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권 3장. 비행과 광기의 시작-(3)
“으악! 조종간!”
나는 팔을 확 뻗어 조종간을 움켜쥐었다. 몸을 수그린 탓에 칼레샤 소령이 내 품 안에 폭 들어온 모양새가 되었다. 내가 패닉에 빠져 허둥대자 칼레샤 소령이 깔깔깔 웃었다.
“안심해라. 통제력을 잃어도 갑자기 추락하는 일은 없을 테니까. 용도 스스로 판단할 줄 아는 생물이다.”
“노,놀랐잖습니까!”
“그리고 조종간에서 손을 떼도 조종이 가능해. 본질적으로 조종이라는 행위는 용과 감응해 하는 거니까. 조종간은 다만 생각을 덜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다.”
칼레샤 소령이 팔을 뻗더니 조종간을 쥔 내 손을 살며시 잡고 떼어냈다. 잡을 게 없어지자 손은 할 일 없이 놀게 되었다. 그건 아까부터 그랬지만.
“하지만 편법보다는 기본을 먼저 시작해야겠지. 용과 감응해서 조종해 봐라. 혹시나 통제를 잃는다면 그때는 내가 지휘할 테니 걱정하지 말고.”
그렇다면 이건 저번에 했던 ‘방아쇠 없이 마법 발동시키기’의 연장선이었다. 하지만 나는 감응력이 어떤 식으로 느껴지는지 모른다. 사실 저번에 왜 마법을 성공했는지도 잘 모르겠다. 나에겐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그럼, 일곱 시 방향으로 고도 250만큼 움직여보겠습니다. 그래도 될까요?”
“허가한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뭘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상상하면 되는 건가?
그렇게 생각을 하자마자 용이 급격하게 방향을 틀어 나아가기 시작했다. 고도를 서서히 올려가면서.
칼레샤 소령이 휘파람을 불었다.
“이렇게 하면 되는 겁니까?”
“대단하군, 예거. 지금 어떤가?”
“아무것도 안 느껴집니다.”
“···상상 이상의 감응력이군. 이 정도면, 거의··· 용과 한 몸이 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너에겐 다른 의미로 조종간이 필요 없겠군. 예거. 여섯 시 방향으로 쭉 나아가라. 좀 더 고급 비행기술을 연습해도 되겠어.”
기셀라를 그 방향으로 돌리자 바다가 보였다. 확실히, 추락하기라도 하면 뭍보다는 바다가 인명피해를 덜 낼 테니까.
슬슬 팔이 아파 오기 시작했다. 내 손이 어색하게 들려 있는 것을 눈치 챈 칼레샤 소령이 말했다.
“손은 내 허리에 둘러라.”
“···그래도 되는 겁니까?”
“원래 관숙비행은 그 자세가 맞다. 다만 이번에는 뒤에 탄 사람이 남자라는 차이가 있을 뿐.”
나는 조심스럽게 그녀의 허리에 손을 둘렀다. 두꺼운 용기사복을 입고 있음에도 칼레샤 소령의 허리는 가느다랗게 잡혔다.
“그···그리고 네가 허튼 짓을 할 거 같지는 않으니까.”
시종일관 냉정하고 침착했던 것과는 다르게 칼레샤 소령의 목소리가 잠시 흐트러졌다. 지금 자세는 앉은 채로 내가 뒤에서 칼레샤 소령을 껴안은 형태. 조종석이 좁아서 거의 밀착해 있다. 나와 체격 차이가 꽤 나서 칼레샤 소령은 내 품에 쏙 들어왔다. 마치 다정한 연인들이나 취할 법한 자세다.
바다까지 가는 동안은 일직선으로 쭉 날아가기만 하면 되었다. 칼레샤 소령이 입을 열었다.
“생각하던 것과 너무 달라서 당황했어.”
“무엇을 말씀이십니까?”
“너.”
칼레샤 소령이 말했다.
“남자에, 갑자기 사령관님 낙하산으로 들어온 데다가, 친위대 장교. 으스대고 오만한 꼴통일 줄 알았다.”
“친위대 인식 정말 바닥이네요.”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지 않나?”
“그렇긴 합니다만.”
“그런데···”
칼레샤 소령이 꼼지락거렸다.
“대대장님에게, 전대장님 앞에서, 그렇게 말할 줄은 몰랐어.”
혐오발언을 쏟아내던 요한나 중령에게 대든 걸 말하고 있었다.
“실제로 잘못된 언행이었으니까요. 그건 취조가 아니라 화풀이에 불과했습니다.”
“그렇지만 여긴 군대지. 그런 상황에서 원칙을 지킬 사람은 많지 않아.”
칼레샤 소령이 딱 잘라 말했다.
“그 때 이후로 확신하게 되었다. 괜찮은 사람처럼 보였던 너는 진짜로 괜찮은 사람이라고.”
나는 그 말에 대답할 수가 없었다. 편대장님. 친위대는 당신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러운 조직입니다. 저도 그 일부이고요.
“···저를 너무 높이 평가하시는 것 같습니다.”
헤르만은 주인, 에리히는 손님. 그러나 ‘나’라는 존재를 그렇게 분리할 수 있을까? 에리히가 있으면 헤르만은 자유로운 존재인가? 그리고 나의 진짜 모습은···
“그렇게 생각하나?”
“인간은 복잡하니까요.”
“그런가.”
칼레샤 소령이 좀 더 나에게 기대온다.
“네 말대로 인간은 복잡하지. 최악의 전범도 집에서는 자상한 아버지일 수도 있는 거야.”
칼레샤 소령이 내 손을 살며시 잡았다.
“하지만, 그때의 네 모습은 분명히 너의 일부다. 그건 변하지 않아.”
