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리고 너는 용이 되어-12화 (12/102)

1권 3장. 비행과 광기의 시작-(2)

「친애하는 헤르만에게」

편지는 이렇게 시작했다.

「나는 계속 프로이센에 있어. 아니, 너랑 만난 이후론 계속 황궁에 있었어. 베르논도 마찬가지. 탄신일 준비 때문에 이것저것 할 게 많더라고.」

얼마 안 있으면 황제의 탄신일 축제가 열린다. 온 국민이 축제를 즐기는 것은 물론, 황궁에서도 성대한 무도회나 잔치가 열린다. 황족인 이텔은 당연히 거기에 참석해야 했다. 나는 부루퉁한 얼굴의 이텔을 상상하며 킥킥 웃었다. 죽어도 치마 입기를 싫어하는 이텔이 어쩔 수 없이 드레스를 입고 보석으로 치장하는 유일한 날이다.

그렇게 자기 얘기를 한 이텔은 곧바로 나의 안부부터 물었다.

「델 중장에게 널 잘 봐달라고 부탁해 버렸어. 워낙 갑작스러운 일이라 나도 모르게 그렇게 말해버렸지 뭐야. 일단 알았다는 대답을 받았어.」

이텔의 계급은 중령. 델은 중장. 까마득한 차이다. 하지만 이텔은 육군 중령이면서 동시에 제국의 유일한 황녀. 완전히 무시해버릴 수는 없는 것이다.

그나저나 어지간히도 내가 걱정되었나보다. 이텔은 청탁 같은 걸 몹시 싫어하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래서 나에게 신경을 쓰나?’

제국의 황녀가 개인적으로 부탁할 정도면 신경이 쓰이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델 중장의 태도는 미심쩍은 데가 있었다.

‘그 사람은··· 마치 나를 이전부터 알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행동한다. 하지만 난 기억에 없어.’

나머지 내용은 신변잡기적인 내용이었다. 편지지가 없었기 때문에 답장은 내일 쓰기로 마음먹었다. 편지를 다시 잘 접어 넣어놓을 때쯤 히데 소위는 신문의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있었다.

“뭐 새로운 소식이라도 있어?”

“올해의 이그노벨상 수상자가 나왔습니다. 데커 랄 교수가 개구리를 자석으로 공중부양시키는 연구로 생물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상품은 도자기로 구운 개구리라는군요. 벨로루시의 총통과 벨로루시 경찰은 공동으로 평화상을 수상해서 무지개색 풍선을 받았습니다.”

“평화상?”

벨로루시의 총통은 독재자이다. 이그노벨상의 특성상 그 점을 비꼰 것인가? 히데 소위가 마저 읽었다.

“총통이 공공장소에서 박수를 치면 체포하는 법률을 제정한 뒤, 벨로루시 경찰이 한쪽 팔이 없는 남자를 그 죄목으로 체포했기 때문입니다.”

히데 소위가 너무나도 진지하게 그 대목을 읽었기 때문에 나는 예상치 못하게 웃음이 터져버렸다. 실제로 발생한 일이라는 점에서 더 황당하다. 내가 낄낄거리는 동안 히데 소위는 나머지 신문을 다 읽고 덮었다.

“그거 말고 진짜 중요한 건 없어?”

그러자 히데 소위가 신문을 뒤집어 1면을 보았다.

“보헤미아의 황태자가 일리아를 방문한다는군요.”

“뭐? 잠시만. 그 신문 좀 나에게 빌려 줄래?”

“가지십시오. 전 어차피 다 읽었습니다.”

히데 소위에게서 신문을 받아든 나는 1면을 읽기 시작했다. 그녀의 말대로 보헤미아의 황태자가 달마티아의 수도 일리아를 방문한다는 기사가 났다. 시기는 도이체스 제국 황제 탄신일 축제기간과 얼추 비슷했다. 더 자세히 보니 그 날짜는 세르보에서 가장 의미 있게 여기는 날이었다.

‘진짜 과감한 행보군.’

샤이 반도의 문제는 정말 복잡하다. 그래도 간단히 추려보자면, 달마티아와 세르보의 구성원은 전부 같은 세르보인, 즉 슬라브 계열 민족들이다. 그러나 세르보는 이번 세기에 들어서 독립한 반면 달마티아는 여전히 보헤미아 제국에 복속되어 있는 상태다. 그리고 그들을 지배하는 보헤미아 제국은 그들과 같은 슬라브족이 아니라 게르만족이다.

