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권 2장. 공조수사-(3)
유달리 짙은 색의 비늘. 우리는 말로만 들었던 것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여기, 마력이 빠져나간 부위다.”
엠스트 중위가 이쪽으로 좀 더 다가와 그 비늘을 살펴보았다. 계몽결사의 방식으로 마력을 흡수하려면 우선 용과 신체접촉을 해야 했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은 손. 나는 용의 두꺼운 다리를 눈짐작으로 재서, 그 다리가 서 있었을 때 어느 정도 높이에 올지 짐작해보았다. 물론 용이 앉아 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랬다면 저 부분에 자국이 생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예상되는 높이의 허공에 손을 살짝 올려본다.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벽에 손을 댈 때 눈높이에 올리는 경향이 있지.’
무릎을 굽혀 손이 눈높이까지 오도록 키를 맞춰본다. 그렇게 해서 범인의 키는 165센티미터에서 170센티미터 정도라고 결론을 내렸다.
‘히데 소위는 범인이 아닐 가능성이 높겠군.’
히데 소위는 키가 작다. 150에서 155센티미터 사이. 오래도록 대고 있어야 할 곳을 이렇게 높이 설정하는 것은 부자연스럽다.
문제는 알비 소위. 알비 소위의 키는 약 170센티미터. 범위 내에 들어간다. 칼레샤 소령도 마찬가지.
‘아직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았으니까.’
딱히 같은 편대원이라고 감싸는 것은 아니다. 한 사람의 수사관으로서 미리 단정 짓는 행위가 얼마나 위험한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단정 짓는 순간 그 선입견에 갇혀버리게 된다.
우리는 용의 마력이 빠져나간 부위를 카메라로 찍었다.
“엠스트 중위. 연필과 붓을 구해올 수 있겠나?”
원래 상관이 하라면 해야 되는 곳이 군대이긴 했다.
“최대한 빨리 구해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좀 더 빠르고 나은 대안이 떠올랐다. 우리는 나가려는 엠스트 중위를 불러세웠다.
“제3비행대대 쪽 백화점으로 가서 검은색 아이섀도우와 화장 브러쉬를 사 와.”
“아이···섀도우 말씀이십니까?”
엠스트 중위가 머뭇거렸다.
“그래. 어두운 색이기만 하면 상관없어. 그냥 점원한테 말해주면 알아서 줄 거야. 화장 브러쉬도 마찬가지고. 브러쉬는 최대한 큰 걸로 사 와. 그리고 올 때 테이프와 종이도 같이 가져오고.”
“아이섀도우, 화장 브러쉬, 테이프, 종이. 확인했습니다.”
엠스트 중위가 축사 밖으로 나갔다.
우리는 눈화장을 하지 않지만, 피부화장을 하려면 화장품 가게를 돌아다녀야 했기 때문에 여자들이 쓰는 화장품의 이름 정도는 알고 있었다.
우리는 지문을 채취할 생각이었다. 도입된 지 한 달도 안 된 최신 기술이어서 상대적으로 소식이 느린 군 내의 헌병에게는 낯설 것이다. 아마 친위대였다면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 바로 알아차렸을 것이다.
최신 기술이라지만 간단했다. 흑연 같은 물질을 곱게 빻아 가루로 만들어서 붓을 이용해 표면에 도포한다. 그리고 테이프로 그 지문을 찍어내 종이에 붙인다. 이로써 육안으로 식별 가능할 정도로 선명한 지문을 얻어내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우리가 지금 시도하려는 표면, 즉 용의 비늘이 매끄러운 재질이기에 가능했다. 종이나 천이라면 좀 더 복잡한 다른 방법을 써야 했다.
이전부터 지문이 모든 사람마다 다를 수도 있겠다는 가설이 제기되었지만 증명된 것이 아니기에 도입이 늦었다. 그러나 최근에 일란성 쌍둥이도 지문이 다르다는 연구결과가 밝혀지면서 지문감식은 가장 최신의 수사기법이 되었다. 어쩌면 맥 빠질 정도로 간단하게 일이 해결될지도 몰랐다.
제3비행대대는 여기와 완전히 반대편인데다가 엠스트 중위는 남자라 광장을 가로지를 수도 없을 테니 시간이 좀 걸릴 것이다. 우리는 현장을 계속 둘러보기로 했다.
‘역린을 볼 수는··· 없겠지.’
용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 개체차는 있으나 대체로 목 아래쪽에 위치한다. 용이 지금 쓰러져 있으니 당연히 가려져 있을 것이다.
‘지상에서 역린이 어떻게 보이는지를 보고 싶은데.’
숙련된 사람이 투척한다면, 조그마한 단검이라도 역린을 맞추기만 한다면 용은 죽는다. 역린을 맞출 수만 있다면 이편이 훨씬 빠르고 간편했다. 마력 빼내기는 시간이 오래 걸렸고 들킬 위험도 더 높았다. 그럼에도 역린을 맞추는 것보다 마력을 빼내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우리는 역린을 노리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직접 확인해보고 싶었다. 범인의 입장이 되어서.
