센에 있는 한 친위대 장교를 데려오라는 것이었죠. 프로이센과 바이어는 그렇게 가까운 편이 아니기 때문에 중간에 새서 안경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해주기에는 시간이 충분했습니다. 그렇게 안경을 처분하고, 프로이센에 도착해 절 데리러 온 거죠.”

“···그래도 그것은 전부 추측이 아닌가?”

“예, 추측입니다. 하지만 꽤 신빙성이 높은 추측입니다. 우연이 이만큼 겹치면 이상하거든요.”

우리는 손을 꼽았다.

“첫째. 지난 주 목요일의 일정상 엘샤 소위가 다른 사람과 접촉할 기회는 홍보자료 촬영일과 병원밖에 없습니다. 물론 다른 물건을 용병기로 만들 수 있습니다. 이것보다 훨씬 전에 다른 물건을 받아놓았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휴대해도 누구도 의심하지 않으며 그 어떤 검문도 통과할 수 있는 물건은 많지 않습니다.”

“설마 그 용병기가 암살을 위해 쓰일 거라는 이야긴가?”

“무기 형태에 각인하지 않은 용병기라면, 그런 용도로밖에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안경은 그 조건을 모두 충족하지요. 하지만 엘샤는 안경을 쓴 다른 사람과 접촉할 기회가 별로 없었습니다. 그녀는 용기사이기 때문이죠.”

용기사가 되려면 여러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했다. 첫째, 상위 등급의 용인일 것. 둘째, 시력이 좋을 것. 나는 우연히도 시력이 좋았고 테스트를 거치지 않았지만 대부분의 용기사들은 시력이 좋다. 용기사 중에 안경을 쓴 사람은 하나도 없다.

“게다가 이곳엔 안경점도 없습니다. 사려면 바이어 외곽으로까지 가야 하죠. 거의 다른 시까지 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특별한 용무도 없이 그 정도로 움직였다면 반드시 우리가 주목했을 겁니다.”

대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엘샤 소위는 병원이라는 알리바이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용의자 목록에 들어가 있었으니까. 자네가 한 것은 그걸 검증하는 시간을 극도로 단축시켰을 뿐.”

“용이 죽는 순간부터 엘샤 소위가 운신할 수 있는 폭은 줄어듭니다. 당장 반동으로 몸이 상한 데다가, 그랬다간 들킬 게 뻔하기 때문이죠. 따라서 용병기를 반출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두 번째 손가락을 접었다.

“둘째로, 홍보자료를 촬영한 사람들은 서로 이름도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었습니다. 엘샤와 이바하르트가 딱히 서로 아는 체를 했다는 증언도 없었고요. 그러나 금요일에 엘샤는 클로리스 중위에게 부탁을 합니다. ‘이바하르트 블라우 상병’에게 안경을 전해달라고.”

우리는 세 번째 손가락을 접었다.

“셋째, ‘소위’인 엘샤가 ‘상병’의 소지품을 전해주기 위해 ‘중위’에게 부탁한다? 굉장히 이상하지 않습니까? 나중에 낫고 나서 병사를 시킬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굳이 클로리스 ‘중위’를 시켜서 안경을 전달했죠.”

우리는 손을 내렸다.

“종합하자면, 하필 계몽결사원인 엘샤가 이바하르트의 안경을 주웠고, 서로 이름도 모르는 사이처럼 보였음에도 그의 풀네임을 정확히 알고 굳이 자기 상관에게 부탁해서까지 안경을 빨리 치워버렸고, 그렇게 겨우 되찾은 안경을 이바하르트 상병은 하필 바이어를 벗어나는, 그 다음날에 또 잃어버렸습니다. 우연도 이 정도로 겹치면 정말 의심스럽지 않나요?”

우리 말을 곰곰이 듣던 대대장이 말했다.

“정말 의심스럽고, 그 정도면 충분히 체포할 수 있다고 생각하네. 하지만 물증이 있나? 기소하려면 물증이 있어야 해.”