당연히 달마티아인들의 감정은 좋지 않다. 안 그래도 전 세계에 민족주의 열풍이 부는 마당이다. 그런데 이런 때에 지배국 보헤미아의 황태자가 달마티아의 수도를, 그것도 세르보인에게 가장 의미 깊은 날에 방문하는 것이다.

‘그들도 바보는 아니니까 알아서 잘 대비하겠지.’

오히려 내가 신경 써야 할 쪽은 황제의 탄신일 축제였다. 지금쯤이면 나는 엄청나게 바빴을 것이다. 황실에서 벌이는 축제이니만큼 당연히 친위대가 이것저것 통제할 게 많다.

뭐, 다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가 되었다. 나는 지금 루프트바페에 있으니까.

나는 장난감을 집어 들었다. 낚싯대처럼 생겨서 끝에는 반짝거리는 색색의 긴 비닐조각이 붙어 있는 장난감으로, 카트리나가 환장을 했다. 내가 그것을 집어 들자 카트리나는 달려왔다. 나는 적절한 타이밍에 낚싯대를 휙 들어올렸다. 아슬아슬하게 놓쳤다. 카트리나는 웅크린 채 튀어나갈 힘을 장딴지에 저장하며 낚싯대를 노려보았다.

그렇게 적당히 피하고, 적당히 잡혀 주고 하면서 놀아 주던 나는 히데 소위가 책을 덮어놓고 이쪽을 구경하는 것을 눈치 챘다. 나는 낚싯대를 히데 소위에게 내밀었다.

“너도 할래?”

“해도···됩니까?”

“물론. 오래 놀아줄수록 카트리나가 좋아하니까.”

낚싯대를 받아든 히데 소위는 카트리나와 사냥 놀이를 계속해 주었다. 얼음장 같은 얼굴이 살짝 녹으며 미소를 띤다. 저런 표정도 지을 수 있는 사람이었나.

카트리나는 결국 실컷 놀았고, 힘이 빠져서 내 머리맡에 퍼질러 누웠다. 오늘 밤만큼은 카트리나가 밤에 우다다 뛰어다니는 일이 없었다.

다음날 우리는 알비 소위가 전해준 예언을 친위대에 보고하기 위해 본부를 찾아갔다. 꽤나 중대한 사안이니만큼 내 직속상관 중에서 가장 높은 아달베르토 집단지도자에게 직접 전달했다. 그의 반응은 미묘했지만, 적어도 우리 입을 막으려는 기색은 없었다. 함구령은 내리긴 했는데, 소문내서 불안감 조성하지 말라는 정도의 의미였다. 헤르만은 긴장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내심, 이 친위대는 홀로코스트를 자행해도 전혀 이상할 것 없는 악질적인 집단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그 생각엔 변함이 없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닌 것이다.

헌병대대로 돌아가니 오늘은 오전에 연병장으로 나와 있으라는 지시를 받았다. 딱히 지금 우리가 도와줄 일은 없었기 때문에 별 불만은 없었지만, 도대체 무슨 일로 불러냈는지 의문이었다. 일단 뺨은 물로 벅벅 문질러 조금 지워냈다. 연병장에는 제1비행대대 중 일부만 나와 있었다. 나, 클로리스 중위, 히데 소위, 알비 소위, 라인스 소위.

궁금증은 곧 풀렸다. 우리를 모아놓은 요한나 중령이 말했다.

“제군들은 감응력 훈련에서 가장 우수한 성과를 보인 사람들이다.”

그제야 납득이 되었다. 가장 첫 번째로 시마를 발동시킨 나, 두 번째로 발동시켰던 클로리스 중위. 그리고 내가 나간 뒤에 라인스 소위도 성공한 모양이었다. 히데 소위와 알비 소위는 어제 오후에 풀려났으니 그때 훈련을 받아 본 모양이었다. 델 중장이 보증한, 감응력 면에서 최상급의 에이스들이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제군들을 제외한 나머지는 감응력에 익숙해지기 위한 훈련을 받고 있다. 하지만 귀관들은 우수함을 입증했기 때문에 그 과정이 필요 없어. 곧바로 본 훈련에 들어간다. 용기사복으로 환복하고 도약광장 입구에 집합하도록.”