우리는 스스로가 범인이라고 상상하면서 걷기 시작했다. 나는 방금 문을 뚫고 아무도 없는 축사에 들어왔다. 눈앞에 있는 건 용 한 마리. 나는 낯선 사람이지만 감응력이 높은 사람이기 때문에 용이 크게 적대적인 반응을 보이지는 않는다.
그렇게 다가가서, 계몽결사들의 ‘그 방법’을 쓴다. 이 방법의 고약한 점은 한 번 손이 닿는 순간 용이 움직이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 뒤부터는 일사천리였을 것이다. 그렇게 마력을 다 빼냈다.
이제는 빠져나와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보초가 틈을 보인 사이에 들어왔을 지도 모르는 범인은 나갈 때도 똑같은 행운을 기대하진 않았을 것이다. 좀 더 확실한 방법, 안전을 보장하는 방법이 있어야 한다.
‘나중에 기지 지도를 달라 해야겠군.’
헌병대대는 보초를 뚫고 범인이 침입한 것으로 보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 생각은 달랐다. 여기 보초들의 경계는 꽤 탄탄했다. 교대주기도 이론적으론 완벽했다. 범인이 어떻게든 보초들의 틈을 찾아내 들어왔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다른 루트로 침입했을 수도 있다. 전자의 가능성은 헌병대대가 열심히 수사해줄 것이고 우리는 후자를 찾아보면 된다.
‘분명 해답은 광장에 있다.’
광장 바깥쪽은 보초들이 삼엄하게 경계를 서고 있지만 아무도 광장 안쪽을 지키려 하지는 않는다. 허허벌판이기 때문이었다. 보초들은 원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을 감시하지 원 안쪽에는 무관심했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아무것도 없으니까.
허를 찌를 곳이라면 광장밖에 없었다. 범인에게 가장 안전한 곳.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고 나자 할 일이 없어졌다. 엠스트 중위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용을 둘러보며 이 생명체가 살아 있었을 때 어땠을 지를 상상했다.
한참 후에 엠스트 중위가 도착했다. 손에 아이섀도우, 화장 브러쉬, 종이, 테이프를 든 채였다. 우리는 섀도우와 화장 브러쉬만 받아가서 커다란 화장 브러쉬에 검은색 가루를 듬뿍 묻혔다.
그 가루를 용의 비늘에 살살 묻히는 것을 엠스트 중위가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얼추 다 묻히고 테이프로 그 지문을 채취할 때쯤 엠스트 중위가 말했다.
“대위님. 그 계몽결사, 꼭 용병기만 노리는 겁니까?”
“보통은.”
“그러니까, 흑요석과 다이아몬드를 제외하고 보통 사용하는 용병기만을 노립니까?”
우리는 엠스트 중위가 무엇을 말하는 건지 알 것 같았다.
“아니. 물론 그쪽이 최우선이긴 한데, 전통적인 용병기라도 훔쳐.”
포탄 등에 마법을 각인한 최신 용병기가 아닌, 검이나 활, 창 같은 용병기도 계몽결사의 표적이었다. 심지어 무기가 아닌 것에 각인되어 있는 용병기마저도 닥치는 대로 모았다.
“그게 오다가 미심쩍은 걸 발견해서···. 보급반장이 병사에게 동기부여를 시키고 있었습니다. 망치 하나가 사라졌다고.”
테이프를 찍찍 떼어내던 손길이 멈췄다.
“그 망치에 마법을 새겨 넣었을 수도 있다고 말하고 싶은 건가?”
“용의 마법을 전부 빼내어 죽였습니다. 용 살해 그 자체가 목적이었을 수도 있지만, 이왕 마법을 빼낸 김에 무기에 담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회의에서 대위님이 말씀하셨던 것처럼요.”
“그게 그 망치라는 거고. 흥미로운 가설이야. 고려할 가치는 있겠는데.”
우리는 지문 채취를 전부 끝냈다. 우리는 테이프투성이인 종이를 엠스트 중위에게 건넸다.
“이제 이 현장에서 볼 일은 없어. 이건 정말 중요한 거니까 잘 보관해.”
“대위님은 어디 가십니까?”
“다음 타겟을 보러.”
그러자 엠스트 중위가 납득한 표정이 되었다. 엠스트 중위는 평범한 남자다. 용을 보러 가는 데 동행하기는 불가능했다.
우리는 보초를 서고 있던 여군에게 안내를 부탁했다. 가장 먼저 간 곳은 노룡 다메의 축사였다.
다메는 죽은 프리데리케만큼이나 거대한 덩치의 녹색 용이었다. 다메를 마주하는 순간 예의 그 두근거림이 우리를 찾아왔다.
다메의 눈이 우리의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 천천히 깜박인다. 이윽고 다메는 이쪽으로 다가온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사뿐사뿐 걸어온다. 다메가 앉더니 머리를 숙여서 우리에게 내밀었다. 순간 거기서 프로이센의 흑룡이 겹쳐 보였다. 우리는 손을 내밀고 다메를 쓰다듬었다. 그것을 본 여군이 감탄하는 소리를 냈다.