나는 대답할 말이 없어서 침묵했다. 칼레샤 소령이 이런 말까지 할 줄은 몰랐다.
“한편으로는 걱정되기도 했다. 군대는 수직구조이고 그 과정에서 희생되는 사람도 있지. 난 너 같은 사람이 밀려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너의 일부는 분명히 괜찮은 사람이니까.”
“···감사합니다.”
나는 치밀어 오르는 것이 있었으나 말을 삼켰다. 대신 화제를 돌린다.
“빈드발드는 어떤 곳입니까?”
“둘에게서 들었나?
“예.”
“평범한 시골이다. 농사를 짓고, 서로서로 모두 얼굴과 이름을 기억하는 작은 동네지.”
칼레샤 소령의 목소리는 얼핏 그리움을 띠고 있었다.
“하지만 내 진짜 고향은 빈드발드가 아니야. 크룬트라고 들어 봤나?”
“아니요.”
“못 들어봤을 거야. 이젠 지도에도 표시되지 않는 곳이니까. 특이하게도 주 한가운데를 산맥이 관통해. 그래서 동크룬트와 서크룬트로 나뉘었어. 나는 산맥 안쪽의 동크룬트에서 살았다. 거긴 제법 도시라고 부를 법한 곳이었지. 반면 산맥 바깥쪽의 서크룬트는 시골이었다. 한 주가 이렇게 다르게 갈라섰는데도 행정구역을 분리하지 않은 게 신기할 따름이지. 아무튼 나는 동크룬트에서 열다섯이 될 때까지 살았다.”
“크룬트에 무슨 일이 생긴 겁니까?”
“전염병. 서크룬트에 지독한 전염병이 돌았다더군. 정부는 그러면서 동크룬트 주민들을 강제로 이주시켰어. 서크룬트에서 전염병이 발생했다손 치더라도, 동서는 산맥으로 가로막혀 있는데 왜 애꿎은 동크룬트 주민도 산개시키냐는 항의도 해봤지만 먹혀들지 않았지. 결국 빈드발드로 이사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내가 빈드발드에 산 기간은 4년밖에 되지 않았어.”
칼레샤 소령의 목소리가 향수에 젖어들었다.
“하지만 빈드발드는··· 그래, 이방인인 우리에게도 너무나 친절했어. 도시에서의 생활을 전부 잊어버릴 정도로 아름다운 나날들이었다. 평생 그곳에서 농사나 지으며 살아가고 싶었어.”
“그러다 감응력 테스트를 한 것이군요.”
“그래. 상위 등급 용인이 될 수 있는 수준이었지. 그들은 나에게 선택하라고 했지만, 실질적으로 선택권은 없었어.”
용인의 확보는 도이체스 제국에서 사활을 거는 일. 가만히 내버려둘 리가 없었다.
“저와 비슷하시네요. 고향이 ‘사라진’ 거.”
“비슷한 일이 또 있었나?”
“아, 물리적으로 사라졌다는 건 아니에요. 전 어린 시절 기억 일부가 없거든요. 그 중에는 제 고향의 이름도 포함되어 있어요. 그냥 제 기억에서 고향이 사라져 버린 거죠.”
마침 그 말을 할 때쯤 바다에 도착했다. 칼레샤 소령은 고급 비행기술을 가르쳐 주었다. 급선회, 정지, 수직 하강, 360도 회전 등등. 칼레샤 소령이 시범을 한 번 보여 주면 내가 직후 따라하는 식이었다. 힘들 것 같은 360도 회전은 의외로 괜찮았다. 떨어질 것 같은 묘기였지만 원심력 때문에 용의 등에 안전하게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반면 수직 하강은 간담이 서늘했다. 순간적으로 느껴지는 무중력. 심장이 쿵 떨어지는 기분. 아찔하면서도 짜릿한 감각이었다.
모든 기술을 연습해보고 나자 칼레샤 소령이 말했다.
“그럼 더··· 아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넌 충분히 많이 했다.”
바이어로 돌아가는 길에는 내가 조종했다. 칼레샤 소령은 착륙도 나에게 맡겼다. 결과는 성공. 다만 좀 거칠게 하는 바람에 골이 조금 흔들렸다.
기셀라에서 내린 칼레샤 소령이 말했다.
“난 제3편대원들을 보면 빈드발드 시골 사람들이 생각난다.”
“빈드발드가 어떤 곳인지 알 만 하군요.”
“그리고 연약하지. 난 내 편대원들을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거다. 네 덕분이지.”
그 말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전에 칼레샤 소령은 척척 걸어 나갔다. 나는 칼레샤 소령의 뒷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절 너무 좋은 사람으로 보는 거 아닌가요···”
그렇게 서 있던 나를 용이 슬쩍 밀었다. 그러자 맥이 풀렸고, 놀랍게도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곧바로 헌병대대에 가려고 했지만 온몸이 땀범벅이 되어서 먼저 씻을 수밖에 없었다. 용기사복이 너무 두꺼운 탓이다.
용기사복을 아무렇게나 벗어던지고 속옷만 입은 채로 화장실로 향했다. 씻는 김에 속옷도 같이 빨 생각이었다. 그러나 문을 벌컥 열기 직전, 나는 안에서 물소리가 들려 재빨리 멈췄다.
다시 주섬주섬 옷을 입고 의자에 걸터앉았다. 무슨 일인지 카트리나가 나한테 먼저 와서 나는 고양이를 안았다. 땀이 식어가는 찝찝한 기분을 느끼며 생각한다.
그런 평가는 절대 나 같은 사람에게 붙어선 안 된다고.
차라리 이텔이라면 그게 더 낫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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