숙소로 돌아가는 동안 다들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웅성거렸다. 용기사복을 입으라. 그게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겠는가.

방으로 거의 뛰어오다시피 들어온 나와 히데 소위는 옷장을 열어젖히고 용기사복을 꺼냈다. 그리고 약속이라도 한 듯이 그 옷을 침대에 던져 넣고 서로 등을 돌렸다.

용기사복은 무척 두꺼웠다. 게다가 그 두꺼운 옷 위에 낙하산도 매야 했다. 장갑도 두꺼웠다. 동그란 헬멧은 귀까지 덮는 단단한 재질이었고, 눈앞에는 검은색으로 코팅된 선바이저가 있었다.

마스크라고 불러야 할지 애매한 것은 코와 입을 전부 감싸는 산소호흡기처럼 생겼고, 호스를 끼울 수 있는 구멍이 있었다. 모든 장비를 착용하자 갑자기 눈앞의 선글라스 부분에 글씨가 나타났다. 위도, 경도, 고도를 읽어낼 수 있었고, 그 밖에도 시야에 많은 정보들이 나타났다. 나는 감탄했다. 도대체 몇 개의 마법을 중첩시킨 것일까? 내가 간파할 수조차 없게 정교한 고급 마법이었다.

도약광장 앞에 집합하자 요한나 중령이 말했다.

“이번 훈련은 관숙비행이다. 감응력에 좀 익숙해졌다 해서 바로 탈 수 있을 만큼 용은 만만하지 않아. 일단 비행이라는 것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따라서 숙련된 용기사와 같이 탄 채로 날게 된다.”

그러더니 편대장들을 차례로 우리에게 배정해 준다. 제1편대장부터 제4편대장까지 모두 나와 있었고 모르는 사람도 한 명 있었다. 계급이 소령인 것으로 보아 저 사람도 다른 대대의 편대장이거나 그에 준하는 사람임에 틀림없었다.

나에게는 칼레샤 소령이 배정되었다. 그렇게 다들 각자의 멘토 용기사와 함께 흩어졌다. 대부분은 이 근처의 축사로 향했고 다른 대대에서 온 소령과 함께 타게 된 히데 소위만 저 멀리 다른 곳으로 향했다.

칼레샤 소령의 파트너 용은 기셀라라는 이름의 푸른색 용이었다. 예의 두근거림. 그리고 기셀라는 나에게 다가와 머리를 비볐다.

“내 파트너는 나보다 자네를 더 좋아하는가보군.”

나는 황급히 손을 떼며 말했다.

“그런 사실 없습니다!”

“감응력이 높을 것이란 얘기는 미리 듣고 왔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기대되는군. 하지만 조금 섭섭한데.”

칼레샤 소령이 장갑 낀 손으로 기셀라를 쓰다듬었다.

막상 용을 탈 때가 되니 내 상상과는 많이 달랐다. 프로이센에서 아바셋이 날뛸 때 델 중장이 타고 온 용의 안장은 간소했다. 사람 몸을 용의 등 뒤에만 고정시키면 된다는 최소한의 기능에만 충실한 도구. 그러나 내 눈앞에 있는 안장은 그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복잡하고 정교했다.

내가 안장을 바라보는 것을 눈치 챈 칼레샤 소령이 말했다.

“곧 저 기능을 전부 쓸 날이 올 거다. 하지만 첫 걸음부터 달리려고 하지는 마라. 오늘은 비행에만 충실할 거다.”

용유지관리전대의 여군이 미리 사다리를 가져다 놓았다. 칼레샤 소령이 나 먼저 올라가라고 손짓했다. 의자는 내가 앉자 젤리처럼 움직여 딱 맞는 모양으로 변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두 명이 타는 공간치고는 좁았다. 칼레샤 소령의 자리는 어디란 말인가? 나는 칼레샤 소령이 내 바로 앞에 앉자 경악했다. 칼레샤 소령이 앞에 앉고 나는 그 뒤에 밀착해 앉아 있었다. 흡사 말을 두 사람이 같이 탄 모양새였다. 칼레샤 소령이 쯧, 하고 혀를 찼다.