“다메가 이렇게 먼저 다가와서 교감한 적은 없었어요. 대위님, 정말 감응력이 뛰어나신가 봐요.”
쓰다듬으며 다른 손은 이제 목 밑으로 슬쩍 넣으려 했다. 용은 잠깐 움찔했지만 반응은 그뿐이었다. 그러나 여군은 사색이 되어 외쳤다.
“안 돼요!”
우리는 손을 멈췄다. 병사가 나에게 달려와 우리 손을 강제로 쳐냈다.
“무,무례를 끼쳐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역린을 건드리시면 안 돼요! 다행히 다메가 반응을 안 했지만 용의 역린에 접근하는 순간 용이 날뛰어요.”
“그러니까, 용의 역린을 건드리기는 매우 힘들 거란 이야기지?”
병사는 무슨 태평한 소리를 하느냐는 얼굴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우리는 순순히 손을 치웠다.
“대위님. 죽을 수도 있었어요.”
“나는 괜찮았는데?”
“그···그치만! 보통은 죽는다고요! 해군 항공대에서도 사고가 있었어요. 무심코 역린 쪽에 손을 가져간 용기사의 머리를 씹어 버렸어요.”
방금의 상황이 이례적인 것인가. 결국, 계몽결사가 빼낸 마력을 가지고 무엇을 했든 간에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쇠약사밖에 없었다. 보통 사람이 역린을 건드리기는 불가능하다. 용은 똑똑한 생물이다. 당연히 적의를 감지하는 데에도 민감하다. 총기를 이용해 저격하는 수밖에 없고, 그 방법은 선택불가다.
우리는 뒤이어 아바셋도 방문했다. 앞의 두 용을 보고 나니 확실히 아바셋이 좀 더 작은 게 느껴졌다. 루프트바페 제1전투비행단에서 가장 어린 용. 프로이센에서는 그토록 거대하게 보였는데.
두근, 두근.
이쯤에서 우리는 결론을 내렸다. 이건 용을 보고 난 뒤의 설렘 같은 것이 아니다. 용을 보고 우리 몸이 반응하는 것이다. 하지만 왜? 그리고 용에게 반응한다면, 왜 헤르만은 라인스 소위에게도 같은 반응을 보였을까? 설마 라인스 소위도 용이란 말인가?
‘그럴 리가 없지.’
용은 질량이 너무 컸다. 돌고래들은 사람과 비슷하거나 약간 큰 정도라서 변신을 하면 보통 사람의 체격을 갖는다. 하지만 용은, 설령 변신 능력을 타고났어도 그럴 수가 없다. 라인스 소위가 용일 수는 없었다.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
우리는 아바셋에게 다가갔다. 아바셋은 우리를 알아본 것 같았다. 흑룡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나에게 머리를 디밀었다. 우리는 아바셋을 쓰다듬었다.
“결국 여기로 왔구나. 잘 지내고 있었어?”
아바셋이 콧김을 내뿜었다.
아무래도 처음 마주했던 용이어서 그런가, 아바셋은 다른 용을 대할 때와 느낌이 달랐다.
이 아이가 다음 표적이 될 확률은 50퍼센트.
“지켜줄게.”
이렇게 말하고 우리 스스로도 놀랐다. 아바셋은 우리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헌병대대로 돌아가자 점심시간이 되기 한 시간 전이었다. 우리는 대대장에게 지문감식법에 대해 설명했다.
“단, 판독에는 조금 시간이 걸립니다. 전문 요원이 일일이 확인해야 돼서요. 나중에 친위대에 연락을 넣어보겠습니다.”
사실 그 전문요원도 지문감식 경력이 한 달밖에 안 되었지만, 어쨌든 교육도 받았고 그 보직에서 수많은 지문들을 판별해낸 사람이다. 우리가 어설프게 나서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경찰에게 부탁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친위대 사람들이 더 친숙했기에 그쪽을 선택했다.
우리는 프로이센에 전화를 걸어 감식요원을 요청했다. 그러자 내일 중으로 한 명을 보내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것까지 끝내고 나니 슬슬 점심시간이었다. 친위대로서의 나는 접어두고 루프트바페의 용기사로서의 내가 활동할 시간. 우리는 마지막으로 대대장에게 물었다.
“여기도 구속수사 할 때 48시간 규칙이 적용됩니까?”
법적으로, 용의자를 구속한 지 48시간 내에 증거를 찾지 못하면 풀어 주게 되어 있었다. 친위대 시절에는 저걸 아무도 안 지켰다. 우리도 마찬가지였고.
“아니. 여기는 군대다. 사회와는 다른 규칙으로 돌아가지.”
그렇지만 사회도 비슷하게 돌아간다. 제3편대원들은 생각보다 오래 갇혀있어야 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헌병대대를 나섰다.
화장실에서 화장을 닦아낸 뒤 친위대 제복을 입은 채 식당에 도착한 나는 뜻밖의 광경을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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