그래서 엘샤가 유일한 용의자로 남았을 때에도, 정말 의심스러웠음에도 헌병대대가 손을 쓸 수 없었던 것이다. 우리는 대답했다.

“자백으로도 기소는 할 수 있지요, 대대장님.”

대대장의 표정이 굳었다.

“사건은 친위대로 넘길 건가? 하지만 이바하르트는 군인이기도 하다. 군법회의에 회부해야 해.”

“오, 물론 군법회의로 넘겨야죠. 군인이니까.”

우리는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심문은 제가 할 겁니다.”

그 말을 듣자 대대장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저것은 혐오감인가, 아니면 경멸인가? 우리는 !파라가 아니라서 그 정도로 자세히 구분하지는 못하겠다.

“명백히 친위대의 일이니, 친위대인 제가 해결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너무 걱정하진 않으셔도 됩니다. 회의에 참석할 수 있는 상태로는 만들어 드리니까요.”

대대장이 우리의 시선을 피하더니, 나지막이 내뱉는다.

“자네 맘대로 하게.”

우리는 꾸벅 인사를 하고 일어섰다. 마침 근처를 지나는 엠스트 중위의 어깨를 툭툭 쳤다. 그가 돌아서서 경례를 하자 우리는 쉬어 자세로 돌아가라고 손짓한 뒤 그에게 물었다.

“방음 잘 되는 방 있나?”

이바하르트 블라우가 입을 여는 데에는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우리는 타액과 피로 얼룩진 장갑을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이바하르트는 직후 영창으로 이송되었고 의료진이 거기로 파견 나가 그를 치료하는 중이다.

사건 내용은 우리가 추론한 것과 거의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이바하르트는 그 용병기를 어떤 목적으로 만들어냈는지는 몰랐다. 진짜로 모르는 것 같았기에 우리는 그만 이바하르트를 놓아 주었다.

그래도 추가적인 수확은 있었다. 이바하르트가 접촉한 다른 계몽결사원이 누구인지, 어떻게 접촉하는지에 대한 정보를 얻어냈다. 추가검증은 필요하겠지만, 그것까지 우리가 해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추가로 보고했다. 그러자 전화기 너머의 상관이 말했다.

“목적은 암살일 수밖에 없겠지. 휴대하기 쉽고 검문을 통과하는 물체, 거기다가 방아쇠를 설치해도 안경다리 끝쪽에만 장착하면 머리카락에 가려 보이지 않을 테니. 황궁의 경비를 강화하겠네.”

“계몽결사가 황실을 노린다고 생각하십니까?”

“계몽결사는 꾸준히 그래 왔어. 언제나 황실을 전복시키려고 노력해 왔네. 당연히 타겟은 황실일 수밖에 없겠지. 게다가 며칠 안 있으면 카이저의 탄신일 축제가 열리고 황궁이 개방된다. 최적의 조건이라고 할 수 있지.”

상관은 그렇게 말을 마치며, 다른 친위대원을 보낼 테니 인수인계를 잘 해달라고 말했다. 갑자기 끼어든 우리보다야 처음부터 계몽결사를 추적하던 인원이 훨씬 잘 해낼 것이다.

그렇게 모든 사건이 마무리되고, 우리는 숙소로 돌아왔다. 훈련이 끝나기에는 조금 이른 시간이었던지 숙소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숙소 바닥은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카트리나!”

내 침대에서 자고 있던 카트리나는 무슨 일이 벌어졌냐는 듯 태연하게 몸을 핥았다. 한동안 잠잠해서 고쳐진 줄 알았더니만, 또 쓰레기통을 엎어 놓았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어쩔 수 없다. 고양이를 키우는 자의 업보 아니겠는가. 엎은 직후라면 따끔하게 혼내서 다시 이러지 않도록 할 수 있겠지만, 지금은 이미 시간이 한참 흐른 뒤였다. 지금 하는 훈육은 아무 효과도 없었다. 나는 얼굴을 대충 문질러 닦아낸 뒤 체념한 채 빗자루를 들었다.

