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리고 너는 용이 되어-14화 (14/102)

1권 3장. 비행과 광기의 시작-(4)

한참 뒤 히데 소위가 나왔지만 카트리나가 아직도 무릎에 앉아 있어서 나는 계속 앉아 있었다. 내가 20분간 같은 자세로 앉아 있자 히데 소위가 묻는다.

“고양이를 치우고 일어나면 되지 않습니까?”

“너 고양이 안 키워봤지. 캔따개는 고양이님이 앉는 순간 끝이야.”

“···캔따개?”

“음··· 고양이 키우는 사람들끼린 스스로 그렇게 불러. 참치 캔 따는 사람이니까.”

그러자 히데 소위가 기묘한 표정이 되었다. 이게 고양이와 인간의 권력구도. 다른 나라에선 고양이 키우는 사람을 집사라고 부르던데 우리나라는 취급이 너무하다. 집사는 적어도 인간이기라도 하지.

카트리나가 드디어 일어서서 가자 나는 씻을 수 있었다. 습관대로 후다닥 씻어낸 뒤, 목욕가운을 입은 채 머리의 물기를 수건으로 털어냈다. 히데는 다시 책을 읽고 있었다. 얼추 몸이 다 마르고 나자 루프트바페 정복을 입으며 물었다.

“여기서 이러고 있어도 돼? 추가 훈련은 없어?”

“없습니다. 자유시간입니다.”

그렇다면 헌병대대에 갈 짬이 난다. 나는 문득 서글퍼졌다. 자유시간인데 일하러 가다니. 이게 다 이중보직 때문이다. 루프트바페 대위, 친위대 최상급돌격지도자. 그리고 이 모든 일의 원흉은 델 중장이었다. 그래, 모든 건 델 중장 때문이다.

여전히 머리는 아팠지만 덕분에 문득 벼락같이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헌병대대에 가기 전 잠깐 다른 곳에 들렀다. 보급반이었다. 마침 저번에 감응력 훈련을 시켰던 중령이 보이길래 그쪽으로 다가갔다. 그녀도 우리를 알아보는 것 같았다.

“흑요석을 달라고?”

그녀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너무 한심한 요청이라 대답할 가치도 없군. 개인 용도로 마법을 사용하게 해줄 것 같나?”

“마법각인된 흑요석이 아니라 빈 흑요석이면 됩니다.”

“그것들은 전부 군수품으로 분류된다. 함부로 지급할 수는 없어.”

“개인 용도는 아닙니다. 헌병, 그리고 친위대 일에 꼭 필요합니다.”

그녀가 잠시 우리의 눈을 바라보았다. 마침내 그녀가 입을 뗐다.

“좋아. 대신 어떤 용도로 썼는지 나중에 보고서를 제출해라.”

“감사합니다. 어디서 가져가면 됩니까?”

“흑요석이 있는 곳을 혼자 가게 내버려둘 것 같나? 게다가 너는 용기사. 마력을 빼낼 수 있는 사람이다. 절대 안 돼. 내가 동행한다.”

우리는 그녀와 함께 창고로 갔다. 그녀가 우리를 주시하는 게 느껴졌다. 사실 이만해도 꽤 파격적이었다.

흑요석 무더기를 뒤적거렸고, 그러는 동안 그녀는 매의 눈으로 우리를 주시하고 있었다. 너무 작은 건 안 된다. 우리는 손바닥 크기 정도 되는 흑요석을 집어 들었다. 그걸 보자 그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콧방귀를 꼈다. 큰 걸 집어가서 그런 것이겠지.

그 흑요석을 선반에 올려놓고 주머니를 뒤져 친위대에서 지급해준 주머니칼을 꺼냈다. 그녀는 우리가 무엇을 하려는지 두고 보려는 듯 팔짱을 꼈다. 우리는 주머니칼을 단단히 쥔 뒤 흑요석에 내려쳤다. 흑요석이 쪼개졌다. 뒤이어서 한 번 더, 한 번 더. 마음에 드는 모양이 나올 때까지.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오자 그녀가 툭 내뱉었다.

“석기시대인이라도 흉내 낼 참인가?”

“비슷합니다.”

“이왕 허가해 준 일이니 막지는 않겠다만, 이유가 시시하다면 각오하는 것이 좋아.”

글쎄. 우리도 어떻게 될지 잘 모른다. 우리에게도 이것은 도박이었으니까. 우리는 그녀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헌병대대로 향했다.