“···남자 용기사는 성가시군. 자네는 왜 이렇게 다리가 긴가? 조금만 자르면 딱 맞겠군. 등받이가 넓은 건 마음에 들어.”

“아무렇지도 않게 잘라버리는 겁니까? 아니, 그보다 방금 등받이로 취급당했어?”

“입 다물어라, 등받이. 곧 출발할 테니까.”

칼레샤 소령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기셀라가 느릿하게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도약광장으로 향하는 문이 열렸다.

밖에는 수많은 용들이 광장에 나와 있었다.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며 제1비행대대원을 찾았지만 다들 온몸을 꽁꽁 감싼 탓에 알아볼 수가 없었다.

공간을 확보한 기셀라는 거대한 날개를 쫙 펼치더니 펄럭이기 시작했다.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기셀라의 몸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기셀라는 제자리에서 원을 그리며 같은 자리에서 고도를 높여가고 있었다. 기지가 엄청나게 광활한 도넛 모양에서 그냥 조금 큰 도넛 정도의 크기로 줄어들 만큼 날자 기셀라는 선회를 멈추고 앞을 향해 날았다.

바람 소리가 귓가를 때려야 마땅했지만 의외로 조용했다. 나는 그 고요 속에서 심장이 뛰는 것을 느꼈다. 용을 만나서 두근거리는 그것이 아니었다. 하늘이었다. 내가 하늘을 날고 있었다!

사람은 아예 보이지도 않았고 산, 강, 건축물들이 조그만 모형처럼 보였다. 저 멀리 시계탑이 아주 작게 보였다. 프로이센에 있는 시계탑이다. 용은 바람을 가르며 프로이센으로 향하고 있었다.

저 멀리 프로이센 영공에 작은 그림자가 있다. 다가갈수록 그 그림자는 점점 커졌다. 역시 용이었다. 저쪽 용이 갑자기 허공에 불을 뿜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긴장하고 있는데 기셀라는 얼음 결정을 뿜어내 화답했다. 직후 칼레샤 소령은 급선회하여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국가비상사태가 아닌 이상 프로이센 영공에서 비행하는 것은 금지다. 수도방위사령부에 파견된 일부 용기사만이 허용되지.”

칼레샤 소령의 목소리가 마치 귀에 대고 말하듯이 뚜렷하게 들렸다.

“헬멧에 장치된 마법 덕에 이렇게 대화할 수 있는 거다. 당연히 흑요석 따위가 아니다. 다이아몬드에 각인한 마법이지. 나중에 한 사람 몫을 해내는 용기사가 된다면 여러 사람과 동시에 대화하며 작전을 수행할 거야.”

생각보다 더 대단한 마법이었다.

“용기사가 쓰는 좌표는 두 가지다. 하나는 상대좌표, 다른 하나는 절대좌표. 우선 상대좌표는 자신을 기준으로 어느 쪽으로 움직일지 결정한다. 방향은 시각으로 표현하고, 위쪽이나 아래쪽으로 얼마나 이동할지를 선택하지. 지금부터 세시 고도 200으로 움직여보겠다.”

현 고도는 눈앞에 표시된 바에 따르면 160이었다. 칼레샤 소령의 말이 떨어지자 기셀라가 갑자기 오른쪽으로 몸을 홱 틀었다. 단순히 옆으로 가는 것만이 아니라 고도를 높이면서 날고 있었다. 나는 단번에 이해했다. 방향은 시계에 대입하고, 고도를 결정해 움직이는 것이다.

“반면 절대좌표는 위도‧경도‧고도로 위치를 나타낸다. 그리고 정식 절대좌표는 아니지만 동서남북도 고정된 지표 중 하나지. 두 좌표 다 각자의 장단점이 있다. 하늘의 전장은 3차원의 세계. 2차원인 지상과 다르게 위치가 정말 다양하다. 좌표를 잘 아는 건 필수적이지.”

기셀라는 이제 구름과 거의 비슷한 높이로 날고 있었다. 높아서 무섭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저 경이로웠다. 하늘이, 올려다보아야만 했던 구름이, 내 옆에서 떠다니고 있다.

“자, 이제 기본 사항을 숙지했으니···”

칼레샤 소령이 갑자기 나에게 기대온다.

“네가 운전해.”

그러더니 조종간에서 손을 떼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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