작은 쓰레기들을 열심히 쓸어 담아 다시 쓰레기통에 넣는 동안 카트리나는 내 침대 위에서 그루밍을 하고 있었다. 힐끗 쳐다보니 침대는 그새 털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이불과 깔개가 어두운 색이라 흰 털이 더욱 눈에 띄었다. 히데 소위의 침대에 가서 그러지 않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빗자루로 작은 쓰레기를 쓸어 담은 뒤 큰 쓰레기를 손으로 주웠다. 그 중에는 며칠 전에 히데 소위가 나에게 준 신문도 있었다. 마치 쥐가 갉아먹은 듯 가장자리가 너덜너덜했다.

나는 발라당 누워 뒹굴거리는 카트리나 앞에 가서 신문을 들이대며 말했다.

“이 아가씨야. 종이 먹지 말라고 몇 번이나 말했니? 내 보고서 좀 그만 먹으라고 했더니 이젠 신문을 먹어? 네가 염소냐? 염소야?”

카트리나는 나를 힐끗 쳐다보더니 야옹 소리를 내며 돌아누웠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잉크 같은 건 몸에 안 좋단 말이다···”

나는 신문을 살펴보았다. 카트리나는 가장자리를 씹었고 대문짝만하게 실려 있는 보헤미아의 황태자 사진은 발톱으로 할퀴어 놓았다. 그나마 사진 있는 쪽을 안 먹어서 다행인가. 카트리나가 먹은 곳엔 다행히도 인쇄된 것이 많이 없는 부분이었다.

나는 무심코 신문을 펼쳤다. 요즘 너무 많은 일이 있었다. 이 보헤미아의 황태자가 샤이 반도에 방문한다는 기사를 읽은 지 며칠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 일주일은 된 것처럼—

생각이 거기에 다다른 순간, 나는 신문을 툭 떨어뜨렸다.

카이저의 암살?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다. 한 제국의 카이저다. 그 여파는 어마어마할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자식이 있다. 이텔 마리아 폰 프로이센, 베르논 블라즈 폰 프로이센. 특히 베르논 황자는 황위계승권 1순위다. 비극적인 일이겠지만, 제국의 정책은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카이저와 베르논 황자의 성향은 비슷했고, 따라서 그는 카이저의 오른팔 역할을 지금까지 해 오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보헤미아의 황태자는?

범게르만주의의 주축인 보헤미아의 황태자가, 슬라브 계열 국가 달마티아의 수도 한복판에서 암살된다면?

‘지금 그곳은 아르텐 대륙의 화약고나 다름없어. 누가 아주 조그마한 불씨만 갖다 대도 터질 거야.’

내가 클로리스 중위와 밥을 먹으며 한 말이다. 샤이 반도.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 분쟁이 만약 발생한다면, 50퍼센트 확률로 그쪽이다.

상관에게 보고해? 하지만 이건 추측일 뿐이다. 게다가 남의 나라 일. 친위대가 다룰 영역이 아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구에게?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나도 모르게 달려가고 있었다. 친위대 제복을 갈아입지도 못한 채로, 그 먼 거리를, 한 번도 안 쉬고 달려갔다.

도착한 곳은 헌병대대. 의아해하는 대대장에게 뛰어든다.

“전화, 전화를!”

“무슨 전화··· 보안회선 전화 말인가?”

내가 대답하지 못하고 고개만 끄덕이자 대대장은 나를 그쪽으로 보내 주었다. 친위대의 중요한 일쯤으로 짐작하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반쯤은 사실이었다.

나는 전화를 걸었다.

“···무슨 일이지?”

전화를 받은 것은, 나의 『비밀 협력자』. 나는 이텔 마리아 폰 프로이센에게 지금까지의 일과, 거기서 예상되는 결과를 말했다.

“···지금 너에겐 아무 증거도 없다는 걸 알고 있겠지?”

분하지만, 사실이다.

“게다가 그 소식을 황태자에게 알려준다고 끝이 아니다. 그것은 이 도이체스 제국이 용병기를 유출시켰음을 시인하는 것이며, 그것을 막지 못했다는 무능까지 낱낱이 까발리는 행위다. 그걸 네가 모르지는 않겠지?”