헌병대대는 침통한 분위기였다. 이제 여론은 엘샤 크라우스 소위가 제일 의심스럽다는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하지만 증명할 수단이 없었다. 게다가 망치는 아직도 발견되지 않고 있었다.

한마디로, 교착상태였다.

모두가, 회의 주제가 계속 빙빙 돈다는 것을 깨닫고 입을 다물 때쯤에 우리는 말했다.

“···실은 엘샤 소위가 결백한지 아닌지 알아볼 방법이 있습니다.”

대대장의 눈초리가 사나워졌다.

“그걸 왜 지금 말하나!”

그의 목소리에서 숨길 수 없는 짜증이 묻어나왔다. 다들 이 사태에 많이 지친 것이다. 압박감이 장난 아니었겠지.

“저도 오늘에야 떠올린 것입니다.”

“어떤 방법인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말하면 절대 허락하지 않을 테니까.

“저를 엘샤 소위에게 데려가면 바로 판별해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결백하다고 밝혀질 경우, 그 여파는 엄청날 겁니다. 제가 속한 친위대, 그리고 대대장님까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우리는 도박을 제안했다. 사실 이것은 승률이 높은 도박이었다. 약 70퍼센트. 그러나 만약, 엘샤 소위가 그 30퍼센트에 걸려 버리면 우리는 모두 심각한 곤경에 처할 것이다. 직접 실행한 우리부터 그걸 승인한 대대장까지. 대대장은 행간의 의미를 다 파악한 눈치였다. 그가 한참 동안 우리의 눈을 바라본다.

대대장이 일어섰다.

“엘샤 소위의 병실로 데려가 주지.”

“대대장님!”

엠스트 중위가 파랗게 질린 얼굴로 외쳤다. 대대장이 잘라 말했다.

“이 이상 지체할 수는 없어. 난 이쪽에 한 번 걸어보겠다.”

우리는 대대장에게 꾸벅 목례를 했다. 약간의 존경을 담아서. 왜냐하면 그는 방금 자기 자리를 판돈으로 건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감사합니다. 이제 한 가지만 약속해 주십시오. 제가 안에서 무슨 일을 하더라도 절대, 절대로 방해하지 않겠다고.”

대대장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사람들을 더 데려와야 한다고 주장했고, 본부에서 두 명의 장교를 추가로 영입했다. 대대장, 우리, 엠스트 중위, 헌병 둘, 그리고 본부의 장교 둘이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 우리는 엘샤 소위를 진단한 의사에게 물었다.

“화상 말고 엘샤 소위가 정확히 어떤 병인지 아십니까?”

“원인을 알 수 없는 상태입니다. 전반적으로 신체 전체에 부하가 걸려 있습니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건 슈마허-크로이츠펠트 증후군이라 봅니다. 슈마허-크로이츠펠트 증후군은—”

“그만하면 됐습니다. 저희와 함께 동행해주시겠습니까?”

그러자 대대장이 우리를 노려보았다. 증인을 더 늘려서 뭐하는 짓이냐고. 우리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는 그를 무시했다.

헌병 둘은 병실 밖에서 보초를 서고, 우리와 대대장, 엠스트 중위, 본부장교 둘, 그리고 의사가 엘샤 크라우스의 병실에 함께 들어갔다. 그들은 침대 근처에 다가가 섰고, 우리는 엘샤 소위의 침대에 더 가까이 다가갔다. 모두를 본 엘샤 소위가 힘겹게 몸을 일으키려 했다.

“됐어요. 누워있으세요.”

“하지만···”

“당신은 환자잖아요? 아무도 무례하다 여기지 않아요.”

그러자 엘샤 소위가 털썩 몸을 눕혔다. 우리는 상냥한 어조로 물었다.

“몸 상태는 아직도 나쁜가요?”

“아직···입니다, 대위님. 그런데··· 대위님이 왜···?”

“나 또한 수사권을 가진 사람이라, 참여하게 되었답니다. 걱정 말아요. 그저 확인만 하려는 것뿐이에요. 질문을 할 테니, 대답해 주세요. 알았죠?”

“예···”

그리고 우리는 질문을 시작했다. 이전에 헌병들이 지겹도록 퍼부었을 질문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하지만 친위대 경력 덕분에 우리는 그 질문들을 적절히 변주해 전혀 다른 질문처럼 보이게 만들 수 있었다. 우리가 고압적으로 나서거나 윽박지르지 않아서인지 엘샤 소위는 많이 풀어진 모습으로 우리의 질문에 이것저것 대답했다.