“···보헤미아는 도이체스 제국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우리의 우방이에요.”

“정치를 그렇게 간단히 생각하지 마라. 지금 넌 너무 위험한 걸 요구하고 있어.”

“저도 압니다. 그렇기에 비공식 채널로 당신에게 부탁하는 것이고요.”

내 직속상관을 무시하고 건 전화다. 그것은 이텔도 알고 있다. 전화기 너머에서 상대가 한숨을 내쉬었다.

“공식적으로 도이체스 제국이 용병기의 유출을 인정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목소리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귀띔 정도는 해줄 수 있겠지. 고려해보겠다.”

“감사합니다.”

전화가 뚝 끊어졌다. 나는 힘이 풀려 스르르 주저앉았다.

그 뒤로는 평범한 나날의 연장이었다. 관숙비행을 문제없이 해낸 우리는 대대장인 요한나 중령의 지휘 아래 단독비행을 하게 되었고, 감응력 훈련에 적응한 나머지 인원들은 편대장들과 함께 관숙비행을 하게 되었다. 편대장의 수는 적은데 그들이 봐줄 수 있는 사람은 한 번에 한 사람씩밖에 없었기 때문에 돌아가며 차례가 오게 되었다.

모두가 단독비행, 혹은 관숙비행을 치르기 앞서서 요한나 중령이 각자의 파트너 용을 배정받는 의식을 치렀다. 이제 단독비행이 가능한 나, 히데 소위, 알비 소위, 클로리스 중위, 라인스 소위가 앞으로 나와 섰다.

요한나 중령이 종이를 들고 읊는다.

“대위 헤르만 예거.”

내가 한 발짝 나와 앞에 서자 그녀가 말했다.

“아바셋.”

나는 심장이 술렁이는 것을 느꼈다. 아바셋. 프로이센에서 만났던, 내 생애 처음으로 본 용. 그 아이가 나의 파트너가 된 것이다. 요한나 중령은 계속해 나갔다.

“중위 클로리스 슈타인, 엘페트.”

“소위 히데 프롬, 비베카.”

“소위 알비 하스, 발다.”

“소위 라인스 윈터, 디트린데.”

그러는 동안 단상 밑에 도열해 있던 용유지관리전대의 병사들이 두셋씩 걸어 나와 다섯 명의 용기사 뒤에 섰다.

“상기인들은 모두 혼자서 용을 탈 자격을 얻은 사람들이다. 진정한 용기사가 되려는 첫 걸음에 불과하지만, 매우 중요한 첫 걸음이지. 제군들도 열심히 노력해서 얼른 이 경지에 도달해야 할 것이다. 해산.”

편대장들이 오늘 관숙비행을 할 인원만 남기고 돌아가는 동안 용유지관리전대들이 우리를 각자의 용으로 안내한다. 나에게 따라붙은 세 명의 여자들은 나를 아바셋에게로 안내한다.

나를 반기는 흑룡을 껴안는다. 그새 정이라도 든 것일까.

“아바셋은 측정 결과 생명계 마법을 사용합니다. 가장 주된 기능은 신체강화. 따라서 전위에 서시게 됩니다.”

용유지관리전대 휘하 소대장이 나에게 설명했다.

“배정은 누가 하는 겁니까?”

“보통 소속된 대대의 대대장이 하게 됩니다.”

요한나 중령인가. 전위는 가장 위험한 위치. 이런 식으로 소소한 복수를 하는 것인가.

상관없었다. 전쟁이 나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고, 만약 전쟁이 난다면 후위라고 해서 딱히 더 안전하지는 않을 테니까.

제1비행대대의 엘리트 용기사들은 각자의 용을 타고 도약광장에 집합했다. 신호가 떨어지자 이륙을 시작한다. 모두 문제없이 성공. 여섯 명의 용기사가 하늘을 날아오른다.

요한나 중령은 대형을 이루어 나는 훈련을 시작했다. 나는 전위였기 때문에 가장 선두에 섰다. 그 외에는 대형을 유지한 채로 기동하는 연습을 했다. 그것은 칼레샤 소령과 관숙비행을 할 때 해두었던 고난이도 비행기술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에게는 조금 어려운 문제였던지, 훈련시간이 다 되어갈 때쯤에야 겨우 그럴싸한 기동을 할 수 있었다.

훈련을 마치고 축사로 돌아온 나는 아바셋의 목을 껴안으며 작별인사를 했다. 그러다 무심코 목 아래쪽으로 손을 넣었고, 그걸 본 관리전대의 병사 두 명이 나에게 달려들어 즉시 나를 넘어뜨렸다.

뒤통수가 얼얼해진 나를 소대장이 화난 눈길로 내려다보았다.

“안전수칙은 도대체 뭘로 들은 겁니까! 제발 사람이 말 좀 하면 들으세요! 저번에도 사고 치셨다면서 배운 게 아무것도 없는 겁니까!”

나는 나보다 한참 작은 소대장의 기세에 눌려 아무 말도 못했다.

“하지만 나한테는 괜찮았”

“대위님!”

“알았어, 알았어. 다음부턴 안 할게.”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나는 인간 전용 문을 나갔고, 축사 건물을 완전히 빠져나오면서 히데 소위와 마주쳤다. 히데 소위가 말했다.

“사춘기 소년도 아니고 또 무모한 일 하셨습니까.”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들렸습니다.”

!파라의 감각은 정말 놀랍다.

둘이 함께 숙소에 들어갔기 때문에 곤란한 사태는 발생하지 않는다. 내가 먼저 씻었고, 히데 소위가 그 다음이었다.

몸을 다 닦고 무릎에 앉은 카트리나를 쓰다듬는 동안 히데 소위가 다 씻고 나왔다. 젖은 머리칼을 수건으로 톡톡 쳐내며 말리는 동안 히데 소위는 조그만한 물체를 꺼냈다.

“라디오 샀네?”

“신문은 저랑 안 맞아서요. 정기구독도 취소했습니다.”

나는 신문이 더 좋던데. 천천히 읽는 맛이 있다. 물론 라디오가 더 빠른 매체이긴 하지만. 라디오는 사설이 없지 않은가. 신문은 사설 읽는 재미로 사는 거다. 그나저나 내 신문, 도대체 언제쯤 오는 걸까. 구독 신청한 지 한참 되었는데.

히데 소위가 라디오를 틀었다. 주파수를 맞추자 뉴스가 흘러나왔다.

“내일 날씨는 전국적으로 화창한 가운데 남부 지방엔 비가···”

나는 멍하니 날씨를 들으며 카트리나를 쓰다듬었다. 사실 이제쯤 지겨워지고 있었지만, 내가 멈추면 카트리나가 삐진다.

카트리나가 골골골 소리를 냈다. 나는 카트리나의 얼굴 옆선을 긁어주며 말했다.

“좋아? 내가 쓰다듬어 주니까 좋니?”

카트리나는 여전히 편안하게 골골골 소리를 내고 있었다. 한참을 더 그러고 있으니, 카트리나가 그만 됐다는 듯 일어서서 내 무릎을 내려왔다.

“서해상에는 파도가 높게 일겠···”

나긋나긋한 기상캐스터의 말이 갑자기 뚝 잘렸다. 이어서 약간 다급한 남자의 목소리.

“속보입니다. 보헤미아의 황태자 에커드 아레포고나브 대공이 달마티아의 수도 일리아에서 암살당했습니다. 암살범의 소재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가운데, 그가 외친 ‘세르보에게 자유를!’이라는 문구를 토대로, 이것이 달마티아의 과격파 민족주의 단체의 소행으로···”

뒤의 말은 그저 귀에 잠시 들렀다가 사라지는 것 같았다. 막지 못했다. 알면서도, 결국은 막지 못했다.

“···대위님?”

내 표정이 어떠했는지, 히데 소위가 고개를 기울이며 나를 부른다.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훗날 아르텐 대륙 전체를, 나아가 전 세계를 광기로 몰아넣은 불씨가 지금 시작되었기에.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