우리는 일어섰다.

“수고했어요. 확인할 건 다 확인했네요.”

그러다가, 우리의 시선이 엘샤 소위의 손에 닿는다. 눈에 연민이 깃든다.

“손은 많이 심각한가요?”

“오늘 오전에 붕대를 풀었어요. 왼손뿐이지만요.”

“그래요? 어디 한 번···”

그러자 엘샤 소위가 손을 내밀었다. 왼손은 과연 형편없이 일그러져 있었다. 그러나 지문까지 지워지지는 않았다. 문제는 오른손. 아직도 붕대에 감겨 있다.

“저기, 오른손도.”

엘샤 소위가 양손을 내밀었다. 우리는 우리의 오른손은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왼손으로 엘샤 소위의 손을 잡고 끔찍한 화상을 살폈다. 그리고,

엘샤 소위의 양 손목을 왼손 하나만으로 전부 움켜쥔다. 동시에 주머니에서 오른손을 빼낸다. 손에 들려 있는 것은 칼날처럼 예리하게 쪼개진 흑요석 조각. 그대로 엘샤 소위의 허벅지에 콱 찔러 넣는다.

“지금 뭐 하는 짓인가!”

대대장이 고함을 치며 우리를 떼어내려고 했다. 우리는 그의 손이 닿기 직전, 날카로운 목소리로 외쳤다.

“약속했지 않습니까! 약속을 지키십시오!”

그가 주저한 틈을 타 찔러 넣은 흑요석에 힘을 주어 옆으로 죽 긋는다. 바깥쪽 방향을 향하도록. 안쪽으로 그으면 대동맥을 건드려 죽어버린다. 칼날이 뼈를 긁고 혈관을 절단하며 살을 가른다. 엘샤 소위는 그 작은 체구에서 나왔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비명을 질렀다.

우리는 하얗게 질린 의사를 바라보면서 피로 물든 흑요석을 빼냈다. 우리는 의사에게 명령했다.

“지혈해요.”

그리고, 흑요석을 치켜든다.

흑요석은 영롱한 무지갯빛을 내고 있었다.

“맙소사······.”

엠스트 중위가 모두의 마음을 대변해 중얼거렸다. 우리는 흑요석을 공중에 한 번 던졌다가 낚아챘다. 무지갯빛 궤적이 반짝거렸다.

“유도자가 특별한 이유는 그 높은 감응력도 있지만 마력을 빼낼 때 본인의 신체에 부하가 걸리지 않는 점도 있습니다. 체내의 마력을 전부 배출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용기사 정도의 감응력으로는 무리죠. 몸에 꽤 타격이 큽니다.”

모두를 바라보며 말을 잇는다.

“그러므로— 용을 쇠약사시킨 용기사의 체내에는 아직 마력이 잔류해 있습니다. 평범한 인간은 절대, 절대로 마력을 지니지 않아요. 그러나 이 흑요석은 빛을 내고 있습니다. 저 피와 살점에서 마력을 흡수했다는 증거죠. 따라서!”

우리가 목소리를 높이자 모두가 흠칫했다. 우리는 뒤돌아서서, 피가 빠져나가 창백하게 질린 엘샤 소위의 얼굴을 바라보며 웃었다.

“엘샤 크라우스 소위, 당신이 바로 용의 마력을 빼내서 죽인 사람입니다.”

엘샤 소위의 얼굴이 더 창백해졌다. 출혈 때문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일까? 응급처치를 한 의사는 엘샤 소위를 이송할 준비를 했다. 우리는 헌병 둘에게 눈짓했다. 그들은 엘샤 소위가 도주할 수 없도록 이동침대 옆에 붙어 서서 따라갔다.

여전히 사람들은 얼어붙어 있었다. 우리는 엠스트 중위에게 피에 젖은 흑요석을 건네주었다. 엠스트 중위는 잠시 멍청하게 서 있더니, 갑자기 전원이 들어온 기계처럼 화들짝 놀라며 그 흑요석을 증거물 봉투에 넣었다. 대대장이 망연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이게··· 자네······”

“음?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죽지 않도록 조심해서 찔렀으니까요.”

“···만약 아니었다면 어쩔 생각이었나?”

“글쎄요. 책임을 져야 했겠죠. 여기는 다른 증인이 있었으니까.”

그 말을 들은 엠스트 중위의 얼굴에 감정이 서렸다. 공포. 너무나 자주 보아왔던 것이라 익숙했다.

그들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리고 더 이상 우리에게 수사에 협조해달라고 요청하지도 않았다. 다만 우리에게, 엘샤 크라우스 소위가 자신이 계몽결사의 일원임을 실토했음을 전달했다. 한 시간의 추가 심문 결과 그들의 목적은 용 살해에만 있었으며 용병기를 만들 생각은 없었다는 결론이 나왔다.

“대위님, 화장실로 가 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우리에게 수사의 진척사항을 알리러 나온 엠스트 중위가 말했다. 허튼소리를 할 사람은 아니라 나는 화장실로 갔다.

“어쩐지 사람들이 피해 다니더라···”

거울에 비친 우리의 얼굴엔 피가 튀어 있었다. 엘샤 소위의 피였다. 그러나 문제는 얼굴만이 아니었다. 얼굴에 튄 피는 별로 없었지만 옷에 튄 피가 그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었다. 방금 살인사건을 저지른 사람처럼 보일 정도는 아니었지만 푸른 루프트바페 정복에서는 충분히 눈에 띄었다. 별 수 없었다. 발견 즉시 빨았다면 모를까, 이미 핏자국은 말라붙어 있었다. 우리는 얼굴이라도 씻어냈다. 살짝 지워진 화장을 고친다. 다시 하얀 얼굴.

화장실을 나오자 엠스트 중위는 커피를 막 끓여낸 참이었다.

“이제 더 이상 망치를 찾으러 다닐 필요가 없겠어요.”

우리도 커피를 마시며 말했다.

“그 망치를 잃어버린 녀석은 정말 혼비백산했을 거야. 온 헌병대대가 망치를 찾아다녔으니.”

“어쨌든 사건이 이렇게 종결되는군요. 헌병도 범인을 잡았고, 친위대도 계몽결사의 끄나풀을 잡을 수 있었으니까요.”

“글쎄, 과연 끝났을까.”

“예?”

“아무것도 아니야. 수사관의 편집증일 뿐. 이렇게 쉽게 끝나서 기분이 이상해.”

“쉽게··· 말씀이십니까.”

“대놓고 의심스러운 사람을 지목할 수 있을 정도면 쉬운 거야. 뭐, 일단 엘샤 소위가 자백한 내용이 전부 진실이라고 생각할 순 없지. 추가조사에서 더 자세한 게 밝혀질 거야.”

엠스트 중위는 무언가 생각하더니,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친위대는, 원래 그런 겁니까?”

우리는 엠스트 중위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 것 같았다. 엠스트 중위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알고 싶어?”

엠스트 중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아닙니다.”

그것을 끝으로 대화는 없었다.

엘샤 소위의 수사가 모두 끝난 건 아니었지만 친위대에게 보고할 필요는 있었다. 우리는 엘샤 소위가 취조 받는 시간 동안 작성한 보고서를 들고 본부로 향했다. 하늘은 꿀꿀한 회색이었다.

본부 로비는 어수선했다. 큼지막하게 걸려있던 루프트바페 홍보자료를 철거했기 때문이었다. 엘샤 소위의 얼굴이 나오는 사진이니 더 이상 저기 걸어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아마 새로 또 뽑아서 다시 찍을 것이다. 그때도 이바하르트 상병이 다시 있으려나? 히데 소위가 저 사진에 등장할까?

우리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히데 소위가 홍보자료에 나올 일은 없을 것이다. 아마 게르만족 인간만이 나오겠지. 씁쓸한 이야기였다.

보고서를 부치고 친위대에 전화로도 보고를 마치고 나자 우중충한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이런··· 우산이 없는데.”

본부에서 숙소까지는 비를 맞으며 걸어가기엔 꽤나 먼 거리다. 아마 속옷까지 푹 젖을 것이다. 또 샤워하기 귀찮은데. 그러나 딱히 우산을 빌릴 만한 사람도 없었기에 우리는 그냥 비를 맞으며 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입구로 다가가는데, 익숙한 흑발이 있다. 불타오르는 듯한 붉은색 우산을 든 검은 머리의 군인. 우리는 그녀의 어깨를 툭 쳤다.

“···대위님?”

입구에 있는 사람은 히데 소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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